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교산 & 그너머 <365> 경주 토함산

 
  해돋이 명소답게 토함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는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천년고도 경주는 전통과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관광지이자 휴양도시.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경주는 수학여행의 옛 추억이 서려 있어 언제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요즘의 현실은 어떤가. 경주를 방문해도 보문단지 안 콘도나 호텔에 머물면서 온천이나 놀이공원은 자주 찾지만 석굴암 등 문화 유적지엔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이번 주는 산행도 하고 문화유산도 구경할 수 있는 경주 토함산(745m)으로 떠났다. 그리고 하산 지점을 아예 석굴암 쪽으로 잡았다. 이렇게라도 해야 한 번쯤 발걸음이 옮겨지니까.

코흘리개 시절 무심코 넘겨 봤던 석굴암의 모습과 현재의 눈에 비친 석굴암의 차이를 느끼며 새삼 변해버린 자신을 다시 한번 추스려 보자.

토함산은 신라인의 얼이 깃든 영산으로,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오악(五嶽) 중 하나였다. 오악은 신라때 하늘이나 산신에게 제를 지낸 5개 영산. 토함산을 흔히 동악(東岳)이라 부르는 것은 오악 중 동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 나머지 산은 계룡산(서악) 지리산(남악) 태백산(북악) 팔공산(중악). 참고로 태백산 천제단이나 지리산 노고단은 당시 제를 지내던 제단.

토함산은 그리 험하지 않은 전형적인 육산이며, 해맞이의 명소답게 정상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는 가히 환상적이다. 그 보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산행의 절반 이상이 소임을 다하고 사라지려는 만추를 붙잡을 수 있는 초겨울의 낙엽산행이라는 점.

산행은 대산장작가마~잇따른 무덤(6개)~갈림길~헬기장~창녕 조씨묘~월성 김씨묘~등산로 이정표~정상~헬기장~석굴암 입구~불국사 입구~불국사 주차장 순. 4시간 30분~5시간 정도 걸린다.

보문단지를 지나 문화엑스포공원에서 하차해 버스 진행방향으로 5분 정도 걸으면 삼거리.

정면에 ‘대산장작가마’ ‘전통 도자기학습’이라고 적힌 커다란 간판이 보인다. 간판 뒤 논밭 사이로 50m 정도 가면 본격 산길. 들머리다.

호젓한 산길엔 낙엽이 융단처럼 쌓여 있어 정감이 간다. 15분쯤 뒤 능선길로 올라선다. 왼쪽에 경주시민의 식수원인 덕동호가 보인다. 산길엔 거미줄이 쳐져 있고 낙엽이 떨어진 채 그대로 쌓여 있어 오랫동안 인적이 드물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15분 뒤 이번엔 오른쪽으로 보문호가 시야에 들어온다. 누군가 나무를 베어 조망을 틔워놓은 것 같다.

‘좌 덕동, 우 보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산행 중 좌우 양측으로 호수를 감상할 줄이야.

사실 토함산은 석굴암과 불국사를 품고 있는 산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 산 자체는 별로 조명되지 않았다. 동행한 산꾼들은 한결같이 토함산 자체만으로도 독립 산행지로 충분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여섯 번째 무덤이 있는 319m 봉을 지나 50m쯤 가면 갈림길.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한다. 이 지점에서 특히 유의하자.

잠시 사라졌던 덕동호가 또 다시 나타난다. 이전에는 호수만 보였던데 이번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감포 가는 4번 국도까지 한 눈에 보인다.

재밌는 산길도 만난다. 마치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수차례 빙글빙글 돌며 올라간다. 이렇게 20분 정도 오른 후 뒤돌아 보면 덕동호와 보문호가 동시에 훤히 보인다. 힘들게 올라온 보람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헬기장과 창녕 조씨묘를 지나면 산길이 푸근해진다. 초겨울이라 음지는 얼음이 얼어있고 양지는 아직도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다.

 

웬만한 고분만큼 큰 월성 김씨묘를 지나면 정면에 토함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후 지독한 오르막을 힘겹게 지나면 주변은 온통 잣나무. 줄지어 있는 것을 보니 오래 전에 인공조림을 한 듯 싶다. 잣잎은 낙엽과는 달리 스펀지처럼 푹신푹신하다.

잣나무숲을 지나면 갑자기 정면에 확 트인 시야가 펼쳐진다. 왼쪽 저멀리 본지 지면에 소개됐던 동대봉산과 함월산이 보인다.

오른쪽길을 택한다. 왼쪽에는 아직도 억새가 지지 않고 바람에 몸을 의지한 채 춤을 추고 있다.

20분쯤 뒤 이정표를 만난다. 우물식수지점으로 정상까지는 0.5㎞. 오른쪽으로 3㎞ 정도 내려가면 코오롱호텔 주차장. 직진한다. 낙엽길이 너무 좋아 다음에 누군가를 데려와야겠다는 말이 이구동성으로 쏟아진다. 오른쪽에 불국사 주차장이 보이고 뒤돌아보면 ‘좌 보문, 우 덕동’ 사이에 방금 우리가 올라온 조그만 봉우리가 보인다.

곧 정상. 사방이 온통 산. 정상석과 돌탑 쪽으로 가기 전 불국사를 기준으로 왼쪽에 치술령, 그 뒤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 가지산 고헌산 문복산 등 영남알프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경주의 산들도 한 눈에 볼 수 있다. 불국사 오른쪽으로 남산 고위산 마석산 벽도산 단석산 용림산 구미산 오봉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남쪽엔 삼태봉.

다시 정상석이 있는 돌탑에 다다르면 저 멀리 동해바다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작은 봉우리가 가까이 있어 마치 항공사진이나 위성사진의 입체감을 보는 듯 하다.

하산은 헬기장을 지나 동쪽으로 내려선다. 석굴암 입구까지는 20분이면 닿고 여기서 불국사까지는 50분 정도 걸린다. 아직도 울긋불긋 단풍이 볼 만하다.



# 떠나기 전에 - "온천으로 산행 피로 날리세요"

흔히 사람들은 경주를 두고 노천박물관이라 부른다. 경주시 전체가 하나의 문화 유적지여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호국 진산으로 여겨지는 토함산은 석굴암과 불국사를 품고 있다. 석굴암은 생전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는 현세의 부모를 위해 완성됐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석굴암(국보 24호)은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년) 재상 김대성에 의해 기공되어 혜공왕 10년(774년) 창건됐으며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22년(535년)에 창건된 이후 수 차례 중수됐다. 불국사 경내에는 다보탑(국보 20호)과 불국사 삼층석탑(일명 석가탑·국보 21호), 청운교 백운교 등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석굴암과 불국사는 지난 1995년 12월 해인사 팔만대장경, 종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지정됐다.

토함산(吐含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데는 두 가지 설이 전해온다. 하나는 동해바다와 가까이 있어 자주 발생하는 안개와 구름을 삼키고 토하는 산이라는 설이 있고 또 하나는 신라 4대왕인 탈해왕의 이름에서 연유됐다는 설이다.

 

지금까지의 토함산은 사실 하루 산행지로는 짧은 감이 없지 않았다. 이번에 소개되는 산길은 이런 단점을 조금은 해소해줄 것으로 믿는다. 문화엑스포공원에서 산길을 잡아 오르는 코스로 근교산 마니아에게는 안성맞춤의 산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산행 후 피로를 풀려면 불국사 근처의 경주온천을 찾아보자. 목욕료 5천원.

/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 교통편 - 부산-경주 버스 15분 간격 배차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051-508-9966)에서 경주시외버스터미널(054-743-5599)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30분부터 15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3천6백원. 들머리에 가기 위해서는 경주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서 불국사행 좌석버스 10번을 타고 문화엑스포공원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1천1백50원.
 

날머리인 불국사 주차장에서도 역시 좌석버스 10번을 타고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린다.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 막차 시간은 오후 9시50분. 역시 15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경주시외버스터미널 맞은 편 둔치에 주차를 해놓고 불국사행 좌석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주차비 무료. 또는 버스 하차지점인 문화엑스포공원 부근에 차를 주차시키고 하산 후 11번 좌석버스를 이용, 문화엑스포공원 정류장으로 되돌아 가면 된다.

경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서는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빠져나와 첫 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한 후 ‘시외버스터미널’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고수부지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시외버스터미널을 약간 지나 U턴해야 한다.

/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입력: 2003.12.0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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