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맞선 20여년 자물쇠 채워 지켜낸 파라다이스
개발 막은 천혜의 때묻지 않은 절경 다시 주목
세계 3대 해변 '화이트 비치' 낮과 밤, 천상의 황홀함
휴가와 허니문. 둘의 공통점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 터. 어디를 간들 최고의 편안한 휴식인지라 가만히 생각만해도 기분이 아주 좋다. 하지만 모든 여행이 최고의 휴식만을 보장하지는 않는 법. 진정 편안한 휴식을 얻고 싶다면 가급적 인파가 덜 붐비고 문명이라는 오염이 덜 탄 외딴섬의 리조트가 제격이 아닐까.
#부활하는 천국 보라카이
무려 700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 열도 한가운데 위치한 파나이섬 북서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조그만 부속섬, 보라카이. 지도상으론 가운데가 쏙 들어간 장구모양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어여쁜 여인네의 눈섭을 쏙 빼닮았다.
20여년 전 유럽의 다이버들에게 처음 발견된 후 그들만의 비밀 휴양지로 유지돼오다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외부 세계에 알려졌다. 휴양지 리조트 개념에서 보면 필리핀에선 원조인 셈.
이런 보라카이에 갑자기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자연환경이 조금씩 훼손되자 나라에서 건물높이를 야자수 높이 이상으로 짓지 못하게 하는 등 자연환경 보존에 심혈을 기울였다.
반면 비슷한 시기 이웃 태국이나 괌 사이판 등지에서 휘황찬란한 최고층 리조트로 관광객을 유혹하면서 보라카이는 편의시설 부족 탓에 점차 2류로 전락했다.
하지만 시대의 조류가 여행의 취향도 바꾸는 법. 복고풍의 도래라고나 할까. 인공미를 가미한 화려함보다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이에 부합되는 보라카이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필리핀항공이 매달 발행하는 매거진 '마부하이' 최근호에서도 보라카이를 '부활하는 천국'이라는 제목으로 세 페이지에 걸쳐 장황하게 소개하고 나섰다.
보라카이에서 만난 이탈리아의 한 주부는 "10년 만에 가족과 함께 다시 찾은 보라카이의 해변은 때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한마디로 천국 그 자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실제로 섬은 아직도 문명의 손을 마다하고 있다. 그럴 듯한 접안시설이 없어 백사장 가까이에 배를 대고 현지인들에 의해 업혀 섬으로 들어오고 있으며 도로가 좁아 운송수단 또한 오토바이 및 자전거를 개조한 트라이시클뿐이다.
여담 하나. 이 섬에서 주민들이 만든 수제품을 사면 라벨에 보라카이의 별칭인 '메이드 인 파라다이스'라고 찍혀있다. 현지인들 또한 자신들이 사는 그 곳을 정말 천국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화이트 비치에서의 망중한
바다쪽에서 바라본 보라카이 화이트 비치.
섬의 내부구조는 대략 이렇다. 총 길이 7㎞, 폭 1.5㎞로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고 보라카이가 자랑하는 하얀 산호가루의 화이트 비치는 서편 해안을 따라 무려 4㎞에 걸쳐 야자수 숲과 더불어 펼쳐져 있다. 야자수 숲 뒤편으론 폭 3m 정도의 비치로드를 따라 리조트와 다양한 식당, 바, 쇼핑가게, 레포츠센터 등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리조트에서 나와 남북으로 각각 30분씩만 해변과 비치로드를 왕복으로 산책하면 사실상 섬 전체의 첫 탐색은 가볍게 끝난다. 때문에 여정을 좌지우지하는 가이드의 역할은 아주 미미하다. 이를테면 오전 6시 모닝콜 후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버스에 몸을 싣고 파김치가 되도록 돌아다니는 강행군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여유로움이 미덕이 되고 빈둥거림이 일상이 되는 진정한 해방공간인 셈이다.
느긋하게 늦잠 잔 후 여유있게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오전에는 화이트 비치를 거닌다. 눈처럼 새하얀 비치를 맨발로 걸으면 마치 푹신한 밀가루 위를 걷는 기분이다.
세계적 권위의 여행 가이드북인 '론리 플래닛'이 세계 3대 해변으로 선정할만도 하다. 물빛은 또 어떤가. 발밑에서 투명하던 물빛은 멀어질수록 옥색 에메랄드색 코발트색으로 카멜레온처럼 변한다. 수심도 얕아 해변에서 30, 40m 정도 떨어져도 허리춤밖에 안 된다. 그 속을 떠다니는 원색의 세일링보트와 필리핀 전통 목선인 방카의 평온함이란.
햇빛이 강렬해지는 오후에는 야자수 숲 비치베드나 리조트 수영장의 그늘진 베드에 누워 망고주스를 마시며 망중한을 즐긴다. 평소 보고싶은 책이 있으면 금상첨화. 때론 야자수 그늘 밑에서 현지 여인들의 코코넛 오일 마사지를 받으며 낮잠을 청해도 좋다.
수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질 때의 화이트 비치는 아주 매혹적이다. 이를 좀 더 가까이서 보기위해 관광객들은 세일링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석양이 질 무렵이면 뜸하던 해변이 다시 시끌벅적해진다. 나른한 오후 내내 휴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한 관광객들 대부분이 화이트 비치로 나온 때문이다. 수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질 때면 현지인들이 연주하는 은은한 음악을 배경으로 신혼부부들은 추억만들기에 열중하고, 다른 한편에선 금발의 비키니 여인들이 비치발리볼 솜씨를 뽐내고 있다.
수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질 때의 화이트 비치는 아주 매혹적이다. 이를 좀 더 가까이서 보기위해 관광객들은 세일링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별이 쏟아지는 한밤의 보라카이는 로맨틱한 분위기의 극치를 이룬다. 은은한 조명의 노천카페에선 현지인들이 통기타로 들려주는 올드팝송의 선율아래 산미겔 맥주를 곁들이면 천국의 하루는 이렇게 또 지나간다.
#해양레포츠의 보고(寶庫) 보라카이
보라카이해변은 해양레포츠의 보고이다.
물이 아주 맑은 데다 섬주변이 온통 형형색색의 산호초 군락으로 이뤄져 스킨스쿠버다이빙 포인트로 명성이 자자하다. 스킨스쿠버다이빙이 부담스러우면 구명재킷을 입고 수면 위에서 수중천국을 살짝 엿보는 스노클링을 해도 좋다.
바다낚시도 빼놓을 수 없다. 거창한 장비 대신 조그만 페트병에 낚시줄을 감아 새우를 미끼로 줄을 내리면 2, 3분 내에 거짓말같이 누구나 예쁜 열대어의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다.
파도를 가르는 스릴을 맛보려면 바나나보트나 플라잉피시, 제트스키를 타면 좋고, 환상적인 낙조를 좀 더 가까이서 몸소 느끼려면 패러세일링이나 세일링보트를 타보자.
# 한국인 운영 리조트와 레포츠센터도 있다
보라카이로 가는 여정은 멀다. 김해공항에서 출발, 3시간30분간 날아 마닐라에 도착한 후 다시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해 경비행기를 50분간 타고 카티클란공항에 내린다. 여기서 잠시 트라이시클을 이용해 제티선착장으로 이동한 후 필리핀 전통 목선을 20분정도 타야 보라카이섬에 닿는다.
마닐라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칼리보공항에 내릴 경우 제티선착장까지는 버스를 1시간30분정도 더 타야 된다. 이럴 경우 1인당 40달러가 더 싸다.
부산서 출발하는 필리핀항공 마닐라행 직항은 주 4회 있다. 오후 7시45분 출발하며, 부산 도착시간은 오후 6시45분.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느리며 화폐단위는 페소. 1달러는 50~55페소.
참고 하나. 보라카이의 '빅3' 리조트는 쉐라프, 리젠시, 파라다이스. 한국인이 운영하는 쉐라프는 미역국이나 김치 등 한국인을 배려한 음식이 제법 있다. 쉐라프와 마찬가지로 풀을 보유한 리젠시는 미끄럼틀이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여행객들에게 선호된다. 파라다이스는 정원이 넓지만 해변까지 걸어서 8분 정도 걸려 약간 불편하다.
또 한가지. 패키지 상품을 이용할 경우 가이드가 손님의 입맛을 고려해 한국인 식당을 주로 애용한다. 때문에 필리핀 해산물 요리 등과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경험해 보길 원할 경우에는 미리 가이드에게 요청하면 된다.
이와 관련, 보라카이의 경우 섬이 아주 좁은데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레포츠센터 씨월드가 있어 최근에는 항공편과 리조트만을 예약하는 에어텔 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