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전설의 여성산악인 경력 뒤로한 채
양지바른 하동 화개골서 된장 쑤며 시골생활
쌀 빼고 모든 것 자족, 덜 쓰고 절제애 익숙
아들 기범, "자연과 교감 갖는 삶 영위했으면"

 한때 국내산악계를 호령했던 남난희가 하동 화개골 용강리 시골집에서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양지바른 툇마루 기둥에 기대서서 상념에 잠겨 있다.

■ 남난희의 보금자리 화개골 시골집
 사실 거처가 하동 화개골이라 내심 우려가 됐다. 지금의 화개골이야 입구의 화개장터를 비롯해 그 유명한 벚꽃길과 쌍계사 그리고 야생차 재배지 및 판매처로 앉은 터만 지리산 자락이지 번잡한 관광지로 변한 지 꽤 됐기 때문이다. 

 하나, 기우였다. 남난희의 집은 화개골에 아직도 이런 집이 남아 있나 할 정도로 마을에서 구불구불한 포장로로 적당히 올라야 만날 수 있었다.

본채 뒤 비탈면에는 차나무가 담벼락 역할을 하고 있다.
남난희는 손님이 찾아오면 툇마루에서 직접 재배해서 덖은 차를 대접한다.
고색창연한 돌담 옆에는 얼핏 봐도 20개의 된장항아리가 놓여 있다. 
최근 담근 자식 같은 된장을 살펴보고 있는 남난희. 저 멀리 겹겹이 겹쳐진 지리산 자락과 그 우측 섬진강 너머로 거구 백운산이 아련하다. 
일하던 도중 잠시 고개를 들고 지리산과 백운산을 바라보는 남난희.

시골집 대문 앞 남난희. 머리 위 걸려 있는 것은 청학동에서 운영하던 찻집 '백두대간'의 간판이다.

최근 담근 된장을 살펴보고 있는 남난희.


절친한 산 후배가 남난희의 산서 '하얀 능선에 서면' 출간을 기념한 선물한 판각화 작품이 행랑채 벽면에 걸려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는 황장산 줄기를 배경으로 남난희가 마당의 가마솥을 살펴보고 있다.


우물과 동굴. 우물엔 산에서 꺾어진 매화 가지를 담궈 놓았고, 동굴은 자연 저장고로 활용한다고 한다.

 양지바른 남향의 집 뒤로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는 황장산 촛대봉 산줄기가 섬진강을 향해 내달리고 있고, 시야가 확 트인 정면으론 지리산 줄기가 겹겹이 겹쳐져 있다. 그 끝자락엔 섬진강 너머 거구 백운산이 손에 잡힌다. 좀 더 둘러보자. 본채 뒤 비탈면에는 차나무가 담벼락 역할을 하고 있고 바로 옆 사랑채는 대숲에 둘러싸여 있다. 고색창연한 돌담 앞에는 20여 개의 된장독이 숨을 쉬고 있고, 마당 한쪽에는 우물과 커다란 바위동굴이 있다. 누가 봐도 한눈에 정감이 가는 촌집 그대로이다. 여성으론 약간 큰 덩치의 소유자이지만 얼굴에는 언제나 차분한 미소가 떠날 줄 모르는 전형적인 시골 아낙인 남난희를 쏘옥 빼닮았다.

 남난희는 "어떻게 이렇게 좋은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이것도 인연이라면 참 고마운 인연"이라고 말했다. 유난히 그는 '인연'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수년 전부터 기자들의 취재는 일절 거절했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움직였다며 이것도 인연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루 시작은 불일암서 백팔배로
매일 아침 그는 집 건너편에 있는 쌍계사 산내암자인 불일암까지 마실을 다녀온다. 왕복 3시간. 백팔배를 하기 위해서다. 이날만은 기자의 요청으로 2시간쯤 늦췄다. 쌍계사의 또 다른 산내암자인 국사암 주차장을 들머리로 산행은 시작된다. 주차장에서 조우한 불일폭포휴게소 산장지기 홍인수 씨는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라고 사람 좋은 웃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불일산장지기 홍인수 씨와 불일암으로 오르는 남난희(왼쪽)
불일산장을 지나 불일암으로 향하는 남난희. 산길 주변 풍광이 아름답다.

 그는 일년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아침 이 길을 오르내린다. 이 길이 초행이라는 기자의 말에 남난희는 뭔가를 알려주기에 바쁘다. "4월 말 이 길은 진달래로 황홀경에 빠집니다. 이 길의 종착역이자 지리 10경 중 하나인 불일폭포 우측 절벽에는 온통 진홍빛으로 불타오르지요. 보기 드문 절경으로 화엄의 세계가 따로 없어요."

 옛 벗과 같은 편안한 이 길을 두고 남난희는 "집 가까이에 지리산의 보석 같은 산길과 그 끝자락에 백팔배를 할 수 있는 불일암과 불일폭포까지 있어 그야말로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그의 고백. "사실 젊었을 땐 산을 볼 줄 몰았어요. 제가 목표로 하는 대상만 보았지 주변의 산은 볼 줄 몰랐어요. 아니 보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제가 오르고자 하는 그게 산의 전체인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것도 산의 일부일 뿐이었어요." 한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정통 알피니스트가 뒤늦게 산의 품에 안겨 관조하며 소통하고 교감하는 법을 익힌 듯하다.

 "그동안의 산이 '등산(登山)'의 산이었다면 지금은 '입산(入山)'의 산이죠. 원래 우리의 산은 등산의 대상이 아니었잖아요. 서구의 알피니즘이 들어오면서 도전의 대상이 돼버렸죠. 더 빨리, 더 높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오림짓의 연속. 인간이 자연에 도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하지만 입산은 달라요. 욕심과 욕망을 버리고 산과 함께 모든 것을 같이한다고 생각하고 올라보세요. 제 아들 기범이와 산에 오르면 그놈은 나무를 껴안기도 하고, 뒹굴기도 하고 천방지축으로 날뛰기도 해요. 저에겐 도전의 대상으로 제압해야만 했던 산이 아이에겐 정겨운 친구로 다가와요. 한 세대를 건너서야 산의 소중함을 알게 됐으니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요."

 사실 기자는 동행하면서 약간 벅찼다. 질문하랴, 간단하나마 메모하랴, 주변 산세 보랴. 해서, 평소 걸음걸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기자를 배려해 속도를 약간 늦추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엄홍길과 도봉산 산행 때 그 양반은 얘기를 나누다 일순간 쏜살같이 내달리더라고 하자 남난희는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산을 타다 보면 산과 합일되는 시점이 일순간 찾아와요.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의식하지 않게 되죠."
고 변규화 옹이 30여 년간 머문 일명 '봉명산장'이라 불리는 불일평전 오두막 휴게소.

 산길을 걷기 시작한 지 어언 45분. 일순간 뜻밖에도 너른 평지가 기다린다. 세석평전 돼지평전처럼 지리산에서 몇 안되는 산중 너른 터인 불일평전이다. 재작년 작고한 변규화 옹이 30여 년간 머문 일명 '봉명산방'이라 불리는 불일평전 오두막의 새 산장지기 안주인이 고로쇠 물 한 잔을 건넨다. 남난희와 기자는 한 잔 들이켜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5분이면 불임암에 닿는다. 남난희는 백팔배를 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걸리니 불일폭포를 다녀오라고 한다.
                 불임암에서 백팔배를 올리는 남난희.

-백팔배를 하면서 특별히 바라는 것이 있습니까.
"딱히 꼬집어 바라는 것은 없지만 지금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줘 고맙다고 빕니다. 언제부터인가 매일 오다 보니 '어제는 무엇을 했고 무슨 일이 있었다몠는 식의 보고를 하면서 어제의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젠 백팔배를 해야 제 마음이 편안해져요."

 하산길 산장지기 부부는 마침 산골에 장어가 생겨 국을 끓였다며 한사코 식사를 하고 가시라고 붙잡는다. 찬은 배추와 된장, 산나물에 총각김치지만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하다는 속담이 기자에게도 적용될 줄이야, 밥도둑이 따로 없다.

산만 타는 선머슴이 기막힌 된장을 담그다
 다시 남난희의 집 툇마루에 마주앉았다. 차와 함께. 아들 기범이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일하다 짬이 나면 그는 양지바른 이곳 툇마루에 앉아 산천을 바라보거나, 책을 보거나 차를 마신다. 그의 보금자리인 셈이다. 눈길은 당연히 마당의 된장 항아리로 옮겨진다. 얼핏 봐도 스무 개는 넘는다. 그는 재래식 방법으로 된장을 만들어 가계를 꾸려 나간다. 생계유지용이다.

 딱히 누구에게 배운 적이 없지만 먹어 본 사람들이 "이렇게 맛있는 된장과 간장은 처음이라고 하니 맛은 있나 봐요"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산만 다니는 선머슴인 줄 알았던 남난희가 언제 이런 재주가 있었느냐고 지인들이 놀리기도 한단다.

"콩은 경험상 강원도산이 맛이 좋아 지인에게 화학비료를 치지 않고 키워달라고 부탁을 하죠. 여기에 지리산의 맑은 공기와 물 햇빛 그리고 5년 이상 묵힌 소금에 자연의 기를 듬뿍 받은 저의 정성이 곁들여지다 보니 맛있다고들 해요. 보람을 느끼죠." 비결은 따로 있었다.

 "시골에서 살며 정말 괜찮은 먹을거리를 만들어 나눠주고, 그것을 먹는 사람들이 저에게 수고한 만큼의 대가를 지불한다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하나, 남난희는 이 말은 잊지 않았다. 많은 분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된장을 구입하겠다고 연락이 이따금씩 오지만 보내드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더 많이 된장을 만들면 더 많은 벌이가 되겠지만 콩 10가마가 넘어가면 손맛을 잃는단다. 무엇보다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함으로써 노동의 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그게 그의 지론이다.

 대신 그는 지난해부터 차를 재배, 직접 덖은 후 판매도 한다. 아들 기범(남원 실상사 대안학교 3학년)이의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남난희는 쌀 이외의 모든 것을 자족한다. 대문 앞 텃밭에서 거의 모든 것을 직접 키운다. 심지어 우물 옆 음지에선 버섯 재배도 직접 한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남난희. "저는 약간 모자란 듯한 지금의 생활에 만족해요. 덜 쓰고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결코 하지 않는 절제에 이젠 익숙해져 있나봐요."

 오랜 기간 화두를 붙잡고 용맹정진하다 깨달음을 얻은 노승이 연상될 정도로 차분하면서 느긋하고 한편으론 사물을 달관한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들을 대안학교에 보냈던데.
"요즘은 사춘기여서 저에게 약간의 반항도 해 섭섭하지만 저에겐 고마운 스승 같은 존재예요. 제도권 교육은 못 미더워 보냈어요. 본인이나 저도 만족하고 있어요. 저는 아들에게 무엇이 되라고는 요구하지 않아요. 작은 바람이 있다면 자연과의 교감을 갖는 삶을 영위했으면 좋겠어요."

-산은 이제 완전히 끊은 겁니까.
(잠시 뜸을 들이다)"통일이 되면 백두대간을 밟고 백두산에 꼭 가고 싶어요. 또 역전의 용사들이 좋은 기회를 만들면 따라붙을 겁니다. 괜히 절 은퇴시키려고 하네요. 송충이가 솔잎을 못 먹으면 죽어요."
실제 그의 저서 '하얀 능선에 서면'(수문출판사)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리고 언젠가 통일이 되는 그날, 나는 다시 배낭을 메고 (북으로) 나설 것이다'.

(1)'산을 버려 산을 얻은' 전설의 여성산악인 남난희의 삶 
http://hung.kookje.co.kr/361
(3)남난희 "태백산맥 종주땐 육체적 고통보다 외로움이 더 힘들었어요"
http://hung.kookje.co.kr/363


 

백두산~백두대간~지리 영신봉 거쳐 김해까지
김해 백두산 최근 낙남정맥 종착지로 급부상 

지역 산꾼 이재수, 최근 산서 등에서 주장
아직 설에 불과, 여론 조성되면 바꿔야 할 듯

 이재수. 국제신문 근교산 홈페이지 산행기 코너에 자주 접속한 산꾼이라면 '아! 그 사람' 하고 기억을 할 것이다. 그는 지난 2003년 개설된 근교산 홈페이지 산행기 코너를 주도했다. 취재팀이 연재한 산행지를 주말에 다녀온 뒤 어떤 점이 미비하고 잘못됐는 지를 냉철하게 비판해 취재팀의 관행적 나태함에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등 차츰 뭇 산꾼들의 주목을 받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팬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그는 낙남정맥에 이어 지난해 여름 백두대간 종주를 끝낸 뒤 예의 국제신문 산행기 란에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백두산에서 끝난다'라는 200자 원고지 50여 장 분량의 장문을 올렸다. 이 글은 아마추어 산꾼이 쓴 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논리적이고 학술적인 데다 필자의 주장까지 담겨 있어 기자를 비롯한 지역 산꾼들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뜬금없이 그를 떠올린 것은 그가 낙남정맥의 종착지라고 주장한 김해 백두산을 산행팀이 이번 주 소개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그가 올린 글에서 낙남정맥의 종착지는 지금까지 정설로 내려오는 김해 동신어산이 아니라 이웃한 백두산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뻗어내려온 백두대간이 지리산 영신봉에서 낙남정맥으로 갈아탄 후 김해 백두산에서 그 산줄기가 끝난다는 것. 물론 중간에 개발에 의한 산줄기가 많이 훼손됐겠지만 원론적으론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출발하면 산을 한번도 내려오지 않고 능선만을 타고 김해 백두산까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동신어산이 낙남정맥의 종착지로 알려져 온 이유는 강에서 산줄기가 끝나면 대간이고 정맥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는 것이 이 씨의 지적이다. 우리나라 산줄기의 흐름과 위치 등을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해놓은 조선시대 지리서인 산경표에 따르면 모든 산줄기의 맥은 바다와 강이 만나는 하구에서 끝이 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이런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

 이 씨에 따르면 원래 낙동강 본류와 서낙동강으로 갈리는 지금의 낙동강 물줄기는 일제강점기 때 대규모 토목공사에 의해 형성된 것. 당시 낙동강 하구는 현재 낙동강과 서낙동강이 나뉘는 대동수문 근처이며, 그 하류는 홍수가 날 때마다 물길이 바뀌는 대규모 뻘이었다. 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보면 김해 백두산 아래 지금의 대동수문 인근이 바다로 표시돼 있다. 이를 근거로 볼 때 낙남정맥의 끝은 백두산이 분명하다는 것이 이 씨의 주장이다.

김해 백두산 정상에 서면 부산의 진산 금정산과 태백에서 1300리를 쉼없이 내려온 낙동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번주 소개하는 코스는 김해 까치산~장척산~백두산. 시종일관 영남의 젖줄 낙동강과 금정산 백양산 등 부산의 거의 모든 산들을 감상할 수 있다.

산행은 김해 대동면 예안리 장시마을 버스정류장~까치산(342m)~낙남정맥 갈림길~임도~장척산·백두산 갈림길~장척산(531m)~매리(소감마을) 갈림길(481봉)~사거리 안부~동신어산 갈림길~벤치~352봉(삼각점)~원명사 갈림길~백두산(354m)~공동묘지~대형 축사(대동면 초정리)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20분 정도. 시종일관 오르락내리락하지만 해발고도가 높지 않아 그리 힘은 들지 않으며 길찾기 또한 어렵지 않다.


 까치산은 오래 전 산행팀이 들머리로 개척한 성고개를 기점으로 현재 산행이 많이 이뤄지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들머리로 출발했다. 예안리 장시마을 정류장에서 내려 50m쯤 시례마을 방향으로 가면 왼쪽에 '까치산 1.8㎞'라 적힌 이정표와 함께 들머리가 열려 있다. 공동묘지를 지나면서 줄곧 오르막길. 10분 뒤 묘지 앞. 우측 손에 닿을 듯한 봉우리가 백두산이다. 10여 분 뒤 안내리본이 많이 걸려 있다. 왼쪽 성고개 쪽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산행 중 내려다본 김해평야와 서낙동강. 이곳에 서면 김해평야가 델타 즉 삼각주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산행 중 보이는 부산의 진산 금정산. 김해 쪽에서 보면 뾰족하게 보이는 고당봉을 두고 김해사람들은 붓을 빼닮았다고 해 문필봉이라 부른단다.   
첫 기착지인 까치산.
산행 곳곳에는 전망대가 있어 쉬어갈 수 있다.

한 굽이 오르면 시계가 넓어져 금정 백양 엄광 구덕 승학산과 낙동강 건너 봉화 보배, 그 뒤로 가덕도 연대봉 팔판산 화산 장유봉이, 정면으로 까치산이, 우측으로 금정산 고당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뾰족한 고당봉은 붓을 빼닮아 왜 김해 쪽에서 문필봉으로 부르는지 알 수 있다.   
 
까치산까지는 크게 내려섰다 올라선다. 10분 뒤 전망바위에 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처럼 김해평야가 낙동강에 의해 형성된 삼각주인 사실이 한눈에 확인된다. 까치산 정상은 전망바위에서 8분 뒤. 금정산 좌측 뒤 천성산이 흰눈을 이고 위엄있게 서 있다.

하산은 직진하며 내려선다. 금정산과 나란히 북으로 내달린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크고 작은 봉우리. 그야말로 산 너머 산이다. 10시 방향 나목 사이로 신어산 동봉이 보인다. 이렇게 1시간. 등로 좌측으로 도로가 보인다. 생명고개로 이어지는 길이다. 15분 뒤 일순간 안 보이던 안내리본이 치렁치렁 걸려 있다. 낙남정맥 갈림길로 왼쪽은 생명고개 신어산 돛대산, 오른쪽은 장척산 동신어산 백두산 가는 길이다. 산행팀은 우측으로 내려선다. 3분 뒤 임도. 길 건너 바로 백두산 방향으로 올라선다.

          장척산 정상은 메인 등산로에서 15m쯤 떨어져 있다.

 때묻지 않은 낙엽길을 한동안 오르내린다. 20여 분 뒤 장척산 갈림길. 이정표에서 왼쪽으로 15m 올라서면 대동면과 상동면의 경계인 장척산 정상이다. 벤치가 둘 있고, 정상석 대신 이정표엔 '장척산'이라 적혀 있다. 직진하면 상동면 대감리로 2007년 10월말 준공된 롯데자이언츠 상동전용구장과 만난다. 이제 백두산(5.8㎞) 방향으로 향한다. 진달래터널을 통과하면 정면으로 두 개의 봉우리가 보인다. 15분 뒤 갈림길. 이정표엔 두 방향 모두 '백두산'이라 적혀있다. 좌측은 앞서 본 두 개의 봉우리를 거쳐가는 낙남정맥의 정규코스이고, 우측은 두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우회하는 길이다. 좌측으로 오른다. 쓰러진 나무와 그간 안 보이던 농짝만한 바위를 잇따라 지나면 멋진 전망대. 까치산과 돛대산 그리고 저수지 뒤로 저멀리 백두산을 확인한 뒤 발걸음을 떼면 이내 소나무 아래 안내리본이 많이 보인다. 좌측 매리(소감마을) 하산길 대신 우측으로 내려선다. 9분 뒤 안부 사거리. 왼쪽 동신어산 우회길, 산행팀은 직진한다. 10분 뒤 동신어산 갈림길(475봉)로 문제의 낙남정맥의 종착지가 결정되는 의미있는 지점이다. 왼쪽 동신어산, 직진하면 백두산. 이정표를 등지고 서면 10시 방향의 쌍봉 중 왼쪽이 동신어산, 그 우측 뒤 물금 오봉산, 그 왼쪽 선암산 토곡산이 보인다. 산행팀은 직진한다. 20m 뒤 벤치. 좌측으로 낙동강과 내달리는 금정산이 한눈에 펼쳐진다. 20분 뒤 안부갈림길. 좌측 대감리 감내마을 방향 대신 직진한다. 이때부터 크고 작은 봉우리의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삼각점을 지나 13분 뒤 갈림길. 좌측 멋진 전망대에서 잠시 쉬고 다시 송림길을 내달린다. 능선길이 차츰 우측으로 휘어진다.

백두산 가는 도중. 
이제 우측으로 보이는 백두산을 향한다.

백두산을 가리키는 이정표.

백두산 정상.


17분 뒤 만나는 월성 이씨묘에선 백두산이 손에 잡히지만 꽤 높아 보인다. 곧 원명사 갈림길. 여기서 백두산까진 12분이면 올라선다. 산불초소가 있는 백두산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은 가히 일품이다. 양산 다방동에서 백양산까지 이어지는 금정산 대종주능선이 낙동강과 나란히 내달리고, 동쪽으론 까치산(그 뒤 돛대산)에서 시계방향으로 돈 산행팀의 궤적이 한눈에 펼쳐진다. 강 본류와 서낙동강으로 갈리는 대동수문도 보인다. 한마디로 장관이다.

하산은 초소 뒤쪽으로 내려선다. 6분 뒤 갈림길. 뚜렷한 직진길 대신 들머리에 최대한 근접하기 위해 고사목이 보이는 우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과거 산불 흔적이 역력하다. 이장한 묘 좌측으로 내려서면 다시 묘지를 만나고 여기서 우측으로 가면 대숲을 지난다. 8분 뒤 갈림길에선 왼쪽으로 가면 공동묘지. 여기서 묘지 사이 뚜렷한 길로 내려서면 파란 지붕의 초정리 대형 축사와 만난다.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가면 도로 확포장 사무실. 왼쪽으로 꺾으면 예안리 고분군 앞 도로를 만나고 여기서 우측으로 가면 들머리 예안리 장시마을 정류장에 닿는다. 축사에서 15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낙동강 칠백리' 대나무 통구이 일품
    
산경표 백두대간 편의 낙남정맥은 분산(지금의 분성산)에서 끝을 맺는다고 돼 있다. 김해천문대가 위치한 분성산 아래의 김해시 구산동 일대는 거리상으로 낙동강과 꽤 떨어져 있다. 이곳은 금관가야 도읍지로 인근에는 해반천을 중심으로 왕릉과 고분군이 산재해 있어 산경표의 주 뼈대인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 200여 년간 제자리를 못 찾고 방황하던 낙남정맥이 1980년대 후반이 돼서야 비로소 산꾼들이 산줄기를 잇고 이어 낙남정맥을 연결하는 종주가 시도돼 지금에 이르런 것이다.

아마추어 산꾼 이재수가 주장한 '낙남정맥의 종착지는 김해 백두산이다'라는 대명제는 아직 악계(岳界)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하나의 설이다. 하지만 최근 발행된 '태백산맥은 없다'(조석필 지음) 등의 산서에서도 이런 주장이 제기돼 차츰 힘을 얻고 있다.

또 한 가지. 일각에선 낙남정맥의 끝이 부산 강서구 봉화산이라는 주장도 들린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김해 용지봉에서 불모산 보배산을 거쳐 봉화산 산줄기가 서낙동강 하구 녹산수문에서 끝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도권 산꾼들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1900년대 초반까지 서낙동강의 하구인 녹산이 바다라는 사실을 간과한 무지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낙동강 칠백리'(051-972-0702). 들머리로 가는 도중 큰 간판이 보여 찾기는 어렵지 않다. 돼지 오리 대나무 통구이(사진) 전문점이다. 말그대로 고기를 대나무통 안에 넣고 장작불에 1시간 정도 굽기 때문에 육질이 부드럽고 담백하다. 돼지 1인분 8000원, 오리 1마리 3만 원. 이 집은 100년 된 일본식 가옥. 내부 다다미만 걷어내고 온돌로 교체했을 뿐 원형 그대로라 건축학적으로 의미있는 곳이다.


◆ 교통편 - 구포역 인근서 버스 타 예안리 장시마을 하차

구포역에서 나와 우측으로 100m쯤 가면 만나는 재활용센터 앞 시외버스정류장에서 김해여객 대동행 버스를 타고 대동면 예안리 장시마을에서 내린다. 오전 7시30분, 8시40분. 1000원. 구포역은 지하철 2호선 구명역에서 내려 '구포역' 방향으로 올라와 골목길(입구에 이정표 있음)로 10분 걸어가면 된다. 이 버스는 구포시장 앞에서도 정차한다. 날머리 장시마을 정류장에서 구포행 버스는 오후 4시10분, 7시5분에 출발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강서구청 지나 좌회전~대동수문~경남 김해시 대동면~상동 대동 IC 좌회전~대동농협 지나~굴다리~시청 불암동 좌회전~대동면사무소 지나~예안리 장시마을 버스정류장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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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북알프스의 정상 오쿠호타카다케에서 본 후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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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북알프스의 정상 오쿠호타카다케. 일본 산의 정상에는 대개 조그만 신사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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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북알프스의 정상 오쿠호타카다케에서 하산하면서도 한동안 후지산은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일본을 대표하는 산은 누가 뭐래도 후지산입니다.
 지난 베이징올림픽 야구 한일전 때 이승엽이 통쾌한 투런 홈런을 날리자 허구연 해설위원이 후지산이 무너진다고 표현할 정도로 일본을 상징하는 산이 바로 후지산입니다.
 해발 3776m로 일본 최고봉입니다. 백두산이 해발 2750m이니 굉장히 높은 봉우리죠. 참고로 두 번째는 남알프스의 히타다케(3192m)이고 세 번째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북알프스의 최고봉 오쿠호타카다케(3190m)입니다. 일본의 진정한 산꾼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일본의 마테호른'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는 북알프스의 야리가다케는 해발 3180m입니다.

 일본 혼슈 정중앙에 위치한 야마나시현에 위치한 후지산은 1707년 마지막으로 폭발한 휴화산이다.
 예부터 일본인들은 그림과 노래 이야기 등에 후지산의 아름다움을 여러 형태로 표현할 정도로 일본인의 정서를 대표하고 있지요. 생긴 모습은 대칭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또 산꼭대기가 눈으로 덮인 원뿔형의 화산이어서 많은 예술적 주제가 되어 왔습니다.
 해서, 후지산은 일본인들로부터 신성시돼 해마다 7, 8월이면 수천명의 일본인이 산꼭대기의 신사로 산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산꾼들의 입장에서 보면 후지산은 사실 흥미를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이 산은 온통 조그만 부석(浮石)으로 깔려 있어 한 걸음 오르면 거짓말 조금 보태면 반 걸음 미끄러지는 등 산행지로서의 매력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천황과 마찬가지로 그저 상징성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 산꾼들의 견해죠.

 최근 북알프스를 찾은 기자는 최고봉인 오쿠오타카다케(3190m)에서 예상치 않게 후지산을 봤습니다. 그것도 선명하게.
 당시 가이드는 "7년 동안 70여 차례 이곳에 올랐지만 두 번째 보는 것"이라며 감격해 했습니다. 백두산에 올라 천지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행운이라고 봐야 되죠.

 야마니시현에 위치한 후지산은 남서쪽의 시즈오카현, 남동쪽의 가나가와현, 동쪽의 도쿄도에선 자주 보이지만 땅덩어리가 넓은 북쪽의 나가노현에선 좀처럼 보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로 내려오고 있답니다.
 오쿠오타카다케와 후지산의 거리는 대략 100㎞ 정도랍니다.
 경부고속도로 상의 부산과 경주의 거리가 68㎞ 정도니까 상상이 약간은 되겠죠.
 한번 감상해 보시죠.

 역시 산행의 참맛은 환상적인 조망에 있다는 정설을 확인시켜 주는 장면입니다.

아!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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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문봉에서 철벽봉을 지나 가파른 화구벽으로 내려서는 국제신문 근교산 산행팀. 화구벽을 지나면 등산화를 벗고 승사하를 건너 천지물가인 달문에 닿는다. 사진 우측 상단에는 녹명봉 백운봉 청석봉 줄기가 차례로 보이며 왼쪽 상단 구름 사이로 쑥 들어간 부분이 5호 경계비가 있는 곳이다.



부산에서 심양, 심양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연길까지
연길에서 백두산 서파 입구까지 또다시 버스로 8시간
주차장에 내려 2200개의 계단을 올라 다다른 5호 경계비

불과 1m 높이의 초라한 표지석이지만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이다
얼마전까지 경비초소와 녹슨 철사줄 한가닥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사라져 국경같은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중국쪽은 빨간 글씨로 '中國'
북한쪽은 파란 글씨로 '조선'이라 적혀 있다

한발 건너면 북한 땅, 한발 당기면 중국 땅
감격도 감격이지만 왠지 서글픈 마음이 앞선다

내 땅을 지척에 두고
중국 관광객의 자격으로 올라야 하는 서글픈 현실
전후세대가 이토록 회한이 뒤섞여 눈물이 날 정도인데
이북 출신으로 한국전쟁을 겪은 어르신들의 감회는 어떠랴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천지
단순 비교하면 각각 전라북도의 면적과 여의도의 크기
한라산과 백록담을 상상했다면 상상의 나래를 더 펼치자
노란만병초 애기금매화 큰오이풀 왕자붓꽃 두메양귀비…
고산화원 천상화원으로 불리는 세계 최대의 야생화 군락지

1980년 유네스코 자연보호구로 지정된 인류 공동의 자연유산
6월까지 잔설이 있고 7, 8월에는 야생화가 수를 놓지만
9월이면 첫 눈이 내려 산행 가능 기간은 1년 겨우 3개월 남짓
최고 수심 384m, 평균 수심 213m, 해발 2257m의 천지

세계 최대 산정호수로
2500m급 이상 16개 연봉의 호위를 받는다
물은 맑고 차가워 맨발을 1분 이상 담그기 힘들고
시시각각 변하는 괴팍한 날씨로 베일 속에 자주 가린다
조선족 산행가이드가 들려주는 우스갯소리 하나
'천지에 올라 천지를 못보는 사람이 천지라서 천지'란다

뭐니뭐니해도 백두산 탐승의 하이라이트는 서파(西坡) 종주
한 산꾼은 서파종주 후 이렇게 말했다
"통일이 될 때까지 다신 백두산 산행을 하지 않으리라"고
5호 경계비에서 천지 물가인 달문에 이르는 13㎞의 종주길은
통일 이후 북녘땅을 통해 새로운 코스가 열리기 전까지
이보다 더 황홀한 코스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그랬다
휘몰아치는 비바람과 뿌연 안개 탓으로
눈 앞의 천지와 수백종의 야생화를 눈여겨 살펴보지 못했지만
한걸음씩 옮기면서 펼쳐지는 푸른 대평원과 능선길만으로
백두의 비범함을 온 몸으로 느꼈다
장엄하면서도 수려하고, 투박하면서도 곱디고운
그 자태에 그만 넋을 잃은 것이 여러 차례
꿈엔들 잊힐리야 백두산 천지

근교산 산꾼들은 한 몸되어 기원했다
통일되어 우리 땅에서 백두산 천지를 보는 날이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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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봉에서 철벽봉쪽으로 가는 지점에서 그간 가려져 있던 천지의 자태와 주변 봉우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이 걷히면서 16연봉중 하나인 용문봉(2596m 가운데 상단 뾰족한 봉우리)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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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 전경. '천지에 올라 천지를 못보는 사람이 천지라서 천지'란다. 최근 '강호동의 1박2일'에서 천지를 볼 수 있는 날이 일년이 10일 정도라고 하는데 이는 약간 과장된 것이다. 북한땅과 중국의 경계인 5호경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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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땅과 중국의 경계인 5호경계비.


민족의 영산 백두산 서파 종주 산행기

발아래 우뚝 솟은 북녘땅, 광활한 만주벌판 호령
고행의 계단 지나 5호경계비서 시작, 6시간 소요
안개·구름 걷히니 16연봉 호위속 신천지가 활짝
천상화원 야생화에 '야~' 장백폭포 위용에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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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쪽 화구벽으로 내려가기 전 철벽봉 안부에서 바라본 백두산의 또다른 산줄기. 오른쪽 능선은 흑풍구에서 이어지는 고래등 능선이며 왼쪽 줄기는 소천지로 내려서는 능선이다.
 
 
시인 고은은 백두산 천지를 본 순간 아무 말없이 천지를 향해 큰 절을 올렸다고 한다.

한국인이라면 북받쳐 끓어 오르는 감정의 표현 방법만 다를 뿐 누구나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우리 민족의 영산이자 태(胎)자리인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굽어보는 이 순간을.

사실 천지는 애초부터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정면은 온통 뿌연 회색천국이었다. 동행한 조선족 가이드 조남철씨의 설명에 따르면 천지를 확연히 볼 수 있는 날은 한달 중 많아야 4, 5일 정도.

발만 동동 굴리며 무작정 기다리기를 30여 분.

'이야, 아!' 정말 한순간이었다. 흥분과 감탄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퍼런 천지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다 삼키고도 남을 만한 자태로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동시에 천지를 둘러싼 16연봉의 웅장한 모습도 손짓을 하며 다가온다. 왼쪽 북한쪽으론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2749m)을 위시해 비류봉(2580m) 쌍무지개봉(2626m) 등이, 오른쪽 중국쪽으로 백운봉(2691m)을 비롯한 마천우(2459m) 청석봉(2662m) 녹명봉(2603m) 차일봉(2595m)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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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백운봉으로 향하는 산행팀.  
 
하지만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딛고 있는 땅이 바로 중국의 영역이라는 점. 조선족이 대다수 살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연길이라지만 그래도 엄연한 중국땅이 아닌가.

국제신문 산행팀이 근교산 시리즈 400회를 맞아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찾았다. 이번 산행에는 부산경남지역의 마니아 산꾼 70여 명도 동행했다.

첫날 쏟아지는 비 때문에 서파 종주산행 내내 천지를 보지 못한 산꾼들은 다음날 북파코스 철벽봉 안부 부근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천지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평했다. 전율이 느껴질 만큼 감동 그 자체라고.

산 정상 부분에 흰 부석이 덮여 있어 이름 붙여진 백두산(白頭山)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가른다. 서쪽과 북쪽은 중국 길림성, 동쪽과 남쪽은 북한의 양강도에 속한다. 서쪽의 5호 경계비와 동쪽의 6호 경계비가 국경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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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서 승사하를 거쳐 장백폭포로 내려가는 도중 전망대에서 바라본 산줄기와 대평원.

현재 백두산 등정길은 크게 네가지. 서파 북파 동파 남파가 그것. 파(坡)는 중국말로 언덕이란 뜻으로 가령 서파 코스는 백두산 서쪽에서 오르는 길을 의미한다.

북파는 가장 일찍 열린 길이요 가장 널리 알려진 길. 흔히 어르신들이 떠나는 백두산 관광의 99%가 이 코스다. 지프를 타고 천문봉 턱밑까지 오른 다음 5분 정도 오르면 천문봉 정상. 여기서 천지를 감상한다. 산행이 아니라 그야말로 관광이다.

서파는 지난 1990년대 후반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코스로 산꾼들이 주로 찾는다. 천지를 오른쪽에 끼고 백두산의 장대한 고원지대를 걷는다. 수백여종의 야생화가 만발한 천상화원이 바로 이 길을 따라 펼쳐진다. 동파와 남파는 북한에서 오르는 코스로 현재로선 그림의 떡.

이번에 산행팀이 완주한 코스는 서파. 산행은 조중경계선인 5호 경계비에서 시작되지만 주차장에서 5호 경계비까지 2200개의 '고행'의 계단을 우선 올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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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 산행은 5호 경계비에서 마천우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반대방향은 북한땅. 출발전부터 비와 안개, 그리고 강풍이 만만찮다. 굵은 빗줄기는 몰아치는 칼바람을 타고 연신 뺨을 후려친다. 제대로 갖춘 복장과 장비도 무력감을 느낄 정도. 확 트인 능선길에서 강풍을 만나면 몸이 날려갈까봐 모두들 움츠린다. 이런 악천후가 하산 때까지 지속됐다.

암봉 마천우는 험해 봉우리 왼쪽길로 에돌아 내려선다. 청석봉까지는 천지를 우측에 두고 비교적 평탄한 능선길로 가지만 천지는 안개에 가려 부옇기만 하다. 대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연상케 하는 눈앞의 푸른 대평원과 뾰족한 암봉, 그리고 낭떠러지는 백두산의 넉넉함과 위엄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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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문봉에서 운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천지가 철벽봉으로 가는 도중에 그 모습을 드러내자 산행팀이 천지를 향해 만세를 부르고 있다.

 
화산암 너덜지대를 지나면 평평한 청석봉 정상. 이곳에서 능선길로 1시간쯤 가면 송강하. 천지물이 화산암 계열의 바위틈새로 나와 형성된 물줄기로 주변은 야생화가 만발하는 고산화원. 대개 여기서 밥을 먹고 쉬지만 산행팀은 악천후로 인해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어 그냥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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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구벽을 내려와 승사하를 건너는 산행팀.


백운봉 가는 길은 서파코스 중 가장 힘든 길. 오르막의 연속. 노란 두메양귀비 등 방긋 웃는 야생화가 그래도 힘을 덜어준다. 8부 능선쯤 가면 두 갈래길. 직진하면 정상, 왼쪽 길은 에돌아 가는 길. 평원인 능선길로 사슴이 많다는 녹명봉으로 이어진다. 녹명봉 정상에선 바위길인 일부 하산구간을 제외하고는 평원길의 연속. 차일봉을 지나면 두 갈래길. 말그대로 작은 천지인 소천지로 가는 길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가파른 하구벽을 내려와 천지물가인 달문을 보고 장백폭포를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

여기선 대개 서파산행 시간을 고려해 결정한다. 백두산의 날씨는 1시간 뒤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남을 경우 달문~승사하~장백폭포 코스를, 예상보다 지연됐을 경우 장백폭포 코스는 다음날로 미루고 소천지로 하산한다. 산행팀도 곧장 소천지로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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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68m의 장엄한 장백폭포(비룡폭포). 겨울에도 얼지 않는 어마어마한 수량이 뿜어내는 굉음은 휴화산인 백두산의 살아있는 숨소리라 불린다. 천지로 향하는 우측 상단의 터널은 마치 유럽의 옛 성벽을 닮았다.
 
 
장백폭포(비룡폭포)는 백두산에서 가장 웅장하면서도 아름답다. 높이 68m인 폭포는 여름은 물론이고 겨울에도 얼음과 눈 속에서 얼지 않고 있는 모습이 장관 그 자체다. 어마어마한 수량과 굉음은 백두산의 숨소리라 불리운다. 장백폭포를 돌아 천지로 오르내리는 계단은 멀리서 볼 경우 유럽의 옛 성벽을 보는 것처럼 운치가 있다.

장백폭포 아래에는 온천지대가 형성돼 있다. 장백폭포에서 주차장으로 오는 도중 온천수에 계란이나 옥수수를 삶아 판매하고 있고, 여기서 좀더 내려오면 호텔에서 유황온천욕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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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온천수에 삶아 파는 계란과 옥수수.

◆산행 뒷이야기

 부산 산꾼 38명 악천후속 완주
 산행 속도에 현지 가이드·중국인 감탄
 저체온증으로 탈진 우황청심환 먹기도

"이처럼 대부대가 이런 최악의 날씨 속에서 10~12시간 걸리는 백두산 서파종주를 6시간 만에 끝낸 것은 아마 오랫동안 기록에 남을 겁니다."

백두산 서파종주 현지가이드 조남철 씨는 산행을 마친 후 "지난해 한국의 한 팀이 5시간30분 만에 완주했지만 그들은 젊은 장정 5명인데다 날씨마저 쾌청해 오늘의 이 기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초 백두산 서파 종주에는 50여명이 도전했다.

  
하지만 산행기점인 5호 경계비 앞에서 휘몰아치는 비바람 때문에 10여 명이 돌연 기권, 기자를 포함한 38명이 참여했다. 연령층도 남녀노소 다양했고 평균 연령 또한 40대 중반 이상으로 봐도 무난한 노인군단(?)이었다. 이들은 국제신문 '근교산' 기사를 보면서 매주 산행을 다닌 마니아들이어서 하나같이 자신있다고 말했다. 부부 4팀도 포함됐다.

산행은 날씨 등 최악의 조건 속에서 진행됐다.

38명의 대부대임에도 불구하고 현지 가이드는 우여곡절 끝에 한명밖에 동행하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서파 종주에 도전키로 한 산꾼 한명이 출발전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또다른 현지 가이드가 사라진 그 산꾼을 수소문하느라 결국 대오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

결국 선두는 조선족 현지가이드인 조남철 씨, 후미는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이 맡았다.

출발시간은 지난달 28일 오전 10시45분. 통상 서파종주는 새벽 5시께 5호 경계비에 올라 일출을 본후 출발하지만 빡빡한 일정에 비행기마저 연착돼 예정보다 5시간 이상 지연됐다.

이날 5호 경계비까지는 중국인들을 포함한 많은 산꾼들이 올랐지만 산행도전팀은 국제신문팀이 유일했다.

앞서 출발한 중국인 젊은이 3명은 산행 중간쯤인 청석봉 부근에서 되돌아가며 산행팀에게 대단하다는듯 엄지손가락을 내보이기도 했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50대 중반의 한 여성이 저체온증으로 탈진하자 동료가 배낭에서 우황청심환을 꺼내 먹였다. 이창우 대장은 이 여성의 배낭을 대신 멨고 동료들이 번갈아가며 부축했다.

워낙 비바람이 거세 밥먹을 엄두도 못냈다.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벌어져 본의 아니게 휴식을 취할 땐 하나같이 사시나무 떨듯 추위와 싸워야만 했다.

천지라도 잠시 얼굴을 내밀면 힘이 날텐데 이날따라 천지는 심통을 부렸다.

산행 후 가이드 조씨는 "어릴 때부터 300년 묵은 장뇌삼을 깍두기로 먹은 30살의 저도 몹시 춥고 힘들었다"며 "이런 악조건 속에서 사고없이 완주한 대원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에 맞장구를 치기라도 하듯 종주를 마친 이상득(46)씨는 "좌우가 확 트인 능선길에서 일순간 거센 비바람이 몰아칠 땐 몸이 날려가는 줄 알았다"며 "그래도 지금은 큰 일을 해낸 것처럼 뿌듯하다"고 밝혔다.

백두산 서파종주는 이렇게 끝났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산행팀은 그 다음날 북파코스에서 천지와 그 주변의 16연봉, 그리고 아름다운 장백폭포를 원없이 보고 또 봤다.

부산서 출발하는 백두산 산행상품은 대개 4박5일. 하지만 국제신문 산행팀은 백두산 등정을 원하는 산꾼들을 위해 산행을 위주로 한 3박4일 코스를 명문여행사와 공동으로 마련, 이번 산행이 이뤄졌다.


글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사진 = 박수현기자 parksh@kookje.co.kr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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