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속살 내비친 생명의 골짜기…웅장함의 절정
500년된 주목과 구상나무 등 원시수해(樹海) 걸을 땐 환상적
본격적인 오르막의 연속.
천왕봉으로 향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철계단.
통천문도 지나고...
◇마폭포~지리산 천왕봉~장터목 대피소
마폭포 아래 물을 건너 천왕봉으로 오르는 능선길은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마의 코스. 급격한 체력 소진을 요구하는 구간이다. 3㎞ 정도의 이 구간은 거의 일직선형의 산길에 고도차가 500m에 이르러 급경사를 이룬 곳이 태반이다. 심한 곳은 경사 60~70도의 바위 사이로 길이 이어져 있다. 약간 과장하자면 코가 땅에 닿을 정도다.
하지만 이 구간은 지리산 최고의 원시림 지대로 그에 걸맞게 수해(樹海)가 펼쳐진다. 우선 마폭에서 300m쯤 오르면 등산로상에 보이는 500년된 주목. 밑둥치 둘레가 3.4m로 두세 명이 팔을 벌려야 닿을 만큼 굵은 이 주목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크고 굵고 오래 됐다. 주목 이외에도 우리나라 특산종인 구상나무가 군집을 이룬 가운데 전나무 잣나무 등도 아름드리 노거수로 자생하고 있다. 인간의 발길이 뜸한 사이 노거수들은 꾸준히 생명력을 키운 것이다. 이 대장은 "10년전만 해도 산사태의 흔적이 너무 많아 사태골로 불렀는데 지금은 많이 복원돼 당시 흔적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천왕봉을 1㎞ 앞둔 지점에선 이정표 뒤로 중봉에서 흘러 내린 암봉이 골짝에서 꿈틀거리는 구름에 가려 있다 잠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좀체 보기 드문 비경이다.
오래전 사태가 난 듯 정상적으로 오르기 힘들어서일까. 마지막 급경사 오르막은 철계단이 설치돼 있다. 하늘을 찌를 듯 빼곡히 원시림을 이루던 주목과 구상나무는 시야에서 사리지고 시나브로 구절초 쑥부쟁이 동자꽃 산오이풀 등 야생화가 활짝 웃으며 뭍객을 맞는다.
주능선에 올라서면 천왕봉은 5분 거리. 바늘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폭우가 쏟아질 것 같은 우중충한 날씨 탓에 남한 최고봉인 천왕봉에 와서도 잠시 기념촬영을 할 뿐 등산객들은 하산을 서두른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잿빛인 데다 추위마저 느껴져 오래 머물 여유가 없다.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못 보는 기분이 꼭 이럴까. 문득 '천지에 올라 천지를 못보는 사람이 천지라서 천지'란다는 문구가 생각나 피식 쓴웃음이 나온다.
장터목 대피소로 향한다. 지리산에선 이곳을 통하지 않고선 신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는 통천문(1814m)을 내려서고 지리산의 명물 고사목 지대가 절경을 선사하는 제석봉(1808m)을 살짝 넘으면 마침내 장터목 대피소(1645m). 장터목은 옛날 천왕봉 남쪽의 산청 시천 주민들과 북쪽의 함양 마천 사람들이 매년 봄 가을에 물물교환을 하던 장터가 서던 역사의 현장으로, 현재에는 노고단 다음으로 많은 산꾼들이 몰려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산행팀이 찾은 날도 예기치 않게 해질 무렵부터 비바람이 몰아쳐 많은 산꾼들이 삽시간에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리산 대피소 중 시설은 아주 좋은 편이다.
◇장터목 대피소~백무동
함양 마천면 강청리 백무동은 지리산의 북쪽 관문. 이곳에서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으로 오르는 지름길이 열려 있고, 세석평전으로 곧장 연결되는 한신계곡 코스도 있다. 백무동 코스는 거림골과 함께 지리산 주능선으로 오르는 가장 편한 길이다.
백무동은 원래 100명의 무당이 거처했다고 하여 백무동(百巫洞)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백무동(百武洞)으로 쓰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지리산 천왕봉에 살고 있었다는 산신인 여신 성모(聖母)가 남자를 끌어들여 100명의 딸을 낳아 세상에 내려 보냈는데, 그들이 팔도로 퍼져 나간 출구가 백무동이었다고 한다.
새벽부터 장대비가 내려 천왕봉은 입산금지. 법천계곡도 물길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위험해 대부분의 산꾼들은 능선길인 하동바위 코스를 타고 백무동으로 향한다. 장터목에서 5.8㎞.
망바위를 지나면 너른터에 닿는다. 소지봉(燒紙峰·1312m)으로 백무동까지 중간쯤 되는 지점이다. 옛날 백명의 무당(百武)들이 제를 지낸 뒤 '종이를 태웠다'는 봉우리다. 오래전 백무동(百巫洞)으로 불렸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는 셈이다. 여기서 400m 더 내려오면 참샘. 유난히 다람쥐가 많이 눈에 띈다. 오가던 산꾼들이 쉬면서 먹던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 주면서 다람쥐가 이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계속되는 돌길. 눈앞에 주위를 압도할 만큼 10m쯤 되는 엄청난 규모의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흔들다리를 건너면 이정표가 서 있다. 함양땅인데도 하동바위(900m)라고 한다. 바위 한쪽에는 '하동암'이라고 음각돼 있다. 하동지방을 바라보고 서 있어서 또는 하동군수가 지리산 구경을 왔다가 이 바위 위에서 떨어져 죽었기 때문에 하동바위라고 불린다고 전해온다. 산행은 이제 막바지. 여기서 1.8㎞ 즉 45분 후에는 백무동 야영장을 거쳐 백무동에 도착한다.
◇떠나기 전에 - 탐방예약 가이드제 9, 10월 한시 운영…인터넷으로만 접수
지리산 칠선계곡은 현재 추성리에서 비선담까지는 상시 산행할 수 있고 비선담에서 천왕봉 구간은 2027년까지 생태계 보호를 위해 특별보호구로 지정 관리돼 있어 산행을 맘대로 할 수 없다.
하지만 국립공원 관리공단 지리산 국립공원사무소는 올해부터 내년말까지 5~6월, 9~10월 등 연중 4개월간만 '탐방예약 가이드제'를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월·목요일은 오전 7시 추성리 주차장에서 칠선계곡을 거쳐 천왕봉으로 '올라가기'를, 화·금요일은 반대로 천왕봉에서 추성리 주차장으로 '내려가기'를 한다.
매회 지리산 국립공원 직원과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4명의 가이드(안전지킴이)가 동행하며 회당 참여인원은 40명으로 제한한다. 참가신청은 '올라가기' 15일, '내려가기' 16일전 오전 10시부터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www.knps.or.kr)를 통해서만 할 수 있다. 무료. 예약자는 개별적으로 여행자보험에 가입한 후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055)972-7771~2
산행은 오전 7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올라갈 때는 전날 추성리 부근에서 민박을 하고, 내려설 경우에는 장터목 대피소나 로터리 대피소에 올라 하루를 묵어야 한다. 예약 필수.
칠선계곡의 도둑산행은 절대로 피하길 권한다. 국립공원사무소 직원들의 감시가 물샐틈없이 조직적이고 치밀하다. 만일 적발되면 과태료로 50만 원을 물어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칠선계곡의 등산로가 워낙 험하고 까다롭기 때문에 조난을 막기 위해서다. 국립공원 사무소에 따르면 요즘도 꾸준하게 평일 하루 3명 안팎, 주말에는 8~10명 정도가 도둑산행을 하다가 적발된다고 한다.
기자가 경험한 칠선계곡은 어떠했을까. 20여 차례나 칠선계곡을 경험한 이창우 대장과 함께 해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혼자였다면 3~4군데 길찾기가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맛집 한 곳 추천한다. 마천면은 지리산 흑돼지가 유명하다. 일교차가 심한 데다 청정수를 먹고 자라 육질이 아주 단단하고 한눈에 봐도 육질이 선홍색으로 싱싱하다. 1인분(200g) 8000원. 마천면 소재지에 위치한 '마천흑돼지촌'(055-962-6689)이 잘한다. 길 건너 식육점과 함께하기 때문에 언제가도 생고기를 맛볼 수 있다.
◇교통편 - 대전통영 고속도로 생초IC로 나와 화계 방면으로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함양행 직행버스는 오전 7시, 9시에 있다. 2시간 소요. 1만2100원.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길건너 위치한 군내버스 터미널에서 추성행 군내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매시 정시와 30분에 각각 출발한다. 1시간 걸리고 3300원. 백무동에서 함양터미널행 버스는 낮 12시30분, 오후 1시20분, 2시, 2시30분, 3시30분, 4시, 4시30분, 5시30분, 6시, 6시30분, 7시, 7시40분에 있다.
함양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 6시, 6시30분(막차)에 있다.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진주로 가서 부산행 버스를 타면 된다. 늦게까지 자주 있다. 승용차를 추성리에 주차했을 경우 백무동에서 택시(055-962-5110, 011-678-5119)를 불러야 한다. 1만2000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 생초IC~화계 방면 좌회전~함양 마천 우회전~마천 함양 자연휴양림 좌회전~백무동 마천 좌회전~지리산 마천 직진~지리산 백무동 칠선계곡 마천~의탄교~칠선계곡 벽송사 서암 좌회전~추성리 주차장 순.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지리산 칠선계곡의 진면목은 선녀탕 옥녀탕 비선담 칠선폭포 대륙폭포 삼담폭포 마폭포 등이 '7폭포 33소와 담'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상)편에 숨어 있습니다. 기자의 생각으론 (상)편이 더 알차고 더 볼 게 많은데 이상하게 (하)편이 네티즌들에게 호응이 많네요. (하)편을 보신 후 아래 쪽에 밀려 있는 (상)편에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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