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교산&그너머〈 414 〉 영천 기룡산

그곳 겨울산에 서면 無心한 나를 만날 것 같다
빛바랜 낙엽길…때묻지 않은 능선…
'천년고찰' '용의 전설' 신비감 감도는 산세
한해를 반추하기에 이 만한 곳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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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겨울산을 찾아 지난 1년을 회고하며 송구영신의 의미있는 자리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기룡산으로 향하는 한 전망대에서 방금 지나온 꼬깔봉과 능선길이 지나온 세월의 편린 마냥 스쳐 지나간다. >
 
언제나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는 듯 보이는 산이 기실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진달래로 한껏 치장한 봄과 빛깔 고운 단풍으로 온 산을 물들인 가을에는 미인대회에 나선 아가씨 마냥 자신감이 넘쳐 흐르지만 삭풍이 매섭게 몰아치는 한겨울에는 안절부절 못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신(裸身)을 드러내는 두려움에 떠는 것일까. 동고동락했던 낙엽마저 배신한 때문일까. 그나마 절친했던 새와 산짐승들마저 동면에 들어갈 때쯤이면 산은 더욱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나목(裸木)의 앙상한 가지는 더욱더 처량하게 느껴진다. 어느날 문득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생의 무상함을 반추하는 인간의 모습이 한낱 겨울산과 진배없다고 한다면 적당한 비유일까.

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산꾼들이여. 한 해를 갈무리하기 위해 장삼이사들이 겨울 산사를 찾듯, 매서운 추위에 몸부림치고 있는 산을 찾아 겨울 한 가운데 서 있는 자신과 겨울 나목의 모습을 되돌아보자.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떨고 있는 겨울산과 앙상한 가지를 매만지며 안아주고 위로하자.

연말이라 으레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시끌벅적한 망년회보다는 겨울산에서 지난 1년을 회상하며 송구영신의 의미있는 자리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무슨 산이면 어떠랴. 다 조국산천의 겨울산인데.

이번 주 산행팀은 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경북 영천의 기룡산을 찾았다.

산꾼들에게 기룡산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꼭꼭 숨은 산이다. 영남에서 가장 크다는 천문대가 우뚝 솟은 보현산이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면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질까.

낙엽이 무릎까지 빠지는 때묻지 않은 능선길, 햇빛에 반사돼 금빛 물결이 일렁이는 영천호(조양호), 무엇보다 예부터 풍수지리상 명당자리가 많아 무덤이 특별히 많은 산, 그리고 나목.  
 

또 한가지. 기룡산(騎龍山)이란 이름은 턱 밑에 있는 신라 천년고찰 묘각사와 관련이 있다. 의상 대사가 이곳에 절을 짓자 동해 용왕이 대사에게 설법을 청하고자 말처럼 달려왔다는 데서 유래됐다 전해온다.

산행은 영천군 자양면사무소~꼬깔봉~첫 이정표~기룡산~산불방지 무인감지카메라~암릉~묘각사 갈림길~내리막 낙엽길 속 잇단 무덤~낙대봉~묘각사 입구~용화리 경로당~용화리 버스정류장. 5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이정표는 뜸하지만 길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하산길에 만나는 급경사 낙엽길에 한 두 번쯤은 미끄러질 각오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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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면사무소를 바라보고 우측으로 100m쯤 가면 성곡리복지회관. 길을 건너 포장길로 200m 오르면 갈림길. 왼쪽으로 200m쯤 걸으면 다시 갈림길. 이번엔 오른쪽 흙길을 택한다. 여기까지 왔다면 길찾기는 끝. 오르는 일만 남았다.

소문대로 명당자리가 많은지 주변은 온통 무덤. 이곳을 벗어나면 가파른 소로. 20분쯤 오르면 낙엽길. 앙상한 나뭇가지는 삭풍에 흐느끼고 낙엽은 발목을 덮는다. 하지만 겨울산의 묘미를 만끽하기에는 산길의 경사가 심해 여유가 없다. 잠시 뒤돌아보자. 바다처럼 광활한 영천호가 숨통을 틔워준다.

방금 올라온 자양면사무소 주변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첫번째 전망대를 지나면 푹신푹신한 낙엽길. 전망대 왼쪽의 운주산 봉좌산 도덕산은 놓치지 말자.

점차 경사가 심해지면서 갈 지(之) 행보가 이어지고 숨이 가빠진다. 등줄기에 땀이 나지만 동시에 찬기운이 얼굴을 할퀸다. 35분쯤 오르면 꼬깔봉(737m). 들머리에서 1시간20분 정도. 정상석은 없고 삼각점만 보인다. 대신 '아, 여가 꼬깔산이구마'라고 적힌 리본이 잠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정북쪽엔 기룡산이, 왼쪽 뒤 보현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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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무릎까지 빠지는 때묻지 않은 낙엽길.>  
 

기룡산 방향은 직진. 왼쪽 방향으로 또 다른 하산길이 있다. 자양우체국 옆 지방문화재 단지로 내려오는 길이니 참조할 것. 내리막길로 10분 정도 걸으면 첫 이정표. 정상까지 2.8㎞. 평평하고 푹신푹신한 낙엽길이 이어진다. 낙엽에 가려 숫제 길이 보이지 않는다. 북쪽 저 멀리 빤히 보이는 기룡산을 향해 올라가는 길은 별다른 갈림길이 없으므로 기룡의 말등에 올라타고 달린다는 생각으로 곧장 능선길만 오르내리면 된다.

꼬깔봉을 출발한 지 40분쯤 뒤 우측에 멋진 전망대가 기다린다. 영천호의 일부가 보이는 이곳에는 방금 지나온 능선이 한 눈에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정상까지는 40분. 역시 정상석은 없고 삼각점이 있다. 장쾌한 조망이 일품이다. 북쪽 보현산 천문대, 남쪽 영남알프스, 동쪽 단석산 용림산 구미산 도덕산 봉좌산 운주산 천장산 비학산 내연산 향로봉, 서쪽 대구 팔공산이 산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하산은 직진. 곧 묘각사 갈림길. 이정표에 적힌 음태골로 직진한다. 눈앞에 산불방지 무인감지시설이 서있다. 산행팀이 보기엔 이 지점이 더 높은 듯하다.

이젠 암릉길이 기다린다. 800m 정도 이어지는 이 길은 이번 산행의 백미. 우측 보현산을 건너다보며 오르내리는 맛이 일품이다. 암릉길이 부담스러우면 우회길이 열려 있으니 이용해도 된다. 집채만한 바위 앞에선 왼쪽으로 에돌면 결국 능선길과 만나지만 낙엽이 길을 숨겨 능선길 찾기가 어려우니 국제신문 리본을 참조하자. 이 길만 찾으면 이후 산행은 일사천리.

곧 묘각사로 내려서는 갈림길. 직진한다. 산행팀이 묘각사로 내려가지 않은 이유는 이 절에서 날머리까지 6㎞ 정도의 밋밋한 포장로를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턴 작은 봉우리를 여러 개 오르내리면서 낙엽길을 지난다. 무덤 또한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좋아하기에는 이르다. 경사가 심한 데다 낙엽이 겹겹이 쌓여 발목, 심하게는 무릎까지 푹~욱 빠지기가 일쑤다. 한 두 번 나뒹굴 각오는 해야 한다. 중간에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를 만난다. 낙대봉이다. 주변 조망이 뛰어나니 쉬어가자. 낙엽길은 1시간 이상 계속돼 질릴 정도. 암릉길이 끝난 뒤 산을 벗어나는 묘각사 입구 포장로까지는 대략 1시간30분. 여기서 용화리 경로당을 지나 버스정류장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교통편 - 부산~영천버스터미널 1시간30분 소요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051-508-9400)에서 영천시외버스터미널(054-334-2556)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40분, 8시30분, 10시45분, 11시30분에 출발한다. 1시간30분 걸리고 요금은 6800원. 영천에서 산행 들머리인 자양면사무소(054-330-6607)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10시30분, 11시20분에 있다. 1650원. 영천교통(054-333-3551).

날머리 용화에서 영천행 버스는 오후 3시35분, 5시20분, 6시에 있다. 1400원. 영천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40분, 6시20분, 7시50분(막차)에 출발한다. 6800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영천IC~포항 청송 시청~포항 시청~포항, 3사관학교~포항 방면 우회전 28번 국도~69번 국도~자양 영천댐 임고~청송 임고~보현산 천문대~청송 자양~평천초등~평천교~자양면사무소 순. 날머리 용화에서 들머리 자양면사무소까지는 2.4㎞ 거리임을 유의하자. 걸어갈 경우 왼쪽 방향으로 40분 정도 가야 한다.


#떠나기 전에 - 용머리 놓고 두개의 몸통 싸우는 형상

천문대가 있는 경북 영천의 보현산을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는 산이 기룡산이다.

5만분의 1 지형도를 펴놓고 기룡산을 살펴보니 용머리 하나를 두고 두 개의 몸통이 서로 머리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형상이다. 하산길에 만나는 용머리 격인 낙대봉 일대의 기암에서 바라보는 산세가 자못 인상적이다.

이번 산행은 오랜만에 근교산 동호인의 입맛에 안성맞춤인 산길이다. 애독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적당한 오르내림이 반복되면서 약간 거친 듯한, 전형적인 '국제신문 근교산길'이다. 산행시간은 비교적 길어 중간에 두 군데 하산길이 열려 있으니 유념하자. 정상에서 묘각사로 내려서는 산길과 낙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에서 묘각사 방향 하산길이 그것으로, 체력에 맞게 안전산행을 하도록 하자. 30분 정도 걸린다.

천년고찰 묘각사의 볼거리는 350년 된 극락전으로 옛 모습 그대로 간직돼 있다. 묘각사 쪽으로 하산한다면 시멘트길을 오랫동안 걸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때문에 승용차 두 대로 출발, 들머리와 날머리에 주차시켜 놓으면 다소 불편함을 덜 수 있다.

/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51
이창우 산행대장(051)245-7005 www.yahoe.co.kr
 
  입력: 2004.12.2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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