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롯데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선수가 강민호 선수일 겁니다. 이런 강민호 선수가 베이징에서 퇴장을 당했으니 국내 팬들이 얼마나 안타까왔겠습니까.

강민호의 젊은 혈기 내지 의협심이 되레 선수들을 똘똘 뭉치게 해 금메달로 이어지는 결과가 나왔지 않나 봅니다.

선수단 귀국 후 국제신문 야구담당 김희국 기자가 재빠르게 전화로 인터뷰해 신문(8월 27일자 20면)에 보도를 했습니다. 김 기자는 오랫동안 프로야구를 맡아 강민호 선수와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희국 기자의 양해를 얻어 기사 전문을 싣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사를 쓴 김 기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쿠바와 결승전 9회말 어필하다 퇴장당한 강민호
 
'로볼' 묻자 심판 어이없는 선언…글러브·포수 마스크 내동댕이
 잘잘못 생각할 틈도 없이 흥분 라커룸서 "이겨 달라" 기도만



 "야구하면서 그렇게 열 받은 순간은 처음이었습니다."
 베이징올림픽 스타 롯데 강민호가 쿠바와의 결승전 9회 말에 퇴장당한 사건에 얽힌 뒷이야기를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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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은 베이징올림픽 야구 경기에서 가장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순간이었다. 강민호는 26일 청와대 오찬을 마치고 한화와의 후반기 첫 경기를 위해 대전으로 향하던 중 국제신문 취재진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강민호가 지난 23일 열린 올림픽 야구 결승전에서
                                                                           9회말 퇴장 명령을 받은 뒤 더그아웃으로 포수
                                                                           마스크를 던지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강민호는 평소 '스마일맨'으로 불릴 만큼 웃음이 많고 장난도 잘 친다. 한 번도 그라운드에서 화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를 잘 아는 롯데 팬들에게는 강민호가 글러브를 집어던진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강민호는 "9회 이전부터 스트라이크존이 흔들렸는데 9회에는 확연히 느껴졌다. 한번 어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두 번째 볼넷을 내준 마지막 볼을 그대로 글러브 속에 쥐고 있었다. 심판이 직접 글러브에서 볼을 빼 투수에게 던지려고 하기에 막았다. 그때 볼이 낮았느냐는 뜻으로 '로 볼(Low ball)?'이라고 물었는데 곧바로 퇴장을 선언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며 글러브와 포수 마스크 등을 집어던졌다. 그 광경을 본 미국의 마크 뉴먼 기자는 메이저리그 홈페이지에 쓴 기사에서 "비공식적으로 99마일(158㎞)에 달했다"고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강민호는 "너무 열 받아서 그랬다. 당시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야구하면서 글러브를 집어던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민호는 한국이 패했다면 '역적'이 될 뻔했다가 극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오히려 선수들을 단결시킨 '영웅'이 됐다. 그는 "퇴장당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너무 흥분했기 때문에 내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조차 생각할 틈이 없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퇴장 후 더그아웃에도 앉지 못한 강민호는 라커룸에서 경기 결과를 기다렸다. 강민호는 "라커룸에 TV가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속으로 '이겨 달라'고 기도만 했다"고 웃으면서 회고했다.

 강민호는 올림픽을 계기로 '롯데의 강민호'에서 '대한민국의 강민호'로 부상했다. 주전 포수 진갑용이 갑작스러운 햄스트링(뒷허벅지 근육통)으로 출장이 힘들어 5차전 대만전부터 얼떨결에 주전 마스크를 썼다. 그는 "갑자기 (진)갑용이 형이 부상을 당해 경기에 나갔다. 큰 대회라 처음에는 엄청 떨렸다"며 엄살을 떨었다. 안방마님으로 활약하면서 그는 국내 리그 최고 투수들의 공을 직접 받았다.
 
 그렇다면 누구 공이 가장 위력적이었을까.
 강민호는 "김광현 류현진의 볼이 가장 좋았다.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볼을 던졌다"고 말했다. "각 팀 에이스들의 공을 받은 경험이 롯데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한 하반기 레이스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질문에 강민호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라며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한편 강민호는 국제야구연맹(IBAF)으로부터 1500달러의 벌금 처분을 받았다. 이 벌금은 IBAF 규정에 따른 것으로 퇴장으로 인해 1000달러, 포수 마스크를 집어던지는 등의 행위로 500달러가 부과됐다.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로이스터 감독이 본 베이징올림픽 한국야구
"금메달 예고된 세계 최강 누구와 붙어도 이기는 팀"
-투타 능력있는 선수 고루 포진…김경문 감독 절묘한 작전 주효
-제자 이대호·강민호·송승준 좋은 활약에 아주 기분좋아

 
 
"한국 야구는 세계 최강 수준이다. 어느 팀이든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야구에 대해 극찬을 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올림픽 이전부터 한국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로이스터 감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야구인은 많지 않았다. '립서비스' 정도로만 여겼다.

야구 본고장 메이저리그에서 선수와 감독을 거친 로이스터 감독의 눈은 세계 야구 수준을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정확했고 올림픽을 통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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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터 감독은 26일 국제신문과의 공식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금메달 획득 비결과 한국 야구 수준을 솔직히 털어놨다. 로이스터 감독은 올림픽 금메달 배경에 대해 "한국에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금메달을 따는 데 필요한 좋은 투수와 발빠른 타자, 파워 히터, 정확한 타자 등이 골고루 포진됐다. 금메달은 예고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모국인 미국과 아마 최강 쿠바의 전력에 대해서는 "미국과 쿠바도 잘했지만 전체적인 플레이는 한국보다 떨어졌다. 특히 미국은 한국에 비해 마운드가 처졌고 예상 밖으로 경험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우승 비결을 묻자 김경문 감독의 경기 운영을 가장 먼저 꼽았다. 로이스터 감독은 "김 감독이 대표팀 운영을 잘했는데 특히 준결승과 결승에서 왼손 에이스인 김
광현과 류현진을 투입할 수 있도록 선발 투수 로테이션을 절묘하게 짠 것이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이대호 이승엽 등 중요한 선수들이 결정적인 상황에서 자기 몫을 해줬고 테이블세터로 나선 이용규 김현수 등이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시즌 개막 전부터 한국 야구 수준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한국이 진정한 실력을 발휘한 것 같다. 일본 쿠바를 올림픽에서 두 번씩이나 꺾어 한국 야구를 세계 무대에 알렸다"고 말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한 발 더 나아가 내년 초 열리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전망도 내놨다. 그는 "한국은 이제 강한 팀이고 어느 팀과 맞붙어도 항상 이길 수 있는 팀이 됐다. WBC에서 미국과 일본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보강하겠지만 단기 시리즈에서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한국도 잘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미국 출신이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법. 로이스터 감독은 "롯데의 송승준 이대호 강민호 등이 한국 대표로 좋은 활약을 펼쳐 아주 기분 좋았다"고 자식 같은 제자들을 칭찬했다.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한겨울에도 피는 동백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봄꽃의 시기적 계보는 대략 이럴 게다. 매화 벚꽃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철쭉 영산홍 정도.
 요즘은 누가 뭐래도 배롱나무꽃이 가장 자주 눈에 띈다. 절집 묘소 재실 가로수 심지어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에서도 거의 우점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히 배롱나무 천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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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 정씨 2세조 정문도 공 묘지 좌우에 위치한 800년된 천연기념물인 배롱나무. 부산진구
       양정동에 위치한 화지공원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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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운데 하얀 아파트 좌측 뒤 회색빛 높은 서면 롯데호텔이다. 왼쪽 낮은 건물은 롯데백화점.


 주로 7~9월에 꽃이 피며, 100일 동안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목백일홍(木百日紅)이라 불리는 배롱나무. 국화과의 1년생 초(草)인 백일홍과 전혀 다른 식물이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최고령 배롱나무는 어디 있을까.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 화지공원에 수령이 800년 된 배롱나무 노거수(老巨樹) 두 그루가 있다.
 정묘사라고도 불리는 화지공원은 동래 정씨 2세조(二世祖)로 고려 중기 안일호장(安逸戶長-동래군 향직의 우두머리)을 지낸 정문도 공의 묘지와 재실이 있는 곳. 해발 142m의 구릉지 수준에 불과한 화지산(華池山) 기슭에 위치한 이곳을 동래 정씨 후손들이 공원화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800년 된 두 그루의 배롱나무는 정묘사 내 정문도 공의 묘를 봉분할 때 묘 좌우에 심겨져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이 배롱나무는 원 줄기는 죽고 주변의 가지들이 별개의 나무처럼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렀다고 전해온다. 한마디로 800년을 대이어 버텨온 묘지기 나무인 셈이다.
 배롱나무가 부귀영화를 안겨다주는 나무로 예부터 알려져 동래 정씨 후손들이 배롱나무를 자신들의 2세조(二世祖) 묘 옆에 각각 1그루씩 심었다고 한다.
 가까이 다가가 꼼꼼히 살펴보면 실제로 원 줄기는 죽고 그 주변에서 돋은 줄기가 자라 지금의 형태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 줄기도 방부처리돼 남아 있다.
 네 그루가 모여 있는 동쪽의 나무는 높이가 8.3m이며 세 그루의 모여 있는 서쪽의 나무의 높이는 동쪽의 그것보다 약간 커 8.6m이다. 모두 진분홍의 꽃을 피우고 있으나 수령이 오래돼 껍질이 벗겨지는 등 생장 상태는 그리 양호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 기품만은 고고하면서도 우아해 보는 이의 감동의 자아내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두 그루 모두 지난 1965년 천연기념물 제168호로 지정돼 있다.

 화지공원을 품은 화지산은 30분이면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마을의 노인들이 즐겨 찾는다. 일반인들에겐 아침 산책로로 적합하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체육공원도 있다.
 화지산은 산세로도 의미있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비록 구릉지 수준의 야산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반대편 어린이대공원이 위치한 초읍 쪽으로 내려가 도로(초읍고개)를 건너면 쇠미산(금용산)으로 바로 이어져 한쪽으론 어린이대공원 만남의 광장과 백양산으로, 또 다른 방향으론 만덕고개를 지나 금정산으로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

 부산의 지도를 펴놓고 보면 한가운데 위치한 부산진구 양정동에 위치한 화지공원만큼 알토란같은 도심의 공원은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

 참고로 화지공원에서 50m 거리엔 부산광역시 교육청이, 차로 3분 거리엔 부산시청, 6분 거리엔 법원 및 검찰청이 위치해 있다. 공항은 20분, 해운대는 25분, 부산역은 20분, 남포동 및 자갈치도 25분 정도면 충분하다. 지하철 1호선 양정역에선 몇 번 출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교육청, 백조아파트' 쪽으로 걸어서 5분쯤 올라오면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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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 정씨 시조와 윗대 할아버지를 모시는 사당 추원사. 아래 사진은 추원사 입구 추원사기(追遠祠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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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원사 뒷쪽에는 동래 정씨 시조묘가 위치해 있다. 한창 벌초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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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지공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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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에 들어서면 동래정씨회관 겸 화지문화회관을 만난다. 결혼식도 하고 문화강좌도 열린다. 문중에서
       정묘 관리를 위한 일종의 수익사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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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이면 주민들이 배드민턴을 한다. 아쉽게도 이들은 운동을 마치면 무심하게도 네트를 되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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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경문. 정문인 이 문을 통과하면 경치가 보인다는 의미이다. 이름이 아주 운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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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경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우측으로 바로 등산로가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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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을 하지 않으려면 조경이 잘 된 길을 따라 직진하면 천연기념물인 배롱나무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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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는 특히 노인들이 많이 눈에 띈다. 여기서 좌측으로 조금만 가면 배롱나무가 보인다.

용맹정진 고승대덕 금강폭포 보며 머리 식혔을까
-밀양 필봉~천황산

금강폭포 바로 아래 한계암, 선승들 수행정진하던 곳
고 혜각, 석정, 수안스님 등도 이 암자에서 그림공부
폭포 아래 또다른 멋진 폭포 알고보니 일광폭포
매바위마을서 본 필봉, 표충사서 본 필봉과 모습 달라
필봉에선 재약 천황 향로산과 표충사 산내암자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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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끼 낀 거무틱틱한 기암괴석 사이로 두 갈래의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는 금강폭포. 바로 아래
      한계암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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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암 아래 금강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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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암(왼쪽). 평일에는 문이 잠겨 있다. 우측은 한계암 바로 옆 흔들다리.



석남사 운문령 남명리 통도사 등억온천 표충사 삼계리의 공통점은.

절 온천 고갯마루 그리고 낯익은 마을 이름도 보여 알 것 같기도 한 데 뚜렷하게 손에 잡히는 건 없다. 산깨나 탄다는 산꾼들도 한번씩은 들어봤지만 막상 공통점을 찾으라고 하니 사실 막막하다고 한다.

정답부터 말하자면 지역 산꾼들의 영원한 휴식처 영남알프스 산군의 권역별 베이스캠프이다. 석남사 운문령은 가지산권, 남명리는 운문산권, 통도사는 영축산권, 등억온천은 간월 신불산권, 표충사는 천황 재약산권, 삼계리는 문복산권 베이스캠프에 해당된다.

그럼 또 하나의 질문. 이 중 연중 가장 많은 산꾼들이 즐겨 찾는 곳은 어딜까.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산꾼들 사이에선 천황 재약산권의 표충사가 지배적이다.

천년고찰 표충사를 기점으로 이어지는 천황산~재약산 코스는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국내 최대 규모의 억새군락지인 사자평의 광평추파(廣平秋波)가 황홀하고, 금강폭포 층층폭포 흑룡폭포를 품은 금강동천과 옥류동천도 비경이다. 내달릴 수 있는 1000m급 주능선도 힘차게 뻗어 있고 여기서 바라보는 산그리메도 일품이다. 억새에 가려 알려지지 않았지만 봄철의 철쭉과 한겨울의 설경 또한 꽃산행과 눈꽃산행을 앞세우는 웬만한 산과 견줘도 전혀 주눅들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표충사 산행로는 표충사~한계암~천황산, 표충사~진불암~재약산, 표충사~옛 고사리분교터, 표충사~층층폭포~옛 고사리분교터 등 크게 네 가닥.

  
 이번 주 산행지는 필봉~천황산. 기존 등산로 대신 표충사 매표소 바깥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토박이 산꾼들이 즐겨찾는 한갓진 산길이다. 표충사에서 보이는 다섯 봉우리 즉 '재약 5봉'중 막내격인 필봉은 붓끝을 연상시키는 뾰족한 암봉. 재밌는 점은 표충사에선 일필휘지로 휘두를 것 같은 위엄있는 암봉이지만 이웃한 향로산이나 절 입구 매바위마을에서 보면 그저 스쳐가는 암봉으로 보일 뿐이라는 것.

구체적 경로는 단장면 구천리 표충사 집단시설지구 주차장~매바위마을~너덜~전망대~필봉(665m)~필봉 삼거리~헬기장~도래재 삼거리~남명리 삼거리~천황산(1189m)~금강폭포(한계암)~금강동천~표충사 순. 걷는 시간만 4시간50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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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집단시설지구 무료 주차장의 맨끝에서 우측으로 가서 서왕교 건너기 직전 '약수슈퍼'를 끼고 좌측으로 간다. 다리 위에는 '매바위 마을 600m'라고 적힌 안내판이 눈에 띈다.

도로 우측에는 금강동천과 옥류동천 물이 만나 내를 이뤄 피서객들이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으며 정면으론 병풍을 연상시키는 매바위와 여자 젖꼭지 모양을 한 필봉 그리고 그 우측으로 재약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14분 뒤 매바위마을 앞 첫 갈림길. 여기서부터 요리조리 미로를 통과해 산으로 접어 든다. 첫 갈림길에서 우측, 두 번째 갈림길에서 역시 우측으로 가면 '그림같은 집'이라 적힌 펜션이 보인다. 그 펜션 좌측 샛길로 오르면 좌측으로 '상수원 보호구역 입산금지'라고 적힌 안내판이 보이지만 이는 그야말로 안내판이 보이는 좌측 계곡 쪽으로 가지말라는 경고판. 산행팀은 우측 아름드리 벚나무가 서 있는 샛길로 올라선다. 입구에는 산꾼들을 위해 누군가가 '뫼두막산장' 담벼락에 '필봉 가는 길'이라고 적어 놓았다. 이것만 찾으면 들머리 찾기는 사실상 끝. 이어 만나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80m쯤 돌길을 따라가면 본격 들머리에 닿는다. 5분 뒤 갈림길. 좌측 돌길 대신 우측으로 오른다. 이때부터 숲길로 접어들지만 대신 된비알이다. 7분쯤 오르면 갈림길. 좌측은 산아래서 본 대규모 너덜겅 지대. 길은 없지만 과연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보라는 의미일 게다.


너덜겅에서 6분쯤 힘겹게 오르면 경사는 사그라지고 돌탑이 서 있다. 이 돌탑 좌측 숲 사이로 보면 돌담으로 둘러싸인 터가 보인다. 일각에선 워낙 명당이라 표충사에서 묏자리로 못 쓰도록 막아 놓았다고 한다. 잠시 후 너덜겅과 만난다. 앞서 본 너덜겅과 이어지는 것이다. 입구에 보이는 웅덩이는 옛날 표충사에 자주 출몰해 사람들을 괴롭히던 지네를 잡은 곳이라 한다.

이제 너덜을 가로질러 숲으로 향한다. 집채만 한 바위 사이로 지그재그길이 열려 있다. 한 굽이 올라서면 첫 전망대. 정면으로 영남알프스의 최고 전망대로 불리는 향로산이 우뚝 서 있다. 여기서 9분쯤 힘겹게 오르면 필봉 갈림길. 좌측 필봉을 본 후 다시 이곳으로 와서 천황산으로 향한다.

  
3분이면 필봉에 올라선다. 조그만 팻말이 걸려 있다. '준·희' 오렌지색 리본으로 유명한 국제신문 2대 산행대장인 최남준 씨가 걸어 놓은 것이다. 듣던 대로 필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역시 웅장미가 빼어나고 조망이 기가 막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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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봉에서 내려다본 표충사 전경(왼쪽)과 필봉 정상을 알리는 팻말.


정면 발아래로 집단시설지구와 향로산, 그 우측으로 만어 뇌암 취경 명필 종남 덕대 등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산그리메를 펼쳐 보이고 있고, 다시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병풍 모양의 장엄하고 엄숙한 매바위가 보인다. 산아래에서 보면 생긴 모양이 매와 흡사해 마을 이름까지 '매바위'로 명명된 이곳에는 실제로 매가 많이 살았다고 전해온다. 이게 조망의 전부가 아니다. 팻말 좌측으로 4, 5m만 내려서면 표충사와 산내 암자 그리고 이를 품고 있는 봉우리들이 한눈에 펼쳐져 하산까지의 등로를 가늠해볼 수 있다.

표충사를 기점으로 좌우측에 각각 금강동천과 옥류동천이, 산중턱 좌측으로 서상암과 한계암 그 아래 내원암이, 이를 감싸고 있는 봉우리가 좌측 천황산에서 우측으로 재약산 재약봉 향로산 등 이른바 '재약 5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제 천황산을 향해 나아간다. 사실 들머리에서 필봉까지의 구간이 된비알로 힘들 뿐 이후 산길은 완만한 경사로 그리 힘들지 않다. 산길 또한 외길이며 갈림길은 세 곳 정도 만난다.


필봉에서40분이면 삼거리(911m)에 닿는다. 왼쪽은 감밭산을 거쳐 삼거마을 방향. 삼거는 표충사 진입 전 삼거리로, 단장면과 산내면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다. 우측 천황산 방향으로 50m쯤 내려서면 전망대. 천황산과 재약산이 한눈에 보인다. 이후 천황산과 재약산이 등로 우측 시야가 트이는 지점이면 각도를 달리해 모습을 드러낸다.

이후 안부에서 바닥을 친 뒤 12분쯤 오르면 헬기장. 3분 뒤 비교적 너른 터에 닿는다. 도래재 삼거리(940m)다. 진행 방향에서 보이지 않지만 반대쪽에서 보면 조그만 안내판이 나무에 붙어 있다. 왼쪽 도래재 정승봉 실혜산, 산행팀은 오른쪽 상투봉 천황산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때부터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소로로 변한다. 발밑에는 유난히 버섯이 자주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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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도중 바라본 천황산 정상.


16분 뒤 마지막 갈림길. 왼쪽길은 얼음골 사과의 본산인 산내면 남명리로 이어지지만 현실은 벤 나무를 깔아 산길이 아닌 것처럼 해놓았다. 이 대장은 수 년 전 영남알프스 태극종주 때 이 길로 하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산행팀은 우측 천황산 방향으로 간다. 이때부터 햇빛 비치는 돌길과 시원한 바람이 부는 숲길이 반복된다. 갈림길에서 7분 뒤 이번엔 천황산의 반대쪽인 왼쪽 산내면 쪽으로 시야가 트인다. 맨 왼쪽 9시 방향으로 정각산, 그 우측으로 구천산 정승봉이, 발아래 산내천 뒤로 남명초등학교가 보이고, 그 뒤로 억산 운문산 아랫재 가지산 백운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또 한 가지. 지도상의 상투봉은 아랫마을인 남명리에서 보면 그 모습이 상투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능선상에서 그냥 모른 채 스쳐가는 봉우리이다.

이제 숲길과 시야가 트이는 구간이 반복된다. 정글숲을 헤치듯 잡풀을 헤치고 올라서면 푸른 억새길. 백조를 꿈꾸는 미운 오리새끼마냥 아직은 키도 작고 억새로서의 품새도 갖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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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산 가는 길(왼쪽)과 천황산 정상석.


천황산 정상은 5분 뒤. 예의 커다란 돌탑이 우뚝 서 있다. 직진하면 재약산 방향. 아직도 내리쬐는 햇볕이 부담스러워 서둘러 이정표가 가리키는 '한계암(3㎞) 표충사(4.8㎞)' 방향으로 내려선다.

답답한 돌길의 연속이다. 17분쯤 뒤 처음으로 시야가 트이며 재약산이 보이고, 여기서 13분 뒤 좌측으로 재약산, 우측으로 산행팀이 올라온 필봉 능선이, 정면으로 향로산이 동시에 보이는 지점도 지난다.

5분 뒤 너덜길을 따라 내려가면 13분 뒤 한계암에 다다른다. 암자 문은 잠겨 있고, 한 굽이 위의 그 유명한 금강폭포는 거무틱틱한 기암괴석 사이로 두 갈래의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다. 비경이다.

암자 앞 흔들다리를 건너 산길로 내려서면 이내 금강동천의 본류를 만난다. 10여 분간 계곡미를 감상하며 계곡을 내려온다. 범람을 대비해 계곡 우측 바위에 밧줄을 고정했고, 위험한 지점에는 난간과 발판을 조성해 놓아 전혀 위험하지 않다. 폭이나 규모 면에서 국내 여느 계곡과 견줘도 경관 면에서 하등 뒤질 게 없다.

   
계곡을 뒤로한 채 산길로 3분이면 곧바로 도로로 내려선다. 여기서 표충사 경내까지는 12분, 이어 절에서 주차장까지는 20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마을서 본 필봉과 표충사서 본 필봉 모습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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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충사 경내에서 본 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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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충사에서 본 재약산.

표충사는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 3000여 명의 승병을 이끌고 조국을 구한 구국성지. 해서, 경내 유물전시관과 표충서원에는 사명대사와 관련된 많은 유품이 보관돼 있다. 임란 때 친히 입은 금란가사와 장삼, 임란 후 대사가 강화사절(講和使節)로 일본에 가 조선 포로의 송환문제를 다룬 문서 등 16건 79점이 소장돼 있다.

조계종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역임한 현대의 마지막 고승 효봉 스님이 말년을 보내고 열반한 곳도 이곳 표충사다. 스님의 커다란 사리탑이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또 일연 선사가 삼국유사를 탈고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당시 충렬왕은 표충사를 찾아 동방제일의 선찰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해온다.

금강폭포 옆의 표충사 산내암자인 한계암은 원래 비비정(飛飛亭)이란 정자 자리로 예부터 고승대덕들이 자연과 벗하며 수행정진했던 터다. 임란 이후 못 쓰게 된 것을 돌아가신 혜각 스님(단청 중요무형문화재 1호)이 40여 년 전에 건물을 지었고, 이후 석정 스님이 지금의 요사채를, 선화(禪畵)에 일가견이 있는 통도사 축서암 한주 수안 스님이 대웅전을 조성, 그림 공부를 하며 수행정진했다고 전해온다.

특히 대웅전은 국내에서 가장 작은 전각이라고 한다. 성인 세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을 정도란다. 현재 한계암은 통도사 소속 동하 스님과 보살 한 분이 맡고 있다. 하지만 평일에는 거의 없고 주말에 이따금씩 찾는다고 한다. 대웅전의 부처님은 혜각 스님이 한국전쟁 때 금강산 유점사에서 갖고 내려온 철불이었으나 7년 전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개금불사했다고 한다.

한계암 위쪽 쌍폭은 금강폭포로 알려져 있지만 아래쪽 폭포는 이름이 일광(日光)폭포라고 한다. 금강폭포 금강동천과 함께 모두 혜각 스님이 명명했다고 한다.

화려한 배롱나무꽃이 한창인 표충사 경내에선 '재약 5봉'을 꼭 챙겨보자. 경내로 들어서면 좌측에서부터 뾰족한 암봉인 필봉 천황산(정상은 안 보임) 재약산 재약봉 향로산이 180도에 걸쳐 확인된다.


# 교통편-표충사 집단시설지구 무료 주차장 앞에서 하차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IC~울산 언양 24번~단장 표충사 1077번~단장면~표충 국민관광휴양지(집단시설지구) 주차장 순. 또는 경부고속도로 양산IC~배내골 어곡터널~어곡양산산업단지 좌회전~어곡터널~배내골 용선~밀양댐 배내골~에덴벨리 리조트~밀양 단장 직진~밀양댐 지나~표충사 우회전.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밀양행 버스는 오전 7시부터 매시 정각에 출발한다. 50분 소요. 3800원. 밀양터미널에서 표충사행 버스를 타고 표충사 집단시설지구 앞에서 내린다. 오전 8시20분, 9시10분, 10시, 11시. 2600원. 날머리 표충사에선 정류장이 두 곳이다. 화장실과 대형 입간판이 서 있는 '절입구' 정류장에선 오후 2시10분, 4시10분, 6시20분, 7시10분, 8시에 출발하며 집단시설지구인 '표충상가' 정류장에선 오후 3시10분, 4시50분, 5시30분에 있다. 2600원.

글·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싱가포르 중심지 인근 해안가에는 머라이언 파크라는 공원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조형물인 대형 머라이언상이 있어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머라이언상은 지난 1972년 당시 리콴유 수상이 국가 상징조각으로 지정하자고 제안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높이 8m의 머라이언상은 상반신은 사자, 하반신은 인어입니다.

 머라이언은 조어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싱가'는 사자(lion)를 의미하며, 여기에 바다를 끼고 있어 인어(mermaid)를 합성, 머라이언(merlion)이라는 상상속의 동물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머라이언상은 싱가포르의 대표적 조각가인 림낭셍이 40t의 시멘트를 이용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흔히 사진찍기는 관광객들의 기쁨이자 운명이라고 합니다. 오죽하면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라는 말이 생겼을까요.
 머라이언 파크에서는 다소 독특한 포즈의 사진을 찍는 것이 전통으로 내려옵니다. 흔히 피사의 사탑 앞에서 기울어진 탑을 두 손으로 떠받치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것처럼 이곳에서는 머라이언 파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받아 먹는 포즈를 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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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기수(汽水) 지역이죠. 공원 옆 다리가 경계가 되는 셈이죠.
 여기서 상류로 올라가면 180년 전 래플스경이 싱가포르를 처음 발견한 상륙지와 그의 동상이 나오고, 이어 강변을 따라 고급 레스토랑과 술집들이 몰려있는 번화가인 클락키가 나옵니다. 여기 또한 싱가포르 관광에서 빠뜨려선 안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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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키의 해변 레스토랑.

  경북 영덕 팔각산, 전남 고흥 팔영산, 전북 진안 구봉산의 공통점은.
 산이름 앞의 숫자만큼 근육질의 기암괴봉이 한 줄기 능선 위에 병풍처럼 우뚝 솟아 비경을 연출하고 있다. 하나같이 험준하고 변화무쌍한 암봉이 발산하는 아름다움이 상상을 초월한다. 산깨나 탄다는 전국 산꾼들의 목록에 반드시 들어있지 않나 싶다.
 조망의 시원함도 갖췄다. 험난한 날등 위를 걷노라면 파도치는 바다와 금빛물결의 호수를 원없이 볼 수 있다. 팔영산에선 다도해 국립공원을, 구봉산에선 바다에 버금가는 용담호의 금빛물결을, 팔각산에선 망망대해 동해바다의 출렁이는 파도를 각각 감상할 수 있다.
 산행 만족도 면에선 거의 100%. 거친 암봉을 오르내리다 보면 무척 고되지만 힘든 만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했던가. 재능이 뛰어나거나 빼어나면 저절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법. 이제 세 봉우리는 입소문을 통해 그야말로 명산 중의 명산으로 거듭났다.

 #팔영산(八影山), 다도해가 그리운 여덟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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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봉인 깃대봉에서 바라본 팔영산 암봉. 이름이 말해주듯 다도해를 향해 길게 드리워진
      8개의 선명한 그림자가 아주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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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깃대봉으로 가는 도중의 암릉에선 다도해 국립공원이 한눈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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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산의 자원 봉사 안내견인 흰둥이. 들머리인 능가사에서부터 암봉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친절하게 안내하는 기특한 놈이다.


 도립공원 팔영산(609m)은 전남 고흥군 고흥반도의 최고봉이다. 이름에서 짐작이 가듯 여덟 개의 암봉과 주봉인 깃대봉이 병풍처럼 나란히 이어져 있다. 해서, 팔영산은 암릉 종주산행의 고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험준하고 변화무쌍한 기암괴석이 산행 내내 기다리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말아야 할 정도다.
 이 같은 산세는 전북 진안의 구봉산(九峯山·1002m)과 곧잘 비교된다. 아홉 개의 암봉과 주봉인 천황봉으로 구성된 구봉산이 큰 덩치에 비해 비교적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운 반면 팔영산은 낮지만 구봉산에 비해 봉우리가 힘차고 매서워 흔히 남성에 비유된다.
 그렇다고 초보 산행자들이 감히 범접하지 못할 그런 산은 절대 아니다.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는데다 위험한 지점에선 쇠밧줄이나 쇠발판 쇠손잡이 등 안전시설이 친절하게 산행을 안내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팔영산이 특히 돋보이는 점은 산행 내내 아름답고 환상적인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는 것. 짜릿하면서도 넉넉한 산의 정감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의 광활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산! 그 점이 바로 팔영산의 매력이다.
 산행 도중 산행팀은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산 이름에 왜 '그림자 영(影)' 자가 들어가 있을까. 산의 그림자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기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산의 그림자가 한양까지 드리워져서, 또는 중국 위왕의 세숫대야에 비친 그림자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그렇게 불리게 됐다고 전해온다. 그야말로 설에 불과한 '믿거나 말거나'.
 정답으로 추정되는 장면이 산행 말미 예상치 않은 곳에서 잡혔다. 여덟 개의 암봉은 그침없이 이어져 있지만 주봉인 깃대봉은 마지막 8봉인 적취봉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 때쯤이면 산행 말미로 해가 뉘엿뉘엿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깃대봉에 닿은 산행팀은 다도해를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방금 지나온 8개의 봉우리로 이어진다.
 일순간 바다를 향해 길게 드리워진 8개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아! 바로 이거야'. 동시에 터져 나온 탄성.
 산이 바다를 그리워해 매일매일 그림자로 다가가는것일까. 그래서 바다로 가고자 했던 산의 꿈을 조금이라도 달래려고 이름을 팔영산으로 지은 것일까


 #구봉산(九峯山), 설악과 견줘도 손색없는 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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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봉산 정상인 천황봉에서 바라본 아홉 봉우리. 마치 엄한 아버지 앞에 앉은 아홉 명의
    자식을 연상시킨다. 변화무쌍한 암봉 주변에 운무가 드리워지자 신선의 세계인 양
    신비롭게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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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고 있는 서 있는 진안 명도봉 정상에서 바라본 구봉산. 상어이빨처럼 날카롭게
      돌기된 아봉 봉우리와 이웃한 삼각뿔 모양의 주봉인 천황봉(1002m)이 마치 엄한 아버지
      앞에 앉은 아홉 명의 자식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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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은 위 사진의 반대 방향 도로변에서 찍었다.

 전북 진안에는 금강 남쪽으로 뻗은 금남정맥의 최고봉인 운장산(1126m)과 암수 두 개의 봉우리로 유명한 마이산(685m) 그리고 구봉산(1002m)이 있다.
 구봉산은 운장산과 마이산에 비해 지명도가 다소 떨어지지만 최근 산꾼들에게 '괜찮은' 산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전국 산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덕유산 등 호남의 웬만한 봉우리를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장쾌한 조망에다 암벽등반을 연상케 하는 봉우리들의 위용과 기세는 왜 산꾼들이 이 산을 찾게 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산할 때 만나는 산죽과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융단길은 초겨울 산행의 묘미를 배가시킨다.
 구봉산(九峰山)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아홉 개의 바위봉과 주봉인 천황봉으로 대표된다. 아홉 개의 바위봉은 한 능선에 나란히 이어져 마치 엄한 아버지 앞에 앉은 아홉 명의 자식을 연상시킨다.
 험준하고 변화무쌍한 아홉 개의 기묘한 암봉이 연출하는 자연미는 설악의 그것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고 웅장하면서도 산세가 살아 숨쉰다는 평을 받고 있다.
 동행한 한 산꾼은 전남 고흥의 최고봉으로, 여덟 개의 바위봉우리가 아치형으로 나란히 이어져 있는 팔영산(八影山)과 산세가 흡사하다고 한마디 거든다.
 구봉산은 제법 산을 탄다는 산꾼들도 곤욕을 치를 만큼 무척 힘이 든다. 자신의 체력을 테스트하고자 하는 산꾼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팔각산(八角山), 암봉 조망 계곡 숲 그리고 야생화 갖춘 팔방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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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각산은 암봉을 잇는 주능선이 휘어져 있어 모든 암봉을 한눈에 넣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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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주보고 서 있는 구리봉으로 오르는 도중 바라본 팔각산.

 팔각산(628m)은 산행의 모든 재미를 갖춘 팔방미인이다.
 흔히 바위산이 다리품을 팔며 암릉을 오르내리다 그냥 하산하는 반면 팔각산은 산행 도중 산성골이라는 멋진 계곡이 기다리고 있다. 엷은 그린색의 특이한 반석 사이로 수정같이 맑은 계류가 흘러 발걸음을 곧잘 멈추게 한다.
 또 있다. 숲이 일품이고 발밑엔 야생화 천국이다.
 여덟개의 암봉을 넘으면 삼림욕장을 방불케 하는 길이 2.9㎞ 구간의 울창한 숲이 이어진다. 소중한 수목으로 대접받는 운치있는 홍송이 군락을 이루고, 때론 발목까지 빠지는 카키색 낙엽길도 덤으로 아직 남아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발에 차이는 게 야생화라 할 만큼 가지 수와 수량이 풍부하거니와 오동나무꽃과 쪽동백꽃 등 평소 보기 힘든 꽃들도 손쉽게 감상할 수 있다.
 결국 팔각산 산행은 암봉과 조망 계곡 숲 그리고 야생화로 이어지는 흔치 않은 명산으로 꼭 한번 등반하길 강력 추천한다.

 지금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는 오는 31일까지 '2008 동물아카데미'가 열리고 있다. 행사는 크게 동물공연,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체험학습, 희귀동물 대탐험전으로 나눠 진행된다.
 뭐니뭐니해도 동물 아카데미의 하이라이트는 동물공연. 어린이와 수많은 동물들이 주인공이 되어 함께 즐기는 신비로운 동화나라를 연출한다.
 출연진도 화려하다. 주인공인 오랑우탄를 비롯 원숭이 진돗개 삽살개 푸들 차이니즈독 등 강아지, 닭 병아리 앵무새 비둘기와 조련사들. 오랑우탄을 비롯한 동물 몸값만 수억 원을 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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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은 유럽 동화 '피터팬과 후크선장'과 우리나라 전래동화 '콩쥐팥쥐'를 패러디한 믹싱 코믹 동물극. 공연 시간은 45분으로 아이들에게 다소 긴 듯 하지만 웃다 보면 금새 시간이 지나간다.
 헤드 마이크를 장착한 조련사들의 설명에 배경음악이 곁들여져 귀만 쫑긋 세워 동물들의 동선만 따라가면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압권은 억대 몸값을 자랑하는 오랑우탄의 능청스런 연기. 열심히 바닥을 닦는 콩쥐역의 조련사 언니를 밀어 넘어뜨리는 등 시종일관 콩쥐 언니를 괴롭힌다. 때론 '웃찾사'의 만사마를 패러디한 연기를 선보인다. 조연 및 단역격인 강아지 비둘기 앵무새 등의 깜짝 연기도 볼 만하다. 또 공연 도중 객석의 어린이를 무대로 불러 함께 춤을 추고 뽀뽀도 하고 사진 촬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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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매를 밀어주는 김미정 조련사와 오랑우탄(왼쪽)과 훈련 중인 오랑우탄.


 그렇다면 평소 동물들은 무얼 먹고 어떻게 교육을 받을까.
 이번 행사를 주관한 대한민국동물학교의 교장이자 최고참 조련사 김미정 씨로부터 동물공연 주역들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씨는 20여 년 경력의 국내 최초의 베테랑 여성 조련사이다. 그는 공연 중 끊임없이 일어나는 돌발상황을 특유의 위트와 빼어난 입심으로 웃음판으로 승화시키는 마력을 발휘한다.

 우선 능청스런 연기로 사랑을 독차지하는 오랑우탄. 말레이어로 '오랑'은 인간, '우탄'은 숲이다. '숲 인간' 다시 말해 숲에 사는 인간이란 뜻이다. 그 만큼 오랑우탄이 서식하는 곳은 숲이 울창해야 함을 보여준다. 실제로 고향은 지구상에서 유일한 서식지인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우리나라 사람 절반 이상이 아마도 목재가구를 떠올릴 것이다. '보르네오 가구' 때문일 게다.

 참고로 보르네오섬의 경우 북쪽은 말레이시아 땅이고 남쪽은 인도네시아 땅이다. 인도네시아는 보르네오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칼리만탄'이라고 부른다. 참고 하나 더. 보르네오섬의 영어 스펠링은 'Borneo'. 영어권에서는 모두 '보니오'라고 발음한다. 보르네오는 일본인의 발음을 그대로 우리나라가 따라한 것. 때문에 영어권 화자에게 '보르네오'라고 하면 절대 알아듣지 못한다.

 같은 나무에서 절대 잠을 자지 않는다는 오랑우탄의 몸값은 마리 당 1억5000만원. 엄청 귀하신 몸이다.
 이번 동물아카데미에 출연한 오랑우탄은 5, 6(2마리), 7세로 암컷 수컷 각각 2마리다. 수명은 30~40년 정도. 사람 나이로 환산할 경우 두 배로 보면 된다. 특별한 교육은 없다. 머리가 좋아 그저 사람이 하는 행동을 수시로 가르치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6개월 정도만 함께 생활하면 데뷔할 수 있다.

 음식은 사람과 똑같이 먹는다. 숟가락과 포크 사용법만 가르치면 만사 OK. 젓가락은 손가락이 길어 불가능하다. 고추장을 둠뿍 친 비빕밥과 된장국도 먹고 라면 자장면 과일 단무지 등 못 먹는 것이 없다. 단 육식을 하는 침팬지 고릴라와는 달리 육식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체력유지를 위해 상추쌈에 싼 삼겹살은 먹인다. 처음엔 마지못해 먹었지만 지금은 잘 먹는 편이다.

 매일 아침 양치와 세수도 하며 피부가 갈라지지 않게 온 몸에 로션을 바른다. 사람이 없을 땐 같이 공연하는 강아지들을 안아주고 돌본다. 개가 말을 잘 안들을 땐 귀를 당겨 혼을 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침팬지와 고릴라를 빼고 왜 오랑우탄일까.
 김 씨는 오랑우탄보다 머리가 훨씬 좋은 침팬지는 계속 반복해야 하는 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짜증을 내며 일부러 공연을 망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릴라는 머리는 오랑우탄과 비슷하지만 몸집이 너무 커 조련사가 다루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오랑우탄과 달리 원숭이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란 말처럼 개와는 천적이다.
 오랑우탄은 성격도 좋아 조련사 모두에게 호의적이지만 원숭이는 낯가림이 심해 지정된 엄마(담당 조련사)가 아니면 손도 못되게 한다.

 문제는 야생의 습성을 못버려 찔끔찔끔 싸는 응가. 해서 공연 중엔 귀저기를 채운다. 이와 관련, 에피소드를 부탁했다. 공연 중 엉거주춤해서 보니 응가를 한 것이었다. 무대 뒤로 못나가게 온갖 험한 인상을 쓰며 겨우 공연을 마쳤다. 자신이 싼 오줌에 발라당 자빠지기도 하고, 너무 오버하다 무대 밑으로 떨어진 적도 있단다.

 나머지 동물들은 어떻게 훈련시킬까.
강아지는 돼지나 염소처럼 먹이를 이용해 훈련한다. 식탐이 강해 보름 정도면 무대에 오를 수 있다. 시력이 나쁜 닭은 소리를 이용하며, 귀속성이 강한 비둘기는 조명을 이용한다. 앵무새는 비둘기보다 지능이 높아 환경이 바뀌면 잘 날지 않는다. 해서 반드시 현지 적응훈련을 몇 번이고 해야 한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그의 명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에서 강진 월출산 동남쪽 자락의 무위사를 소개하면서 '변함없는 것은 무위사의 늙은 개 누렁이뿐'이라고 적고 있다. 능력있는(?) 스님들이 새로 불사를 하면서 고색창연한 옛 것들이 사라진데 대한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게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송아지 만한 그 누렁이는 답사객이 와도 꿈쩍도 하지 않고 양지 바른 벽쪽에 길게 엎드려 고개를 앞발에 푹 묻고는 눈꺼풀만 잠시 들었다가 이내 감아버려 답사객들의 웃음을 사곤 했다.
 흔히 답사나 산행을 하면서 덤으로 갖게 되는 기쁨이 이 처럼 그 곳의 명물이 돼 버린 견공들을 만나는 것이다.

 #초행산꾼 안내하는 '흰둥이'-고흥 팔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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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늠름한 흰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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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팀이 쉴 때도 다소곳이 기다리는 흰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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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줄이 걸려 있는 암봉으로 오르는 지점까지 안내한 후 하산하는 흰둥이.

 
 이번 팔영산 산행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굴이 역삼각형이고 꼬리가 등쪽으로 말려 올라가 있어 진돗개로 추정되는 이 흰둥이를 처음 본 곳은 산행 들머리인 능가사(楞伽寺) 입구.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지만 7~8분 지나면서 이 개가 어쩌면 우리를 안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산행팀이 도중에 멈춰 산세를 얘기하고 있으면 흰둥이도 앞서 기다리고, 다시 출발하면 그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그러다 말겠지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제법 경사진 곳을 오를 때도 역시 같은 간격으로 앞서 가고 속도를 일부러 늦춰봐도 역시 같은 간격을 유지한다. 능가사에서 출발한 지 어언 50분. 마침내 주능선에 올라 휴식을 취할 땐 다가와 바로 옆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먹을 것을 주면 그것만 다소곳이 받아 먹을 뿐 여느 개처럼 더 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비범함 그 자체였다. 너무 오래 쉬니까 산행을 계속 하자고 몸짓을 보낸다.
 뒤늦게 올라온 한 산꾼은 이 "이 개가 이젠 다른 팀을 안내하고 있네"라고 말한다. 그는 팔영산이 좋아 수차례나 찾은 적이 있으며 그 때마다 이 개를 봤다고 말했다.
 알고보니 그는 팔영산의 '자원 봉사 안내견'이었다. 다시 산길을 재촉, 흰둥이가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쇠줄이 걸려 있는 암봉에 다다르자 그 놈은 임무를 완성한 듯 아쉬움을 표하며 재빨리 내려갔다.
 하산 후 능가사 주변을 둘러보며 흰둥이를 찾았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또 다른 팀을 안내하러 산으로 올라 갔을까.


 #승복 입어야 짖지 않아요-고성 와룡산 향로봉 운흥사 '먹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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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은 심술궂게 생긴 먹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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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늑한 분위기의 운흥사 전경(왼쪽)과 경내 위치한 운치있는 장독대.

 경남 고성 와룡산 향로봉 기슭에 위치한 운흥사(雲興寺). 공룡발자국 화석이 즐비한 '공룡의 무도장'인 상족암과 그리 멀지 않다. 임진왜란 땐 사명 대사가 승병을 지휘했고 이순신 장군은 수륙양면 작전을 꾀하기 위해 세 번이나 다녀간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는 화원양성소로 유명해 영조 때 불화의 대가였던 김의겸 스님을 배출한 곳도 바로 이 운흥사이다. 지금 이 절에는 김의겸 스님이 대표가 돼 제작된 대형 괘불이 보존돼 있다. 운흥사는 괘불재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의 신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온다. 살아 생전 괘불재를 세 번만 보면 죽어서 극락에 간다는 말이 전해오기 때문이다.
 이 운흥사를 찾으면 주의 깊게 봐야 할 견공이 세 마리나 된다.
 우선 16살로 추정되는 삽살개 '먹쇠'. 이름 그대로 식성이 아주 빼어나다. 주지인 경담 스님은 "먹쇠는 주지 스님을 세 분이나 모셨을 정도로 워낙 연로(?)하다 보니 정확한 나이를 알지 못하지만 주지 스님이 계시다가 떠난 햇수를 역으로 꼽아보면 대략 그렇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 나이로 치자면 아마도 80살쯤은 되지 않았나 싶다.
 숫컷으로 100% 삽살개 순혈인 '먹쇠'는 오랫 동안 절밥을 먹다 보니 승복을 입지 않으면 일단 경계를 한다. 특히 모자를 쓰고 화려한 등산복을 입고 있으면 예의주시하다 이상한 행동을 할 경우 짖는다. 아주 순하고 영리한 데다 그날그날 주인의 심기까지 살피는 노련함마저 갖춰 손될 데 하나 없는, 절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한다. 가끔 짖으며 물려고도 하지만 절대 물지 않아 유일하게 자유로운 몸이다.
 주지 스님도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옷매무새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암컷으로 네 살인 삽살개 '혜순'이도 있다. 지혜롭고 순해라는 의미로 명명된 '혜순'이는 이름 그대로 잘 안 짖는다. '먹쇠'와 달리 혜순이는 순혈 삽살개가 아니라고 한다.
 
 역시 암컷으로 세 살인 막내 '운수'는 갈색의 진돗개다. 낯선 사람들이 오면 특히 신경이 날카로와져 많이 짖는단다. 해서 이름도 '운흥사 운, 지킬 수'를 가져와 '운수'라고 지었단다.

'혜순'이와 '운수'는 아직 어려 사람들을 물 수도 있어 묶여 있다.


 #앞 발 하나 없어도 집은 잘 지켜요-영천 작은보현산 거동사 '진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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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우수에 젖어 있는 듯한 진돌이와 거동사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초입.

 평균 연령 70세인 경북 영천군 자양면 보현골 주민들이 등산로를 개척해 유명세를 탄 작은보현산~갈미봉 코스의 들머리는 거동사(巨洞寺). 이 절집에는 '진돌이'라는 하얀 진돗개가 한 마리 있다. 안타깝게도 왼쪽 앞 발이 하나 없다. 마을 뒷산에 멧돼지가 너무 많아 이를 잡기 위해 설치한 올무에 진돌이가 걸렸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당시 진돌이의 울음 소리에 달려가 보니 올무에 걸려 빠져나오기 위해 발악을 하다가 거의 발이 잘린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는 것.
 이후 진돌이는 주위의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몸조리를 잘 해 비록 지금은 움직이는 데 불편하지만 본연의 임무인 절 지키기는 완벽하다고 한다. 원래부터 아주 온순한 진돌이는 절집에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도 짖지 않고 그냥 물끄러미 보다가 엉뚱한 행동을 할 경우에만 짖는 현명한 지킴이라고 한다.
 작은보현산과 관련 참고 하나. 작은보현산은 글자 그대로 천문대가 위치한 보현산과 이웃해 있다. 하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나 잘못된 등산지도에는 같은 산으로 표기해 혼선을 빚고 있다.

해운대구청 '통닭과의 전쟁' 판정승
수거 후 폐기 초강수에 노점상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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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질서유지 요원들이 통닭 판매 노점상을 단속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서 통닭을 판매하는 노점상이 크게 줄었다.

지난해 피서객이 먹다 버린 닭뼈 때문에 애를 먹었던 해운대해수욕장 임해행정봉사실 측이 올해 '수거 통닭 폐기'라는 초강수로 '통닭 판매 노점상과의 전쟁'을 선포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17일 부산 해운대구청에 따르면 지난달 1일 개장 이후 노점상들로부터 수거한 통닭은 이날 현재 800여 마리에 달한다. 최초 적발된 경우 돌려준 300여 마리를 제외한 500마리가량이 폐기 처분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노점상들은 임해행정봉사실을 찾아와 공무원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몸싸움까지 벌였다. 한 노점상은 "휴가철이라고 피서지로 여행을 떠나지만 우리는 경기가 좋지 않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해수욕장에서 통닭을 팔고 있는데 폐기처분까지 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하소연했다.

노점상들은 구청 직원들과 질서유지 요원들의 눈을 피해 가며 마치 첩보전을 방불케할 정도로 신출귀몰하게 통닭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보다 통닭을 판매하는 노점상들이 확실히 줄었다고 임해행정봉사실 관계자들은 전했다.

최근에는 백사장에서 통닭을 판매하다 적발되더라도 빼앗긴 통닭을 돌려달라며 임해행정봉사실을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노점상들도 사라지고 있다.

해운대구청 관광시설사업소 장제균 씨는 "생계유지를 위해 노점에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상점을 운영하면서도 버젓이 노점행위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면서 "한 번 눈감아 줄 경우 질서가 일시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호정 기자 lighthouse@kookje.co.kr
 
 

 장미란의 값진 금메달 이면에는 큰언니와도 같은 스승인 부산 출신의 고 김동희 코치가 있었다. 고 김 코치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지난 3월 10일 난소암 투병끝에 36세 미혼의 나이로 타계했다.
 국제신문은 지난 8월 18일 이 같은 안타까운 사연을 특종 보도했다. 기사를 작성한 김찬석 부장의 양해하에 전문을 싣는다. 이 기사 아래에는 고 김 코치가 타계한 지난 3월 기사와 사진이다. 편집자주.


장미란, 하늘의 스승님께 金 약속 지켰다
부산출신 김동희 전 코치 올림픽 직전 타계
세계新 메달 걸고 눈시울 "영전에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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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헤라클레스' 장미란(25·고양시청)이 16일 베이징 항공항천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여자 역도 최중량급(75kg이상급)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뒤 기도로 기쁨을 표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베이징의 제자는 하늘의 스승에게 한 금메달 약속을 지켰다. 제자는 귀국하면 스승의 무덤을 찾아 그토록 원했던 금메달을 바친다. 그 제자는 장미란(25·고양시청)이며, 스승은 고 김동희 전 여자역도 대표팀 코치이다.

 16일 베이징올림픽 여자역도 최중량급에서 장미란이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내자 누구보다도 감회에 젖은 사람들이 있다. 고 김동희 코치의 가족들이다. 부산 출신인 고 김 코치의 어머니(60)와 오빠 병수(39·부산~김해 경전철공사 감리단) 씨는 부산에 살고 있다. 고 김 코치는 베이징올림픽을 5개월 앞두고 지난 3월 10일 난소암 투병 끝에 36세 미혼의 나이로 타계했다. 〈국제신문 3월 13일자 보도〉

병수 씨는 "장미란 선수의 금메달 이후 오승우 대표팀 감독이 동생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바람에 동생 생각이 간절했다"며 "장 선수가 동생과의 약속을 지켜줘서 정말 고맙다"고 밝혔다. 오 감독은 장미란의 금메달 획득 직후 "고 김동희 코치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오 감독은 경기장에 고 김 코치의 유골을 담았던 보자기와 유품들을 들고 갔다. 제자 장미란의 금메달을 지켜보라는 배려였다. 장미란에 앞서 53㎏급 은메달을 따냈던 윤진희(22·한국체육대)도 "친엄마같이 보살펴 준 고 김동희 코치님께 감사드린다"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처럼 고 김 코치는 20대 초반의 여자대표 선수들에게 엄마같고 언니같은 존재였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부터 올해 초 투병으로 입원하기까지 여자대표팀 코치로 일하면서 감수성 예민한 어린 선수들을 다독거렸다. 또한 그가 마련한 개인별 심리 프로그램은 장미란과 윤진희 등이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게 한 밑거름이었다. 고 김 코치는 현재 여자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는 김도희 코치와 부산 남성여고 시절 바벨을 함께 들어올리며 땀을 흘렸던 친구 사이. 여자역도 대표팀의 베이징 성과 뒤에는 부산 출신 여자역도 대모들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병수 씨는 "동생이 암 투병으로 입원해 있을 때 장미란 선수가 수시로 병실을 찾았고 쾌유를 기원하며 올림픽 금메달을 꼭 드리겠다는 내용의 카드도 참 많이 보내줬다"고 회상했다.

고 김 코치의 어머니는 몇 년 전 갑상선암 수술로 현재도 계속 약을 복용하고 있다. 게다가 딸의 불상사까지 겹쳐 심신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 병수 씨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동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머니가 힘들어 하신다"고 말했다.

여자역도 선수단은 베이징에서 돌아오면 조만간 김 코치가 잠들어 있는 김해 신어산 추모공원을 찾을 예정이다. 병수 씨는 "선수단이 메달을 들고 단체로 추모공원을 찾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왔다"며 "병상에서도 그토록 선수들을 걱정하던 동생이 이제는 웃는 얼굴로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찬석 기자
chansk@kookje.co.kr   



<국제신문 3월 13일자 스포츠면 보도 내용>

[인사이드 아웃사이드] 김동희 태릉선수촌 지도위원 '역도계 영원한 대모'로 잠들다
 
 지난 10일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다. 한때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의 4번타자로 그라운드를 누볐던 이호성(41)이 '일가족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의 공개 수배를 받은 지 하루도 되지 않아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스포츠 스타의 전혀 다른 모습에 야구팬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호성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시간 또 한명의 스포츠 스타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태릉선수촌 김동희(36) 지도위원이다. 그는 인기 종목의 스타가 아니었다. 결혼도, 세속적인 성공도 모두 뒤로한 채 자신이 사랑하던 역도와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음지에서 한 우물만 팠다. 김 위원은 10일 오전 7시 서울 원자력병원에서 지병인 난소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김 위원은 '여자가 무슨 역도를 하느냐'는 비웃음이 난무하던 풍토에서 한국 여자 역도의 기틀을 다진 주인공이었다. 빈소가 차려진 원자력병원에는 김 위원과 함께 운동을 했던 선후배 여자 선수 수백 명이 찾아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한국 여자역도의 간판인 장미란은 누구보다 서럽게 울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대한역도연맹 관계자들도 그저 눈물만 흘렸다.

김 위원은 부산 출신이다. 토성초등에서 공던지기로 스포츠와 인연을 맺었고 남성여고 1학년까지 투창 선수로 뛰었다. 그러다 남성여고 2학년때 역도로 전환했다. 워낙 성실했던 김 위원은 '연습벌레'로 불릴 만큼 지독하게 훈련에만 매달려 바벨을 잡은 지 불과 1년 만인 남성여고 3학년때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부산 동구청에서 화려한 선수생활을 했던 김 위원은 199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 1 동 2, 1994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은 3개를 획득하며 한국 여자 역도를 궤도에 올려놓았고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서 역도를 포함한 스포츠 전체에 자신의 정열을 쏟아부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여자대표팀의 코치로 활약했던 김 위원은 결혼도 미루고 역도에만 매달렸다. 그러던 중 암이라는 병마가 찾아왔지만 김 위원은 굴하지 않았다. 투병 중이던 올 2월 모교인 한국체대 대학원에서 여자 역도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박사 학위를 받는 불꽃을 태우기도 했다.

평생 바벨과 씨름했던 짧은 인생. 이루고 싶었던 많은 과제를 후배들에게 남겨두고 그는 영원히 바벨을 잡을 수 있고 스포츠와 함께 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그는 12일 오전 그의 땀과 혼이 밴 태릉선수촌을 한바퀴 둘러보고 고향인 부산의 영락공원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해 영면에 들어간다.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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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2일 부산 영락공원에서 역도인을 포함한 체육인들의 애도속에 태릉선수촌 김동희 지도위
  원의 영결식이 거행되고 있다.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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