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 500회 특집 역대 산행 담당 기자 에피소드

 5년간 함께 산행한 기자와 이창우 산행대장은 지금까지 딱 한 번 따로따로 집에 왔다. 2년 전 경주 토함산~울산 삼태봉을 찾았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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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이창우 산행대장. 장흥 천관산 정상이다.


 아름다운 감포가는 4번 국도 상의 황룡마을에서 토함산에 올라 석굴암 입구로 내려올 때까진 문제가 전혀 없었다. 이후 계획은 석굴암 주차장을 지나 도로를 따라 가다 산길로 오른 후 삼태봉으로 가는 것이었다. 도로에서 산으로 접근하길 수 차례, 산길이 없는 것이었다. 몇 차례 가시덤불을 뚫으려고 시도는 했지만 불가능했다. 이렇게 1시간. 그의 뒤를 묵묵히 걷다가 기자는 이 대장을 불러 세웠다. 그리곤 "이후 산길을 찾는다 하더라도 도로를 걷는 시간이 너무 길어 산행지로 부적합하다"라고 의견을 개진했다. 이 대장은 말없이 걷고 또 걸었다. 재차 불러 보았지만 그는 대답없이 걷기만 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점차 벌어지자 기자는 제법 큰 소리로 다시 한번 고함쳐 보았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혼자 집에 가라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던 것이었다. 지친 기자는 도로에 주저 앉아 1시간 정도 기다렸으나 이 대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전화통화에서 이 대장은 끝내 길을 찾지 못했다며 피식 웃었다.
  얼마 전엔 칠흑같은 어둠속을 겨우 뚫고 나온 적도 있었다. 물론 둘일 경우 그나마 그럭저럭 내려오겠는데 그날은 여성동지 두 명이 함께 했다. 여름철이라 비 걱정만 했지 랜튼 생각은 어느 누구도 못했다. 폭우를 만나고 길을 두어 차례 잃다 보니 시간은 점점 흘러 어둑어둑. 배낭을 뒤져봐도 4명 중 어느 누구도 랜튼이 없었다. 핸드폰을 랜튼 삼아도 넘어지고 자빠지고 미끄러지고 잡풀을 헤치고, 사태난 길을 사뿐사뿐 통과하고…. 하여튼 산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그 짧은 시간에 모두 해보았다. 문득 머리 한켠에는 '아! 사고가 이렇게 나는구나,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이 조난상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스쳐갔지만 그래도 천하의 이창우 대장이 있는데 하며 애써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하지만 산행대장과 기자의 착찹한 마음과 달리 여성 동지 둘은 웃음을 잃지 않으며 용케 버텨주었다. 기자가 농담으로 밤에는 멧돼지지를 만날 수 있다고 하자 여성동지들은 "배도 고픈데 잡아 먹어야지"라고 할 정도였다. 도로에 내려오니 밤 9시5분. 주차돼 있는 곳까지 걸어서 30분. 저녁은 도로변 아무 식당에 들러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회사 앞에 도착하니 밤 12시20분. 산행도 실패하고 몸은 만신창. 그래도 살아돌아 왔으니 어찌 기뻐지 아니하리오.
이처럼 취재기자와 산행대장은 산행 중 에피소드가 참 많다. 역대 산행기자의 그것도 이참에 한번 들어보자. 정리=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 회장님, 하늘에서도 여전히 산행 즐기시겠죠? - 박병률 기자(2000.11~2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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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계속 나와도 되지. 발에 쇠심하나 박긴 했어도 체력하나는 자신있어."

칠순인 그가 배시시 웃었다. 나는 말대신 미소로 화답했다. 그날 그는 지리산 언저리의 주산 산행에 근교산 대원으로 처음 동참했다.

2001년의 새봄이 기지개를 켜던 어느날 근교산 취재팀에 고 김창한 '회장님'이 들어왔다. 그는 월남전에 참전했고, 중동에서 돈을 벌었으며, 지금은 자식들을 출가시켰다고 했다. 그는 근교산 대원 중 역대 최고령이었다. 우리팀은 그를 '회장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난 말이야, 죽어도 원한이 없는데 다만 죽을 때 캑 소리 한번 하고 그냥 갔으면 해. 그래도 한 열흘 정도는 병원에서 간호를 받고 싶어. 그래야 섭섭하지 않지."

산행이 깊어지면 대원사이에 이런저런 사적인 대화들이 오간다. 회장님은 '잘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그리고는 "그러려면 산이 최고야. 그래서 내가 산을 타는 것이지"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리산으로 떠났던 그해 가을,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논의 끝에 산행을 포기하자 그는 "진교에도 좋은 산이 있는데 가보자"며 우리 손을 이끌었다. 그런데 그가 간 곳은 예순이 넘은 여동생의 집이었다. 그녀는 "우리 옵빠 오셨네"라고 반기며 갓 잡은 전어를 내놓았다. 아, 그날 입 안에서 살살 녹던 전어의 맛! "건강해야 한다"며 몇 번이고 손을 잡던 남매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올 봄 나는 회장님의 부고를 뒤늦게 들었다. 지난해 가을 타계하셨다는 것이다. 산행을 하러 집을 나서던 중 정말로 '억'소리 한번에 쓰러졌고, 열흘가량 병원 신세를 진 뒤 그렇게 하늘나라에 가셨다고 했다. 그의 마지막길을 뵙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영남알프스 태극종주, 지리산 사계…. 회장님. 우리가 어렵게 개척했던 길 잊지 않았죠? 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brpark@kookje.co.kr

# 대장님, 웬만하면 아는 길로 가면 안될까요? - 조봉권 기자(1998.9~2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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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냉기가 가시지 않은 1999년 3월초였다. 아침부터 비가 왔다. 비를 맞으며 경남 하동군 악양면 미동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비는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내렸다. 구재봉~칠성봉 등산로가 정비되기 전, 산길은 말 그대로 무공해였다.

애초 목표대로 구재봉(767.8m)을 거쳐 칠성봉(900m)까지는 빗속을 뚫고 잘 갔다. 산 위에는 이창우 산행대장과 나 두 사람뿐이었고 비를 그을 곳이 없어 3월 찬 빗물에 밥을 말아먹다시피 도시락을 비웠지만 성취감으로 가슴은 뿌듯했다.

그런데 이창우 산행대장은 그 장대비 속에서도 또 '새로운 루트'를 고집했다. 그는 이미 알려진 칠성봉 하산로를 외면하고 능선을 따라 계속 나아갔다. 지도상에는 사람들이 덜 다니는 다른 하산길이 나와 있었고 취재팀은 그 길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우리가 그 하산길의 입구를 놓쳤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비는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내렸다.

나는 초짜 산행기자였다. 칠흑같은 어둠에 갇히고 주위에는 불빛 한 점 보이지 않을 때, 랜턴의 배터리는 반드시 달랑달랑해진다는 '법칙'을 그 때 처음 배웠다. 빗속에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낭떠러지에 막혀 포기하기를 몇 차례, 드디어 절벽 아래 토굴을 발견해 몸을 의탁한 시각은 밤 9시 30분쯤이었다. 12시간 동안 3월 초 찬 빗 속을 헤맨 셈. 대장은 멀쩡했지만 나는 탈진했다.

1998년말부터 2년 몇개월 동안 '다시 찾는 근교산' 담당기자였던 내게 이창우 산행대장은 "그 때 유독 험산 잡산 개척코스를 많이 다녔다"며 미안해 하곤 한다. 하지만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다. 주산~미숭산에서 만난 수백 마리 반딧불이들의 그 황홀한 군무를, 내가 강해졌다는 것을 느꼈던 지리산과 영남알프스의 기억을, 다시 찾는 근교산에서 보낸 모든 순간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bgjoe@kookje.co.kr

# 끝없는 황사먼지 폭탄… 세탁기가 막힐 뻔 - 김용호 기자(2002.2~2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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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은 유난히 황사가 심했다. 그해 4월께, 그러니까 근교산 취재를 맡고 얼마 안돼서 일이다. 그날 취재 목적지는 경북 현풍의 비들산(291회)이었다. 비슬산은 많이 들어봤어도 비들산은 금시초문이었다. 이창우 산행대장의 설명에 따르면 비들산은 비슬산 바로 옆 산으로 현지 주민들이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산행 시작은 순조로웠다. 들머리도 쉽게 찾았다.

고행은 산행을 시작한 지 30분 정도 지나 첫번째 작은 봉우리에 오르면서 시작됐다. 나뭇가지마다 켜켜이 쌓여있던 황사먼지가 산행팀을 괴롭혔다.

최소 수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는지 등산로는 길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잠시 뒤 이 산행대장은 길이 없다면서 능선을 타고 무작정 오르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를 건드릴 때마다 황사는 폭탄이 터진 것처럼 뿌옇게 먼지를 일으켰다.

침을 뱉어도 그때 뿐 입 안에서는 먼지 알갱이가 맴돌았고 산행안내 리본을 매달기 위해 한번 쉴 때마다 가져간 식수로 입을 헹궜다. 앞서가는 이 산행대장이 나뭇가지를 건드리며 털어놓은 먼지는 고스란히 기자에게 돌아왔다. 1시간여를 황사속에서 헤매는 바람에 안경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변했고, 먼지에 목이 잠겨 말을 하기도 힘들었다. 관기봉에 이르러서야 겨우 배낭을 풀었다.

짙은 녹색의 배낭은 먼지가 앉아 뿌옇게 변했고, 검정색 바지는 땀과 먼지에 얼룩이 져 군복처럼 보였다. 그날 입은 등산복에서 나온 구정물은 공군 훈련소에서 빨래할 때 본 이후 최고로 더러웠다.

가덕도 응봉산~웅주봉(314회) 취재 산행때 공사장용 코팅장갑을 끼고 가시덤불을 헤쳤던 일이나 민주지산~삼도봉(322회) 취재를 마친 뒤 자동차의 배터리가 방전돼 한겨울 추위에 발을 동동 굴렀던 일도 잊기 어렵다. kyh73@kookje.co.kr


# 초보산꾼, 수도~가야산 종주서 탈진 또 탈진 - 배병주 논설위원(1993.1~1994.8, 1996.1~19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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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근교산 시리즈를 처음 시작한 것은 1993년이었다. 중간에 1년여 공백기를 가지기는 했지만 한 테마를 가지고 10년 넘게 연재를 이어간 사례는 우리 언론사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물론 이런 '대기록'을 세운 것은 독자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시리즈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기자는 산에 대해선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길에 석굴암 관광을 위해 토함산을 오른 것이(당시에는 석굴암 순환도로가 없었음) 당시 기자의 유일한 산행 경력이었다. 이런 초보자가 어찌 근교산 시리즈를 시작할 엄두를 냈는지 지금도 그 무모함에 아찔한 생각이 들곤 한다.

초보 산행기자의 산행은 실수의 연속이었다. 산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기가 일쑤였고, 잘못 들어선 길에서 굴러떨어지는 등 실수연발이었다. 기사마감이 임박해 우중산행에 나섰을 때는 안개에 길을 잃어 산 속에서 헤맨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수도~가야산 종주산행. 산행 시간만도 12~14시간이 걸리는 데다 산길마저 험해 기자에게는 극기체험 코스나 다름없었다. 1000~1300m급의 봉우리 7개를 넘어야 하는 데다 도상거리만 40㎞에 달해 기자에게는 애초부터 무리였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최면을 걸어가면서 용감하게 산행을 시작했지만 후박령을 넘어서자 무릎에 통증이 오는 게 아닌가. 하산지점인 경북 성주군 백운동까지는 아직 3~4시간 더 걸어야 하는데 말이다. 동행자의 도움을 받아 뒷걸음질까지 해가며 산행을 마치기는 했지만 기자에게는 이 산행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하지만 기자는 이 같이 아픈 추억보다 미답의 산길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던 즐거움만 기억하고 싶다.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근교의 무명산을 지역 산악동호인들에게 돌려주었다는 뿌듯함이 더 크기 때문이다. bjbae@kookje.co.kr


# 이틀연속 같은 산 등반 "해가 나와야 사진을 찍지" - 조해훈 문화전문기자(1997.3~19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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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어느 매체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산 취재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갖고 있는 국제신문의 '근교산' 취재 횟수가 500회를 맞았다니 그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기자가 근교산 초반기에 잠시 취재를 맡았지만 그 명성에 보탠 것은 거의 없다. 기자가 그동안 산 취재와 관련, 외부에 글을 많이 쓴 탓에 재미있는 에피소드 등을 다 써먹었지만 미약한 기억을 떠올려본다.

지난 97년 여름이었다. 기자는 경남 밀양 삼각산(887m) 등산코스를 취재하러 갔다. 그날 아침부터 먹구름이 끼는 등 날씨가 심상찮았다. 장마철 기후가 그런 것이어서 비를 맞으며 취재를 하면 되므로 기사는 별 문제가 없었다. 비가 아무리 많이 내리더라도 사진도 우산을 쓰고 찍으면 괜찮았다. 우기에 산 정상에서 도시락을 먹는데 가릴 만한 게 없어 그야말로 '빗물에 밥을 말아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았던가.

산행 코스 안내를 해주시는 분과 둘이서 산에 올랐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후두둑' 소리내며 빗방울이 떨어졌다. 산 정상 부근에 가서 도시락을 먹기로 하고 올랐다. 나무며 풀이 물기를 많이 머금은 탓에 산 특유의 습기냄새가 났다. 기분 나쁜 냄새가 아니라 마치 '녹색의 내음'이라고나 할까, 우기에 산행을 해본 사람들은 그 냄새를 알 것이다.

산 중턱을 지나자 구름과 안개가 섞여 날렸다. 마치 빗물이 몸 속에 스며들어 고인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마침내 힘들게 정상 부근에 도착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큰일이다. 비축해 놓은 기사도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개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안개가 시야를 가린 탓에 어렵사리 하산하면서도 사진을 찍기 위해 수없이 뒤를 돌아보았으나 보이는 건 안개 뿐이었다. 다음날 기사를 써놓고 휴가를 받아 다급한 마음에 사진을 찍기 위해 혼자서 삼각산 등산을 한번 더 했던 것이다. massjo@kookje.co.kr


기암에 계곡·그늘까지… 맛깔스런 섬 산행

수려한 절벽과 파도소리
햇볕 가려줄 공간도 넉넉
맑은 날 대마도가 한눈에
국수봉 군작전로 유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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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중 만나는 옛 해안초소에서 바라본 가덕도 기암절벽.



영도의 1.6배로 부산서 가장 큰 섬인 가덕도는 요즘 심히 혼돈스럽다.

지난 1989년에야 부산으로 편입된 막내섬 가덕도는 임진왜란 등 전시엔 해상요충지로, 4년 전 태풍 매미 땐 큰 피해로 약간의 관심을 끌었을 뿐 평소엔 언제 그랬냐는 듯 늘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섬이 거의 산으로 이뤄져 활용가치를 못 느낀 때문이었을까.

덕분에 신라 때부터 거의 축구공처럼 지금의 김해 진해 창원 마산 등 인근 지자체로 소속이 바뀌는 유랑의 아픔을 겪었다.

시계를 앞당겨 현 시점인 2005년 가을.
가덕도는 서부산권 개발의 핵심으로 떠올라 부산시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귀하신 몸이 된 것이다.

부산신항과 부산~거제를 잇는 거가대교 등 대역사(大役事)의 중심에 서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을 들이대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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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도중 만나는 옛 해안 초소 아래 바닷가 초병들이 근무를 서던 곳(왼쪽). 우측은 이보다 윗쪽에 위치한 해안초소. 입구엔 철조망과 순찰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해안초소였던 만큼 전망이 아주 빼어나다.


하지만 가덕도 주민들의 표정은 떨떠름하기만 하다. 허울 좋은 대역사에 삶의 터전을 깡그리 내주고 정작 주민들은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항 남측컨테이너부두는 어민들의 생업을 앗아갔고, 섬 일주도로 계획도 없이 부산과 섬을 잇는 도선을 없앤다고 한다. 투기자본이 몰려 70% 이상의 토지가 외지인의 소유가 된 지 오래다.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에 순응하면서도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엔 ‘불편해도 맘 편히 살던 이전이 그립다'는 향수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래서 가덕도와 가덕도 주민들 그리고 해맑게 가덕도를 찾은 기자 모두가 혼돈스럽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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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봉 정상에서. 정면에 보이는 봉우리는 군부대가 위치한 국수봉. 왼쪽 아래 마을이 대항새바지, 고개 넘어 오른쪽 마을은 대항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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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봉 정상석과 봉수대.


그간 산행팀이 소개한 가덕도 산길은 천성~연대봉~선창, 눌차~강금봉~응봉산~매봉~웅주봉~선창, 천성~대항고개~연대봉~대항새바지~대항 코스 등.

이번엔 가덕도 산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매봉~연대봉~국수봉 코스를 소개한다. 파도소리에 취하고 기암절벽에 놀라는 그런 길이다.

산행은 두문선착장~두문고개(천성공동묘지)~영주암~천성(가덕)고개(국군23용사 충혼비)~임도~매봉(359m·산불초소)~어음포곡(산불초소)~연대봉(459m)~어음포곡~계곡수~옛 집터~연대봉 갈림길~옛 해안초소~대항새바지~전봇대(배수펌프 가건물)~동백나무 군락지~군부대 통행시간 제한 경고판~무명봉(군진지 참호)~국수봉(269m)~군벙커~개사육장~외항포할매집(슈퍼)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6시간10분 안팎. 길찾기는 대체로 평이하나 일부 구간이 까다로워 국제신문 노란 리본을 반드시 참조하자. 일반적인 섬 산행길과 달리 이번 코스에는 계곡과 그늘이 있어 햇볕이 약간 따가워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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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선착장에서 하선한 후 왼쪽으로 100m쯤 가면 길 우측에 ‘두문길'이라 적힌 이정표. 국군충혼비 방향인 우측으로 오른다. 15분 뒤 천성공동묘지가 위치한 두문고개. 아름드리 소나무를 따라 가면 영주암을 지나고 여기서 14분 뒤 천성예비군 교장이 보이는 천성(가덕)고개에 닿는다. 한국전쟁 때 산화한 젊은 넋을 모신 ‘국군23용사 충혼비' 우측으로 간다. 충혼비 우측으로 강금봉과 암봉인 응봉산이, 좌측엔 갈마봉이 보인다.

이제 본격 산길. 하지만 이어지는 산길은 가시밭길이라 꽤나 힘겹다. 20분이면 무명봉을 살짝 넘어 임도에 닿는다. 바로 길을 건너 산으로 오른다. 경사가 심하지 않은 데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눈길을 붙잡는다.

14분 뒤 매봉 정상. 초소가 없다면 정상인지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조망 등 아무 특징이 없다. 직진하면 응봉산 강금봉, 산행팀은 오른쪽 연대봉 방향으로 간다.
15분 뒤 안부인 어음포곡. 초소와 연대봉 등산안내도가 서 있다. 연대봉은 선택사항. 여기서 왕복 35분 걸린다. 정상석보다 봉수대가 눈길을 끈다. 원래 봉수대는 정상 옆 일명 낙타봉이라는 암봉에 설치돼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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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절벽 아래 해안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조사들이 대물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자. 발 아래 벌겋게 흙이 드러난 봉우리가 최근 거가대교 휴게소 설치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는 천수말, 그 옆이 천성마을이고, 거제도 쪽 섬 중 4번째가 대통령 별장이 있는 저도다.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낙타봉 왼쪽으로 녹산산단 진우도 몰운대 태종대가 보인다. 날이 맑을 땐 낙타봉 우측으로 대마도도 보인단다.

하산은 낙타봉 옆으로 난 길로 대항새바지 가는 길과 낙타봉 우측 천성 방향으로 열린 두 가지가 있지만 두 길 모두 이미 소개한 터라 어음포곡으로 되돌아간다.

연대봉 등산안내도 뒤로 난 길로 향한다.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처녀길이다. 15분 뒤 계곡을 만나면 계속 따라 내려간다. 10여 분 뒤 갈림길. 우측으로 내려서면 옛 집터. 그 옆에는 계곡수가 흐른다. 계곡 쪽에서 보면 집터 흔적인 석축이 확인된다.

곧 갈림길. 계곡길을 버리고 우측 산길로 갈아탄다. 연대봉 3, 4부 능선으로 이어지는 이 산길은 해안가를 돌아 대항새바지로 연결된다. 가시덤불에다 발밑의 돌이 잡풀에 가려져 있어 고생깨나 해야 한다. 하지만 등로 좌측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위안이 돼 그나마 다행이다. 50분 뒤 다시 갈림길. 이 길은 연대봉 옆 낙타봉을 거쳐 하산하는 길이다. 50m 뒤 다시 갈림길. 해안가를 끼고 걷는 왼쪽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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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두문마을 안내석(왼쪽). 우측은 한국전쟁 때 산화한 젊은 넋을 모신 국군23용사 충혼비. 천성(가덕)고개에 위치해 있다.

6분 뒤 폐쇄된 해안초소. 입구엔 아직 철조망과 순찰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잠시 해안가로 내려가 해안절벽의 절묘함과 망망대해의 광활함을 느껴보자.
초소에서 대항새바지까진 10분. 마을을 통과, 3분 뒤 배수펌프 가건물이 아래에 있는 전봇대 옆으로 난 산길로 향한다. 국수봉 가는 길이다. 국수봉에는 군부대가 있어 산행팀이 안내하는 길 바깥으로 이탈하면 군인들에 의해 제지를 당하니 유의하자.

동백나무 숲과 군부대 통행시간 제한 경고판을 잇따라 지나면 오르막 산길. 25분 뒤 왼쪽으로 90도 꺾는 지점에서 오른쪽 능선을 타고 오른다. 산길 흔적이 없기에 유의하자. 왼쪽은 해안초소길로 출입통제지역이다.

30분 뒤 일본군이 파놓은 참호가 있는 무명봉. 전망은 없다. 여기서 왼쪽으로 10분이면 국수봉에 선다. 역시 참호가 있고 전망은 없다.

하산은 오른쪽길로 내려선다. 안부에서 다시 오르면 군벙커. 통로를 따라 통과한 후 50m쯤 가면 갈림길. 왼쪽으로 간다. 이 길만 찾으면 산행은 사실상 끝.
지그재그길을 따라 내려서면 외항포마을 직전 개사육장. 곧 외항포할매집(슈퍼)에 닿는다. 선착장은 바로 이웃해 있다.

#떠나기전에-가덕도 김태복씨 산 사랑 유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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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베낭에는 간이 톱이 들어 있다. 산길을 막고 있는 웃자란 가시덤불과 잡풀을 베어내기 위해서다.

이번 산행에는 부산 용원산악회 김태복(53)씨가 동행했다. 그는 가덕도를 오가는 도선 운영사인 가덕 진영해운의 사장이다.

가덕도에서 태어나 15살까지 그곳에서 자란데다 지독한 산꾼이기도 해, 단언컨대 가덕도 산에 관한한 가장 정통하다. 지금까지 소개된 가덕도 산길 대부분도 모두 그가 개척했고 동시에 산행팀과 동행했다.

이 때문에 부산의 내로라하는 산꾼들도 가덕도 산행에 앞서 그에게 산길 문의전화를 하는 것이 보편화돼 있을 정도다.

이번 산행은 예기치 않게 웃자란 가시덤불과 잡풀로 인해 예상보다 길었고 힘들었다. 참다 못한 그가 비상용 간이 톱으로 가지를 베는 등 일일이 길을 뚫으면서 나아갔다.

지독히 산을 사랑하는 한 산꾼의 숨은 노력이 많은 동료 산꾼들의 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한다는 사실에 산꾼의 한 사람으로서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 하나. 그는 매일 오전 6시면 선착장에 출근, 오전에는 선착장에 거의 머물고 오후부터 대외업무를 본다. 초보자일 경우 가덕도 산길 문의는 배 출발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그에게 물어보면 해결된다.

"이번 코스는 가덕도에서 드물게 그늘과 계곡을 만납니다. 더울 땐 흔히 섬산행을 기피하지만 이번 코스로 섬산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가 본 이번 코스의 간략한 설명이다.

대항새바지마을 옆 해안가에는 일제가 만든 동굴이 있다. 진지와 관측소로 이용된 흔적이다. 날머리인 외항포도 마찬가지. 외항포 뒷산인 국수봉에 참호와 벙커 포대진지가 남아있는 것도 모두 이런 맥락에서 보면 된다. 추정컨대 일제는 결국 외항포마을로 가는 지그재그 하산길로 올라 국수봉에 진지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11월1일~이듬해 5월31일 산불예방기간에는 출입을 통제한다.

#맛집

두 곳을 소개한다. 대항마을의 소희네집(051-971-8886). 해산물 정식으로 유명하다. 제철의 멍개 해삼 새우 소라 등 23가지 반찬과 바지락 미역국이 나온다. 7000원. 4인 기준 한 상 단위로 판매한다.
소희네집 인근의 자연산 횟집(051-971-1548). 주인이 직접 잡아 우선 싱싱하며 양도 육지보다 훨씬 많다. 매운탕엔 두툼한 살코기가 들어있다. 두 집 모두 예약 필수.


#교통편-녹산서 2시간마다 두문마을행 배

지난해 4월 새로 생긴 신항만선착장(051-971-9664)에서 배편을 이용한다. 신항만선착장은 지하철 1호선 하단역 5번 출구로 나와 58번 버스를 이용한다. 30~40분 간격으로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을숙도~강서경찰서~경마공원 방면~세산삼거리에서 좌회전~진해 방면~신항만선착장 순. 주차장은 아주 넓다. 신항만선착장에서 들머리인 두문마을행 도선은 오전 7시30분, 9시30분, 11시30분에 출발한다. 1500원. 날머리인 외항포에서 신항만행 도선은 오후 2시45분, 4시45분에 있다. 2400원.
참고로 기존의 녹산선착장(051-831-9664)에선 눌차 선창까지만 운행한다. 지하철 1호선 하단역 앞에서 58-1, 58-2번 버스를 이용한다. 오후 6시40분부터 1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1200원.

※대중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 400회 발자취

山河누빈 8년 … 국내 개척산행 새지평 열어
호남·충청권까지 독자, 신문 시리즈론 최장수
등산인 저변확대 공헌, 無名산·계곡 명칭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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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 대금산 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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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비슬산 진달래.



지난 7월 청도 용당산에서의 한 에피소드.

매주 목요일마다 취재산행을 떠나는 산행팀은 이날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힘겹게 된비알을 오른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 일단의 여성팀을 만났다.

60대 중반 한명과 40대 후반 세명이 한팀인 그들은 사제지간이다. "지금은 같이 늙어간다"며 웃음꽃을 피운 이들은 갖고온 과일을 나눠줬다.

대구서 왔다는 그들은 대화 도중 다짜고짜 산행팀을 보고 "혹시 국제신문 산행팀 아니냐"고 묻는게 아닌가.

처음엔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지만 그들이 떠나는 산행지는 모두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를 보고 정한다는 한마디에 그만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주 산행을 떠나는 그들은 이따금씩 "우리도 한번쯤은 산에서 국제신문 산행팀을 만나지 않겠느냐"고 농담삼아 얘기했는데 이렇게 만나 정말 반갑다며 악수를 청했다. 그들은 "현재 국내 여러 신문사에서 산 소개를 하고 있지만 그 기사들은 이미 등산로가 잘 나 있는 명산 위주의 '보기 좋은 떡'일 뿐 실제 산행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제신문 근교산 기사는 산행 초보자라도 그 기사만 보면 완주가 가능한 '먹기 좋은 떡'"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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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용지봉 장유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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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기백산 용추계곡.

그동안 인사치레로 근교산 시리즈의 고마움을 여러 차례 들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취재현장인 산에서 몸으로 실감한 것은 처음이었다. 동시에 밀려오는 책임감으로 다시 한번 등산화 끈을 조여 매는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인기리에 연재중인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가 10일자(2004년 9월)로 400회를 맞았다.


지난 1996년 1월4일 '기장 달음~철마산 종주산행(상)'편을 시작으로 첫발을 내딛은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햇수로 8년이라는 오래 기간을 달린 끝에 지금은 부산경남을 넘어 경북과 호남 충청권까지 고정 독자를 확보할 만큼 산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사실 근교산 시리즈는 이보다 3년 앞선 지난 1993년 1월7일 처음 시작됐다. '가볼만한 근교산'이라는 제목으로 '금정산'편을 소개한 후 이듬해 11월 87회 밀양 '정각산'편을 마지막으로 1년10개월간 연재됐다. 만일 '가볼만한 근교산' 87회를 포함한다면 근교산 시리즈는 500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 된다.

이런 곡절 때문에 3년 뒤 재출발한 시리즈의 제목은 '다시 찾는 근교산'으로 변했고, 지난해 10월부터는 전국의 모든 산을 산행 대상지로 한다는 취지에서 '근교산&그 너머'로 새롭게 변신했다.

내용을 차치하고서라도 시리즈 횟수만으로 볼 때 이 시리즈는 전국의 모든 신문에서 연재되고 있는 시리즈 중 최장수이며, 따라서 근교산 기사가 매주 게재될 때마다 전무후무한 기록을 갱신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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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승학산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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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 단풍.

근교산 시리즈가 독자들에게 크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철저한 현장답사와 현지취재를 통해 숨겨진 능선과 계곡이 새로운 등산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산행에 나서고 싶어도 산길을 몰라 감히 산을 찾지 못했던 초보 산꾼들은 물론 베테랑 산꾼들에게도 '이런 코스도 있었나'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해 산행인구의 저변을 넓히는데 적지않은 공헌을 했다고 자부한다.

그간 전담기자만 배병주 박명도 조해훈 조봉권 박병률 김용호 등 무려 6명이 거쳐갔다. 산행대장 역시 부산 산악계의 원로인 성산 씨, 건건산악회 회장이자 베테랑 산악인인 최남준 씨가 기반을 다진 후 지금은 대학산악부 출신으로 독도법에선 부산 최고를 자랑하는 젊은 산악인 이창우 씨가 7년째 맡고 있다.

전담기자들은 한결같이 "만일 이창우 산행대장의 노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방대한 시리즈가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재미있는 점은 전담기자들이 근교산 시리즈를 맡기 전에는 하나같이 산에 대해 문외한이었다는 점. 기자들이 독자들의 입장에 서서 편견없이 쉽게 산행기를 전달하다보니 호응을 받았다는 것이 자체 분석이다.

신문 기사와 안내 리본을 보며 산행하는 독특한 등산문화를 선도한 근교산 산행팀은 부산 경남북의 이름없는 산과 능선 계곡들에게 옛이름을 찾아주고 새이름을 붙여준 작은 업적을 세우기도 했다.
   
 
국토지리정보원이 발간하는 지형도에도 없어 자칫 영구히 묻혀버릴 수도 있는 산 이름을 현지 마을의 어르신이나 산속 암자의 스님, 그리고 문헌 등을 통해 발굴한 것.

양산 다방동에서 출발하는 금정산 종주의 처음과 마지막 봉우리인 다방봉과 금정봉을 비롯해 양산 채바우골만당 축전산 천마산 용굴산 비석봉 중리동산 매봉, 밀양 구천산 정승봉 명필봉 북암산, 청도 개물방산 쌍두봉 도롱굴산 방음산 서지산 효양산 복점산 시루봉, 언양 배내봉, 합천 절갓 등이 대표적인 본보기.

능선으론 간월공룡, 가지산 북릉, 천성산 중앙능선, 옹강산 가운데능선 등이 있으며, 신불산 홍류계곡 등도 국제신문 산행팀의 빼놓을 수 없는 역작으로 지금은 그 명칭이 지역 산꾼들에게 널리 통용되고 있다.

덕분에 국내 주요 산 전문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이들 이름이 하나씩 등재돼 전국의 산꾼들에게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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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가지산 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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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백산 눈꽃.

근교산 시리즈는 특히 청도와 밀양의 모든 면 단위에 위치한 산을 빠짐없이 소개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1000m가 넘는 20여개의 고봉들이 즐비한 거창 지역 산 소개도 거의 막바지에 와있다.

지난해 '아름다운 한국의 산1'을 펴낸 모아산악회 명예회장인 한영동(금성중 교사)씨는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가 없었다면 아마도 책 저술기간이 훨씬 길었을 것"이라며 "답사땐 반드시 근교산 시리즈 스크랩을 들고 다니면서 일일이 확인했지만 하나도 틀린 부분이 없을 만큼 정확해 혀를 내둘렀다"고 고백했다.

아마추어 산꾼인 진준근씨는 근교산 시리즈 덕택에 많은 산꾼을 알게 됐다고 전화로 고마움을 전해왔다.

50대 중반인 그는 "기사가 나온 주말이면 신문을 오려 영남알프스 등지로 산행을 하다보니 70대 어르신과 동년배의 50대 산꾼들을 자주 만나 알게돼 지금은 팀을 이뤄 같이 근교산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근교산 시리즈를 보며 3년째 산행을 하고 있는 서면의 권헌영 비뇨기과 원장은 "산행을 하다 보니 등산만큼 좋은 운동이 없으며 특히 남성의 성기능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지금까지 등산과 성기능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객관화된 자료가 없었다"며 "근교산 시리즈를 보며 함께 하는 산꾼들에게 설문지를 돌려 등산과 성기능의 상관관계를 연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백 한가지.

사실 근교산 산행팀은 본의 아니게 항의성 전화도 많이 받았다. 지리산 시루봉과 기장 용천산, 그리고 최근 소개한 밀양의 백마산 산행을 한 후였다. 산행로가 모두 송이버섯이나 두릅 대추 사과나무 주변을 질러갔기 때문이다. 분별없는 몇몇 산꾼들이 지나가다 농민들의 피땀이 맺힌, 자식같은 작물들을 하나 둘씩 슬쩍하다 보니 이에 화가 난 농민들이 신문사로 연락한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농민들에게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하며, 동시에 산꾼들에게는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자제를 부탁하는 바이다.

이번엔 당부 한가지.

'산꾼들이여, 리본을 만지지 말아달라'. 이같은 행위는 초보 산행자들에게는 어쩌면 반살인행위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잊지 말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당황한 초행자들은 리본에 의존해 하산로를 찾는다. 재미삼아 반대 방향으로 달아놓은 리본은 결국 조난으로 이어져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 산행팀이 뽑은 숨겨진 근교산 베스트7

목차

산이름

특 징

355

곡성 동악산

빼어난 산세·도림사계곡

338

합천 누룩덤~부암산

조망·암릉산행 만끽

314

가덕도 응봉산~웅주봉

환상적 조망

302

함양 삼정산

7개 절 암자 품은 불국토

283

경산 백자산~삼성산

가족 및 부부산행 '강추'

178

양산 천마산~매봉산

양산의 숨은 보석

148

창녕 석대산~화왕산

억새평원·진달래·조망 탁월


글 ·사진=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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