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교산&그너머 <371> 밀양 운문산
선계(仙界)가 어디 부러우랴. 운문산 산행 도중 만난 기암괴석 절벽위에서 사바 세계를 내려다 보 는 이창우 산행대장.
경북 청도군 운문면과 경남 밀양시 산내면에 걸쳐 있는 운문산은 가지산(1240m)과 아랫재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가지산 운문산을 밟지 않고서 영남알프스를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남알프스를 대표하는 산이다.
운문산의 등산로는 밀양시 산내면 석골사에서 출발, 상운암~정상~딱밭재~운문사로 하산하는 길과 운문산 정상~아랫재~가지산으로 향하는 길이 가장 일반적인 코스.
이번 주 산행팀은 석골사 원점회귀 코스를 개척했다. 석골사~억산 갈림길~대비골~범봉 갈림길~정구지바위 갈림길~얼음굴(동굴군)~잇단 전망대~운문산 정상~안부 사거리~딱밭재 갈림길~잇단 전망대~(위험한)암릉길~상운암계곡 갈림길~석골사 순. 5시간 정도 걸린다.
석골사에서 오르는 길은 두 가지. 한 가지는 산행팀이 택한 길이고 다른 길은 석골사 입구 폭포 근처서 계곡을 건너 능선을 타고 오르는 방법.
석골 버스정류장에서 석골사까지 걸어서 25분 정도. 천년고찰 석골사는 6·25때 전소된 것을 20여년 전에 불사, 내세울 만한 문화재는 없지만 입구의 폭포와 주변 산세가 일품.
산행은 절 오른쪽으로 난 산길을 오르며 시작된다. 살을 에는 칼바람, 앙상한 나뭇가지, 너덜너덜한 낙엽. 전형적인 겨울산이다. 계곡 물소리가 잠시 계절을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
곧 억산 갈림길. 왼쪽으로 가면 억산(944m) 정상(3.5㎞). 직진한다. 목장승에 걸려 있는 ‘운문산 4㎞, 상운암 3.5㎞’ 이정표가 재미있다. 15분 쯤 뒤 대비골계곡을 만나면 건넌다. 계속되는 호젓한 산길. 다시 갈림길과 만난다. 왼쪽은 범봉(965m) 갈림길. 직진한다. 운문산까지는 3㎞. 먹이활동을 나온 주변 새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또 갈림길. 왼쪽은 딱밭재 가는 길. 청도 운문사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다. 10분 뒤 또 계곡을 건넌다. 상운암계곡이다. 푸른 산죽이 반갑게 맞는다. 산사면을 따라 걸으면 길 왼쪽에 어른 키 두 배 높이의 둥그스름한 바위가 서있다. 정구지바위다. 옛날 마고할멈이 정구지를 앞치마에 담아 올라가다 잠시 이 바위 위에서 쉬다가 흘려 지금까지 정구지가 남아 있다고 전해온다.
오른쪽 길로 올라선다. 얼음굴 방향이다. 직진하면 석골사 부속암자인 상운암으로 간다. 얼음굴은 동의보감을 쓴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이곳 사람들은 허준이 스승의 시신을 해부한 곳은 밀양 얼음골이 아니라 이곳이라고 주장한다). 유의태는 어의 시절에도 오랜 벗이었던 석골사 주지를 찾아 약초도 캐면서 쉬다 갔으며 말년에는 아예 이 곳으로 내려와 임종을 맞았다고 한다. 정구지바위에 흰 페인트로 ‘허준→’이라고 적혀있는 것도 모두 이러한 연유에서다.
주렁주렁 열린 고드름을 지나면 이내 바위군. 그 사이로 큰 굴이 숨어있다. 여름에 희고 찬 연기가 난다고 얼음굴이라 불린다. 크고 작은 4~5개의 굴이 있다. 굴 입구에는 밧줄이 걸려있다. 그 중 가장 큰 굴은 줄잡아 20명이 비박가능할 정도로 넓다. 허준이 시체를 놓고 해부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평평한 대(臺)도 보인다.
굴을 나와 바위 위로 오르면 건너편 바위 위 돌탑과 소나무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주변 경관도 아주 빼어나다. 바위군락지를 오르면 지금부터 급경사 오르막길. 잇단 전망대가 기다린다. 오른쪽 억산을 기준으로 사자봉 농바위와 깨진바위가 좌우에 포진해 있고 정면에는 석골사 뒤 수리봉과 북암산 화악산 남산이, 수리봉 왼쪽에는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계속되는 오르막. 발걸음 옮기는 곳이 모두 전망대다. 두 번의 암릉길과 전망대를 지나면 발 밑 작은 봉우리가 보이는 지점이 나온다. 석골사 입구 계곡을 건너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여기부터 길이 좋은 편.
산죽과 낙엽길을 번갈아 지나면 네갈래 길. 오른쪽 남명리 하양마을, 왼쪽 상운암 방향. 직진한다. 10분 뒤면 저 멀리 정상석이 보인다. 거기서 5분 후면 정상. 장쾌한 조망에 넋을 잃는다. 동쪽에 영남알프스의 맹주 가지산이, 반대편 서쪽에는 지리산 천왕봉 가야산 팔공산 유학산 보현산이, 남쪽에는 원동의 토곡산이 자리잡고 있다. 정상에서 만난 초로의 산꾼은 운문산은 조망이 좋은데다 사통팔달로 산길이 뻗어있어 6·25때 영남지역 파르티잔의 본부로 이용됐다고 설명했다.
하산은 정상석 왼쪽인 북쪽으로 향한다. 5분 뒤 안부사거리. 왼쪽은 상운암을 거쳐 상운암계곡으로 내려가 석골사에 닿는다. 비교적 평이한 길이다. 산행팀은 직진길인 억산 방향으로 간다. 이 길은 딱밭재에서 운문사, 혹은 범봉 억산쪽으로 갈 수 있고 석골사로 내려설 수도 있다.
산길은 아주 좋다. 왼쪽에 상운암이 보인다. 산죽길이 끝난 후 10분 쯤 뒤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길은 딱밭재 방향. 왼쪽으로 내려선다. 입구에 ‘산불조심 부산가톨릭대’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길은 비교적 가파르고 들쭉날쭉하다. 몇 곳의 전망대를 지나면 아주 험한 암봉이 나오니 유의하길. 여성 등 초보자들이 넘기에는 상당히 애로사항이 많으므로 보조로프를 지참하면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암봉 건너편엔 정구지바위가 보인다. 이 암봉을 넘으면 곧 올라온 길인 상운암계곡을 만난다. 딱밭재 범봉갈림길을 지나면 거기서 석골사까지는 25분 정도 걸린다.
웃음을 머금게 하는 목장승 이정표.
◇ 영남알프스 고봉들
한반도 중추인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낙동정맥의 능선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영남지방에 우뚝솟은 해발 1000m 이상의 산군인 영남알프스. 9개 봉우리인 영남알프스는 해발고도 순으로 가지산(1240m)을 시작으로 신불산(1208m) 천황산(사자봉·1189m) 운문산(1188m) 재약산(수미봉·1108m) 간월산(1083m) 고헌산(1033m) 영축산(취서산·1059m) 문복산(1013m).
지난 70년대초 부산 산악계를 주도하던 대륙산악회 성산 곽수웅씨 등이 울주 경주 청도 밀양 양산 등 5개 군에 걸쳐 일정 간격으로 솟아있는 고봉들의 아름다움이 일본의 북알프스 연봉에 견줄만큼 아름다워 명명한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영남알프스를 좀 더 세분하면 고헌산 문복산 가지산 운문산 억산 구만산 등 동서로 뻗은 연봉을 북알프스라 하고, 천황산 재약산 정각산(859m)을 남알프스 중 서알프스, 능동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까지를 남알프스 중 동알프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 기묘한 바위 등이 어우러지고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경치는 가히 일품이다. 특히 가을이면 8~9부 능선 곳곳의 광활한 억새밭은 환상적이라 할 만큼 아름답다.
100만여평에 이르는 재약산(수미봉) 사자평을 비롯 신불산과 영축산 사이 60여만평의 신불평원, 간월산 아래 10만여평의 간월재, 그리고 고헌산 정상 부근의 20만여평의 억새밭은 산꾼들의 발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종주도 가능하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나지만 통상 2박3일 정도 걸린다. 본사 산행팀은 4회에 걸쳐 △영축산~신불산~간월산(237회) △재약산 수미봉~사자봉(239회) △운문사~가지산(241회) △문복산~고헌산(243회) 코스를 실은 바 있다. 무궁무진한 코스가 숨어 있는 곳이 바로 영남알프스다.
◇ 교통편
부산역에서 밀양행 무궁화호 열차는 오전 7시2분, 7시15분, 7시30분, 8시15분에 출발한다. 5600원(주말기준). 밀양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밀양역 앞에서 1-1번 등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800원. 밀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들머리 입구인 원서(리)정류소행 시외버스는 오전 9시5분, 9시45분, 10시10분에 있다. 2100원.
원서(리)에서 밀양시외버스터미널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40분, 5시, 5시30분, 6시10분, 6시30분, 7시10분, 7시30분(막차)에 출발한다. 밀양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시내버스로 밀양역으로 이동한다. 밀양역에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는 오후 7시16분, 7시49분, 8시3분, 8시18분, 8시40분, 9시24분에 있다.
원점회귀 코스라 승용차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경부고속도로~서울산(삼남)IC~언양방향 35번 국도~밀양방면 24번 국도~석남사~남명리~원서리~석골사 순.
/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이창우 산행대장 (051)245-7005
입력: 2004.01.2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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