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하이원스키장을 다녀와서
국내 유일 내국인 출입 카지노도

바야흐로 살을 에는 동장군의 심술이 시작됐다. 장삼이사들의 대응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일 터. 주로 장년층 부류는 따뜻하게 몸을 녹일 수 있는 온천탕을 그리워할 게고 젊은층은 파란 하늘 아래 하얀 슬로프를 질주하는 '쌈박한' 시추에이션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을 게다.

특히 최근 스키장이 몰려 있는 강원도와 호남지역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마니아층 스키어나 보더들은 표정관리를 하며 내심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지난 1년 동안 애오라지 이 시기만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린 그들이 아니던가.

지금까지 부산에선 강원도에 버금갈 정도로 눈이 무진장 온다는 한수 이남의 최고 설국인 무주스키장이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지만 지난해 부산서 가까운 양산에 에덴밸리스키장이 문을 열어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다. 올해는 강원도 정선의 하이원 스키장이 부산을 비롯한 영남지역의 마니아층을 겨냥해 최근 영남영업소를 열었다.

'아우라지의 고장' 정선은 강원도 남부지역. 부·울·경 관광객들에겐 심리적으로 아주 멀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3시간30분~4시간 정도에 불과해 새벽에 출발할 경우 당일치기도 가능하다. 스키장만 있는 게 아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내국인의 출입이 가능한 강원랜드 카지노도 있어 외국영화에서 봄 직한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다.

      마운틴탑으로 올라가는 곤돌라에서 내려다본 초보자 코스인 제우스2 슬로프가 S라인처럼 펼쳐져 있다.


#상전벽해의 땅, 버려진 탄광에서 사계절 관광지로

 1980년대 중반까지 정선을 비롯한 영월 태백 일대의 강원도 남부지역은 석탄산업의 메카로 '지나가는 개도 입에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한 예로 1980년대 초 7급 공무원 월급이 11만 원 정도일 때 광부들의 평균 월급은 25만 원을 상회했다. 덕분에 이 지역의 가전 대리점은 곧잘 전국 판매 1위를 석권하곤 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승승장구하던 석탄산업은 1980년대 후반 에너지 소비구조가 바뀌면서 급속도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정부가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을 추진했고, 탄광들은 눈물을 머금고 서둘러 폐광했다. 지역경제도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극에 달한 탄광촌 주민들의 상경 투쟁이 시작됐다. 정부도 상황 인식은 했지만 이곳이 워낙 오지여서 제조업 유치는 어려웠고 핵폐기물처리장은 환경문제에 부딪혔다. 우여곡절 끝에 카지노 사업허가 등이 담긴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폐광 후 카지노 사업을 유치한 미국 덴버시나 펜실베이니아의 사례가 참고가 됐다.

문제는 위치 선정. 당초엔 태백 영월 정선의 접경지역인 함백산 만항지역이 유력했으나 이 지역 토지의 70% 이상을 소유한 정암사에서 딴죽을 걸어 자연스럽게 바로 이웃한 정선 고한 사북땅 백운산 지역으로 마침내 확정됐다.

지난 1998년 입사, 이곳에 온 하이원 리조트 박은희 대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주변은 온통 폐광의 흔적이 역력했고 탄광촌의 사택은 성냥갑처럼 오밀조밀 붙어 있었지만 폐가로 변한 빈집이 절반이 넘었죠. 읍내의 가게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지금은 카지노가 가까운 사북은 숙박시설과 유흥가로, 스키장과 인접한 고한은 스키숍과 펜션이 들어서 웬만한 대도시의 번화가를 방불케 한다. 1998년 당시 평당 30만 원 하던 버려진 땅이 이제는 1000만 원을 넘었고, 그 중 금싸라기땅은 1500만 원을 호가한다.

하이원 스키장에서 가장 높은 마운틴탑. 3층이 45분만에 360도 돌아가는 회전식 레스토랑인 '탑 오브 더 탑'.
마운틴탑의 회전식 레스토랑인 '탑 오브 더 탑'의 실내 모습.


#국내 스키장 선호도 2년 연속 1위    
 
지난 2006년 문을 연 하이원 스키장은 최근 한국갤럽조사 결과 스키장 선호도에서 2007, 2008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인지도 또한 개장 2년 만에 5위로 선정될 만큼 성장했다. 카지노를 거느린 모기업인 (주)강원랜드의 풍부한 자금력으로 젊은층의 취향에 맞게 설계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백운산(해발 1426m) 자락의 하이원 스키장은 슬로프 면적과 총길이 등이 모두 국내 최정상급을 자랑한다. 500여만 ㎡의 광활한 부지에 18면인 슬로프의 총길이는 21㎞에 달하고 슬로프 평균 너비 또한 40m(10차선 도로)를 자랑한다. 특히 슬로프 18면 가운데 11면은 국제스키연맹으로부터 국제 공인을 받았고, 월드컵 스키대회 개최가 가능한 공인슬로프도 3면이나 된다.

무엇보다 4.2㎞나 되는 초급자용 슬로프는 하이원의 가장 큰 자랑거리. 타 스키장의 경우 초급자 코스는 스키장 하단부에 짧게 마련된 것과 달리 이 코스는 곤돌라를 타고 스키장 최정상인 마운틴탑에서 밸리허브를 경유, 밸리콘도까지 완만한 경사로 이어진다.

또 하나의 자랑은 베이스가 두 개라는 점. 국내에선 베이스가 두 곳인 스키장도 있지만 별개로 운영된다. 하지만 하이원의 베이스는 곤돌라로 연결돼 누구나 손쉽게 이곳저곳을 오갈 수 있다. 여기에 베이스가 아닌 하이원호텔에서도 스키장 정상인 마운틴탑까지 곤돌라가 운행돼 그야말로 곤돌라로 스키장을 포함한 리조트 전체를 오갈 수 있다. 마운틴탑 정상의 회전식 전망 레스토랑은 홀의 중심부와 창문은 그대로 있으면서 바닥만 45분마다 한 바퀴 돈다. 앉은 자리에서 태백산 함백산 등 백두대간 주능선과 지장산 두위봉 등 주변 산들을 감상할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백운산 정상인 마천봉에도 가보자. 40~50분 걸린다.

아이들을 위한 눈썰매장은 기존의 하이원호텔 옆 외에도 올해부턴 마운틴콘도 잔디광장에도 또 하나 마련됐다. 피로는 마운틴콘도 앞 노천탕인 '하늘샘'과 밸리콘도 내 사우나에서 풀면 된다.


#강원랜드 카지노- 스키만 타면 섭섭, "오늘은 나도 갬블러"

카지노가 있는 강원랜트 호텔 야경. 4층에 있으며 5층에는 VIP용 카지노가 있다. 

 '오늘 밤은 나도 갬블러!'
하이원 리조트를 찾아 강원랜드 카지노를 가지 않았다면 '앙코 빠진 찐빵'. 잠을 약간 줄이더라도 반드시 가보길 권한다. 국내에서 내국인이 출입 가능한 유일한 카지노이기 때문이다. 강원랜드호텔 4층에 위치해 있으며 5층은 VIP 고객용이다. 인근에는 성벽 모양의 '루미나리에'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입장료는 5000원. 신분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공항검색대처럼 보안문을 통과해야 한다. 사진은 절대 찍지 못한다. 첫 인상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차림새가 척도가 돼선 안 되지만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장삼이사들이 몰려 있는 시골 5일장이 연상된다.

일단 한번 둘러보자. 한쪽에선 게임테이블마다 6, 7명과 여성 딜러가 카드를 주고받으며 게임을 하고 있고, 그 뒤로 10여 명이 에워싸 테이블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무슨 게임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들었지만 바카라 블랙잭이란다. 게임테이블을 둘러싼 기기들은 모두 파친코로 불리는 슬롯머신이다.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 계속 돌아봤다. 흡연실도 보이고, 음료는 무한정 제공되고, 현금인출기도 곳곳에 눈에 띈다. 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시계가 없다. 이번엔 사람들을 유심히 봤다. 돈을 다 잃었는지 슬롯머신 의자에 앉아 허공을 보며 한숨을 쉬는 아주머니, 무표정으로 일관한 채 창구에 앉아 돈을 세는 여직원, 돈독이 올랐는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남자….

온 김에 그냥 갈 수 없지 않은가. 가장 만만한 슬롯머신 앞에 앉아 1만 원을 넣었다. 한 동료는 눈깜박할 사이에 1만 원이 날아갔고, 기자는 하나가 맞아 4만 원 정도 땄지만 결국 잃고 말았다. 1만 원 갖고 조금 더 놀았을 뿐이었다. 개장시간 오전 10시~다음날 오전 6시. 

#스키장 주변 맛집   

황태구이.
황태찜.
오삼불고기.
 
스키장 내 음식점은 아주 비싸다. 해서, 주변 맛집을 소개한다.

황태요리 전문점 황태명가(033-591-5288). 원래 황태요리 하면 용평이 원조다. 황태 덕장 또한 대부분 용평에 몰려 있다. 하이원 리조트 입구의 황태명가는 최근 용평에서 식당을 접고 이곳 정선으로 옮겼다. 주인과 주방장 서빙아줌마까지 그야말로 세트로 움직였다. 용평에서 직접 덕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최상의 재료로 용평에서의 그 맛 그대로라고 보면 된다. 황태구이(1만 원) 황태찜(2만5000~3만5000원) 황태불고기(〃) 황태해장국(6000원) 황태미역국 등 하나같이 별미다. 오삼불고기(8000원)도 맛있다. (033)591-5288

태백 초막 칼국수(033-553-7388). 상호는 칼국수집이지만 간판 메뉴는 고등어찜(5000원). 무, 시래기와 매운 양념이 어우러지는 그 맛은 가히 환상적이다. 두부찜(4000원)도 일품이다. 사북에서 태백 방향으로 가다 만나는 태백운전면허시험장 직전 대로변에 위치해 있다. 30분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부산서 하이원 스키장 가는 길- 관광버스·열차 당일치기 운행   
 
하이원 리조트의 경우 자가운전이 부담스럽다면 여행사의 당일치기 패키지 상품(교통편 리프트 렌털 강습)을 이용하면 20% 정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스키 8만2000원(주중)~9만1000원(주말), 보드 8만4000원(주중)~9만4000원(주말). 강습 비용 제외. 강습의 경우 4시간 기준 주중 1만9000원, 주말 2만4000원. 새부산관광(051-851-0600) 뉴부산관광(051-806-8811) 은성관광(051-808-2211).

부산서 하이원 리조트로 떠나는 당일치기 스키열차도 있다. 부산역 출발, 1월 1, 3, 4, 10, 11, 17, 18일, 2월 3~8일, 14일 총 14회 왕복. 오전 5시30분 출발, 밤 11시30분 도착. 5만5000원(어린이 5만 원). (051)440-2513

마산역 출발, 12월 26~28일, 1월 30, 31일, 2월 1일 총 6회 왕복. 5만5000원(어린이 5만4000원). (055)294-7788

# 교통편 - 중앙고속도로 제천IC서 내려 38번 국도 타야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제천IC~영월 제천~영월 단양(하이원) 38번~영월 38번~영월 쌍용~느릅재터널~강원도 영월군~영월 38번~영월 단양~평창 영월 38번~태백 영월 38번~태백 석항~태백~태백 석항~정선군 신동읍~태백 사북 38번~태백 고한 하이원리조트(스키장)~사북 하이원 방향.

 

하이원스키장 품은 정선 백운산 눈꽃산행
고한읍 막골서 출발, 걷는 시간만3시간30분
산행 내내 하얀 슬로프와 백두대간 보여
상처입은 검은땅 감싸주기 위함인지 눈많아


그 이름도 예쁜 '하늘길'.

문경과 충주의 경계로 월악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백두대간길인 하늘재를 본따서 명명했단다.

산행팀이 이번에 소개하는 하늘길은 백두대간 하늘재보다 북쪽인 강원도 정선땅의 '흰 구름 산' 백운산(白雲山)에 열려 있다. 하늘재가 해발 500m대에 불과한 반면 하늘길은 그 이름에 걸맞게 1000m대를 오르내린다. 이 하늘길의 정점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는 이름의 마천봉(摩天峰·1426m). '한국의 장가계'로 불리는 완주 대둔산 마천대(摩天臺)가 879m에 불과하니 하늘과 맞닿아 있는 봉우리 중에선 아마도 최고로 높은 듯싶다.

눈앞의 하얀 스키슬로프만 보이지 않는다면 눈덮인 히말라야라고 해도 속을 정도로 아름답고 웅대하다. 사진은 백운산 밸리탑 인근에서 바라본 하이원 스키장과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파도처럼 일렁이는 정선 태백 지역의 연봉들.
하이원 스키장을 품은 정선 백운산은 1000 m의 능선길이 험하지 않고 부드러워 마치 어머니 품속을 거니는 기분이 든다.

  
'흰 구름 산' 백운산 정상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마천봉이고, 그 봉우리로 수렴되는 마루금이 하늘길이니 떠나기 전이라면 신선놀음쯤으로 여겨질 만하다.

정선 백운산은 하이원스키장을 품고 있다. 덕유산 향적봉이 무주스키장을, 발왕산이 용평스키장을 품고 있듯이.

정선에는 백운산이 하나 더 있다. 굽이굽이 돌고도는 그 유명한 동강의 물줄기를 산행 내내 조망할 수 있는 일명 '동강 백운산(883m)'이 바로 그것이다. 지명도 면에서는 '동강 백운산'이 훨씬 위다.

사실 기자는 산행기를 정리하면서 깜짝 놀랐다. 그 어떤 산행 관련 온라인 사이트에도 하이원스키장을 품은 백운산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국내 열댓 개의 백운산 중 가장 높은데도 말이다. 그만큼 오랜 기간 무명으로 지내왔던 것이다. 하이원스키장이 문을 열면서 바야흐로 인간의 발길이 허용된 것이다.

산세는 '1000m급'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부드럽다. 마치 어머니 품 같다. 조망 또한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정상인 마천봉에 서면 늘씬한 여인의 각선미처럼 슬로프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반대편에는 함백산과 태백산의 백두대간 마루금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산행은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막골~약수암~잇단 쉼터(벤치)~낙엽송숲~하이원호텔 갈림길~(바람꽃길)~밸리탑 탐방로 갈림길~백운산 마천봉~(산철쭉길)~마운틴탑~운탄도로~도롱이연못~화절령 삼거리~강원랜드 폭포주차장.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3시30분 안팎. 초보자도 쉽게 완주할 수 있는 전형적인 워킹산행지로 적극 추천한다.



들머리는 고한역 인근의 막골. 사북역 쪽에서 고한역으로 가다 '함백관'이라 적힌 이정표를 보고 우측으로 굴다리를 통과하자마자 좌측으로 10분쯤 걸으면 '백운산 등산로', '막골'이라 적힌 표지석과 등산안내도가 서 있다.

고한읍 고한리 막골은 오래 전 골짜기 안쪽의 화전민들이 막(幕)을 치고 살았다 해서 불리던 이름이다. 표지석과 등산안내도 사이의 오름길이 백운산 북동릉으로 접근하는 본격 들머리다.

6분쯤 오르면 조그만 암자인 약수암. 산길은 암자 못가 좌측으로 하얀 밧줄이 인도한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낙엽송숲으로 오른다. 비록 경사는 꽤 되지만 버겁지는 않다.   
 
한 굽이 오르면 벤치가 둘 있는 쉼터. 암자에서 19분. 잠시 숨을 고른 후 좌측으로 올라서면 거대한 병풍바위가 떡 하니 막고 있다. 우회해서 다시 한 굽이 올라서면 두 번째 벤치. GPS단말기엔 이미 해발 1000m가 넘었다. 스키슬로프가 앙상한 가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옛 묘터인 이곳에는 산길이 하나 더 보인다. 밸리콘도로 이어지는 산길로서, 안내책자에는 표기돼 있지만 아직은 개방하지 않은 길이다.

이제부턴 오르막길이 거의 없는 편안한 낙엽송숲길이다. 바늘잎을 모두 떨군 낙엽송은 마치 늘씬한 각선미의 여인들이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동행한 하이원리조트 안전상황팀 차현수 주임은 한여름 이 길에선 냉기를 느낄 정도라고 한다.

산길 좌측 발아래론 고한읍내와 태백으로 넘어가는 새 도로의 입구도 얼핏 스쳐간다. 고도를 높일수록 기온 탓인지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다. 그렇다고 스패츠를 찰 정도는 아니다.

앞선 벤치에서 30분 뒤 국내에서 가장 고지인 해발 1100m 지점에 있다는 하이원CC와 하이원호텔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지점에 닿는다. 역시 벤치 두 개가 있다. 이미 폐장한 골프장의 해저드는 얼어 있다. 골프장 뒤로는 옛날 대한중석이 위치했던 영월 상동읍이다.

산행 중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 위치해 있다는 하이원CC를 볼 수 있다. 가장 높은 18번 홀이 1000 m대라고 한다. 하이원호텔에서 출발하는 이 곤돌라는 하이원 스키장의 최고 지점인 마운틴탑까지 올라간다. 

등산로는 하늘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1000m급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부드럽다. 6분, 13분 뒤 각각 골프장이 점차 더 가깝게 보이는 전망대에 도달한다. 마지막 전망대에선 골퍼의 스윙하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가깝다. 눈앞에 보이는 곤돌라는 하이원호텔에서 스키장의 최정상인 마운틴탑을 오간다.
   
 
능선을 따라 10분이면 머리 위로 곤돌라가 오가는 지점에 닿는다. 곤돌라 철탑 앞 삼거리다. 잠시 볼 게 있다. 좌측 발아래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대형 곤돌라탑이 그것. 높이 98m로 동양에서 두 번째로 높다 한다. 그 뒤로 태백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우측으로 가면 마운틴탑과 함께 스키장의 또 다른 정상인 밸리탑. 산행팀은 길을 가로질러 '등산로'라 적힌 표지판이 보이는 곳으로 오른다.

눈덮인 산죽길을 따라 북동릉으로 9분쯤 오르면 헬기장 삼거리. 좌측은 하이원호텔(2.3㎞) 방향, 산행팀은 우측 일명 바람꽃길로 향한다. 늦은 봄이면 산길 주변에 바람꽃이 즐비하기 때문에 명명했단다. 하이원호텔 방향의 하산길은 얼레지가 많아 얼레지꽃길이란다. 지금이야 눈으로 덮여 있지만. 헬기장에선 백두대간 금대봉과 함백산이 조망된다.

바람꽃길은 좁다란 소로다. 9분 뒤 갈림길을 만난다. 밸리탑 탐방로가 우측으로 열려 있기 때문이다. 탐방로처럼 계단을 조성해 놓았다. 10분쯤 걸린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눈이 거의 녹지 않아 발목까지 덮는다. 겨울에는 심할 경우 어른 가슴 높이까지 폭설이 내려 러썰도 불가능할 정도란다. 일순간 광산 개발로 검게 그을린 상처 입은 이 땅의 원혼을 한겨울만이라도 하얗게 감싸주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쳐간다.

밸리탑 탐방로 갈림길에서 정상인 마천봉은 불과 4분 거리. '백운산 마천봉'이라 적힌 커다란 정상석과 스키장이 조성돼 있는 북으로 너른 전망덱이 설치돼 있다. 전망덱 가운데에는 친절하게도 조망판이 서 있어 눈앞의 봉우리들과 스키장 시설물들을 맞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백운산 정상 마천봉.

백운산 정상 마천봉 전망덱의 전망안내판.

백운산 정상인 마천봉.

스키장의 최고점인 마운틴탑과 밸리탑 그리고 두위봉과 억새산으로 유명한 민둥산, 여기에 조망판에는 빠졌지만 그 사이로 지장산과 사북읍도 살짝 보인다. 정상석이 바라보는 동쪽으로 시야를 돌리면 정면으로 태백산, 그 왼쪽으로 만항재와 레이더기지가 위치한 함백산이 확인된다. 참고로 태백산과 함백산 사이에 위치한 만항재는 우리나라 포장도로 중 가장 높은(1330m) 지점이며, 함백산은 다양한 야생화로 매년 8월 야생화 축제가 열리는 산이다.

이어지는 산길. 여기서부턴 산철쭉길이다. 다음 여정지 마운틴탑까지는 대략 40분. 연분홍 철쭉 대신 하얀 눈꽃이 만발해 있다. 일순간 요란한 전투기 소리가 들린다. 산길 좌측인 영월 상동읍 쪽에 공군사격연습장이 있기 때문이란다.

1381고지를 지나면 비로소 마운틴탑이 보이고 9분 뒤 스키슬로프에 내려선다. 6분 정도 슬로프를 따라 걸으면 마운틴탑. 마운틴탑의 정상이 그 유명한 45분만에 한 바퀴를 돈다는 회전식 레스토랑인 '탑 오브 더 탑'이 있다. 참고하길.

스키장 최고 지점인 마운틴탑에 가기 위해선 슬로프를 100m쯤 걸어 올라가야 한다.
마운틴탑의 3층 레스토랑 '탑 오브 더 탑'의 실내 모습. 한 바퀴 도는데 45분 걸린다. 

등산로는 마운틴탑의 옆 곤돌라 탑승장 뒤로 열려 있다. '화절령 삼거리 2.4㎞'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이 길은 키작은 산죽길이다. 직원들이 낫으로 직접 길을 만들었단다.

14분이면 이름 그대로 채탄을 나르던 운탄도로로 내려서며 숲을 벗어난다. 우측은 강원랜드 폭포주차장, 좌측은 하이원호텔. 두 지점 간의 거리는 10.4㎞. 이 구간이 매년 하이원이 주최하는 '하늘길 트레킹 페스티벌'과 산악자전거 대회가 열리는 코스이다.

도롱이연못. 1970년대 탄광 갱도가 지반침하로 인해 생긴 생태연못이지만 지금은 꽁꽁 얼어 있다.

산행팀은 우측으로 발걸음을 옮겨 사거리에서 도롱이연못 방향으로 간다. 1970년대 탄광 갱도가 지반침하로 인해 생긴 생태연못으로, 광부들의 아내들이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하기 위해 이곳에 사는 도룡뇽에게 기원했던 것이 유래돼 지금의 이름으로 명명됐다. 주변에는 야생화가 늘 피어 있고 노루 멧돼지 등의 샘터 역할을 한다지만 지금은 꽁꽁 얼어 있다.

도롱이연못에서 계속 직진하면 운탄도로와 다시 만난다. 10여 분 뒤부턴 물을 가둔 소택지를 잇따라 만난다. 폐광산에서 유출된 갱내수의 중금속 성분을 걸러 주는 일종의 자연정화시설이다. 주변에는 폐광 흔적인 검은 석탄잔해가 널브러져 있다.

지금 걷는 이 길의 이름은 화절령(花切嶺)길. 이 일대가 과거 온통 탄광이었으며, 광부들은 봄이면 진달래 꽃잎을 꺾어 씹으면서 힘을 냈던 데서 이 이름이 유래된 곳이다.
 차단기 주변을 흔히 화절령 삼거리라 부르며 이곳에서 강원랜드호텔 폭포주차장까지 21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겨울철 눈 많아 하이원 상황실에 문의해야

동명이산(同名異山). 말 그대로 같은 이름, 다른 산이다. 국내에선 현재 천황봉(天皇峯)이란 이름이 가장 많다. 대략 20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황국사관을 이 땅에 심기 위해 편찬한 지도책에 그 이름을 근거로 하고 있어 산꾼들 사이에선 사실상 폄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 두 번째는. 바로 '흰 구름 산'이라 불리는 백운산(白雲山)이다. 자연발생적인 이 이름을 가진 산은 대략 열댓개. 이런 연유로 산깨나 탄다는 산꾼들에게 백운산이라 하면 십중팔구 '어디' 백운산이라 되묻는 게 다반사다. 호남정맥의 시종점인 광양 백운산(1218m), 고운 최치원이 어머니의 기도처로 건립한 상연대(上蓮臺)가 위치한 함양 백운산(1279m), 자연휴양림을 품고 있는 원주 백운산(1087m), 아름다운 동강을 굽어볼 수 있는 정선의 또 다른 백운산(882m) 등이 대표적인 본보기. 부산 기장군에도 아담한 백운산(520m)이 있지 않은가.

하이원스키장을 품은 백운산 등산로는 하이원리조트가 2006년말 계획을 세워 지난해 5월 일반인에게 선보였다. 백운산에는 유난히 야생화가 많아 구간구간마다 우점종을 내세워 처녀치마길 양지꽃길 얼레지꽃길 바람꽃길 박새꽃길 등으로 명명해 놓았다.

봄 여름에는 야생화와 울창한 낙엽송숲, 겨울에는 눈꽃산행을 즐길 수 있다. 오르내림이 적어 초보자도 쉽게 완주할 수 있다. 하지만 폭설이 이따금씩 내려 산행 전에는 하이원리조트 종합상황실(033-590-6200~1)에 문의해야 한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황태구이.

황태찜.

황태해장국.


황태요리 전문점 황태명가(033-591-5288). 원래 황태요리 하면 용평이 원조다. 황태 덕장 또한 대부분 용평에 몰려 있다. 하이원 리조트 입구의 황태명가는 최근 용평에서 식당을 접고 이곳 정선으로 옮겼다. 주인과 주방장 서빙아줌마까지 그야말로 세트로 움직였다. 용평에서 직접 덕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최상의 재료로 용평에서의 그 맛 그대로라고 보면 된다. 황태구이(1만 원) 황태찜(2만5000~3만5000원) 황태불고기(〃) 황태해장국(6000원) 황태미역국 등 하나같이 별미다. 오삼불고기(8000원)도 맛있다. (033)591-5288


◆ 교통편 - 중앙고속도로 제천IC서 내려 38번 국도 타야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제천IC~영월 제천~영월 단양(하이원) 38번~영월 38번~영월 쌍용~느릅재터널~강원도 영월군~영월 38번~영월 단양~평창 영월 38번~태백 영월 38번~태백 석항~태백~태백 석항~정선군 신동읍~태백 사북 38번~태백 고한 하이원리조트(스키장)~태백 고한 정암사 38번(사북 하이원 방향으로 가면 안됨)~고한 하이원리조트~고한역 못가 첫번째 패밀리마트 보이면 '함백관' 이정표 따라 우회전~굴다리 통과하자마자 좌회전~막골, 백운산 등산로 이정석.

하이원리조트의 진입로는 사북(읍)과 고한(읍) 두 군데. 부산서 출발할 경우 사북 쪽이 가까워 사북으로 진입할 수 있지만 백운산 산행 들머리가 고한역 인근이기 때문에 사북을 지나 고한까지 간 것이다. 산행대장=이창우

 

무등산(無等山·1187m). 높이를 헤아릴 수 없고 견줄 만한 상대가 없어 붙여진 이름이지만 산세는 산꾼들을 압도할 만큼 위압적이지 않고 둥그스름하다.

광주시민들은 언제나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무등에 의지해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다. 신년 해맞이도, 눈꽃여행도 여기서 하고 하늘에 대한 제사도 이곳 무등산에서 모신다. 빛고을 예향의 예술품도 대부분 이곳에서 잉태된다. 무등의 품 안에선 미추(美醜)와 빈부에 관계없이 늘 평등하다.

서석대와 함께 무등산 최고의 눈꽃 포인트인 입석대의 황홀한 설경. 문화재청은 지난 2005년 12월 서석대와 입석대를 묶어 무등산 주상절리대를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했다.

입석대의 멋진 풍광을 화면에 담으려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

무등산 입석대 설경.
서석대의 설경.

무등에서 느낀 광주시민들의 애착은 금정에 대한 부산사람들의 그것보다 넓고 깊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그 사랑을 실천으로 옮겼다. 천년만년 후손에게 있는 그대로 물려주기 위해 지난 89년 공원관리사무소를 설립, 인근 화순 담양에까지 걸쳐 있는 무등산을 통합, 관리하고 있다. 입만 열면 ‘금정산 보호'를 외치며 예산타령만 일삼는 부산시의 구두선이 하염없이 애처로워지는 대목이다. 동시에 “문제는 실천의지"라는 무등산관리사무소 한 관계자의 정문일침과도 같은 한마디가 아주 무겁게 다가왔다.

아쉬운 점도 있다. 호남의 들판과 능선이 한눈에 펼쳐지는 요충지이다보니 오래전부터 방송 중계탑과 군부대에 점령당해 신음하고 있다. 이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산의 정기가 빠져 나갔을까. 부산으로 치자면 황령산의 중계탑과 장산의 군부대가 모두 무등산에 모여 있다고 보면 된다.

올 겨울 무등산엔 벌써 눈꽃이 만발했다. 지난 4, 5일 이틀에 걸쳐 30㎝라는 어마어마한 폭설이 내렸다. 기상관측 이후 세 번째란다.
농민들에겐 억장이 무너지는 악몽이지만 산꾼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순백의 바탕 위에 그려진 설경은 정말 다른 무엇과 견줄 데가 없는 ‘무등(無等)' 그 자체였다.

부드러운 산사면의 광활한 억새밭이 설화(雪花)로 변신했고 수정기둥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무등의 자랑이자 전국 최대 규모의 주상절리대인 입석대와 서석대에선 ‘아!'라는 외마디 감탄사만 신음소리처럼 새어나올 뿐이었다.
산행은 주차장~증심사 집단시설지구~증심교 갈림길~구름다리~무등산 춘설차밭(쉼터)~토끼등~동화사터 갈림길~하동 정씨묘~덕산너덜~동화사터(샘터)~능선갈림길~방송국 송신소(중계탑)~중봉(복원지 안내도)~억새군락지~군작전도로~장불재~입석대~서석대~입석대~장불재~용추삼거리~중머리재~산불초소(서인봉)~새인봉 삼거리~약사사~증심사 입구~의재미술관~증심교~주차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40분 안팎. 이정표가 너무 친절하게 돼 있어 길 찾기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주차장에서 상가가 밀집한 집단시설지구와 증심교를 지나면 갈림길. 오른쪽 중머리재 새인봉, 왼쪽은 토끼등 바람재 방향. 산행팀은 오를 때 바짝 땀흘리고 편안하게 하산하기 위해 왼쪽으로 향한다. 50m 쯤 올라 우측 구름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돌계단. 17분 정도 힘겹게 오르면 쉼터. 등로 우측 산사면 전체가 온통 춘설이라 불리는 작설차밭이다. 차밭 아래에는 증심사다. 다시 여기서 17분쯤 오르면 토끼등. 너른 터로 금정산 북문광장 같은 분위기다.

춘설이라 불리는 작설차밭. 차밭 아래에는 증심사가 위치해 있다.

정면 덕산너덜을 지나 동화사터로 오르기 위해 직진한다. 5m쯤 뒤 갈림길. 오른쪽은 천제단 중머리재 방향, 산행팀은 왼쪽으로 간다. 하동 정씨묘를 지나 동화사터까진 오로지 급경사 된비알. 낙엽과 산죽이 교차하는 비교적 한가한 길이다. 시야가 트이는 너덜에서 잠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방금 온 토끼등과 저 멀리 월드컵경기장도 보인다.

마침내 샘터. 그 옆의 너른 터가 동화사터다. 토끼등에서 대략 30분. 이어 만나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간다. 이 때부터 무등의 자랑 억새군락지가 새하얗게 펼쳐지고 정면 중봉과 저 멀리 그 유명한 서석대가 마루금 위에 뾰족한 윤곽만 보인다. 방송국 중계탑 방향으로 20분 뒤 갈림길. 오른쪽 용추삼거리 대신 왼쪽 오르막길로 간다. 5분 뒤 방송중계탑. 왼쪽 전망터를 돌아 중계탑과 연결된 임도를 따른다.

헬기장을 지나면 중봉(915m). 이곳에 서면 지난 98년까지 군부대였음을 보여주는 ‘군부대 이전지 복원' 안내판이 서 있고 서석대와 그전까지 안보이던 입석대가 손에 잡힌다. 환상적이다. 네시간 달려온 고생길이 이 설경에 눈녹듯 사라진다.

과거 군부대였던 곳을 이전해 복원했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을 보고 크게 본 전경.


지난 1996년까지 군부대여서 출입이 통제되었던 중봉을 내려와 억새탐승로를 따라 장불재로 향하는 산행팀.

광주와 화순의 경계지점인 장불재(900m).

장불재에서 입석대와 서석대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오르내리는 산꾼들.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무등산 주봉이 천왕봉(1187m)이다.

          도중 만나는 주상절리대의 기암괴석.

 억새길을 따라 5분쯤 걸으면 군작전도로. 광주와 화순의 경계로 해발 900m의 고갯길인 장불재는 여기서 우측으로 700m  떨어져 있다. 쉼터인 장불재가 무등의 3대 절경인 서석대 입석대 (규봉)광석대로 이어지는 교차로이다. 우측 건너편의 말잔등처럼 부드러운 백마능선도 하얀 눈을 이고 있다. 서석대 입석대는 여기서 각각 900, 400m에 불과하지만 광석대는 무려 1.8㎞ 거리를 다녀와야 한다.

‘산불조심'이라 적힌 깃발 옆으로 열린 억새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입석대(1017m). 서석대와 함께 무등산 최고의 눈꽃 포인트다. 깎아놓은 듯한 높이 10~15m의 돌기둥 30여 개가 40m 이상 돌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중생대 백악기 화산분출로 인해 용암이 냉각, 수축되면서 균열을 동반해 그 모습이 얼핏 무너진 신전을 빼닮았다. 머리에 인 눈꽃은 알알이 작고 유난히 반짝거린다. 여기서 500m 더 올라가면 같은 성인(成因)의 서석대(1100m). 차이라면 입석대는 한눈에 그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지만 서석대는 그 위에 발을 딛고 있기에 사실 끄트머리에 서야 그 장대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불과 500m 남짓한 주봉인 천왕봉이 철조망으로 차단돼 있는 점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군부대가 주둔, 철조망으로 차단돼 있는 무등산 주봉 천왕봉.

다시 장불재로 내려와 중머리재로 향한다. 느긋한 하산길이다. 용추삼거리를 지나 30분이면 닿는다. 스님 머리에 비유돼 명명된 중머리재는 문자 그대로 밋밋한 고개. 직진한다. 5분 뒤 서인봉. 산불초소가 위치한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20분 뒤 새인봉 삼거리. 애오라지 산길만을 고집한다면 직진해 정상이 임금님 옥새처럼 생겼다는 새인봉(璽印峰·490m)을 지나 하산해도 되고, 약사사와 증심사 그리고 남농과 함께 호남의 양대 작가였던 의재 허백련 미술관을 구경하려면 우측길로 내려서면 된다. 산행팀은 후자를 택했다. 새인봉 삼거리에서 주차장까진 대략 45분 걸리지만 절과 미술관을 모두 둘러보려면 이보다 시간을 더 잡아야 한다.

# 떠나기전에 - 중계탑·군부대가 명산 '시샘'

무등산도 알고 보니 최근에야 산길이 완전히 열렸다. 호남 내륙의 고봉이다 보니 오랫동안 군인들의 차지였다. 지난 81년에야 입석대와 서석대로 향하는 장불재의 통행이 허가됐고, 그로부터 9년 뒤인 90년 무등산의 자랑 입석대와 서석대가 개방됐다. 중봉은 99년에야 길이 열려 최근에야 식생복원을 거의 마쳤다.

그러고 보면 부산의 금정산은 그동안 막힌 길도 없었고, 거기다 방송 중계탑이나 군부대가 없는 그야말로 등산하기에는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지금까지는 금정 북 동래 부산진구 등 4개 구청이 제각기 관리하고 있지만 만일 통합관리가 이뤄져 체계적으로 보존되면 무등산보다 훨씬 명산의 조건은 떼논 당상일 것으로 확신한다. 총 면적 또한 23㎢로 30㎢의 무등산보다 좁다.

불가항력적이라고 여겨지는 무등산의 방송국 중계탑이나 군부대 이전보다는 금정산의 통합관리시스템 구축이 비록 '오십보 백보'지만 그래도 앞서서 실행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등산공원관리사무소는 현재 증심사 집단시설지구 이전 사업을 오는 2008년까지 500억원을 들여 추진중이다. 또 하나의 집단시설지구인 원효사 지구는 이미 마쳤다.

이와 관련 공원관리사무소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도립공원에 비하면 아주 늦었어요."
부산의 금정산은 언제 이런 날이 올까.

# 교통편 - 광주 옛 도청서 15, 555번 버스를

광주 가는 방법은 두 가지.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선 오전 6시 첫 차를 시작으로 20~3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3시간40분 걸린다. 요금은 일반 1만3800, 우등 2만400원. 서부버스터미널에선 오전 6시10분, 6시40분, 8시, 8시40분에 있다. 3시간 걸리고 1만4300원.

광주는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함께 운행하는 종합버스터미널. 무등산 증심사로 가기 위해선 터미널에서 17, 117, 1000번 버스를 타고 옛 도청 앞에서 내린 후 거기서 다시 15, 555번 버스를 타면 된다.

부산 가는 방법 또한 두 가지. 노포동행 버스는 오후 20~3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오후 7시, 7시30분, 9시(막차)에 있다. 심야버스(2만2400원)는 밤 10시30, 자정에 출발한다. 사상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10분, 5시, 5시40분, 6시30분, 8시(막차) 밤 10시(심야 1만5700원)에 있다. ※대중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달라질 수 있습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동광주TG~동광주IC~제2순환도로~무등산 보성 화순 방향 직진~(두암 무등산 이정표 무시하고)~장원교 지나~증심사 2.4㎞~산수터널~증심사 학운교차로~증심사 좌회전~주차장 순으로 가면 된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산행대장 = 이창우 www.yahoe.co.kr



 

억새명산으로 널리 알려진 장흥 천관산
알고보니 산 전체가 오묘한 수석전시관

전남 장흥 천관산(天冠山·723m)은 웬만한 산꾼이라면 벌써 다녀왔거나 아니면 한 번쯤 가봤으면 하는, 그래서 추후 등반계획에 반드시 포함돼 있는 꽤 이름있는 산이다.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인 천관산은 기암괴석으로 대표된다. 상상도 못할 만큼 오묘한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지만 한편으론 천재 조각가들의 작품을 산 전체에 골고루 진열해놓은 것 같기도 하다. 혼자 보기 아까운 기암과 괴석은 누가 언제 어떻게 옮겨 놨을까 하는 괜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든다.


                   양근암(남근)과 마주보고 있는 금수굴(여근). 대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놀라움을 금을 길이 없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천관사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오똑한 것, 숙인 것, 우묵한 것, 입벌린 것, 울퉁불퉁한 것 등 기이한 암석이 많다’는 대목은 이를 잘 대변해주고도 남는다. 천관산은 수십개 봉우리의 솟은 모습이 마치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을 닮아 붙여진 이름.

가끔 흰 연기 같은 이상한 기운이 서린다 하여 신산(神山)이라고도 불린다.
도립공원인 천관산은 흔히 이웃 영암의 월출산에 비유된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잇딴 암봉과 산행 도중 만나는 광활한 억새밭의 화려한 장관이 이 두 산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차이점이라면 기암괴석의 덩치와 억새밭의 규모.

예쁘고 날씬한 몸매지만 키가 작아 미스 코리아에 선발되지 못하는 ‘아담 사이즈’의 수줍은 숙녀를 천관산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기암괴석 이외에도 천관산은 억새군락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천관산 옹호론자들은 월출산의 기암들은 크고 웅장한 멋은 있지만 산세가 험해 원하는 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하기 어려운 반면 천관산은 멀리서 또는 가까이에서 맘껏 돌아보며 탐승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한가지. 산행 도중이나 정상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막힘없는 조망 또한 천관산의 자랑이다.

산행 중 볼 수 있는 다도해의 막힘없는 조망 또한 천관산의 자랑이다.

산행은 도립공원 관리사무소~양근암~정원암~주봉 연대봉~억새밭~대장봉(환희대)~구룡봉~환희대~천주봉~대세봉~노승봉~종봉~금강굴~체육공원~장천재~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순. 4시간~4시간30분 걸린다.


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앞 등산안내도와 육각정자 영월정 사이의 계단을 오르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곧 등산로 이정표가 나온다. 왼쪽은 양근암 경유 연대봉(제1코스), 오른쪽은 금수굴 경유 연대봉(2코스)과 금강굴 경유 연대봉(3코스). 어느 쪽으로 올라도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산행팀은 1코스로 올라 3코스로 하산하는 길을 택했다. 1코스로 올라야 제대로 기암괴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 힘들지 않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처음엔 소문과 달리 육산이지만 20분쯤 지나면 점차 바위들이 본색을 드러낸다. 이때부터 바위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오르고, 넘고, 에돌고 그리고 감상하고….  

‘연대봉 2.2㎞’ 이정표를 지나면서 이번 산행길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저멀리 왼쪽 능선을 타고 시계방향으로 돌아 오른쪽 기암괴석을 감상하면서 하산한다. 왼쪽에는 다도해의 푸른 물결이 출렁이고 염전도 보인다.

각양각색의 바위군이 발걸음을 잡는다. 가만히 서서 이름을 붙여본다. 식빵바위, 등잔바위, 고래가족바위 등등. 흡사 돌아보기 좋게 큐레이터가 전시해 놓은 것 같은 모양새다.

정면에 주봉인 연대봉이 살짝 고개를 내밀 무렵 눈앞에 남성의 성기를 빼닮은 양근암이 서있다. 어쩜 이리도 닮았을까. 양근암 앞 능선엔 여성의 성기를 닮은 금수굴이 마주보고 있어 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10분 후엔 정원암. 모진 풍랑으로 인해 바닷가에 있어야 할 대형 수석같은 바위가 산속에 있어 신기롭기까지 하다.

          정원암. 이름의 기원은 알 수 없고 집 정원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산행팀은 이렇게 명명했다. 고래가족바위라고.

정원암을 지나면 이때부터 억새밭. 갑자기 다른 산에 온 느낌이다. 15분쯤 뒤 주봉인 연대봉. 연대봉에는 사실상 전망대 역할을 하는 봉화대가 있다. 고려 의종때인 1160년께 설치된 이후 연대봉 또는 봉수봉으로 불렸다.
         봉수대가 위치한 천관산 연대봉.

남쪽으론 완도의 신지 고금 약산도 등이 올망졸망 떠있고, 동쪽엔 고흥의 팔영산이, 서쪽엔 두륜산이, 북쪽엔 월출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맑은 날엔 멀리 한라산과 담양의 추월산, 속리산 문장대도 보인단다.

정상을 지나 하산길에 다양한 형태의 기암괴석들이 능선 좌우에 널부러져 있다. 
   
 하산은 환희대 방향. 시든 억새가 바람에 휘날리는 가운데 헬기장을 지난다. 오른쪽 멀리 제석산 사지봉과 일임산이 보이며 정면에는 천관산의 자랑인 기암괴석이 가까이 다가온다. 10분쯤 뒤 대장봉의 정상인 환희대. 이곳에 오르면 누구나 성취감과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대부분 이곳에서 활짝 웃으며 기념촬영을 한다.
대장봉의 정상인 환희대. 이곳에 오르면 누구나 성취감과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역시 이렇게 명명했다. 의자바위.

바위 꼭대기에서 아홉마리의 용이 노닐었다는 구룡봉은 이곳에서 15분 거리. 도중에 부부처럼 정답게 서있는 부부봉, 관세음보살이 불경을 실었던 돌배의 돛대를 닮았다는 진죽봉이 옆능선으로 펼쳐진다.
천관산 환희대에서 구룡봉으로 가는 도중 만나게 되는 기암괴석. 제일 왼쪽 암봉이 관세음보살이 불경을 실었던 돌배의 돛대를 의미하는 진죽봉이다.
구룡봉 아래 서있는 아육왕탑.

구룡봉에는 금정산 금샘과 같은 웅덩이가 수십 개 있고 일부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발밑에는 인도의 아육왕이 신병(神兵)으로 하여금 하룻밤 사이에 인도와 우리 나라에 탑을 쌓게 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아육왕탑도 보인다.


 되돌아와 환희대를 거쳐 본격 하산길로 내려가며 각양각색의 기암을 감상하자.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천주봉(天柱峯)과 대세봉, 노승의 인자한 얼굴을 연상시키는 노승봉을 지난다. 종봉(鐘峯) 바로 밑 샘터가 있는 금강굴에 닿으면 산행은 거의 막바지.

20여분 뒤 체육공원과 장천재(長川齋)에 잇따라 닿고 여기서 2~3분이면 들머리였던 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장천재는 조선 후기 실학자 존재 위백규 선생을 위시한 장흥 위씨의 문중 사우(祠宇). 주변엔 600년된 소나무와 절정인 단풍나무, 때이른 동백꽃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 떠나기 전에

천관산은 전남 장흥군의 진산이다.

고려를 멸망시킨 이성계 장군이 전국의 명산을 찾아 다니며 산신께 기도를 올리며 조선을 세우는데 허락을 얻었다 한다. 그런데 유독 천관산과 지리산만 반대를 하자 정권을 잡은 이성계가 고흥군으로 지명을 바꿔 산을 유배 보냈다는 것이다. 그만큼 천관산은 하늘을 찌를듯이 불쑥 솟아 오른 암탑의 기개가 도도하고 거침없다.

천풍산(天風山) 지제산(支提山) 불두산(佛頭山) 우두산(牛頭山)으로도 불리는 천관산의 현재 이름은 그 모습이 천자의 면류관과 같다하여 붙여졌다.

지난 1988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천관산은 신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을 사랑한 기생 천관녀가 숨어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한때 천관산은 수림의 바다였다. 고려시대때 원나라가 일본을 침략하기 위해 천관산의 나무를 잘라 900여척의 배를 건조하였다는 조선장(造船場) 터가 지금도 관산읍 죽창리에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천관산 정상부는 오묘한 기암괴석과 함께 억새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을 뿐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으로 변해 버렸다.

천관산의 산행은 서둘지 말자. 정교하게 쌓아 올린 예술품과도 같은 구룡봉 밑의 아육왕탑, 하늘을 향해 솟은 온갖 바위들의 이름과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전설을 생각하며 가급적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땀을 흠뻑 내기 위한 뜀박질 산행보다는 느긋하고 편안하게 즐기고 감상하는 산행을 하면 산의 진면모를 볼 수 있다.

# 교통편
천관산이 위치한 전남 장흥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부산 서부터미널(051-322-5433)에서 장흥행 시외버스를 탄다. 오전 6시30분을 첫 차로 하루 16차례 출발한다. 1만7천원. 장흥시외버스터미널에서 관산읍행 직행버스는 2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관산읍 관산중 앞에서 하차한다. 정류장에서 천관산 주차장까지 걸어서 25분 정도. 택시를 이용하면 기본 요금. 문의 장흥군청 문화공보실 (061)860-0227.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순천IC에서 나와 이정표 기준, 여수 벌교 17번 국도~2번 17번 국도 벌교 여수~2번 국도 벌교 낙안민속마을~순천 청암대학에서 좌회전~2번 국도 보성 벌교~2번 목포 장흥~장흥~천관산 39㎞~23번 관산 천관산~837번 지방도 관산~천관산 장천재 순으로 가면 된다.

※교통편은 현지 사정상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산행대장 =
이창우

 아직까지 올 겨울 특별한 스케줄이 없으면 온 가족이 함께 태백산 눈꽃산행을 한번 떠나 보시라. 확신컨대 후회는 없으리라.
혹자들은 부산서는 아주 먼, 그것도 해발고도가 1500m급인 국내 10위 고봉을 어떻게 산행 경험의 유무도 따지지 않고 권하는지 의문이 들 터이다.
한데 가능하다. 태백산은 해발에 비해 가파르거나 험하지 않은 데다 들머리인 당골광장의 해발이 무려 800m 정도여서 다리가 크게 불편하지 않다면 누구든 산행이 가능하다.

순백의 옷으로 갈이입은 태백산 천제단을 향해 오르는 전국의 산꾼들. 태백산은 이렇다 할 오름길이 없어 시나브로 정상에 닿는다.

도립공원인 태백산은 지금 순백의 옷으로 갈아입고 겨울 등산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특히 정상 부근의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과 어우러진 설화는 동화 속의 설경에 다름아니다.
무엇보다 태백산은 설경이 수놓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역사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갖추고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태곳적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을 비롯해 한국 명수 100선 중 으뜸인 용정, 기도처로 유명한 문수봉, 정상 부근의 주목 군락지, 단종비각, 단군성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산행은 매표소~당골광장~단군성전~반재~망경사 화장실 입구 유일사 갈림길~천제단·유일사 갈림길~장군단(장군봉)~주목 군락지~천제단(영봉)~단종비각~망경사·문수봉 갈림길~문수봉~당골·소문수봉 갈림길~제당골~당골광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30분 안팎. 빼어난 설경에 감탄하며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다 보면 시간이 화살처럼 빨리 간다는 사실에 유념하길.


들머리는 당골광장. 기운이 드세기로 유명한 당골은 예부터 당집이 유달리 많았다. 물론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여파로 대부분 담벽이 허물어졌지만.

당골광장에서 우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등로 입구엔 단군성전. 잠시 둘러본 후 본격 산길로 향한다. 예년과 달리 올 겨울엔 눈이 무척 많이 내려 주변이 온통 하얗다. 매년 겨울에만 40만 명이 다녀간다는 태백산인지라 등로는 말끔히 다져져 있지만 등로 좌우는 지팡이로 가늠해보니 대략 어른 무릎만큼 쌓여 있다. 등로 우측 당골계곡에는 한겨울인데도 유량이 풍부해 물소리만 들으면 여름으로 착각할 정도다.

20분쯤 뒤 ‘천제단 가는 길'이라 적힌 이정표를 지날 무렵 계곡 건너편 드높은 절벽 끄트머리에 남근석을 닮은 바위가 걸려있다. 총칭해 장군바위라 불린다.
세 번째 다리 직전 ‘반재 밑' 이정표(해발 1100m) 앞에선 반드시 아이젠을 착용하자. 스패츠는 선택사항. 다리만 건너면 곧바로 오름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천제단까지는 2.7㎞.
오래 전 호환(虎患)을 당한 화전민의 무덤인 호식총(虎食塚).

다리를 건너면 돌계단길. 5분 뒤 길 우측에 호식총(虎食塚). 오래 전 호환(虎患)을 당한 화전민의 무덤이다. 100년 전만 해도 태백산은 호랑이의 서식지로 유명했다. 인근에는 옹달샘이 하나 있다.
이번엔 환상적인 잣나무 숲을 지난다.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속을 걷는 기분이다. 이내 반재. 당골과 천제단까지의 중간 지점이라 반재란다. 주변에 원형 테이블이 있어 대개 여기서 식사를 한다.

왼쪽 천제단으로 향한다. 일순간 웃음꽃이 들려 온다. 알고보니 비료 포대를 이용한 그 유명한 엉덩이 썰매를 타는 구간이다. 40, 50대의 남녀 산꾼들이 동심으로 돌아가 ‘쌩'하며 내려온다. 기자도 빌려 타 보았다. 신이 났지만 정지하기가 어려워 혼이 났다. 이제 10시 방향으로 망경사와 그 위 능선 상에 천제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내 망경사 갈림길. 장군봉으로 가기 위해 우측 망경사 방향으로 향한다. 4분 뒤 망경사 화장실 입구에서 우측 유일사 쪽으로 오른다. 어차피 망경사는 장군봉~천제단~단종비각을 보고난 후 다시 만나기 때문에 잠시 미룰 뿐이다.
산길은 이때부터 좁아진다. 북사면이라 눈이 거의 녹지 않아 눈꽃터널을 이룬 백색천국이 펼쳐진다. 이쯤에서 대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눈을 이고 있는 희귀목인 아름드리 주목의 기품이 돋보인다.
         북사면길은 눈의 거의 녹지 않아 눈꽃터널을 이룬 백색천국이 펼쳐진다.

17분 뒤 갈림길. 우측 유일사 대신 좌측 천제단으로 향한다. 여기서부터 백두대간길.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축인 금강산 설악산이 동해와 나란히 내달리다 국토의 중심부인 서남쪽으로 방향을 트는, 산세로 봐선 의미있는 지점이다.
여기서 장군봉까지의 구간이 태백산 주목의 백미이다. 영하의 날씨에 강풍과 폭설 속에서 견뎌야 하는 주목의 강인한 생명력은 생김새를 떠나 그 자체가 우리네 삶의 표본이다. 어린 주목의 보호를 위해 세운 대나무발도 폭설과 강풍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10여 분이면 최고봉인 장군봉(1567m)에 닿는다. 작은 천제단인 장군단이 있다. 여기서 다시 10여 분이면 마침내 영봉(1561m)인 천제단에 선다. 둘레 27m, 폭 8m, 높이 3m의 자연석으로 쌓은 20평 가량의 원형 돌제단이다. 신년이나 개천절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이를 위해서인지 천제단 인근은 엄청나게 넓고, 정상석 또한 기자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크다.
이제 망경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이내 단종비각. 영월로 유배와서 세상을 뜬 단종을 기리기 위해 망경사 박묵암 스님이 건립했다.
자장 율사가 창건한 신라 천년고찰 망경사 문수보살 석상이 저 멀리 맞은편 문수봉을 바라보고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본 문수봉.

자장 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망경사는 바로 코 앞. 입구에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지점(1470m)에서 물이 샘솟는다는 용정(龍井)이 있으며 주변에는 주목들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대웅전 앞에 서면 정면 저 멀리 둥그스름한 문수봉이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다.
망경사 입구의 용정. 해발 1470m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샘이다.

 망경사 박묵암 스님이 건립했다는 단종비각. 영월로 유배와서 세상을 뜬 단종의 혼이 백마를 타고 이곳에 와서 태백산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태백산 천제단. 신년이나 개천절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태백산 영봉인 천제단 옆에는 대형 정상석이 서 있다.

이제 문수봉으로 향한다. 원래 문수봉은 천제단에서 백두대간길로 부쇠봉을 거쳐가는 것이 정식 코스이지만 시간 제약으로 단종비각 바로 밑 갈림길에서 산허리를 타고 간다. 부침이 거의 없는 부드러운 눈길이다. 중간에 부쇠봉에서 문수봉으로 내려오는 길과 당골광장으로 내려서는 길을 잇따라 만나지만 오로지 문수봉 팻말만 보고 직진한다. 문수봉에 근접할수록 껍질이 수평으로 벗겨져 있는 자작나무를 많이 만난다.
정상 일대의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눈덮인 고사목의 자태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문수머리'로 불리는 문수봉 정상.

마침내 문수봉. 망경사 입구에서 넉넉잡아 40분 걸린다. ‘문수머리'로 불리는 정상에는 신심 깊은 한 처사가 세웠다는 2기의 대형 돌탑과 밀양 만어사 인근 종석너덜을 연상시키는 너덜 사이에 나무를 깎아 만든 정상목이 서 있다.
본격 하산길. 직진한다. 5분 뒤 소문수봉 갈림길. 왼쪽 당골광장 방향으로 내려선다. 40m쯤 길게 늘어선 병풍바위와 샘터를 지나 제당골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10분 뒤 당골광장에 닿는다. 문수산 정상에서 1시간쯤 걸린다.

# 떠나기전에 - 명물 '오궁썰매'용 비료포대, 성수기 외엔 당골서 준비를

통상 태백산 눈꽃산행의 풀코스는 유일사~망경사~장군봉~천제단~문수봉 코스가 일반적. 산행팀은 부산서 당일치기로 떠났기 때문에 당군성전 쪽 당골광장에서 문수봉을 거쳐 당골광장으로 하산했음을 밝혀둔다.

엉덩이를 대고 썰매타듯 내려오는 일명 '오궁썰매'용 비료포대는 눈축제 기간 등 성수기에는 산 속에서 팔지만 그 외 기간에는 당골 인근 가게에서 사야 한다.

아이젠은 태백산 눈꽃산행의 필수품. 스패츠는 선택사항. 가까운 등산용품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1만원부터 천차만별이다. 유의사항 하나. 아이젠을 차고 '오궁썰매'는 금물. 다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태백산 정상부의 천제단은 천왕단 장군단 하단으로 구성돼 있다. 흔히 천제단이라 불리는 곳은 정상석이 있는 영봉의 천왕단이고, 장군단은 북쪽의 장군봉에, 하단은 영봉에서 부쇠봉 가는 길 200m 쯤 되는 능선 상에 있다.

망경사에는 유독 살찐 고양이들이 많다. 한눈에 봐도 6~7마리는 돼 보인다. 겉모양은 집고양이지만 실제로는 야생 고양이다. 기도하러 온 신도들이 두고 간 음식을 훔쳐 먹어 살이 쪘단다. 망경사 한쪽 켠에는 매점이 있어 커피나 컵라면도 판매한다.

맛집 하나 소개한다. 당골광장 바로 아래 식당가 제일 안쪽에 위치한 성원식당(033-553-3579). 상황오리가 주메뉴이다.


태백산 약수에 유황오리와 상황버섯 황기 감초 등 한약재, 그리고 찹쌀 밤 대추 은행 등을 각목 보자기에 싸 압력솥에 각각 넣어 1시간 동안 찐 보양식이다. 최소 1시간 전에 전화로 주문해야 맛볼 수 있다. 4인용이며 3만5000원. 이곳은 특히 태백으로 전지훈련 오는 프로축구 농구 펜싱 육상 레슬링 핸드볼 선수들의 단골 식당이기도 하다.

#교통편 - 부산서 열차 이용 무박 2일 가능

열차를 이용, 무박 2일로 다녀올 수 있다. 부산역에서 금, 토요일 이틀만 밤 10시10분 출발, 태백시 통리역에 다음날 오전 4시31분에 도착한다. 2만4400원. 10명 이상 단체 10% 할인. 열차 도착시간에 맞춰 개인택시(033-552(553)-4747)가 대기 중이다. 당골까지 1만원 조금 넘는다.

통리역에선 다음날 오후 3시9분 출발, 부산역에는 밤 9시55분 도착한다. 오후 2시29분 출발 기차는 부전역에 오후 8시52분 도착한다. 2만2700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영주IC~봉화 영주 직진~영주 경북전문대 직진~단양 봉화~경찰서 봉화 이정표 지나자마자 가흥교 건너~봉화경찰서 시의회(로타리 좌회전)~가흥로~풍기 봉화~철길(굴다리) 지나~봉화~울진 봉화~울진 태백 봉화~울진 현동~울진 태백 봉화~울진 현동~울진 봉화 이정표 보고 자동차 전용도로 내려와 좌회전~현동 춘양 우회전~울진 현동~(옥류관 미니동물원)~태백 현동~울진 현동~울진 태백 현동~태백 울진~노루재터널~동해 태백 좌회전~넛재~태백~동해 태백 좌회전~강원도 태백시 구문소호~동점역 지나~태백산도립공원 석탄박물관~장성터널~영월 동해~태백산 도립공원 순.

글 사진=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산행대장=이창우


 

'이쯤 흔들려 줘야 흔들바위 축에 끼지'
 전국의 숨은 흔들바위를 찾아서

 최근 연합뉴스에서 부산서 가까운 김해 무척산에서 다이아몬드 모양을 한 흔들바위(아래 사진)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대부분의 언론들도 이 기사를 인용, 보도했다.

 잠시 요약하면 이렇다. 김해 생림면사무소에 따르면 무척산 대형 주차장에서 석굴암 방향으로 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이 흔들바위는 높이 3.4m, 둘레 9.2m, 바위를 지탱하는 밑둘레 2.4m 크기로 멀리서 보면 작은 다이아몬드가 산에 박혀 있는 형상을 띠고 있다. 이 바위는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밀어도 1~2㎝ 정도의 진폭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바위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앞면과 달리 뒷면에는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조각한 것처럼 보여 주민들이 신기해하고 있다.


 이 흔들바위는 전국에서 설악산과 안성시 팔봉산 흔들바위에 이어 세 번째로 발견됐고 남부지방에서는 첫 흔들바위로 추정된다고 적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국제신문 주말레저팀이 오랜 기간 발품을 팔면서 발견한 전국에 산재하는 흔들바위를 소개한다.    


 ①양산쪽 금정산 흔들바위- 산행팀이 발견…양산 가산리 중리마을 8부 능선

흔히 부산의 진산으로 불리는 금정산(801m)에도 흔들바위가 있다. 하지만 금정산 흔들바위는 부산 쪽에서 오르면 찾을 수 없고 부산과 인접한 양산시 동면 가산리 중리마을에서 출발할 경우 대략 8부 능선쯤에 만날 수 있다. 이 코스는 주말이면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등산로에서 어깨가 부딪힐 만큼 북적대는 부산 쪽과 달리 한적하면서도 여유롭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혹자들은 경남도 유형문화재인 가산리 마애여래입상이 위치한 그 능선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지만 바로 이웃한 능선이라 산행 중 마애여래입상이 새겨진 바위를 확인할 수 있다. 등산로 우측 바위 끄트머리에 있어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으며 높이는 어른 키보다 약간 작다. 과연 흔들릴까. 혼신의 힘을 다해 밀면 약간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근교산&그너머 582회에 소개됐다. 이 코스는 유명세는 타고 있지만 산꾼들이 잘 가지 않는 금샘 원효암 의상대까지 훑고 있어 한번 가볼 만하다.


②경북 의성 금성산 건들바위- 어른키 두 배…오랜 풍상 견딘 금성산 지킴이


 마늘로 유명한 경북 의성 너른 벌판 위에 비봉산과 마주보고 서 있는 금성산(530m)에도 흔들바위가 있다. 이 바위의 정식 이름은 건들바위이다. 금성산은 이웃한 비봉산과 묶어 산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금성산으로 혹은 비봉산으로 오르든 100% 원점회귀 가능하다. 정확한 위치는 금성산 정상을 지나 비봉산으로 가는 길에 있다. 송림길을 따라 솔향기에 취해 걷다 보면 메인 산길에서 90m쯤 비탈길로 내려가면 만난다. 입구에 '건들바위'라고 적힌 안내판이 서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높이는 어른 키의 두 배쯤 된다.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흔들바위로도 불린다. 원래 하나의 바위가 세 조각으로 갈라지면서 만들어진 자연석으로 흔들면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하면서도 오랜 풍상을 다 겪으며 금성산의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다.' 실제 밀어보면 약간 흔들리는 기분이 든다. 건들바위 너머로 펼쳐지는 배나무골을 포함한 금성면 일대가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③여수 봉황~금오산 흔들바위- 봉황산 자락에 위치…있는 힘껏 밀어야 흔들

'해를 향한 암자'라 불리는 여수 향일암에서 남해바다 쪽을 내려다보면 금거북이 바다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향일암은 바다 건너에 위치한 남해 금산 보리암,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 낙가산 보문사와 함께 기도 효험이 빼어난 국내 4대 관음기도도량. 이 향일암을 품은 산이 금오산(360m)이다.

흔들바위는 금오산과 능선으로 이어지는 봉황산(461m) 자락에 있다. 금오산과 봉황산 사이에는 고갯마루이자 중간기착지인 율림치가 있다. 흔들바위는 봉황산을 지나 율림치 직전의 능선 상에 남해바다를 바라보며 우뚝 서 있다. 발아래 대율마을에서 세운 '흔들바위'라고 적힌 안내판이 있다. 바위 둘을 포갠 듯한 이 흔들바위는 아주 세게 밀 경우 미세하게 움직일 뿐 웬만해선 꼼짝을 하지 않는다.    
   
④고성 구절산 흔들바위- 인부 20명 붙어도 꿈쩍 않던 게 한사람 힘으론 흔들

 공룡나라' 고성군의 동쪽 끝단에 위치, 서쪽을 제외한 삼면이 바다인 동해면의 한가운데 위치한 구절산(559m)에도 흔들바위가 숨어 있다. 구절산은 아주 조망이 빼어나다. 북으로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닭의 목처럼 길고 좁은 당항만의 지형을 이용해 왜선 26척을 격침한 당항포 앞바다와 마산 진동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남으론 거제도와 통영 및 그에 딸린 올망졸망한 부속섬들이 품에 안긴다. 흔들바위는 들머리 외곡리 폭포암 천불전 뒤편 등산로 입구에 있다. 어른 키의 1.5배 정도로 그리 크지 않은 둥근 모양의 바위지만 한 사람이 밀어도 흔들, 다섯 사람이 밀어도 흔들린다. 주지 스님은 "절벽 끄트머리에 위치해 몇 해전 인부 20명이 지렛대를 이용해 제거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며 "그때 이후론 구절산 폭포암의 명물로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⑤영동 천태산 고래바위- 삼층석탑 바로 옆에 위치…고래·물개 형상


아름다운 사찰 영국사와 1300년 된 은행나무 그리고 산꾼들에겐 75m쯤 되는 암벽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있는 '충북의 설악' 천태산에도 독특한 형상의 흔들바위가 있다. 영국사에서 은행나무를 지나 나무로 만든 구름다리를 지나면 망탑봉. 그 옆에는 보물 제535호인 삼층석탑이 바위 위에 절묘하게 얹혀 있다. 흔들바위는 바로 옆에 있다. 이 바위는 기존의 흔들바위 모양과 달리 고래 형상을 하고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물개를 닮았다고도 한다. 이 흔들바위도 힘껏 밀면 약간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⑥강진 주작산 흔들바위- 절벽 끝에서 위태위태…장정 여럿 붙어야 미동

휴양림이 있는 강진 주작산(428m) 중턱에도 흔들바위가 있다. 지름이 4m는 족히 될 듯한 아주 동그란 원형바위로,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다. 생긴 모양이 둥글둥글해 산 아래 주민들 사이에선 '동구리바위'로 불리는 이 바위는 한가운데 부분이 칼로 잘라 놓은 듯 금이 가 있다. 바위가 세워져 있는 바닥에 약간 경사는 졌는데 구르지 않도록 70~80㎝ 크기의 조그만 바위가 떡 받치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 힘센 장정들이 바위를 흔들면 조금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한 사람이 밀면 거의 꼼짝도 하지 않는다.

⑦속초 설악산 흔들바위- 흔들바위의 지존…설악산 팔기 가운데 하나


설악산 울산바위 아래 신흥사 산내 암자인 계조암 경내에 위치한 흔들바위는 지명도로 봐선 단연 전국 최고. 일명 쇠뿔바위(또는 우각암)라고 한다. 한 사람이 흔드나 여러 사람이 흔드나 똑같이 흔들리기 때문에 설악산 팔기(八奇)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크기는 어른 키보다 조금 더 크고 네댓 사람이 팔을 벌려야 안을 수 있다.

⑧안성 팔봉산 흔들바위-엄지손가락으로도 흔들…둘레 10m 넘어


경기도 안성시 죽산성지 뒷산인 팔봉산에도 엄지손가락으로 움직일 수 있는 흔들바위가 있다. 높이 2.1m, 둘레 10.4m나 되는 거대한 이 바위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이 바위를 떼어 내려고 절반 정도 뒤집었으나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팀스피리트 훈련 때 미군 9명이 역시 이 바위를 넘기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전해온다.

⑨고흥 팔영산 흔들바위-아무리 밀어도 꿈쩍 않는 마당바위

도립공원인 팔영산(609m)에도 있다. 고흥반도 최고봉인 팔영산은 이름에서 짐작이 가듯 여덟 개의 암봉과 주봉인 깃대봉이 작은 병풍처럼 나란히 이어져 있는 봉우리. 암릉 종주산행의 고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팔영산에도 흔들바위가 있다. 본격 암봉으로 진입하기 직전 '흔들바위'라고 적힌 팻말이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밀어봐도 움직이지 않는다. 해서, 사람들은 마당바위로 부른다.

⑩김해 용지봉 용바위 - 첫 인상은 고릴라 얼굴 빼닮아…미동도 있어


김해와 창원의 경계에 위치한 낙남정맥 상의 한 봉우리인 용지봉은 부산서 아주 가까워 부산 산꾼들도 부담없이 즐겨찾는 봉우리이다.
 장유폭포가 있어 한여름 계곡산행지로도 있기 있는 용지봉은 가야 문화와 남방불교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놓쳐선 안 될 필수 코스이다. 말발굽 모양의 용지봉 한쪽 기슭에 둥지를 튼 장유사가 가락국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의 전설이 베어 있기 때문이다. 장유사는 천태산의 부원암, 무척산의 모원암, 지리산의 칠불사와 함께 가락국의 전설이 서려 있는 암자.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의 사리탑이 세워져 있다.
 이 용지봉에도 흔들바위가 있다. 하지만 이름은 용바위. 등산로 상에 안내판이 있어 놓치진 않는다. 첫 인상은 고릴라. 왜 용바위인지 자뭇 궁금하다. 세게 밀어보니 약간의 미동이 있다. 차라리 흔들바위라고 명명했으면 그 명성이 오래 그리고 널리 퍼졌을텐데. 아쉽다.



경북 청도 갓등산~학일산 다녀와서
  
산꾼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개척산행'에 관련된 것이다.
하긴 기사 속에 늘상 개척했다고 적혀 있으니 그렇게 물어보는 것도 당연할 듯 싶다. 엄격히 말해 산행팀의 개척산행은 사전적 의미의 '개척'과는 다르다. 무에서 유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는 그대로의 옛길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일종의 발굴의 개념인 셈이다.

갓등산 산행 중 만난 전망대에서 바라본 S라인 동창천과 들머리 삼족대. 그 뒤로 밀양의 산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산행팀의 개척산행은 예부터 쭈욱 길이 있었다는 전제 하에 이뤄진다. 오래 전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산너머 장에 다녀오던 고갯길이나 마을사람들이 나무하러 다니던 그런 길이다. 그 길이 수십년 동안 방치되면서 겉으로는 산길이 사라진 것으로 보일 뿐이다.

  
'산행지를 어떻게 정하느냐'. 다음으로 많이 받는 질문이다. 평상시 지나다니다 봉우리를 눈여겨보고는 지형도를 관찰하며 대략적인 산세를 판단하고 코스를 결정한다. 그게 전부다. 지난해 월간 '사람과 산' 인터뷰 때 산행팀이 이같이 대답하자 당시 그 기자는 깜짝 놀라며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했을 정도다.

그렇다고 산행팀이 개척산행 때 100%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전답사를 하지 않는 산행팀은 이 때문에 산행 중 소위 '알바'를 많이 한다.

단적인 예 하나. 지형도조차도 무용지물인, 숲으로 꽉 막힌 급경사면으로 잡목과 잡풀을 헤치고 개척하며 나아가다 보니 바로 옆에서 올라오는 희미한 산길이 뒤늦게 보이지 않는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 발견한 희미한 산길을 따라 내려가며 표시기를 단 후 애초 개척하며 힘겹게 올라온 길로 재차 올라오며 전에 달았던 표시기를 회수한다.

심할 경우 10분이면 올라설 구간을 산행팀은 제대로 된 길을 찾기 위해 1시간 이상의 시간을 허비한 경우도 다반사다. 이러다 보니 때론 일몰에 걸려 예정된 산행을 마치지 못하고 그냥 돌아서기도 한다. 그럼 어쩌냐고요? 다가오는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다시 가야죠.

이런 과정을 거쳐 근교산 코스가 하나 완성되면 독자들은 신문을 들고 답습한다. 부·울·경 지역의 웬만한 반듯한 산길은 대부분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번 주 소개하는 청도 갓등산~학일산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개척산행 코스이다.
    
학일산은 경산시와 청도군의 경계에 위치한 북쪽의 대왕산이나 학일산보다 남쪽에 위치한 통내산과 이어 산행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산행팀은 통내산의 동남쪽에 위치한 갓등산을 묶어 새 코스를 만들었다. 갓등산은 '다음' 등 인터넷 포털에 검색해봐도 결과가 전혀 없는 봉우리다. 매전면 소재지에서 보면 이름 그대로 갓등을 닮았다.

산행은 청도군 매전면 금곡리 삼족대~고성 이씨묘~주능선~월성 최씨묘~367봉~평산 신씨묘(안부)~순천 김씨묘~전망대~갓등산~동곡재~차단기~삼각점봉(553m)~학일산(693m)~삼거리~옛 청도(학일)온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10분. 학일산 정상까지는 이정표 하나 없는 청정 산길. 전체적으로 위엄을 줄 만큼 높지 않은 육산이며 능선에는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 키재기를 하고 있어 이 겨울 워킹 산행지로 그저그만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날머리의 학일온천이 지난 4월 시설 노후로 인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들머리는 삼족대(三足臺). 밀양강 원류인 동창천이 내려다보이는, 동시에 갓등산의 맥이 동창천으로 수그러드는 기슭의 절벽에 위치한 이 정자는 조선 중종 때 삼족당 김대유가 관직을 사임하고 후진을 양성한 곳.   

삼족대에서 내려다 본 동창천.

동창전 건너편에서 본 삼족대. 산줄기의 끝자락 절벽에 절묘하게 앉아 있다.

삼족대 현판.

삼족대 입구에 위치한 신도비.

  
 

관광객들을 위해 설치한 화장실 옆 나무계단을 오르며 산행은 시작된다. 김대유 신도비와 팔작지붕을 한 삼족대에서 내려다본 동창천의 주변 풍광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특히 아침 햇살을 받은 동창천 금빛 물결이 마치 어느 CF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등산로는 키낮은 담벼락을 따라 가면 삼족대 뒤로 열려 있다. 솔가리와 낙엽이 수북이 쌓인 부드러운 산책로다. 500년전 삼족당 김대유가 책을 읽다 잠시 뒷짐을 지고 산책을 했던 옛길이 아니던가.

등산로는 키낮은 담벼락을 따라 가면 건물 뒤로 열려 있다.
등산로는 바위 사이의 낙엽융단길로 시작된다.


곧 지그재그 오름길로 변하더니 갈림길을 만난다. 우측 산허리길 대신 좌측 능선길로 오른다. 양지 바른 터를 지나면서 산길은 된비알로 변한다.

고성 이씨묘를 지난다. 자연 그대로의 우리 민초들이 나무하러 다니던 그런 산길이다. 사실상 올 처음 만나는 매서운 겨울바람. 혹 꽁꽁 언 피부에 잔 가지라도 스치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무명봉을 살짝 오르면 비로소 앙상한 가지들 사이 10시 방향으로 갓등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기암절벽이 중간쯤에 속속 박혀 있다. 고성 이씨묘에서 15분. 산세로 봐서 봉우리를 하나쯤 지나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듯하다. 하지만 한 굽이 올라서면 향후 여정이 다르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된다. 능선이 우측으로 휘어지기 때문이다. 빽빽한 송림터널도 지나고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의 된비알도 오르면 무덤 1기를 만난다. 사실상 능선에 올라섰다. 갓등산이 보이기 시작한 지 18분 뒤. 여전히 갓등산은 10시 방향, 그 자리에 위치해 있다.

 직진한다. 곧 월성 최씨묘를 만난다. 반듯한 길은 없지만 수목 사이로 걷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다시 무명봉을 넘으면 묘기 2기를 지난다. 급내리막길과 오르막을 반복하다 마른 억새숲을 지나면 지형도상으로 삼각점이 있는 367봉에 올라선다. 우측 발아래 금천면 소재지인 동곡(리)이 보이고 그 뒤론 영남알프스 연봉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사자봉 억산 범봉 운문산 가지산 상운산 쌍두봉 문복산 옹강산이 확인되고 그 앞 정면의 봉우리가 개물방산, 그 뒤 저수지가 억산의 전설이 서려 있는 대비지다.

직진하며 내려선다. 거의 쏟아지는 수준이다. 이제 정면으로 갓등산이 보인다. 3분쯤 내려서면 주의지점으로, 산길은 능선을 따라 직진하는 길만 보인다. 갓등산은 좌측에 위치해 있는데, 해서 방향을 맞춰 산길을 만들어 내려서니 6분쯤 뒤 좌우가 지계곡인 능선길이 보인다. 결국 5분 뒤 평산 신씨묘가 있는 안부이자, 우측 금천면 동곡리와 좌측 매전면 금곡리를 오가는 일종의 고갯마루에 닿는다.

직진한다. 처음엔 낙엽과 솔가리가 수북한 반듯한 길이지만 차츰 애매모호해진다. 우측 발아래 철조망과 나란히 걷는다. 6분 뒤 순천 김씨묘와 농짝만한 바위를 지나 우측 대각선 방향으로 향한다. 쓰러진 나무를 통과하면 크고 작은 바위가 널브러진 급경사 낙엽길이 기다린다. 가뭄의 단비랄까. 좌측 저 멀리 전망대가 보인다.

순천 김씨묘에서 20여 분 뒤 전망대에 올라선다. 발아래 방금 온 능선길과 S자 굽어흐르는 동창천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동시에 앞서 본 영남알프스 연봉 모두와 사자봉 우측으로 구만산 육화산 중산 낙화산 보두산 종암산 덕암산 오례산성 대남바위산 효양산 통내산 등 경주 청도 밀양의 산들이 죄다 확인된다.

여기서 4분이면 너른터인 지점에 올라선다. 갓등산이다. 정확한 정점은 좌측 바로 위 바위다. 정면 우측 뒤 봉우리 부분만 조금 보이는 것이 학일산이며 발아래 소나무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는 도로가 매전면과 금천면을 잇는 도로, 그 정점이 동곡재다.

직진한다. 3분쯤 뒤 우측으로 꺾어 내려선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보이는 파란지붕 좌측이 목표지점이지만 아쉽게도 길이 없다. 그야말로 개척산행으로 '알바'는 기본이다. 30분이면 (주)나다 건물 주차장 옆에 닿는다. 가장 난코스이다. 주차장을 거쳐 도로로 내려와 길을 건너면 동곡휴게소. 하지만 산행팀은 우측 주차장으로 가지 않고 직진, 곧바로 동곡재 정점에 내려선다. 길을 건너 50m쯤 좌측으로 가면 임도급 길이 열려 있다. 길 건너편에는 '매전면'이라 적힌 입간판이 서 있다. 그러니까 금천면과 매전면의 경계인 셈이다.

동곡재를 지나 학일산으로 향하다 뒤돌아보면 방금 지나온 갓등산이 보인다. 산 아래 작은 건물은 (주)나다.

차단기를 지나 10m 지점에서 우측 산길로 올라선다. 묘지 5기를 지난다. 경사는 심하고 산길은 반듯하지 않지만 오르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18분쯤 뒤 좌측으로 들머리와 동창천이 다시 보이며, 여기서 20분 뒤 무명봉에 올라선다. 3분 뒤엔 우측으로 금천면 소재지인 동곡과 날머리인 학일온천이 보인다.

이어지는 산길은 크고 작은 봉우리의 연속으로 길찾기는 어렵지 않다. 무명봉에서 15분이면 삼각점봉에 올라선다. 정면으로 학일산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간에 몇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

삼각점봉에서 14분 뒤 전망대를 만난다. 우측 채석장 뒤로 운문댐과 반룡산 발백산 장육산 사룡산 단석산 등이 확인된다.

헬기장인 학일산 정상.

헬기장인 학일산 정상은 삼각점봉에서 43분. 마른 억새숲을 지나 마지막 피치를 올리면 만난다. 정면으로 앞서 만난 전망대서 본 반룡산 등 청도 경주의 산이, 우측으론 가지산 운문산 등 영남알프스 산군이 펼쳐진다.

하산길은 두 갈래. 두 길 모두 옛 학일온천에서 만난다. 산행팀은 직진한다. 9분 뒤 삼거리. 좌로 가면 통내산 대왕산 삼성산 백자산 방향, 산행팀은 우측으로 내려선다. 간벌 후 정리를 하지 않아 지저분하지만 길은 뚜렷하다. 학일온천까지는 42분 걸린다.


◆ 교통편- 무궁화호에 이어 운문사행 버스 타고 삼족대서 하차

부산역에서 청도행 무궁화호 열차는 오전 6시45분, 7시55분, 9시10분, 10시30분에 출발한다. 1시간 소요. 4800원(금~일요일 5000원). 청도역 맞은편 청도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운문사행 버스를 타고 삼족대 앞에서 내린다. 오전 7시40분, 9시20분, 10시10분, 10시50분. 3500원.

날머리 학일온천 앞에선 버스가 정차하지 않는다. 금천면 김전리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한다. 20분쯤 걸린다. 김전리에서 동곡행 버스 역시 20~30분 간격으로 있다. 동곡에서 청도행 버스는 오후 4시15분, 5시20분, 6시10분, 7시40분에 출발한다. 2900원. 청도역에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는 오후 5시51분, 6시15분, 6시40분, 7시52분, 밤 9시40분에 있다. 학일온천에서 차를 회수하기 위해선 동곡의 개인택시(054-372-3066)를 이용해야 한다. 삼족대까지 1만 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청도IC~밀양 청도 25번~경주 운문 좌회전 20번~매전면~매전면사무소 지나~매전면 처진소나무 지나~경주 운문 20번~삼족대 순.

글·사진 = 이흥곤 기자(국제신문 주말레저팀) hung@kookje.co.kr   
GPS 도움=GPS영남 (http://cafe.daum.net/gpsyn)
산행대장 =이창우 www.yahoe.co.kr

백제 천년 고찰 대원사 품은 전남 보성 천봉산 
까치봉 말봉산과 함께 걸으면 3시간30분 걸려
대원사 입구에서 출발, 100% 원점회귀 코스
정상에 서면 모후산 무등산 주암호 등 한눈에
전형적 육산…산행 내내 환상적 낙엽융단길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阿度和尙)은 신라 미추왕 때 신라땅, 지금의 경북 선산으로 들어와 이 고을 사람 모례(毛禮)의 집에 살면서 불법을 전파했다. 어느날 아도화상의 꿈속에 봉황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도! 사람들이 오늘밤 너를 죽이고자 칼을 들고 오는데 어찌 편안히 누워 있느냐. 어서 일어 나거라. 아도!"

봉황의 다급한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창밖에서 봉황이 날갯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도화상은 봉황의 인도를 받아 광주 무등산 봉황대까지 왔지만 그곳에서 봉황이 사라져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봉황의 인도로 목숨을 구한 아도화상은 석달 동안 봉황이 머문 곳을 찾아 호남의 산을 헤매다 마침내 하늘의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봉소형국(鳳巢形局)을 찾아낸 후 산 이름을 천봉산(千鳳山)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곤 산 아래 대원사를 창건했다'(삼국유사).

천봉산 대원사 초입에 위치한 등산로 들머리.

등산로에 진입해 뒤돌아본 들머리.

이번 주 산행지는 봉황의 보금자리로 불리는 전라남도 보성 천봉산(608m). 보성땅 북쪽의 맹주로 이웃한 화순과 순천땅의 경계에 우뚝 솟아 있다.

천봉산 대원사 가는 길은 입구부터 우선 색다르다. 구불구불하게 돌아가는 6㎞의 벚나무 터널길은 탯줄을 연상시킨다. 풍광의 미추에 무심한 장삼이사가 보더라도 한눈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입구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왕벚나무 터널'이란 표지석이 서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가 아닐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아침 햇살을 받아 포근하게 다가오는 이 길은 벚꽃이 없어도 벚나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풍수지리에 눈밝은 사람들은 보성의 천봉산 대원사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진입로인 벚꽃길을 탯줄, 절터를 어머니의 자궁, 절터를 감싸고 있는 천봉산을 모태라고.   
  
이를 실천한 이가 바로 지금의 주지 현장 스님이다. 스님은 지난 1990년 초반 30대의 젊은 나이에 주지로 부임했다. 한국전쟁 때 극락전만 남기고 모두 불타버려 사세가 급격히 기운 대원사를 스님은 절집이 앉은 텃자리에 착안, 낙태나 죽은 아기의 영혼인 태아령을 위한 기도도량으로 일대 변신을 꾀했다.

극락전 옆엔 태아를 안고 있는 태안지장보살상을 세웠고, 경내 곳곳에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낙태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빨간 모자를 쓴 동자승을 많이 모셔 놓았다.

산꾼들이 천봉산을 지리산 계룡산 한라산 모악산과 더불어 어머니 산신을 모신 여산신 도량이라고 하는 것도, 호남 풍수에 밝은 사람들이 광주 무등산의 기운을 받쳐주는 모산이 바로 천봉산이라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럼 천봉산의 산세는 어떨까. 바위 하나 없는 어머니의 품과 같이 넉넉한 전형적인 육산인 데다 조망 또한 빼어나 주암호와 무등산 그리고 호남정맥 산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지금까지 천봉산 대원사는 곡성 봉두산 태안사처럼 절집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절구경만으로 끝날 뿐 산행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천봉산은 아담해 산행 후 절구경도 충분히 가능하다.   
 
갑작스레 몰아닥친 강추위에 지레 겁먹지 말고 약간은 멀지만 상대적으로 따뜻한 천봉산으로 피한(避寒) 산행을 떠나보자. 산행팀은 이웃한 까치봉과 말봉산까지 보태 한 바퀴 돌았다.

산행은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대원사 주차장~삼거리봉~까치봉(572m)~마당재~말봉산(589m)~천봉산(612m·삼각점)~임도~산앙정(정자)~주차장 순의 100% 원점회귀 코스. 걷는 시간만 3시간30분. 우려와 달리 산길은 대체로 반듯해 초보자도 쉽게 다녀올 수 있다. 단 천봉산 정상 직전에서 하산길 찾기가 약간 애매모호하지만 이 점만 유의하면 큰 문제는 없을 듯하다.


오색 룽다가 펄럭이는 '티벳박물관'과 이국적인 하얀 불탑 수미광명탑이 훤히 보이는 대원사 주차장에서 산행은 시작된다. 보성군관광안내소 우측으로 보이는 '우리는 한 꽃'이란 현판이 걸린 일화문과 '천봉산 대원사'를 알리는 일주문을 잇따라 통과하면 이내 '천봉산 정상 6.5㎞'라 적힌 이정표를 만난다. 들머리다.

산죽밭 사이로 침목계단을 오르며 산행은 시작된다. 산행은 대원사를 중심으로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셈이다. 곧 이동전화 소형기지국을 지난다. 기지국 한 면에 누군가가 매직으로 '까치봉→말봉산→천봉산'이라고 친절하게 적어 놓았다.

 솔향기 그윽한 완만한 오름길로 시작되더니 어느새 산죽에 둘러싸인 끝물 단풍이 마지막 빛을 발하는 낙엽융단길이 이어진다. 급경사 오르막에선 수북이 쌓인 낙엽이 제법 미끄러워 체력소모가 심하다.

넉넉잡아 30분이면 돌탑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무명봉에 올라선다. 처음엔 까치봉인 줄 알았다. 정면 앙상한 가지 사이로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은 조계산이 보이는 등 사방이 온통 산의 물결이다.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정면으로 까치봉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이제 나무들은 다가올 추운 겨울 생존을 위해 자신의 혼이었던 잎을 다 떨구고 호젓한 산길에 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황홀한 낙엽융단길을 내려섰다 살짝 올라서면 까치봉. 누군가가 나무를 잘라 '까치봉'이라 적어 놓았다. 하지만 지형도와 능선으로 이어지는 주변 산세를 고려해볼 때 까치봉은 눈앞의 봉우리로 추정된다. 해서, 산행팀은 이곳을 삼거리봉으로 명명한다. 직진하면 화순땅 남면 방향, 산행팀은 좌로 내려선다. 이 길은 군경계로 왼쪽은 보성, 오른쪽은 화순땅이다. 진짜 까치봉은 5분 뒤 닿는다. 앞선 삼거리봉과 비교해도 실제로 더 높다. 하지만 스쳐가는 봉우리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으니 유의하길.

산행 내내 낙엽융단길이 이어진다.
    
이어지는 낙엽융단길. 이제부턴 오르내림의 연속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부담스러운 급경사길은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 좌측으론 향후 오를 천봉산과 말봉산이, 우측으론 모후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두 번째 무명봉을 지나면 그간 안 보이던 산죽과 유난히 수북이 쌓인 낙엽길을 만난다. 그 최저점이 이정표가 서 있는 보성 문덕면과 화순 남면을 오가던 고갯길인 마당재다. 좌측 사방댐(1.2㎞) 방향은 '티벳박물관' 쪽으로 보면 된다. 이제 천봉산은 3㎞ 남았다. 직진한다. 차츰 산길이 좌측으로 휜다. 동시에 좌측 발아래로 '티벳박물관'과 주차장, 정면으로 말봉산과 천봉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또다시 두 개의 무명봉을 살짝 넘으면 말봉산으로 오르기 직전 좌측으로 모든 것을 삼킬 듯한 태세로 입을 벌리고 있는 형국의 계곡이 시선을 붙잡는다. 그 뒤론 저 멀리 품넓은 조계산이 보인다.

잠시 후 말봉산에 올라선다. 마당재에서 30분. 앞선 삼거리봉과 마찬가지로 누군가 '말봉산'이라고 적어 놓았다. 좌측으로 '티벳박물관'이 보인다.

직진하며 내려선다. 아마도 올 겨울 산행팀이 처음 오른 듯 낙엽 밟는 소리가 유난히 청량감있게 다가온다. 내달려도 좋을 만큼 평편한 양지바른 산죽터널도 지난다. 말봉산에서 18분쯤 뒤 다시 한번 더 능선이 좌측으로 휘면서 쏟아진다. 안부에서 숨고르기를 한 후 키 큰 산죽터널로 올라선다. 도중 이정표도 지난다.

잠시 후 이정표가 서 있는 봉우리에 닿는다. '천봉산 300m, 왼쪽 정자(산앙정) 1.3㎞'라 적혀 있다. 산행팀은 정상을 다녀온 후 이곳에서 하산할 계획.

천봉산 정상에 서면 일망무제란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산의 물결이 펼쳐진다. 맨 좌측이 조계산, 가운데 주암호, 그 우측으로 호남정맥 산줄기가 보인다.

천봉산 정상에서 본, 선암사와 송광사를 품고 있는 순천 조계산. 

삼각점이 있는 정상에 서면 일망무제란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사방팔방 산의 물결이 펼쳐진다. 북으로 까치봉 말봉산 너머로 무등산과 그 우측으로 화순 모후산이, 동쪽 주암호 뒤로 조계산과 그 우측 뒤로 호남정맥의 종착지인 광양 백운산과 암봉인 금전산 그리고 소설 '태백산맥'의 중심무대인, 군부대철탑이 보이는 존제산이 확인된다. 참고로 정상에서 계속 직진하면 검문소를 지나 만나는 아치교로 내려선다.

산행팀은 왔던 길로 내려가 이정표가 서 있는 봉우리로 내려선다. 문제는 하산길 찾기.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론 길이 보이질 않는다. 해서, 이정표에서 20m쯤 직진해 식사를 위한 간이 쉼터를 지나면 꼬불꼬불한 하산길이 열려 있다. 길 좌측으론 방금 올라온 능선이 보인다.

천봉산 하산길에는 아직 끝물 단풍이 남아 있다.

침목계단과 가는 밧줄을 잡고 내려서면 주변이 온통 단풍나무 천지. 절반은 메말랐지만 그래도 예의 화려함을 잃지 않고 있다. 이어 이번 산행에서 만나는 첫 바위를 지나면 침목을 덧댄 급경사길을 내려선다. 다시 한번 단풍나무숲을 지나면 임도와 만난다. 정상에서 27분. 바로 임도를 가로질러 산으로 올라서면 11분 뒤 산앙정(山仰亭)에 닿는다. 인근에는 이정표(천봉산 정상 1.6㎞)도 서 있다. 개울을 건너 도로로 올라서면 곧바로 주차장에 닿는다.

사실상 날머리인 산앙정(山仰亭).



◆ 떠나기 전에 - 천년고찰 대원사 '티벳박물관' 등 볼거리 많아
                     
- 맛집 '청광도예원' 닭도리탕·녹차수제비 일품
  
백제 무령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대원사 경내에는 여느 절집과 달리 눈길 끄는 볼거리가 유난히 많다. 모두 주지인 현장 스님의 아이디어다.

천봉산 대원사 일주문.

대원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못인 구품연지 아래에는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철나무가 두 손을 맞잡고 있으며, 거기엔 대형 목탁이 걸려 있다.

여기에 머리를 부딪치면 나쁜 기억이 사라지고 지혜가 밝아지고 원수가 잘 된다는 속설 때문에 그냥 지나치는 이가 없다. 극락전 뒤 계류가 흐르는 전망 좋은 곳엔 수관정이란 조그만 전각이 있다. 그 안에는 텅 빈 관이 하나 있다. 일종의 저승체험실이다. 벽에는 '죽음을 체험해보는 순서'라는 안내문도 적혀 있다.

천년고찰 대원사의 극락전과 그 우측의 태안지장보살.

경내에는 또 신라왕자 출신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다불(茶佛)이 된 김지장 스님을 모신 김지장전과 황희 정승 영당도 있다.

뭐니뭐니해도 대원사의 자랑은 '티벳박물관'. 

대원사 입구에 위치한 불경이 적힌 오색 룽다가 펄럭이는 '티벳박물관'.
이국적인 하얀 불탑 수미광명탑.

현장 주지스님이 티베트와 몽골 등지를 순례하며 모은 불상 회화 등 불교미술품 1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사람 머리가죽으로 만든 북, 대퇴골로 만든 피리, 해골로 만든 목탁 그리고 무릎을 꿇고 엎드려야 보이는 하늘 만다라도 눈길을 끈다. 1970년대 돈이 없어 고물상에 처분했다는 문제의 종도 뒤늦게 구입, 용접을 거쳐 전시돼 있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청광도예원(061-851-4157). 대원사 진입로인 시오리 벚꽃터널길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간판을 보고는 개인작업실 정도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닭도리탕이 기가 막힌 집이다. 식당인 전통 한옥 바로 옆에는 주인인 도예가 김기찬 씨의 도예공방이 있다.

전통 한옥인 청광도예원.

청광도예원의 주메뉴인 닭도리탕.

실내에는 온통 김 씨의 생활도예품이 가득 진열돼 있으며, 벽은 통유리여서 주암호 등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벚꽃이 한창인 4월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운치가 있다. 입맛에 눈맛까지 일거양득인 셈이다.

실내에는 주인인 김기찬 씨가 구운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벽은 통유리가 설치돼 있어 외부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맛은 어떨까. 직접 키운 토종닭이라 육질이 담백하며, 음식이 담긴 그릇은 모두 김 씨의 작품이어서 수라상을 받은 기분이 든다. 도예품은 판매도 하며 민박도 한다. 닭도리탕 4인 기준 4만 원. 녹차수제비(7000원)도 일품이다.

청광도예원 인근에는 '백민미술관'이 있다.

지난 1992년 개관한 이 미술관에는 보성 출신 서양화가 백민 조규일 씨가 자신의 작품과 국내외 화가들의 작품을 기증해 세웠다. 오지호 허백련 손재형 조방원 오승윤 강연균 등 이 지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제정러시아시대 이콘,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 교통편 - 호남고속도 주암IC서 나와 송광사 방향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주암(송광사)IC~순천 벌교 송광사 22번 좌회전~고흥 벌교 송광사 보성 우회전~송광면~보성 벌교 27번~광주 보성 우회전 15번~보성군 문덕면~광주 화순 우회전 15번~대원사 백민미술관 좌회전~대원사 주차장 순.

대중교통편을 이용할 경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순천행 버스를 타야 하지만 당일치기론 불가능하다.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산행대장= 이창우


수년전 한국타이어의 CF로 유명세를 탄 꼬불꼬불한 길을 기억하십니까.

 당시 모델이었던 영화배우 전도연은 쏟아지는 비로 인해 미끄러질 것 같은 이 S라인 길을 부드럽게 내달리면서 한국타이어의 우수함을 알립니다.

 최치원의 애민사상이 배여 있는, 그 유명한 상림이 위치한 함양읍에서 남원으로 가는 24번 국도를 타고 달리면 만나는 이 길은 바로 '지안재길'입니다.
 이 CF는 한국타이어에게는 상당한 매출을 안겨주었고, 전도연에게도 톱스타로 발돋음하게 되는 계기가 됐었죠.

지안재길.

 하지만 이 CF의 최고 수혜자는 아마도 함양군일 듯 합니다. 아름답고 한편으로 신기한 이 길을 달리고 싶은 전국의 장삼이사들이 함양땅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유람을 왔으니까.

 속리산 말티고개를 연상시키는 이 지안재길 입구에는 '지리산 칠선 백무 오도령'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 지안재길을 지나면 그 정점에는 성곽 길이 38.7m, 높이 8m, 폭 7.7m, 문루 81㎡의 웅장한 '지리산 제1문'이 나그네를 맞이합니다. 흔히 이곳을 오도재 또는 오도령이라 하지요.

 최근에는 필부들이 지안재와 오도재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오도재라고 하지만 함양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지안재와 오도재는 엄연히 다르다고 강조합니다.

 지리산 제1문 인근의 산신각은 신재효의 가루지기전에 따르면 변강쇠와 옹녀가 세상을 떠돌다 정착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꾼들도 이곳을 많이 찾지요. 오도재에서 출발, 삼봉산~금대산~금대암을 거쳐 마천면으로 하산하는 길이 반듯하게 열려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안재길은 한국타이어 CF가 나오기 전에 이미 세상에 데뷔를 했습니다.

 지난 2000년 제7회 국제신문 사진공모전에 '길Ⅱ'라는 제목으로 박순복 씨가 가작으로 입선을 했습니다.(아래 사진 참조)

 그러니까 이 지안재길은 한국타이어 CF에 나오기 전에 국제신문 사진공모전을 통해 먼저 전국에 알려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지난 2000년 제7회 국제신문 사진공모전에서 박순복 씨가 가작으로 입선한 '길Ⅱ'.

지난 2000년 제7회 국제신문 사진공모전 입상 입선 작품집의 표지.



 
 오도재에 왔다면 마천면을 안 가볼 수 없겠죠. 볼거리가 제법 많답니다.

 첫 귀착지는 아마도 지리산 전망대가 될 듯 싶습니다. '지득정(智得亭)'이라는 정자에 올라서면 총 길이 25.5㎞의 지리산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마천면 소재지를 지나 남원 방향 1023번 지방도를 가다 보면 지리산 전망대가 한 곳 더 있습니다. 천년고찰 금대암이죠. 지리산 조망공원과 마찬가지로 주능선에 일일이 봉우리 이름을 표기한 조망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칠선계곡 입구의 서암정사도 빠뜨리면 후회할 곳이지요. 한국 현대불교미술의 결정판이라 불리는 석굴법당 때문입니다. 석굴법당인 극락전에는 바닥을 제외한 벽과 천장에 아미타여래불과 지장보살이 조각돼 있습니다. 11년간 불국토를 꿈구며 일군 주지 원응스님과 한 장인의 불력이 이룬 결과물입니다.

 자! 이쯤 되면 이번 주말 함양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명대사 생가터에서 보면 정동쪽에 위치
사명대사가 공부하던 바위와 샘터 존재
흔히 창녕의 산, 산행팀 밀양 무안면서 개척
서가정마을 출발, 걷는 시간만 4시간40분
들머리 영산정사, 날머리 사명대사 생가지
종남산 등 창녕산과 영남알프스 한눈에 보여

들머리인 밀양 무안면 서가정마을 주차장에서 본 영취산 전경.

'영축산 영취산 취서산'.
일반 산꾼들 사이에서 아직도 혼용되고 있는 산 이름이다.

우선 떠오르는 곳이 통도사를 품은 영축산(靈鷲山). 한자 '鷲' 자를 두고 나온 옥편에선 '독수리 취'라고 표기돼 있지만 불교에선 '축'으로 발음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심지어 '길들일 서(棲)' 자를 곁들여 '취서산'으로도 부른다.

 양산시는 지난 2001년 지명위원회를 열어 통도사를 품은 뒷산을 영축산으로 통일했다. 하지만 홍보 부족 탓인지 여전히 산꾼들 사이에서 혼용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다음' 등 주요 온라인 포털사이트에서 얼마나 혼용되고 있는지는 검색창에서 한번만 확인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창녕에는 '영취산'이라는 이름이 둘 있다.

 하나는 송이집산지로 유명한 창녕읍 옥천 쪽을 들머리로 하는 '고개 영(령)' 자를 쓰는 영취산(嶺鷲山·736m)이고, 또 하나는 영산읍에 위치한 암봉인 영취산이다.

 창녕군 창녕읍과 밀양시 무안면의 경계에 위치한, 전자인 영취산은 큰고개(절재)를 넘지 않으면 접근이 안돼 붙여진 이름이며 후자인 영취산(靈鷲山·682m)은 '신령 영(령)' 자를 써 통도사 뒷산 영축산과 동일한 한자를 쓴다. 산꾼들의 입장에선 지금처럼 본의 아니게 교통정리된 상황이 오히려 헷갈리지 않고 더 낫다며 창녕군이 괜시리 지명위원회를 열어 개악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렇듯 '고개 영(령)' 자를 쓰는 영취산은 흔히 창녕의 산으로 인식돼 왔다. 흔히 산행을 창녕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론 산너머 밀양 하서산이나 사명대사 생가터에서 산행을 시작, 영취산을 찍고 창녕으로 하산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는 산행팀이 지향하는 원점회귀가 되질 않는다.

 해서, 늘 새로운 산길을 추구하는 산행팀은 밀양 쪽에서 그 누구도 가지 않은 산길을 개척, 이름하여 '영취산 원점회귀' 코스를 만들었다.

들머리 인근의 부산 대각사의 말사인 영산정사. 목탑 양식의 7층 건물이 성보박물관이다.

 산행기점은 무안면 가례리 서가정(西嘉亭)마을 주차장. 박재기 서가정마을 이장은 독특한 서가정 이름과 관련해 "밀양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정자가 많은 마을"이라며 "어렸을 때 마을 어른들은 이 영취산을 산 봉우리가 뚜렷해 '산봉산'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산행은 무안면 가례리 서가정마을 주차장~영산정사 일주문~철탑(경주 김씨묘)~철탑~주능선(옛 헬기장)~전망대~정상 직전 삼거리~영취산~정상 직전 삼거리~서가정·심명고개 갈림길~심명고개~임도~철탑~임도~삼각점봉~하서산·사명대사 생가지 갈림길~사명대사 생가지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40분 정도 걸린다. 들머리만 잘 찾으면 산행은 의외로 쉽다. 일부 구간은 길이 묵어 다소 당황스럽겠지만 그때마다 산행팀이 노란 안내리본을 촘촘하게 묶어놓아 큰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서가정마을 주차장에서 영산정사 방향, 즉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서가정 복지회관과 영산정사 일주문을 잇따라 지난다. 곧 우측으론 영산정사, 좌측으로 공사가 중단된 와불 좌대가 보인다.

 '영취산 영산정사'라 적힌 커다란 이정석 앞에서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전봇대를 따라 흙길로 올라간다. 세 번째 전봇대 직전 왼쪽으로 산길이 열려 있다. 본격 들머리다.

 낙엽과 솔가리가 어우러진 푹신푹신한 산길이다. 4분 뒤 첫 갈림길. 나무를 눕혀 놓은 우측 대신 좌측으로 올라서면 철탑과 묘지를 만난다. 맨 좌측 경주 김씨묘 뒤로 올라서 봉분이 이장된 묘지 2기를 지나면 반듯한 산길과 만난다. 이 길은 첫 갈림길서 우측으로 올라오는 길인 듯 싶다.

 오름길이지만 단풍이 널브러져 있는 천연카펫을 걷는 기분이다. 두 번째 철탑에 닿는다. 지능선에 올라선 셈이다. 이때부터 주능선까진 청정 오르막 낙엽산길. 좌측으론 덕암산이, 우측으론 영산정사와 들머리 서가정이 한눈에 펼쳐진다. 산 전체도 겉보기엔 노랑과 초록으로 어우러진 근육질의 봉우리처럼 보이지만 막상 품안에 들면 전형적인 육산이다. 곳곳 쓰러진 나무들과 잡목 일부만 정비하면 어딜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등산로가 될 듯하다.

수북이 쌓인 낙엽융단길이 무척 푸근하게 다가온다.

발아랜 낙엽융단길, 머리 위론 아직 끝물 단풍이 인상적이다.

 일순간 계속되던 산길이 수북이 쌓인 낙엽으로 인해 사라진다. 두 번째 철탑에서 36분. 길찾기 유의할 지점이다. 우측으로 올라선다. 리본을 촘촘히 묶어놓았다. 이어지는 개척산행. 이끼 낀 집채만한 바위를 지나면 석축이 보인다. 옛 헬기장이자 동시에 주능선에 올라서는 지점이다. 억새를 헤치면 마침내 주능선길을 만난다. 왼쪽은 종암산~부곡온천~덕암산 또는 함박산 방향, 오른쪽은 영취산~관룡산~화왕산 가는 길이다.

 산행팀은 영취산 방향으로 향한다. 송림길이다. 도중 '열왕지맥'이란 조그만 팻말이 보인다. 열왕지맥은 비슬지맥의 분맥으로, 분기점인 천왕봉에서 열왕산 종암산 덕암산을 거쳐 비룡산에 이르는 30㎞ 되는 산줄기.

 이후 '부곡온천 가는 길'이란 팻말이 걸려 있다. 이 팻말은 이후 줄곧 만난다. 팻말 뒤 우측으로 가면 조그만 무덤이 있는 전망대가 숨어 있다.

산행 중 만나는 무덤 앞 전망대에 서면 발아래로 영산정사와 들머리 서가정마을 그리고 저멀리 운문산 가지산 등 영남알프스 연봉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발아래 영산정사와 공사가 중단된 와불 좌대, 좌측으로 향후 오를 영취산과 영취산에서 무안면 소재지로 '한 일(一)' 자로 뻗어내리는 능선 끝자락의 봉우리가 하서산이다. 산행팀은 이 능선으로 돌지 않고 영취산에서 뒤로 넘어가 뒷능선에서 지금 보이는 능선으로 내려갈 예정이다. 또 1시 방향으론 종남산과 덕대산이, 그 사이 뒤로 토곡산과 무척산이 보인다. 맨 뒤 높은 산줄기는 영남알프스. 왼쪽에서부터 운문산 가지산 천황산 재약산 등이 보인다. 발아래 비닐하우스는 무안면의 대표 브랜드로 청양고추에 버금가는 일명 땡초로 불리는 맛나향 고추 재배장이다. 이번 코스에서 가장 멋진 전망대다.

 이 길은 창녕과 밀양의 시군경계선. 산길을 기점으로 '좌 창녕, 우 밀양'이다. 도중 왼쪽으로 관룡산과 화왕산이 보이고, 차츰 정면으로 영취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멋진 전망대에서 18분 뒤 능선이 우측으로 휜다. 그 곡각지점이 갈림길이다. 왼쪽 내리막은 임도와 만나 창녕읍 옥천 방향으로 이어지고, 산행팀은 오름길로 직진한다. 이후 산길은 고만고만한 무명봉의 반복되는 오르내림이 이어지지만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영취산으로 오르는 마지막 오름길은 가시덤불을 헤쳐야 한다. 잠시 뒤돌아보면 방금 지나온 능선이 한눈에 펼쳐지며, 철탑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종암산이며 그 우측이 병봉이다.

창녕군에서 정상이라 표기해 놓았지만 실은 여기서 5분 북쪽에 위치한 봉우리가 진짜 정상이다. 해서, 산행팀은 이곳을 삼거리봉이라 명명했다. 

 마침내 영취산(736m) 정상. 창녕군에서 이정표를 세워놓았다. 하지만 진짜 영취산 정상은 북쪽(좌측)으로 5분 거리에 위치한 삼각점이 있는 지점이다. 해서, 산행팀은 이 지점을 삼거리봉이라 명명한다. 여기서 길은 두 갈래. 좌측은 절재~창녕 극락암 방향, 우측은 심명고개~관룡산~화왕산 방향이다.

 산행팀은 진짜 영취산을 다녀와서 이곳에서 우측 심명고개 쪽으로 내려선다. 삼각점이 위치한 진짜 정상에는 '열왕지맥 영취산 739.7m'라 적힌 팻말이 걸려 있어 이곳이 정상임을 확인시켜준다. 참고로 삼거리봉이 창녕과 밀양의 경계이며, 진짜 영취산 정상은 약간 창녕 쪽에 치우쳐 있다.

 심명고개로 침목계단을 통해 내려서면 한동안 환상적인 낙엽융단길이 이어진다. 삼거리봉에서 15분 걸었을까, 길찾기에 유의해야 하는 갈림길을 만난다. 우측은 서가정마을 또는 인근 다례마을 하산길, 산행팀은 좌측 심명고개 쪽으로 향한다. 우측은 짧게 도는 코스, 좌측은 크게 한 바퀴 도는 코스로 보면 된다.

때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멋진 산길이 기다린다.

길 주변은 온통 노랑 단풍이 숫제 터널을 이루고 있으며 그간 안 보이던 바위까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길은 어느새 좌측으로 크게 돌면서 오름길로 변한다. 그 정점에는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정표 우측에는 향후 여정을 가늠해볼 수 있는 전망대가 기다린다. 정면으로 청도 남산과 화악산, 그 우측으로 운문산 가지산 천황산 재약산 영축산이 확인된다. 산행팀은 정면으로 보이는 철탑 중 가장 선명한 철탑이 서 있는 능선을 따라 우측으로 운행할 예정이다.

 내리막길은 한적하고 여유롭다. 내리막의 끝은 13분 뒤. 이정표가 서 있는 심명고개다. 여기서 7분 뒤면 임도로 올라선다. 왼쪽 산길로 이어지는 이정표가 보이지만 무시하고 임도를 따라 직진한다. 5분 뒤 앞서 본 선명한 철탑이 서 있는 숲으로 들어선다. 임도로 끊어졌지만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거친 입구만 지나면 멋진 송림길이 기다린다.
 3분 뒤 다시 임도와 만난다. 대각선 방향으로 가로질러 산으로 진입한다. 입구엔 이정표가 서 있다. 그냥 임도 따라 내려가면 사명대사 생가지(2.3㎞). 

산행 막바지 갈림길. 직진해 침목계단을 오르면 하서산을 찍고 무안면 소재지로 이어지고, 우측으로 방향을 꺾으면 사명대사 생가지로 내려선다

 14분 뒤 삼각점 봉우리를 지나면 능선이 우측으로 휘면서 침목계단을 만난다. 삼각점에서 11분 뒤 갈림길. 직진하면 무안면 소재지로 내려서는 하서산(5.1㎞), 우측은 사명대사 생가지(1㎞) 방향. 23분이면 사명대사 유적지 도로와 만난다. 우측으로 보이는 건물이 사명대사 기념전시관, 사명대사 생가지는 좌측으로 내려서면 만난다.


사명대사 기념전시관.
사명대사 생가지. 이곳에서 영취산은 정동쪽에 위치해 있다. 사명대사는 이 영취산에서 꿈을 키웠다.

#떠나기 전에-원조 밀양돼지국밥 먹고, 표충비도 보고

대형버스 20대도 주차 가능한 너른 주차장에 서면 노랑과 초록빛이 어우러진 영취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살포시 감싸고 있다. 서가정교회 철탑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상 직전 삼거리봉이다.
 산행 들머리 인근에는 부산 중구 대각사의 말사인 영산정사가 터를 잡고 있다. 목탑의 형태로 지어진 7층 성보박물관에는 부처님 진신사리 100만과와 10만 패엽경, 2000여 점의 각국 불상이 전시돼 있다.
 또 27t 규모의 청동 대범종은 참배객들이 칠 수 있도록 나무망치를 준비해 두고 있어 각자의 소원을 빌면서 종을 쳐볼 수 있다.

 영산정사 맞은편 구릉지에 조성 중인 와불 공사는 3년 전 중단됐다. 사찰 측은 몸길이 130m의 세계 최대 와불을 안치하려고 공사를 시작했지만 현재 좌대만 거의 완성된 상태이다.

 무안면 소재지에선 표충비를 빠뜨리지 말자. 흔히 국가에 큰 어려움이나 전쟁 등의 불안한 징조가 보일 때마다 비에서 땀이 흐른다 하여 '땀 흘리는 표충비'로 불린다. 산내면 남명리 얼음골과 함께 밀양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표충비는 사명대사의 나라사랑이 죽어서까지 신통함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전해온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돼지국밥의 원조인 밀양에서도 '원조'로 통하는 곳이 이번 산행지 영취산이 위치한 무안면의 동부식육식당(055-352-0023)이다. 3대째 내려오는 원조 중 원조집인 셈이다.

 일제강점기 때 최수곤 사장의 할아버지가 무안면 시장터에서 운영하던 '양산식당'이 바로 이 동부식육식당이다. 한편 최 사장의 부친은 인근에 '시장옥'이란 상호로 분가해 이후 최 사장의 형이 지금의 무안식육식당으로 이름을 바꿔 영업하고 있다. 최 씨의 또 다른 형은 제일식육식당이란 상호로 돼지국밥집을 열어 영업하고 있다.

 결국 혈통으로 따지자면 형이 운영하는 무안식육식당이 정통성이 있지만, 동부식육식당은 할아버지가 문을 연 바로 그 터라는 점에서 흔히 밀양 돼지국밥의 원조로 통하고 있다.

 소뼈를 3일간 고아 나온 육수, 누린내가 나지 않는 암퇘지만 사용하는 점 그리고 고기를 씻을 때도 소금과 밀가루를 섞는 점이 맛의 비결이라고 한다. 국밥 5000원, 수육 1만5000원~2만 원.

#교통편-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IC로 나와 밀양 방향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밀양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부터 매시 정각에 출발한다. 주말(토, 일요일)에는 오전 9시40분과 오전 10시20분에도 있다. 1시간 소요. 4000원. 밀양터미널에서 들머리인 서가정마을행 농어촌 버스는 오전 7시20분, 10시30분에 있다. 1600원. 날머리인 사명대사 생가터에서 밀양터미널행 농어촌 버스는 오후 3시15분, 5시30분, 7시35분에 출발한다. 밀양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매시 정각 출발하며 막차는 오후 8시.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밀양IC~밀양 청도 방향~창녕 밀양 24번~마산 창원 시청 법원 검찰청 방향~창녕 부북 24번 우회전~창녕 청도면 24번~합천 창녕~무안면~무안 부곡 30번 좌회전~창녕 부곡온천~사명대사 유적지(5㎞) 크게 우회전(영산정사)~갈림길에서 왼쪽(영농법인 농정, 갈탄보일러)~영취산 하서산 등산안내도 지나~영산정사 방향~다례 서가정 사명대사 유적지 영산정사 우회전~다례 서가정~가례리 서가정마을 이정석(서가정 버스정류장).

 사명대사 생가지에서 들머리 서가정까지는 택시(055-352-0330, 353-8259)를 이용하면 된다. 9000원 안팎.

글 사진=이흥곤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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