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땅, 겨울철 특히 눈이 잦아
전국 산꾼들의 동계 산행지 각광

유마사~정상~뱀골 100% 원점회귀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4시간20분

산이름도 곰곰이 살펴보면 재미가 쏠쏠하다. 이름 속에 때론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연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생긴 모양이 이름 속에 담겨 있는 경우. 바위들이 또아리를 튼 것처럼 얹혀 있어 명명된 광양 백운산 또아리봉, 주능선이 덕성스럽고 너그러운 무주 덕유산, 두 개의 암봉이 나란히 솟은 청도 쌍두봉 등이 대표적 사례. 산세가 너무나 가팔라 곰이 떨어져 죽었다고 해서 일명 곰바우산으로 불리는 웅석봉이나 산이름 앞 숫자만큼 기암괴봉이 병풍처럼 우뚝 솟아 있는 고흥 팔영산, 영덕 팔각산, 진안 구봉산 등도 광의의 이 부류에 속한다고 봐도 무난할 듯하다.

모후산 정상에 서면 주암호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주암호 뒤론 순천 조계산.
   
  산이름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경우도 간혹 있다. 광주 무등산(無等山)은 높이를 헤아릴 수 없고 견줄 만한 상대가 없다는 의미이고, '쇠 금(金)' 자에 '돈 전(錢)' 자를 쓰는 순천 금전산은 실제로 풍수지리학자들에 의해 돈을 부르는 기운이 있다고 입증됐다.

 전설이나 설화가 숨은 산이름도 있다. 붉은 단풍이 아름다워 명명된 적악산이 꿩의 보은설화가 알려지면서 '붉은 적(赤)' 자 대신 '꿩 치(雉)' 자로 대체된 치악산이 그렇고, 17세의 김유신이 삼국통일의 염원을 담고 수련하던 중 단칼에 쪼갰다는 전설 속의 큰 바위가 정상 한 가운데 실제로 존재하는 경주 단석산(斷石山)도 여기에 속한다.

이번 주 소개하는 화순군과 순천시의 경계를 가르는 모후산(母后山)도 굳이 분류하자면 이 범주에 속할 듯싶다. 과연 어떤 산이기에 '임금의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알고 보니 고려 공민왕이 전설 속에 숨어 있었다. 원래 이름은 나복산(羅山)이었지만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왕비와 태후를 모시고 내려와 가궁을 짓고 환궁할 때까지 1년 남짓 머물렀기 때문에 모후산으로 명명됐다. 그만큼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본 모후산은 이웃한 조계산이나 무등산마냥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전형적인 육산이다. 여기에 산 정상에서 펼쳐지는 푸르디 푸른 주암호의 풍광은 그림같이 아름답다.

산행은 화순군 남면 유마리 유마사 주차장~산막골~용문재(헬기장)~모후산(919m)~중봉~뱀골~철철바위~유마사~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 이번 산행은 무릎까지 푸욱 빠지는 눈꽃산행.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20분이며 이정표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어 길찾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모후산은 광양 백운산, 광주 무등산에 이어 전남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구례 쪽 지리산 제외). 덕분에 눈이 많이 내려 산꾼들이 특히 겨울철에 많이 찾는다.

모후산(유마사) 관광안내소가 위치한 주차장에서 출발, 포장로를 따라 가면 유마사 경내로 진입하는 길이 잇따라 좌측에 둘 열려 있다. 하나는 일주문을 통해 걸어가는 길, 또하나는 차로 진입하는 길이다. 절 구경은 하산 뒤로 미루고 등산안내도가 보이는 포장로를 계속 따라 간다.

나목 사이로 유마사가 보인다.

산행은 왼쪽으로 올라가 우측 철철바위를 거쳐 내려온다.

대숲과 나목 사이로 보이는 유마사를 지나면 물소리가 들리면서 첫 번째 갈림길. 이정표 옆에 안내 리본이 많이 걸려 있다. 오른쪽은 집게봉 방향, 산행팀은 '용문재·정상'을 향해 직진한다. 주변은 방금까지 눈이 내린 것처럼 온통 순백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계곡(산막골)을 건너 본격 산으로 들어선다. 도중 농짝만한 바위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도 들린다.

폭설을 대비, 밧줄을 나무 사이로 묶어 놓았다.

용문재. 대개 여기서 한번 쉰다.


용문재에서 이제 본격 정상을 향해 오른다.

한 굽이 올라서면 마침내 정상이 보인다.
모후산 정상. 가슴이 후련할 정도로 그야말로 통쾌하다.


첫 갈림길서 10분 뒤 두 번째 갈림길을 만난다. 계곡 합수점이다. 우측은 철철바위 중봉 방향, 산행팀은 물길을 건너 정상(3.3㎞)을 향해 좌측으로 향한다. 등로 우측 나목 사이로 세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보인다. 1시 방향 최고봉이 모후산 상봉이고 그 우측으로 중봉 집게봉이다.

철철바위로 가는 또 한 번의 갈림길은 무시하고 용문재(0.6㎞)를 향해 본격 오른다. 이 구간은 응달인 데다 심한 경우 눈이 허벅지까지 쌓여 있어 발걸음이 점차 더뎌진다. 다행인 점은 폭설을 대비해 등로를 따라 연두빛 노끈을 이어놓아 길찾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주변 숲이 생기처인듯 유난히 새 울음소리가 맑게 다가온다.

 마지막 갈림길에서 30분 정도 눈밭을 헤치면 마침내 용문재. 산불초소와 등산안내도가 서 있다. 헬기장이라지만 눈에 덮여 확인할 길이 없다. 왼쪽은 남계리로 이어지는 종주길, 직진하면 동복면 유천리, 산행팀은 오른쪽으로 향한다. 이제 능선 방향이 동서로 바뀌어 북서풍이 콧잔등을 바로 때리지만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눈길을 뽀드득 소리내며 걷는 이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다. 아! 온 산을 불태우는 진달래가 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눈이 힘겨워 고개를 푹 숙인 산죽도, 구름 한 점 없는 유난히 푸른 하늘도, 수증기의 결정들이 얼어버린 눈꽃의 일종인 상고대도 온통 웃고 있는 듯하다.

 북서풍이 휭하니 몰아치거나 눈꽃터널 속에서 혹 발을 잘못 내딛어 소나무 가지라도 건드리면 일순간 눈가루가 얼굴이며 목덜미를 감싸 안는다. 소위 말하는 눈꽃비다.

정신없이 주변 풍광을 감상하며 부드럽게 한 굽이 올라서면 시야가 트인다. 이제 둥그스름한 정상이 손에 잡히고, 우측 발아래로 유마사 쪽 들머리도 확인된다.

어른 키보다 큰 정상석이 서 있는 상봉에는 용문재에서 1시간이면 올라선다. 거침없는 조망이 또한번 산꾼들을 감탄케 한다. 이정표를 정면으로 보고 11시 방향 지리산, 1시 광양 백운산, 9시 백아산, 7시 무등산 등 호남의 명산들이 뚜렷하게 확인되고, 산에 갇힌 듯한 유난히 푸른 주암호 뒤 3시 방향으로 이웃한 조계산이 보인다.

모후산 하산길.

모후산 하산길. 주암호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하산은 우측 집게봉 방향으로 내려선다. 급경사 내리막길이어서 주의를 요한다. 밀가루를 뒤집어 쓴 듯한 새하얀 봉우리 둘 중 앞엣 것은 중봉, 뒤쪽은 집게봉이다.

'좌 주암호, 우 모후산'을 감상하며 화려한 눈길을 35분쯤 가면 중봉 삼거리에 닿는다. 직진하면 집게봉(1㎞), 산행팀은 유마사로 이어지는 우측 급경사길로 내려선다. 집게봉에서도 원점회귀가 가능하지만 출발지가 먼 부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중봉이 적당할 듯 싶다. 체력 좋은 장정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모후산 중봉.

17분이면 계곡(뱀골)에 닿는다. 여름철 특히 뱀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물을 건너 좌측으로 계곡과 나란히 발걸음을 옮긴다. 눈 덮인 돌길이라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조심스럽다. 10여분 뒤 눈이 덕지덕지 남아 있는 커다란 둥근 바위 위로 와류가 흐른다. 철철바위로, 발밑에 조그만 팻말이 서 있다. 과거 물이 '철철' 흘렀지만 요즘엔 '찔찔' 흘러 이름을 바꿔야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린다. 바위 위 소나무도 무척 운치있다. 철철바위에서 계속 계곡을 따라 20분 정도 내려서면 앞서 지나왔던 계곡 합수점 갈림길에 닿고, 여기서 12분이면 유마사로 이어지는 갈림길로 접어든다. 물론 이정표가 친절하게 안내한다. 5분이면 경내에 들어선다. 절에서 주차장까지도 역시 5분 걸린다. (산행대장=이창우)

유마사 경내.


◆ 떠나기 전에
- 한국전쟁 땐 인민공화국 남로당 전남도당 위원회 있던 곳
   
모후산은 한때 모호산(母護山)으로 불렸다. 임진왜란 때 이곳 화순땅 동복현감을 지낸 서하당 김성원이 정유재란 때 68세의 나이로 90세 노모를 구하기 위해 맨몸으로 싸우다 전사한 산이었기 때문이다.

유마사 대웅전.

유마사 일주문.

유마사 해련부도.

유마사 보안교.



 모후산 유마사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공화국 남로당 전남도당 위원회가 있었던 분단의 아픈 현실을 간직한 현대사 비운의 현장이다. 모후산 남릉의 집게봉 9부 능선에는 지금도 빨치산이 파놓은 참호가 남아 있으며, 올해부터 군은 이를 복원할 계획이다. 참고로 이보다 북쪽에 위치한 백아산은 조밀한 암벽이 천연 요새 역할을 해 빨치산 남부군 전남도 사령부가 있었다. 두 산 모두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비린내나는 살육전이 잇따랐다. 결국 화순땅은 무등산과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인민군과 빨치산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해서, 남로당 전남도당 위원회가 있던 백제 천년고찰 유마사는 한국전쟁 때 모두 전소됐으나 근래에 들어 복원된 것이다. 고려시대 땐 호남에서 제일 큰 사찰이었던 유마사는 지난해 호남 최초로 비구니 승가대학을 설립해 승가교육기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유마사에선 보물 1116호인 해련부도와 일주문 인근의 보안교를 빠뜨리지 말자. 당에서 건너온 요동태수 유마운의 딸 보안이 치마폭에 싸 놓았다는 전설 속의 돌다리이다. 들머리 산막골에는 오래 전 15가구가 모여 약초를 재배하며 살았다고 전해온다. 등로 주변의 숯가마터와 복원 계획 중인 산약초 재배움집이 그 흔적이다.

 모후산은 고려(개성)인삼의 시배지로 유명하다. 정확한 위치는 모후산 정상에서 산행팀 경로와 반대방향인 북릉 쪽에 위치해 있다. 이는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이 쓴 '증보문헌비고'와 개성부 유수를 지낸 김이재의 '중경지(中京志)'에 표기돼 있다. 3년 전 이곳에선 120년 된 2억5000만 원 상당의 천종산삼 8뿌리가 발견됐다고 한다.

멀리서 본 눈덮인 모후산.

또 한 가지. 모후산 하면 '동복 삼복(三福)'을 빼놓을 수 없다. 고려 공민왕 때부터 조선 후기까지 궁중에 진상돼 당시 동복현감의 골칫거리였다고 전해온다. 복청(福淸·모후산 토종꿀) 복삼(福蔘·천종산삼) 복천어(福川魚·동복천의 민물고기)가 바로 그것이다.

◆ 교통편 - 호남고속도 주암IC로 나와 광주 주암 방면 우회전

대중교통편을 이용할 경우 연계 버스 시간이 맞질 않아 당일 산행은 불가능하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주암(송광사)IC~광주 주암 우회전~광주 동복~운알터널~화순군 동복면~광주 동복~동복터널~벌교 보성 좌회전~동복 벌교~벌교~화순 동복중 입구~보성 벌교 좌회전(굴다리 지나자마자)~15번 국도~유마사 좌회전~모후산 주차장(유마사 관광안내소).

 

한반도 최남단 땅끝기맥 종착지 암봉
'남도의 금강산' 산 전체가 수석전시장
   
 
해남 달마산(達摩山·481m)은 생김새가 참으로 독특하다.
산으로 접근하기 위한 도로변 먼 발치에서도 그렇고 책상머리에 앉아 개념도를 봐도 주능선이 일직선으로 길게 뻗어 있다. 그 길이가 무려 8㎞. 여기에 주능선 양쪽으로 짧고도 촘촘한 지능선이 바다를 향해 달린다. 영락없는 지네 형상이다.

돋보기를 들이대고 그 모양새를 좀 더 살펴보자.

흔히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은 능선 전체에 울퉁불퉁 솟아있는 기암괴석이 거대한 수석전시장을 연상시킨다.

암봉에서 만난 해남의 한 산꾼은 "조물주가 금강산 만물상 조성때 배치의 묘를 연습한 뒤 달마산에서 무르익은 기교를 맘껏 부리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과장이 엄청 섞인 코멘트였지만 그렇다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설명은 아닌 듯했다.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아름다운 사찰 미황사. 단청없는 대웅보전 잘 어울린다.

여기에다 달마산은 금강산이 보유하지 못한 환상적인 조망을 갖췄다. 산행 내내 발아래로 펼쳐지는 다도해의 풍광은 달마산이 왜 이토록 소리소문없이 산꾼들이 한번쯤 '가고픈 산행지'로 꼽히는지 잘 알려준다.

 사실 국토 최남단 해남땅을 대표하는 산은 대흥사를 품안에 안은 두륜산이지만 그 품새나 산행 재미는 달음산이 으뜸이라는 게 이곳 산꾼들의 귀띔이다.

두륜산은 대흥사를 중심으로 두륜봉 가련봉 노승봉 등의 암봉이 부채살 모양으로 퍼져 있어 어디로 오르든 원점회귀가 가능하지만 일직선으로 길게 뻗은 달마산은 그렇지 못하다. 달마산은 일자능선의 남쪽 중간지점에 위치한 미황사에서 올라 북진, 송촌마을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달마산은 땅끝기맥의 사실상 종착역. 백두대간이 남으로 뻗어 호남정맥으로 이어지다 월출산을 빚고 힘에 부쳐 잠시 낮게 흐른 뒤 강진 해남땅에서 다시 솟구친다. 땅끝기맥은 강진 덕룡산을 기점으로 남으로 주작산과 해남의 두륜산 달마산을 거쳐 땅끝마을 전망대가 위치한 해발 122m의 사자봉에서 그 소임을 다하고 바다로 뛰어드는 산줄기이다. 땅끝마을이 한반도 최남단의 육지라면 달마산은 사실상 산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한 사자봉을 제외한 한반도 최남단 끄트머리에 위치한 봉우리인셈이다.

산행 초입에서 내려다본 미황사.
고도를 좀 더 높인 지점에서 바라본 미황사와 다도해의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산행은 미황사 주차장~주능선(문바위)~문바위재~정상(불썬봉)~바람재~임도~달마산 산행도~송촌마을 순. 4시간 정도 걸린다.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능선에 올라 북쪽(왼쪽)으로 계속 직진만 하면 되니까.

 산행에 앞서 미황사에서 달마산을 먼저 감상하자. 단청을 하지 않아 한결 운치있어 보이는 대웅전과 기기묘묘한 바위능선과의 조화는 정녕 한 폭의 동양화에 비길 만하다. 대웅전 가는 길에 만나는 동백나무 숲도 일품이다. 고창 선운사의 동백과 비교해도 전혀 뒤질게 없지만 꽃송이가 약간 적다는게 흠이라면 흠.
  
산행은 대웅전에서 다시 내려와 주차장에서 절로 향하는 곡각지점에 '등산로, 부도암'이라 적힌 팻말을 보고 시작한다. 행여나 곡각지점을 지나 동백나무 숲 아래에 적힌 '등산로' 이정표를 보고 길을 잡는 일은 없도록 하자. 물론 이 길도 달마산으로 가지만 몹시 험하다는 것이 지역 산꾼들의 설명.

산행 내내 이같은 기암괴석을 넘거나 에돌러 가야 한다.

허리를 숙이고 일명 개구멍을 통과하는 것도 여러 차례다.

          
           달마산 주능선 바라본 기암괴석의 위용. 저 멀리 뾰족 튀어나온 부분이 상봉인 불썬봉에
              위치한 봉수대이다.
 
달마산 정상 불썬봉. 전라도 사투리로 불을 켰던(썼던) 봉으로, 과거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해온다. 조망 또한 압권이다. 발아래 미황사가 미니어처처럼 보이고 저 멀리 다도해의 물결이 출렁이는 듯하다.

나무다리를 건너 숲으로 향한다. 핏빛 꽃봉오리가 길가에 널려있다. 지는 모습이 필 때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난다. 숲을 빠져나와 길을 건너 다시 숲으로 오른다. 역시 '등산로' 이정표가 걸려있다.

오르막길이지만 산죽과 억새 낙엽 동백 나무넝쿨이 적당히 조화를 이뤄 정감이 가는 숲길이다. 25분쯤 뒤 얼핏 40m쯤 되는 암봉 밑에 다다른다. 위험한 만큼 등로에 밧줄이 쳐져 있다. 동시에 나목 사이로 다도해가 펼쳐진다.

이제부터 서서히 고행의 길. 바위를 타고 오르거나 코가 땅에 닿을 만큼 가파른 길이 기다린다. 마침내 주능선. 문바위다. 들머리에서 40분 거리. 문바위라는 명칭은 양쪽 거대 암봉이 커다란 석문처럼 서있는데서 붙여진 것으로 짐작된다.

왼쪽은 상봉인 불썬봉, 오른쪽은 도솔봉, 큰금샘 방향. 왼쪽으로 간다. 눈앞에 암봉이 가로막고 있어 뒤로 에돌아간다. 늘 그러하듯 암봉을 살짝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급경사 내리막길이 바닥 끝가지 이어진다. 밧줄도 타고 철계단도 내려선다.

산행 중 만난 지역 산꾼은 "조물주가 금강산 만물상 조성때 배치의 묘를 연습한 뒤 달마산에서 무르익은 기교를 맘껏 부리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과장이 엄청 섞인 코멘트였지만 그렇다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설명은 아닌 듯했다.

오르막길도 험하기는 마찬가지. 허리를 숙이고 일명 개구멍을 통과하는 것도 여러 차례. 정신없이 밧줄을 타고 내려서면 문바위재.

이렇게 크고 작은 암봉을 오르내리면 돌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상봉인 불썬봉이다. 전라도 사투리로 불을 켰던(썼던) 봉으로, 과거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해온다. 조망 또한 압권이다. 발아래 미황사가 미니어처처럼 보이고 저 멀리 다도해의 물결이 출렁이는 듯하다.

정면 북쪽으로 노승봉 고계봉 등 두륜산 암봉들이, 뒤로 고개를 돌리면 송신탑이 서있는 도솔봉이, 강진만 바다 건너 우측 동쪽으론 완도의 상황봉과 백운봉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지는 길은 마른 억새와 산죽이 쭉 기다린다. 기암괴석은 여전하지만 능선길 옆 장식용으로 그 위용을 뽐낼 뿐 가로막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암봉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한 두번 정도는 길을 막아 에돌아야 한다. 길 옆에는 또 한 번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바위들이 도열해 있다. 뾰족, 네모, 세모, 포갠바위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바위 형태를 볼 수 있다.

이제부터 길은 일사천리. 좁은 산죽길과 오솔길을 지나면 바람재. 이곳을 통과하면 이번 산행 중 처음으로 고민해야 할 갈림길을 만난다. 직진한다. 사실 취재팀은 왼쪽으로 가다 길이 심상치 않아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이후 하산하면서 산에서 내려오는 길을 발견, 결국 발길을 돌린 왼쪽 길이 맞았음을 뒤늦게 확인했다.

갈림길에서 5분 뒤 임도. 지도상의 작은 딱골재다. 20여분 뒤 달마산 안내도가 서있는 우측 숲길로 간다. 작은 개울을 건너 한적한 오솔길을 잠시 걸으면 다시 달마산 안내도. 여기서 송촌마을 버스정류장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임도에서는 55분 소요된다.

달마산을 벗어나 도로에서 본 달마산.

# 떠나기전에 - 아름다운 사찰 미황사, 동·서 부도전 등 볼 것 많아
 
미황사는 지금 동백이 한창이다. 숲의 전체 규모는 고창 선운사의 그것과 비할 바가 못되지만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크기는 비슷하다. 천연기념물인 선운사의 동백숲은 철제 펜스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지만 미황사 동백숲은 출입제한이 없어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다.

미황사에서 놓쳐선 안될 곳은 동·서 부도전. 물고기 게 문어 거북이 등 다른 부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주차장에서 15분 정도 걸린다. 동부도전과 서부도전은 50m 정도 떨어져 있다.

원래 달마산 산행은 남쪽 끝단인 도솔봉에서 송촌마을로 가는 7시간 이상 걸리는 종주코스가 있다. 하지만 부산서 아침 일찍 출발해도 당일치기는 사실상 힘들다. 해가 긴 여름에는 가능할 것 같다.

# 교통편- 남해고속도로 순천IC로 나와야

부산서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순천IC~여수 벌교 17번 국도~지하도~2번 17번 국도 벌교 여수~2번 국도 벌교 낙안민속마을~순천 청암대학에서 좌회전~벌교~보성~장흥~완도 해남 강진~해남읍~13번 국도 타고 완도 방향~미황사 순. 해남읍에서 약 35분 걸린다.

날머리 송촌마을에서 미황사 주차장까지는 대략 5㎞.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현산 월송택시 (061)536(537)-1888. 

 

 도립공원인 팔영산(八影山·609m)은 전남 고흥군 고흥반도의 최고봉이다. 이름에서 짐작이 가듯 여덟 개의 암봉과 주봉인 깃대봉이 작은 병풍처럼 나란히 이어져 있다. 그래서 팔영산은 암릉 종주산행의 고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험준하고 변화무쌍한 기암괴석이 산행 내내 기다리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이런 산세는 전북 진안의 구봉산(九峯山·1002m)과 곧잘 비교된다. 아홉 개의 암봉과 주봉인 천황봉으로 구성된 구봉산이 큰 덩치에 비해 비교적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운 반면, 팔영산은 해발고도는 낮지만 구봉산에 비해 봉우리가 힘차고 매서워 흔히 남성에 비유된다.

주봉인 깃대봉에서 바라본 팔영산(八影山) 암봉. 이름이 말해주듯 다도해를 향해 길게 드리워진 8개의 선명한 그림자가 아주 인상적이다.

그렇다고 초보 산행자들이 감히 범접하지 못할 그런 산은 결코 아니다.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는데다 위험한 지점에선 쇠밧줄이나 쇠발판 쇠손잡이 등 안전시설물이 친절하게 산행을 돕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팔영산이 특히 돋보이는 점은 산행 내내 아름답고 환상적인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는 것. 짜릿하면서도 넉넉한 산의 정감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의 광활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산 그 점이 바로 팔영산의 매력이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산 이름에 왜 그림자 영(影)자가 들어가 있을까. 산의 그림자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기에….

자료에 따르면 이 산의 그림자가 한양까지 드리워져서, 또는 중국 위왕의 세숫대야에 비친 그림자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그렇게 불리게 됐다고 전해온다. 그야말로 설에 불과한 `믿거나 말거나'다.
정답으로 추정되는 그 모습이 산행 말미 예상치 않은 지점에서 잡혔다. 여덟 개의 암봉은 그침없이 이어져 있지만 주봉인 깃대봉은 마지막 8봉인 적취봉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때쯤이면 산행 말미로 해가 뉘엿뉘엿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깃대봉에 닿은 산행팀은 다도해를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방금 지나온 8개의 봉우리로 이어진다.

일순간 바다를 향해 길게 드리워진 8개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아 바로 이거야'. 동시에 터져 나온 탄성이었다.
산이 바다를 그리워해 매일매일 그림자로 다가가는 것일까. 해서, 바다로 가고자 했던 산의 꿈을 조금이라도 달래려고 이름을 팔영산으로 지은 것일까.

산행은 능가사~팔영교~부도밭~흔들바위~주능선~1봉…6봉~통천문~7봉~8봉~헬기장~깃대봉~임도~삼거리~팔영장가든~능가사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4시간30분 정도.


주차장에서 20m 정도 떨어진 천년고찰 능가사는 한때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의 4대 사찰로 꼽혔지만 임진왜란때 대부분 불타버려 지금은 썰렁한 편. 하지만 고찰에서 느껴지는 옛 향기만은 아직도 남아 있다. 경내에서 저 멀리 보이는 팔영산의 모습 또한 일품이다.
능가사 왼쪽 길로 방향을 잡는다. 5분이면 두 갈래 길. 왼쪽 1봉, 오른쪽 8봉 방향. 왼쪽으로 간다.

봄기운이 완연하다.
길은 소문대로 돌길. 계곡은 물이 말라 있다. 30분쯤 올라가면 흔들바위. 꼼짝도 않는다. 그래서 마당바위라고도 불리는 걸까. 10분 더 오르면 주능선. 묘지가 있고 대개 여기서 처음 쉰다.

꼼짝도 하지 않는 흔들바위.

시원하게 펼쳐지는 다도해.


쇠줄이 매달린 험한 암봉 아래에선 이처럼 나무지팡이가 무용지물로 변해버린다.

시종 일관 암봉을 오르내리는 산꾼들.


이제 본격 암봉 등정. 5분 뒤 1봉 앞 갈림길. 이정표가 재미있다. `왼쪽 암벽등반(아주 위험), 오른쪽 노약자 어린이 우회'. 능력껏 오르자는 말인 듯하다. 왼쪽길은 사실 위험하다. 쇠밧줄을 탄 후 낭떠러지 절벽길을 걸어야 한다. 대신 푸르디 푸른 다도해의 전경을 먼저 조망할 수 있다. 가장 힘든 1봉만 무사히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 구봉산과는 달리 봉우리마다 고흥군에서 조그만 정상석을 세워놓아 일일이 확인하며 오르면 재미 또한 쏠쏠하다. 봉우리에서 다른 봉우리로 옮기는 시간은 짧게는 5~6분, 길게는 25~30분 정도. 감탄하랴 사진에 담으랴, 그래서 팔영산의 산행시간은 `고무줄'이라고 불린다.
           8개의 암봉을 지나 주봉인 깃대봉 가는 길에도 험한 암릉길이 기다린다.

           6봉과 7봉 사이에 위치한 통천문.

6봉 두류봉에 서면 반드시 주변을 둘러보라. 뒤돌아보면 지금까지 넘었던 1~5봉과 남해바다를 한번에 볼 수 있고, 정면에는 앞으로 넘을 7, 8봉과 주봉인 깃대봉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왼쪽 발밑에는 팔영산 자연휴양림이 손에 잡힐 듯하다.
6봉에서 7봉까지 가는 도중엔 호젓한 산길도 맛볼 수 있으며, 바위로 이뤄진 문인 통천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7봉에 닿을 수 있다.

8봉은 약간 멀어 7봉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주봉을 제외한 마지막 봉우리라서 그런 것일까. 쉽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여섯 개의 조그만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이제 주봉인 깃대봉까지는 300m. 고령 신씨묘와 잇단 헬기장을 지나면 갈림길. 전봇대를 따라 오른쪽으로 간다. 깃대봉은 육산이다. 구봉산의 주봉인 천황봉도 육산이어서 두 산은 공통점이 아주 많다. 깃대봉에서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경찰 무전기지국.

능가사 부도밭.

능가사 대웅전.


깃대봉의 볼거리는 역시 갈무리 조망. 바다를 향한 8개 봉우리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분위기는 그로테스크하다. 하산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 8봉 바로 아래 갈림길에서 내려선다. `탑재 1.2㎞, 능가사 2.3㎞'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갈림길을 도중에 수 차례 만나기 때문에 반드시 확인하자. 인공으로 조림한 듯 전나무숲이 시원하다. 20분 뒤 임도를 가로지르면 이내 삼거리. 지도 상의 탑재다. 우측 능가사쪽 길을 택하면 45분 뒤 들머리 능가사에 도착한다.

#초행산꾼 안내하는 흰둥이 "그놈~영물일세"

초행 산꾼들을 안내하는 팔영산 명물 흰둥이. 쉴 때도 산꾼들 앞에 다소곳이 서 있다. 
임무를 완수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흰둥이.
 
유홍준 교수는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에서 강진 월출산 동남쪽 자락에 위치한 무위사를 소개하면서 ‘변함없는 것은 오직 무위사의 늙은 개 누렁이뿐’이라고 적고 있다. 능력있는(?) 스님이 들어와 새로 불사를 하면서 고색창연한 옛 것들이 사라진데 대한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송아지 만한 그 누렁이는 답사객이 와도 꿈쩍도 하지 않고 양지 바른 벽쪽에 길게 엎드려 고개를 앞발에 푹 묻고는 눈꺼풀만 잠시 들었다가 이내 감아버린다.
일반적으로 답사나 산행을 하면서 덤으로 갖게 되는 기쁨이 바로 이처럼 그 곳의 명물이 돼버린 짐승 등을 것. 흔히 개가 가장 보편적이다.
이번 팔영산 산행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굴이 역삼각형이고 꼬리가 등쪽으로 말려 올라가 있어 진돗개로 추정되는 이 흰둥이(사진)를 처음 본 곳은 산행 들머리인 능가사 입구.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지만 7~8분 지나면서 이 개가 우리를 안내하고 있지 않은가.

산행팀이 도중에 멈춰 산세를 얘기하고 있으면 흰둥이도 앞서 기다리고, 다시 출발하면 그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그러다 말겠지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제법 경사진 곳을 오를 때도 역시 같은 간격으로 앞서 가고 있다. 50분쯤 지나 주능선에 올라 휴식을 취할 땐 다가와 바로 옆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먹을 것을 줬지만 그것만 받아 먹을 뿐 여느 개처럼 더 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비범함 그 자체였다. 너무 오래 쉬니까 산행을 계속 하자고 몸짓을 보낸다.

뒤늦게 올라온 한 산꾼이 “이 개가 이젠 다른 팀을 안내하고 있네”라고 말한다. 알고 보니 그는 팔영산의 안내자였다.

다시 산길을 재촉, 개가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쇠줄이 걸려 있는 암봉에 다다르자 그 흰둥이는 임무를 완성한 듯 아쉬움을 표하며 재빨리 내려갔다.하산 후 능가사 주변을 둘러보며 흰둥이를 찾았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또 다른 팀을 안내하러 산으로 올라 갔을까.

#교통편 - 서두르면 부산서 당일치기 가능

이른 아침 출발하면 부산서도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순천IC~여수 벌교 17번 국도~지하도~2번 국도 벌교 낙안민속마을~2번 국도 고흥 보성~15번 국도 고흥~15, 27번 국도 소록도 나로도 고흥~고흥~팔영산 도립공원~능가사 순.

산행후 시간이 허락된다면 능가사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녹동선착장을 찾아보자. 세발낚지를 맘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항구를 따라 난전이 쭉 펼쳐져 있다. 가격도 아주 싸다.
이곳 어민들은 “사실 녹동에서 이른 새벽 위판되는 세발낚지가 목포로 곧바로 운반돼 그 유명한 목포 세발낚지로 변신한다”고 살짝 말했다.

녹동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0분 거리엔 소록도가 있다. 오래전엔 한센병(나병) 환자와 병원 직원들만의 섬이었으나 지금은 아름다운 경관이 알려지면서 일반인들도 많이 찾는다. 최근에는 소록도로 가는 다리가 완공돼 쉽게 오갈 수 있다.

녹동항의 세발낚지.

고흥 녹동항.






무등산(無等山·1187m). 높이를 헤아릴 수 없고 견줄 만한 상대가 없어 붙여진 이름이지만 산세는 산꾼들을 압도할 만큼 위압적이지 않고 둥그스름하다.

광주시민들은 언제나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무등에 의지해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다. 신년 해맞이도, 눈꽃여행도 여기서 하고 하늘에 대한 제사도 이곳 무등산에서 모신다. 빛고을 예향의 예술품도 대부분 이곳에서 잉태된다. 무등의 품 안에선 미추(美醜)와 빈부에 관계없이 늘 평등하다.

서석대와 함께 무등산 최고의 눈꽃 포인트인 입석대의 황홀한 설경. 문화재청은 지난 2005년 12월 서석대와 입석대를 묶어 무등산 주상절리대를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했다.

입석대의 멋진 풍광을 화면에 담으려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

무등산 입석대 설경.
서석대의 설경.

무등에서 느낀 광주시민들의 애착은 금정에 대한 부산사람들의 그것보다 넓고 깊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그 사랑을 실천으로 옮겼다. 천년만년 후손에게 있는 그대로 물려주기 위해 지난 89년 공원관리사무소를 설립, 인근 화순 담양에까지 걸쳐 있는 무등산을 통합, 관리하고 있다. 입만 열면 ‘금정산 보호'를 외치며 예산타령만 일삼는 부산시의 구두선이 하염없이 애처로워지는 대목이다. 동시에 “문제는 실천의지"라는 무등산관리사무소 한 관계자의 정문일침과도 같은 한마디가 아주 무겁게 다가왔다.

아쉬운 점도 있다. 호남의 들판과 능선이 한눈에 펼쳐지는 요충지이다보니 오래전부터 방송 중계탑과 군부대에 점령당해 신음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산의 정기가 빠져 나갔을까. 부산으로 치자면 황령산의 중계탑과 장산의 군부대가 모두 무등산에 모여 있다고 보면 된다.

올 겨울 무등산엔 벌써 눈꽃이 만발했다. 지난 4, 5일 이틀에 걸쳐 30㎝라는 어마어마한 폭설이 내렸다. 기상관측 이후 세 번째란다.
농민들에겐 억장이 무너지는 악몽이지만 산꾼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순백의 바탕 위에 그려진 설경은 정말 다른 무엇과 견줄 데가 없는 ‘무등(無等)' 그 자체였다.

부드러운 산사면의 광활한 억새밭이 설화(雪花)로 변신했고 수정기둥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무등의 자랑이자 전국 최대 규모의 주상절리대인 입석대와 서석대에선 ‘아!'라는 외마디 감탄사만 신음소리처럼 새어나올 뿐이었다.
산행은 주차장~증심사 집단시설지구~증심교 갈림길~구름다리~무등산 춘설차밭(쉼터)~토끼등~동화사터 갈림길~하동 정씨묘~덕산너덜~동화사터(샘터)~능선갈림길~방송국 송신소(중계탑)~중봉(복원지 안내도)~억새군락지~군작전도로~장불재~입석대~서석대~입석대~장불재~용추삼거리~중머리재~산불초소(서인봉)~새인봉 삼거리~약사사~증심사 입구~의재미술관~증심교~주차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40분 안팎. 이정표가 너무 친절하게 돼 있어 길 찾기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주차장에서 상가가 밀집한 집단시설지구와 증심교를 지나면 갈림길. 오른쪽 중머리재 새인봉, 왼쪽은 토끼등 바람재 방향. 산행팀은 오를 때 바짝 땀흘리고 편안하게 하산하기 위해 왼쪽으로 향한다. 50m 쯤 올라 우측 구름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돌계단. 17분 정도 힘겹게 오르면 쉼터. 등로 우측 산사면 전체가 온통 춘설이라 불리는 작설차밭이다. 차밭 아래에는 증심사다. 다시 여기서 17분쯤 오르면 토끼등. 너른 터로 금정산 북문광장 같은 분위기다.

춘설이라 불리는 작설차밭. 차밭 아래에는 증심사가 위치해 있다.

정면 덕산너덜을 지나 동화사터로 오르기 위해 직진한다. 5m쯤 뒤 갈림길. 오른쪽은 천제단 중머리재 방향, 산행팀은 왼쪽으로 간다. 하동 정씨묘를 지나 동화사터까진 오로지 급경사 된비알. 낙엽과 산죽이 교차하는 비교적 한가한 길이다. 시야가 트이는 너덜에서 잠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방금 온 토끼등과 저 멀리 월드컵경기장도 보인다.

마침내 샘터. 그 옆의 너른 터가 동화사터다. 토끼등에서 대략 30분. 이어 만나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간다. 이 때부터 무등의 자랑 억새군락지가 새하얗게 펼쳐지고 정면 중봉과 저 멀리 그 유명한 서석대가 마루금 위에 뾰족한 윤곽만 보인다. 방송국 중계탑 방향으로 20분 뒤 갈림길. 오른쪽 용추삼거리 대신 왼쪽 오르막길로 간다. 5분 뒤 방송중계탑. 왼쪽 전망터를 돌아 중계탑과 연결된 임도를 따른다.

헬기장을 지나면 중봉(915m). 이곳에 서면 지난 98년까지 군부대였음을 보여주는 ‘군부대 이전지 복원' 안내판이 서 있고 서석대와 그전까지 안보이던 입석대가 손에 잡힌다. 환상적이다. 네시간 달려온 고생길이 이 설경에 눈녹듯 사라진다.

과거 군부대였던 곳을 이전해 복원했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을 보고 크게 본 전경.


지난 1996년까지 군부대여서 출입이 통제되었던 중봉을 내려와 억새탐승로를 따라 장불재로 향하는 산행팀.

광주와 화순의 경계지점인 장불재(900m).

장불재에서 입석대와 서석대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오르내리는 산꾼들.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무등산 주봉이 천왕봉(1187m)이다.

          도중 만나는 주상절리대의 기암괴석.

 억새길을 따라 5분쯤 걸으면 군작전도로. 광주와 화순의 경계로 해발 900m의 고갯길인 장불재는 여기서 우측으로 700m  떨어져 있다. 쉼터인 장불재가 무등의 3대 절경인 서석대 입석대 (규봉)광석대로 이어지는 교차로이다. 우측 건너편의 말잔등처럼 부드러운 백마능선도 하얀 눈을 이고 있다. 서석대 입석대는 여기서 각각 900, 400m에 불과하지만 광석대는 무려 1.8㎞ 거리를 다녀와야 한다.

‘산불조심'이라 적힌 깃발 옆으로 열린 억새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입석대(1017m). 서석대와 함께 무등산 최고의 눈꽃 포인트다. 깎아놓은 듯한 높이 10~15m의 돌기둥 30여 개가 40m 이상 돌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중생대 백악기 화산분출로 인해 용암이 냉각, 수축되면서 균열을 동반해 그 모습이 얼핏 무너진 신전을 빼닮았다. 머리에 인 눈꽃은 알알이 작고 유난히 반짝거린다. 여기서 500m 더 올라가면 같은 성인(成因)의 서석대(1100m). 차이라면 입석대는 한눈에 그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지만 서석대는 그 위에 발을 딛고 있기에 사실 끄트머리에 서야 그 장대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불과 500m 남짓한 주봉인 천왕봉이 철조망으로 차단돼 있는 점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군부대가 주둔, 철조망으로 차단돼 있는 무등산 주봉 천왕봉.

다시 장불재로 내려와 중머리재로 향한다. 느긋한 하산길이다. 용추삼거리를 지나 30분이면 닿는다. 스님 머리에 비유돼 명명된 중머리재는 문자 그대로 밋밋한 고개. 직진한다. 5분 뒤 서인봉. 산불초소가 위치한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20분 뒤 새인봉 삼거리. 애오라지 산길만을 고집한다면 직진해 정상이 임금님 옥새처럼 생겼다는 새인봉(璽印峰·490m)을 지나 하산해도 되고, 약사사와 증심사 그리고 남농과 함께 호남의 양대 작가였던 의재 허백련 미술관을 구경하려면 우측길로 내려서면 된다. 산행팀은 후자를 택했다. 새인봉 삼거리에서 주차장까진 대략 45분 걸리지만 절과 미술관을 모두 둘러보려면 이보다 시간을 더 잡아야 한다.

# 떠나기전에 - 중계탑·군부대가 명산 '시샘'

무등산도 알고 보니 최근에야 산길이 완전히 열렸다. 호남 내륙의 고봉이다 보니 오랫동안 군인들의 차지였다. 지난 81년에야 입석대와 서석대로 향하는 장불재의 통행이 허가됐고, 그로부터 9년 뒤인 90년 무등산의 자랑 입석대와 서석대가 개방됐다. 중봉은 99년에야 길이 열려 최근에야 식생복원을 거의 마쳤다.

그러고 보면 부산의 금정산은 그동안 막힌 길도 없었고, 거기다 방송 중계탑이나 군부대가 없는 그야말로 등산하기에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지금까지는 금정 북 동래 부산진구 등 4개 구청이 제각기 관리하고 있지만 만일 통합관리가 이뤄져 체계적으로 보존되면 무등산보다 훨씬 명산의 조건은 떼논 당상일 것으로 확신한다. 총 면적 또한 23㎢로 30㎢의 무등산보다 좁다.

불가항력적이라고 여겨지는 무등산의 방송국 중계탑이나 군부대 이전보다는 금정산의 통합관리시스템 구축이 비록 '오십보 백보'지만 그래도 앞서서 실행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등산공원관리사무소는 현재 증심사 집단시설지구 이전 사업을 오는 2008년까지 500억원을 들여 추진중이다. 또 하나의 집단시설지구인 원효사 지구는 이미 마쳤다.

이와 관련 공원관리사무소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도립공원에 비하면 아주 늦었어요."
부산의 금정산은 언제 이런 날이 올까.

# 교통편 - 광주 옛 도청서 15, 555번 버스를

광주 가는 방법은 두 가지.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선 오전 6시 첫 차를 시작으로 20~3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3시간40분 걸린다. 요금은 일반 1만3800, 우등 2만400원. 서부버스터미널에선 오전 6시10분, 6시40분, 8시, 8시40분에 있다. 3시간 걸리고 1만4300원.

광주는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함께 운행하는 종합버스터미널. 무등산 증심사로 가기 위해선 터미널에서 17, 117, 1000번 버스를 타고 옛 도청 앞에서 내린 후 거기서 다시 15, 555번 버스를 타면 된다.

부산 가는 방법 또한 두 가지. 노포동행 버스는 오후 20~3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오후 7시, 7시30분, 9시(막차)에 있다. 심야버스(2만2400원)는 밤 10시30, 자정에 출발한다. 사상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10분, 5시, 5시40분, 6시30분, 8시(막차) 밤 10시(심야 1만5700원)에 있다. ※대중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달라질 수 있습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동광주TG~동광주IC~제2순환도로~무등산 보성 화순 방향 직진~(두암 무등산 이정표 무시하고)~장원교 지나~증심사 2.4㎞~산수터널~증심사 학운교차로~증심사 좌회전~주차장 순으로 가면 된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산행대장 = 이창우 www.yahoe.co.kr



 

억새명산으로 널리 알려진 장흥 천관산
알고보니 산 전체가 오묘한 수석전시관

전남 장흥 천관산(天冠山·723m)은 웬만한 산꾼이라면 벌써 다녀왔거나 아니면 한 번쯤 가봤으면 하는, 그래서 추후 등반계획에 반드시 포함돼 있는 꽤 이름있는 산이다.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인 천관산은 기암괴석으로 대표된다. 상상도 못할 만큼 오묘한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지만 한편으론 천재 조각가들의 작품을 산 전체에 골고루 진열해놓은 것 같기도 하다. 혼자 보기 아까운 기암과 괴석은 누가 언제 어떻게 옮겨 놨을까 하는 괜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든다.


                   양근암(남근)과 마주보고 있는 금수굴(여근). 대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놀라움을 금을 길이 없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천관사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오똑한 것, 숙인 것, 우묵한 것, 입벌린 것, 울퉁불퉁한 것 등 기이한 암석이 많다’는 대목은 이를 잘 대변해주고도 남는다. 천관산은 수십개 봉우리의 솟은 모습이 마치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을 닮아 붙여진 이름.

가끔 흰 연기 같은 이상한 기운이 서린다 하여 신산(神山)이라고도 불린다.
도립공원인 천관산은 흔히 이웃 영암의 월출산에 비유된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잇딴 암봉과 산행 도중 만나는 광활한 억새밭의 화려한 장관이 이 두 산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차이점이라면 기암괴석의 덩치와 억새밭의 규모.

예쁘고 날씬한 몸매지만 키가 작아 미스 코리아에 선발되지 못하는 ‘아담 사이즈’의 수줍은 숙녀를 천관산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기암괴석 이외에도 천관산은 억새군락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천관산 옹호론자들은 월출산의 기암들은 크고 웅장한 멋은 있지만 산세가 험해 원하는 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하기 어려운 반면 천관산은 멀리서 또는 가까이에서 맘껏 돌아보며 탐승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한가지. 산행 도중이나 정상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막힘없는 조망 또한 천관산의 자랑이다.

산행 중 볼 수 있는 다도해의 막힘없는 조망 또한 천관산의 자랑이다.

산행은 도립공원 관리사무소~양근암~정원암~주봉 연대봉~억새밭~대장봉(환희대)~구룡봉~환희대~천주봉~대세봉~노승봉~종봉~금강굴~체육공원~장천재~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순. 4시간~4시간30분 걸린다.


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앞 등산안내도와 육각정자 영월정 사이의 계단을 오르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곧 등산로 이정표가 나온다. 왼쪽은 양근암 경유 연대봉(제1코스), 오른쪽은 금수굴 경유 연대봉(2코스)과 금강굴 경유 연대봉(3코스). 어느 쪽으로 올라도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산행팀은 1코스로 올라 3코스로 하산하는 길을 택했다. 1코스로 올라야 제대로 기암괴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 힘들지 않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처음엔 소문과 달리 육산이지만 20분쯤 지나면 점차 바위들이 본색을 드러낸다. 이때부터 바위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오르고, 넘고, 에돌고 그리고 감상하고….  

‘연대봉 2.2㎞’ 이정표를 지나면서 이번 산행길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저멀리 왼쪽 능선을 타고 시계방향으로 돌아 오른쪽 기암괴석을 감상하면서 하산한다. 왼쪽에는 다도해의 푸른 물결이 출렁이고 염전도 보인다.

각양각색의 바위군이 발걸음을 잡는다. 가만히 서서 이름을 붙여본다. 식빵바위, 등잔바위, 고래가족바위 등등. 흡사 돌아보기 좋게 큐레이터가 전시해 놓은 것 같은 모양새다.

정면에 주봉인 연대봉이 살짝 고개를 내밀 무렵 눈앞에 남성의 성기를 빼닮은 양근암이 서있다. 어쩜 이리도 닮았을까. 양근암 앞 능선엔 여성의 성기를 닮은 금수굴이 마주보고 있어 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10분 후엔 정원암. 모진 풍랑으로 인해 바닷가에 있어야 할 대형 수석같은 바위가 산속에 있어 신기롭기까지 하다.

          정원암. 이름의 기원은 알 수 없고 집 정원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산행팀은 이렇게 명명했다. 고래가족바위라고.

정원암을 지나면 이때부터 억새밭. 갑자기 다른 산에 온 느낌이다. 15분쯤 뒤 주봉인 연대봉. 연대봉에는 사실상 전망대 역할을 하는 봉화대가 있다. 고려 의종때인 1160년께 설치된 이후 연대봉 또는 봉수봉으로 불렸다.
         봉수대가 위치한 천관산 연대봉.

남쪽으론 완도의 신지 고금 약산도 등이 올망졸망 떠있고, 동쪽엔 고흥의 팔영산이, 서쪽엔 두륜산이, 북쪽엔 월출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맑은 날엔 멀리 한라산과 담양의 추월산, 속리산 문장대도 보인단다.

정상을 지나 하산길에 다양한 형태의 기암괴석들이 능선 좌우에 널부러져 있다. 
   
 하산은 환희대 방향. 시든 억새가 바람에 휘날리는 가운데 헬기장을 지난다. 오른쪽 멀리 제석산 사지봉과 일임산이 보이며 정면에는 천관산의 자랑인 기암괴석이 가까이 다가온다. 10분쯤 뒤 대장봉의 정상인 환희대. 이곳에 오르면 누구나 성취감과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대부분 이곳에서 활짝 웃으며 기념촬영을 한다.
대장봉의 정상인 환희대. 이곳에 오르면 누구나 성취감과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역시 이렇게 명명했다. 의자바위.

바위 꼭대기에서 아홉마리의 용이 노닐었다는 구룡봉은 이곳에서 15분 거리. 도중에 부부처럼 정답게 서있는 부부봉, 관세음보살이 불경을 실었던 돌배의 돛대를 닮았다는 진죽봉이 옆능선으로 펼쳐진다.
천관산 환희대에서 구룡봉으로 가는 도중 만나게 되는 기암괴석. 제일 왼쪽 암봉이 관세음보살이 불경을 실었던 돌배의 돛대를 의미하는 진죽봉이다.
구룡봉 아래 서있는 아육왕탑.

구룡봉에는 금정산 금샘과 같은 웅덩이가 수십 개 있고 일부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발밑에는 인도의 아육왕이 신병(神兵)으로 하여금 하룻밤 사이에 인도와 우리 나라에 탑을 쌓게 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아육왕탑도 보인다.


 되돌아와 환희대를 거쳐 본격 하산길로 내려가며 각양각색의 기암을 감상하자.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천주봉(天柱峯)과 대세봉, 노승의 인자한 얼굴을 연상시키는 노승봉을 지난다. 종봉(鐘峯) 바로 밑 샘터가 있는 금강굴에 닿으면 산행은 거의 막바지.

20여분 뒤 체육공원과 장천재(長川齋)에 잇따라 닿고 여기서 2~3분이면 들머리였던 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장천재는 조선 후기 실학자 존재 위백규 선생을 위시한 장흥 위씨의 문중 사우(祠宇). 주변엔 600년된 소나무와 절정인 단풍나무, 때이른 동백꽃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 떠나기 전에

천관산은 전남 장흥군의 진산이다.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 장군이 전국의 명산을 찾아 다니며 산신께 기도를 올리며 조선을 세우는데 허락을 얻었다 한다. 그런데 유독 천관산과 지리산만 반대를 하자 정권을 잡은 이성계가 고흥군으로 지명을 바꿔 산을 유배 보냈다는 것이다. 그만큼 천관산은 하늘을 찌를듯이 불쑥 솟아 오른 암탑의 기개가 도도하고 거침없다.

천풍산(天風山) 지제산(支提山) 불두산(佛頭山) 우두산(牛頭山)으로도 불리는 천관산의 현재 이름은 그 모습이 천자의 면류관과 같다하여 붙여졌다.

지난 1988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천관산은 신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을 사랑한 기생 천관녀가 숨어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한때 천관산은 수림의 바다였다. 고려시대때 원나라가 일본을 침략하기 위해 천관산의 나무를 잘라 900여척의 배를 건조하였다는 조선장(造船場) 터가 지금도 관산읍 죽창리에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천관산 정상부는 오묘한 기암괴석과 함께 억새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을 뿐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으로 변해 버렸다.

천관산의 산행은 서둘지 말자. 정교하게 쌓아 올린 예술품과도 같은 구룡봉 밑의 아육왕탑, 하늘을 향해 솟은 온갖 바위들의 이름과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전설을 생각하며 가급적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땀을 흠뻑 내기 위한 뜀박질 산행보다는 느긋하고 편안하게 즐기고 감상하는 산행을 하면 산의 진면모를 볼 수 있다.

# 교통편
천관산이 위치한 전남 장흥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부산 서부터미널(051-322-5433)에서 장흥행 시외버스를 탄다. 오전 6시30분을 첫 차로 하루 16차례 출발한다. 1만7천원. 장흥시외버스터미널에서 관산읍행 직행버스는 2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관산읍 관산중 앞에서 하차한다. 정류장에서 천관산 주차장까지 걸어서 25분 정도. 택시를 이용하면 기본 요금. 문의 장흥군청 문화공보실 (061)860-0227.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순천IC에서 나와 이정표 기준, 여수 벌교 17번 국도~2번 17번 국도 벌교 여수~2번 국도 벌교 낙안민속마을~순천 청암대학에서 좌회전~2번 국도 보성 벌교~2번 목포 장흥~장흥~천관산 39㎞~23번 관산 천관산~837번 지방도 관산~천관산 장천재 순으로 가면 된다.

※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산행대장 =
이창우

백제 천년 고찰 대원사 품은 전남 보성 천봉산 
까치봉 말봉산과 함께 걸으면 3시간30분 걸려
대원사 입구에서 출발, 100% 원점회귀 코스
정상에 서면 모후산 무등산 주암호 등 한눈에
전형적 육산…산행 내내 환상적 낙엽융단길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阿度和尙)은 신라 미추왕 때 신라땅, 지금의 경북 선산으로 들어와 이 고을 사람 모례(毛禮)의 집에 살면서 불법을 전파했다. 어느날 아도화상의 꿈속에 봉황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도! 사람들이 오늘밤 너를 죽이고자 칼을 들고 오는데 어찌 편안히 누워 있느냐. 어서 일어 나거라. 아도!"

봉황의 다급한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창밖에서 봉황이 날갯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도화상은 봉황의 인도를 받아 광주 무등산 봉황대까지 왔지만 그곳에서 봉황이 사라져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봉황의 인도로 목숨을 구한 아도화상은 석달 동안 봉황이 머문 곳을 찾아 호남의 산을 헤매다 마침내 하늘의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봉소형국(鳳巢形局)을 찾아낸 후 산 이름을 천봉산(千鳳山)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곤 산 아래 대원사를 창건했다'(삼국유사).

천봉산 대원사 초입에 위치한 등산로 들머리.

등산로에 진입해 뒤돌아본 들머리.

이번 주 산행지는 봉황의 보금자리로 불리는 전라남도 보성 천봉산(608m). 보성땅 북쪽의 맹주로 이웃한 화순과 순천땅의 경계에 우뚝 솟아 있다.

천봉산 대원사 가는 길은 입구부터 우선 색다르다. 구불구불하게 돌아가는 6㎞의 벚나무 터널길은 탯줄을 연상시킨다. 풍광의 미추에 무심한 장삼이사가 보더라도 한눈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입구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왕벚나무 터널'이란 표지석이 서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가 아닐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아침 햇살을 받아 포근하게 다가오는 이 길은 벚꽃이 없어도 벚나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풍수지리에 눈밝은 사람들은 보성의 천봉산 대원사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진입로인 벚꽃길을 탯줄, 절터를 어머니의 자궁, 절터를 감싸고 있는 천봉산을 모태라고.   
  
이를 실천한 이가 바로 지금의 주지 현장 스님이다. 스님은 지난 1990년 초반 30대의 젊은 나이에 주지로 부임했다. 한국전쟁 때 극락전만 남기고 모두 불타버려 사세가 급격히 기운 대원사를 스님은 절집이 앉은 텃자리에 착안, 낙태나 죽은 아기의 영혼인 태아령을 위한 기도도량으로 일대 변신을 꾀했다.

극락전 옆엔 태아를 안고 있는 태안지장보살상을 세웠고, 경내 곳곳에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낙태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빨간 모자를 쓴 동자승을 많이 모셔 놓았다.

산꾼들이 천봉산을 지리산 계룡산 한라산 모악산과 더불어 어머니 산신을 모신 여산신 도량이라고 하는 것도, 호남 풍수에 밝은 사람들이 광주 무등산의 기운을 받쳐주는 모산이 바로 천봉산이라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럼 천봉산의 산세는 어떨까. 바위 하나 없는 어머니의 품과 같이 넉넉한 전형적인 육산인 데다 조망 또한 빼어나 주암호와 무등산 그리고 호남정맥 산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지금까지 천봉산 대원사는 곡성 봉두산 태안사처럼 절집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절구경만으로 끝날 뿐 산행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천봉산은 아담해 산행 후 절구경도 충분히 가능하다.   
 
갑작스레 몰아닥친 강추위에 지레 겁먹지 말고 약간은 멀지만 상대적으로 따뜻한 천봉산으로 피한(避寒) 산행을 떠나보자. 산행팀은 이웃한 까치봉과 말봉산까지 보태 한 바퀴 돌았다.

산행은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대원사 주차장~삼거리봉~까치봉(572m)~마당재~말봉산(589m)~천봉산(612m·삼각점)~임도~산앙정(정자)~주차장 순의 100% 원점회귀 코스. 걷는 시간만 3시간30분. 우려와 달리 산길은 대체로 반듯해 초보자도 쉽게 다녀올 수 있다. 단 천봉산 정상 직전에서 하산길 찾기가 약간 애매모호하지만 이 점만 유의하면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오색 룽다가 펄럭이는 '티벳박물관'과 이국적인 하얀 불탑 수미광명탑이 훤히 보이는 대원사 주차장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보성군관광안내소 우측으로 보이는 '우리는 한 꽃'이란 현판이 걸린 일화문과 '천봉산 대원사'를 알리는 일주문을 잇따라 통과하면 이내 '천봉산 정상 6.5㎞'라 적힌 이정표를 만난다. 들머리다.

산죽밭 사이로 침목계단을 오르며 산행은 시작된다. 산행은 대원사를 중심으로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셈이다. 곧 이동전화 소형기지국을 지난다. 기지국 한 면에 누군가가 매직으로 '까치봉→말봉산→천봉산'이라고 친절하게 적어 놓았다.

 솔향기 그윽한 완만한 오름길로 시작되더니 어느새 산죽에 둘러싸인 끝물 단풍이 마지막 빛을 발하는 낙엽융단길이 이어진다. 급경사 오르막에선 수북이 쌓인 낙엽이 제법 미끄러워 체력소모가 심하다.

넉넉잡아 30분이면 돌탑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무명봉에 올라선다. 처음엔 까치봉인 줄 알았다. 정면 앙상한 가지 사이로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은 조계산이 보이는 등 사방이 온통 산의 물결이다.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정면으로 까치봉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이제 나무들은 다가올 추운 겨울 생존을 위해 자신의 혼이었던 잎을 다 떨구고 호젓한 산길에 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황홀한 낙엽융단길을 내려섰다 살짝 올라서면 까치봉. 누군가가 나무를 잘라 '까치봉'이라 적어 놓았다. 하지만 지형도와 능선으로 이어지는 주변 산세를 고려해볼 때 까치봉은 눈앞의 봉우리로 추정된다. 해서, 산행팀은 이곳을 삼거리봉으로 명명한다. 직진하면 화순땅 남면 방향, 산행팀은 좌로 내려선다. 이 길은 군경계로 왼쪽은 보성, 오른쪽은 화순땅이다. 진짜 까치봉은 5분 뒤 닿는다. 앞선 삼거리봉과 비교해도 실제로 더 높다. 하지만 스쳐가는 봉우리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으니 유의하길.

산행 내내 낙엽융단길이 이어진다.
    
이어지는 낙엽융단길. 이제부턴 오르내림의 연속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부담스러운 급경사길은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 좌측으론 향후 오를 천봉산과 말봉산이, 우측으론 모후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두 번째 무명봉을 지나면 그간 안 보이던 산죽과 유난히 수북이 쌓인 낙엽길을 만난다. 그 최저점이 이정표가 서 있는 보성 문덕면과 화순 남면을 오가던 고갯길인 마당재다. 좌측 사방댐(1.2㎞) 방향은 '티벳박물관' 쪽으로 보면 된다. 이제 천봉산은 3㎞ 남았다. 직진한다. 차츰 산길이 좌측으로 휜다. 동시에 좌측 발아래로 '티벳박물관'과 주차장, 정면으로 말봉산과 천봉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또다시 두 개의 무명봉을 살짝 넘으면 말봉산으로 오르기 직전 좌측으로 모든 것을 삼킬 듯한 태세로 입을 벌리고 있는 형국의 계곡이 시선을 붙잡는다. 그 뒤론 저 멀리 품넓은 조계산이 보인다.

잠시 후 말봉산에 올라선다. 마당재에서 30분. 앞선 삼거리봉과 마찬가지로 누군가 '말봉산'이라고 적어 놓았다. 좌측으로 '티벳박물관'이 보인다.

직진하며 내려선다. 아마도 올 겨울 산행팀이 처음 오른 듯 낙엽 밟는 소리가 유난히 청량감있게 다가온다. 내달려도 좋을 만큼 평편한 양지바른 산죽터널도 지난다. 말봉산에서 18분쯤 뒤 다시 한번 더 능선이 좌측으로 휘면서 쏟아진다. 안부에서 숨고르기를 한 후 키 큰 산죽터널로 올라선다. 도중 이정표도 지난다.

잠시 후 이정표가 서 있는 봉우리에 닿는다. '천봉산 300m, 왼쪽 정자(산앙정) 1.3㎞'라 적혀 있다. 산행팀은 정상을 다녀온 후 이곳에서 하산할 계획.

천봉산 정상에 서면 일망무제란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산의 물결이 펼쳐진다. 맨 좌측이 조계산, 가운데 주암호, 그 우측으로 호남정맥 산줄기가 보인다.

천봉산 정상에서 본,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고 있는 순천 조계산. 

삼각점이 있는 정상에 서면 일망무제란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사방팔방 산의 물결이 펼쳐진다. 북으로 까치봉 말봉산 너머로 무등산과 그 우측으로 화순 모후산이, 동쪽 주암호 뒤로 조계산과 그 우측 뒤로 호남정맥의 종착지인 광양 백운산과 암봉인 금전산 그리고 소설 '태백산맥'의 중심무대인, 군부대철탑이 보이는 존제산이 확인된다. 참고로 정상에서 계속 직진하면 검문소를 지나 만나는 아치교로 내려선다.

산행팀은 왔던 길로 내려가 이정표가 서 있는 봉우리로 내려선다. 문제는 하산길 찾기.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론 길이 보이질 않는다. 해서, 이정표에서 20m쯤 직진해 식사를 위한 간이 쉼터를 지나면 꼬불꼬불한 하산길이 열려 있다. 길 좌측으론 방금 올라온 능선이 보인다.

천봉산 하산길에는 아직 끝물 단풍이 남아 있다.

침목계단과 가는 밧줄을 잡고 내려서면 주변이 온통 단풍나무 천지. 절반은 메말랐지만 그래도 예의 화려함을 잃지 않고 있다. 이어 이번 산행에서 만나는 첫 바위를 지나면 침목을 덧댄 급경사길을 내려선다. 다시 한번 단풍나무숲을 지나면 임도와 만난다. 정상에서 27분. 바로 임도를 가로질러 산으로 올라서면 11분 뒤 산앙정(山仰亭)에 닿는다. 인근에는 이정표(천봉산 정상 1.6㎞)도 서 있다. 개울을 건너 도로로 올라서면 곧바로 주차장에 닿는다.

사실상 날머리인 산앙정(山仰亭).



◆ 떠나기 전에 - 천년고찰 대원사 '티벳박물관' 등 볼거리 많아
                     
- 맛집 '청광도예원' 닭도리탕·녹차수제비 일품
  
백제 무령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대원사 경내에는 여느 절집과 달리 눈길 끄는 볼거리가 유난히 많다. 모두 주지인 현장 스님의 아이디어다.

천봉산 대원사 일주문.

대원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못인 구품연지 아래에는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철나무가 두 손을 맞잡고 있으며, 거기엔 대형 목탁이 걸려 있다.

여기에 머리를 부딪치면 나쁜 기억이 사라지고 지혜가 밝아지고 원수가 잘 된다는 속설 때문에 그냥 지나치는 이가 없다. 극락전 뒤 계류가 흐르는 전망 좋은 곳엔 수관정이란 조그만 전각이 있다. 그 안에는 텅 빈 관이 하나 있다. 일종의 저승체험실이다. 벽에는 '죽음을 체험해보는 순서'라는 안내문도 적혀 있다.

천년고찰 대원사의 극락전과 그 우측의 태안지장보살.

경내에는 또 신라왕자 출신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다불(茶佛)이 된 김지장 스님을 모신 김지장전과 황희 정승 영당도 있다.

뭐니뭐니해도 대원사의 자랑은 '티벳박물관'. 

대원사 입구에 위치한 불경이 적힌 오색 룽다가 펄럭이는 '티벳박물관'.
이국적인 하얀 불탑 수미광명탑.

현장 주지스님이 티베트와 몽골 등지를 순례하며 모은 불상 회화 등 불교미술품 1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사람 머리가죽으로 만든 북, 대퇴골로 만든 피리, 해골로 만든 목탁 그리고 무릎을 꿇고 엎드려야 보이는 하늘 만다라도 눈길을 끈다. 1970년대 돈이 없어 고물상에 처분했다는 문제의 종도 뒤늦게 구입, 용접을 거쳐 전시돼 있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청광도예원(061-851-4157). 대원사 진입로인 시오리 벚꽃터널길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간판을 보고는 개인작업실 정도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닭도리탕이 기가 막힌 집이다. 식당인 전통 한옥 바로 옆에는 주인인 도예가 김기찬 씨의 도예공방이 있다.

전통 한옥인 청광도예원.

청광도예원의 주메뉴인 닭도리탕.

실내에는 온통 김 씨의 생활도예품이 가득 진열돼 있으며, 벽은 통유리여서 주암호 등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벚꽃이 한창인 4월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운치가 있다. 입맛에 눈맛까지 일거양득인 셈이다.

실내에는 주인인 김기찬 씨가 구운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벽은 통유리가 설치돼 있어 외부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맛은 어떨까. 직접 키운 토종닭이라 육질이 담백하며, 음식이 담긴 그릇은 모두 김 씨의 작품이어서 수라상을 받은 기분이 든다. 도예품은 판매도 하며 민박도 한다. 닭도리탕 4인 기준 4만 원. 녹차수제비(7000원)도 일품이다.

청광도예원 인근에는 '백민미술관'이 있다.

지난 1992년 개관한 이 미술관에는 보성 출신 서양화가 백민 조규일 씨가 자신의 작품과 국내외 화가들의 작품을 기증해 세웠다. 오지호 허백련 손재형 조방원 오승윤 강연균 등 이 지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제정러시아시대 이콘,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 교통편 - 호남고속도 주암IC서 나와 송광사 방향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주암(송광사)IC~순천 벌교 송광사 22번 좌회전~고흥 벌교 송광사 보성 우회전~송광면~보성 벌교 27번~광주 보성 우회전 15번~보성군 문덕면~광주 화순 우회전 15번~대원사 백민미술관 좌회전~대원사 주차장 순.

대중교통편을 이용할 경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순천행 버스를 타야 하지만 당일치기론 불가능하다.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산행대장= 이창우


태안사 기점 원점회귀-걷는 시간만 4시간
봉두산은 봉황머리, 앉은터 기가 막혀
발밑엔 낙엽, 머리위엔 단풍, 만추서정
산행 후 태안사 절구경만 해도 바쁘다 바빠

 

지금 봉두산을 찾으면 수북한 낙엽길과 함께 아직도 울긋불긋한 끝물 단풍을 볼 수 있다.


명산(名山)에 大刹(대찰)이라 했던가.

우리땅에는 대개 이름난 산의 명당 자리에 큰 절집이 자리잡고 있다. 비근한 예가 한국 불교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른바 5대 총림인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영축산 통도사, 덕숭산 수덕사, 백암산 백양사다. 가야산 백암산이 국립공원이고 조계산 덕숭산이 도립공원 그리고 영남알프스 산군 영축산도 두 말 하면 잔소리인 명산이 아니던가.

두륜산 대흥사, 모악산 금산사, 내변산 내소사, 속리산 법주사, 팔공산 동화사, 토함산 불국사, 오대산 월정사, 금정산 범어사 등도 예외가 아니다. 공주 계룡산은 동학사와 갑사를 양쪽에 품고 있다.    
   
그러나 명산대찰이란 요건을 갖추고 있는 데도 장삼이사들에게 한 곳만 알려져 있는 곳도 제법 있다. 원주 치악산 구룡사와 곡성 봉두산 태안사가 우선 떠오르는 바로 그곳이다. 전자는 절집이 치악산의 유명세에 묻혀 있고, 후자는 산이 아름다운 태안사에 가려 있다. 그렇다고 구룡사와 봉두산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는 절집과 산은 결코 아니다.

구룡사는 당나라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의상 대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기 위해 아홉 마리의 용을 몰아내고 지은 천년 고찰이며, 봉두산은 산세로 봐서 봉황의 머리에 해당되는 작지만 옹골찬 봉우리다.

이미 3년 전 치악산을 소개한 산행팀은 이번에는 전남 곡성으로 발걸음을 옮겨 봉두산을 찾았다.

곡성 죽곡면과 순천 황전면을 가르는 봉두산은 팔공산 기슭에 자리한 동화사와 마찬가지로 봉황과 오동나무의 전설이 내려온다. 풍수지리상으로 팔공산 동화사(桐華寺)는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대웅전이 봉황의 머리이며 절에서 맨 먼저 만나는 봉서루(鳳棲樓)가 꼬리, 봉서루 앞 커다란 바위 위 세 개의 둥근 돌이 봉황의 알을 의미한다.

봉두산의 경우 태안사를 품은 주변 산세가 오동나무 줄기 속처럼 아늑해서 예부터 '오동나무 동(桐)' 자를 써 '동리산(桐裏山)'이라 불렸다고 전해온다. 실제로 태안사 일주문 현판에는 '동리산 태안사'로 적혀 있다.    

일주문 현판에는 봉두산 대신 동리산 태안사라고 적혀 있다.
  
 봉두산(鳳頭山)은 봉황의 머리로 여겨진다. 그만큼 주변 산세와 앉은 터가 빼어나다는 것이다.

산행은 곡성 죽곡면 원달리 태안사 능파각~성기암 갈림길~외사리재~사거리(태안사갈림길)~외동골삼거리~전망대~봉두산(753m)~폐헬기장~북봉~폐헬기장~묘지~고치계곡·상한마을 갈림길~임도(고개)~등산안내판(컨테이너)~절재~태안사 순. 절 입구 등산안내도에 따라 한 바퀴 돌면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지만 산행팀은 봉두산 뒤 북봉을 돌아 크게 원점회귀를 하다보니 4시간 정도 걸렸다. 순천 쪽에선 북봉으로 다닌 흔적이 역력하지만 북봉에서 태안사로 가는 길은 묵어 길찾기가 힘들었다.



태안사로 이어지는 1.5㎞의 진입로는 아직 흙먼지 풀풀 날리는 옛길. 절 아래 주차하고 여유있게 걷고 싶었지만 시각은 이미 오전 11시30분을 향해 치닫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능파각 아래 화장실 옆 간이주차장에 주차하고 등산화를 조여맨다.

태안사로 이어지는 1.5㎞의 진입로는 아직 흙먼지 풀풀 날리는 옛길이라 운치있다.

산행은 태안사에서 풍광이 가장 빼어난 능파각(凌坡閣)을 지나며 시작된다. 능파각은 물이 흐르는 개울 위에 자연석으로 석축을 쌓고 지붕을 얹은 다리이자 누각. 동시에 속세를 벗어나 도량으로 들어서는 산문 역할도 한다.

능파각 주변은 곡성 태안사에서 가장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다른 각도에서 본 능파각.

 능파각을 건너면 수백년 된 아름드리 전나무와 소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숲길. 이 길을 따라 200m쯤 가면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이끼 낀 돌계단이 울창한 숲사이로 열려 있다. 입구엔 '봉두산 등산로'라 적힌 조그만 팻말이 보인다. 우측 너른길은 봉서암 가는 길이다.
산행 들머리. 돌계단으로 시작된다.

발밑엔 낙엽, 머리 위론 끝물 단풍이 마지막 빛을 발하며 만추의 서정을 느끼게 해주는 오솔길로 5분쯤 오르면 임도와 만난다. 잠시 후 길 좌측 바위 위에 흰색 페인트로 '←태안사' '봉두산 등산로·성기암'이라 적힌 기와 한 장이 놓여 있다. 그러고 보니 일주문을 통과해 경내에서 절집을 둘러보고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도 있는가 보다.

50m쯤 더 가면 곡각지점에서 산으로 올라서는 본격 들머리가 보이고, 임도를 계속 따라가면 성기암을 만난다.

산죽과 낙엽이 뒤엉킨 완경사 낙엽융단길을 10분쯤 오르면 사거리인 외사리재. 우측 곡성 죽곡면 원달리, 직진하면 순천 월등면 월룡리, 산행팀은 좌측 봉두산 방향으로 향한다.

곡성과 순천의 시군 경계인 이 길은 수북한 낙엽에 이따금씩 만나는 끝물 단풍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산죽길의 연속이다. 실제로 외사리재에서 27분 뒤에야 농짝만한 바위를 처음 만날 정도로 지형지물이 거의 없다. 여기에 정상까지 거의 외길이라 길찾기도 전혀 문제없다.

봉두산 산행은 거의 시종일간 낙엽융단길이 이어진다.

 도중 인상적인 지점은 외사리재에서 47분쯤 뒤 아주 너른 묘지와 여기서 6분 뒤 한 굽이 오르면 만나는 외동골 삼거리 정도다. 외동골 삼거리에는 어른 손바닥 크기의 코팅된 표지기가 걸려 있다. 산너머 순천 한울산악회 소속의 황전면장이 달아놓은 것이다. 봉두산은 태안사에서 오르기도 하지만 산너머 순천 황전면에서도 많이 올라오는가 보다. 입장료 1500원을 우선 절약할 수 있으니까.

이제 봉두산은 불과 400m 남았다. 3분쯤 길 좌측 전망대에서 서면 태안사와 방금 올라온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부담없이 올라왔지만 위에서 보니 능선의 굴곡이 꽤나 심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태안사 전경.
  
  정상 직전 전망대다운 전망대를 하나 만난다. 앞선 전망대는 태안사 쪽이지만 이번에 만나는 전망대는 순천 황전면이 내려다 보인다. 순천 쪽 들머리인 봉성마을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오는 도로와 광산으로 파헤쳐진 흉물스러운 모습도 보인다.

삼각점과 작은 정상석이 나란히 서 있는 정상은 앞선 전망대와 큰 차이가 없지만 향후 오를 북봉이 보인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


하산은 두 갈래길. 커다란 안내판엔 좌측 '태안사(3.2㎞) 상한', 우측 '태안사(3.5㎞) 원달'이라 적혀 있다. 좌측은 절재를 거쳐 작게 한 바퀴 도는 코스이며, 우측은 북봉을 거쳐 크게 원점회귀하는 여정이다. 산행팀은 우측 북봉을 향해 내려선다. 150m쯤은 급내리막길이지만 이후 완만해져 황홀한 낙엽길로 변한다. 정면으로 북봉이 보일 무렵, 대략 13분쯤 뒤 바위 두 개가 엉켜붙은 전망대를 만난다. 좌측으론 하산할 능선이, 우측 낮은 산줄기는 순천땅 봉성 가는 능선이다. 주변엔 그간 안 보이던 키작은 산죽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빛바랜 노란 단풍 또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하산길의 황홀한 단풍 낙엽길.

 곧 갈림길. 봉성 가는 반듯한 우측길 대신 좁은 좌측길로 향하면 잡풀 우거진 폐헬기장에 닿는다. 맨 왼쪽 비교적 반듯한 길은 산허리를 타는 무덤 가는 길, 산행팀은 무덤 가는 길 바로 옆 풀섶을 헤치고 능선길을 개척한다.

7분쯤 뒤 둥그스름한 지점에 닿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제일 높아 북봉인 듯싶다. 지도에 표기돼 있지 않은 데다 봉두산의 북쪽에 위치해 산행팀이 그냥 북봉이라 명명한 것이다. 동시에 길찾기에 유의할 지점이다. 직진하면 상한봉(상한마을), 산행팀은 좌측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하산길 좌측으로 보이는 능선은 봉두산에서 절재 쪽으로 내려서는 산줄기다.

의외로 화려한 단풍이 발길을 붙잡는다. 하지만 여기서 절재까지는 길찾기에 상당히 유의해야 할 구간이어서 산행팀은 노란 안내리본을 촘촘하게 매어 놓았다.

폐헬기장을 지나 봉분이 약간 파헤쳐진 무덤 좌측으로 향한다. 100m쯤 뒤 갈림길. 우측으로 내려선다. 갑자기 급경사길로 돌변, 능선길이 아닌 것으로 보이나 서서히 낙엽 수북한 산죽길이 기다린다. 이후 상석이 없는 묘지를 지나자마자 사거리를 만난다. 좌측 고치리, 우측 상한마을, 산행팀은 직진한다. 5분이면 임도에 닿는다. 왼쪽으로 5분쯤 가면 등산안내판이 보인다.

목적지는 정면으로 보이는 능선의 고갯마루인 절재(1㎞)지만 오랫동안 산꾼들이 다니지 않아 길 흔적이 전혀 없다. 안내판 옆 물길, 다시말해 고치리계곡을 건너 우측으로 간다. 좌측으론 컨테이너가 보인다. 촘촘히 달아 놓은 노란 리본을 확인하자. 움푹 팬 길로 40m쯤 가면 또 움푹 팬 지계곡. 건너면 산죽밭 사이로 산길이 열려 있다. 입구를 찾기 어려워서 그렇지 이 길만 찾으면 30분이면 절재에 올라선다. 등산안내판도 서 있다.

이제부턴 일사천리로 하산한다. 태안사까지는 1.7㎞. 간혹 돌길이지만 유난히 울긋불긋한 끝물 단풍 덕에 발걸음이 가볍다. 25분이면 산을 벗어나고, 10분이면 능파각 아래 간이주차장에 닿는다.

 일주문을 지나면 만나는 태안사 부도밭.

태안산 삼층석탑. 작은 못 한가운데 있어 특히 눈길을 끈다.


◆ 떠나기 전에 - 석곡IC 인근 석곡면 소재지 돌실회관 uㅐ돼지숯불구이 일품   
 
태안사는 장삼이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여행깨나 다녔다 하는 사람들의 뇌리에는 아름다운 사찰로 각인돼 있다. 매표소에서 능파각으로 이어지는 진입로는 여태 포장을 하지 않은 숲길이라 정감이 간다. 신라 경덕왕 때 당나라에서 공부한 혜철 선사가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문을 열면서 한때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거느닐 정도로 사세가 컸다. 풍수지리의 원조 도선 국사도 이 절에서 혜철 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조선시대에는 세종의 둘째인 효령대군이 이곳 태안사를 원당으로 삼았다.

고려 때부턴 송광사의 위세에 눌려 위축됐으며 조선시대엔 쇠락의 길을 걷다 정유재란으로 일부 전각이 소실된 후 한국전쟁 때 일주문과 능파각을 제외하고 모두 불에 탔다. 그러다 제법 절다운 규모를 갖춘 것은 근래의 일이다.

능파각은 태안사의 얼굴이다. 능파란 계곡의 물굽이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는 의미. 다리이자 누각인 능파각에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게 해 여름이면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 만추엔 단풍과 떨어지는 낙엽을 감상하는 명소로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능파각 인근에는 뜻밖에도 경찰충혼탑이 있다. 한국전쟁 때 곡성경찰들이 태안사에 임시본부를 설치, 인민군과 전투를 하다 48명이 전사했는데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매표소 인근에는 곡성이 고향인 민족시인 조태일시문학기념관도 있으니 들러보자. 조태일 시인은 태안사 대처승의 아들로 생전에 그는 '나의 시는 태안사에서 비롯됐고 태안사에서 끝이 난다'고 말했다 한다.

연탄불에 초벌구이한 후 숯불에 한번 더 굽는 것이 맛의 비결인 돼지숯불구이.
3년 숙성시킨 묵은지와 갓김치. 일품이다.
 
 맛집 한 곳 추천한다. 석곡면 소재지에 위치한 돌실회관(061-363-1457). 돼지숯불구이전문점이다. 호남고속도로 석곡IC에서 차로 2, 3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석곡은 광주로 가는 길의 중간기착지로, 이곳 식당 인근 석곡터미널 부근에서 드럼통 위에 돼지고기를 구워먹으며 허기를 채웠다고 전해온다. 석곡면에 유난히 숯불구이점이 많은 이유다. 그 중에서 가장 전통있고 맛있는 집이 돌실회관이다. 연탄 위에 초벌로 한 번 굽고 나서 숯불에 한 번 더 굽는 것이 맛의 비결. 3년 묵은 김치와 갓김치 등 밑반찬도 한결같이 맛깔스럽다. 1인분 150g 8000원. 석곡면에는 대중탕도 있어 목욕 후 식사를 하면 안성맞춤이다.


◆ 교통편 - 호남고속도로 석곡IC서 내려 구례 석곡 태안사 방향

부산에서 곡성행 시외버스는 없다. 인접한 순천으로 가서 곡성행 버스를 타야 하지만 이럴 경우 당일 치기는 불가능하다. 참고로 순천행 첫 차는 오전 6시30분이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석곡(구례)IC~구례 석곡 태안사(19㎞) 좌회전~구례 순창 옥과 좌회전~구례 압록~태안사 압록유원지 직진~죽곡면~구례 압록 18번~(태평삼거리에서)구례 압록 우회전~태안사 840번 지방도 우회전~순천 태안사 방향 좌회전~태안사 순.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만추 담양 추월산 원점회귀 산행
수석전시관과도 같은 기암괴석 '가을달빛산'
발아래 담양호와 어우러져 일대 장관 연출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산꾼은 변덕이 심하다. 계절에 맞게 새롭게 변신하는 전국의 명산을 찾아 다닌다. 지조없이.

말없는 산이지만 내심 이렇게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름 한철 뜸하더니 이 가을 만산홍엽이 펼쳐지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많은 산꾼들이 찾아와 정신을 못차릴 정도"라고.

추월산은 이름 그대로 가을에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산이다. 추월산에 서면 담양호의 운해와 빨간 단풍잎이 조화를 이뤄 황홀경을 연출한다.

대나무의 고장 담양 추월산(秋月山)이 그렇다. 이름 그대로 가을산이고 달빛산이다. 단풍으로 화사하게 단장한 모습이 아름답고, 은은하게 내리 비치는 달빛 아래의 자태 또한 매혹적이다.

추월산 단풍은 단풍 그 자체만으로 미추(美醜)를 논할 수 없다. 단풍이란 잣대로만 보면 사실 인근의 내장산이나 강천산에 비할 바는 못된다.
하나, 수석전시관을 방불케하는 주변의 기암괴석과 발 아래 펼쳐지는 담양호를 한 화폭에 담을 경우 그 아름다움이란 나라땅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일대 장관이다.
여기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환상적인 조망을 곁들이면 그야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할 만하다. 추월산과 더불어 담양의 3대 명산으로 꼽히는 산성산과 병풍산은 물론이고 강천산 무등산 내장산 백암산 입암산 그리고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깎아지른 해발 600m 높이의 절벽에 절묘하게 걸터 앉은 보리암도 볼거리다. 속세와 격리된 극락세계가 연출되는 자궁같은 암자지만 임진왜란 때 담양땅에서 의병을 일으킨 김덕령 장군의 부인 홍양 이 씨가 왜군에게 쫓기자 이곳 절벽에서 몸을 던진 안타까운 사연이 녹아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보리암 가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담양호와 산성산.

 산행은 추월산 주차장~보리암 이정표~첫 갈림길~제1등산로(동굴~잇단 철계단~보리암~보리암 정상)~헬기장~추월산 정상~제4등산로 갈림길~수리봉~깃대봉 갈림길~홍송 송림~복리암마을~잇단 식당(호반가든~월계식당~두메산골)~월계리 버스정류장~추월산 주차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안팎이며 산행 도중 탈출로가 곳곳에 열려 있어 체력에 맞게 내려올 수도 있다.



주차장에서 곧장 올라가면 ‘보리암'이라 적힌 조그만 이정표가 서 있다. 50m쯤 더 가면 다시 ‘보리암' 이정표가 보이며 곧바로 산길과 연결된다. 그 옆에는 샘터가 있다.
산길로 오르면 ‘추월산 등반안내도'가 기다린다. 10분 뒤 갈림길. 등반안내도에 따르면 제1등산로와 제2등산로 갈림길이다. 제2등산로는 완만하지만 멀고(1.6㎞), 가파른 제1등산로는 짧고(1.3㎞) 전망이 좋다. 제1등산로로 오른다.
길섶에는 여러 기의 돌탑이 서 있다. 지금도 조성 중인 탑도 있다. 보리암 신도들의 공덕탑인지 이곳이 성역임을 암시하는 것인지 하여튼 보리암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점차 급경사 오름길로 돌입한다. 해서 쉬어 가라고 벤치가 조성돼 있다.
첫 갈림길에서 20분이면 보리암 중창 공덕비와 석굴을 만난다. 공덕비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고려 신종 때 지리산 화엄사 산내 암자인 상무주암에서 나무로 만든 매를 날려 앉은 터에 암자를 지었으니 그 이름이 보리암이더라'고 음각돼 있다.
석굴을 지나면서 급경사 돌길과 바윗길이 예의 본색을 드러낸다. 10분 뒤 철계단 입구 쉼터. 담양호를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린 후 거대 암벽 사이로 절묘하게 열린 등로를 따라 올라간다.

한 굽이 철계단을 힘겹게 오르면 멋진 전망대가 기다린다. 비로소 담양호가 한눈에 펼쳐진다. 산이 물에 잠겼는지, 물이 산에 갇혔는지 착각이 들 정도로 비경이다.
계속되는 오르막. 이후 등로는 고개만 잠시 돌리면 모든 지점이 전망대다. 석굴에서 30분이면 보리암 갈림길에 선다. 이정표엔 ‘보리암 100m'라고 적혀 있다. 잠시 다녀오자.
잇단 철계단을 지나면 이내 보리암. 입구엔 샘터가 있다. 경내로 들어서면 일순간 입이 벌어진다. 담양호와 금성산성을 품은 산성산, 그 뒤로 순창 강천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주변 암봉 아래 위로 울긋불긋 치장한 채 아스라이 매달린 듯한 수목들이 인상적이다.
보리암 경내 대나무 울타리에서 본 담양호와 산성산.
보리암 입구.
보리암 정상(692m)에서 바라본 담양읍내. 자세히 보면 그 유명한 메타세쿼이어 가로수길도 보인다.

 보리암 정상(692m)은 갈림길에서 대략 20분. 역시 철계단의 연속이다. 이정표에서 약간 떨어진 전망대에 서면 정면의 무등산과 그 우측 병풍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담양호 뒤로는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과 주능선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발 아래는 황금빛 들녘과 그 유명한 메타세쿼이어 가로수길도 확인된다.

여기서 산길은 두 갈래. 전망대 아래 제2등산로로 바로 하산(1.6㎞·40분)하는 길과 추월산 정상으로 가는 제3등산로가 바로 그것. 체력에 맞게 택하자.
산행팀은 직진, 추월산 정상(729m)으로 향한다. 억새길과 산죽길 그리고 헬기장을 잇따라 지나 35분쯤이면 도착한다. 보리암 정상보다는 전체적으로 조망이 못하지만 정상석을 등지고 11시 방향으로 내장산 백암산 입암산이 한눈에 보인다.

하산은 정상에선 왔던 길로 2분쯤 내려와 삼거리에서 왼쪽길로 내려선다. 호남정맥길이다. 이전과는 달리 부드러운 능선길이 이어진다. 8분 뒤 등반안내도 상의 제4등산로 갈림길. 무시하고 계속 직진한다.

정상에서 봤을 땐 두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했다. 첫 봉우리는 오르지 않고 우회한다. 이후 확 트인 능선에 도달하면 정면으로 암봉과 그 우측 아래 솟아오른 절묘한 바위가 눈에 띈다. 수리봉과 수리바위다. 그 뒤 암봉은 깃대봉. 도중 쑥부쟁이 군락지를 만난다.

이제 산길은 아래로 완전히 쏟아진 후 다시 오른다. 중간중간 수석전시관을 방불케하는 암봉의 자태가 힘이 넘친다. 수리봉(728m)은 제4등산로 갈림길에서 40분 거리.
직진한다. 5분 뒤 ‘진짜' 하산길을 만난다. 안내 리본이 많이 걸려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직진하면 호남정맥 깃대봉 가는 길, 산행팀은 우측 급경사 내리막길을 택한다. 늘푸른 산죽길이 이어진다. 가까이서 바라보는 깃대봉 아래 불쑥불쑥 솟아 있는 기암괴석의 집합체가 그림같다.

20분 뒤 뜻밖의 송림길. 홍송으로 하나같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다. 추월산의 또 다른 명물로 등록해도 될 듯하다. 10분 뒤 산을 벗어나 정자가 보이는 우측으로 향한다. 복리암마을을 거쳐 호반가든 등 잇단 식당을 지나면 메인 도로와 만난다. 산을 벗어난 지 20분만이다.
산 아래 담양호반에서 본 추월산 전경. 왼쪽이 보리암 정상, 오른쪽이 추월산 정상이다.

#떠나기 전에 - 담양시장 내 '대통 암뽕순대' 별미

이번 산행은 들머리와 날머리가 떨어져 있지만 원점산행 코스로 잡아도 무난할 듯하다.
물론 산을 벗어나 '두메산골' 식당이 위치한 29번 국도까지 20분 정도 걸리지만 감나무가 곳곳에 즐비한 시골길이라 전혀 무료하지 않다. 이곳에서 추월산 주차장까지가 불과 800m에 불과해 15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 이 길 또한 담양호와 함께 달려 심심하지 않다.'두메산골'에서 300m 지점에는 월계리 버스정류장. 월계리는 추월산 제4등산로에서 하산하면 만나는 마을이다. 참고하길. 담양온천은 주차장에서 불과 6㎞ 거리다.

맛집 한 곳을 소개한다. 담양시장(담양5일장) 내에 위치한 '옛날 순대집(061-381-1622)'이다. 추월산 주차장에서 차로 10분 거리. 부산행 방향과 거의 같다.

주메뉴는 '대통 암뽕순대'. 비닐에 당면 들어간 순대와는 천양지차다. 돼지 창자 속에 선지 우거지 깻잎 파 시금치 (간)고기 찹쌀 녹두 참기름 들기름과 갖은 양념을 넣고 찐다. 여기까지는 여느 순대집과 대동소이하다.

비결은 1m 길이의 대나무에 넣어 1시간 정도 삶는 것. 비린 냄새 제거는 물론이고 물에 삶을 때와 달리 양념이 빠져나가지 않아 맛이 훨씬 뛰어나다.

대통 암뽕순대 (대) 1만원, (소)5000원, 순대국밥 4000원. 장날에는 손님으로 넘쳐나 한참 기다려야 한다. 유의하길.

#교통편 - 옥과IC서 담양 방면 15번국도 타야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옥과(화순 오산)IC~옥과 방면 15번 국도 좌회전~정읍 담양 15번 좌회전~담양군~추월산 담양온천 대나무박물관~순창 정읍 죽농원 29번 우회전~담양 문화회관 29번~정읍 장성 죽농원 29번 좌회전(학동교 건너)~정읍 추월산 29번 우회전~정읍 추월산 가마골 29번 우회전~추월산 주차장 순.

부산행은 광주 방면으로 가다 옥과·경찰서 방향으로 좌회전해야 한다. 옥과IC 근처 오산삼거리에선 곡성·옥과 방향 대신 동복·주암 방면으로 우회전해야 된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무주에 위치한 나제통문(羅濟通門)은 흔히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우리나라 정규 교육과정을 배운 장삼이사라면 모두 그렇게 알고 있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는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신이나 관료들이 오가는 관로였기 때문에 민초들은 엄격히 통제됐다.
 그렇다면 민초들은 어디를 경유해 신라에서 백제로 국경을 넘었을까.
 필자는 무주 석기봉~민주지산을 산행하면서 우연히 알게 됐다.
 흔히 민주지산은 무주보다 북쪽인 영동 물한계곡에서 산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국제신문 산행팀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산 너머 무주 설천면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5만분의 1 지형도를 준비해 가지만 들머리 찾기는 마을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산행팀은 물어 물어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하지만 산행 중 계속 의문이 가는 점이 있었다. 바로 지도상의 지명인 중고개였다. 그것도 윗중고개, 아랫중고개가 있는 것이었다.
 흔히 고개의 사전적 의미는 능선상에서 가장 낮은 지점으로, 산 너머 마을을 쉬이 넘나드는 지점을 의미하지만 이번 산행에서 중고개는 이런 사전적 의미의 고개와는 딴판이었다.
 운좋게도 산행팀은 이러한 의문에 명쾌하게 답을 준 스님 한 분을 만났다. 바로 아랫중고개 인근에 위치한, 단군을 모시는 신불사에서20여 년간 수도한 한산 스님이 바로 그분이다.

 스님에 따르면 이 중고개는 신라의 승려들이 중국을 오갈 때 넘어다닌 곳이란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제통문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신이나 관료들이 다녔고, 스님이나 민초들은 모두 이곳을 지났다는 것.
 구체적인 경로를 보면, 당으로 공부하러 가기 위한 신라의 스님들은 김천 직지사에 모여 뒷산인 황악산에 오른 후 백두대간길을 따라 전라 충정 경상도를 가르는 삼도봉에서 민주지산 쪽으로 능선을 갈아탄 후 석기봉을 거쳐 이곳 중고개로 하산, 이웃한 나제통문 대신 무주땅, 다시말해 당시로는 백제땅에 들어왔다.(아래 지도 참조) 이들은 이후 금산 논산을 거쳐 부여 백마강에서 배편으로 당으로 건너 갔다고 전해온다.

 이 때문에 중고개는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쉼터 역할을 한 사실에 연유돼 마을사람들이 명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지금도 사용되는 있는 설천면 내 법정리인 대불리(大佛里)나 그 아래 행정리인 불대(佛垈)마을은 모두 이곳을 스쳐간 스님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한산 스님의 설명이다. 스님은 또 석기봉 아래의 삼두마애불이나 지리서 '동국여지지'에 나오는 백운산(민주지산의 옛 이름) 기슭의 불두사(佛頭寺)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신라 때 중국으로 공부하러 갔던 원효나 의상 심지어 김유신에게 버림받아 장흥 천관산으로 귀의했던 천관녀도 모두 이 길을 밟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이 대략적인 설명이다. 아래는 산행팀이 석기봉~민주지산을 산행하고 정리한 산행기사이다. 이맘 때 석기봉은 산 중턱까지 온통 단풍나무로 가득차 황홀하다.
모처럼 역사공부도 할 겸, 단풍도 구경할 겸 석기봉~민주지산을 올라보시는 게 어떠할지... 



원효도 천관녀도 단풍 보며 쉬었을까

공부위해 중국 간 신라 스님 모두 이 길로 통행
이웃한 나제통문, 공적업무 수행 관료들만 이용
들머리 '중고개', 산 벗어난 스님들 쉬어간 곳
대불리 불대마을 등 불교지명, 여기서 유래
산 중턱까지 온통 단풍나무 군락, 이번 주말 절정
 
 

 전북 무주군과 충북 영동군을 가로지르며 중부 내륙 깊숙이 자리한 석기봉~민주지산. 노련한 산꾼들은 민주지산 하면 대개 영동 물한계곡을 떠올린다. 계곡미와 편리한 접근성 그리고 편안한 오르막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존 등산로 답습보다 새로운 루트 개척을 중히 여기는 산행팀은 영동 대신 산 너머 무주를 들머리로 길을 뚫었다.   
  
무주땅 북동쪽 설천면 대불리 중고개가 들머리. 통상 고개라 하면 산이나 언덕을 쉬이 넘나드는 지점을 말하지만 이곳 중고개는 이런 사전적 의미의 고개와는 전혀 딴판이다.

알고 보니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었다. 중고개 골짝의 단군을 모시는 신불사에서 20여 년간 수도한 한산 스님에 따르면 이곳은 신라의 승려들이 중국을 오갈 때 넘어다닌 곳이라 한다. 당시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인 나제통문(羅濟通門)이 있었지만 이는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관료들만 오가는 관로였기 때문에 민초들은 엄격히 통제됐다.

신불사 한산 스님.

산행들머리인 아랫중고개.

해서, 당으로 공부하러 가기 위한 신라의 스님들은 김천 직지사에 모여 황악산에 오른 후 백두대간길을 따라 삼도봉에서 민주지산 쪽으로 능선을 갈아탄 후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이곳 중고개로 하산, 이웃한 나제통문 대신 백제땅인 무주로 들어왔다. 이후 금산 논산을 거쳐 부여 백마강에서 배편으로 당으로 중국으로 건너 갔다. 의효나 의상 심지어 김유신에게 버림받은 천관녀도 모두 이 길을 밟았으리라.

이 때문에 중고개는 사전적 의미의 고개가 아니라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쉼터 역할을 한 사실에 연유돼 명명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설천면 내 법정리인 대불리(大佛里)나 그 아래 행정리인 불대(佛垈)마을 그리고 석기봉 바로 아래의 삼두마애불 모두 이곳을 스쳐간 스님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한산 스님의 설명이다.

무주 쪽에서 오른 석기봉과 민주지산은 알고 보니 단풍 산이었다. 기존의 단풍 명산과 견줘도 하등 손색이 없다. 산 아래만 단풍이 아름다운 유명 단풍 산에 비해 이곳은 해발 800m대까지 울긋불긋한 단풍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온통 단풍 천지였다. 단풍 명산 목록에 새로 추가해도 될 듯하다.

 산행은 대불리 아랫중고개~삼도봉 민주지산 갈림길~삼두마애불~석기봉(1180m)~물한계곡(속새골) 갈림길~민주지산(1242m)~윗중고개~아랫중고개 순. 걷는 시간만 4시20분 정도지만 절정의 단풍을 감상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외길이라 길 찾기는 쉽지만 거칠고 험한 하산길은 고생을 좀 해야 한다. 하여, 노란 안내 리본을 촘촘하게 묶어놨다.

아랫중고개 입구의 깔끔한 흰색 민가 옆엔 예쁜 무지개 다리 두 개가 눈에 띈다. 다리를 건너면 신불사. 산행 후 잠시 둘러보기로 하고 다리 쪽으로 직진한다. '상수도 유원지 차량 출입 엄금'이라 적힌 팻말을 지나면서 정면 저 멀리 정상부가 쌀겨처럼 엉겨 있는 봉우리가 보인다. 곧 오를 석기봉이다.

5분 뒤 '석기봉 1.5㎞'라 적힌 이정표를 따라 산으로 들어선다. 곧 창고인 듯한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을 지난다. 길은 약간 거칠지만 반듯해 정감이 간다. 10분 뒤 계류를 건넌다. 알고 보니 바로 옆 또 다른 계류와 만나는 합수점이다. 붉은 단풍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붙잡는다. 수정같이 맑은 계류에 비치는 붉은 빛과 고색창연한 초록 이끼. 이는 화려한 단풍 산의 서막에 불과하다.

계류를 건너면 이내 갈림길. 우측으로 7, 8m쯤 가면 세 갈래길. 가운데길로 발길을 옮긴다. 길섶엔 쑥부쟁이 구절초 용담 꽃향유 등 야생화와 억새가 나 좀 보라 손짓한다.



석기봉은 해발 800m대의 산 중턱 이상까지 단풍나무 군락지여서 단풍 명산 목록에 새로 추가해도 될 듯하다.

10분 뒤 아름드리 낙엽송도 대자연의 법칙에 머리를 조아리고 황갈색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다시 10분 뒤 일순간 산길이 왼쪽으로 90도 꺾이면서 된비알로 변하지만 그것도 잠시. 산죽과 더불어 완경사 오르막이 이어진다.

크고 작은 돌들이 널브러진 지계곡을 지나면서 주변이 온통 단풍 천국으로 변한다. 계곡을 중심으로 양측 산사면까지 포함하면 폭이 족히 30m쯤 되는 산 속이 온통 단풍나무 천국이다. 온 산이 불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다. 이러한 형국이 수 백m 이어진다.

이창우 대장도 "단풍 명산은 보통 산 아래나 계곡 주변에 한 두 그루씩 화려하게 빛을 발하지만 이처럼 단풍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곳은 아주 드문 경우"라고 연신 셔터를 눌렀다.

산길은 급경사길로 돌변한다. 단풍은 다소 뜸하지만 계곡 쪽 먼 발치엔 여전히 눈에 띈다. 25분쯤 길 좌측으로 집채만한 바위가 보일 무렵 단풍은 이제 거의 빛이 바랬다. 곧 갈림길. 왼쪽 민주지산 대신 우측 삼도봉 방향으로 간다. 곧 50m 암벽에 높이 6m의 머리가 셋인 삼두(三頭)마애불을 만난다. 좀처럼 보기 드문 형상이다. 마애불 아래에는 너른 터와 약수물탕이 있어 오래 전부터 기도처로 이용돼 온 것으로 보인다.

50m 암벽에 높이 6m의 머리가 셋인 삼두(三頭)마애불.


석기봉 정상.

삼두마애불에서 50m쯤 바위 사이로 오르면 석기봉. 정상석이 없는 이곳에 서면 우측 정면으로 정상 부분에 삼도 대화합기념탑이 약간 보이는 삼도봉과 그 우측으로 웅장한 백두대간 산줄기가 용틀임하며 내달린다. 삼도봉 우측 뒤로 저 멀리 대덕산과 초점산이 희미하게 확인된다. 뒤돌아 서면 정면 뾰족한 봉우리가 민주지산이고 그 우측 뒤 V자 홈이 난 봉우리가 각호산과 배걸이봉이다.

                     석기봉에서 민주지산 가는 길.

왼쪽 민주지산 쪽으로 내려선다. 밧줄에 연이어 의지해 내려오길 세 차례. 이어지는 산길에도 없어도 될 지점에 유달리 밧줄이 매어져 있다. 적설량이 특히 많은 이곳은 겨울 내내 빙판길이라 안전을 위해서라고 이 대장은 말한다.

석기봉에서 민주지산까지는 외길로 대략 1시간10분 걸린다. 산길 왼쪽은 무주, 오른쪽은 영동이다. 돌길 또는 침목계단길을 오르내리고 산죽길로 내달린다. 무명 봉우리를 하나 넘는데 이곳이 대략 중간 지점이다. 또 물한계곡으로 빠지는 탈출로가 셋 있지만 벤치가 둘 있는 정상 직전 탈출로(속새골 갈림길) 외에는 등반 통제구역이란 안내판이 서 있다.

민주지산 정상 직전 영동 물한계곡으로 내려서는 갈림길

영동군이 세운 정상석과 삼각점 앞에 서면 방금 지나온 석기봉과 삼도봉이 보이고, 정북으로 뿔 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각호산과 배걸이봉, 그 왼쪽 뒤 푹 꺼진 도마령 뒤로 천마산 천마령이 손에 잡힌다. 이 대장은 "날이 맑을 경우 가야 황악 금오 덕유산과 무주리조트의 슬로프도 보인다"고 말했다.

    
하산은 15m쯤 되내려가 방금 온 좌측 대신 직진 오름길로 향한다. 우측으로 길게 뻗은 능선을 타고 원점회귀하기 위해서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럭저럭 막힘없이 열려 있다. 이곳은 앞선 등로와 달리 겨울산. 바람이 차거니와 낙엽이 수북이 깔여 있다. 대신 바싹 마른 낙엽 밟는 소리가 정겹다.

민주지산 정상.

민주지사에서 본 석기봉(가운데 뾰족한 봉)과 그 왼쪽이 삼도봉이다.

30여 분 뒤 만나는 갈림길에선 우로 내려선다. 상행길만큼은 못 하지만 길 주변의 단풍이 한 번 더 시선을 끈다. 갈림길에서 15분이면 사거리 안부에 선다. 오른쪽은 불대마을, 왼쪽으로 내려선다. 급경사길로 변하면서 일순간 길이 사라지지만 왼쪽 계곡 쪽 싸리나무에 가려진 산길이 숨어 있다. 산행팀은 입구의 싸리나무를 꺾고 길을 연 다음 노란 안내리본을 촘촘하게 매달아 놓았다. 5분쯤 뒤 물 마른 계곡에 닿고, 여기서 15분이면 산을 벗어난다. 입구에 '민주지산 1.8㎞'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서 윗중고개마을을 거쳐 아랫중고개까지는 5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 - 일제 때 왜곡된 민주지산 한자 여태 통일 안돼

민주지산이라는 이름은 수수께끼다. 반계 유형원이 쓴 지리서 '동국여지지'에는 이곳이 백운산으로 표기돼 있지만 이후 일제에 의해 왜곡됐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일제가 어떤 근거로 이름지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지금도 민주지산의 한자 표기는 통일되지 못하고 여러 가지로 혼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먼저 국립정보지리원 발행 지형도에는 '잘 면(眠)' 자를 써서 眠周之山(면주지산)이라 표기돼 있다. 혹자는 '면'자를 '민' 자로 읽기도 한다는 데 옥편을 찾아보면 근거없는 얘기다. 한 발 양보해 만일 '민' 자로 읽기도 한다면 '둘레 주(周)' 자와 곁들여 '주변이 함께 졸고 있다'는 뜻으로 백두대간을 넘보며 용틀임하는 이 산줄기가 졸고 있으니 일제의 의도와 대략 일치한다. 또 '둘레 주' 자 대신 '주인 주(主)'를 조합해 眠主之山이라 하면 '주인이 잠들다'는 뜻이 돼 역시 일제의 의도가 엿보인다.

'옥돌 민(珉)' 자를 쓴 珉周之山은 '주변에 옥에 버금가는 돌만 두루 깔렸다'는 의미겠으나 일제에 의해 개명됐다기 보다 호사가들이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또 '옥돌 민(珉)'를 따로 빼 '왕과 백성이 두루 살펴본다'는 의미로도 해석하기도 한다. 어떤 백과사전에는 '산 이름 민(岷)' 자도 보인다. 흠 잡을 데 없는 무난한 이름 같지만 왠지 2% 부족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백컨대 기자는 민주지산이라 해서 처음엔 무슨 민주화의 성지쯤 되는 산인 줄 알았다.

출처가 불분명한 민주지산 대신 원래의 이름인 백운산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이 시점에서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첨언 하나. 충청 경상 전라도 등 세 도를 가른다고 해서 명명된 백두대간 삼도봉과 석기봉은 모두 민주지산에 속하는 봉우리다. 혹자는 민주지산의 북쪽에 위치한 각호산까지 포함시키는 데 산세로 봐서 별개의 봉우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첨언 둘. 들머리 아랫중고개에서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 신불사 봉황대. 한산 스님은 지세로 봐서 봉황이 터를 잡은 곳이란다. 지도 상에는 진벌로 표기된 이곳은 백제시대 병사들의 진지가 있었다고 전해온다. 송림을 배경으로 인공연못과 정자를 조성해 놓아 경관이 빼어나다.

# 교통편 - 대중교통 당일치기 불가, 승용차 이용해야

대중교통편은 당일치기로 불가능하다. 부산서 무주로 바로 가는 시외버스는 없다. 굳이 적어 본다면 열차를 이용해 대전역~대전터미널로~무주시외버스터미널~설천면 소재 공용터미널. 여기서 택시를 이용해 들머리로 이동해야 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 고속도로 무주IC~무주(무주리조트 구천동) 방면 우회전~영동 무주 안국사~싸리재터널~영동 상주~구천동 무주리조트 안국사~성주 설천 반디랜드 30번 국도~성주 설천 반디랜드 우회전~남대천과 나란히~설천면~반디랜드 지나~GS구천동주유소 지나~삼도봉 장터 방향 좌회전(훼미리마트)~삼도봉 민주지산~내북마을(대불리 신불사) 방향 좌회전~석기봉 안내판~아랫중고개(무지개다리) 순.

글 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단풍에도 품격이 있습니다."
국내 단풍 산의 간판격인 이웃 내장산과의 비교를 부탁하자 곧바로 되돌아온 전남 장성군민들의 뼈있는 한 마디다.
그 외마디 속에는 아마도 지명도 면에서의 열세는 인정하지만 단풍과 더불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깎아지른 절벽과 암릉 코스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은연 중에 내포돼 있으리라.

그들의 백암산 사랑은 계속됐다.
둘 다 핏빛 단풍과 주변 암봉이 투영되는 호수를 지녔지만 시멘트 기둥의 밋밋한 우화정(羽化亭)보다 당대의 시인묵객들이 처마에 걸린 그림같은 단풍의 풍광에 넋을 잃었을 법한 쌍계루(雙溪樓)가 훨씬 운치있지 않습니까."

백학봉과 쌍계루, 인공연못과 애기단풍. 단풍이 소개될 때 TV나 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유명한 장면이다. 아래 사진도 비슷한 지점에서 본 백학봉이다.




쌍계루 아래 구름다리.
우리나라 불교계의 고승대덕들을 많이 배출한 고불총림 백양사.
쌍계루 앞 극락교. 백암산의 자랑 애기단풍이 한창이다.
백암사 경내에서 본 백학봉.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수덕사와 함께 대한불교 조계종의 5대 총림 중의 하나인 고불총림 백양사와 백학봉의 앙상블이, 화려한 내장산 단풍의 유명세에 힘입은 유명무실한 내장사와 서래봉의 조화보다 더 아름답다고도 했다.

 단풍빛 역시 사뭇 다르다고 강조했다.
내장산의 단풍이 인공조림에 의한 단풍터널로 세련된 도회 아가씨의 화려함이 돋보인다면 순수 토종 그 자체인 백암산의 애기단풍은 질박한 토기처럼 수수한 자연미가 일품이다.

또 한가지. 붉은 빛 위주인 내장산 단풍과는 달리 백암산의 그것은 노란색의 은행나무와 갈색톤의 갈참 신갈 졸참나무 등이 늘푸른 비자나무와 한데 어울려 천연색의 향연을 이룬다.

산행은 남부매표소 주차장~쌍계루~극락교~국기단~약사암 갈림길~약사암~영천굴~잇단 계단~백학봉~헬기장~백양사계곡 갈림길~구암사 갈림길~헬기장~기린봉~상왕봉~능선사거리~운문암 갈림길~쌍계루~주차장 순. 걷는 시간만 3시간30분 정도.


 주차장에서 쌍계루로 가는 호젓한 숲길은 단풍나무 갈참나무 은행나무 잎이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며 만추의 심장부로 탐승객을 안내한다. 하늘을 가린 700년생 갈참나무와 백양사를 삼창(三創)한 고려 말의 선승 각진 국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라났다고 전해지는 역시 700년 된 이팝나무는 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귀한 볼거리다.
      하늘을 가릴 듯한 700년 된 갈참나무.

 일순간 약속이나 한 듯 발걸음을 멈춘다. 만개한 연꽃 형상의 거대한 회백색 암봉인 백학봉을 배경으로 형형색색의 단풍이 쌍계루를 감싸안고 있는 그림같은 비경이 눈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더욱 장관인 것은 돌로 계곡물을 막아 만든 조그마한 인공연못에 그 비경이 투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감탄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쌍계루에 서면 만추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고운 애기단풍 잎들이 시나브로 떨어진다. 아! 선계가 바로 여기로다.

쌍계루 맞은편의 부도전을 둘러본 후 왼쪽 극락교를 건너면 갈림길. 왼쪽 백양사 구경은 하산길 몫으로 남겨두고 오른쪽 백양사계곡 쪽으로 향한다. 지금은 거의 물이 말라 있다.

계곡 초입 주변은 5000여 그루의 비자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153호인 비자나무의 북방한계선. 늘푸른 비자림이 내뿜는 진한 수향은 백암산의 또 다른 선물이다.

고려 때부터 국가의 안위를 위해 천제를 지냈던 국기단(國祈壇)을 지나면 갈림길. 오른쪽 약사암 방향으로 오른다. 불과 400m 거리지만 꽤나 힘든 지그재그 돌길이다. 깎아지른 절벽 바로 아래 들어선 약사암 전망대에 서면 빨간 단풍 사이로 백양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약사암 옆 돌계단으로 내려서면서 영천굴로 향한다. 5분이면 닿는다. 애기단풍이 하늘을 가릴 만큼 주변을 빨갛게 물들여 놓았다. 비록 조그만 동굴이지만 백양사라는 이름의 기원이 된 의미있는 곳이다. 영험하다는 석간수도 있다. 영천굴에서 백학봉까지의 800m 구간은 ‘악!’ 소리나는 고행길. 대부분 계단과 쇠사다리뿐이며, 아쉽게도 이때부터 단풍이 말라 비틀어져 있다.

10분 뒤 약사암 위 절벽. 발밑은 천길 낭떠러지이다. 정면 기암 사이에 낙락장송 한 그루가 도도하게 서 있다. 이처럼 한 굽이 오르면 절벽 전망대가 방향을 달리해 포진해 있다. 마지막 전망대에선 운문암과 상왕봉을 볼 수 있다. 40분쯤 뒤 바위 쉼터. 사실상 오르막 끝. 정상은 3분 뒤. 정상석 대신 구급함과 산행안내판이 서 있다. 순창의 너른 벌판 뒤로 추월산과 병풍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제 오르막 힘든 구간은 끝나고 비교적 경사가 덜한 능선길이 기다린다. 헬기장과 백양사계곡 갈림길, 구암사 갈림길에 이은 또 다른 헬기장을 잇따라 지나면 무명봉인 729봉. 상왕봉까지는 아직도 1.5㎞ 남았다.

정면에 사자봉이 포효를 하고 분재를 빼닮은 운치있는 소나무가 맵시를 뽐내는 시야가 트이는 지점을 지나면 암봉인 기린봉 바로 밑에 닿는다. 두 번째 헬기장에서 20분 소요. 암봉으로 오르는 험로가 있지만 대개 좌측 내리막 산죽길로 향한다. 여기서 12분이면 상왕봉 상봉. 백학봉과 마찬가지로 정상석 대신 구급함과 산행안내도만 서 있다. 정상 직전 우측 갈림길은 내장산 가는 종주길이다.

산행안내판 뒤로 내장산과 입암산이 한눈에 펼쳐진다. 1시 방향으로 내장산 신선봉 연자봉 까치봉 장군봉이, 10시 방향으로 입암산 갓바위가 또렷이 확인된다.
하산은 직진 방향. 정면으론 사자봉과 도집봉, 그 사이로 가인봉이, 왼쪽 뒤론 방금 지나온 백학봉과 기린봉이 보인다. 10분 뒤 만나는 이동통신중계탑 이후 두 번의 잇단 갈림길에선 모두 왼쪽길을 택한다. 산행은 사실상 막바지. 4분 뒤 능선 사거리. 오른쪽은 몽계폭포, 직진하면 사자봉 방향, 산행팀은 왼쪽 운문암 방향으로 내려선다. 산죽 내리막길이다. 쌍계루나 영천굴, 사찰 주변을 제외하고 그나마 단풍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등로이다. 단풍나무와 함께 어른 손바닥 크기의 빨간 사람주나무의 단풍이 인상적이다.

10분 뒤 운문암으로 빠지는 산길이 있지만 막아놨다.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선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10분이면 뜻밖에도 시멘트길. 300m 거리의 운문암까지 포장돼 있다. 등산객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외부인의 출입을 막으면서 공부하는 스님이 있는 정상 턱밑인 선원까지 차가 다니도록 포장을 꼭 할 필요가 있었는지 사실 의문이 든다. 그것도 국립공원 안에서.
이번 산행의 옥에 티다. 운문암 갈림길에서 백양사 및 쌍계루까지는 25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
- 인터넷 일부 지도 도집봉 위치 잘못 표기   
 
백제 무왕 33년(632년) 때 여환 선사가 창건한 백양사의 원래 이름은 백암사. 이후 고려 때 정토사로 바뀌었고 조선 선조 때 다시 백양사(白羊寺)로 개명됐다. 사연은 이렇다. 당시 환양 선사가 지금의 영천굴 내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할 때 흰 양 한 마리가 설법을 듣고는 본래 자신은 하늘의 신선이었는데 죄를 짓고 쫓겨왔다며 죄를 뉘우치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온다.

백양사는 불교계를 이끌었던 고승들을 많이 배출한 선도량이다. 일제강점기 때 제2대 종정을 지낸 환응, 조계종 초대 종정 만암, 태고종 초대 종정 묵담, 조계종 5대 종정 서옹 등 근래에 와서 종정을 지낸 고승만도 5명이나 된다. 운문암은 내변산 월명사, 금산 태고암과 함께 전국 절터 중 3대 명당으로 손꼽힌다. 풍수지리에 관심이 있다면 아니온 듯 다녀가도록 하자. 관계자들은 동안거 하안거 때만 피하면 조용히 다녀와도 무방하다고 한다.

온라인 상에 떠도는 백암산 산행지도에는 몇 가지 헷갈리는 지명이 있다. 짚고 넘어가자. 먼저 도집봉. 흔히 상왕봉 바로 아래 암봉에 도집봉이라 표기돼 있는데 이는 잘못됐다. 남부사무소 관계자는 "옛날 군사지도에 오기된 것을 누군가가 그대로 사용하는 바람에 혼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백암산의 모든 봉우리가 모인다는 의미의 진짜 도집봉은 금강암 인근에 위치해 있으며, 오기된 도집봉은 흔히 기린봉으로 불린다. 하산길인 백양사 계곡은 흔히 약수동 계곡이라 표기돼 있다. 같은 곳이다. 백암산의 주소지가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이다. 이곳 주민들은 마을을 흐르는 하천을 약수천, 그 상류계곡을 약수동 계곡이라 부른다.

또 한가지. 백암산의 봉우리 이름은 대부분 불교와 연관이 있다. '코끼리 상' 자를 쓰는 상왕봉, 이웃한 사자봉과 기린봉이 좋은 예. 인근의 가인봉도 원래는 관음봉이었다.

호반가든의 메기찜.

맛집 하나 소개한다. 장성호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호반가든(061-392-8692)'. 주메뉴는 메기찜(2만5000~4만5000원), 메기매운탕(2만~3만5000원). 맛의 비결은 시래기. 가을 시래기를 삶아 말린 후 요리할 때 다시 삶기 때문에 그 맛이 아주 쫄깃쫄깃하다. 메기찜 속에 깔린 시래기를 먹기 위해 찾는 단골들이 많다고 한다. 입소문이 제법 퍼져 광주 정읍 전주에서도 많이 찾는다. 메기찜의 경우 30분쯤 걸려 예약을 하면 편리하다. 백양사IC와 백양사의 딱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다. 차로 6분 걸린다.

# 교통편 - 대중교통 당일치기 불가능 
 
대중교통편을 이용하면 당일치기는 불가능하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백양사IC~백양사 15번 우회전~담양 1번 백양사~광주 장성 백양사 1번 좌회전~곰재 정상 지나~장성호 지나~백양사 담양 15번 국도~내장산 백양사 좌회전~남부매표소~주차장 순.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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