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성락건 씨 지리산 신비 안내서
'연인과 숨어 살고픈 지리산' 최근 출간

 스무고개. 누구일까요.

 1945년 경남 거창 태생, 성균관대 국문과 졸업, 서울시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에 내디딤. 이후 자신이 귀의할 곳은 고향이라고 판단, 고향인 거창 덕유산 기슭의 북상면 사무소로 자원.
 거창에서 등산 장비점을 운영하다 산악인들이 더 많은 진주로 옮겨 1982년 장비점 '덕유산장'을 열어 10년간 운영.
 1985년 로왈링 히말라야의 가우리상카르봉(7134m) 세계 최초 동계 초등. 1988년부터 15년간 히말라야 가이드 생활도 함.
저서로는 산에 관한 시집 '산 올라 삶이 기쁘고 산 있어 죽음마저 고맙다'가 있고, 부인과 함께 우리나라 남녘의 산들을 낱낱이 소개한 등산 가이드북 '남녘의 산'을 펴냈다.

산악인 성락건 씨.


 이후 책이 생각만큼 팔리지 않아 모든 것을 처분하고 지금은 지리산 아래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에서 '다오실(茶悟室)'을 운영하며 인간의 영혼에 관심을 기울이고 청학동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지리산 기슭의 '다오실'.

'다오실' 내부. 손수 성락건 씨가 만든 작품들이다.


 
지리산을 좀 안다고 자처하는 산꾼들은 이쯤 되면 열에 아홉이면 정답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산악인 산오자 성락건이 정답이다.

전 국제신문 논설위원이자 '지리산 365일'의 저자 최화수 씨는 그의 홈페이지에서 산악인 성락건을 한마디로 '지리산의 달인(達人)'이라고 했다. 성락건 씨 스스로도 자신을 '산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좀 더 홈페이지에 적힌 내용을 인용한다.

'전문 산악인 출신인 그는 지리산 구석구석을 샅샅이 누비고 다녔다. 지난 1980~1990년대 산악 전문잡지와 TV의 지리산 발굴코스나 신비의 세계 탐사에는 언제나 그가 함께 있다시피 했다. 그는 지리산의 정기와 영육의 합일을 위해 홀로 지리산중 생활을 많이 체험했다.

  그런 성락건 씨가 '연인과 숨어 살고픈 지리산'(고산자의 후예들刊·1만5000원)을 펴냈다. 지리산이 좋아 지리산을 즐겨 찾는 수많은 산악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지리산 바이블'과 같은 소중한 책이 될 듯하다.

시중에 지리산에 관련된 책은 많지만 지리산의 신비에 관련한 책은 아마도 이 책이 처음이다. 해서, 책 제목 앞에 '지리산 신비 안내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한마디로 지리산 일반 가이드북이 아니라 지리산을 더욱 새롭게 접할 수 있는 안내서인 셈이다.

내용 또한 새롭고 알차다.
 총 10장으로 구성됐다. 목차 제목만 보면 지리산의 신비스러운 곳, 지리산의 궁금함에 대해, 지리산을 오르는 순서와 방법, 산오자가 권하는 산행방법과 코스, 지리산의 기도처, 지리산의 맛나고 신령한 샘, 지리산의 바위, 지리산의 고원을 찾아, 지리산의 오래된 나무, 지리산의 비밀을 풀어본다 등.

각론에선 '지리산의 새로운 10경'이 특히 눈길을 끈다. 
기존의 지리 10경은 천왕일출 반야낙조 노고운해 벽소야월 연하선경 세석철쭉 직전단풍 칠선계곡 불일현폭 섬진청류. 이는 오래 전 구례산악회의 우종수 님이 중심이 되어 만든 것이다. 반세기 가까이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자랑하는 데 사람들은 흔히 이 지리 10경을 들곤했다.
 지리산에 미친 이 책의 저자 성락건 씨는 새로운 10경을 내놓았다.
1. 삼신봉에서 지리능선 조망
2. 반야봉의 구상나무 수림
3. 만복대 능선의 철쭉과 안개와 억새
4. 촛대고원의 나물 군락 밭
5. 뱀사골의 불견광음천
6. 최고의 수도처인 영신대
7. 한신계곡의 자작나무 숲
8. 적막한 덕평고원
9. 왕등의 늪지대
10. 음양수에서 영신봉에 이르는 산길

이밖에 '지리산에 숨겨진 코스 9곳' '지리산의 테마 여행 20가지' 등도 주목할 만하다. 
책 말미에는 특별히 제작한 지리산 지도가 있다. 특정 지명 옆에는 찾아 보기 쉽게 몇장 몇절 몇항에 있는 지 친절하게 표기해 놓았다.

'다오실'에서 맛볼 수 있는 다과.

'다오실' 내부.



 앉은 터가 봉황의 머리라고 알려진 곡성 봉두산 기슭에 자리한 천년 고찰 태안사는 절집의 아름다움에 비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찰이다. 산사로 들어가는 약 1.5㎞의 진입로는 아직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옛길이다.

 지그재그형의 옛길은 내로라 국내 여느 사찰의 진입로와 견주어도 전혀 뒤질게 없어 산책코스로 그저 그만이다.
태안사 진입로.

 
 옛길이 끝날 즈음 일순간 자연석으로 석축을 쌓고 지붕을 얹은 다리 모양의 누각을 만난다. 능파각(凌坡閣)이다.

 능파각은 속세를 벗어나 도량으로 들어서는 문이다. 능파란 계곡과 물굽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는 의미이다.
 이 능파각을 지나면 아름드리 거목들이 들어서 있고,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일주문을 만난다.
 
     능파각. 태안사에서 주변 풍광이 가장 아름답다.

 하지만 능파각을 지나지 않고 바로 직진해서 올라가면 뜻밖에도 국립묘지나 UN묘지와 같은 엄숙한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커다란 탑을 볼 수 있다. 알고 보니 경찰충혼탑이었다.

 신성한 천년 고찰 내에 경찰충혼탑이라니. 알고 보니 사연은 이랬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북한의 남침으로 1개월만에 경상도 일부를 제외한 남한의 전지역이 북한군에 점령되자 곡성경찰은 이 지역을 지키겠다는 일념하에 당시 한정일 경찰서장을 비롯한 전 직원이 굳게 결의하고 이곳 태안사 보제루에 경찰 작전지휘소를 설치했다.

 곡성경찰은 같은해 7월 29일 북한군 603기갑연대가 경남 하동에서 전북 남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곡성군 죽곡면 압록교를 지난다는 첩보를 입수한 후 압록교 주변에서 매복 공격하여 4시간만에 북한군 55명을 생포, 사살하고 트럭  싸이카 및 총 70여점 등을 획득했다.

 북한군은 이후 가만히 물러서지 않았다. 북한군은 8월 6일 새벽 이곳 태안사 경찰작전지휘소를 기습 공격해, 치열한 전투끝에 곡성 경찰관 48명을 사살했다.
 이후 장열하게 전사한 곡성 경찰관을 위해 참전동지들이 성금을 모아 충혼탑을 세우고, 매년 8월 6일 제사를 지내오다 지난 1985년 국가 차원에서 지금의 충혼탑과 호국관을 건립해 매년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태안사 기점 원점회귀-걷는 시간만 4시간
봉두산은 봉황머리, 앉은터 기가 막혀
발밑엔 낙엽, 머리위엔 단풍, 만추서정
산행 후 태안사 절구경만 해도 바쁘다 바빠

 

지금 봉두산을 찾으면 수북한 낙엽길과 함께 아직도 울긋불긋한 끝물 단풍을 볼 수 있다.


명산(名山)에 大刹(대찰)이라 했던가.

우리땅에는 대개 이름난 산의 명당 자리에 큰 절집이 자리잡고 있다. 비근한 예가 한국 불교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른바 5대 총림인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영축산 통도사, 덕숭산 수덕사, 백암산 백양사다. 가야산 백암산이 국립공원이고 조계산 덕숭산이 도립공원 그리고 영남알프스 산군 영축산도 두 말 하면 잔소리인 명산이 아니던가.

두륜산 대흥사, 모악산 금산사, 내변산 내소사, 속리산 법주사, 팔공산 동화사, 토함산 불국사, 오대산 월정사, 금정산 범어사 등도 예외가 아니다. 공주 계룡산은 동학사와 갑사를 양쪽에 품고 있다.    
   
그러나 명산대찰이란 요건을 갖추고 있는 데도 장삼이사들에게 한 곳만 알려져 있는 곳도 제법 있다. 원주 치악산 구룡사와 곡성 봉두산 태안사가 우선 떠오르는 바로 그곳이다. 전자는 절집이 치악산의 유명세에 묻혀 있고, 후자는 산이 아름다운 태안사에 가려 있다. 그렇다고 구룡사와 봉두산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는 절집과 산은 결코 아니다.

구룡사는 당나라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의상 대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펴기 위해 아홉 마리의 용을 몰아내고 지은 천년 고찰이며, 봉두산은 산세로 봐서 봉황의 머리에 해당되는 작지만 옹골찬 봉우리다.

이미 3년 전 치악산을 소개한 산행팀은 이번에는 전남 곡성으로 발걸음을 옮겨 봉두산을 찾았다.

곡성 죽곡면과 순천 황전면을 가르는 봉두산은 팔공산 기슭에 자리한 동화사와 마찬가지로 봉황과 오동나무의 전설이 내려온다. 풍수지리상으로 팔공산 동화사(桐華寺)는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대웅전이 봉황의 머리이며 절에서 맨 먼저 만나는 봉서루(鳳棲樓)가 꼬리, 봉서루 앞 커다란 바위 위 세 개의 둥근 돌이 봉황의 알을 의미한다.

봉두산의 경우 태안사를 품은 주변 산세가 오동나무 줄기 속처럼 아늑해서 예부터 '오동나무 동(桐)' 자를 써 '동리산(桐裏山)'이라 불렸다고 전해온다. 실제로 태안사 일주문 현판에는 '동리산 태안사'로 적혀 있다.    

일주문 현판에는 봉두산 대신 동리산 태안사라고 적혀 있다.
  
 봉두산(鳳頭山)은 봉황의 머리로 여겨진다. 그만큼 주변 산세와 앉은 터가 빼어나다는 것이다.

산행은 곡성 죽곡면 원달리 태안사 능파각~성기암 갈림길~외사리재~사거리(태안사갈림길)~외동골삼거리~전망대~봉두산(753m)~폐헬기장~북봉~폐헬기장~묘지~고치계곡·상한마을 갈림길~임도(고개)~등산안내판(컨테이너)~절재~태안사 순. 절 입구 등산안내도에 따라 한 바퀴 돌면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지만 산행팀은 봉두산 뒤 북봉을 돌아 크게 원점회귀를 하다보니 4시간 정도 걸렸다. 순천 쪽에선 북봉으로 다닌 흔적이 역력하지만 북봉에서 태안사로 가는 길은 묵어 길찾기가 힘들었다.



태안사로 이어지는 1.5㎞의 진입로는 아직 흙먼지 풀풀 날리는 옛길. 절 아래 주차하고 여유있게 걷고 싶었지만 시각은 이미 오전 11시30분을 향해 치닫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능파각 아래 화장실 옆 간이주차장에 주차하고 등산화를 조여맨다.

태안사로 이어지는 1.5㎞의 진입로는 아직 흙먼지 풀풀 날리는 옛길이라 운치있다.

산행은 태안사에서 풍광이 가장 빼어난 능파각(凌坡閣)을 지나며 시작된다. 능파각은 물이 흐르는 개울 위에 자연석으로 석축을 쌓고 지붕을 얹은 다리이자 누각. 동시에 속세를 벗어나 도량으로 들어서는 산문 역할도 한다.

능파각 주변은 곡성 태안사에서 가장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다른 각도에서 본 능파각.

 능파각을 건너면 수백년 된 아름드리 전나무와 소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숲길. 이 길을 따라 200m쯤 가면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이끼 낀 돌계단이 울창한 숲사이로 열려 있다. 입구엔 '봉두산 등산로'라 적힌 조그만 팻말이 보인다. 우측 너른길은 봉서암 가는 길이다.
산행 들머리. 돌계단으로 시작된다.

발밑엔 낙엽, 머리 위론 끝물 단풍이 마지막 빛을 발하며 만추의 서정을 느끼게 해주는 오솔길로 5분쯤 오르면 임도와 만난다. 잠시 후 길 좌측 바위 위에 흰색 페인트로 '←태안사' '봉두산 등산로·성기암'이라 적힌 기와 한 장이 놓여 있다. 그러고 보니 일주문을 통과해 경내에서 절집을 둘러보고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도 있는가 보다.

50m쯤 더 가면 곡각지점에서 산으로 올라서는 본격 들머리가 보이고, 임도를 계속 따라가면 성기암을 만난다.

산죽과 낙엽이 뒤엉킨 완경사 낙엽융단길을 10분쯤 오르면 사거리인 외사리재. 우측 곡성 죽곡면 원달리, 직진하면 순천 월등면 월룡리, 산행팀은 좌측 봉두산 방향으로 향한다.

곡성과 순천의 시군 경계인 이 길은 수북한 낙엽에 이따금씩 만나는 끝물 단풍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산죽길의 연속이다. 실제로 외사리재에서 27분 뒤에야 농짝만한 바위를 처음 만날 정도로 지형지물이 거의 없다. 여기에 정상까지 거의 외길이라 길찾기도 전혀 문제없다.

봉두산 산행은 거의 시종일간 낙엽융단길이 이어진다.

 도중 인상적인 지점은 외사리재에서 47분쯤 뒤 아주 너른 묘지와 여기서 6분 뒤 한 굽이 오르면 만나는 외동골 삼거리 정도다. 외동골 삼거리에는 어른 손바닥 크기의 코팅된 표지기가 걸려 있다. 산너머 순천 한울산악회 소속의 황전면장이 달아놓은 것이다. 봉두산은 태안사에서 오르기도 하지만 산너머 순천 황전면에서도 많이 올라오는가 보다. 입장료 1500원을 우선 절약할 수 있으니까.

이제 봉두산은 불과 400m 남았다. 3분쯤 길 좌측 전망대에서 서면 태안사와 방금 올라온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부담없이 올라왔지만 위에서 보니 능선의 굴곡이 꽤나 심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태안사 전경.
  
  정상 직전 전망대다운 전망대를 하나 만난다. 앞선 전망대는 태안사 쪽이지만 이번에 만나는 전망대는 순천 황전면이 내려다 보인다. 순천 쪽 들머리인 봉성마을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오는 도로와 광산으로 파헤쳐진 흉물스러운 모습도 보인다.

삼각점과 작은 정상석이 나란히 서 있는 정상은 앞선 전망대와 큰 차이가 없지만 향후 오를 북봉이 보인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


하산은 두 갈래길. 커다란 안내판엔 좌측 '태안사(3.2㎞) 상한', 우측 '태안사(3.5㎞) 원달'이라 적혀 있다. 좌측은 절재를 거쳐 작게 한 바퀴 도는 코스이며, 우측은 북봉을 거쳐 크게 원점회귀하는 여정이다. 산행팀은 우측 북봉을 향해 내려선다. 150m쯤은 급내리막길이지만 이후 완만해져 황홀한 낙엽길로 변한다. 정면으로 북봉이 보일 무렵, 대략 13분쯤 뒤 바위 두 개가 엉켜붙은 전망대를 만난다. 좌측으론 하산할 능선이, 우측 낮은 산줄기는 순천땅 봉성 가는 능선이다. 주변엔 그간 안 보이던 키작은 산죽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빛바랜 노란 단풍 또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하산길의 황홀한 단풍 낙엽길.

 곧 갈림길. 봉성 가는 반듯한 우측길 대신 좁은 좌측길로 향하면 잡풀 우거진 폐헬기장에 닿는다. 맨 왼쪽 비교적 반듯한 길은 산허리를 타는 무덤 가는 길, 산행팀은 무덤 가는 길 바로 옆 풀섶을 헤치고 능선길을 개척한다.

7분쯤 뒤 둥그스름한 지점에 닿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제일 높아 북봉인 듯싶다. 지도에 표기돼 있지 않은 데다 봉두산의 북쪽에 위치해 산행팀이 그냥 북봉이라 명명한 것이다. 동시에 길찾기에 유의할 지점이다. 직진하면 상한봉(상한마을), 산행팀은 좌측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하산길 좌측으로 보이는 능선은 봉두산에서 절재 쪽으로 내려서는 산줄기다.

의외로 화려한 단풍이 발길을 붙잡는다. 하지만 여기서 절재까지는 길찾기에 상당히 유의해야 할 구간이어서 산행팀은 노란 안내리본을 촘촘하게 매어 놓았다.

폐헬기장을 지나 봉분이 약간 파헤쳐진 무덤 좌측으로 향한다. 100m쯤 뒤 갈림길. 우측으로 내려선다. 갑자기 급경사길로 돌변, 능선길이 아닌 것으로 보이나 서서히 낙엽 수북한 산죽길이 기다린다. 이후 상석이 없는 묘지를 지나자마자 사거리를 만난다. 좌측 고치리, 우측 상한마을, 산행팀은 직진한다. 5분이면 임도에 닿는다. 왼쪽으로 5분쯤 가면 등산안내판이 보인다.

목적지는 정면으로 보이는 능선의 고갯마루인 절재(1㎞)지만 오랫동안 산꾼들이 다니지 않아 길 흔적이 전혀 없다. 안내판 옆 물길, 다시말해 고치리계곡을 건너 우측으로 간다. 좌측으론 컨테이너가 보인다. 촘촘히 달아 놓은 노란 리본을 확인하자. 움푹 팬 길로 40m쯤 가면 또 움푹 팬 지계곡. 건너면 산죽밭 사이로 산길이 열려 있다. 입구를 찾기 어려워서 그렇지 이 길만 찾으면 30분이면 절재에 올라선다. 등산안내판도 서 있다.

이제부턴 일사천리로 하산한다. 태안사까지는 1.7㎞. 간혹 돌길이지만 유난히 울긋불긋한 끝물 단풍 덕에 발걸음이 가볍다. 25분이면 산을 벗어나고, 10분이면 능파각 아래 간이주차장에 닿는다.

 일주문을 지나면 만나는 태안사 부도밭.

태안산 삼층석탑. 작은 못 한가운데 있어 특히 눈길을 끈다.


◆ 떠나기 전에 - 석곡IC 인근 석곡면 소재지 돌실회관 uㅐ돼지숯불구이 일품   
 
태안사는 장삼이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여행깨나 다녔다 하는 사람들의 뇌리에는 아름다운 사찰로 각인돼 있다. 매표소에서 능파각으로 이어지는 진입로는 여태 포장을 하지 않은 숲길이라 정감이 간다. 신라 경덕왕 때 당나라에서 공부한 혜철 선사가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문을 열면서 한때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거느닐 정도로 사세가 컸다. 풍수지리의 원조 도선 국사도 이 절에서 혜철 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조선시대에는 세종의 둘째인 효령대군이 이곳 태안사를 원당으로 삼았다.

고려 때부턴 송광사의 위세에 눌려 위축됐으며 조선시대엔 쇠락의 길을 걷다 정유재란으로 일부 전각이 소실된 후 한국전쟁 때 일주문과 능파각을 제외하고 모두 불에 탔다. 그러다 제법 절다운 규모를 갖춘 것은 근래의 일이다.

능파각은 태안사의 얼굴이다. 능파란 계곡의 물굽이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는 의미. 다리이자 누각인 능파각에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게 해 여름이면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 만추엔 단풍과 떨어지는 낙엽을 감상하는 명소로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능파각 인근에는 뜻밖에도 경찰충혼탑이 있다. 한국전쟁 때 곡성경찰들이 태안사에 임시본부를 설치, 인민군과 전투를 하다 48명이 전사했는데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매표소 인근에는 곡성이 고향인 민족시인 조태일시문학기념관도 있으니 들러보자. 조태일 시인은 태안사 대처승의 아들로 생전에 그는 '나의 시는 태안사에서 비롯됐고 태안사에서 끝이 난다'고 말했다 한다.

연탄불에 초벌구이한 후 숯불에 한번 더 굽는 것이 맛의 비결인 돼지숯불구이.
3년 숙성시킨 묵은지와 갓김치. 일품이다.
 
 맛집 한 곳 추천한다. 석곡면 소재지에 위치한 돌실회관(061-363-1457). 돼지숯불구이전문점이다. 호남고속도로 석곡IC에서 차로 2, 3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석곡은 광주로 가는 길의 중간기착지로, 이곳 식당 인근 석곡터미널 부근에서 드럼통 위에 돼지고기를 구워먹으며 허기를 채웠다고 전해온다. 석곡면에 유난히 숯불구이점이 많은 이유다. 그 중에서 가장 전통있고 맛있는 집이 돌실회관이다. 연탄 위에 초벌로 한 번 굽고 나서 숯불에 한 번 더 굽는 것이 맛의 비결. 3년 묵은 김치와 갓김치 등 밑반찬도 한결같이 맛깔스럽다. 1인분 150g 8000원. 석곡면에는 대중탕도 있어 목욕 후 식사를 하면 안성맞춤이다.


◆ 교통편 - 호남고속도로 석곡IC서 내려 구례 석곡 태안사 방향

부산에서 곡성행 시외버스는 없다. 인접한 순천으로 가서 곡성행 버스를 타야 하지만 이럴 경우 당일 치기는 불가능하다. 참고로 순천행 첫 차는 오전 6시30분이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석곡(구례)IC~구례 석곡 태안사(19㎞) 좌회전~구례 순창 옥과 좌회전~구례 압록~태안사 압록유원지 직진~죽곡면~구례 압록 18번~(태평삼거리에서)구례 압록 우회전~태안사 840번 지방도 우회전~순천 태안사 방향 좌회전~태안사 순.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포항 오지 곰바위산~베틀봉 원점회귀
죽장면 봉계리 기점 새로운 코스 개척
걷는 시간만 5시간20분, 낙엽기만 3시간
발목은 기본, 무릎까지 수북한 낙엽길
조망도 빼어나 보현산 면봉산 등 한눈에 


장삼이사들은 포항 하면 우선 바다를 떠올린다. 바다를 낀 포항제철을 비롯해 해맞이로 유명한 호미곶이나 과메기의 구룡포, 북부해수욕장의 불꽃놀이, 포항과 울릉도를 오가는 여객선 등이 오랜 기간 반복 습득으로 인해 뇌리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포항의 산은 어떨까. 크게 보면 백두대간에서 분기한 낙동정맥이 포항을 동서로 갈라 놓고 있다. 바다 쪽인 동쪽은 영덕의 팔각산 바데산 동대산과 이어지는 내연산 향로봉 매봉 등이 약간의 지명도를 앞세워 산꾼들을 유혹하지만 나머지 산은 딱히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낙동정맥의 서쪽인 내륙으로 눈길을 돌리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그 중에서도 포항의 북서쪽에 위치한 죽장면은 산의 물결이 일렁인다. 포항의 32개 읍면동 중 그 면적이 20%를 상회할 정도로 넓은 죽장면은 보현지맥과 팔공보현지맥이 수렴되는 오지 속의 오지. 산꾼들의 관점에서 보면 청정지역이나 다름없다.

 산지가 대부분인 울산 울주군이나 부산 기장군과 비교되는 포항 죽장면의 외곽에는 포항 최고봉인 면봉산과 작은보현산이 각각 청송과 영천을 등지고 포진해 있고, 이 산들의 안쪽에는 이름이 다소 생소한 베틀봉과 곰바위산이 능선으로 이어져 우뚝 솟아 있다. 참고로 천문대가 위치한 보현산은 면봉산에서 능선으로 이어져 종주산행이 가능하다.

그간 북적대는 단풍 산행으로 지친 산꾼들을 위해 이번 주 산행지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곰바위산~베틀봉을 찾았다.

흔히 면봉산 베틀봉 곰바위산 산행은 죽장면에서도 최고 오지로 손꼽히는 '두마리'에서 오르는 것이 지금까지 관례였으나 늘 새로운 산길을 찾아 나서는 산행팀은 이웃한 '봉계리'에서 출발했다.

들머리인 포항 죽장면 봉계리는 청송과 이웃해 인접해 있어 그 유명한 청송 사과와 거의 맛이 같다고 한다.


 들머리인 포항 죽장면 봉계리. 전형적인 우리네 시골풍경이다.

 ㅛ산행은 죽장면 봉계리 마을회관(새목마을)~잇단 청송 심씨묘~곰바위산(895m)~망덕고개(베틀고개)~샘터~보현지맥 갈림길~구멍바위~전망대바위~베틀봉(934m)~863봉(삼각점)~함안 조씨묘~폐헬기장~보현지맥 갈림길~폐헬기장~두문마을 갈림길~잇단 묘지~두릅나무밭(산죽)~봉계리 마을회관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20분 안팎. 들머리에서 곰바위산을 지나 망덕고개까지의 2시간40분 정도는 이정표나 안내 리본 하나 없는 개척산행이며, 보현지맥 갈림길에서 원점회귀를 위한 1시간20분 정도의 하산로 또한 산행팀이 산길을 만들어 내려왔다. 사실상 개척산행임을 밝혀둔다. 해서, 산행팀은 초보 산꾼들을 위해 평소보다 많은 안내 리본을 달아 놓았다.

이번 산행은 특히 '낙엽 산행'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무릎까지 쌓인 수북한 낙엽은 때론 산길을 숨겨놓아 산행팀을 혼란스럽게 했지만 청정지역에서 밟아보는 올 첫 낙엽길은 오랫동안 갈색 추억으로 뇌리에 남을 만하다. 3시간여 동안 들은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는 환청이 되어 산행기를 쓰는 지금까지 귀에서 맴돈다.

 들머리는 봉계리 마을회관. 이번 산행은 이곳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오는 여정. 처음 만나는 곰바위산은 보이지 않지만 베틀봉은 마을회관 우측 저 멀리 확인된다.

봉계리 마을회관 왼쪽 포장로로 따라가며 산행은 시작된다. 봉계2교를 지나 이름없는 다리 앞에서 다리를 건너지 않고 좌측 사과밭 쪽으로 향한다. 전봇대 앞에서 좌측 길로 올라서자마자 다시 좌측으로 길이 열려 있다. 입구는 꽤 묵었지만 이 지점만 찾으면 그럭저럭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그재그 급경사길이다.

10여 분이면 지능선에 올라선다. 한숨 돌리고 다시 올라서면 청송 심씨묘를 시작으로 12분간 묘지 5기나 이어진다. 산행팀도 헤아리다 중도에 포기했다. 발밑에는 바스락거리는 낙엽길이 계속돼 정겹다.

청송 심씨묘에서 17분쯤 고로쇠수액을 채취한 비닐이 널브러져 있다. 경사가 더 심해지고 낙엽이 수북이 쌓여 차츰 체력소모가 심해진다.

일순간 길이 사라진다. 알고 보니 정면으로 집채만한 바위가 떡 버티고 있다. 약간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오르면 그제서야 바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에돌아 올라온 셈이다. 무릎까지 덮는 낙엽길을 헤치고 나아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잠시 이탈했던 능선길, 다시 집채만한 바위 위 능선길로 복귀한다. 길 좌측으로 조그만 전망대 바위가 보인다. 좌측 앞으로 구암산과 그 뒤로 내연산 향로봉 삿갓봉 비학산 가사령 등이 확인된다.

반복되는 오르막 낙엽길. 청정 산길 위에 바스락 소리를 내며 밟히는 이 낙엽들은 마치 새 기름에 갓 구운 새우튀김처럼 탐스럽기 그지없다. 그러기에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끼 낀 크고작은 바위들을 징검다리 삼아 폴짝 폴짝 건너다 보면 좌측으로 시야가 트이며 거대한 산의 물결이 일렁인다. GPS단말기는 이제 해발 800m가 넘었음을 알려준다.

잠시 경사가 사그러들면서 산길은 우측으로 꺾인다. 무명봉에 올라서면 처음으로 눈앞에 향후 올라설 봉우리들이 펼쳐진다. 1시 방향으로 곰바위산, 2시 보현산, 그 우측 앞으로 면봉산과 베틀봉이 확인된다.

산림청이 달아놓은 '고정표본 점' 안내판을 지난다. 아직도 나무엔 초록의 나뭇잎과 누렇게 색이 바랜 단풍 그리고 이제 생명을 다해 고공낙하를 기다리는 낙엽이 공존한다.

곰바위산 하산 도중 만나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천문대로 유명한 보현산, 기상관측소가 있는 포항의 최고봉인
면봉산, 산행팀이 향후 오를 베틀봉(왼쪽부터).
 
고정표본 점에서 급경사길을 15분쯤 오르면 또 하나의 봉우리 정점에 올라선다. 정상석 대신 '곰바위산'이라 표기된 이정표가 서 있다. 동시에 시야가 확 트이면서 정면으로 보현산, 그 우측으로 기상관측소가 위치한 면봉산과 베틀봉이, 좌측으로 작은보현산과 대태고개 수석봉이 확인된다. 작은보현산 뒤 높은 산은 영천 기룡산이다.

산행팀은 좌측 무학대(2㎞) 방향 대신 베틀봉(3㎞) 방향으로 직진하며 내려선다. 면봉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이 한눈에 펼쳐지고 발아랜 해발 500m에 이르는 산간분지 마을인 두마리가 보인다. 90세대 200여 명이 사는 이곳은 도로 사정도 나아진 데다 한우 축사와 특용작물 재배 등으로 더이상 오지가 아닌 듯 보인다.

때론 단풍나무도 만난다.

가뭄 탓인지 단풍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

   9분 뒤 산길 좌측으로 멋진 전망대가 기다린다. 앞서 본 주변 산세와 향후 오를 능선길이 손금보듯 훤히 확인된다. 월성 이씨묘를 지나면 임도급 너른 길. 좌측으로 150m쯤 가면 사거리에 닿는다. 지형도에는 베틀고개로 표기돼 있지만 주민들은 망덕고개로 부른다. 좌측은 두마리(2㎞), 우측은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봉계리, 산행팀은 베틀봉(2㎞)을 향해 직진한다. 독특한 모양을 한 인근의 망덕할매바위도 챙겨보자.

이때부터 수더분한 능선길. 안내 리본도 많이 걸려 있어 길찾기 걱정은 붙들어매고 여유를 갖고 걷는다. 5분 뒤 샘터 안내판이 보인다. 화살표 방향으로 돌아가보니 파란 뚜껑이 보인다. 갈수기라 물이 거의 없는 데다 위생상태도 좋지 못하다. 샘터 주변은 유난히 단풍나무가 눈에 띄지만 대부분 예의 붉은빛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말라가고 있다.

곧 두마리로 내려서는 탈출로가 좌측에 보이지만 무시하고 직진한다. 일순간 길이 좌측으로 휘면서 동시에 쓰러진 나무를 잇따라 통과한다. 한 굽이 오르면 경주 최씨묘를 지나고 이어 9분 뒤 독도에 유의해야 될 보현지맥 갈림길로 올라선다. 좌측은 곰내재를 거쳐 면봉산 보현산으로 이어지며, 산행팀은 우측 베틀봉으로 향한다. 이 길은 꼭두방재를 거쳐 낙동정맥과 만난다. 산행팀은 베틀봉을 지나 꼭두방재까지 가지 않고 도중 원점회귀를 위해 우측(동쪽)으로 방향을 틀 예정이다.

베틀봉 정상 직전의 구멍바위. 과거에는 이곳을 통과했지만 지금은 바위 좌측으로 길이 열려 이곳을 통과하지 않는다.

6분 뒤 집채만한 바위, 일명 구멍바위 앞에 선다. 좌측으로 에돌아간다. 이창우 대장은 "예전엔 좌측으로 올라 바위 사이의 구멍을 통과해 구멍바위라 불렀지만 지금은 바로 올라갈 수 있어 그 이름이 퇴색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구멍바위 바로 위엔 멋진 전망대가 또다시 기다린다. 좌측 곰바위산에서 방금 걸어온 능선길을 볼 수 있는 데다 앞서본 거의 모든 장면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그간 안 보이던, 작은보현산과 이어지는 갈미봉과 수석봉 뒤 운주산도 확인된다.

베틀봉 정상.

베틀봉 정상에서 본 베틀바위(앞)와 향후 산행팀이 내달릴 능선길.


전망대에서 몇 걸음만 더 올라가면 베틀봉. 정상석 대신 최남준 국제신문 2대 산행대장이 걸어놓은 '보현지맥 베틀봉 934m 준·희' 안내판이 걸려 있다. 마치 누굴 기다리듯 산 전체에 노란 손수건을 묶어놓은 듯하다.

솔직히 조망은 앞선 전망대보다 좋지 못하다. 베틀바위는 정면(북쪽) 우측으로 솟은 바위로 추정된다. 그 앞쪽에 위치한 앞서 본 구멍바위는 봉계리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 솟아 있기 때문이다.

급내리막길로 직진하며 하산한다. 고도가 높은지 북사면인지 하여튼 앙상한 가지에 낙엽이 온통 발목 이상을 덮을 정도다. 20여 분 뒤 삼각점이 있는 862봉, 다시 5분 뒤 함안 조씨묘를 지난다. 좌측 뒤 숲사이로 면봉산, 우측 뒤로 곰바위산이 보인다.

유순한 이 길로 계속 직진하면 꼭두방재를 지나 낙동정맥과 만나지만 산행팀은 이제 원점회귀를 위해 우측으로 방향을 꺾어야 한다. 보도블록이 보이는 폐헬기장을 지나 자연스럽게 직진길을 버리고 30도 우측 무명봉으로 살짝 올라야 한다. 정상에서 48분.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능선을 타고 내려선다. 우측으로 곰바위산과 베틀봉이 동시에 보인다.

봉분이 파헤쳐진 묘지를 지나면 7분 뒤 폐헬기장 앞 갈림길. 우측은 들머리 봉계리 새목마을 위 두문마을로 가는 길, 산행팀은 폐헬기장을 지나 좌측으로 간다. 청송 심씨묘를 지나면 급내리막. 이후 두 개의 낮은 봉우리를-이곳엔 안동 권씨묘가 각각 있다-를 살짝 넘고 두릅나무밭을 통과하면 도로에 내려선다. 도로에서 봉계리 마을회관까진 50m 떨어져 있다. 무명봉에서 55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수목 웃자라 들머리 봉계리에선 베틀바위 선명하게 안 보여

여담 하나. 예부터 경북 내륙에선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을 두고 "이 사람, 청송 두마에서 왔나?"라고 했다 한다. '두마'는 지금의 포항시 죽장면 두마리를 이르는 말. 그만큼 두마리가 오지 속의 오지였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좋은 예다.

지금은 어떨까. 산행팀은 두마리와 이웃한 봉계리에서 산행을 시작했고, 산행 중엔 발아래 두마리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고, 산행 후엔 죽장면사무소 공무원 한 분과 통화했다.

산행 중 내려다본 해발 500m의 산간 분지마을인 두마리는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는 속설을 깡그리 뒤엎었다. 파란 지붕의 대형 한우축사와 퇴비사가 즐비했고, 특용작용을 위한 비닐하우스도 눈에 띄었다. 산위에서 보면 소규모 공단이 들어선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죽장면사무소에 따르면 두마리에는 현재 90세대, 2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도로 사정도 좋아 깊은 두메 산골이란 말은 이제 옛말이 돼 버렸다고 전했다. 오히려 이웃한 봉계리가 더 열악하다고 말했다. 주민은 두마리의 절반도 안 되는 38세대에 80여 명에 불과한 데다 젊은층이 거의 없다. 죽장면 23개 리 중에 하옥리 침곡리와 함께 이제는 오지 속의 오지로 전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으론 "이 사람, 청송 봉계에서 왔나?"로 바뀌어야 될 판이다. 그만큼 아직도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다는 방증이다.

밤마다 선녀가 내려와 베를 짰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베틀바위. 이와 관련 봉계리 심성대 이장은 "마을에선 베틀봉을 '베틀 기(機)' '바위 암(岩)' 자를 써 '기암봉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심 이장은 "어렸을 땐 베틀봉이란 이름을 있게 한 베틀바위가 보였지만 지금은 나무들이 웃자라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봉계리 마을회관에서 보면 곰바위산은 보이지 않지만 베틀봉은 마을회관 우측 저 멀리 우뚝 솟은 봉우리다. 마을회관 우측 바로 옆 둥그스름한 봉우리가 하산로이다.

# 교통편 - 100% 원점회귀 코스여서 승용차 이용하면 편리

100% 원점회귀 코스라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대중교통편은 있지만 상당히 불편하다.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경주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3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000원. 경주터미널에서 안동행 시외버스를 타고 죽장에서 내린다. 오전 8시30분, 8시45분, 11시40분. 6700원. 70분 걸린다. 죽장에서 들머리 봉계리까지는 개인택시(054-243-2655, 011-9730-2655)를 이용하면 된다. 7000원. 죽장에서 경주행 버스는 오후에는 6시 단 한 차례뿐이다. 경주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10분마다 있으며 막차는 밤 9시50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천IC~경주 영천 20번 좌회전~포항 영천 경주 좌회전~포항 20번~건천터널~경주 포항~경주터널~포항~말구불터널~안강읍~안강 925번 우회전~안강 68번 좌회전(선리치골프클럽)~경주 안강 우회전~포항 안강~갑산리 우회전~포항 영덕 68번~기계 68번~기계 서포항IC~신광 청하 서포항IC~강동면~청송 기계 서포항IC 좌회전 31번~포항시 기계면~청송 기계~청송 죽장~한티터널~죽장면~청송 죽장~청송 현동 좌회전~현내 봉계 두마 면봉산 베틀봉 무학사 좌회전~봉계리 베틀봉 우회전~봉계리 마을회관 앞 주차장 순.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3일부터 기존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으면서 유선전화보다 통화료가 훨씬 저렴한 인터넷전화 번호이동제가 시행됐다. 언론은 이를 두고 가계통신비 절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앞다퉈 보도했다.
각 매체마다 보도한 내용을 잠시 인용하면 이렇다.
<인터넷전화는 기존 집전화와 시내전화 통화료는 비슷하지만 시외전화가 평균 85%정도 저렴하다.
국제전화 역시 1분에 평균 50원 수준으로 개별 국가에 따라 기존 집전화에 비해 통화료가 최대 95%까지 저렴하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인터넷전화에 가입할 경우 기존 집전화보다 훨씬 다양한 서비스를 즐기면서 통화료는 절반 정도로 줄일 수 있다.
실제로 통신업체별로 가입자당 매출을 뜻하는 ARPU를 분석해 보면 기존 집전화는 1만 9천원~2만원인 반면 인터넷전화는 1만원~1만 1천원 정도로 절반가량 적다.
이같은 장점을 바탕으로 앞으로 인터넷전화 가입자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10월말 현재 인터넷전화 가입자수는 190만명 정도지만 내년에는 현재보다 4배가량 늘어나 750만 정도로 가입자수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지난 11월 1일 노컷뉴스

 또 이런 내용도 담겨 있다.
 〈그동안 인터넷전화 가입자는 '070'이라는 전국단위 단일번호를 사용해야 했지만 번호이동제가 시행됨에 따라 기존 집전화번호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스팸전화를 연상케하는 '070' 번호를 사용해야하고 오랫동안 사용해왔던 집전화 번호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인터넷전화는 전체 유선전화 시장에서 점유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번호이동제 시행으로 이 같은 부담이 사라지게 돼 저렴한 인터넷전화로의 가입자 이동이 급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지난 10월 30일 노컷뉴스

 필자는 노컷뉴스만 인용했지만 주요 일간지나 방송에서도 모두 이와 유사한 내용이 보도됐음을 밝혀둔다.

 이 뉴스를 보면서 지난 2월 LG파워콤에 인터넷전화를 가입했던 필자는 은근히 화가 났다.
 당시 가입할 때 필자도 070으로 시작되는 번호를 부여받았다. 위의 기사처럼 스팸전화번호가 연상돼 약간 망설이자 LG파워콤측은 기존의 전화번호를 사용하면 월 1000원을 내야 된다고 했다.
 즉, 번호는 기존의 것을 유지하는 대신 필자가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땐 070-????-????번호로 찍힌다는 것이다.
 어찌하겠는가. 필자도 월 1000원을 내고 기존 전화번호를 유지했다. 필자 주변의 LG파워콤 인터넷전화를 가입한 사람들 모두 필자처럼 월 1000원을 내고 기존 전화번호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러다 지난달 30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인터넷 번호이동제를 실시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뉴스를 보고 필자는 궁금했다. 기존의 인터넷전화 가입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070번호와 기존 전화번호를 갖고 있으면서 월 1000원을 내고 있는 기존 인터넷전화 가입자 말이다.
 해서, LG파워콤 고객센터로 문의했다. 사람과 통화하기가 왜이리 힘든지 몇 차례의 시도 끝에 통화가 이뤄졌다.
 필자가 앞서 설명한 내용을 액면 그대로 문의했다. 돌아온 대답이 정말 황당해 일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상담원은 가입자가 070 번호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면(그쪽에서는 '해지 신청을 하면'이라는 표현을 썼음) 월 1000원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럴 경우 070에서 드리는 혜택, 다시 말해 070번호 가입자끼리의 무료통화 혜택등 070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왜냐하면 기존 가입자들은 모두 이전의 전화번호를 사용하기 때문에 누가 070가입자인지 알 수 없다. 필자는 070가입자끼리 무료 통화를 해본 적이 없다. 혹 알아도 핸드폰을 사용하지 요즘 세상에 누가 집전화를 사용하는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될 문제가 하나 있다. LG파워콤이 3일부터 인터넷전화 번호이동제 시행에 앞서 필자가 의문을 표시한, 월 1000원 납부와 관련해 기존 가입자들에게 고지를 했어야 했다는 점이다.
 필자는 주변에 LG파워콤 가입자에게 물어보니 모두 금시초문이었다.
 결국 LG파워콤은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월 10000원 납부하는, 다시말해 070번호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기존 가입자들에게만 해지신청을 받아주고 그렇지 않은 무지의(?) 가입자들에게는 계속 월 1000원을 받겠다는 속셈에 다름아니지 않는가. 가입자가 10만 명이라면 월 1억이고 20만이면 2억이다.
 단언컨데 소비자에 대한 기망 행위이자 대기업의 소비자에 대한 폭리이다.

 고발할 게 또 있다. 단말기 문제이다.
 필자는 사실 집 근처 대형 마트에서 인터넷전화와 무선인터넷 가입하면 상품권 13만 원을 준다는 사실에 혹해 가입했다(가입하고 나니 얼마 지나고 나니 15만 원을 줘서 화가 나긴 했지만).
 지난 2월에 가입했으니 9개월이 지났다. 정확히 10월말에 갑자기 단말기가 켜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단말기 밧데리 수명이 6개월이란다. 그러니까 이후부턴 아침에 출근할 때 충전기에 꽂아놓고 나와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 밤에 퇴근하면 밧데리가 거의 없다. 정말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전화기가 켜지지 않았다. 충전이 덜됐나 싶어 꽂아놓아도 켜지지 않았다.
 고객센터에 문의해, 기사아저씨가 왔다. 근데 LG전자서비스가 아니라 삼보서비스 소속이라고 했다. 10월부터 회사 차원에서 단말기 수리 업무를 맡게 됐다고 했다. 이 사실도 참 이상하다. LG고객센터라는 게 있는데 굳이 이럴 필요가 있을까. 대기업이라는 게 믿음이 가질 않는다.  
 다음날 기사아저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수리비가 8만2080원이라고 했다. 예상보다 많이 나와 문의하는 것이라고 했다. 너무 황당해서 고객센터에 연락을 했다. 다시 한번 더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새 단말기는 6만6000원, 처음엔 6만원이라 했다가 나중에 부가세 10%가 붙어 6만6000원이라 했다. 근데 수리비는 8만2080원. 그래서 필자는 새 단말기를 구입하는 것이 낫겟다고 하자, 상담원은 가입할 때 단말기를 36개월 할부를 했기 때문에 4만여원이 남아 있다고 했다.
 8만2080원 대 11여 만원.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하는 수 없이 8만2080원을 내고 수리했다.
 여기서 의문점 하나. 필자는 단말기의 경우 1년도 안됐는데 무상 수리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졌지만 상담원은 기사아저씨가 단말기를 보면 단말기가 문제인지, 가입자의 문제인지 알 수 있다고 하면서, 이번 경우는 가입자가 단말기를 부주의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는 기사아저씨가 판단한다고 했다. 갱상도 말로 오야 마음이었다. 황당 그 자체다. 하여튼 믿음이 안간다.
 단말기의 밧데리도 문제다. 수명이 6개월이라서 계속 바꿔야 한단다.
 또 단말기의 경우 유선전화와 달리 소리가 깔끔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통화할 경우 뜨거워져 통화가 힘들 정도가 된다. 요금 싼 것 말고는 하여튼 전부 좋지 못하다.

 무선인터넷도 아주 문제가 많다.
 필자가 사는 곳은 3000세대가 넘는 대단위 아파트이다. 처음엔 별 일 없이 잘 되다 어느날 컴을 켜니 네스팟 가입자가 주변에 생겼는지 네스팟이 초기 화면에 떴다.
 또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니 기사아저씨가 방문했다. 방문하면 무조건 1만원.
 별 다른 방법은 없고 사용할 때마다 '무선네트연결상태'를 클릭해 일일이 파워콤을 잡은 다음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무선인터넷도 한계가 있는 법. ap는 거실에 있지만 방에서 노트북을 사용할 때 혹 동영상을 볼 경우 소리가 끊어지면서 들리고, 최근에 와서는 인터넷을 하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면 인터넷이 끊겨 있다.
 한마디로 불편하기 그지 없다. 기사아저씨를 부를려고 해도 방문만 하면 1만원을 내야 하니 매번 그럴 수도 없고, 하여튼 울며 겨자먹기로 계속 사용하고 있다. 돈도 돈이지만 평일엔 집에 아무도 없어 약속시간을 잡기가 무엇보다 어려운 것도 큰 문제다.
 기사아저씨가 지난번에 와서 하는 말이 다음에 오더라도 이 이상의 방법은 없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사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최근에는 한번만에 접속도 잘 안되고 있는 형편이다. 여러 모로 애를 먹이고 있다.
 만일 유선인터넷 업체에서 위약금을 물어준다면 정말이지 그쪽으로 옮겨가고 싶을 정도다.

결국 LG파워콤의 인터넷전화와 무선인터넷은 빚좋은 개살구에 다름아니다. 
 필자는 비록 LG파워콤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업체 또한 이와 큰 차이는 없을 듯하다. 
중요한 점은 가격면에서 강점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론 불편한 점이 적지 않았음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경험담 위주로 서술했다.
 항상 그러하듯 판단은 소비자의 몫이다.
 현명한 선택을 바랄 뿐이다. 이 글이 현명한 선택을 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만추 담양 추월산 원점회귀 산행
수석전시관과도 같은 기암괴석 '가을달빛산'
발아래 담양호와 어우러져 일대 장관 연출

 산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산꾼은 변덕이 심하다. 계절에 맞게 새롭게 변신하는 전국의 명산을 찾아 다닌다. 지조없이.

말없는 산이지만 내심 이렇게 항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름 한철 뜸하더니 이 가을 만산홍엽이 펼쳐지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많은 산꾼들이 찾아와 정신을 못차릴 정도"라고.

추월산은 이름 그대로 가을에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산이다. 추월산에 서면 담양호의 운해와 빨간 단풍잎이 조화를 이뤄 황홀경을 연출한다.

대나무의 고장 담양 추월산(秋月山)이 그렇다. 이름 그대로 가을산이고 달빛산이다. 단풍으로 화사하게 단장한 모습이 아름답고, 은은하게 내리 비치는 달빛 아래의 자태 또한 매혹적이다.

추월산 단풍은 단풍 그 자체만으로 미추(美醜)를 논할 수 없다. 단풍이란 잣대로만 보면 사실 인근의 내장산이나 강천산에 비할 바는 못된다.
하나, 수석전시관을 방불케하는 주변의 기암괴석과 발 아래 펼쳐지는 담양호를 한 화폭에 담을 경우 그 아름다움이란 나라땅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일대 장관이다.
여기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환상적인 조망을 곁들이면 그야말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할 만하다. 추월산과 더불어 담양의 3대 명산으로 꼽히는 산성산과 병풍산은 물론이고 강천산 무등산 내장산 백암산 입암산 그리고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깎아지른 해발 600m 높이의 절벽에 절묘하게 걸터 앉은 보리암도 볼거리다. 속세와 격리된 극락세계가 연출되는 자궁같은 암자지만 임진왜란 때 담양땅에서 의병을 일으킨 김덕령 장군의 부인 홍양 이 씨가 왜군에게 쫓기자 이곳 절벽에서 몸을 던진 안타까운 사연이 녹아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보리암 가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담양호와 산성산.

 산행은 추월산 주차장~보리암 이정표~첫 갈림길~제1등산로(동굴~잇단 철계단~보리암~보리암 정상)~헬기장~추월산 정상~제4등산로 갈림길~수리봉~깃대봉 갈림길~홍송 송림~복리암마을~잇단 식당(호반가든~월계식당~두메산골)~월계리 버스정류장~추월산 주차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안팎이며 산행 도중 탈출로가 곳곳에 열려 있어 체력에 맞게 내려올 수도 있다.



주차장에서 곧장 올라가면 ‘보리암'이라 적힌 조그만 이정표가 서 있다. 50m쯤 더 가면 다시 ‘보리암' 이정표가 보이며 곧바로 산길과 연결된다. 그 옆에는 샘터가 있다.
산길로 오르면 ‘추월산 등반안내도'가 기다린다. 10분 뒤 갈림길. 등반안내도에 따르면 제1등산로와 제2등산로 갈림길이다. 제2등산로는 완만하지만 멀고(1.6㎞), 가파른 제1등산로는 짧고(1.3㎞) 전망이 좋다. 제1등산로로 오른다.
길섶에는 여러 기의 돌탑이 서 있다. 지금도 조성 중인 탑도 있다. 보리암 신도들의 공덕탑인지 이곳이 성역임을 암시하는 것인지 하여튼 보리암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점차 급경사 오름길로 돌입한다. 해서 쉬어 가라고 벤치가 조성돼 있다.
첫 갈림길에서 20분이면 보리암 중창 공덕비와 석굴을 만난다. 공덕비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고려 신종 때 지리산 화엄사 산내 암자인 상무주암에서 나무로 만든 매를 날려 앉은 터에 암자를 지었으니 그 이름이 보리암이더라'고 음각돼 있다.
석굴을 지나면서 급경사 돌길과 바윗길이 예의 본색을 드러낸다. 10분 뒤 철계단 입구 쉼터. 담양호를 바라보며 잠시 숨을 돌린 후 거대 암벽 사이로 절묘하게 열린 등로를 따라 올라간다.

한 굽이 철계단을 힘겹게 오르면 멋진 전망대가 기다린다. 비로소 담양호가 한눈에 펼쳐진다. 산이 물에 잠겼는지, 물이 산에 갇혔는지 착각이 들 정도로 비경이다.
계속되는 오르막. 이후 등로는 고개만 잠시 돌리면 모든 지점이 전망대다. 석굴에서 30분이면 보리암 갈림길에 선다. 이정표엔 ‘보리암 100m'라고 적혀 있다. 잠시 다녀오자.
잇단 철계단을 지나면 이내 보리암. 입구엔 샘터가 있다. 경내로 들어서면 일순간 입이 벌어진다. 담양호와 금성산성을 품은 산성산, 그 뒤로 순창 강천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주변 암봉 아래 위로 울긋불긋 치장한 채 아스라이 매달린 듯한 수목들이 인상적이다.
보리암 경내 대나무 울타리에서 본 담양호와 산성산.
보리암 입구.
보리암 정상(692m)에서 바라본 담양읍내. 자세히 보면 그 유명한 메타세쿼이어 가로수길도 보인다.

 보리암 정상(692m)은 갈림길에서 대략 20분. 역시 철계단의 연속이다. 이정표에서 약간 떨어진 전망대에 서면 정면의 무등산과 그 우측 병풍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담양호 뒤로는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과 주능선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발 아래는 황금빛 들녘과 그 유명한 메타세쿼이어 가로수길도 확인된다.

여기서 산길은 두 갈래. 전망대 아래 제2등산로로 바로 하산(1.6㎞·40분)하는 길과 추월산 정상으로 가는 제3등산로가 바로 그것. 체력에 맞게 택하자.
산행팀은 직진, 추월산 정상(729m)으로 향한다. 억새길과 산죽길 그리고 헬기장을 잇따라 지나 35분쯤이면 도착한다. 보리암 정상보다는 전체적으로 조망이 못하지만 정상석을 등지고 11시 방향으로 내장산 백암산 입암산이 한눈에 보인다.

하산은 정상에선 왔던 길로 2분쯤 내려와 삼거리에서 왼쪽길로 내려선다. 호남정맥길이다. 이전과는 달리 부드러운 능선길이 이어진다. 8분 뒤 등반안내도 상의 제4등산로 갈림길. 무시하고 계속 직진한다.

정상에서 봤을 땐 두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했다. 첫 봉우리는 오르지 않고 우회한다. 이후 확 트인 능선에 도달하면 정면으로 암봉과 그 우측 아래 솟아오른 절묘한 바위가 눈에 띈다. 수리봉과 수리바위다. 그 뒤 암봉은 깃대봉. 도중 쑥부쟁이 군락지를 만난다.

이제 산길은 아래로 완전히 쏟아진 후 다시 오른다. 중간중간 수석전시관을 방불케하는 암봉의 자태가 힘이 넘친다. 수리봉(728m)은 제4등산로 갈림길에서 40분 거리.
직진한다. 5분 뒤 ‘진짜' 하산길을 만난다. 안내 리본이 많이 걸려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직진하면 호남정맥 깃대봉 가는 길, 산행팀은 우측 급경사 내리막길을 택한다. 늘푸른 산죽길이 이어진다. 가까이서 바라보는 깃대봉 아래 불쑥불쑥 솟아 있는 기암괴석의 집합체가 그림같다.

20분 뒤 뜻밖의 송림길. 홍송으로 하나같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다. 추월산의 또 다른 명물로 등록해도 될 듯하다. 10분 뒤 산을 벗어나 정자가 보이는 우측으로 향한다. 복리암마을을 거쳐 호반가든 등 잇단 식당을 지나면 메인 도로와 만난다. 산을 벗어난 지 20분만이다.
산 아래 담양호반에서 본 추월산 전경. 왼쪽이 보리암 정상, 오른쪽이 추월산 정상이다.

#떠나기 전에 - 담양시장 내 '대통 암뽕순대' 별미

이번 산행은 들머리와 날머리가 떨어져 있지만 원점산행 코스로 잡아도 무난할 듯하다.
물론 산을 벗어나 '두메산골' 식당이 위치한 29번 국도까지 20분 정도 걸리지만 감나무가 곳곳에 즐비한 시골길이라 전혀 무료하지 않다. 이곳에서 추월산 주차장까지가 불과 800m에 불과해 15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 이 길 또한 담양호와 함께 달려 심심하지 않다.'두메산골'에서 300m 지점에는 월계리 버스정류장. 월계리는 추월산 제4등산로에서 하산하면 만나는 마을이다. 참고하길. 담양온천은 주차장에서 불과 6㎞ 거리다.

맛집 한 곳을 소개한다. 담양시장(담양5일장) 내에 위치한 '옛날 순대집(061-381-1622)'이다. 추월산 주차장에서 차로 10분 거리. 부산행 방향과 거의 같다.

주메뉴는 '대통 암뽕순대'. 비닐에 당면 들어간 순대와는 천양지차다. 돼지 창자 속에 선지 우거지 깻잎 파 시금치 (간)고기 찹쌀 녹두 참기름 들기름과 갖은 양념을 넣고 찐다. 여기까지는 여느 순대집과 대동소이하다.

비결은 1m 길이의 대나무에 넣어 1시간 정도 삶는 것. 비린 냄새 제거는 물론이고 물에 삶을 때와 달리 양념이 빠져나가지 않아 맛이 훨씬 뛰어나다.

대통 암뽕순대 (대) 1만원, (소)5000원, 순대국밥 4000원. 장날에는 손님으로 넘쳐나 한참 기다려야 한다. 유의하길.

#교통편 - 옥과IC서 담양 방면 15번국도 타야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옥과(화순 오산)IC~옥과 방면 15번 국도 좌회전~정읍 담양 15번 좌회전~담양군~추월산 담양온천 대나무박물관~순창 정읍 죽농원 29번 우회전~담양 문화회관 29번~정읍 장성 죽농원 29번 좌회전(학동교 건너)~정읍 추월산 29번 우회전~정읍 추월산 가마골 29번 우회전~추월산 주차장 순.

부산행은 광주 방면으로 가다 옥과·경찰서 방향으로 좌회전해야 한다. 옥과IC 근처 오산삼거리에선 곡성·옥과 방향 대신 동복·주암 방면으로 우회전해야 된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라오스를 여행하다 보면 '신 닷 까오리'라는 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까오리'는 우리나라의 영어 이름 '코리아'에서 파생된 단어로 우리나라 '한국'을 뜻하지요.

 '신 닷 까오리'는 라오스식 한국음식입니다. 우리나라의 삼겹살 구이와 샤브샤브 요리 스타일을 믹스한 음식으로 야채와 고기의 조화가 미식가의 입맛을 사로잡습니다. 
 고기 불판 한가운데 볼록한 부분에는 삼겹살이나 쇠고기를 굽고, 불판 밑부분 오목한 곳에는 육수를 부어 야채를 살짝 익혀 먹기고 하고 국물도 떠먹습니다.


 이 음식은 십 수년 전 우리나라 대우건설이 라오스의 팍세(Pakce) 지역에서 왓타푸댐을 건설하던 중 현장 노동자들이 먹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졌답니다. 이렇다 보니 현지 라오스인들은 '신 닷 까오리'를 한국음식으로 알고 있답니다. 지금은 인근 태국이나 베트남으로도 전파돼 비슷한 형태의 요리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라오스의 쇠고기는 동남아 인도차이나 쇠고기가 그러하듯 매우 질긴 반면 돼지고기는 우리나라의 것보다 더 쫀득쫀득하고 맛있어 인기가 특히 높다고 합니다.
가격은 1인분에 평균 4만킵(4000원) 정도 합니다. 라오스 사람들의 한달 생활비가 4만5000깁(약 50US달러)이니 얼마나 비싸고 고급음식이겠습니까.
부잣집 아들이 예쁜 아가씨 꼬실 때나 부유층의 가족 외식용 말고는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음식이지요.


참외의 고장 성주 선석산~영암산 
성주 선석산, 세종대왕 17왕자 태실 품어
이웃한 영암산, 선석산과 달리 바위산 아찔
선석산에서 본 세종대왕 자태실 한눈에 
영암산 하산길 뜻밖의 단풍터널 황홀

성주 선석산에는 조선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17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실, 다시말해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이 위치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으로 전세계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유적은 유례가 없습니다. 
세종 20년(1438년)에서 24년(1442년) 사이에 조성된 태실은 세종의 장자 문종을 제외한 모든 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모여 있습니다. 19기 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수양대군(세조)의 즉위에 반대한 동생들인 금성대군 한남군 등 다섯 왕자의 태실은 사각형의 기단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돼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입구에 위치한 문종의 동생인 수양대군(세조)의 경우 왕이 됐는데도 태를 옮겨가지 않은 이유는 유달리 형제애를 강조한 아버지 세종의 유언에 따른 것입니다. 태실을 옮기지 않은 대신 임금의 태실인 태봉(胎封)으로 봉하고 가봉비를 세워두었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단종의 태봉은 수양대군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세종대왕 자태실이 위치한 조그만 둔덕은 선석산에서 보면 마치 여성의 음부를 빼닮았습니다. 이 둔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두 산줄기를 여성의 두 다리라고 하면, 세종대왕 자태실은 여성의 음부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선석산 태봉바위에 서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들머리에서 세종대왕 자태실을 구경한 후, 선석산 산행을 하면서 발아래 펼쳐지는 세종대왕 자태실을 바라보세요. 인근에는 세종대왕 자태실의 수호사찰 선석사도 있답니다. 영암산까지 가면 제대로 된 산행이 되지만 선석산을 한 바퀴 돌아 원점회귀할 수 있도 있습니다. 시간적 여유적 된다면 덤으로 성주의 명주인 참외씨를 갈아 먹인 '참외포크'도 한번 드셔 보세요. 기가 막힙니다.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

선석산 태봉바위에서 내려다본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 근경. 평지 속의 아담한 구릉 내지 둔덕이다.

선석산 태봉바위에서 내려다본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 원경. 저수지 앞 볼록한 둔덕이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이다. 이 둔덕 좌우로 길게 뻗어내린 능선을 여성의 두 다리로 볼 때 세종대왕 자태실은 여성의 음부에 해당한다는 게 지관들의 설명이다. 

주차장에서 세종대왕 자태실로 올라가는 산행팀.

주차장에서 바라본 세종대왕 자태실.


단종의 태봉. 왕자들의 태는 태실, 왕의 태는 태봉이라 한다.

세조(수양대군)의 태봉.태실과 태봉이 함께 있어 전체적으로 태실이라 부른다.


세종대왕 자태실에서 올려다본 선석산.

 

선석산 산행 도중 만나는 태봉바위.

태봉바위라는 안내판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번 주 소개하는 산은 참외의 고장 경북 성주 선석산~영암산. 성주땅 북동쪽에 치우쳐 있는 두 산은 성주와 칠곡의 경계에 오똑 솟아 있다. 좀 더 피부에 와닿게 설명하자면 국내 최초의 도립공원인 칠곡 금오산이 바로 코앞에 위치해 손에 잡힐 듯하다.

스케일이 큰 지도를 펴놓고 좀 더 넓게 살펴보면 두 산을 기점으로 동일 위도상으로 동쪽에는 팔공산이, 서쪽에는 민주지산이 포진해 있고 남서쪽에는 성주와 합천의 경계에 위치한 '석화성' 가야산이 우뚝 솟아 있다.

선석산~영암산은 어떤 산일까. 이 물음에 답을 하려면 마늘의 고장 경북 의성 금성산~비봉산과 비교하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듯싶다.

  우선 덩치가 작아 '나홀로 산행지'로 존재하기에는 2% 부족하다. 두 산을 한데 묶어 산행을 해야 제 맛이다.

산세가 각각 딴판인 점도 공통점이다. 의성의 간판인 금성산이 부드러운 육산인 반면 봉황이 날아가는 듯한 형상인 비봉산은 절벽을 이룬 암릉길로 멋도 있고 타는 재미도 있다.

선석산과 영암산도 마찬가지. 선석산이 무엇이든 품에 안을 것 같은 넉넉함을 갖춘 반면 영암산은 날카로운 바위와 벼랑으로 이뤄진 골산이다. 한 번의 산행에 두 종류의 산을 경험할 수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선석산이 숲이 좋고 산길이 산책로처럼 비교적 순해 여유있게 걸을 수 있는 반면 영암산은 한 발만 헛디디면 낭떠러지로 추락할 것 같은 긴장감을 유지해야 된다.
이번 산행에서 놓쳐선 안 될 볼거리는 선석산 아래 위치한 세종대왕 자태실과 선석사.   
세종대왕 자태실에는 세종대왕의 17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가 안장돼 있다. 왕실의 태는 국운과 직접 관련돼 소중하게 다뤄진 만큼 전통적으로 명당 중 명당에만 안장한다. 이런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는 선석산 태봉바위에서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인근의 천년 고찰 선석사는 세종대왕 자태실의 수호사찰로 현재 태실법당을 짓고 있다.

산행은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세종대왕 자태실 관광안내소~불광교~선석사 갈림길~삼거리봉(선석산·비룡산 갈림길)~태봉바위~용바위~정상 직전 삼거리~선석산(742m)~잇단 선석사 갈림길~돌문이고개~(칠곡)보손지 갈림길~정상 직전 갈림길~영암산(782m) 정상석~북봉(784m)~김천시 남면 '월명성모의 집'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 안팎. 산행 초입 길찾기에 유의하면 이후 능선길에선 이정표가 있어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세종대왕 자태실을 둘러본 후 관광안내소 옆 이정표 상의 '중암, 선나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을 고샅길을 따라가면 어느새 임도급의 숲길로 이어진다. 숲길의 종착역은 사실상 들머리인 나무다리인 불광교. 가만히 보니 계곡합수점이다. 다리 옆 나무엔 '등산로'라 적힌 안내판이 걸려 있다.

불광교를 건너 물 마른 건천과 나란히 걷는 너른 직진형 돌길 대신 우측 급경사길로 오른다. 직진형 돌길로 올라가도 선석산으로 이어진다. 참고하길.
   
급경사길은 처음엔 사람 다닌 흔적이 보이지만 어느 순간 그 흔적마저 사라져 사실상 개척산행이다. 25분쯤 뒤 소나무 아래 시야가 트이면서 선석산 산줄기 뒤로 암봉인 영암산이 보여 주변 지형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후 산길 주변으로 바위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길 흔적이 뚜렷해지면서 경사가 수그러진다. 15분 뒤 갈림길. 우측은 선석사에서 올라오는 길, 좌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전히 걷기 좋은 완만한 오름길. 7분여 뒤 또 갈림길. 나무에 '선석산' '비룡산' 방향이라 적힌 팻말이 걸려 있다. 산행팀은 삼거리봉으로 명명하고 직진한다. 잠시 후 길 우측으로 아파트촌이 보인다. 금오산 금오동천의 산행기점으로 유명한 칠곡군 북삼읍이다. 읍이라도 인구가 많은지 상당히 번화하다.

여유로운 이 길은 성주(좌)와 칠곡(우)을 가르는 군경계이다. 5분쯤 뒤 '태봉바위'라 적힌 안내판이 서 있다. 세종대왕 자태실 자리를 살펴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바위란다. 조그만 저수지 앞 볼록 솟은 동산이 세종대왕 자태실이다. 혹자는 이 지점이 연꽃의 한가운데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골짜기 양편의 산줄기가 여자의 양다리이며 태실이 위치한 자리가 여성의 음부에 해당된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당시의 내로라하는 지관들이 낙점한 만큼 명당 중의 명당이 아니겠는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실제로 문외한이 봐도 한눈에 느낄 수 있을 정도다.   

5분 뒤 '용바위'를 만난다. 안내판에 따르면 선석산에서 가장 웅비해 예부터 용바위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얼핏 봐선 평범한 바위로 보이나 끄트머리에 서서 발밑을 내려다보면 수긍이 간다. 저 멀리 국내 생산의 60%를 차지하는 참외 비닐하우스가 호수처럼 장관을 이룬다.

용바위에서 2분이면 정상 직전 삼거리. 좌측은 앞서 사실상 들머리였던 불광교 하산길, 산행팀은 직진한다. 선석산 정상은 여기서 300m 남았다고 적혀 있지만 생각보다 힘들이지 않고 빨리 올라선다. 잡목에 둘러싸여 동쪽인 칠곡 약목면 이외에는 조망이 하나도 없다. 선석산이란 이름은 보이지 않고 선석산의 또 다른 이름인 서진산(棲鎭山) 대신 한자를 착각해 누진산(樓鎭山)이라 적혀 있다. '서(棲)' 자와 '누(樓)' 자의 착각인 듯 싶다. 난센스다.

하산은 이정표 뒤 '영암산 2.8㎞' 방향으로 내려선다. 호젓한 낙엽길이다. 안 보이던 붉은 단풍이 보이기 시작하고, 발밑에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떨어져 천연 카펫을 걷는 기분이다.

  차츰 숲 사이로 암봉인 영암산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우측으론 명산으로 손꼽히는 근육질의 금오산 역시 숨었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부담없이 한가롭게 거닐 수 있는 꼬불꼬불한 옛길인 데다 소나무와 울긋불긋 단풍의 색조화도 일품이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환상의 숲길 구간이다. 좌측으로 선석사 방향으로 내려서는 옛길도 열려 있다.

일순간 지금과 달리 길이 약간 넓어지고 '보손지 2.2㎞, 영암산 1.1㎞'라 적힌 이정표를 만난다. 선석산과 영암산의 경계이자 칠곡 북삼읍과 성주 월항면을 잇는 일명 돌문이고개이다. 산 아래나 멀리서 보면 푹 꺼진 잘록이다. 성주 쪽은 아예 길이 없고, 오른쪽 북삼읍 보손지 쪽은 많은 산꾼들이 다니는지 길이 반듯하다.

5분쯤 뒤 놀랍게도 눈앞에 거의 직벽이 다가와 있어 순간 섬뜩해지지만 밧줄과 철계단 등 안전시설물이 설치돼 있어 그리 힘들지 않다. 보손지 갈림길을 지나 12분 뒤 갈림길을 만난다. 직진하면 로프 구간(270m), 우측은 우회길(350m)이다.

몇 걸음 내려서니 우측으로 집채만한 병풍바위가 떡 버티고 있다. 우회길인 셈이다. 얼핏 봐도 높이 20m, 폭 30m쯤 된다. 돌계단을 따라 한 굽이 오르면 시야가 트이며 근육질 암릉의 위용을 드러낸다. 동시에 주변의 산세와 지형이 한눈에 펼쳐진다. 뒤돌아보면 선석산에서 방금 지나온 마루금이 손금처럼 보이고 좌측 칠곡 쪽에는 금오산을 배경으로 북삼읍 보손지와 약목면이, 진행 방향으론 밧줄이 요리조리 매여 있는 암봉이 우뚝 서 있다.

영암산 쪽 전망대에서 본 선석산. 방금 지나온 능선이 선명하게 확인된다. 사진상으로 보이진 않지만 좌측으로 금오산과 북삼읍 보손지도 보인다.
                    선석산이 육산인 반면 능선으로 이어지는 영암산은 옹골찬 바위산이다.

정상석이 있는 영암산 정상까진 13분이면 닿는다. 밧줄을 잡고 두 개의 철계단을 오르면 된다. 안전시설물이 없다면 만만찮은 구간이지만 이 정도면 힘겹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대신 방심은 금물이다.

멀리서도 식별이 되는 멋진 소나무와 돌탑 그리고 정상석이 서 있는 정상에 서면 정면으로 금오산을 배경으로 하산할 마루금과 김천과 성주를 잇는 905번 지방도가 동시에 보인다.

하산은 직진. 암릉을 에돌아간다. 그 길도 아주 거칠다. 9분이면 암봉 앞에 선다. 좌우로 우회길을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직접 타고 오르는 수밖에. 바위가 발을 내딛기 쉽게 깨어져 있어 크게 문제는 없다.

여기서 다시 한 굽이 올라서면 북봉인 784봉.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보다 2m 높다.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이곳에 영암산이라고 표기돼 있다.

영암산 하산길에선 뜻밖에도 울긋불긋 단풍 터널을 만난다.

본격 하산길. 꽤 험로지만 뜻밖에도 단풍나무가 즐비하다. 이 길은 옛길이라기보다 905번 지방도로 하산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간벌하며 조성한 등산로인 듯하다. 특이하게도 형형색색의 단풍은 등산로를 벗어나 우측 칠곡 쪽 사면에 치우쳐 있다. 단풍 명산이 부럽지 않다. 이따금 좌측 뒤로 북봉과 가운데 암봉 그리고 소나무가 식별되는 정상석이 있는 782봉이 한눈에 보이기도 한다. 좀 더 내려오면 중부내륙고속도로도 시원하게 펼쳐진다.

35분 뒤 갈림길. 산행팀은 좌측으로 내려왔지만 어느 쪽으로 와도 10분 뒤에 '월명 성모의 집'에서 만난다. 784봉에서 47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성주 명물 참외씨 먹인 돼지 '참외포크' 일품

성주 명물 참외씨를 갈아 먹인 돼지의 삼겹살과 항정살.

돼지 목살.

 

식사는 완도에서 공수해온 매생이국밥을 맛볼 수 있다. 매생이칼국수도 있다.

된장찌개를 시키면 비빔밥을 해먹을 수 있게 나온다.

시골에서 농사 짓고 직접 담근 된장찌개.


영암산은 생긴 모양에서 그 이름이 생겨났다 한다. 산 아래 성주땅에서 올려다보면 3개(782봉과 784봉 그리고 그 사이)의 암봉으로 이뤄져 정상부가 마치 방울을 닮았다는 것. 해서 '방울 영(鈴)', '바위 암(岩)' 자를 조합해 영암산으로 불린다.

선석산은 세종대왕 자태실의 수호사찰인 선석사와 연관이 있다. 신라 효소왕 때(692년) 의상 대사가 현 사찰의 서편에 창건, 신광사로 명명했지만 고려 공민왕 때 나옹 선사가 주지로 오면서 절터를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를 위해 터를 닦던 중 큰 바위가 나와 절이름을 터를 닦는다는 의미의 선(禪) 자와 돌 석(石) 자를 써서 선석사로 명명했다 전해 온다. 그 때 발견된 바위는 지금도 대웅전 뜰 앞에 묻힌 채 그 일부가 땅 위에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빙산의 일각'만 나와 있는 셈이다.

산행 들머리의 세종대왕 자태실(子胎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으로 전세계적으로 이런 형태의 유적은 유례가 없다. 세종 20년(1438년)에서 24년(1442년) 사이에 조성된 태실은 세종의 장자 문종을 제외한 모든 왕자와 원손인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모여 있다. 19기 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수양대군(세조)의 즉위에 반대한 동생들인 금성대군 한남군 등 다섯 왕자의 태실은 사각형의 기단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돼 남아 있지 않다.

입구에 위치한 문종의 동생인 수양대군(세조)의 경우 왕이 됐는데도 태를 옮겨가지 않은 이유는 유달리 형제애를 강조한 아버지 세종의 유언에 따른 것. 태실을 옮기지 않은 대신 임금의 태실인 태봉(胎封)으로 봉하고 가봉비를 세워두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단종의 태봉은 수양대군과 멀리 떨어져 있다.

태봉바위와 용바위에선 가야산이 거의 보이질 않지만 산속 안내판에는 보인다고 적혀 있다. 심지어 이웃한 용바위에선 낙동강도 손에 잡힌다고 표기돼 있지만 그렇지 않다. 참고하길.

맛집 한 곳 추천한다. 참외씨 먹인 돼지고기 전문점 '성주 포동이 숯불가든'(054-931-0770). 성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참외 산지. 일반적으로 참외씨는 칼슘 인 칼륨 등 무기질과 비타민 등이 다량 함유된 건강식품. 특히 비타민E 함유량은 참기름의 26배, 옥수수 기름의 5배다. 실제로 성주 참외포크는 노화방지 물질인 비타민E 성분이 일반 돼지고기에 비해 무려 68배나 높은 반면 콜레스테롤은 22%나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맛은 어떨까. 두말하면 잔소리다. 육질이 두드럽고 쫄깃쫄깃하면서도 뒷맛은 아주 담백하다.

'성주 포동이 숯불가든'은 남편이 직접 참외포크를 생산하고, 부인인 강현순 씨가 식당을 경영한다. 국내 몇 안 되는 국산 돼지고기 판매점이기도 한 이곳은 최고의 고기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 이미 성주에선 가장 유명한 참외포크집으로 알려져 있다. 고기를 먹은 후엔 매생이 칼국수와 굴국밥이 준비돼 있다. 된장찌개를 원할 경우 비빔밥으로 나온다. 150g 1인분 8000원.


# 교통편 - 대중교통 당일치기 불가, 승용차 이용해야

남해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 서울 김천 방향~성주IC~왜관 성주 33번~무주 성주 30번~경산교 건너자마자 무주 김천 왜관 30분 좌회전~김천 구미 왜관~김천 초전 905번 지방도 좌회전~선석사 13.1㎞~세종대왕 자태실 선석사 직진~김천 남김천IC(선석사)~김천 구미 남김천IC 905번~어산 세종대왕 자태실 선석사~선석사 갈림길~세종대왕 자태실 관광안내소(주차장) 순. 날머리 '월명 성모의 집'에서 들머리 세종대왕 자태실 주차장에 위치한 차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택시(054-931-7673)를 불러야 한다. 1만5000원. 대중교통편으로 당일치기는 불가능하다.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북대구터미널로 가서 갈아타야 하지만 오후부터 시외버스가 출발한다.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무주에 위치한 나제통문(羅濟通門)은 흔히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우리나라 정규 교육과정을 배운 장삼이사라면 모두 그렇게 알고 있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는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신이나 관료들이 오가는 관로였기 때문에 민초들은 엄격히 통제됐다.
 그렇다면 민초들은 어디를 경유해 신라에서 백제로 국경을 넘었을까.
 필자는 무주 석기봉~민주지산을 산행하면서 우연히 알게 됐다.
 흔히 민주지산은 무주보다 북쪽인 영동 물한계곡에서 산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국제신문 산행팀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산 너머 무주 설천면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국토지리정보원의 5만분의 1 지형도를 준비해 가지만 들머리 찾기는 마을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산행팀은 물어 물어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하지만 산행 중 계속 의문이 가는 점이 있었다. 바로 지도상의 지명인 중고개였다. 그것도 윗중고개, 아랫중고개가 있는 것이었다.
 흔히 고개의 사전적 의미는 능선상에서 가장 낮은 지점으로, 산 너머 마을을 쉬이 넘나드는 지점을 의미하지만 이번 산행에서 중고개는 이런 사전적 의미의 고개와는 딴판이었다.
 운좋게도 산행팀은 이러한 의문에 명쾌하게 답을 준 스님 한 분을 만났다. 바로 아랫중고개 인근에 위치한, 단군을 모시는 신불사에서20여 년간 수도한 한산 스님이 바로 그분이다.

 스님에 따르면 이 중고개는 신라의 승려들이 중국을 오갈 때 넘어다닌 곳이란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제통문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사신이나 관료들이 다녔고, 스님이나 민초들은 모두 이곳을 지났다는 것.
 구체적인 경로를 보면, 당으로 공부하러 가기 위한 신라의 스님들은 김천 직지사에 모여 뒷산인 황악산에 오른 후 백두대간길을 따라 전라 충정 경상도를 가르는 삼도봉에서 민주지산 쪽으로 능선을 갈아탄 후 석기봉을 거쳐 이곳 중고개로 하산, 이웃한 나제통문 대신 무주땅, 다시말해 당시로는 백제땅에 들어왔다.(아래 지도 참조) 이들은 이후 금산 논산을 거쳐 부여 백마강에서 배편으로 당으로 건너 갔다고 전해온다.

 이 때문에 중고개는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쉼터 역할을 한 사실에 연유돼 마을사람들이 명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지금도 사용되는 있는 설천면 내 법정리인 대불리(大佛里)나 그 아래 행정리인 불대(佛垈)마을은 모두 이곳을 스쳐간 스님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한산 스님의 설명이다. 스님은 또 석기봉 아래의 삼두마애불이나 지리서 '동국여지지'에 나오는 백운산(민주지산의 옛 이름) 기슭의 불두사(佛頭寺)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신라 때 중국으로 공부하러 갔던 원효나 의상 심지어 김유신에게 버림받아 장흥 천관산으로 귀의했던 천관녀도 모두 이 길을 밟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이 대략적인 설명이다. 아래는 산행팀이 석기봉~민주지산을 산행하고 정리한 산행기사이다. 이맘 때 석기봉은 산 중턱까지 온통 단풍나무로 가득차 황홀하다.
모처럼 역사공부도 할 겸, 단풍도 구경할 겸 석기봉~민주지산을 올라보시는 게 어떠할지... 



원효도 천관녀도 단풍 보며 쉬었을까

공부위해 중국 간 신라 스님 모두 이 길로 통행
이웃한 나제통문, 공적업무 수행 관료들만 이용
들머리 '중고개', 산 벗어난 스님들 쉬어간 곳
대불리 불대마을 등 불교지명, 여기서 유래
산 중턱까지 온통 단풍나무 군락, 이번 주말 절정
 
 

 전북 무주군과 충북 영동군을 가로지르며 중부 내륙 깊숙이 자리한 석기봉~민주지산. 노련한 산꾼들은 민주지산 하면 대개 영동 물한계곡을 떠올린다. 계곡미와 편리한 접근성 그리고 편안한 오르막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존 등산로 답습보다 새로운 루트 개척을 중히 여기는 산행팀은 영동 대신 산 너머 무주를 들머리로 길을 뚫었다.   
  
무주땅 북동쪽 설천면 대불리 중고개가 들머리. 통상 고개라 하면 산이나 언덕을 쉬이 넘나드는 지점을 말하지만 이곳 중고개는 이런 사전적 의미의 고개와는 전혀 딴판이다.

알고 보니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었다. 중고개 골짝의 단군을 모시는 신불사에서 20여 년간 수도한 한산 스님에 따르면 이곳은 신라의 승려들이 중국을 오갈 때 넘어다닌 곳이라 한다. 당시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인 나제통문(羅濟通門)이 있었지만 이는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관료들만 오가는 관로였기 때문에 민초들은 엄격히 통제됐다.

신불사 한산 스님.

산행들머리인 아랫중고개.

해서, 당으로 공부하러 가기 위한 신라의 스님들은 김천 직지사에 모여 황악산에 오른 후 백두대간길을 따라 삼도봉에서 민주지산 쪽으로 능선을 갈아탄 후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이곳 중고개로 하산, 이웃한 나제통문 대신 백제땅인 무주로 들어왔다. 이후 금산 논산을 거쳐 부여 백마강에서 배편으로 당으로 중국으로 건너 갔다. 의효나 의상 심지어 김유신에게 버림받은 천관녀도 모두 이 길을 밟았으리라.

이 때문에 중고개는 사전적 의미의 고개가 아니라 산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쉼터 역할을 한 사실에 연유돼 명명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설천면 내 법정리인 대불리(大佛里)나 그 아래 행정리인 불대(佛垈)마을 그리고 석기봉 바로 아래의 삼두마애불 모두 이곳을 스쳐간 스님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한산 스님의 설명이다.

무주 쪽에서 오른 석기봉과 민주지산은 알고 보니 단풍 산이었다. 기존의 단풍 명산과 견줘도 하등 손색이 없다. 산 아래만 단풍이 아름다운 유명 단풍 산에 비해 이곳은 해발 800m대까지 울긋불긋한 단풍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온통 단풍 천지였다. 단풍 명산 목록에 새로 추가해도 될 듯하다.

 산행은 대불리 아랫중고개~삼도봉 민주지산 갈림길~삼두마애불~석기봉(1180m)~물한계곡(속새골) 갈림길~민주지산(1242m)~윗중고개~아랫중고개 순. 걷는 시간만 4시20분 정도지만 절정의 단풍을 감상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외길이라 길 찾기는 쉽지만 거칠고 험한 하산길은 고생을 좀 해야 한다. 하여, 노란 안내 리본을 촘촘하게 묶어놨다.

아랫중고개 입구의 깔끔한 흰색 민가 옆엔 예쁜 무지개 다리 두 개가 눈에 띈다. 다리를 건너면 신불사. 산행 후 잠시 둘러보기로 하고 다리 쪽으로 직진한다. '상수도 유원지 차량 출입 엄금'이라 적힌 팻말을 지나면서 정면 저 멀리 정상부가 쌀겨처럼 엉겨 있는 봉우리가 보인다. 곧 오를 석기봉이다.

5분 뒤 '석기봉 1.5㎞'라 적힌 이정표를 따라 산으로 들어선다. 곧 창고인 듯한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을 지난다. 길은 약간 거칠지만 반듯해 정감이 간다. 10분 뒤 계류를 건넌다. 알고 보니 바로 옆 또 다른 계류와 만나는 합수점이다. 붉은 단풍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붙잡는다. 수정같이 맑은 계류에 비치는 붉은 빛과 고색창연한 초록 이끼. 이는 화려한 단풍 산의 서막에 불과하다.

계류를 건너면 이내 갈림길. 우측으로 7, 8m쯤 가면 세 갈래길. 가운데길로 발길을 옮긴다. 길섶엔 쑥부쟁이 구절초 용담 꽃향유 등 야생화와 억새가 나 좀 보라 손짓한다.



석기봉은 해발 800m대의 산 중턱 이상까지 단풍나무 군락지여서 단풍 명산 목록에 새로 추가해도 될 듯하다.

10분 뒤 아름드리 낙엽송도 대자연의 법칙에 머리를 조아리고 황갈색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다시 10분 뒤 일순간 산길이 왼쪽으로 90도 꺾이면서 된비알로 변하지만 그것도 잠시. 산죽과 더불어 완경사 오르막이 이어진다.

크고 작은 돌들이 널브러진 지계곡을 지나면서 주변이 온통 단풍 천국으로 변한다. 계곡을 중심으로 양측 산사면까지 포함하면 폭이 족히 30m쯤 되는 산 속이 온통 단풍나무 천국이다. 온 산이 불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다. 이러한 형국이 수 백m 이어진다.

이창우 대장도 "단풍 명산은 보통 산 아래나 계곡 주변에 한 두 그루씩 화려하게 빛을 발하지만 이처럼 단풍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곳은 아주 드문 경우"라고 연신 셔터를 눌렀다.

산길은 급경사길로 돌변한다. 단풍은 다소 뜸하지만 계곡 쪽 먼 발치엔 여전히 눈에 띈다. 25분쯤 길 좌측으로 집채만한 바위가 보일 무렵 단풍은 이제 거의 빛이 바랬다. 곧 갈림길. 왼쪽 민주지산 대신 우측 삼도봉 방향으로 간다. 곧 50m 암벽에 높이 6m의 머리가 셋인 삼두(三頭)마애불을 만난다. 좀처럼 보기 드문 형상이다. 마애불 아래에는 너른 터와 약수물탕이 있어 오래 전부터 기도처로 이용돼 온 것으로 보인다.

50m 암벽에 높이 6m의 머리가 셋인 삼두(三頭)마애불.


석기봉 정상.

삼두마애불에서 50m쯤 바위 사이로 오르면 석기봉. 정상석이 없는 이곳에 서면 우측 정면으로 정상 부분에 삼도 대화합기념탑이 약간 보이는 삼도봉과 그 우측으로 웅장한 백두대간 산줄기가 용틀임하며 내달린다. 삼도봉 우측 뒤로 저 멀리 대덕산과 초점산이 희미하게 확인된다. 뒤돌아 서면 정면 뾰족한 봉우리가 민주지산이고 그 우측 뒤 V자 홈이 난 봉우리가 각호산과 배걸이봉이다.

                     석기봉에서 민주지산 가는 길.

왼쪽 민주지산 쪽으로 내려선다. 밧줄에 연이어 의지해 내려오길 세 차례. 이어지는 산길에도 없어도 될 지점에 유달리 밧줄이 매어져 있다. 적설량이 특히 많은 이곳은 겨울 내내 빙판길이라 안전을 위해서라고 이 대장은 말한다.

석기봉에서 민주지산까지는 외길로 대략 1시간10분 걸린다. 산길 왼쪽은 무주, 오른쪽은 영동이다. 돌길 또는 침목계단길을 오르내리고 산죽길로 내달린다. 무명 봉우리를 하나 넘는데 이곳이 대략 중간 지점이다. 또 물한계곡으로 빠지는 탈출로가 셋 있지만 벤치가 둘 있는 정상 직전 탈출로(속새골 갈림길) 외에는 등반 통제구역이란 안내판이 서 있다.

민주지산 정상 직전 영동 물한계곡으로 내려서는 갈림길

영동군이 세운 정상석과 삼각점 앞에 서면 방금 지나온 석기봉과 삼도봉이 보이고, 정북으로 뿔 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각호산과 배걸이봉, 그 왼쪽 뒤 푹 꺼진 도마령 뒤로 천마산 천마령이 손에 잡힌다. 이 대장은 "날이 맑을 경우 가야 황악 금오 덕유산과 무주리조트의 슬로프도 보인다"고 말했다.

    
하산은 15m쯤 되내려가 방금 온 좌측 대신 직진 오름길로 향한다. 우측으로 길게 뻗은 능선을 타고 원점회귀하기 위해서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럭저럭 막힘없이 열려 있다. 이곳은 앞선 등로와 달리 겨울산. 바람이 차거니와 낙엽이 수북이 깔여 있다. 대신 바싹 마른 낙엽 밟는 소리가 정겹다.

민주지산 정상.

민주지사에서 본 석기봉(가운데 뾰족한 봉)과 그 왼쪽이 삼도봉이다.

30여 분 뒤 만나는 갈림길에선 우로 내려선다. 상행길만큼은 못 하지만 길 주변의 단풍이 한 번 더 시선을 끈다. 갈림길에서 15분이면 사거리 안부에 선다. 오른쪽은 불대마을, 왼쪽으로 내려선다. 급경사길로 변하면서 일순간 길이 사라지지만 왼쪽 계곡 쪽 싸리나무에 가려진 산길이 숨어 있다. 산행팀은 입구의 싸리나무를 꺾고 길을 연 다음 노란 안내리본을 촘촘하게 매달아 놓았다. 5분쯤 뒤 물 마른 계곡에 닿고, 여기서 15분이면 산을 벗어난다. 입구에 '민주지산 1.8㎞'라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서 윗중고개마을을 거쳐 아랫중고개까지는 5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 - 일제 때 왜곡된 민주지산 한자 여태 통일 안돼

민주지산이라는 이름은 수수께끼다. 반계 유형원이 쓴 지리서 '동국여지지'에는 이곳이 백운산으로 표기돼 있지만 이후 일제에 의해 왜곡됐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일제가 어떤 근거로 이름지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지금도 민주지산의 한자 표기는 통일되지 못하고 여러 가지로 혼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먼저 국립정보지리원 발행 지형도에는 '잘 면(眠)' 자를 써서 眠周之山(면주지산)이라 표기돼 있다. 혹자는 '면'자를 '민' 자로 읽기도 한다는 데 옥편을 찾아보면 근거없는 얘기다. 한 발 양보해 만일 '민' 자로 읽기도 한다면 '둘레 주(周)' 자와 곁들여 '주변이 함께 졸고 있다'는 뜻으로 백두대간을 넘보며 용틀임하는 이 산줄기가 졸고 있으니 일제의 의도와 대략 일치한다. 또 '둘레 주' 자 대신 '주인 주(主)'를 조합해 眠主之山이라 하면 '주인이 잠들다'는 뜻이 돼 역시 일제의 의도가 엿보인다.

'옥돌 민(珉)' 자를 쓴 珉周之山은 '주변에 옥에 버금가는 돌만 두루 깔렸다'는 의미겠으나 일제에 의해 개명됐다기 보다 호사가들이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또 '옥돌 민(珉)'를 따로 빼 '왕과 백성이 두루 살펴본다'는 의미로도 해석하기도 한다. 어떤 백과사전에는 '산 이름 민(岷)' 자도 보인다. 흠 잡을 데 없는 무난한 이름 같지만 왠지 2% 부족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백컨대 기자는 민주지산이라 해서 처음엔 무슨 민주화의 성지쯤 되는 산인 줄 알았다.

출처가 불분명한 민주지산 대신 원래의 이름인 백운산으로 이름을 바꾸는 것이 이 시점에서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첨언 하나. 충청 경상 전라도 등 세 도를 가른다고 해서 명명된 백두대간 삼도봉과 석기봉은 모두 민주지산에 속하는 봉우리다. 혹자는 민주지산의 북쪽에 위치한 각호산까지 포함시키는 데 산세로 봐서 별개의 봉우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첨언 둘. 들머리 아랫중고개에서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 신불사 봉황대. 한산 스님은 지세로 봐서 봉황이 터를 잡은 곳이란다. 지도 상에는 진벌로 표기된 이곳은 백제시대 병사들의 진지가 있었다고 전해온다. 송림을 배경으로 인공연못과 정자를 조성해 놓아 경관이 빼어나다.

# 교통편 - 대중교통 당일치기 불가, 승용차 이용해야

대중교통편은 당일치기로 불가능하다. 부산서 무주로 바로 가는 시외버스는 없다. 굳이 적어 본다면 열차를 이용해 대전역~대전터미널로~무주시외버스터미널~설천면 소재 공용터미널. 여기서 택시를 이용해 들머리로 이동해야 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대전통영 고속도로 무주IC~무주(무주리조트 구천동) 방면 우회전~영동 무주 안국사~싸리재터널~영동 상주~구천동 무주리조트 안국사~성주 설천 반디랜드 30번 국도~성주 설천 반디랜드 우회전~남대천과 나란히~설천면~반디랜드 지나~GS구천동주유소 지나~삼도봉 장터 방향 좌회전(훼미리마트)~삼도봉 민주지산~내북마을(대불리 신불사) 방향 좌회전~석기봉 안내판~아랫중고개(무지개다리) 순.

글 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경북 영천군 작은보현산~갈미봉
70대 촌로들이 만든 가족산행지 
3년 전 녹색체험마을 차원서 조성
3시간 남짓 100% 원점회귀 코스
이웃한 보현산 천문대 손에 잡힐듯
면봉산 베틀봉 수석봉 팔공산도 보여

보기에 다소 망측한 소나무.

산행팀은 사랑목(木)이라 명명했다.

 
 경북 영천시 자양면 작은보현산~갈미봉 등산로는 평균 연령 70세인 보현골 주민들의 땀의 결실이다. 해발 300m대의 고지대에 자리한 보현골은 예부터 사과와 약초 농사를 지으며 근근이 버텨온 산골 오지 마을.

이곳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3년 전 농림부로부터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공장 하나 없는 촌구석에 한 사람의 등산객이라도 유치하기 위해 등산로 개설을 계획했다. 애초엔 여론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한다. 다른 산과 달리 이곳 마을사람들의 대부분은 산 아래에서 나무만 했지 정상 부근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는 것.
  
총대를 멘 체험마을 김용재 회장은 "한마디로 밀어붙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제외하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총동원령을 내려 지금 생각해보면 웃지 못할 풍경이었다고 한다. 이 같은 노력이 점차 입소문을 타 기초 및 광역자치단체에 알려지면서 예산 지원을 받게 됐다. 침목계단과 이정표 및 수목 이름표 등이 달리면서 이제는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깔끔한 등산로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번 코스는 한마디로 부담없이 떠날 수 있는 가족산행지다. 3시간 남짓한 100% 원점회귀 코스이다. 오를 때 1시간 정도만 고생하면 이후 산행은 전혀 부담없다.

산행은 영천시 자양면 보현골 돌공원~거동사~대태고개(수석봉) 갈림길~작은보현산(839m)~범바위~두마리 갈림길~사거리~정각리 갈림길~옛 구들장 채석장~갈미봉(봉화대 쉼터·789m)~쉼터(벤치)~보현골 돌공원. 걷는 시간만 3시간10분이며 길 찾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산행 전 유의사항 하나. 이번 산행에서 만나는 안내도나 이정표 상의 '보현산'은 모두 '작은보현산'이다. 정상에 천문대가 있는 보현산과 구별하기 위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는 모두 보현산이라 표기돼 있다.

산행 들머리인 보현산돌공원.

정교하고 깔끔하게 조성했다.

 
                    이름하여 달마대사 바위. 어떻게 보면 쏘옥 빼닮았다.

 산행기점은 보현산돌공원. 조약돌로 미로를 만들어 놓고 돌탑 쌓기 체험장과 달마 대사를 빼닮은 커다란 바위가 눈길을 끈다. 돌공원에서 도로를 따라 가면 이내 '보현골 자연탐방로 안내도'. 등산로가 친절하게 표시돼 있다. 들머리 거동사는 정면 운치있는 소나무 아래로, 자세히 보면 대웅전 기와지붕이 보인다. 안내도 뒤로 열린 길은 하산로이다.

들머리인 거동사 지킴이 진돌이. 안타깝게도 왼쪽 앞 발이 없다.

천년고찰 거동사의 대웅전.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갈림길. 대숲을 끼고 우측으로 100m쯤 오르면 좌측에 절로 가는 돌계단이 보인다. 고즈넉한 신라 천년고찰 거동사를 잠시 둘러본 후 대웅전 옆 돌계단으로 오른다. 계단 끝 산신각 주변은 소나무와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에워싸여 좀체 보기 드문 풍광이다. 산신각에서 아래 쪽 절을 봐도 운치있으며 그 뒤쪽 능선이 하산길이다.

거동사 산으로 오르며 산행은 시작된다.

푸른 소나무와 형형색색 단풍의 색조화가 일품이다.



서럽도록 아름다운 붉은 단풍.

단풍과 소나무의 완벽한 조화.


산신각 우측 산길로 발걸음을 옮기면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50m 뒤 갈림길. 왼쪽으로 가면 이정표가 서 있다. 해발 360m 지점으로 작은보현산까진 1.5㎞. 거리상으로 그리 멀지 않지만 오름길의 연속이라 꽤 힘들다. 비록 끝물이지만 노랗게 물든 신갈 굴참 등 참나무류와 개옻나무의 단풍이 무척 아름답다.

                    소나무와 단풍을 뒤로 하고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10분 뒤 벤치가 놓인 쉼터. 된비알이라 한 번 쉬어가라는 의미일 게다. 송림 사이로 저 멀리 기룡산 정상이 보인다. 10분 뒤 다시 이정표. 역시 벤치가 있다. 좀처럼 지치지 않는 기자도 사실 숨이 차다. 잎이 커 옛날 짚신에 깔았다는 신갈나무가 우점종이어서 주변이 온통 노랗다.

잠시 완경사 길이 이어지다 다시 된비알 돌길로 본색을 드러낸다. 도중 숲 사이로 기룡산과 향후 오를 갈미봉과 우측 보현산 천문대가 확인된다.

삼거리 이정표 앞에 닿는다. 앞선 이정표에서 25분. 왼쪽으로 오른다. 낙엽융단길이다. 최근 조림한 듯 주변의 잣나무가 유난히 푸르다. 평해 황씨묘를 지나면서 경사는 수그러든다. 10분 뒤 역시 삼거리 이정표. 이정표엔 '거동사 1.5㎞'로 적혀 있다. 산행 전 들머리에서 본 '작은보현산 1.5㎞'라 적힌 이정표를 꼼꼼히 봤다면 여기가 정상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들머리의 이정표가 틀렸다. 우측은 대태고개를 거쳐 수석봉 가는 길, 산행팀은 좌측으로 간다. 여기서부터 시·도경계길. 우측은 포항 죽장면 두마리, 좌측은 영천 자양면 보현리다.

발길 닿는 곳마다 풍경이 무척 평화롭다.

6분 뒤 시야가 트이는 능선 상의 바위 지점이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왼쪽으로 부산의 시약산처럼 기상레이더관측소가 서 있는 면봉산(1113m)과 그 우측으로 베틀봉(930m), 무명봉이 나란히 쌍둥이처럼 서 있다. 이 길은 대구 팔공산까지 이어지는 보현기맥길이다.

작은보현산. 정상석 대신 정상목과 삼각점이 서 있다.
작은보현산에서 본 구름 위의 대구 팔공산.

여기서 10분이면 작은보현산. 정상석 대신 정상목과 삼각점이 서 있다. 조망은 앞서 본 장면과 큰 차이가 없다. 정상목에서 10m쯤 더 가면 편평한 돌로 만든 식사용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정면 숲 사이로 보현산 천문대가 보인다. 10시 방향으론 팔공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하산은 직진하며 내려선다. 7분 뒤 집채만한 바위와 농짝 크기의 바위가 나란히 서 있다. 범바위다. 오래 전 마을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이후부턴 푹신푹신한 산길. 마냥 걷고 싶은 길이다. 단풍이 거의 끝나 약간은 을씨년스럽지만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가 되레 정감이 간다. 도중 놓쳐선 안될 볼거리가 하나 있다. 산길에서 좌측으로 30m쯤 거리에 여성이 다리를 위로 좍 벌리고 있는 듯한 다소 독특한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산행팀은 '사랑목(木)'이라 명명했다. 어떻게 보면 망측하기도 하다. 사람이 자주 다녔는지 희미하게 길이 나 있다.

호젓한 숲길이 일품이다.

뭇 남성들의 눈길을 쏘옥 끄는 사랑목.


이어지는 산길은 부드럽고 편안해 금정산 철학로가 떠오른다. 휘파람도 절로 나온다.

포항 죽장면 두마리로 빠지는 탈출로와 '산불조심'이라 적힌 플래카드를 지날 무렵 좌측 저 멀리 빨간 단풍나무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주변엔 물이 흘러 샘터로 개발하면 좋겠다.   

주변에 물이 있으면 단풍잎이 유난히 더 붉다.

호젓한 낙엽길도 만난다.


이쯤부터 서서히 오름길이 점차 시작된다. 과거 숯가마터로 추정되는 구덩이 둘을 지나면 이내 너른 터 사거리. 어떤 지도에는 이곳을 작은보현산으로 적고 있다. 참고하길. 또 쓰러져 있는 이정표에는 해발 832m라고 표기돼 있지만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는 827m로 적혀 있다. 우측 보현산 천문대, 직진하면 보현산 천문대 입구 마을인 정각별빛마을 가는 길, 산행팀은 왼쪽 갈미봉 쪽으로 향한다. 부드러운 낙엽길이다. 6분쯤 뒤부터 우측으로 보현산 천문대가 훤히 보인다. 내리막이 끝날 무렵 우측 정각별빛마을로 가는 넓은 임도가 열려 있다.
 옛 구들장 채석장에서 바라본 작은보현산.

갈미봉으로 가는 도중 바라본 보현산 천문대.

이때부터 다시 갈미봉을 향한 오름길이 시작된다. 대형 파란 물통을 지나 10분이면 채석장. 오래 전 구들장을 생산하던 채석장이다. 전망이 빼어나 왼쪽 작은보현산, 오른쪽 보현산이 고개만 돌리면 각각 시야에 들어온다. 작은보현산 좌측으로 베틀봉 면봉산, 우측으로 수석봉이 보인다.

채석장에서 5분이면 옛 봉화대인 갈미봉 상봉. 정상이란 이정표만 없으면 그냥 스쳐 지나갈 봉우리로 전망도 없고 별 특징이 없다.
 
하산은 이정표 좌측으로 내려선다. 거동사까진 1.2㎞. 시종일관 낙엽길이 이어지고 단풍도 이따금 화려하다. 300m쯤 내려서면 숫제 단풍터널이 기다린다. 25분 뒤 보현지 갈림길에선 돌탑공원으로 직진한다. 이어 경주 김 씨묘와 벤치가 놓인 쉼터를 지나면 일순간 산길이 좁아지며 급경사 내리막이 기다린다. 마지막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산허리를 타면 건너편에 거동사가 보이고 어느새 '보현골 자연탐방로 안내도'를 지나 보현사돌공원에 닿는다. 갈미봉에서 45분 걸린다.

#떠나기전에 - 이동 중 양동마을 지나 둘러봐도 될듯

갈미봉 정상 직전 만나는 채석장은 30, 40년 전만해도 구들장을 생산하던 제법 잘 나가던 곳이었다. 그저 흔적만 남아 있지만 지금은 멋진 전망대 역할을 한다. 이 마을 최호웅 씨는 "신기하기도 판상으로 잘 갈라지던 그 돌은 불을 쬐면 쬘수록 야물어지고 보온력도 대단했다"며 "당시 구들장은 부산으로 가장 많이 판매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채석장에서 갈미봉을 거쳐 내려오는 하산로가 꽤 넓어 많은 사람들이 이 길로 구들장을 실어 날랐느냐고 묻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당시 캐낸 구들장은 채석장과 산 아래를 연결하는 일종의 운반용 케이블카를 이용했다고 전했다. 
  
거동사에는 '진돌이'라는 하얀 진돗개가 한 마리 있다. 안타깝게도 왼쪽 앞 발이 없다. 마을 뒷산에 멧돼지가 많아 이를 잡기 위해 설치한 올무에 발이 걸렸기 때문이다. 아주 순하고, 움직이는데 불편하지만 본연의 임무인 절 지키기에는 충분히 밥값을 한다고 한다.

산행 중 나무 및 야생화 이름이 적힌 팻말이 자주 목격된다. 보현골 녹색농촌체험마을에서 단 것이다. 홀아비꽃대 등 북쪽 지방의 야생화가 자생하는 것으로 봐서 작은보현산도 보현산과 마찬가지로 야생화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거동사 입구 보현리 송정마을 인근에는 방갈로나 목조주택이 너른 터에 위치해 있다. 알고 보니 이곳은 매년 8월 대한민국 전원생활박람회가 열리는 장소라는 것. 행사 땐 목조황토집 황토한옥 통나무주택 등 다양한 전원주택이 전시된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산행 시간이 짧아 오가는 길에 위치한 국내 최대 규모의 양반마을이자 마을 전체가 지난 1984년 문화재로 지정된 양동마을을 둘러볼 수 있고, 귀향길엔 '대구 영천'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영천댐 호반 드라이브길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교통편 - 영천서 부산행 막차 오후 6시40분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영천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40분, 8시30분, 10시45분, 11시30분에 출발한다. 1시간20분 걸리며 6400원. 영천터미널 앞 터미널약국 앞에서 자양(거동사행) 버스를 타고 보현3리 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오전 8시40분, 9시30분, 10시30분. 1시간 걸리며 3100원. 보현3리 버스정류장에서 영천행 버스는 오후 3시, 4시, 5시40분, 6시40분(막차)에 있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주IC~울진 포항 7번 국도~포항 보문관광단지~포항 7번~울진 포항 위덕대학교~포항 안강 7번~영천 안강 28번 우회전, 양동마을~안강 28번~대구 영천 28번~기계 안강 31번~기계 31번~달성교 건너~청송 기계 서포항IC 31번 좌회전~포항시 기계면 안내판~청송 기계 31번~청송 죽장 31번~한티터널~죽장휴게소 지나 영천 69번 좌회전~영천시 자양면 안내판~화북 35번(보현산 천문대 거동사) 우회전~보현청소년수련원(옛 자양중학교)~천년고찰 거동사 가는 길~보현골 돌공원 순.

글 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