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중구 보수동 '새진주식당'
"우리집이 진주비빔밥의 원형 그대로 간직"
직접 담근 고추장 간장 등 장맛이 맛이 비결
아직도 유명 정재계 인사들 부산 오면 찾아
비빔밥에 관한 한 부산사람들은 오랫동안 축복받았다고 할 수 있다. 51년째 같은 장소에서 비빔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마을 어귀 장승처럼 도심 한가운데 떡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구 보수동 중부산세무서(옛 보수초등학교) 옆에 위치한 새진주식당(051-256-8855). 단순히 오래됐다는 것보다 진주비빔밥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소개하는 것이다.
진주가 고향인 안주인 조춘자(70, 사진 왼쪽 ) 씨는 "열아홉 살 때 엄마와 함께 15만 원을 들고 와서 보수천 옆 이곳에 10만 원으로 하꼬방이나 다름없는 집을 얻고, 5만 원으로 살림살이를 장만해 비빔밥을 팔았으니 참 오래됐지"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어렸을 때 큰고모가 진주에서 비빔밥집을 했어. 갈 때마다 한 번씩 맛보던 그 비빔밥이 얼마나 맛이 있던지. 비빔밥 만드는 법을 딱히 배운 것은 없지만 비빔밥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유심히 봐 뒀지."
진주비빔밥은 육회비빔밥이다. 1593년 임진왜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에게 성이 함락되기 직전, 백성들과 군인들이 마지막으로 성에 남아 있던 소를 모두 잡아 육회를 만들고, 그릇이 모자라 밥과 나물을 한데 넣고 비벼 먹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온다. 비빔밥에 못 넣고 남은 고기는 모조리 국을 끓여 먹었다. 눈물겨운 최후의 만찬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전통을 자랑하는 진주비빔밥이 현재 진주에서는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중앙시장 내 제일식당과 천황식당 등 몇 곳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전주비빔밥이 한국을 대표하는 비빔밥으로 우뚝 솟아 있는데도 말이다.
궁금해서 물었다. "진주의 제일식당 천황식당과 전주비빔밥을 드셔 보셨는지." 돌아온 답이 재미있다. "물론 가봤지. 잘 하던데. 거긴 청포묵이 없었지만 우린 주변에 큰 시장이 있어 청포묵이 올라왔어. 그러니까 우리 집이 진주비빔밥의 원형을 100% 유지하고 있는 셈이지. 두 군데 다 가본 단골들이 거기보다 우리 집이 더 맛있다고 하던데. 전주비빔밥은 이름값에 비하면 생각보다 별로였어. 파전도 우리와 달리 오징어만 잔뜩 들어간 오징어전이던데."
진주비빔밥(1만 원)이 나왔다. 콩나물 녹두나물 고사리 버섯 호박 시금치 배추 미나리 쑥갓 등에 육회와 청포 계란지단 등이 올려진 화려한 비빔밥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맵지 않으면서 뒷맛이 달짝지근하다. 육회가 나물에 섞여 입안에서 녹는다. 입속에 오래 남는 여운은 다진 쇠고기와 홍합 조개를 삶아 푹 우려내 한두 숟가락 곁들인 포탕과의 조화 때문일 게다. 선짓국은 얼마나 담백하고 깔끔한지. 곱창 양 쇠고기 죽순 버섯 등이 들어 있어 솔직히 비빔밥 없이도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울 듯하다. 두툼한 파전(1만5000원)도 오묘한 맛을 자랑한다. 갑오징어 새우 문어 낙지 쇠고기 등 재료만 무려 30가지가 넘는다.
조춘자 씨는 "우리집 맛의 비결은 결국 장맛"이라며 주방 뒤로 안내하며 20여 개의 항아리(사진 아래)를 열어 보였다. 또 다른 여러 항아리를 가리키며 "저건 전어젓 제주자리돔젓 조기젓 갈치젓 멸치젓 등 각종 젓갈"이라고 말했다.
메뉴에 돌솥비빔밥과 회비빔밥(이상 1만2000원)이 보였다. "일본사람들이 저걸 찾더라고. 그래서 만들었어. 한 10년쯤 됐지." 이 집의 유명세는 알고 보니 전국구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정·재계 인사들은 아직도 그 맛을 못 잊어 부산을 찾으면 반드시 들른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