울산 언양읍의 진산 고헌산 원점회귀 코스
영남알프스 살짝 비켜앉아 운치 맘껏 뽐내
정상 주변 망치는 방화선, 하루빨리 복원돼야
완만한 대통골 왼쪽 능선 걸으면 5시간소요
들어가기전-영남알프스의 서북단에 위치한 울산 울주군 고헌산(1033m)에 올라본 산꾼들은 알 것이다. 제2봉격인 1035봉에서 고헌산 정상으로 향하는 수백 m 능선길이 폭 7~8m의 방화선으로 파헤쳐져 있다는 사실을.
방화선(防火線)은 말 그대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비워둔 산불저지선이다. 한마디로 산불 확산을 막고 인력 투입을 쉽게 하기 위해 수목을 잘라 만든 삭막한 산 속의 대로이다. 고헌산의 경우 방화선 때문에 억새는 길 좌우에 무성하지만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속된 말로 산을 다 망쳐놨다.
기자는 이 고헌산의 방화선은 현실을 망각한 탁상행정의 본보기라는 생각이 앞선다. 폭이 길어봐야 10m에 불과한데 1000m 이상 되는 고지에서 불어대는 거센 강풍이 이를 넘지 못할까.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방화선이 제 기능을 하려면 폭이 최소 50m 이상은 넘어야 되며, 그렇지 못한 경우 지금이라도 산림을 복원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모 지자체 산림 담당 공무원의 솔직한 고백이 이를 입증해준다.
그래도 늦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곳도 있다. 의령의 진산 자굴산(897m)이 좋은 본보기이다. 자굴산은 20여 년 전에 방화선을 구축했다가 최근 복원계획을 세웠다.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유지 관리에 따른 예산확보 문제, 그리고 의령의 진산(鎭山)이자 영산(靈山)을 파헤쳐둔 채 더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군민들의 진심어린 목소리에 군이 수긍했기 때문이다.
고헌산 제2봉격인 1035봉에서 방화선을 거쳐 고헌산 정상으로 향하는 일단의 산꾼들. 정상의 돌탑과 이정표가 확인된다. 여기서 마루금을 따라 왼쪽으로 가면 삼각점이 있는 산불초소도 보인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고헌산은 영남알프스에서 한 발 비켜난 독립봉우리다. 맏형 가지산을 비롯한 나머지 8개 봉우리는 모두 마루금으로 연결되지만 이 고헌산만 유독 불고기단지로 유명한 경주 산내면 대현고개로 완전히 내려와 다시 주능선을 향해 땀을 바짝 한 번 더 흘려야 한다.
과거 경주 산내에서 언양장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이 고개는 비록 지금은 포장이 돼 있지만 해발고도가 500m쯤 되는 데다 고헌산이나 가지산으로 향하는 경유지인 895봉까지 각각 1시간 정도에 불과해 큰 줄기의 능선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산줄기의 흐름으로 봐선 되레 경주 산내면과 청도 운문면의 경계에 위치한 문복산이 별개의 봉우리라는 이견도 있다. 강원도 태백 매봉산에서 출발한 낙동정맥 마루금이 경주 백운산에서 고헌산을 거쳐 문복산 대신 가지~간월~신불~영축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영남알프스 서부능선인 천황산(사자봉)과 재약산(수미봉)이 빠져버려 이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고헌산과 문복산은 비록 영남알프스 주 산군에서 비켜나 있는 결격사유가 있지만 ‘1000m가 넘는 영남지방의 산군'이라는 정의에는 부합돼 고민끝에 결국 막차로 포함되지 않았나 싶다.
이번주 산행지는 울산 울주군에 위치한 고헌산(高軒山·1033m). 정확히 말하면 울주군 상북면 두서면 언양읍과 경주시 산내면에 걸쳐있다. 울산의 진산이 무룡산이듯 고헌산은 언양의 진산이다.
예부터 언양사람들은 이 산 용샘에서 소망도 빌고 기우제도 지냈다. 고헌산은 부산서 비교적 가깝지만 상대적으로 한적한 산이다.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번잡하다는 가지산보다 훨씬 가깝다.
가깝고도 한적한 산, 고헌산. 해서 올해의 갈무리 산행지로 적합할 듯 싶다.
산행은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신기마을(이정석)~삼진아파트~보성빌라~경주김씨 공동묘지~지능선~전망대~1035봉~방화선~고헌산 정상(1033m)~산불초소(삼각점·1034m)~임도~도로~전원주택 조성단지~굴다리 통과~산전리 도동마을~경의슈퍼(버스정류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50분 안팎이며 길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통상 고헌산 산행은 대통골 왼쪽길로 1035봉으로 오르거나, 고헌사를 거쳐 곰지골 왼쪽길로 상봉으로 향하는 코스가 보편적이다. 이 두 산길은 24번 국도 상에서 정상이 훤히 보일 만큼 급경사 오름길이어서 여간 힘들지 않다. 하지만 산행팀이 고른 대통골 왼쪽 능선길은 경사가 완만한 옛길이어서 그리 힘들이지 않고 등정이 가능하다.
상북면 궁근정리 신기마을 앞에서 하차하면 우측에 ‘신기마을'이라 적힌 이정석이 서 있다. 정면 저 멀리 검은 빛깔이 나는 계곡이 대통골, 그 오른쪽 너덜이 보이는 골짝이 곰지골이다. 고헌산 정상은 대통골과 곰지골 사이의 멧부리다. 산행은 왼쪽 저 멀리 보이는 KCG파크아파트 뒤 능선을 타고 올라 오른쪽으로 주능선을 탄 후 궁근정리와 이웃한 산전리 도동마을로 하산한다.
진우훼밀리아 아파트를 보고 마을로 향한다. 삼진아파트를 지나 보성빌라 왼쪽으로 가면 갈림길. 왼쪽으로 간다. 정면에 눈덮인 가지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내 또 갈림길. 이번엔 KCG파크아파트 앞에서 오른쪽 산 방향으로 향한다. 시멘트길이 끝나는 갈림길에서 왼쪽 흙길로 간다. 경주 김씨 묘지군을 지나면 또 갈림길. 오른쪽으로 오르면 공동묘지.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오르면 이때부터 본격 산길이다. 여기까지 왔으면 들머리는 대충 찾은 셈. 이정석에서 30분.
솔가리와 낙엽이 수북한 운치있는 산길이다. 약간의 경사는 있지만 호흡이 긴 지그재그식 옛길이라 그리 힘들지 않다. 음지쪽엔 아직 잔설이 남아 있지만 산행엔 지장이 없다. 지능선까지는 대략 50분. 도중 두 번의 갈림길이 있지만 모두 우측으로 가면 된다.
1035봉에서 바라본 영남알프스 산군. 왼쪽부터 가지산중복 가지산 쌀바위 상운산 쌍두봉. 우측 마을이 그 유명한 산내 불고기단지이다.
1035봉에서 더 크게 본 주변 산세. 가운데 맨 뒤가 단석산, 그 앞으로 낙동정맥이 내달린다. 그 아랫마을이 소호리이다.
지능선에선 우측으로 향한다. 문복산과 고헌산 정상이 각각 보이고, 한 굽이 더 오르면 고헌산 2봉인 1035봉이 머리 위에 걸린다. 왼쪽 확 트인 지점에 서면 1035봉에서 이어지는 소나무가 빽빽한 낙동정맥능선~대현고개~목장을 지나 문복산과 운문령의 분기점인 895봉과 운문령이 한눈에 펼쳐진다. 마른 억새길을 지나면 우측으로 바위전망대. 발 아랜 들머리 신기마을과 저 멀리 운문령 가는 24번 국도가 뱀 기어가는 듯하다.
바로 위가 1035봉. 전망은 상봉보다 훨씬 더 좋다. 정면 돌탑 뒤 저 멀리 낙동정맥인 경주 단석산을 중심으로 우측으로 구미산 옥녀봉 벽도산 경주시내 소금강산 동대봉산 토함산 삼태봉 동대산 무룡산이, 그 앞 능선의 맨 오른쪽 국수봉을 기점으로 좌측으로 치술령 마석산 남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정면 눈앞의 산허리에 길이 나 있는 산이 고헌산에 앞선 낙동정맥인 백운산이다. 고개 돌려 우측으로 고헌산 정상, 그 우측 연화산 무학산, 울산 문수산 남암산 꽃장산 대운산, 그 앞 능선으로 정족산 천성산2봉 천성산 금정산이 각각 확인된다. 그 오른쪽 앞 일자능선이 신불산, 그 앞 능선 우측으로 간월산 배내봉 오두산 송곳봉이, 24번 국도 끝 배내고개를 중심으로 오른쪽이 능동산, 그 뒤 오른쪽 천황산을 기점으로 좌측에 재약산 향로산이, 우측에 가지산중봉 가지산, 그 우측 앞으로 쌀바위 상운산 쌍두봉 지룡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가히 영남알프스 최고의 전망대라 부를 만하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방화선. 하루빨리 복원돼야 할 것이다.
이제 고헌산 정상으로 향한다. 폭 7, 8m의 방화선이 능선길을 갈라놓고 있다. 산불 확산을 막고 인력 투입을 쉽게 하기 위해 만든 방화선 탓에 억새는 길 좌우에 무성하지만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상봉은 10분 뒤, 삼각점이 있는 산불초소는 다시 3분 뒤에 닿는다. 울산 쪽 바다도 보인다.
정상석과 돌탑이 서 있는 고헌산 정상. 최근 국토지리정보원이 재측량한 결과 이웃한 봉우리가 높다고 표기해 '진짜' 정상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산은 오른쪽 고헌사 방향. 삼각점이 있는 방향으로 직진하면 소호령 백운산 소호고개로 이어지는 낙동정맥길. 방화선을 따라 크고 작은 봉우리 4개가 보인다. 과거 기우제를 지냈다는 용샘은 삼각점 봉우리 남동쪽 아래 산사면 억새밭 쪽에 있다.
작은 돌탑을 지나 9분 뒤 갈림길. 오른쪽은 고헌사 신기마을 방향. 산행팀은 직진한다. 길은 점차 좁아지고 7, 8분 뒤 다시 갈림길.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이때부터 능선을 따라 직진만 하면 되지만 대신 조그만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 밧줄에 의지해야 할 정도의 바위길도 내려선다. 언양읍내도 차츰 가까이 다가오고, 왼쪽 저 멀리 경부고속도로가 철탑과 나란히 달린다. 정면의 울산 문수산과 남암산도 점차 근접해 온다.
삼각점 봉우리에서 1시간40분 뒤 임도. 우측으로 150m쯤 가면 오른쪽에 산길이 열려 있다. 곧 만나는 무덤 우측으로 하산길이 보인다. 15분 뒤 임도와 다시 만난다. 여기서 산을 벗어나는 도로까지는 7분 정도. 사실상 산행 끝. 여기서 굴다리와 도동노인정을 잇따라 지나 경의고·상북중학교 맞은편 24번 국도상의 버스정류장인 경의슈퍼 앞까지는 35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산불초소가 위치한 봉우리로 옮겨
고헌산의 해발고도는 널리 알려진 1033m보다 1m 높은 1034m. 산행 중 유심히 관찰한 산꾼이라면 알겠지만 2002년 10월에 삼각점을 지금의 정상에서 산불초소가 위치한 봉우리로 옮겼다.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항공사진측량 결과 이곳이 더 높게 나타났다는 것. 실제로 봐도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상황이 또 달라졌다. 국토지리정보원이 발행한 2006년판 지형도에는 그간 1020m로 표기돼 있던 봉우리가 갑자기 1035m로 변해 있다. 기존의 정상이 1033m, 삼각점과 산불초소가 있는 봉우리가 1034m이기 때문에 순순히 해발고도로만 따지면 예전의 1020m, 지금은 1035m봉이 정상이 돼야 한다.
고헌산 정상 주변 방화선은 탁상행정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속된 말로 산을 다 망쳐놨다. 폭이 넓어봐야 7~8m에 불과한데 1000m 이상 고지의 강한 바람이 이를 넘지 못할까. 당시 정책을 입안한 공무원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공무원의 정책 실명제 도입이 절실한 대목이다.
대통골은 경사가 심한 난코스. 전통의 부산 대륙산악회 등산학교의 졸업등반코스인 이 길은 로프를 이용해야 할 정도로 제법 전문성을 요하는 코스여서 아마추어 산꾼들은 유의해야 한다. 참고하길.
맛집 한 곳 소개한다. 언양시장 내 위치한 '쌀전곰탕(052-263-6846)'. 시장 내 7~8개 쇠머리곰탕집 중 가장 맛있기로 소문난 집. 35년 전통의 원조집이다. 시어머니와 함께 하다 3년전 며느리 김향화 씨가 물려받았지만 맛은 변함없다는 게 단골들의 전언이다. 국물이 투명하며 시원하다. 장날이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 넘쳐난다. 6000원. 수육 1만5000~2만5000원. 언양시외버스터미널 후문에서 걸어서 1분 거리이다.
# 교통편 - 언냥터미널서 내려 석남사행 1713번 버스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언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30분 첫 차를 시작으로 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시간10분 걸리고 2500원.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석남사행 1713번 울산 좌석버스를 타고 상북면 궁근정리 신기마을 앞에서 내린다. 오전 7시40분, 8시, 8시40분, 9시10분 등 20~30분 간격으로 있다. 1200원.
날머리 경의슈퍼 앞에서 언양행 1713번 좌석버스는 오후 2시40분, 3시25분, 4시15분, 4시40분, 5시10분, 5시40분, 6시10분, 6시40분, 7시30분(막차)에 있다. 현금 1300원. 언양에서 노포동행 시외버스는 20~30분 간격으로 있으며 막차는 밤 9시.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서울산(삼남)IC~언양 35번 국도(가지산 석남사)~창녕 밀양 24번 좌회전 뒤 언양시장 맞은 편 강변주차장(무료)에 대고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된다. 이럴 경우 길을 건너 언양시장을 관통해야 한다. 걸어서 5분 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