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구 당리동 '명성횟집'
왼쪽 위 붉은돔에서 시계방향으로 참우럭 참가자미 도다리. 맨 가운데 부분이 도다리 '세코시'.
넘치는 게 횟집이건만 사실 자연산인지 양식고기인지 알 길이 만무하다. 회를 아주 즐기는 미식가들이라면 몰라도.
혹자는 좀 더 쫀득쫀득하게 씹히는 게 자연산이라고 하지만 이따금씩 맛보는 필부들이야 회의 맛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양식산과 자연산 회를 완전히 구분하는 것은 취기 오른 주당이 가짜 양주와 진짜 양주를 식별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고들 한다.
자연산 회를 즐기는 식도락가들에게 희소식을 전한다. 부산 사하구 하단오거리 옛 사파이어호텔(현재 본병원) 인근에 위치한 자연산회 전문인 '명성횟집'이다.
겉으로 보기엔 출입문 양측에 작은 수족관이 있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평범한 횟집이다. 하지만 찾는 손님의 60~70% 정도가 자연산 회만을 고집하며 '회생회사'를 부르짖는 단골들이다. 산꾼들이 자신들만 알고 있는 보석 같은 산길이 널리 알려지기를 원치 않듯 이들 단골 또한 지금처럼 조용히 와서 미각의 향연을 즐기려는, 맛에 관한 한 고집불통들이다.
밑반찬은 평범하다. 오징어회무침 샐러드 연어 단호박 마 칠면조훈제와 굴전 대나무잎밥 새우 완두콩 고둥이 담긴 접시, 광어 미역국, 계란찜이 연이어 한 상 가득 나온다.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복분자액과 막장이다. 복분자와 설탕을 같은 비율로 섞은 복분자액은 소주에 타 마셔도 되며, 막장은 볶은 누룽지를 갈아 넣는 등 적지 않은 품이 든 이곳만의 자랑이다. 간장에 곁들이는 생고추냉이는 향이 가득하며, 상추 깻잎 마늘 고추도 빠질 수 없는 약방의 감초이다.
다음은 메인 디시인 자연산 모듬회 큰 것. 3~4인용으로 10만 원이다. 접시에는 애오라지 먹음직스러운 회만 가득 놓여 있다. 우윳빛 색상과 질감이 우선 침이 돌게 한다. 길게 썬 참가자미, 붉은빛이 살짝 묻어나는 참돔은 알겠으나 나머지 두 가지는 두툼하게 포를 떠 구별이 안 된다. 물어보니 참우럭과 도다리였다. 모두 자연산이란다. 접시 한가운데에는 뼈째 썬 도다리 '세꼬시'가 맛보기로 약간 나왔다. 비싼 일식집에서 봐왔던 듬성듬성 깔린 회 몇 점이 그야말로 조족지혈로 스쳐갔다.
고흥군 녹동에서 잡은 세발낙지.
해물 모듬.
별미인 도미구이. 단골이거나 운이 좋아야 맛볼 수 있다.
명태전.
열기.
생선지리탕.
참돔 한 점을 집어 생고추냉이를 섞은 간장에 살짝 묻혀 입으로 가져갔다. 혀와 이 사이로 느껴지는 육질의 쫄깃쫄깃함이 뇌를 통해 입 안 가득 넘쳐난다. "맛있다" "뭐가 달라도 다르네." 이구동성으로 반응이 나타난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지금까지 '회'라고 먹어온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먹는 즐거움 아니 행복감이 이런 것이란 말인가 라고 덧붙인다.
포를 뜬 도다리와 참우럭도 마찬가지였다. 쫀득쫀득 씹히는 자연산 회의 맛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맛의 기준을 제시하는 듯했다.
동행한 조성화 부산맛집기행 회장은 "회 자체가 워낙 맛있다 보니 초장이나 막장 생고추냉이 그리고 마늘 고추 상추 깻잎의 역할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참가자미는 물에 씻은 묵은지와 궁합이 맞다고 박광석(47) 사장이 권한다. 주방장을 겸하고 있는 박 사장은 "회 하나만큼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자연산 회가 끝이 아니었다. 고흥 녹동에서 온 세발낙지에 이어 멍게 해삼 개불 전복(내장 포함)이 대바구니에 푸짐하게 담겨 나온다. 도미 구이도 잇따랐다. 좀처럼 맛볼 수 없는 도미 구이는 운이 좋아야 만난다. 두툼한 명태전이 나올 땐 "어휴!" 하는 즐거운 비명이 이구동성으로 나왔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식사는 매운탕 지리로 나왔다. 세 개는 공기밥, 하나는 알밥이 서비스로 나온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후추를 미리 뿌려 나왔다는 점. 손님들이 취향에 맞게 먹을 수 있는 권리를 뺏은 셈이다.
박 사장은 "하루 전 예약을 하면 회의 숙성이 가능해 더 맛있게 회를 즐길 수 있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배웅하러 나온 박 사장은 수족관 내 낚싯줄을 문 우럭을 가리키며 자연산인 증거라고 말했다. 지하철 1호선 당리역 1번 출구로 나와 걸어서 5분. 차는 인근 한국주차장에 대면 된다. 2시간 무료. (051)208-6316
◆ 주인장 한마디 - 자연산 회맛의 비결은 알고보니 발품
명성횟집 자연산 회의 맛의 비결은 박광석(47) 사장의 발품이었다. 칼질 경력 18년인 박 사장의 회 뜨는 솜씨 또한 빼놓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박 사장은 6년 째 일주일에 한 번 물때를 맞춰 직접 삼천포로 가서 자연산 회를 운송해 온다. 1t짜리 활어차를 갖고 있는 다른 횟집 사장과 함께 동행한다. 두 집 모두 1t 짜리 활어차에 가득 실을 수 있을 만큼 물량이 필요치 않아 반반씩 사용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다.
그들은 밤 10시15분께 부산을 출발, 자정 무렵 도착한다. 약간 이른 편이다. "그래야 어판장 가까이 차를 댈 수 있어요. 낙찰받은 활어를 '고무다라이'에 담아 직접 옮기는 것은 최대한 이동거리를 줄여 스트레스를 적게 받게 하기 위해서랍니다."
"고기가 맛있다고 저희 집만 고집하는 단골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발품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박 사장의 표정에는 장인 정신이 묻어난다.
굳이 삼천포를 고집하는 이유를 묻자 박 사장은 "삼천포 근해의 경우 물살이 거세 부산 진해 쪽 고기보다 육질이 더 좋다"고 답했다. 자신이 또한 직접 맛을 봐도 그렇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