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니가타를 가다
신칸센 에치고유자와역서 5분 거리
900년 전통 '다카한'…36대째 운영 중
가와바타 야스나리 묵은 다다미방 재현
소설을 제대로 읽으려면 소설 속의 배경이 되는 곳에 가보는 것이 상책이다. 이를 살짝 뒤집어보면 소설을 가장 잘 쓰는 방법은 소설 속의 바로 그 현장에서 직접 쓰는 일이다. 탐미주의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소설 '설국'을 쓰기 위해 니가타현의 조그만 마을인 유자와의 료칸(일본 전통 여관) '다카한'(高半)에 머물렀다. '다카한'에는 80년 전 그가 머물며 소설을 썼던 일명 '안개의 방'인 다다미방이 재현돼 있다. 이는 이미 알려진 사실 중의 하나.
■'설국' 배경 유자와 마을 '다카한'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서 기차가 멈춰섰다'.
'설국'의 첫 문장이다.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 문장이 니가타현 유자와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연중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이 문장에 언급된 '국경'은 군마현과 니가타현을 가르는 해발 1000~2000m의 에치고산맥이며 '긴 터널'은 에치고산맥을 뚫은, 무려 11㎞나 되는 시미즈터널이다. 도쿄에서 출발한 열차는 군마현을 거쳐 시미즈터널을 통과해야 비로소 '설국' 니가타현 에치고유자와역에 닿는다.
니가타현을 설국이라 부르는 것은 동해의 습한 눈바람이 이 에치고산맥에 부딪쳐 엄청난 눈을 쏟아내기 때문. 유자와마을 기요타카 가미무라 촌장은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이 와도 시미즈터널만 통과하면 여전히 눈 세상"이라며 "이웃한 마을이 10여 분쯤 소요되는 터널 하나로 이처럼 딴 세상인 것은 신기할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터널은 1931년 개통된 시미즈터널이 아니다. 요즘 관광객들은 대부분 신칸센이나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시미즈터널(사진 위)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타고 다녔던 JR 열차용이며, 신칸센용 터널은 다이시미즈터널, 고속도로용 터널은 간에츠터널이다. 간에츠터널은 현재 일본에서 가장 긴 터널이다.
신칸센을 이용하면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곧바로 에치고유자와역에 닿아 소설 속 '설국'의 풍경과 운치를 느낄 수 없다. 현재 도쿄에서 니가타현 유자와까지 신칸센은 1시간10분, 고속도로는 3시간쯤 걸린다.
'설국'의 배경인 '다카한'은 신칸센 에치고유자와역에서 차로 5분이면 닿는다. 유자와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배기에 위치해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묵었던 1930년대의 료칸 '다카한'.
료칸 '다카한' '다카한'의 36대 주인 다카하시 씨.
'다카한'의 2층 설국문학자료관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워낙 찾는 이가 많다 보니 료칸과 아예 분리해 입장료를 받고 있다. 입구 로비에는 가와바타의 사진과 그가 직접 쓴 '설국' 첫 문장의 글귀, 다양한 언어로 출판된 소설 '설국', 1930년대 유자와마을과 '다카한'의 모습 등이 보인다.
그러다가 한쪽 벽에 걸린 여인에게 시선이 꽂힌다. 고다카 기쿠.
소설 속 여주인공 고마코의 실제 모델이 됐던 게이샤 마쓰에의 빛바랜 사진이다. 소설 속에 그려진대로 미모의 여인이다.
(아래 사진)
게이샤 시절 이름이 마쓰에였던 고다카는 스무 살 때 가와바타를 만나 아침마다 작가의 방에 불을 넣고 목욕물을 데웠다고 한다. 마치 소설 속에서 고마코가 시마무라에게 했던 것처럼.
그 사연이 실린 신문기사 또한 볼 수 있다.
가와바타가 소설을 썼던 다다미방에는 앉은뱅이책상과 화로 그리고 조그만 경대가 눈에 띈다. 경대는 가와바타가 소설 속에서 창밖 설경과 경대 거울에 비친 고마코의 모습을 대비하며 묘사한 대목에서 자주 나왔던 소품이다.
유자와에는 '설국'과 관련된 전시관이 하나 더 있다. '설국관'이라는 역사민속자료관을 겸하고 있는 곳이다. 역에서 '다카한'으로 가는 도중 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다카한'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이곳은 게이샤 마쓰에가 살던 곳이라 한다. 일명 안개의 방으로 불리는 '다카한'의 2층 방 내부. 다른 각도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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