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 500회 특집 역대 산행 담당 기자 에피소드

 5년간 함께 산행한 기자와 이창우 산행대장은 지금까지 딱 한 번 따로따로 집에 왔다. 2년 전 경주 토함산~울산 삼태봉을 찾았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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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와 이창우 산행대장. 장흥 천관산 정상이다.


 아름다운 감포가는 4번 국도 상의 황룡마을에서 토함산에 올라 석굴암 입구로 내려올 때까진 문제가 전혀 없었다. 이후 계획은 석굴암 주차장을 지나 도로를 따라 가다 산길로 오른 후 삼태봉으로 가는 것이었다. 도로에서 산으로 접근하길 수 차례, 산길이 없는 것이었다. 몇 차례 가시덤불을 뚫으려고 시도는 했지만 불가능했다. 이렇게 1시간. 그의 뒤를 묵묵히 걷다가 기자는 이 대장을 불러 세웠다. 그리곤 "이후 산길을 찾는다 하더라도 도로를 걷는 시간이 너무 길어 산행지로 부적합하다"라고 의견을 개진했다. 이 대장은 말없이 걷고 또 걸었다. 재차 불러 보았지만 그는 대답없이 걷기만 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점차 벌어지자 기자는 제법 큰 소리로 다시 한번 고함쳐 보았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혼자 집에 가라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던 것이었다. 지친 기자는 도로에 주저 앉아 1시간 정도 기다렸으나 이 대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전화통화에서 이 대장은 끝내 길을 찾지 못했다며 피식 웃었다.
  얼마 전엔 칠흑같은 어둠속을 겨우 뚫고 나온 적도 있었다. 물론 둘일 경우 그나마 그럭저럭 내려오겠는데 그날은 여성동지 두 명이 함께 했다. 여름철이라 비 걱정만 했지 랜튼 생각은 어느 누구도 못했다. 폭우를 만나고 길을 두어 차례 잃다 보니 시간은 점점 흘러 어둑어둑. 배낭을 뒤져봐도 4명 중 어느 누구도 랜튼이 없었다. 핸드폰을 랜튼 삼아도 넘어지고 자빠지고 미끄러지고 잡풀을 헤치고, 사태난 길을 사뿐사뿐 통과하고…. 하여튼 산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그 짧은 시간에 모두 해보았다. 문득 머리 한켠에는 '아! 사고가 이렇게 나는구나,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이 조난상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스쳐갔지만 그래도 천하의 이창우 대장이 있는데 하며 애써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하지만 산행대장과 기자의 착찹한 마음과 달리 여성 동지 둘은 웃음을 잃지 않으며 용케 버텨주었다. 기자가 농담으로 밤에는 멧돼지지를 만날 수 있다고 하자 여성동지들은 "배도 고픈데 잡아 먹어야지"라고 할 정도였다. 도로에 내려오니 밤 9시5분. 주차돼 있는 곳까지 걸어서 30분. 저녁은 도로변 아무 식당에 들러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회사 앞에 도착하니 밤 12시20분. 산행도 실패하고 몸은 만신창. 그래도 살아돌아 왔으니 어찌 기뻐지 아니하리오.
이처럼 취재기자와 산행대장은 산행 중 에피소드가 참 많다. 역대 산행기자의 그것도 이참에 한번 들어보자. 정리=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 회장님, 하늘에서도 여전히 산행 즐기시겠죠? - 박병률 기자(2000.11~2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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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계속 나와도 되지. 발에 쇠심하나 박긴 했어도 체력하나는 자신있어."

칠순인 그가 배시시 웃었다. 나는 말대신 미소로 화답했다. 그날 그는 지리산 언저리의 주산 산행에 근교산 대원으로 처음 동참했다.

2001년의 새봄이 기지개를 켜던 어느날 근교산 취재팀에 고 김창한 '회장님'이 들어왔다. 그는 월남전에 참전했고, 중동에서 돈을 벌었으며, 지금은 자식들을 출가시켰다고 했다. 그는 근교산 대원 중 역대 최고령이었다. 우리팀은 그를 '회장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난 말이야, 죽어도 원한이 없는데 다만 죽을 때 캑 소리 한번 하고 그냥 갔으면 해. 그래도 한 열흘 정도는 병원에서 간호를 받고 싶어. 그래야 섭섭하지 않지."

산행이 깊어지면 대원사이에 이런저런 사적인 대화들이 오간다. 회장님은 '잘 죽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그리고는 "그러려면 산이 최고야. 그래서 내가 산을 타는 것이지"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리산으로 떠났던 그해 가을,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논의 끝에 산행을 포기하자 그는 "진교에도 좋은 산이 있는데 가보자"며 우리 손을 이끌었다. 그런데 그가 간 곳은 예순이 넘은 여동생의 집이었다. 그녀는 "우리 옵빠 오셨네"라고 반기며 갓 잡은 전어를 내놓았다. 아, 그날 입 안에서 살살 녹던 전어의 맛! "건강해야 한다"며 몇 번이고 손을 잡던 남매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올 봄 나는 회장님의 부고를 뒤늦게 들었다. 지난해 가을 타계하셨다는 것이다. 산행을 하러 집을 나서던 중 정말로 '억'소리 한번에 쓰러졌고, 열흘가량 병원 신세를 진 뒤 그렇게 하늘나라에 가셨다고 했다. 그의 마지막길을 뵙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영남알프스 태극종주, 지리산 사계…. 회장님. 우리가 어렵게 개척했던 길 잊지 않았죠? 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brpark@kookje.co.kr

# 대장님, 웬만하면 아는 길로 가면 안될까요? - 조봉권 기자(1998.9~2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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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냉기가 가시지 않은 1999년 3월초였다. 아침부터 비가 왔다. 비를 맞으며 경남 하동군 악양면 미동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비는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내렸다. 구재봉~칠성봉 등산로가 정비되기 전, 산길은 말 그대로 무공해였다.

애초 목표대로 구재봉(767.8m)을 거쳐 칠성봉(900m)까지는 빗속을 뚫고 잘 갔다. 산 위에는 이창우 산행대장과 나 두 사람뿐이었고 비를 그을 곳이 없어 3월 찬 빗물에 밥을 말아먹다시피 도시락을 비웠지만 성취감으로 가슴은 뿌듯했다.

그런데 이창우 산행대장은 그 장대비 속에서도 또 '새로운 루트'를 고집했다. 그는 이미 알려진 칠성봉 하산로를 외면하고 능선을 따라 계속 나아갔다. 지도상에는 사람들이 덜 다니는 다른 하산길이 나와 있었고 취재팀은 그 길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우리가 그 하산길의 입구를 놓쳤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비는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내렸다.

나는 초짜 산행기자였다. 칠흑같은 어둠에 갇히고 주위에는 불빛 한 점 보이지 않을 때, 랜턴의 배터리는 반드시 달랑달랑해진다는 '법칙'을 그 때 처음 배웠다. 빗속에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낭떠러지에 막혀 포기하기를 몇 차례, 드디어 절벽 아래 토굴을 발견해 몸을 의탁한 시각은 밤 9시 30분쯤이었다. 12시간 동안 3월 초 찬 빗 속을 헤맨 셈. 대장은 멀쩡했지만 나는 탈진했다.

1998년말부터 2년 몇개월 동안 '다시 찾는 근교산' 담당기자였던 내게 이창우 산행대장은 "그 때 유독 험산 잡산 개척코스를 많이 다녔다"며 미안해 하곤 한다. 하지만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다. 주산~미숭산에서 만난 수백 마리 반딧불이들의 그 황홀한 군무를, 내가 강해졌다는 것을 느꼈던 지리산과 영남알프스의 기억을, 다시 찾는 근교산에서 보낸 모든 순간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bgjoe@kookje.co.kr

# 끝없는 황사먼지 폭탄… 세탁기가 막힐 뻔 - 김용호 기자(2002.2~2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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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은 유난히 황사가 심했다. 그해 4월께, 그러니까 근교산 취재를 맡고 얼마 안돼서 일이다. 그날 취재 목적지는 경북 현풍의 비들산(291회)이었다. 비슬산은 많이 들어봤어도 비들산은 금시초문이었다. 이창우 산행대장의 설명에 따르면 비들산은 비슬산 바로 옆 산으로 현지 주민들이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산행 시작은 순조로웠다. 들머리도 쉽게 찾았다.

고행은 산행을 시작한 지 30분 정도 지나 첫번째 작은 봉우리에 오르면서 시작됐다. 나뭇가지마다 켜켜이 쌓여있던 황사먼지가 산행팀을 괴롭혔다.

최소 수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는지 등산로는 길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잠시 뒤 이 산행대장은 길이 없다면서 능선을 타고 무작정 오르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를 건드릴 때마다 황사는 폭탄이 터진 것처럼 뿌옇게 먼지를 일으켰다.

침을 뱉어도 그때 뿐 입 안에서는 먼지 알갱이가 맴돌았고 산행안내 리본을 매달기 위해 한번 쉴 때마다 가져간 식수로 입을 헹궜다. 앞서가는 이 산행대장이 나뭇가지를 건드리며 털어놓은 먼지는 고스란히 기자에게 돌아왔다. 1시간여를 황사속에서 헤매는 바람에 안경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변했고, 먼지에 목이 잠겨 말을 하기도 힘들었다. 관기봉에 이르러서야 겨우 배낭을 풀었다.

짙은 녹색의 배낭은 먼지가 앉아 뿌옇게 변했고, 검정색 바지는 땀과 먼지에 얼룩이 져 군복처럼 보였다. 그날 입은 등산복에서 나온 구정물은 공군 훈련소에서 빨래할 때 본 이후 최고로 더러웠다.

가덕도 응봉산~웅주봉(314회) 취재 산행때 공사장용 코팅장갑을 끼고 가시덤불을 헤쳤던 일이나 민주지산~삼도봉(322회) 취재를 마친 뒤 자동차의 배터리가 방전돼 한겨울 추위에 발을 동동 굴렀던 일도 잊기 어렵다. kyh73@kookje.co.kr


# 초보산꾼, 수도~가야산 종주서 탈진 또 탈진 - 배병주 논설위원(1993.1~1994.8, 1996.1~19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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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근교산 시리즈를 처음 시작한 것은 1993년이었다. 중간에 1년여 공백기를 가지기는 했지만 한 테마를 가지고 10년 넘게 연재를 이어간 사례는 우리 언론사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물론 이런 '대기록'을 세운 것은 독자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시리즈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기자는 산에 대해선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길에 석굴암 관광을 위해 토함산을 오른 것이(당시에는 석굴암 순환도로가 없었음) 당시 기자의 유일한 산행 경력이었다. 이런 초보자가 어찌 근교산 시리즈를 시작할 엄두를 냈는지 지금도 그 무모함에 아찔한 생각이 들곤 한다.

초보 산행기자의 산행은 실수의 연속이었다. 산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기가 일쑤였고, 잘못 들어선 길에서 굴러떨어지는 등 실수연발이었다. 기사마감이 임박해 우중산행에 나섰을 때는 안개에 길을 잃어 산 속에서 헤맨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수도~가야산 종주산행. 산행 시간만도 12~14시간이 걸리는 데다 산길마저 험해 기자에게는 극기체험 코스나 다름없었다. 1000~1300m급의 봉우리 7개를 넘어야 하는 데다 도상거리만 40㎞에 달해 기자에게는 애초부터 무리였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최면을 걸어가면서 용감하게 산행을 시작했지만 후박령을 넘어서자 무릎에 통증이 오는 게 아닌가. 하산지점인 경북 성주군 백운동까지는 아직 3~4시간 더 걸어야 하는데 말이다. 동행자의 도움을 받아 뒷걸음질까지 해가며 산행을 마치기는 했지만 기자에게는 이 산행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하지만 기자는 이 같이 아픈 추억보다 미답의 산길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던 즐거움만 기억하고 싶다.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근교의 무명산을 지역 산악동호인들에게 돌려주었다는 뿌듯함이 더 크기 때문이다. bjbae@kookje.co.kr


# 이틀연속 같은 산 등반 "해가 나와야 사진을 찍지" - 조해훈 문화전문기자(1997.3~19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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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어느 매체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산 취재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갖고 있는 국제신문의 '근교산' 취재 횟수가 500회를 맞았다니 그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기자가 근교산 초반기에 잠시 취재를 맡았지만 그 명성에 보탠 것은 거의 없다. 기자가 그동안 산 취재와 관련, 외부에 글을 많이 쓴 탓에 재미있는 에피소드 등을 다 써먹었지만 미약한 기억을 떠올려본다.

지난 97년 여름이었다. 기자는 경남 밀양 삼각산(887m) 등산코스를 취재하러 갔다. 그날 아침부터 먹구름이 끼는 등 날씨가 심상찮았다. 장마철 기후가 그런 것이어서 비를 맞으며 취재를 하면 되므로 기사는 별 문제가 없었다. 비가 아무리 많이 내리더라도 사진도 우산을 쓰고 찍으면 괜찮았다. 우기에 산 정상에서 도시락을 먹는데 가릴 만한 게 없어 그야말로 '빗물에 밥을 말아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았던가.

산행 코스 안내를 해주시는 분과 둘이서 산에 올랐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후두둑' 소리내며 빗방울이 떨어졌다. 산 정상 부근에 가서 도시락을 먹기로 하고 올랐다. 나무며 풀이 물기를 많이 머금은 탓에 산 특유의 습기냄새가 났다. 기분 나쁜 냄새가 아니라 마치 '녹색의 내음'이라고나 할까, 우기에 산행을 해본 사람들은 그 냄새를 알 것이다.

산 중턱을 지나자 구름과 안개가 섞여 날렸다. 마치 빗물이 몸 속에 스며들어 고인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마침내 힘들게 정상 부근에 도착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큰일이다. 비축해 놓은 기사도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개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안개가 시야를 가린 탓에 어렵사리 하산하면서도 사진을 찍기 위해 수없이 뒤를 돌아보았으나 보이는 건 안개 뿐이었다. 다음날 기사를 써놓고 휴가를 받아 다급한 마음에 사진을 찍기 위해 혼자서 삼각산 등산을 한번 더 했던 것이다. massjo@kookje.co.kr


독락당 옥산서원 등 회재 선생의 흔적과 해후


호젓한 산길따라 수줍은 야생화 널렸네
원점회귀 코스 … 6시간 내외 걸려
정상 봉좌암 오르면 시원한 조망
독락당·옥산서원 등 문화재 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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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좌산 초입에 만나는 소나무는 마치 공들인 분재를 연상케할 정도로 운치가 있다.


산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잠시 짬을 내 한번쯤 들러봄직한 소중한 문화재가 곁에 있어도 애오라지 이들의 짝사랑은 오직 산뿐. 산 자체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옆에서 말없이 지켜본 이들은 산세와 주변 조망, 수종 및 야생화, 명당 자리 등 그야말로 산에 대한 모든 것을 파헤친다. 피곤에 지친 하산길에도 복귀까지 하며 아쉬웠던 점을 토론한다. 진정 산꾼인 이들의 수첩엔 대개 향후 오를 전국의 산이 빼곡히 적혀있고, 짧게나마 반드시 산행기를 쓴다.

산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더 많다.

언제 이곳에 또 오겠느냐며 온 김에 주변의 모든 곳을 샅샅이 훑고 가야 된다는 것이 이들의 지론. 심지어 산행구간을 줄이기도 한다. 임도 보고 뽕도 따고, 산도 좋고 문화재 답사는 더 흥미로운 그들이다. 혹 근처에 기가 막힌 맛집이나 유명 온천이 있다면 발품을 팔아 오붓한 시간을 보낸 후 고속도로를 씽씽 달리자고 주장한다.

이번 주 산행팀이 찾은 경주 안강의 봉좌산~어래산은 후자의 산꾼들이 선호하는 산행지다. 들머리는 정확히 말해 안강읍 옥산리 세심마을. 성리학의 기초를 마련한 영남학파의 태두인 회재 이언적 선생이 말년에 세상과 발길을 끊고 책을 벗삼아 보낸 독락당(獨樂堂)과 그의 사후 후학들이 선생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옥산서원이 있는 곳이다. 도덕산 자옥산 봉좌산 어래산 삼성산 등 500~700m급 고만고만한 산들이 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다. 이곳에서 차로 10분 거리에는 국내 최대 양반마을인 양동마을이 있다.

또 들머리로 향하는 길엔 국보 제40호인 정혜사지 13층석탑이 똬리를 틀고 있어 이래저래 일거다득(一擧多得)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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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로 가는 길에 도덕산을 배경으로 홀로 서 있는 국보 제40호인 정혜사지 13층석탑을 만난다.
 
산행은 독락당 주차장~옥산저수지~월성 이씨묘(들머리)~경주 이씨묘~낙동정맥길 삼거리~낙동정맥 갈림길~봉좌산 이정표~봉좌산(600m) 정상~임도~잇단 묘지 넷~어래산(563m) 정상~옥산서원~독락당 주차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6시간 내외. 멧돼지를 조우할 만큼 인적이 드물지만 길은 대체로 또렷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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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 옆 도로로 오른다. 이 길은 옥산저수지를 지나 봉좌산 아래 민내마을까지 이어진다. 왼쪽에 자옥산 도덕산이 저 멀리 확인된다.

도덕산 등산안내도와 세심마을 농사체험장, 그리고 정혜사지 13층석탑, 도덕산 영광사를 잇따라 지나 우측 관음사 방향으로 향하면 옥산저수지. 길 옆에는 노란 달맞이꽃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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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좌산 정상 봉좌암에 선 이창우 산행대장이 주변 조망을 살피고 있다.


저수지를 반쯤 돌면 소나무가 거의 분재 수준. 곡각지점 볼록거울 맞은 편 월성 이씨묘가 보인다. 묘지 옆 산길이 들머리다. 처음부터 땀깨나 흘릴 각오를 하고 오르자.

껍질이 거북등짝 모양인 소나무가 아주 운치있으며 경주 이씨묘 주변에서 절정이다. 이때부터 숲속에 파묻힌다. 하늘도 보이지 않는 세상과의 단절이다.

계속되는 된비알. 1시간40분 정도 이어진다. 물론 내리막도 평평한 오솔길도 반복되지만 큰 흐름은 오르막이다. 인적이 드물어 낙엽이 고스란히 제모양을 한 채 쌓여있고 비비추 원추리 술패랭이도 볼 수 있다.

산허리를 크게 돌면 한 순간 우측 산사면이 벌거숭이로 보이는 지점에 닿는다. 상봉은 우측 건너편. 당연히 등로는 우로 크게 휘어지는 시계방향. 잠깐의 내리막 뒤 갈림길. 이때부터 낙동정맥길로 뚜렷하다. 왼쪽 도덕산 자옥산, 우측 봉좌산 방향. 우로 간다. 여기서 20분 뒤 낙동정맥 갈림길. 왼쪽 이리재를 거쳐 포항 운주산, 오른쪽 봉좌산 어래산 방향.

  
 
7분 뒤 '봉좌산'이라 적힌 첫 이정표를 만나고 여기서 9분 뒤 상봉에 닿는다. 암봉이다. 봉황 모양을 한 봉좌암이다. 조망은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정상석을 보고 서면 왼쪽에서부터 도덕산 자옥산 천장산 기룡산 운주산 침곡산 비학산 내연산 향로봉이 시야에 들어오고 어래산은 오른쪽 저 멀리 세번째 봉우리. 두번째가 암봉이니 참조하길.

정상에서 20m정도 내려오면 갈림길. 왼쪽은 기도원으로 내려서는 길. 20분 뒤 안부에 닿고 길은 산허리를 돌아나간다. 송림을 지나면서 멧돼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러고보니 산길이 온통 멧돼지가 다닌 흔적이 역력하다.

첫번째 봉우리를 넘고 두번째 암봉까지는 정상에서 대략 1시간. 짧지만 땡볕 속 암릉을 내려서면 다시 안부에 닿고 여기서 10여분 뒤 임도 사거리와 만난다. 왼쪽 포항 기계면, 오른쪽 민내마을 방향. 갈림길 사이 산으로 바로 올라선다. 10분 뒤 잇단 묘지 4기를 지나면 다시 7분 뒤 권씨묘. 세번째 봉우리다. 봉좌산 정상에서 보면 세번째 봉우리가 어래산이었는데 막상 다가가니 봉우리가 하나 숨어있었던 셈.

5분 정도 내려서면 안부에 닿고 이때부터 본격 어래산으로 향한다. 안 보이던 기암괴석이 연이어 나타나는 급경사 된비알이다. 5분 뒤 밧줄을 잡고 통과해야 하는 바위틈을 지나면 사실상 오르막길은 끝. 10분 정도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걸으면 헬기장. 어래산 상봉은 여기서 10분 뒤. 정상석은 없고 녹슨 철제망루가 외로이 서 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나무를 베어놓아 왼쪽 안강 방면으로 시원한 조망을 제공한다. 특히 예부터 곡창지대인 광활한 안강들녘의 푸름이 인상적이다. 하산길은 쉬엄쉬엄 내려서면 된다. 50분이면 옥산서원에 닿는다. 사실상 산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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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재 이언적 선생이 말년에 세상과 발길을 끊고 책을 벗삼아 보낸 독락당.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도 무사히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였던 옥산서원은 만개한 분홍빛 백일홍이 옛 고가와 무척 잘 어울린다. 서원 옆을 흐르는 자계천변 세심대 반석을 지나 외나무 다리를 건너면 옥산식당 앞. 여기서 독락당 주차장까지는 6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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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서원 옆을 흐르는 계류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 교통편-경주서 안강 독락당행 203번 시내버스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경주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30분 첫 차를 시작으로 15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000원.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들머리인 독락당 앞 종점까지 가는 제일교통 203번 시내버스는 오전 8시50, 11시50분에 있다. 1100원. 참고로 옥산서원 입구까지 가는 버스는 202 205 206 207 208번이 있다. 대신 20~30분 정도 걸어야 한다.

독락당 앞 버스정류장에서 경주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시20, 5시35, 7시50분(막차)에 있다. 경주터미널에서 노포동터미널행 시외버스는 15분 간격으로 막차는 밤 9시50분에 출발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주IC~보문단지 입구 지나~포항 울진 7번 국도~포항 안강 방면~7번 포항~영천 안강 28번 국도~28번 안강 방면~대구 영천~양동마을 입구 지나~옥산서원 방향 우회전~옥산서원 지나 독락당 주차장 앞 순.

# 떠나기전에-식수 충분히 준비하고 긴 옷 입어야

정상에 봉좌암이라는 봉황모양의 바위가 있는 봉좌산(鳳座山)과 옛날 해일이 닥쳐 바닷고기가 산까지 올라왔다 해서 명명된 어래산(魚來山)은 경주 안강읍과 포항 기계면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봉좌산을 지나 어래산으로 가는 산길에는 '(경주·포항)시경계종주'라고 적힌 리본을 볼 수 있다. 봉좌산은 낙동정맥이 운주산을 지나 이리재로 내려선 후 도덕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상에서 0.7㎞ 정도 벗어나 어래산으로 이어진다.

산행팀은 과거 옥산서원 인근 산장식당 앞에서 출발, 자옥산~도덕산~봉좌산~포항 치동마을, 안강읍 하곡~삼성산~도덕산~정혜사지 13층석탑, 도덕산 도덕암~천장산 코스 등을 소개했다.

이번에 소개한 봉좌산~어래산 코스는 독락당 및 옥산서원 인근에서 출발하는 산행코스의 결정판인 셈. 체력에 자신있다면 더위가 한풀 꺾일 때쯤 자옥산~도덕산~봉좌산~어래산 원점회귀 코스에 도전해볼 것을 권한다.

아쉬운 점 하나. 옥산서원 옆을 흐르는 자계천 계류를 가로지르는 외나무 다리가 최근 교체됐다. 하지만 폭이 아주 넓은데다 밝은 목재 색깔이 그대로 드러나 영 운치가 없다. 자고로 외나무 다리는 좁고 고색창연하면서 아슬아슬해야 되는데 말이다.

고백컨대 여름산행지로 약간 적합하지 않다. 식수는 충분히 준비하고 긴옷을 입어야 한다.

※대중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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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가포르가 관광국가 맞습니까.
 아시아를 넘어 세계 무역과 금융 그리고 항만의 중심지인 싱가포르는 관광국가가 맞는 듯합니다. 서울과 면적이 비슷한 싱가포르의 인구는 450만 명. 그렇다면 지난 한 해 싱가포를 찾는 외국인은 얼마나 될까요. 싱가포르 관광청에 따르면 지난해 싱가포를 찾은 외국인은 싱가포르 인구의 두 배인 9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 같은 사실 하나만으로 싱가포르는 작지만 큰 관광대국으로 공인받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산호가루의 화이트비치도 하나 없는데.
 싱가포르 관광청 양지선 차장은 "톡톡 틔는 아이디어와 한 수 앞을 내다보는 혜안, 그리고 거기에 따른 선택과 집중에 의한 대규모 투자가 바로 성공의 열쇠"라고 요약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나이트 사파리, 그 유명한 주롱 새공원, 센토사섬 등 톡톡 틔는 발상의 전환의 결과물이 여럿 있지만 그래도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보타닉 가든이었고, 또 하나는 인공비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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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타닉 가든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내는 국립 오키드 가든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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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숙 난을 알리는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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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식물원  격인 보타닉 가든은 우선 금싸라기 땅인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해 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입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보타닉 가든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내는 곳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싱가포르 최대 난공원인 국립 오키드 가든입니다. 1000여 종의 난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도 품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답니다. 여기까진 여느 나라와 별 반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새 품종을 개발하면 아껴뒀다가 싱가포르를 방문한 유명 인사의 이름을 붙여주는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해서, 이른바 VIP 오키드 가든에는 고 다이애나 비, 대처 전 영국 수상, 영화배우 성룡 배용준 권상우 난 등이 있습니다. 지난 2003년 싱가포를 국빈 방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의 이름을 본 딴 '양숙 난'도 있습니다. 속된 말로 자기 마누라에게 이처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멋진 선물을 했는데 누가 감히 뒷통수를 치겠습니까. 2MB도 싱가포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외교 전략을 짜야 될 듯합니다.
 참 '대처 난'은 대처 전 수상이 여러 난을 보던 중 '아 내꽃이야!'를 연발해 즉석에서 명명됐다고 전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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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수를 심고 돌을 쌓아 인공섬을 만든 후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한 모래를 깔아 만든 인공 비치. 열에 열 모두 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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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비치 바로 안쪽에는 리조트 야외수영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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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싱가포르 최대 관광지인 센토사섬의 인공 비치입니다. 본 섬에서 남쪽으로 불과 800m 떨어져 있는 센토사섬의 남쪽 해변에는 야자수를 심고 돌을 쌓아 인공섬을 만들고 인도네시아에서 모래를 수입해 인공 비치를 조성해 놓았습니다. 자연 발생적인 해변의 비치와 하나도 다를 게 없어 열에 열 모두 깜짝 놀랍니다. 기발한 발상에 그저 혀를 내두를 뿐이었습니다.
 센토사섬은 현재 또 한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섬 입구 일부 시설을 허물고 대형 리조트와 카지노를 지어 인근의 대형 쇼핑센터인 비보시티와 무궤도 열차로 잇는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얼핏 싱가포르와 카지노는 어울리지 않지만 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우리의 위대하신 2MB의 대운하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막대한 돈을 퍼붓더라도 이런 데 쏟아야지 않겠습니까. 선택과 집중이란 말이 이런 곳에 적확할 듯 싶습니다.

 오랜 친구인양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캠프데이비드 별장에서 사진 찍는게 실리입니까. 과거는 과거이고 미래가 중요하다며 일본 국왕에게 고개 숙이는 것이 실용입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경제를 살린다구요. 부자들 세금 깎아 주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겁니까. 국민들이 허탈해서 그저 쓴웃음만 지어요. 그거 아시나요.
 괜히 2MB 떠올렸다가 열이 올라옵니다. 이 무더운 밤에. 해서, 2MB를 머릿 속에서 지우며 쫑을 내야 할 것 같습니다.

12폭포 걸려 있는 포항 천령산 청하골(일명 보경사계곡)

4㎞ 걸쳐 연산폭 등 12폭포 절경
산행내내 시원한 바람 부는 그늘
향로·삿갓봉 등 주변산 조망 가능
'산·계곡·바다' 삼박자 갖춘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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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골 최고의 폭포인 연산폭포. 30m 높이에서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이번 주 산행지는 경북 포항시 천령산 청하골. 천년고찰 보경사에서 출발해 흔히 보경사계곡으로도 불리는 청하골은 내연산(삼지봉) 향로봉 매봉 삿갓봉 천령산(우척봉) 문수봉 등 6개의 봉우리에 의해 말발굽 모양으로 에워싸져 있다.

흔히 이 봉우리들은 모두 내연산군으로 분류되지만 유독 천령산만 개별 봉우리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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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산폭포 바로 아래 위치한 관음폭포. 연산구름다리를 지나면 연산폭포가 바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이창우 대장은 "천령산은 조선 후기까지 신구산(神龜山) 또는 하늘같이 높다 하여 하늘재라 불리다가 일제강점기에 천령산으로 바뀌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그런 것 같다"며 "하지만 주능선이 연결돼 있는 데다 산세 또한 유사해 내연산군으로 넣어도 무방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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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쌍폭이라 불리는 상생폭포(왼쪽)와 주변의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기암절벽.


경북의 '금강'이라 불리는 청하골은 4㎞여에 걸쳐 무려 12개의 폭포가 있어 일명 '12폭포골'로 불린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넓은 소와 병풍처럼 둘러싸인 기암괴석, 그리고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소나무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산행은 포항 청하면 보경사 집단시설지구 주차장(버스 종점)~보경사~청하골계곡(상생폭~보현폭~보현암~무풍폭~관음폭~연산폭포)~비하대~우척봉 삼거리(음지밭뚝)~천령산 우척봉(770m)~삼거리 이정표(시명리 방향)~계곡(청하골 상류)~잇단 너덜~흔들다리~은폭~우척봉 삼거리(음지밭뚝)~보경사~주차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6시간10분 안팎. 여름산행치고는 꽤 길지만 오를 때와 하산할 때 계곡과 나란히 걷는 데다 산길 또한 시종일관 시원한 바람이 부는 숲길이라 그리 힘들지 않다. 여기에 일부 능선길에선 동해바다의 넘실대는 파도가 바로 보여 '산·계곡·바다'의 3박자를 동시에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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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보경사까지는 걸어서 대략 12분. 노송의 운치가 시선을 끌지만 진입로가 짧은 것이 흠이다. 입구의 감로수를 한 잔 들이키고 잠시 경내를 둘러보자. 불국사 말사인 보경사는 현재 설법전 해체 복원불사가 진행 중이라 다소 어수선하다.

등산로는 절 좌측. '연산폭 2.7㎞, 향로봉 7.9㎞'라 적힌 이정표가 이를 확인시켜 준다. 200m쯤 뒤 서운암 입구를 지나면서 청하골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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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암 갓바위(왼쪽)와 산행 도중 바라본 보경사와 광활한 동해바다.

 
12폭 중 첫 폭포는 상생폭포.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암절벽 아래 두 가닥의 물줄기가 떨어져 일명 쌍폭이라 불린다. 절에서 30분 걸린다. 보현폭은 10분 뒤 안내판을 먼저 만나지만 정작 폭포는 보이지 않는다. 5m쯤 더 가야 비로소 좌측 바위 사이에 숨어 있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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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을 지나면 만나는 천령산 안내판(왼쪽)과 천령산 정상인 우척봉.

10분 뒤 산내 암자 보현암. 절집이라 입구에 예의 상사화가 피어 있고 경내에는 수국이 객을 맞는다. 샘터가 있으며 암자 뒤 1분 거리엔 갓부처가 조성돼 있다.

되돌아가지 않고 진행 방향으로 간다. 8분 뒤 쇠줄이 둘러쳐져 있는 지점 한 편에 연산폭포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혼돈하기 쉽지만 쇠줄 인근 폭포는 무풍폭이다. 연산폭은 머리 위 현수교를 건너면 만나며 두 줄기의 관음폭은 눈앞의 조잡한 다리 쪽으로 가야 잘 보인다. 주변 소나무가 걸린 학소대의 경관도 무척 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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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때 만나는 은폭포. 연산폭포 상류에 위치해 있다.


우선 계단을 올라 연산구름다리를 건너면 만나는 연산폭은 청하골 최고의 폭포답게 30m 높이에서 힘찬 물줄기를 쏟아내며 연산구름다리 아래의 관음폭 주변엔 억겁의 세월 동안 차별 침식을 받은 듯 여러 개의 굴이 형성돼 신비감을 자아낸다.

연산폭에선 더 이상 전진이 안돼 다시 내려와 계류를 건너면 좌측에 등로가 열려 있다. 에돌아 올라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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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사 경내와 홑왕원추리.

 
꽤 험해 밧줄이 걸려 있다. 오르막 끝 '빙방사'라 적힌 팻말이 위치한 곳은 비하대이며 동시에 갈림길. 좌측으로 조금만 가면 또 갈림길. '등산로'라 적힌 팻말을 따라 가면 이내 우척봉 삼거리, 일명 음지밭뚝이다. 직진하면 연산폭 상류의 은폭포와 향로봉 방향, 산행팀은 은폭포의 경우 하산길에 보기로 하고 왼쪽 우척봉으로 오른다. 고된 된비알의 연속이지만 애오라지 그늘진 외길이라 힘을 덜어준다. 40여 분 뒤 급경사 오름길이 끝나며 작은 봉우리에 선다. 그간 안 보이던 안내 리본도 제법 눈에 띈다. 동시에 갈림길. 좌측으로 가면 내연산군을 조망해볼 수 있는 전망대가 둘 있다. 왼쪽 전망대에 서면 정면 내연산 삼지봉, 그 우측 뒤로 동대산, 삼지봉 좌우측으로 각각 향로봉과 문수봉 및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청하골을 중심으로 말발굽 모양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우측 끄트머리 전망대에선 발아래 보경사와 정면으로 보경사 주차장으로 떨어지는 용치등 능선과 역시 동해바다가 보인다.

이어지는 산길. 비교적 평탄한 능선이 한동안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20분 뒤 갈림길. 왼쪽은 방금 전 본 용치등을 타고 내려서는 보경사 주차장, 산행팀은 직진형 우측 우척봉(1.2㎞) 방향으로 간다.

10여 분 뒤 헬기장과 천령산을 소개하는 대형 입간판을 잇따라 지나면 마침내 천령산 우척봉 정상. 반듯한 자연석인 정상석엔 '牛脊峯'이라 적혀 있다. '소 우 자'에 '등뼈 척 자'로 소 잔등처럼 생겼다는 의미이다.

자연석에 서서 남쪽으로 뒤돌아보면 전망대 뒤쪽이 내연산수목원이며 전망대 왼쪽 앞이 삿갓봉, 그 뒤 높은 산이 비학산, 전망대 우측 둥그스럼한 것이 매봉, 그 뒤 괘령산, 다시 그 우측으로 낙동정맥이 확인된다.

정상에서 하산로는 두 갈래. 정상석 왼쪽으론 삿갓봉을 거쳐 내원산수목원, 산행팀은 정상석 우측 삼거리(시명리) 방향으로 간다. 10분 뒤 만나는 갈림길에선 우측 시명리 방향으로 내려선다. 10여 분 뒤 너덜과 쓰러진 나무를 가로질러 급경사 내리막을 힘겹게 20분 정도 걸으면 청하골 상류에 닿는다. 바로 계곡을 건너면 갈림길. 왼쪽은 지도상의 삼거리를 지나 내연산수목원 가는 길, 산행팀은 원점회귀를 위해 우로 간다. 곧 작은 능선으로 힘겹게 올라서면 갈림길. 왼쪽은 오래 전 화전민이 거주하던 시명리에서 올라오는 길, 우측길을 택한다.

이내 갈림길. 왼쪽 내연산 삼지봉으로 이어지는 밤나무등 코스 대신 우측길을 택한다. 2분 뒤의 갈림길에서도 역시 우측으로 간다. 물마른 계곡을 건너면 만나는 갈림길에서 좌측길로 가면 계류에 닿는다. 청하골 지류로 실폭이 있는 잘피골이다. 우측으로 시명폭포가 위치해 있다. 산행팀은 바로 계류를 건너 산허리를 타고 복호 1·2폭포 쪽으로 향한다.

잇단 너덜을 지나 10분이면 다시 계류와 만난다. 나무에 걸린 '계곡횡단'이라 적힌 이정표를 따라 계류를 건넌다. 7분 뒤 심하게 흔들리는 출렁다리를 건너 계류와 나란히 12분쯤 걸으면 마침내 은폭. 바위 사이로 쏟아지는 폭포수가 하산길의 피로를 싹 가셔준다.

산행은 이제 막바지. 계류를 따라 등로를 두어 번 오르내리면 계류에 내려서고, 다시 계류를 건너면 이내 사실상 산행이 시작됐던 우척봉 삼거리인 음지밭뚝. 여기서 왔던 길로 내려서면 보경사까지 대략 1시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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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나무에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떠나기전에-12폭포 안내판 일부 없어 아쉬움 남아

4㎞에 달하는 청하골은 알려진 대로 계곡을 따라 12개의 폭포가 있다. 하류에서부터 상생폭 보현폭 삼보폭 잠룡폭 무풍폭 관음폭 연산폭 은폭 복호1폭 복호2폭 시명폭과 청하골의 지계곡 중 하나인 잘피골의 실폭이 바로 그것이다. 순수하게 청하골만 따진다면 11개인 셈이다.

산행팀이 이번에 직접 확인한 것은 상생폭 보현폭 무풍폭 관음폭 연산폭 은폭 등 6개. 보경사에서 2.7㎞ 떨어진 연산폭까지는 관광객들이 쉬이 다녀갈 수 있다는 점에서 삼보폭과 잠룡폭의 경우 폭포의 규모가 작더라도 팻말 하나쯤은 세워뒀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복호1·2폭은 등산로와 계곡이 상당히 떨어져 있어 물리적으로 볼 수 없었으며 시명폭과 실폭 또한 정확한 위치 표시가 없어 확인할 길이 없었다.

문화재 관람료도 문제다. 올 초 국립공원입장료 폐지 이후 조계종 산하 각 국립공원 사찰들의 문화재 관람료가 최고 43%까지 인상돼 시민사회단체들이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며 행동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불국사의 말사인 보경사까지 2000원씩이나 되는 문화재 관람료를 받고 있다. 이는 통행세가 아니기 때문에 문화재를 보지도 않는데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보 하나 없고 변변한 유물전시관도 없는 보경사가 이처럼 관람료를 받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이날 청하골을 찾은 산꾼들의 불만이다. 실제로

산행팀은 사찰측과 산꾼들이 관람료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장면을 수 차례 목격했다.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에 따르면 현 문화재보호법 제39조에는 국민들이 관람료를 내지 않아도 이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다고 한다.


#교통편-노포동서 포항행 버스 10분 간격 출발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포항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3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1시간15분 걸리며 요금은 7000원. 포항터미널 인근에서 보경사행 500번 좌석버스는 오전 7시, 7시50분, 9시20분, 10시50분, 낮 12시30분에 출발한다. 1500원. 정류장은 터미널에서 나와 길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날머리 보경사 주차장에서 포항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시, 5시, 6시30분, 7시30분(막차)에 있다. 포항터미널에서 부산행 버스는 10분 간격으로 있으며 막차는 밤 10시30분에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주IC~7번 포항~울진 포항 위덕대 7번~울진 영덕 28번-포항시내 우회도로(이쯤에서 포항 7번 국도는 포항시내로 들어가는 것임)~위덕대 지나~울진 영덕~송라 보경사~보경사 주차장 순.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기암에 계곡·그늘까지… 맛깔스런 섬 산행

수려한 절벽과 파도소리
햇볕 가려줄 공간도 넉넉
맑은 날 대마도가 한눈에
국수봉 군작전로 유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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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중 만나는 옛 해안초소에서 바라본 가덕도 기암절벽.



영도의 1.6배로 부산서 가장 큰 섬인 가덕도는 요즘 심히 혼돈스럽다.

지난 1989년에야 부산으로 편입된 막내섬 가덕도는 임진왜란 등 전시엔 해상요충지로, 4년 전 태풍 매미 땐 큰 피해로 약간의 관심을 끌었을 뿐 평소엔 언제 그랬냐는 듯 늘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섬이 거의 산으로 이뤄져 활용가치를 못 느낀 때문이었을까.

덕분에 신라 때부터 거의 축구공처럼 지금의 김해 진해 창원 마산 등 인근 지자체로 소속이 바뀌는 유랑의 아픔을 겪었다.

시계를 앞당겨 현 시점인 2005년 가을.
가덕도는 서부산권 개발의 핵심으로 떠올라 부산시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귀하신 몸이 된 것이다.

부산신항과 부산~거제를 잇는 거가대교 등 대역사(大役事)의 중심에 서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을 들이대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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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도중 만나는 옛 해안 초소 아래 바닷가 초병들이 근무를 서던 곳(왼쪽). 우측은 이보다 윗쪽에 위치한 해안초소. 입구엔 철조망과 순찰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해안초소였던 만큼 전망이 아주 빼어나다.


하지만 가덕도 주민들의 표정은 떨떠름하기만 하다. 허울 좋은 대역사에 삶의 터전을 깡그리 내주고 정작 주민들은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항 남측컨테이너부두는 어민들의 생업을 앗아갔고, 섬 일주도로 계획도 없이 부산과 섬을 잇는 도선을 없앤다고 한다. 투기자본이 몰려 70% 이상의 토지가 외지인의 소유가 된 지 오래다.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에 순응하면서도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엔 ‘불편해도 맘 편히 살던 이전이 그립다'는 향수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래서 가덕도와 가덕도 주민들 그리고 해맑게 가덕도를 찾은 기자 모두가 혼돈스럽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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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봉 정상에서. 정면에 보이는 봉우리는 군부대가 위치한 국수봉. 왼쪽 아래 마을이 대항새바지, 고개 넘어 오른쪽 마을은 대항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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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봉 정상석과 봉수대.


그간 산행팀이 소개한 가덕도 산길은 천성~연대봉~선창, 눌차~강금봉~응봉산~매봉~웅주봉~선창, 천성~대항고개~연대봉~대항새바지~대항 코스 등.

이번엔 가덕도 산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매봉~연대봉~국수봉 코스를 소개한다. 파도소리에 취하고 기암절벽에 놀라는 그런 길이다.

산행은 두문선착장~두문고개(천성공동묘지)~영주암~천성(가덕)고개(국군23용사 충혼비)~임도~매봉(359m·산불초소)~어음포곡(산불초소)~연대봉(459m)~어음포곡~계곡수~옛 집터~연대봉 갈림길~옛 해안초소~대항새바지~전봇대(배수펌프 가건물)~동백나무 군락지~군부대 통행시간 제한 경고판~무명봉(군진지 참호)~국수봉(269m)~군벙커~개사육장~외항포할매집(슈퍼)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6시간10분 안팎. 길찾기는 대체로 평이하나 일부 구간이 까다로워 국제신문 노란 리본을 반드시 참조하자. 일반적인 섬 산행길과 달리 이번 코스에는 계곡과 그늘이 있어 햇볕이 약간 따가워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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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선착장에서 하선한 후 왼쪽으로 100m쯤 가면 길 우측에 ‘두문길'이라 적힌 이정표. 국군충혼비 방향인 우측으로 오른다. 15분 뒤 천성공동묘지가 위치한 두문고개. 아름드리 소나무를 따라 가면 영주암을 지나고 여기서 14분 뒤 천성예비군 교장이 보이는 천성(가덕)고개에 닿는다. 한국전쟁 때 산화한 젊은 넋을 모신 ‘국군23용사 충혼비' 우측으로 간다. 충혼비 우측으로 강금봉과 암봉인 응봉산이, 좌측엔 갈마봉이 보인다.

이제 본격 산길. 하지만 이어지는 산길은 가시밭길이라 꽤나 힘겹다. 20분이면 무명봉을 살짝 넘어 임도에 닿는다. 바로 길을 건너 산으로 오른다. 경사가 심하지 않은 데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눈길을 붙잡는다.

14분 뒤 매봉 정상. 초소가 없다면 정상인지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조망 등 아무 특징이 없다. 직진하면 응봉산 강금봉, 산행팀은 오른쪽 연대봉 방향으로 간다.
15분 뒤 안부인 어음포곡. 초소와 연대봉 등산안내도가 서 있다. 연대봉은 선택사항. 여기서 왕복 35분 걸린다. 정상석보다 봉수대가 눈길을 끈다. 원래 봉수대는 정상 옆 일명 낙타봉이라는 암봉에 설치돼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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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절벽 아래 해안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조사들이 대물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자. 발 아래 벌겋게 흙이 드러난 봉우리가 최근 거가대교 휴게소 설치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는 천수말, 그 옆이 천성마을이고, 거제도 쪽 섬 중 4번째가 대통령 별장이 있는 저도다.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낙타봉 왼쪽으로 녹산산단 진우도 몰운대 태종대가 보인다. 날이 맑을 땐 낙타봉 우측으로 대마도도 보인단다.

하산은 낙타봉 옆으로 난 길로 대항새바지 가는 길과 낙타봉 우측 천성 방향으로 열린 두 가지가 있지만 두 길 모두 이미 소개한 터라 어음포곡으로 되돌아간다.

연대봉 등산안내도 뒤로 난 길로 향한다.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처녀길이다. 15분 뒤 계곡을 만나면 계속 따라 내려간다. 10여 분 뒤 갈림길. 우측으로 내려서면 옛 집터. 그 옆에는 계곡수가 흐른다. 계곡 쪽에서 보면 집터 흔적인 석축이 확인된다.

곧 갈림길. 계곡길을 버리고 우측 산길로 갈아탄다. 연대봉 3, 4부 능선으로 이어지는 이 산길은 해안가를 돌아 대항새바지로 연결된다. 가시덤불에다 발밑의 돌이 잡풀에 가려져 있어 고생깨나 해야 한다. 하지만 등로 좌측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위안이 돼 그나마 다행이다. 50분 뒤 다시 갈림길. 이 길은 연대봉 옆 낙타봉을 거쳐 하산하는 길이다. 50m 뒤 다시 갈림길. 해안가를 끼고 걷는 왼쪽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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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두문마을 안내석(왼쪽). 우측은 한국전쟁 때 산화한 젊은 넋을 모신 국군23용사 충혼비. 천성(가덕)고개에 위치해 있다.

6분 뒤 폐쇄된 해안초소. 입구엔 아직 철조망과 순찰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잠시 해안가로 내려가 해안절벽의 절묘함과 망망대해의 광활함을 느껴보자.
초소에서 대항새바지까진 10분. 마을을 통과, 3분 뒤 배수펌프 가건물이 아래에 있는 전봇대 옆으로 난 산길로 향한다. 국수봉 가는 길이다. 국수봉에는 군부대가 있어 산행팀이 안내하는 길 바깥으로 이탈하면 군인들에 의해 제지를 당하니 유의하자.

동백나무 숲과 군부대 통행시간 제한 경고판을 잇따라 지나면 오르막 산길. 25분 뒤 왼쪽으로 90도 꺾는 지점에서 오른쪽 능선을 타고 오른다. 산길 흔적이 없기에 유의하자. 왼쪽은 해안초소길로 출입통제지역이다.

30분 뒤 일본군이 파놓은 참호가 있는 무명봉. 전망은 없다. 여기서 왼쪽으로 10분이면 국수봉에 선다. 역시 참호가 있고 전망은 없다.

하산은 오른쪽길로 내려선다. 안부에서 다시 오르면 군벙커. 통로를 따라 통과한 후 50m쯤 가면 갈림길. 왼쪽으로 간다. 이 길만 찾으면 산행은 사실상 끝.
지그재그길을 따라 내려서면 외항포마을 직전 개사육장. 곧 외항포할매집(슈퍼)에 닿는다. 선착장은 바로 이웃해 있다.

#떠나기전에-가덕도 김태복씨 산 사랑 유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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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베낭에는 간이 톱이 들어 있다. 산길을 막고 있는 웃자란 가시덤불과 잡풀을 베어내기 위해서다.

이번 산행에는 부산 용원산악회 김태복(53)씨가 동행했다. 그는 가덕도를 오가는 도선 운영사인 가덕 진영해운의 사장이다.

가덕도에서 태어나 15살까지 그곳에서 자란데다 지독한 산꾼이기도 해, 단언컨대 가덕도 산에 관한한 가장 정통하다. 지금까지 소개된 가덕도 산길 대부분도 모두 그가 개척했고 동시에 산행팀과 동행했다.

이 때문에 부산의 내로라하는 산꾼들도 가덕도 산행에 앞서 그에게 산길 문의전화를 하는 것이 보편화돼 있을 정도다.

이번 산행은 예기치 않게 웃자란 가시덤불과 잡풀로 인해 예상보다 길었고 힘들었다. 참다 못한 그가 비상용 간이 톱으로 가지를 베는 등 일일이 길을 뚫으면서 나아갔다.

지독히 산을 사랑하는 한 산꾼의 숨은 노력이 많은 동료 산꾼들의 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한다는 사실에 산꾼의 한 사람으로서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 하나. 그는 매일 오전 6시면 선착장에 출근, 오전에는 선착장에 거의 머물고 오후부터 대외업무를 본다. 초보자일 경우 가덕도 산길 문의는 배 출발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그에게 물어보면 해결된다.

"이번 코스는 가덕도에서 드물게 그늘과 계곡을 만납니다. 더울 땐 흔히 섬산행을 기피하지만 이번 코스로 섬산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가 본 이번 코스의 간략한 설명이다.

대항새바지마을 옆 해안가에는 일제가 만든 동굴이 있다. 진지와 관측소로 이용된 흔적이다. 날머리인 외항포도 마찬가지. 외항포 뒷산인 국수봉에 참호와 벙커 포대진지가 남아있는 것도 모두 이런 맥락에서 보면 된다. 추정컨대 일제는 결국 외항포마을로 가는 지그재그 하산길로 올라 국수봉에 진지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11월1일~이듬해 5월31일 산불예방기간에는 출입을 통제한다.

#맛집

두 곳을 소개한다. 대항마을의 소희네집(051-971-8886). 해산물 정식으로 유명하다. 제철의 멍개 해삼 새우 소라 등 23가지 반찬과 바지락 미역국이 나온다. 7000원. 4인 기준 한 상 단위로 판매한다.
소희네집 인근의 자연산 횟집(051-971-1548). 주인이 직접 잡아 우선 싱싱하며 양도 육지보다 훨씬 많다. 매운탕엔 두툼한 살코기가 들어있다. 두 집 모두 예약 필수.


#교통편-녹산서 2시간마다 두문마을행 배

지난해 4월 새로 생긴 신항만선착장(051-971-9664)에서 배편을 이용한다. 신항만선착장은 지하철 1호선 하단역 5번 출구로 나와 58번 버스를 이용한다. 30~40분 간격으로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을숙도~강서경찰서~경마공원 방면~세산삼거리에서 좌회전~진해 방면~신항만선착장 순. 주차장은 아주 넓다. 신항만선착장에서 들머리인 두문마을행 도선은 오전 7시30분, 9시30분, 11시30분에 출발한다. 1500원. 날머리인 외항포에서 신항만행 도선은 오후 2시45분, 4시45분에 있다. 2400원.
참고로 기존의 녹산선착장(051-831-9664)에선 눌차 선창까지만 운행한다. 지하철 1호선 하단역 앞에서 58-1, 58-2번 버스를 이용한다. 오후 6시40분부터 1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1200원.

※대중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리본·기사보며 산행하는 문화 만들어

서울·대전서도 "산행지 결정에 영향"
無名山 문헌·증언 통해 이름 찾아줘
몸 담은 기자만 7명·산행대장도 3명


인기리에 연재 중인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가 13일(2006년 10월) 자로 500회를 맞았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어느새 훌쩍 넘겨버린 것이다. 돌이켜 보면 정말 곡절이 많았다. 내부적으론 너무 오래됐으니 이제 막을 내리자는 고비를 두어 번이나 넘겼고, 외부적으론 질시의 대상이 돼 한동안 산행 안내 리본이 난도질 당하는 아픔도 수 차례 겪었다. 정말 앞뒤 안 보고 쉼없이 달려왔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지나온 길을 반추해보고 향후 갈 길을 짚어본다.


#부울경을 넘어 이제 전국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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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 보성 일림산 철쭉.  
 
 
지난 7월 국제신문 주말레저팀은 '올빼미 산꾼들'을 주제로 야간산행을 특집기사로 다룬 적이 있다. 당시 취재대상이었던 야간산행 동호회 '달빛 따라 산길 따라(cafe.daum.net/msms2)'의 카페에는 보도가 나간 뒤 놀랄 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회원 가입자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부산·울산·경남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신문에 보도된 이후 가입한 신입 회원의 3분의 1 정도가 서울 경기 충청 전라 경북 등 국제신문이 배달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동호회 권헌영 회장과 김삼문 산행대장은 이러한 사실이 너무 궁금해 신입 회원들의 가입동기를 일일이 확인해 본 결과 부산·울산·경남지역은 물론 타 지역의 모든 신입 회원들이 가입동기로 국제신문의 '달빛 따라 산길 따라'의 기사를 보고 야간산행에 관심이 생겨서라고 적어놨다고 밝혔다.

때문에 권 회장과 김 대장은 "시중에 회자되고 있는 '산을 좀 타는 산꾼이라면 이제 지역을 불문하고 국제신문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김 대장은 한가위 명절 때 국제신문의 위력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했다.

대전의 모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친동생이 최근 등산하는 재미에 빠져 주말이면 거의 거창이나 함양의 산을 찾는다고 말해 꼼꼼히 물어봤다. 그도 그럴 것이 동생은 몇 년 전만 해도 산과 담을 쌓고 지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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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夏 구만산 구만폭포
 
김 대장에 따르면 동생은 40이 넘으면서 격무로 차츰 건강에 적신호가 오자 연구소 등산모임에 가입했다. 그러던 중 산행대장을 비롯한 모든 회원들이 국제신문의 근교산 시리즈를 매주 보면서 산행지를 정하고 있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것. 그러면서 "동생은 국제신문이 소개한 거창 함양의 근교산은 이제 연구소 등산모임의 바이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김 대장은 전했다.

대전뿐만 아니다. 국제신문 취재팀은 산이라는 매개로 전국의 산꾼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

영남알프스 종주를 하다가 길을 잃은 광주의 한 의사 산꾼은 캄캄한 밤에 우연히 국제신문의 노란 리본을 보고 연락, 이창우 산행대장의 도움으로 무사히 하산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취재팀의 무등산 산행 때 그의 도움을 받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기자는 우연히 서울의 한 아마추어 산꾼으로부터 책 한 권을 우편으로 받았다. 일면식이 없는 그였기에 기자는 직접 전화를 해 사연을 물어봤다.

그는 영남알프스를 홀로 산행하다 길을 잃었는데 우연히 발견한 국제신문의 리본을 보고 겨우 산행을 마쳤다. 이후 그는 국제신문이 '근교산'이라는 보석같은 방대한 자료를 갖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고는 산행 때마다 국제신문 홈페이지에서 얻은 많은 자료를 활용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만일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가 없었다면 책 저술기간이 훨씬 길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팀은 또 우리 마을의 숨은 산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도 거절할 수 없었다. 대표적인 곳이 진주의 광제산~집현산. 제보자는 진주시 명석면의 면장이었다.

고향에 부임한 그는 어릴 때 놀던 토종 소나무숲인 광제산이 현 시점에서 볼 때 최적의 산행지라 확신, 취재를 요청해 소개한 결과 많은 산꾼들이 찾아왔다고 고마움을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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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설악산 단풍
 


#신문의 시리즈 기사로는 전국 최장수

지난 1996년 1월 4일 '기장 달음산~철마산 종주산행(상)'을 시작으로 첫발을 내디딘 뒤 장장 10년9개월 만인 2006년 10월 13일 500회의 위업을 달성했다.

사실 근교산 시리즈는 이보다 3년 앞선 1993년 1월 '가볼 만한 근교산'이라는 타이틀로 부산의 진산 '금정산' 편을 소개한 후 이듬해 11월 87회 '밀양 정각산' 편을 마지막으로 1년10개월 간 연재됐다. 만일 '가볼 만한 근교산' 87회를 포함한다면 지금의 근교산 시리즈는 600회를 바라보는 셈이 된다.

이런 연유로 3년 뒤 재출발한 시리즈의 제목은 '다시 찾는 근교산'으로 변했고, 2003년 10월부터는 전국의 모든 산을 취재산행 대상지로 한다는 취지에서 '근교산&그 너머'로 새롭게 변신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서, 근교산 시리즈는 횟수만으로 볼 때 전국의 모든 신문에서 연재되고 있는 시리즈 중 최장수를 달리고 있으며, 따라서 근교산 기사가 매주 한번씩 게재될 때마다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것이다.

근교산 시리즈가 전국의 독자들에게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비결은 현지 취재에 따른 철저한 현장답사와 산행 후 미비점을 자료분석과 함께 전화로 재차 확인하는 취재의 기본을 한결같이 유지한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숨은 계곡과 능선이 지면을 통해 새로운 등산로로 등장하면 산행에 나서고 싶어도 산길을 몰라 감히 떠나지 못했던 초보 산꾼들도 누구나 쉽게 국제신문 리본을 보고 산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초보 산꾼은 물론 베테랑 산꾼들도 '이곳에 이런 코스도 있었나'라며 감탄을 잊지 않는다.

최근에는 등산 인구가 증가하면서 가족산행이 늘어 대중교통편 대신 승용차를 타고 손쉽게 다녀올 수 있는 원점회귀 코스를 집중적으로 개발해 산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산정산악회 김홍수 산행대장은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가 외풍에 흔들림없이 꾸준하게 산행인구의 저변을 넓히는 데 적지않은 공헌을 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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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冬 괘관산 설경
 


#'용장 밑에 약졸 없다' 최강의 산행대장

   
10여 년 간 근교산 시리즈에 몸을 실은 기자만 해도 배병주 박명도(퇴직) 조해훈 조봉권 박병률 김용호 기자 등 6명. 기자를 포함하면 7명인 셈이다.

하지만 근교산 취재팀을 실제로 이끈 숨은 공로자는 바로 산행대장들이다. 사실 취재기자들은 산행대장의 진두지휘 아래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할 뿐 근교산이라는 작품의 연출자는 산행대장이다.

국제신문의 역대 산행대장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부산을 대표하는 산악인이다. 용장 밑에 약졸 없듯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근교산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대 산행대장은 부산 산악계의 원로인 성산(75) 씨, 2대 산행대장은 건건산악회의 고문이자 베테랑 산악인 최남준(67) 씨, 3대 산행대장은 대학산악부 출신으로 독도법으로 부산 최고를 자랑하는 이창우(47) 현 산행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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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성산 초대 산행대장, 최남준 2대 산행대장, 이창우 현 산행대장.


성산 씨가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의 토대를 닦았다면, 최남준 씨는 주춧돌을 세웠고, 지금의 이창우 산행대장이 '근교산'이라는 멋진 건물을 올린 셈이다.

초대 근교산 취재기자였던 배병주 현 논설위원은 "당시로선 생소했던 산행안내 기사인 근교산 시리즈를 준비하다 보니 산행대장이 필요해 부산 산악계를 수소문한 결과 성산 씨가 적임자로 추천돼 직접 대륙산악회 사무실을 찾아가 모셨다"고 회고했다.

지금도 매일 아침 2시간씩 조기 등산을 한다는 성산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근교산 시리즈가 500회를 맞았다니 감회가 새롭다"며 "앞으로도 1000회, 2000회로 꾸준히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가볼 만한 근교산'을 성산 씨가 거의 맡았다면 최남준 씨는 '다시 찾는 근교산'의 산행대장으로 사실상 근교산 시리즈의 틀을 닦은 숨은 공로자였다. 최남준 씨는 바쁜 생업의 와중에서도 산행 전 반드시 답사를 하는 성실함을 보여 취재기자의 짐을 덜어줬다. 지금의 이창우 산행대장이 최남준 씨와 산행을 함께 하면서 (물론 결과론이지만) 산행대장 수업을 받은 것도 그때였다.

최남준 씨는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등산로가 없어 100%가 개척산행이었다"며 "등산로가 없는데다 웃자란 잡목이나 억새에 가려 동행한 기자와 산꾼들이 전혀 보이지 않아 고생깨나 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최 씨는 "국제신문은 전국의 어떤 언론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산행 부문에선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며 앞으로의 건승을 빌었다.

현 국제신문 산행대장인 이창우 씨는 설명이 필요없는 부산을 대표하는 산꾼. 정확히 1998년 1월 22일 90회 대운산 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예의 성실성으로 근교산 시리즈를 이끌고 있다.

일년 중 추석이나 설날 등을 제외하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근교산 시리즈를 이끈 그는 산길 찾기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 그리고 빼어난 독도법 등 산행대장으로서의 3대 덕목을 모두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그의 머릿속에는 대운산 천성산 등 부산근교의 산과 영남알프스의 모든 계곡과 능선이 입력돼 있어 '살아있는 GPS'라 불린다.

실제로 최근 기자는 그동안 연재했던 천성산 산행기사를 정리하다가 제2봉에서 내원사로 내려오는 도중 만나는 수 차례의 갈림길을 얘기하면서 이 대장의 머릿속에 그 길이 정확히 입력돼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남알프스 또한 함께 산행하는 도중 여러 차례 독자들의 전화를 받아 막힘없이 답하는 사실을 보면서 역시 산길을 꿰고 있음을 실감했다.


#근교산 취재팀의 성과 및 향후 과제

신문 기사와 안내 리본을 보면서 산행하는 독특한 등산문화를 선도한 취재팀은 그동안 국토지리정보원이 발간하는 지형도에도 없는 산 이름을 현지 마을의 어르신이나 산속 암자의 노승, 그리고 문헌 등을 통해 상당수 발굴했다. 경주 정족산을 비롯해 양산 채바우골만당, 밀양 구천산 정승봉 북암산, 청도 개물방산, 언양 배내봉, 간월공룡, 가지산 북릉, 천성산 중앙능선 등 얼핏 헤아려봐도 30여 개는 될 법하다. 이 명칭들은 국내 주요 산 전문 사이트에도 하나씩 등재돼 전국의 산꾼들에게 널리 통용되고 있다.

대한산악연맹 부산광역시연맹 김정민 회장은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가 등산인구의 저변 확대에 기여한 공로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어마어마한 성과"라며 "앞으로도 근교산 시리즈가 국제신문과 함께 영원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창우 산행대장은 "근교산 시리즈에 대한 산꾼들의 호응이 분에 넘칠 정도로 커 사실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며 "향후에도 산꾼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글 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 500회 특집
-국제신문 홈페이지 '산행기' 게시판 스타 산꾼 좌담

"山에 대한 신문의 애정 계속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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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대에서 만난 산꾼들. 좌로부터 박수연 이재수 공남신 박경희 씨.


국제신문 홈페이지 초기 화면 하단에 위치한 '근교산&그 너머' 창을 클릭하면 왼쪽 아래에 '산행기' 게시판이 있다. 이곳은 일반 산꾼들이 산행기를 올리는 코너이다.

근교산 취재팀이 연재한 산행지를 다녀와서 냉철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모처럼 떠난 해외 산행지를 폼나게 소개하기도 한다. 달빛 따라 산행하는 올빼미족이 있는가 하면 대간이나 정맥꾼들의 연재도 신바람나게 읽힌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보석 같은 숨은 길을 동료 산꾼들에게 알려주는 넉넉함도 묻어난다.

최근에는 글 위주의 무미건조할 수도 있는 산행기에 상세한 지도와 시원한 사진이 첨부돼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산행기를 올리는 산꾼들과 접속지역은 이제 부산·경남을 넘어 전국을 대상으로 한다.

2003년 1월 문을 연 산행기 게시판은 월 평균 50건 정도가 올라오며 접속 건수는 편당 수백 건에서 많게는 수천 건에 이른다. 이렇다 보니 얼굴은 모르지만 서로의 산행기를 읽으며 정보 교환을 하는 이른바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을 정도다.

이재수(51·KT 동래지사) 공남신(52·부산시청) 박경희(45·필명 오월에) 박수연(45·교사·필명 박시). 이들은 국제신문에만 산행기를 올리는 열렬 산꾼으로 사실상 산행기 게시판을 주도하고 있다.

근교산 취재팀은 이들을 국제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만나 매주 연재되고 있는 '근교산 시리즈'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이재수 씨는 국제신문 산행기 게시판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최고의 스타 산꾼이며, 공남신 씨는 야생화 사진과 한층 세련된 편집으로 최근 들어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오월에'라는 필명의 홍일점 박경희 씨는 화려한 글솜씨로 산행기의 새 지평을 열고 있으며, '박시'라는 필명을 쓰는 박수연 씨는 간결한 산행기에다 거의 모든 산행기를 읽고 댓글을 다는 부지런함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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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국제신문 산행기 게시판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이재수=그 전부터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를 계속 애독한 독자였어요. 하지만 산행기 중에 간혹 잘못된 점이 발견됐죠. 때마침 2003년부터 게시판이 오픈돼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지적하다 보니 지금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면을 많이 올려 타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이에 아랑곳않고 뚝심을 가지고 임한 결과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알아봐 상당히 부담스럽기까지 합니다. 낙남정맥과 현재 하고 있는 백두대간 종주 등 지금까지 260편 정도 산행기를 올렸어요.

▲공남신=산행 경력은 20년 정도 됐지만 그 전까진 산행기는 쓰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6월 지리산 종주를 해보고 싶은 직장 동료들이 많아 그들을 위해 종주 후 시청 홈피 게시판에 올렸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죠. 이후 산행 부문은 당연히 국제신문이 앞선다는 사실을 알고 게시판에 우연히 한 번 들어가봤는데 예상 외로 수준이 높았어요. 이재수 씨가 선도자 역할을 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글 위주여서 제가 야생화 등의 사진을 추가해 산행기를 작성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더군요.

▲오월에=조금만 가게를 15년쯤 하다보니 살림, 가게, 교회에 매여 정말 뒷산 약수터에도 못가 봤었죠. 어느 순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가게를 접고 산을 타보라는 지인의 권유를 받았죠. 첫 산행이 2003년 5월 계룡산이었어요. 5월에 산을 처음 갔기에 필명이 '오월에'입니다. 가고 싶은 산을 온라인 상에서 검색하다 보니 국제신문이 안 나오는 데가 없었어요. 해서 홈피에 들어가보니 역시나 산행기 게시판이 활성화돼 있더군요. 80여 차례 산행기를 올렸는데 반응이 좋아 기분이 좋습니다. 이에 자신감을 얻어 지금은 포항의 모교에도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박시=오랫동안 개인 홈피에 산행기를 올렸지만 대외적으로는 글을 남기지 않았어요. 물론 오래 전부터 국제신문 산행기 게시판은 열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꾸준히 올라오는 이재수 씨의 열정적인 산행기를 보고 감동을 받았죠. 나도 이재수 씨처럼 다른 산꾼들에게 미력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 산행기를 올리게 됐죠.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국제신문에 올린 첫 산행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재수 씨의 산행기에 감명을 받아 올린다고.

▲기자=500회를 맞은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해주시죠.

▲이재수=10년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산꾼들을 위해 지면을 할애한 신문은 없었습니다. 간혹 산 소개 기사가 등장했지만 그건 개략적이거나 단편적인 내용일 뿐 실제로 산행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국제신문의 산에 대한 애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산깨나 탄다는 산꾼들이라면 100%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취재팀에게 한 가지 주문을 하려고 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1995년에서 2001년까지 소개한 산을 다시 한 번 리바이벌해 소개했으면 합니다. 당시 소개한 산들은 밀양 청도 경주 등의 보석 같은 곳이었죠. 이제는 들머리 날머리만 맞을 뿐 길이 거의 없습니다. 해서 저는 겨울에만 그 산들을 찾는 실정입니다. 그때 국제신문이 소개한 산들을 최근 타 언론에서 기사화해 히트치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공남신=사실 부산에서 산 좀 탄다는 사람들이 국제신문을 구독하지 않으면 간첩이죠. 누가 뭐래도 근교산 시리즈가 국제신문의 간판입니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산행기의 눈높이는 중간쯤 되는 지금이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산행지도를 좀 더 상세히 하고 계절적 부분을 좀 더 강조했으면 합니다.

▲오월에=최근 등산 인구가 부쩍 는 사실을 몸으로 느낍니다. 저는 사무실 동생이나 교회 동지, 그리고 군에 간 아들의 여자친구 등 산에 문외한인 주변사람들을 주로 꼬드겨 산엘 갑니다. 그러다 보니 초보자들을 배려해, 지금도 잘 하고 있지만 가급적이면 원점회귀 코스를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박시=왕초보 때 국제신문에서 소개한 일광산을 보고 가족과 함께 산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당시엔 5분 가다 스크랩한 신문 한 번 보고, 다시 또 한 번 보고, 그러다 여의치 않으면 되돌아가보기도 하고 하여튼 불안감 속에서 산행을 했습니다. 산행기가 얼마나 정확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 강조되는 대목이죠. 지금도 초보자들이 교과서 같이 여기는 국제신문의 산행기가 한 자의 오·탈자도 없는 완벽함을 추구했으면 합니다.

▲기자=서로의 산행기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재수=오월에 씨가 처음 산행기를 올렸을 때부터 글이 워낙 빼어나 쭉 눈여겨 봤습니다. 저와 함께 산행을 하는 현인두 씨는 오월에 씨의 완전한 팬입니다. 그는 산행 내내 오월에 씨의 감동적인 문장을 외고 또 외웁니다. 그는 국제신문 산행기 게시판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칭찬을 합니다.

▲오월에=말씀드리기 뭣 하지만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글을 써 상깨나 받았습니다. 중학교 땐 글이 너무 좋아 모르는 선배 오빠가 교실로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결혼도 제가 남편에게 무려 16장의 장문의 편지를 쓴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죠.(웃음) 사실 전 산꾼이 아니라 어설픈 글쟁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재수 씨의 산행기는 한 마디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그런 글 속에는 자기 과신이 은연 중에 내포돼 있지만 이재수 씨의 산행기에는 희생과 겸손, 그리고 성실함이 묻어납니다. 덕분에 국제신문의 산행기가 더욱 빛을 발합니다.

▲박시=전 이재수 씨의 열정을 한번 더 강조할까 합니다. 그와는 가이드 산악회에서 한 번 만났습니다. 아니, 제가 이재수 씨의 이름을 참가자 명단에서 우연히 발견해 인사를 했죠. 그날 저는 이재수 씨를 근거리에서 지켜봤습니다. 메모를 거의 하지 않던데 산행기에서는 그야말로 완벽한 글이 올라옵니다. 비결이 있나요.

▲이재수=간단한 메모는 합니다. 전 하루에 제가 찾아놓은 '즐겨찾기'의 사이트에서 산행기를 평균 대여섯 편 정도 봅니다. 일주일이면 30편쯤 됩니다. 산행 전에 준비를 많이 하면 메모가 적어도 많이 보고 꼼꼼하게 적을 수 있습니다.

▲공남신=이재수 씨가 화제로 떠오르니 이재수 씨의 산행기에 대해 한 마디 할까 합니다. 지금도 완벽합니다만 사진을 좀 더 추가하면 더욱 더 관심을 끌지 않을까 합니다. 사진도 용량을 크게 하면 속도가 느려져 네티즌들이 짜증을 냅니다. 이럴 경우 용량을 줄여 편집하면 그야말로 100점짜리 산행기가 될 것 같습니다.

오후 5시30분 시작한 좌담회는 어느덧 8시가 돼서야 끝을 맺었다. 못다한 말이 남았는지 그들은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몇 순배 술잔이 돌면서도 계속 산행 이야기를 계속했다. 밤 10시40분. 그냥 두면 밤을 샐 것 같아 기자가 냉정하게 '쫑'을 냈다.


정리=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사진=강덕철 기자
dckang@kookje.co.kr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 400회 발자취

山河누빈 8년 … 국내 개척산행 새지평 열어
호남·충청권까지 독자, 신문 시리즈론 최장수
등산인 저변확대 공헌, 無名산·계곡 명칭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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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 대금산 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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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비슬산 진달래.



지난 7월 청도 용당산에서의 한 에피소드.

매주 목요일마다 취재산행을 떠나는 산행팀은 이날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힘겹게 된비알을 오른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 일단의 여성팀을 만났다.

60대 중반 한명과 40대 후반 세명이 한팀인 그들은 사제지간이다. "지금은 같이 늙어간다"며 웃음꽃을 피운 이들은 갖고온 과일을 나눠줬다.

대구서 왔다는 그들은 대화 도중 다짜고짜 산행팀을 보고 "혹시 국제신문 산행팀 아니냐"고 묻는게 아닌가.

처음엔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지만 그들이 떠나는 산행지는 모두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를 보고 정한다는 한마디에 그만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주 산행을 떠나는 그들은 이따금씩 "우리도 한번쯤은 산에서 국제신문 산행팀을 만나지 않겠느냐"고 농담삼아 얘기했는데 이렇게 만나 정말 반갑다며 악수를 청했다. 그들은 "현재 국내 여러 신문사에서 산 소개를 하고 있지만 그 기사들은 이미 등산로가 잘 나 있는 명산 위주의 '보기 좋은 떡'일 뿐 실제 산행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제신문 근교산 기사는 산행 초보자라도 그 기사만 보면 완주가 가능한 '먹기 좋은 떡'"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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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용지봉 장유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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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기백산 용추계곡.

그동안 인사치레로 근교산 시리즈의 고마움을 여러 차례 들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취재현장인 산에서 몸으로 실감한 것은 처음이었다. 동시에 밀려오는 책임감으로 다시 한번 등산화 끈을 조여 매는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인기리에 연재중인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가 10일자(2004년 9월)로 400회를 맞았다.


지난 1996년 1월4일 '기장 달음~철마산 종주산행(상)'편을 시작으로 첫발을 내딛은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햇수로 8년이라는 오래 기간을 달린 끝에 지금은 부산경남을 넘어 경북과 호남 충청권까지 고정 독자를 확보할 만큼 산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사실 근교산 시리즈는 이보다 3년 앞선 지난 1993년 1월7일 처음 시작됐다. '가볼만한 근교산'이라는 제목으로 '금정산'편을 소개한 후 이듬해 11월 87회 밀양 '정각산'편을 마지막으로 1년10개월간 연재됐다. 만일 '가볼만한 근교산' 87회를 포함한다면 근교산 시리즈는 500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 된다.

이런 곡절 때문에 3년 뒤 재출발한 시리즈의 제목은 '다시 찾는 근교산'으로 변했고, 지난해 10월부터는 전국의 모든 산을 산행 대상지로 한다는 취지에서 '근교산&그 너머'로 새롭게 변신했다.

내용을 차치하고서라도 시리즈 횟수만으로 볼 때 이 시리즈는 전국의 모든 신문에서 연재되고 있는 시리즈 중 최장수이며, 따라서 근교산 기사가 매주 게재될 때마다 전무후무한 기록을 갱신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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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승학산 억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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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 단풍.

근교산 시리즈가 독자들에게 크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철저한 현장답사와 현지취재를 통해 숨겨진 능선과 계곡이 새로운 등산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산행에 나서고 싶어도 산길을 몰라 감히 산을 찾지 못했던 초보 산꾼들은 물론 베테랑 산꾼들에게도 '이런 코스도 있었나'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해 산행인구의 저변을 넓히는데 적지않은 공헌을 했다고 자부한다.

그간 전담기자만 배병주 박명도 조해훈 조봉권 박병률 김용호 등 무려 6명이 거쳐갔다. 산행대장 역시 부산 산악계의 원로인 성산 씨, 건건산악회 회장이자 베테랑 산악인인 최남준 씨가 기반을 다진 후 지금은 대학산악부 출신으로 독도법에선 부산 최고를 자랑하는 젊은 산악인 이창우 씨가 7년째 맡고 있다.

전담기자들은 한결같이 "만일 이창우 산행대장의 노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방대한 시리즈가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재미있는 점은 전담기자들이 근교산 시리즈를 맡기 전에는 하나같이 산에 대해 문외한이었다는 점. 기자들이 독자들의 입장에 서서 편견없이 쉽게 산행기를 전달하다보니 호응을 받았다는 것이 자체 분석이다.

신문 기사와 안내 리본을 보며 산행하는 독특한 등산문화를 선도한 근교산 산행팀은 부산 경남북의 이름없는 산과 능선 계곡들에게 옛이름을 찾아주고 새이름을 붙여준 작은 업적을 세우기도 했다.
   
 
국토지리정보원이 발간하는 지형도에도 없어 자칫 영구히 묻혀버릴 수도 있는 산 이름을 현지 마을의 어르신이나 산속 암자의 스님, 그리고 문헌 등을 통해 발굴한 것.

양산 다방동에서 출발하는 금정산 종주의 처음과 마지막 봉우리인 다방봉과 금정봉을 비롯해 양산 채바우골만당 축전산 천마산 용굴산 비석봉 중리동산 매봉, 밀양 구천산 정승봉 명필봉 북암산, 청도 개물방산 쌍두봉 도롱굴산 방음산 서지산 효양산 복점산 시루봉, 언양 배내봉, 합천 절갓 등이 대표적인 본보기.

능선으론 간월공룡, 가지산 북릉, 천성산 중앙능선, 옹강산 가운데능선 등이 있으며, 신불산 홍류계곡 등도 국제신문 산행팀의 빼놓을 수 없는 역작으로 지금은 그 명칭이 지역 산꾼들에게 널리 통용되고 있다.

덕분에 국내 주요 산 전문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이들 이름이 하나씩 등재돼 전국의 산꾼들에게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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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가지산 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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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백산 눈꽃.

근교산 시리즈는 특히 청도와 밀양의 모든 면 단위에 위치한 산을 빠짐없이 소개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1000m가 넘는 20여개의 고봉들이 즐비한 거창 지역 산 소개도 거의 막바지에 와있다.

지난해 '아름다운 한국의 산1'을 펴낸 모아산악회 명예회장인 한영동(금성중 교사)씨는 "국제신문 근교산 시리즈가 없었다면 아마도 책 저술기간이 훨씬 길었을 것"이라며 "답사땐 반드시 근교산 시리즈 스크랩을 들고 다니면서 일일이 확인했지만 하나도 틀린 부분이 없을 만큼 정확해 혀를 내둘렀다"고 고백했다.

아마추어 산꾼인 진준근씨는 근교산 시리즈 덕택에 많은 산꾼을 알게 됐다고 전화로 고마움을 전해왔다.

50대 중반인 그는 "기사가 나온 주말이면 신문을 오려 영남알프스 등지로 산행을 하다보니 70대 어르신과 동년배의 50대 산꾼들을 자주 만나 알게돼 지금은 팀을 이뤄 같이 근교산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근교산 시리즈를 보며 3년째 산행을 하고 있는 서면의 권헌영 비뇨기과 원장은 "산행을 하다 보니 등산만큼 좋은 운동이 없으며 특히 남성의 성기능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지금까지 등산과 성기능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객관화된 자료가 없었다"며 "근교산 시리즈를 보며 함께 하는 산꾼들에게 설문지를 돌려 등산과 성기능의 상관관계를 연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백 한가지.

사실 근교산 산행팀은 본의 아니게 항의성 전화도 많이 받았다. 지리산 시루봉과 기장 용천산, 그리고 최근 소개한 밀양의 백마산 산행을 한 후였다. 산행로가 모두 송이버섯이나 두릅 대추 사과나무 주변을 질러갔기 때문이다. 분별없는 몇몇 산꾼들이 지나가다 농민들의 피땀이 맺힌, 자식같은 작물들을 하나 둘씩 슬쩍하다 보니 이에 화가 난 농민들이 신문사로 연락한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농민들에게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하며, 동시에 산꾼들에게는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자제를 부탁하는 바이다.

이번엔 당부 한가지.

'산꾼들이여, 리본을 만지지 말아달라'. 이같은 행위는 초보 산행자들에게는 어쩌면 반살인행위나 마찬가지라는 점을 잊지 말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당황한 초행자들은 리본에 의존해 하산로를 찾는다. 재미삼아 반대 방향으로 달아놓은 리본은 결국 조난으로 이어져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 산행팀이 뽑은 숨겨진 근교산 베스트7

목차

산이름

특 징

355

곡성 동악산

빼어난 산세·도림사계곡

338

합천 누룩덤~부암산

조망·암릉산행 만끽

314

가덕도 응봉산~웅주봉

환상적 조망

302

함양 삼정산

7개 절 암자 품은 불국토

283

경산 백자산~삼성산

가족 및 부부산행 '강추'

178

양산 천마산~매봉산

양산의 숨은 보석

148

창녕 석대산~화왕산

억새평원·진달래·조망 탁월


글 ·사진=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아! 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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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문봉에서 철벽봉을 지나 가파른 화구벽으로 내려서는 국제신문 근교산 산행팀. 화구벽을 지나면 등산화를 벗고 승사하를 건너 천지물가인 달문에 닿는다. 사진 우측 상단에는 녹명봉 백운봉 청석봉 줄기가 차례로 보이며 왼쪽 상단 구름 사이로 쑥 들어간 부분이 5호 경계비가 있는 곳이다.



부산에서 심양, 심양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연길까지
연길에서 백두산 서파 입구까지 또다시 버스로 8시간
주차장에 내려 2200개의 계단을 올라 다다른 5호 경계비

불과 1m 높이의 초라한 표지석이지만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이다
얼마전까지 경비초소와 녹슨 철사줄 한가닥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사라져 국경같은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중국쪽은 빨간 글씨로 '中國'
북한쪽은 파란 글씨로 '조선'이라 적혀 있다

한발 건너면 북한 땅, 한발 당기면 중국 땅
감격도 감격이지만 왠지 서글픈 마음이 앞선다

내 땅을 지척에 두고
중국 관광객의 자격으로 올라야 하는 서글픈 현실
전후세대가 이토록 회한이 뒤섞여 눈물이 날 정도인데
이북 출신으로 한국전쟁을 겪은 어르신들의 감회는 어떠랴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천지
단순 비교하면 각각 전라북도의 면적과 여의도의 크기
한라산과 백록담을 상상했다면 상상의 나래를 더 펼치자
노란만병초 애기금매화 큰오이풀 왕자붓꽃 두메양귀비…
고산화원 천상화원으로 불리는 세계 최대의 야생화 군락지

1980년 유네스코 자연보호구로 지정된 인류 공동의 자연유산
6월까지 잔설이 있고 7, 8월에는 야생화가 수를 놓지만
9월이면 첫 눈이 내려 산행 가능 기간은 1년 겨우 3개월 남짓
최고 수심 384m, 평균 수심 213m, 해발 2257m의 천지

세계 최대 산정호수로
2500m급 이상 16개 연봉의 호위를 받는다
물은 맑고 차가워 맨발을 1분 이상 담그기 힘들고
시시각각 변하는 괴팍한 날씨로 베일 속에 자주 가린다
조선족 산행가이드가 들려주는 우스갯소리 하나
'천지에 올라 천지를 못보는 사람이 천지라서 천지'란다

뭐니뭐니해도 백두산 탐승의 하이라이트는 서파(西坡) 종주
한 산꾼은 서파종주 후 이렇게 말했다
"통일이 될 때까지 다신 백두산 산행을 하지 않으리라"고
5호 경계비에서 천지 물가인 달문에 이르는 13㎞의 종주길은
통일 이후 북녘땅을 통해 새로운 코스가 열리기 전까지
이보다 더 황홀한 코스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그랬다
휘몰아치는 비바람과 뿌연 안개 탓으로
눈 앞의 천지와 수백종의 야생화를 눈여겨 살펴보지 못했지만
한걸음씩 옮기면서 펼쳐지는 푸른 대평원과 능선길만으로
백두의 비범함을 온 몸으로 느꼈다
장엄하면서도 수려하고, 투박하면서도 곱디고운
그 자태에 그만 넋을 잃은 것이 여러 차례
꿈엔들 잊힐리야 백두산 천지

근교산 산꾼들은 한 몸되어 기원했다
통일되어 우리 땅에서 백두산 천지를 보는 날이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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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봉에서 철벽봉쪽으로 가는 지점에서 그간 가려져 있던 천지의 자태와 주변 봉우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이 걷히면서 16연봉중 하나인 용문봉(2596m 가운데 상단 뾰족한 봉우리)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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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 전경. '천지에 올라 천지를 못보는 사람이 천지라서 천지'란다. 최근 '강호동의 1박2일'에서 천지를 볼 수 있는 날이 일년이 10일 정도라고 하는데 이는 약간 과장된 것이다. 북한땅과 중국의 경계인 5호경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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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땅과 중국의 경계인 5호경계비.


민족의 영산 백두산 서파 종주 산행기

발아래 우뚝 솟은 북녘땅, 광활한 만주벌판 호령
고행의 계단 지나 5호경계비서 시작, 6시간 소요
안개·구름 걷히니 16연봉 호위속 신천지가 활짝
천상화원 야생화에 '야~' 장백폭포 위용에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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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쪽 화구벽으로 내려가기 전 철벽봉 안부에서 바라본 백두산의 또다른 산줄기. 오른쪽 능선은 흑풍구에서 이어지는 고래등 능선이며 왼쪽 줄기는 소천지로 내려서는 능선이다.
 
 
시인 고은은 백두산 천지를 본 순간 아무 말없이 천지를 향해 큰 절을 올렸다고 한다.

한국인이라면 북받쳐 끓어 오르는 감정의 표현 방법만 다를 뿐 누구나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우리 민족의 영산이자 태(胎)자리인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굽어보는 이 순간을.

사실 천지는 애초부터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정면은 온통 뿌연 회색천국이었다. 동행한 조선족 가이드 조남철씨의 설명에 따르면 천지를 확연히 볼 수 있는 날은 한달 중 많아야 4, 5일 정도.

발만 동동 굴리며 무작정 기다리기를 30여 분.

'이야, 아!' 정말 한순간이었다. 흥분과 감탄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퍼런 천지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다 삼키고도 남을 만한 자태로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동시에 천지를 둘러싼 16연봉의 웅장한 모습도 손짓을 하며 다가온다. 왼쪽 북한쪽으론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2749m)을 위시해 비류봉(2580m) 쌍무지개봉(2626m) 등이, 오른쪽 중국쪽으로 백운봉(2691m)을 비롯한 마천우(2459m) 청석봉(2662m) 녹명봉(2603m) 차일봉(2595m)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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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백운봉으로 향하는 산행팀.  
 
하지만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딛고 있는 땅이 바로 중국의 영역이라는 점. 조선족이 대다수 살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연길이라지만 그래도 엄연한 중국땅이 아닌가.

국제신문 산행팀이 근교산 시리즈 400회를 맞아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찾았다. 이번 산행에는 부산경남지역의 마니아 산꾼 70여 명도 동행했다.

첫날 쏟아지는 비 때문에 서파 종주산행 내내 천지를 보지 못한 산꾼들은 다음날 북파코스 철벽봉 안부 부근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천지를 바라보며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평했다. 전율이 느껴질 만큼 감동 그 자체라고.

산 정상 부분에 흰 부석이 덮여 있어 이름 붙여진 백두산(白頭山)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가른다. 서쪽과 북쪽은 중국 길림성, 동쪽과 남쪽은 북한의 양강도에 속한다. 서쪽의 5호 경계비와 동쪽의 6호 경계비가 국경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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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서 승사하를 거쳐 장백폭포로 내려가는 도중 전망대에서 바라본 산줄기와 대평원.

현재 백두산 등정길은 크게 네가지. 서파 북파 동파 남파가 그것. 파(坡)는 중국말로 언덕이란 뜻으로 가령 서파 코스는 백두산 서쪽에서 오르는 길을 의미한다.

북파는 가장 일찍 열린 길이요 가장 널리 알려진 길. 흔히 어르신들이 떠나는 백두산 관광의 99%가 이 코스다. 지프를 타고 천문봉 턱밑까지 오른 다음 5분 정도 오르면 천문봉 정상. 여기서 천지를 감상한다. 산행이 아니라 그야말로 관광이다.

서파는 지난 1990년대 후반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코스로 산꾼들이 주로 찾는다. 천지를 오른쪽에 끼고 백두산의 장대한 고원지대를 걷는다. 수백여종의 야생화가 만발한 천상화원이 바로 이 길을 따라 펼쳐진다. 동파와 남파는 북한에서 오르는 코스로 현재로선 그림의 떡.

이번에 산행팀이 완주한 코스는 서파. 산행은 조중경계선인 5호 경계비에서 시작되지만 주차장에서 5호 경계비까지 2200개의 '고행'의 계단을 우선 올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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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 산행은 5호 경계비에서 마천우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반대방향은 북한땅. 출발전부터 비와 안개, 그리고 강풍이 만만찮다. 굵은 빗줄기는 몰아치는 칼바람을 타고 연신 뺨을 후려친다. 제대로 갖춘 복장과 장비도 무력감을 느낄 정도. 확 트인 능선길에서 강풍을 만나면 몸이 날려갈까봐 모두들 움츠린다. 이런 악천후가 하산 때까지 지속됐다.

암봉 마천우는 험해 봉우리 왼쪽길로 에돌아 내려선다. 청석봉까지는 천지를 우측에 두고 비교적 평탄한 능선길로 가지만 천지는 안개에 가려 부옇기만 하다. 대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연상케 하는 눈앞의 푸른 대평원과 뾰족한 암봉, 그리고 낭떠러지는 백두산의 넉넉함과 위엄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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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문봉에서 운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천지가 철벽봉으로 가는 도중에 그 모습을 드러내자 산행팀이 천지를 향해 만세를 부르고 있다.

 
화산암 너덜지대를 지나면 평평한 청석봉 정상. 이곳에서 능선길로 1시간쯤 가면 송강하. 천지물이 화산암 계열의 바위틈새로 나와 형성된 물줄기로 주변은 야생화가 만발하는 고산화원. 대개 여기서 밥을 먹고 쉬지만 산행팀은 악천후로 인해 도저히 밥을 먹을 수 없어 그냥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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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구벽을 내려와 승사하를 건너는 산행팀.


백운봉 가는 길은 서파코스 중 가장 힘든 길. 오르막의 연속. 노란 두메양귀비 등 방긋 웃는 야생화가 그래도 힘을 덜어준다. 8부 능선쯤 가면 두 갈래길. 직진하면 정상, 왼쪽 길은 에돌아 가는 길. 평원인 능선길로 사슴이 많다는 녹명봉으로 이어진다. 녹명봉 정상에선 바위길인 일부 하산구간을 제외하고는 평원길의 연속. 차일봉을 지나면 두 갈래길. 말그대로 작은 천지인 소천지로 가는 길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가파른 하구벽을 내려와 천지물가인 달문을 보고 장백폭포를 구경하는 방법이 있다.

여기선 대개 서파산행 시간을 고려해 결정한다. 백두산의 날씨는 1시간 뒤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남을 경우 달문~승사하~장백폭포 코스를, 예상보다 지연됐을 경우 장백폭포 코스는 다음날로 미루고 소천지로 하산한다. 산행팀도 곧장 소천지로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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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68m의 장엄한 장백폭포(비룡폭포). 겨울에도 얼지 않는 어마어마한 수량이 뿜어내는 굉음은 휴화산인 백두산의 살아있는 숨소리라 불린다. 천지로 향하는 우측 상단의 터널은 마치 유럽의 옛 성벽을 닮았다.
 
 
장백폭포(비룡폭포)는 백두산에서 가장 웅장하면서도 아름답다. 높이 68m인 폭포는 여름은 물론이고 겨울에도 얼음과 눈 속에서 얼지 않고 있는 모습이 장관 그 자체다. 어마어마한 수량과 굉음은 백두산의 숨소리라 불리운다. 장백폭포를 돌아 천지로 오르내리는 계단은 멀리서 볼 경우 유럽의 옛 성벽을 보는 것처럼 운치가 있다.

장백폭포 아래에는 온천지대가 형성돼 있다. 장백폭포에서 주차장으로 오는 도중 온천수에 계란이나 옥수수를 삶아 판매하고 있고, 여기서 좀더 내려오면 호텔에서 유황온천욕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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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온천수에 삶아 파는 계란과 옥수수.

◆산행 뒷이야기

 부산 산꾼 38명 악천후속 완주
 산행 속도에 현지 가이드·중국인 감탄
 저체온증으로 탈진 우황청심환 먹기도

"이처럼 대부대가 이런 최악의 날씨 속에서 10~12시간 걸리는 백두산 서파종주를 6시간 만에 끝낸 것은 아마 오랫동안 기록에 남을 겁니다."

백두산 서파종주 현지가이드 조남철 씨는 산행을 마친 후 "지난해 한국의 한 팀이 5시간30분 만에 완주했지만 그들은 젊은 장정 5명인데다 날씨마저 쾌청해 오늘의 이 기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초 백두산 서파 종주에는 50여명이 도전했다.

  
하지만 산행기점인 5호 경계비 앞에서 휘몰아치는 비바람 때문에 10여 명이 돌연 기권, 기자를 포함한 38명이 참여했다. 연령층도 남녀노소 다양했고 평균 연령 또한 40대 중반 이상으로 봐도 무난한 노인군단(?)이었다. 이들은 국제신문 '근교산' 기사를 보면서 매주 산행을 다닌 마니아들이어서 하나같이 자신있다고 말했다. 부부 4팀도 포함됐다.

산행은 날씨 등 최악의 조건 속에서 진행됐다.

38명의 대부대임에도 불구하고 현지 가이드는 우여곡절 끝에 한명밖에 동행하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서파 종주에 도전키로 한 산꾼 한명이 출발전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또다른 현지 가이드가 사라진 그 산꾼을 수소문하느라 결국 대오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

결국 선두는 조선족 현지가이드인 조남철 씨, 후미는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이 맡았다.

출발시간은 지난달 28일 오전 10시45분. 통상 서파종주는 새벽 5시께 5호 경계비에 올라 일출을 본후 출발하지만 빡빡한 일정에 비행기마저 연착돼 예정보다 5시간 이상 지연됐다.

이날 5호 경계비까지는 중국인들을 포함한 많은 산꾼들이 올랐지만 산행도전팀은 국제신문팀이 유일했다.

앞서 출발한 중국인 젊은이 3명은 산행 중간쯤인 청석봉 부근에서 되돌아가며 산행팀에게 대단하다는듯 엄지손가락을 내보이기도 했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50대 중반의 한 여성이 저체온증으로 탈진하자 동료가 배낭에서 우황청심환을 꺼내 먹였다. 이창우 대장은 이 여성의 배낭을 대신 멨고 동료들이 번갈아가며 부축했다.

워낙 비바람이 거세 밥먹을 엄두도 못냈다.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벌어져 본의 아니게 휴식을 취할 땐 하나같이 사시나무 떨듯 추위와 싸워야만 했다.

천지라도 잠시 얼굴을 내밀면 힘이 날텐데 이날따라 천지는 심통을 부렸다.

산행 후 가이드 조씨는 "어릴 때부터 300년 묵은 장뇌삼을 깍두기로 먹은 30살의 저도 몹시 춥고 힘들었다"며 "이런 악조건 속에서 사고없이 완주한 대원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에 맞장구를 치기라도 하듯 종주를 마친 이상득(46)씨는 "좌우가 확 트인 능선길에서 일순간 거센 비바람이 몰아칠 땐 몸이 날려가는 줄 알았다"며 "그래도 지금은 큰 일을 해낸 것처럼 뿌듯하다"고 밝혔다.

백두산 서파종주는 이렇게 끝났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산행팀은 그 다음날 북파코스에서 천지와 그 주변의 16연봉, 그리고 아름다운 장백폭포를 원없이 보고 또 봤다.

부산서 출발하는 백두산 산행상품은 대개 4박5일. 하지만 국제신문 산행팀은 백두산 등정을 원하는 산꾼들을 위해 산행을 위주로 한 3박4일 코스를 명문여행사와 공동으로 마련, 이번 산행이 이뤄졌다.


글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사진 = 박수현기자 parksh@kookje.co.kr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상주해수욕장 바캉스 겸하면 이색 산행 제격

8부 능선 주변 기암·암봉, 수석 전시장 방불
상사바위선 한려수도, 하산길엔 보리암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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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에서 바라본 초승달 모양의 상주해수욕장. 산행 들머리인 금산주차장에서 상주해수욕장까지는 정확히 2㎞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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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인 금산주차장에서 올려다본 금산의 주능선. 가운데 가장 높은 암봉이 상사바위이다.

 ※산행 순서를 시간대별로 편집. 기사는 그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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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주능선까지의 등로는 끊임없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왼쪽은 오르막의 끝. 쌍홍문이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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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홍문에 오르기 전 왼쪽의 사선대(四仙臺). 동서남북에 흩어져 있던 네 신선이 모여 놀았다는 뾰족 암봉이다. 자세히 보면 네 조각의 기암이 하나의 암봉을 이루고 있다. 우측은 늘 푸른 덩굴식물인 이끼 낀 송악의 자태가 장관인 장군암. 금산의 첫 관문인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하여 일명 수문장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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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거대한 자연조각품인 쌍굴. 흡사 해골 형상이지만 그래도 이름은 고상하게 지어야 하는 법. 무지개 형상의 홍예문이 두 개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국내외에서도 보기 드문 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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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홍문 안쪽에서 본 한려해상 국립공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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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홍문 안쪽에서 본 다른 풍광(왼쪽). 우측은 쌍홍문 입구의 작은 구멍에 돈이나 동전을 던지고 즐겨워하는 관광객들. 돈이나 동전이 구멍에 들어가면 소원성취한다는 설이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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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의상대사 등 고승대덕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던 하트 모양의 흔적이 남아있는 좌선대. 실제로 확인 가능하다. 그 뒤로 펼쳐지는 한려해상 국립공원 내의 섬들의 풍광이 기가 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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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각도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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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석봉에서 바라본 초승달 모양의 상주해수욕장과 상사바위(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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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이서 본 남해안 최대 규모인 상주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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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도중 바라본 금산 보리암(왼쪽). 앉은 터가 절묘하다. 우측은 금산 내 위치한 금산산장과 산장 우측 뒤 돼지바위(일명 저두암). 멀리서 보면 짝짓기를 하는 형상이다. 그 우측엔 코의 윤곽이 뚜렷한 코끼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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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부터 봉수대였던 정상. 봉수대가 복원돼 있다. 조망이 넓고 아름다워 망대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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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대를 내려오면 정면에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이란 글이 음각된 버선모양의 바위가 보인다. 문장암이다. 조선시대 대학자 주세붕의 솜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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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최고의 전망대인 상사바위에서 내려다본 상주해수욕장. 상사바위는 주인마님과 머슴의 애틋한 사연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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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보문암, 양양 낙산사, 여수 향일암과 함께 국내 4대 관음성지로 알려진 금산 보리암 내 해수관음상. 뒤로 보이는 암봉은 대장봉이다.



"여름철이라 계곡에만 집착하지 말고 산행 후 아주 손쉽게 해수욕도 겸할 수 있는 산은 어디 없나요. 뒤풀이로 백사장에서 젊음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그런 산행지 말이에요. 가끔씩은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젊은 독자의 애정어린 전화였다. 물론 듣는 순간 적당한 산이 떠올랐다. 바로 남해 금산이다. 기실 금산은 평소대로라면 '근교산 시리즈'에 싣기에는 약간은 머뭇거려지는 산이다. '금산 38경'이라 불리는 각양각색의 기암괴석이 8부 능선부터 절경을 이루고 있고 한려수도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조망을 지닌 훌륭한 산이긴 하다. 하지만 무미건조한 오름길과 그 길을 다시 내려와야 하는 지형적 취약성 때문에 산행이라는 측면에서 정통 산꾼들의 눈길을 끌기에는 2% 부족하다. 올 여름엔 상황이 좀 달라졌다. 튀는 독자의 전화로 이른바 '바다와 함께 하는 산'이라는 테마로 당당하게 거듭난 것이다.


사실 금산은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지대로 산 자체가 도 기념물로 지정된 귀하신 몸이다.

해발은 701m. 위압감을 느낄 수 없는 고만고만한 높이지만 해발 제로에서 시작되는 섬의 산이 그렇듯 외형은 훨씬 웅장해 보인다.

원래 이름은 보타산. 그 뒤 신라 고승 원효대사가 찾았을 때 갑자기 서광이 비쳐 보광산이라 불렀다. 금산으로 바꿔 부른 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장군이다. 고려말 창업의 뜻을 품고 전국 명산을 찾아 다니며 백일기도를 드리던 그는 금산에서 산신의 영험을 받았다. 그때 이성계는 자신이 왕이 되면 온 산을 비단으로 감싸주겠다고 맹세했다. 이후 왕이 된 그는 현실적으로 비단으로 온 산을 덮을 수 없음을 알고는 고민 끝에 산 이름에 '비단 금(錦)'자를 써서 금산(錦山)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전설이지만 적어도 오래전부터 금산 일대가 기도 효험이 있는 기도처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금산은 강화 보문암, 양양 낙산사, 여수 향일암과 함께 국내 4대 관음성지로 알려진 보리암을 품고 있다.

산행은 상주면 금산 매표소~샘터~쌍홍문~일월봉~금산산장~좌선대~상사바위~헬기장~단군성전~문장암~정상(망대·봉수대·701m)~보리암 보광전~해수관음상~쌍홍문~금산 매표소 순. 3시간 정도 걸리지만 '금산 38경'을 찬찬히 둘러보려면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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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은 아주 간단하다. 매표소부터 쌍홍문까지는 줄곧 외길 오르막 돌길 내지 돌계단길이다. 쌍홍문은 대략 8부 능선. 55분 남짓 걸린다. 다행히 숲이 울창해 땡볕은 피할 수 있다. 여기서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산재한 기암괴석과 한려수도의 그림 같은 조망을 감상한 후 보리암을 지나 다시 쌍홍문을 거쳐 왔던 길로 하산한다.

매표소에서 8, 9분 뒤 수정같이 맑고 시원한 지계곡을 한 번 건너고, 정상까지 딱 절반인 1.15㎞ 지점에 샘터와 화장실이 있다. 샘터를 지나면서 쌍홍문까지 산길은 점차 가팔라진다.

15분 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거대한 자연조각품인 쌍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쌍홍문이다. 흡사 해골 형상이지만 그래도 이름은 고상하게 지어야 하는 법. 무지개 형상의 홍예문이 두 개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국내외에서도 보기 드문 절경이다.

이때부터 '금산 38경'의 기암괴석을 찾아다니는 이른바 기암 기행이 시작된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사무소는 접근 가능하거나 등로에서 손쉽게 조망되는 대부분의 기암이나 암봉 앞에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쌍홍문에 오르기 전 왼쪽의 사선대(四仙臺). 동서남북에 흩어져 있던 네 신선이 모여 놀았다는 뾰족 암봉이다. 자세히 보면 네 조각의 기암이 하나의 암봉을 이루고 있다. 이는 약간 위 난간이 세워진 계단 입구에서 보면 더 확실하다. 쌍홍문 입구 왼쪽에는 늘 푸른 덩굴식물인 이끼 낀 송악의 자태가 장관인 장군암이 있다. 금산의 첫 관문인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하여 일명 수문장이라고도 한다. 이곳에 서면 비로소 한려수도의 올망조망 모여있는 다도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제 사바세계를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일명 해탈문이라 불리는 쌍홍문을 통과한다. 굴 안에서 보는 비단결과 같은 숲과 바다와 하늘이 한 편의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곧 갈림길. 왼쪽 단군성전, 오른쪽은 보리암. 어느 곳으로 가도 상관 없으나 산행팀은 단군성전 방향으로 가 보리암을 마지막으로 보고 다시 이곳으로 원점회귀한다.

두 개의 바위가 층암 절벽을 이뤄 가까이서 보면 '날 일(日)' 자, 멀리서 보면 '달 월(月)' 자로 보인다는 일월봉을 지나 왼쪽 제석봉에 들렀다 나온다. 제석봉에 서면 방금 지나온 기암과 주변 형상을 크게 가늠할 수 있다. 왼쪽 보리암과 일월봉, 정면 초승달 모양의 상주해수욕장, 우측 뒤로 금산산장이 보인다.

이번엔 좌선대를 찾아 금산산장을 지난다. 산장 뒤로 짝짓기를 하는 형상인 돼지바위(일명 저두암)와 코의 윤곽이 뚜렷한 코끼리바위를 놓치지 말자. 좌선대는 등로 왼쪽에 있다. 원효, 의상대사 등 고승대덕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던 하트 모양의 흔적이 남아있다. 실제로 확인 가능하다.

다시 갈림길. 왼쪽 상사바위로 간다. 침목계단 직전 '추락주의'라 적힌 팻말 앞에 서면 서포 김만중의 유허지인 노도와 앵강만 건너 설흘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상사바위는 금산 최대의 전망대이자 규모나 면적에서도 최고를 자랑한다. 주인마님과 머슴의 애틋한 사연이 깃들어 있는 이곳에 서면 방금 지나온 좌선대 돼지바위 코끼리바위 제석봉 일월봉 사선대 보리암 금산 정상과 초승달 모양의 상주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단군성전으로 향한다. 헬기장을 지나면 사거리. 단군 할아버지를 모신 왼쪽의 단군성전을 잠시 둘러본 후 정상으로 오른다. 산죽길을 잠시 지나면 고려때부터 봉수대였던 정상. 봉수대가 복원돼 있다. 조망이 넓고 아름다워 망대라고도 부른다. 오를 땐 못봤지만 망대를 내려오면 정면에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이란 글이 음각된 버선모양의 바위가 보인다. 문장암이다. 조선시대 대학자 주세붕의 솜씨라고 한다. 주변에는 연보라 산수국이 지천이다.


보리암은 정상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7, 8분이면 닿는다. 보광전과 해수관음상, 가락국 허 왕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비보(裨補) 성격의 삼층석탑, 그리고 법당 뒤 층암절벽을 이룬 거대한 암봉인 대장봉을 감상한 후 쌍홍문을 거쳐 매표소로 향한다. 45분이면 주차장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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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면이나 풍광면에서 남해안 최고를 자랑하는 남해 상주해수욕장.

# 떠나기전에

들머리금산주차장서 백사장까지 불과 2㎞
도보로 20분…인근 미조항 갈치무침회 별미

금산매표소에서 상주해수욕장까지는 정확히 2㎞. 차로 달리면 불과 5분이면 닿고 걸어서도 내리막길이라 20분 정도면 충분하다.
동해안에 경포대, 부산에 해운대가 있다면 남해안에는 상주해수욕장을 대표 해수욕장으로 꼽는다. 활처럼 굽어진 2㎞ 정도의 해안선과 한없이 보드라운 모래, 그리고 울창한 송림이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호수같이 잔잔한 물결과 한참을 나가도 어른 허리춤도 안되는 얕은 수심은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이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수영복 대여점과 샤워실도 갖추고 있다. 해수욕장에서 출발하는 유람선도 있다.

금산 8, 9부 능선쯤 되는 지점에 금산산장이 있다. 좌선대 인근이다. 신라시대 비구니 절터였던 이곳에 7년 전 작고한 고 김월신 할머니가 50여 년 전부터 등산객을 맞았다. 지금은 친손자가 운영하고 있다. 금산은 남해에선 드물게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어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다. 보리암 기도객들도 자주 묵는다. 새벽 산행으로 배가 출출해진 사람들을 위해 산채 정식도 준비한다. 시래기 된장국이 일품이다. 6000원. 전통 쌀막걸리와 파전도 있다. 1박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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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항에 위치한 30년 전통의 공주식당의 별미 멸치회. 많은 식당 중 원조집이다.

상주해수욕장까지 왔다면 이웃한 남해의 어업 전진기지이자 아름다운 어항인 미조항을 찾아 갈치무침회를 맛보자. 30년 전통의 공주식당(055-867-4489)이 유명하다. 갈치회의 원조집이다. 남해수협 뒤편에 위치한 조그만 집이지만 남해를 찾는 전국의 관광객들이 유독 이 집만을 고집하는 것은 독특한 맛 때문이다. 2만 원(2인 기준). 갈치구이 갈치조림도 맛있다. 각각 2만 원(〃).

초행길에 '금산 38경'을 모두 찾아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요 등로에만 이정표와 안내판이 있을 뿐 모두를 알려주는 친절한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가급적 사전에 인터넷 등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떠나면 도움이 될 듯하다.


# 교통편

터미널서 금산 주차장행 버스
승용차 이용땐 진교IC서 빠져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남해공용터미널행 시외버스는 오전 6시20분, 7시10분, 8시, 8시40분, 9시15분, 9시40분에 출발한다. 2시간20분 걸리고 1만100원. 터미널에서 금산 산행 들머리인 금산주차장행 버스는 오전 8시55분부터 50분~1시간 간격으로 있다. 1800원. 요즘과 같은 피서철에는 배차시간이 20~30분으로 준다고 한다.

금산주차장에서 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3시45분, 4시55분, 5시45분, 6시15분에 있다. 남해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15분, 5시5분, 5시30분, 6시15분, 7시5분(막차)에 출발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진교IC~남해 서포 좌회전~남해 금남~남해 노량 좌회전~남해 19번 국도 좌회전~남해대교~상주 남해~미조 상주~(중간에 만나는 '금산 보리암' 이정표는 복곡저수지 매표소이므로 통과)~상주면~금산 주차장 순.

※대중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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