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절의 길, 고민의 길, 사명의 길
엄밀히 말하면 이순신의 백의종군로는 크게 세 군데로 나뉜다.
우선 ▷경남 하동에서 권율 도원수부가 위치한 합천 초계(지금의 율곡면)까지는 좌절의 의미가 짙은 순수한 의미의 백의종군로가 되겠고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초계에서 권율 도원수의 재가를 받아 정세를 살피기 위해 연안답사를 떠나는 길은 고민의 길 ▷연안답사 도중 진주 손경례 집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후 막중한 책임을 갖고 사천을 거쳐 전장으로 떠나는 길이 사명의 길이다. 산청~합천 구간은 갔던 길을 되돌아오기 때문에 중복되는 셈이다.
백의종군로는 경남도와 (사)한국역사문화관광개발원이 고증을 통해 정비 중이지만 아직 미완성이다. 현재 산청 하동 진주 지역의 10㎞ 구간 정도가 도보로 탐방 가능하다. 해서, 현시점에서 백의종군로 답사의 들머리는 산청군 단성면 남사예담촌으로 불리는 남사마을.
난중일기에 따르면 하동읍성에서 몸을 추스른 이순신 일행은 하동 옥종면 청수역을 거쳐 남사마을에 도착, 박호원의 집에 묵었다. 전통 한옥 30여 가구와 아름다운 돌담길이 인상적인 남사마을에서 박호원의 집은 걸어서 3분 거리. 조선시대 대사헌과 호조참판을 지낸 박호원의 집 입구엔 그의 재실인 '이사재'를 알리는 안내판과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 행로지'라 새겨진 안내석과 나란히 서 있다. 지금이야 이곳은 남사 고가와 남사천이 내려다보이는 평화스러운 곳이지만 노모를 잃고 왜구에게 짓밟혀 황폐한 들녘을 바라보며 걷던 이순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하늘도 이순신의 마음을 읽었는지 난중일기에는 이곳에 도착한 음력 6월 초하룻날은 비가 구슬프게 내렸다고 한다.
박호원 집에서 본 남사마을과 남사천. |
박호원 집. |
박호원의 집에서 하동 방향으로 고개를 살짝 넘어 4㎞ 정도를 걸으면 하동과 진주의 경계에 인접한 산청의 금만마을에 닿는다. 논길과 밭둑을 번갈아 걷고, 완만한 경사를 오르며 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이 구간은 대자연의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어 걷기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금만마을에서 1005번 지방로를 따라 덕천강을 끼고 5㎞ 정도를 걸으면 진주의 가장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수곡면 원계마을 손경례의 집에 닿는다. 이곳은 이순신에게 있어 가장 드라마틱한 역사의 현장이다.
손경례 집 앞마당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삼도수군통제사 재수임 사적비'. |
손경례 집. |
잠시 여기서 당시의 시대 상황을 살펴보자. 이 즈음은 원균의 수군이 칠전량에서 대패, 조선 수군의 존립마저 무너진 상태였다. 이로 인해 왜군은 파죽지세로 조선을 유린했고, 이 땅은 또다시 아비규환의 공포에 빠졌다. 선조는 그제야 이순신을 다시 찾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했다. 손경례의 집은 이순신이 선조로부터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수임 교지를 받은 장소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백의종군이 끝나는 의미 있는 장소이다. 집 앞마당 한가운데에는 이를 알려주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삼도수군통제사 재수임 사적비'가 서 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이순신은 이후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으니…'로 시작하는 장계를 선조에게 올리며 전의를 다지게 된다.
이순신은 손경례의 집에서 음력 7월 27일부터 8월 3일까지 8일을 머무는 동안 집 앞 '진배미'라 불리는 너른 들판에서 비록 군장을 전혀 갖추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휘하 장병들을 대상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결국 백의종군로의 여정은 이순신이 들렀던 시기와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경남도에서 현재 일반인을 대상으로 소개하고 있는 백의종군로는 여기까지이다.
경남도 김종임 관광진흥과 역사문화담당은 "앞으로 백의종군로는 손경례의 집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이순신이 주변 정세를 살피기 위해 오르내린 봉우리인 정개산성을 다녀온 후 덕천강을 가로질러 하동군 옥종면 문암리의 문암정(강정)으로 이을 것이며 이럴 경우 거리상으로는 4㎞ 정도가 더 추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문암정에서 이순신 장군의 유숙지였던 곤양읍성의 객사 문루였던 사천 응취루(14㎞)와 하동읍성(8㎞) 방향으로 백의종군로가 각각 정비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러한 계획은 경남도가 이미 도로변 갈림길에 만들어놓은 백의종군로 안내석(아래 사진)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의종군로는 아직 정비 중이라 나 홀로 걷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20명 이상 40명 단체일 경우 다음카페 '백의종군길'(http://cafe.daum.net/wgill)에 신청하면 (사)한국역사문화관광개발원(055-251-4517)이 차량 제공과 해설을 무료로 해준다. 오는 9월 5일에는 선착순 500명을 대상으로 진주 진성중학교에서 집결, 백의종군로 탐방을 실시한다.
■ 한산섬 수루 위에서 떠올린 충무공
경남 통영은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가 가장 많이 남은 곳이다. 이 중 한산도는 섬 전체가 충무공의 유적지처럼 여겨지는 성지. 섬 바깥에서는 안쪽이 보이지 않지만 안쪽에선 바깥 해안의 동태를 감시하기 쉽고 배를 숨기기에 용이한 천혜의 요새여서 충무공은 여수에 있던 통제영을 이곳으로 옮겨와 3년8개월 동안 머물면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한산대첩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난중일기의 70% 정도가 이곳에서 쓰여졌다.
흔히 장삼이사들은 "뭐 특별히 볼 게 있나"라고 하겠지만 하은주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꼼꼼히 살펴보면 작은 감동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새 단장도 해놓았다. 지난해 제승당으로 가는 1㎞쯤 되는 해안산책로는 걷기 편한 황톳길로 바뀌었고, 대첩문 입구엔 2명의 수군 조형물도 세워져 있다. 어정쩡한 미색으로 덧칠해놓은 제승당 건물도 전통 단청으로 깔끔하게 해놓았다. 경내에는 제승당 한산정 충무사 수루 등 여러 건물이 있으며 모두 통틀어 제승당으로 불린다.
대첩문 입구의 수군 조형물. |
제승당 가는 해안산책로. |
제승당 활터. |
제승당. 난중일기의 70%가 여기서 쓰여졌다. |
수루. |
한산도 앞바다 거북선 등대. |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에 일성호가는 나의 애를 끓나니'.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읊조려 보았을 그 유명한 우국충정의 '한산도가'의 배경인 수루(戍樓)에서 바라보는 한산도 앞바다는 410여 년 전 붉은 피로 물든 전장이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평화롭고 잔잔하다.
제승당 옆으로 내려서면 조선 수군이 활쏘기를 연마했던 활터가 나온다. 전시에도 특별 무과시험이 치러졌던 곳이다. 사대가 바다 건너 145m 지점에 있다. 실제 해전에서 적선과의 사정거리를 측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전해온다.
통영에 오면 놓쳐선 안 될 곳이 한 곳 있다. 지난 2008년 문을 연 거북선 문화재 연구소(055-648-7977)이다. 일몰이 아름다운 산양해안도로 입구, 폐교가 돼 버린 산양초등학교 회양분교를 리모델링했다.
거북선 문화재연구소 안광일 소장 |
김종임 경남도 관광진흥과 역사문화담당 사무관 |
거북선 문화재 연구소 전경 |
한마디로 거북선 복원 작업의 산실이자 거북선에 대한 모든 것을 보고, 만들며 체험하는 곳이다. 체험관에선 안광일 소장과 전문강사의 도움으로 거북선 모형을 만들어볼 수 있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상설문화마당 프로그램' 지원금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 문의 통영시 관광진흥과(055-650-4532)
한편 오는 11~15일 통영 일원에선 충무공의 구국정신을 기리는 한산대첩축제가 열린다.
■ 남해서 노량해전 입체영상물 감상
이순신 영상관 |
돔형 입체영상관 내부 |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읍 방향으로 가다 보면 도로 우측에 노량해전에서 도망가던 적선을 추격하다 적의 총탄을 맞고 관음포 앞바다에서 순국한 충무공을 임시로 모셔놓은 이락사(李落祠)가 있다. 글자 그대로 '이 충무공의 목숨이 떨어진 곳'이다. '관음포 이 충무공 전몰유허'로 불리는 이곳은 그 동안 십중팔구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락사 바로 옆에 거북선 모양의 제법 큰 목조 건물인 '이순신 영상관'이 지난 2008년 개관했기 때문이다. 150억 원을 투입해 최첨단 영상관과 전시관을 꾸며 놓았다.
138석의 관람석을 갖춘 돔형 입체영상관은 벽면과 지붕 전체가 스크린이어서 기존의 평면 스크린에서의 입체 영상보다 훨씬 더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상영작은 1598년 11월 최후의 전투였던 노량해전의 격전을 보여준다. 러닝타임 20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어른이 봐도 재밌다. 서울 곳곳에서 대여 문의가 왔지만 경남도와 남해군이 "직접 와서 봐라"고 큰소리를 칠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다. 이순신 장군이 탄 배의 깃발에 '충무공'이라는 문구가 보인 것이 옥에 티였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이락사 뒤 송림길을 500m쯤 걸으면 바다가 시원하게 열리는 2층 누각인 첨망대가 언덕 끝자락에 서 있다.
눈앞에 보이는 지금의 관음포 앞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해 치열했던 노량해전의 격전지라는 사실을 실감하기 어렵다.
첨망대에서 본 관암포 앞바다. |
이락사 첨망대. |
이락사로 안내하는 송림길. |
충무공의 발자취 좇아 구국의 길을 떠나다(1)편은 여길(http://hung.kookje.co.kr/491)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