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의 보석'이라 불리는 마나가하섬 앞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는 관광객
의 모습이 평화롭게 그지없다.
사이판.
서태평양 한 복판에 활 모양으로 이어진 14개의 섬 중 가장 큰 섬으로 공식 명칭은 북마리아나 제도이다.
한국과 시차는 뜻밖에도 1시간.
그러니까 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고 적도 쪽인 남쪽으로 상당이 떨어져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동남쪽으로 3000㎞, 비행기로 고작 4시간이면 닿는 비교적 가까운 섬이다.
남북으로 21㎞, 동서로는 8.8㎞밖에 안되는 좁고 긴 섬으로 거제도의 3분의 1 규모인 사이판은 장삼이사들에겐 태평양이 함께 연상돼 심리적 거리까지 더해져 아주 먼 섬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동남아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는 필리핀의 세부(4시간15분)나 태국의 푸껫(6시간20분)에 비해 비행시간이 짧은 데다 지명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그간 부산서는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부산~사이판의 하늘길이 다시 열렸다.
# 빼어난 천혜의 자연경관
흔히 국내외 명소를 소개할 때 자주 등장하는 '천혜의'라는 수식어가 이곳처럼 안성맞춤인 곳이 드물다. 사이판의 서쪽은 필리핀해, 동쪽은 태평양이다. 섬 서쪽인 필리핀해 인근은 지구상에서 가장 지진이 잦은 환태평양 조산대가 위치해 있어 항상 지진과 쓰나미의 발생 확률이 높다. 이 때문에 필리핀해와 인접한 사이판 또한 이론상으로 피해 우려지역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사이판에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서쪽 해안가를 끼고 고급 리조트들이 들어서 있다. 화산 분출로 형성된 사이판은 섬에서 수백m에 이르는 해안까지 용암이 굳어 있는 데다 그 위에 산호초가 겹겹이 형성돼 있어 그야말로 천연 방파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즉, 용암의 끄트머리가 어른 키 높이 정도의 깊이라면 그 이후부턴 갑자기 수심이 10m 이상으로 확 떨어진다는 것. 세계에서 가장 긴 천연 산호방파제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단다.
멀리서 봤을 때 거친 파도가 어느 특정 지점에서 흰 포말이 사라지면서 호수처럼 잔잔한 전혀 다른 바다로 급변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연유에서다. 지난해말 인도양의 쓰나미로 인해 푸껫 몰디브 등의 휴양지가 1분 만에 초토화된 사실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해서, 사이판은 해안가에서 보통 100~200m 정도 멀리 나가도 그리 깊지 않아 어린이들도 손쉽게 스노클링 등 해양레포츠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하늘에서 본 마나가하섬.
사이판의 바다색은 흔히 '일곱 빛깔'이라 불린다. 산호초와 햇빛의 강약이 조화를 이뤄 시시각각으로 물색깔이 변하기 때문이다. 파란색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그 색에 적합한 단어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섬의 북서쪽에 위치한 마나가하섬. 배로 10분 거리다. 걸어서 15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는 이곳은 스노클링의 천국. 눈부신 백사장을 지나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수면 아래로 들어가면 산호초 사이를 유영하는 다양한 열대어에 놀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물은 얼마나 깨끗한지. 운이 좋으면 50㎝ 정도 크기의 상어도 볼 수 있다.
패러세일링도 타고.
바나나보트도 타고.
바다엔 물 반 고기 반. 낚싯대를 처음 잡아 봤다는 부산 아지메도 월척을 건져 올렸다.
이어지는 월척.
물고기를 보자 원주민이 일순간 칼을 갈기 시작한다. 알고보니 이곳 사람들도 회를 먹는단다.
한가로운 해변에선 비치발리볼을 하는 젊은이들이 눈에 띈다.
일몰 무렵은 카약을 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이제 나무 대신 숲을 볼 차례. 섬 중앙에 우뚝 솟은 최고봉인 타포차우산(473m)에 올라보자. 비포장길을 사륜 구동차를 타고 15분 정도 오르는 이른바 정글투어다. 섬 동쪽은 급경사를 이룬 해안절경과 함께 열대우림으로 아직 미개발 지역이다. 열대우림은 2차 대전 당시 초토화된 섬을 복원하기 위해 헬기로 뿌린 씨앗의 결과물이다.
예수상이 서 있는 산 정상에 서면 사이판의 전체 절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동서남북으로 한 바퀴 돌며 사진을 찍어 이어 붙이면 그대로 사이판의 지도가 완성된다. 유심히 관찰해야 될 볼거리 하나. 수평선이 일직선인 우리나라와 달리 사이판의 수평선은 적도와 가까워 원형이다. 구름이 유난히 낮게 떠 있고, 밤에 별이 쏟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모두 같은 원리다. 인근에 위치한 원주민 농장에서 맛있는 열대과일도 맛보고, 가톨릭 성지로 사이판에서 유일하게 민물샘(聖水)이 솟는 성전 앞에 서 있는 성모 마리아상도 빠뜨리지 말자.
갈가마귀떼의 보금자리인 새섬의 전경.
새섬.
북동쪽 해안의 새섬 또한 놓쳐선 안될 볼거리. 바위 표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석회암섬으로 해질 무렵 보금자리를 찾아오는 갈가마귀떼로 까맣게 변한다. 섬 색깔이 흰색인 것은 1만 년 이상 새의 분비물이 쌓였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하늘에서 볼 경우 주변 해안과 더불어 새가 날갯짓을 하는 형상이다.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국내 노래방 배경화면으로 자주 등장한다.
# 참혹한 전쟁의 흔적
우리나라도 사실 사이판과 무관하지 않다. 2차 대전 당시 미군에겐 일본군을 패퇴시키고 승기를 잡은 희망의 땅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온 징용자와 종군위안부의 피눈물이 얼룩진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태평양 한국인 추념 평화탑. 탑 꼭대기의 비둘기를 우리나라 방향을 향하고 있다.
태평양 한국인 추념 평화탑이 바로 그것. 2차 대전 당시 사이판 등 남양군도로 끌려와 억울하게 죽은 한국인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탑 꼭대기의 비둘기는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약간 비스듬히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나라 쪽이다.
일본군이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반자이'(만세)를 외치며 뛰어내렸다는 높이 80m의 해안절벽인 일명 만세절벽.
인근의 만세절벽은 사이판의 최북단에 있는 높이 80m의 해안절벽. 전세를 역전시킬 수 없음을 깨달은 일본군은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반자이'(만세)를 외치며 바다속으로 뛰어내려 일명 '반자이 클리프'라고도 불린다. 만세절벽 바로 뒤편의 해발 249m의 절벽은 자살절벽. 역시 전쟁 막바지 수백 명의 일본군과 그의 가족들이 항복을 거부하며 뛰어내렸다. 지금도 절벽 아래에는 유골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자살절벽을 자세히 보면 포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동행한 가이드는 "우리나라의 야산이었다면 산 자체가 무너졌을텐데 산호섬이라 단단해 포탄 맞은 자국만 그대로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군 최후의 사령부.
안내판 앞에서 설명을 겉들이는 사이판 현지 가이드.
일본군 최후의 사령부는 거대한 바위가 햄버거 모양처럼 포개져 있어 일명 햄버거 바위로 불린다.
일본군 사령부로 올라가는 계단.
사령부 입구는 어른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구명으로 들어간다.
사령부 실내.
일본군 최후의 사령부도 인근에 있다. 거대한 바위가 햄버거 모양처럼 포개져 있고, 그 바위 사이로 성인 한 사람이 고개를 숙여야 겨우 들어갈 수 있지만 직접 들어가보면 놀랍게도 사령부가 있었을 법한 넓은 공간이 있다. 한눈에 봐도 미군이 하늘에서 쉽게 찾을 수 없을 요새이다.
# 쇼의 천국 사이판
사이판의 유명 리조트에서 저녁 식사 때면 원주민인 차모로족의 민속춤을 구경할 수 있다. 월드리조트의 그것이 아주 유명하다. 화려한 차모로 전통의상을 입은 젊은 남녀 무용수들이 반복되는 타악기의 리듬에 맞춰 보여주는 민속춤은 원시적 본능을 자극해 자신도 모르게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하얏트호텔에서 펼쳐지는 매직쇼 '샌드캐슬쇼'도 볼만하다. 1시간 정도 진행되는 이 쇼는 아름다운 무희들의 춤과 미국에서도 방송 출연을 통해 잘 알려진 미술사 안토니오 리드가 나와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해지기 전 선셋 크루즈.
선셋 크루즈 실내에선 식사 후 필리판 악사 로저의 신명나는 노래와 춤이 일품이다.
사이판의 일몰은 전 세계에서 아름답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이때 선셋 크루즈를 타고 석양을 바라보며 저녁식사를 해보자. 배 안에서 필리핀 악사 로저의 신명나는 노래와 춤도 일품이다. 영어는 물론 한국 일본 노래를 유창하게 부르는 그는 관광객들을 단숨에 휘어잡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 고품격 리조트, 가족휴양지로 으뜸
사이판의 고급 리조트 대부분은 해안가에 위치해 있어 일곱빛깔의 바다를 바로 볼 수 있다. 각 리조트들은 또 가족 단위 휴양객을 겨냥해 워터파크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해안가를 끼고 있어 카약 카누 스노쿨링 등 다양한 해양레포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월드리조트가 대표적 사례. 최근 한국인이 인수한 뒤 리모델링을 해 지난해 3월 문을 연 이곳은 엄청난 길이에 폭발적인 스피드를 만끽할 수 있는 튜브 슬라이드, 보디 슬라이드, 워터코스트, 파도 풀 등 캐리비안 베이에 버금가는 첨단 물놀이 시설을 자랑한다.
월드리조트 야경.
월드리조트 물놀이 시설.
PIC 사이판 리조트의 포인트 브레이크. 고압으로 분사되는 물줄기 위에서 보드를 타는 이것은 젊은이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인근의 전통의 PIC 사이판 리조트는 고압으로 분사되는 물줄기 위에서 보드를 타는 포인트 브레이크가 단연 압권이다. 젊은 연인이나 중고생이라면 월드리조트를, 어린 아이들이라면 PIC를 권하고 싶다.
# 떠나기전에 - 수시로 열대성 폭우… 여행에 큰 불편은 없어
사이판은 14개 섬으로 이뤄진 북마리아나 제도의 주도(主島). 14개 섬 중 사이판과 티니안, 로타가 유인도이며 나머지 11개는 무인도이다. 티니안은 2차 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을 탑재한 곳으로 유명하다.
마젤란이 발견한 사이판은 오랜 스페인 통치시대를 거쳐 1914년부터 일본의 식민지였다. 종전과 동시에 사이판을 비롯한 북마리아나 제도는 미국이 이양을 받아 1962년까지 지배했다. 지금은 미국 자치령. 외교 국방권만 미국이 관할할 뿐 이웃한 괌과 달리 미연방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원주민들은 모두 미국 시민권자이다. 인구는 8만 명, 그 중 6만 명이 사이판에 거주하고 있다. 평균 기온은 27도, 연중 기온차가 1~2도로 거의 변화가 없다. 열대성 폭우인 스콜이 수시로 내리지만 여행에는 큰 문제가 없다.
최근 금호그룹이 인수한 사이판 최고의 골프장인 라우라우베이CC.
최근 아시아나항공의 모기업인 금호그룹이 사이판 최고의 골프장인 라우라우베이CC를 인수, 골프를 연계한 패키지 상품이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렉 노먼이 설계했다는 총 36홀인 이 골프장의 동쪽 코스 5, 6, 7번 홀은 바다가 보이는 해안절벽 코스로 공이 바다 위로 날아가는 듯한 짜릿함을 맛볼 수 있다. 문의 북마리아나 제도 관광청 (02)752-3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