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교산 & 그너머 <360> 한라산

 
  한라산 정상에서 북쪽인 관음사 방 향으로 하산하다 만나는 왕관릉. 암 봉이 이름처럼 왕관을 쏙 빼닮았다.
한라산(漢拏山·1,950m)이란 이름은 ‘은하수를 잡아 끌어당길 수 있다’(雲漢可拏引也)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 그만큼 산이 높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한라산은 그 높이에 비해 오르내리는 일이 의외로 수월하다. 산행 기점이 대부분 해발 620~1,280m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같이 쾌적한 날씨에는 산책하듯 가볍게 오를 수 있다. 실제로 한라산 등반 길에 나서다 보면 평상복에 운동화를 신은 산꾼 아닌 산꾼들이 자주 눈에 띈다.

사실 산꾼들에게 한라산은 겨울 산행지.

국립공원한라산관리사무소는 그동안 겨울철 적설기간(통상 11월부터 다음해 2월)만 한시적으로 백록담 정상을 개방해왔고 나머지 기간에는 7, 8부 능선까지로 산행을 제한해 산꾼들은 겨울에만 한라산을 찾았다. 이른바 눈꽃산행이란 이름으로.

하지만 오랜 기간 실시해온 자연휴식년제와 등산로 복구작업이 최근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면서 올 3월부터 성판악 및 관음사 코스에 한해 정상까지 개방, 이젠 한라산의 사계절을 볼 수 있게 됐다.

동행한 한 산꾼은 “눈덮인 한라산만 두 번 올라 산세를 정확히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 산행으로 그 궁금증이 해소됐다”며 “용진각대피소 주변 산세와 울긋불긋한 단풍, 이끼 낀 탐라계곡의 수려함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행팀은 길이 평탄한 성판악으로 올라 한라산 북면의 멋진 경관을 볼 수 있는 관음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현재로선 두 코스를 연계해 백록담에 오르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산행은 성판악매표소~사라악약수터~사라대피소~진달래밭대피소~한라산 동능 정상~왕관릉~용진각대피소~삼각봉~개미등~탐라계곡대피소~숯가마터~구린굴~관음사주차장 순. 흔히 9시간에서 길게는 12시간까지 잡는데 이는 눈꽃산행 때 아이젠을 찬 경우가 고려된 것 같다. 보통 산꾼이라면 빨리 걷지 않더라도 8시간대면 가능하다.
 

산행은 해발 750m인 성판악휴게소에서 시작된다. 매표소를 지나면 한 눈에 숲이 깊음을 알 수 있다. 하늘이 거의 보이지 않아 마치 밀림지대를 걷는 기분이다.

처음엔 한라산이라는 상징성과 꽝꽝나무 노가리나무 등 평소 못보던 수종이 눈에 띄어 눈동자가 바쁘게 돌아가지만 길의 단조로움과 같은 수종의 반복, 그리고 꽉 막힌 조망 등으로 이내 지루함을 느낀다.

1시간30분 정도 뒤면 사라악약수터. 물이 나오는 파이프를 쓰러진 고목 안으로 넣어 제법 운치있게 만들어 놨다.

1시간쯤 지났을까. 갑자기 앞이 확 트인다. 바로 진달래밭대피소다. 해발 1,500m. 과거 산행통제땐 여기까지가 허용구간이었다. 건물 옆에 매점이 있어 대부분의 산꾼들이 이 곳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컵라면과 음료수, 커피 등이 다른 국립공원보다 엄청 싸다.

이제 정상까지는 2.3㎞. 시간상으로 1시간 안팎. 해발 고도가 높아 키 큰 관목은 점차 줄어들고 구상나무 고사목이 눈길을 끈다. 살아선 기품 있는 모습으로, 죽어서는 오히려 신비스런 자태로 산꾼들을 맞는다.

정상에 가까이 갈수록 제주도 동쪽의 조망이 훤히 트이면서 동시에 섬 특유의 매서운 바람도 거세진다. 서귀포시가 저 멀리 보이고, 성산 일출봉과 중산간지대 사이의 수많은 오름들이 실루엣으로 펼쳐져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마침내 정상. 정확히 말하면 한라산 동능 정상. 한반도 남쪽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그토록 고대하던 백록담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신령스러움마저 느껴진다. 그래서 영주산(瀛州山)이란 별칭이 붙었던가.

바람이 너무 거세 이내 입이 얼고 손이 소매 속으로 들어간다. 구름걷힌 백록담은 보고 싶은데 도무지 가을바람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차고 세다. 일순간 ‘와아’소리가 들린다. 백록담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내 구름이 시야를 가로 막는다. 물은 조금 뿐이었고 구름 사이로 까마귀 여러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진 바람 때문에 더이상 지체할 수 없어 북쪽인 관음사 방향으로 하산길을 재촉한다.
 

조금 내려서니 주목과 구상나무 고사목이 많이 서 있다. 장관이다. 30분쯤 뒤엔 왕관릉 이정표가 서 있지만 실제론 볼 수가 없다. 좀 더 내려가야 한다.

곧 용진각대피소. 주변 봉우리 전체가 울긋불긋한데다 기암괴석마저 돌출돼 있어 경관이 빼어나다. 대피소 뒤편 봉우리는 젊은 산악인들의 설상훈련 장소로도 유명하다.

솥뚜껑처럼 생긴 붕괴위험건물을 지나 탐라계곡 최상부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제서야 왕관릉이 보인다. 이름처럼 암봉이 마치 왕관을 쏙 빼닮았다. 평소 건천인 탐라계곡은 국내 3대 계곡에 들 정도로 경관이 아름답다. 비가 오면 순식간에 폭포수처럼 계류가 쏟아지는 탐라계곡의 이끼 낀 초록의 자태는 과히 인상적이다.

산사면을 비스듬히 트래버스하면 이번엔 개미등. 생긴 모습이 비슷해 붙여진 이름. 길이 좁은데다 길 왼쪽에 바위절벽으로 철조망을 쳐놓았다. 폭설이 내리면 산사태가 가장 빈발하는 곳이다.

조금만 더 가면 이번엔 등뒤로 삼각봉. 봉우리를 인위적으로 깎은 듯 삼각형처럼 생겨 신기할 정도다. 잘록한 개미목을 지나면 발밑 등산로에는 나무를 깔아 놓아 관광탐방로를 걷는 기분이다.

이후 탐라계곡을 두차례 정도 가로지르면 숯가마터와 구린굴 낭떠러지를 차례로 만난다. 여기서 날머리인 관음사주차장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글·사진=이흥곤기자



## 떠나기 전에

제주 사람들은 한라산이 곧 제주도이고, 제주도가 한라산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제주도에서 차지하는 한라산의 비중이 크다.

금강산 지리산과 더불어 삼신산(三神山)으로 불리는 한라산은 제주 사람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안개가 낀 백록담에 꽃사슴이 내려와 물을 먹고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는 동화같은 산으로 여겨지는 한라산은 신비감이 감도는 산이다.

한라산으로 오르는 산길은 관음사 코스, 성판악 코스, 영실 코스, 어리목 코스 등 네가닥으로 단촐하게 이어진다. 이 중 현재로선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로만 정상 등정이 허용되고 있다.

어리목 코스는 1100번 도로에서 윗세오름 대피소로 올라 서북벽을 구경하고 영실로 하산하는 것이 좋으며 오백나한의 기암과 건폭이 장관을 연출한다.

한라산은 사계절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봄의 한라산은 각종 야생화와 철쭉으로 산상의 화원을 연출하고 여름엔 푸른 신록으로, 속살까지 볼 수 있는 가을엔 붉게 물든 단풍과 억새가, 겨울엔 흰눈을 이고 있는 매력 넘치는 산이다.

당일치기로 한라산만 오르는 것은 너무 아쉽다. 1박2일로 느긋하게 산행후 제주도 구석구석을 둘러보면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기분이다. /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 교통편


한라산은 산행시간이 길어 출발시간을 계절에 따라 세가지로 나눠 제한한다.

△춘추절기(3~4, 9~10월) 오전 9시30분 △동절기(11~12월, 이듬해 1~2월) 오전 9시 △춘하절기(5~8월) 오전 10시. 이달에는 오전 9시30분까지는 매표소를 통과해야 한다. 국립공원한라산관리사무소 (064)713-9950.

부산서 한라산 등반을 하루만에 하려면 첫 비행기를 이용하면 가능하다. 대한항공(1588-2001) 부산발 제주행 오전 7시10분 비행기를 타면 된다. 월~목 5만9천4백원, 금~일요일 6만3천원(이상 공항세 포함).

돌아올 땐 아시아나(1588-8000) 비행기도 가능하다. 제주발 부산행 마지막 비행기는 오후 8시10분. 그 앞은 오후 7시20분, 6시20분에 있다. 월~수 5만8천8백원, 금~일요일 6만2천9백원(〃). 대한항공의 부산행 마지막 비행기는 목~토 오후 7시30분, 월~수 오후 8시40분, 일요일 오후 8시5분.

공항에서 들머리인 성판악휴게소까지 택시요금은 1만5천원, 날머리인 관음사에서 공항까지는 1만2천원 정도 나온다. 유의할 점 한 가지. 공항에서 등산용 스틱과 맥가이버칼은 위험물로 취급돼 수하물로 맡겨야 한다.


/ 글 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hung@kookje.co.kr  입력: 2003.10.2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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