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진안에는 금남정맥의 최고봉인 운장산(1126m)과 암수 두 개의 봉우리로 유명한 마이산(685m) 그리고 구봉산(1002m)이 있다.
구봉산은 운장산과 마이산에 비해 지명도가 다소 떨어지지만 최근 산꾼들에게 `괜찮은' 산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부산을 비롯한 전국 산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소위 `떴다'.
구봉산 정상인 천황봉에서 바라본 아홉 봉우리. 험준하고 변화무쌍한 암봉 주변에 운무가 드리워지자 마치 신선의 세계인 양 신비롭게 변모했다.
덕유산 등 호남의 웬만한 봉우리를 감상할 수 있는 장쾌한 조망에다 암벽등반을 연상케 하는 봉우리들의 위용과 기세는 왜 산꾼들이 이 산을 찾게 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산할 때 만나는 산죽과 발목까지 빠지는 카키색 낙엽 융단길은 초겨울 산행의 묘미를 배가시킨다.
구봉산(九峰山)은 이름 그대로 아홉 개의 바위봉과 주봉인 천황봉으로 구성돼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엄한 아버지 앞에 앉은 아홉 명의 자식이 떠오른다.
험준하고 변화무쌍한 아홉 개의 암봉이 연출하는 자연미는 설악의 그것과 견주어도 하등의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고 웅장하면서도 산세가 살아 숨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창우 산행대장은 “전남 고흥의 최고봉으로, 여덟 개의 바위봉우리가 아치형으로 나란히 이어져 있는 팔영산(八影山)과 산세가 흡사하다"고 한마디 거든다.
사실 구봉산은 산깨나 탄다는 산꾼들도 곤욕을 치를 만큼 무척 힘이 든다. 자신의 체력을 테스트하고자 하는 산꾼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듯하다.
산행은 윗양명주차장~주능선~나무벤치~1봉…9봉~돈내미재(갈림길)~샘터~주봉 천황봉(일명 장군봉)~바랑재(천황사 갈림길)~구봉산장민박~양명경로당~양명마을(구봉산 안내판)~윗양명주차장 순. 5시간 정도 걸린다.
주차장의 등산안내도 왼쪽 옆으로 열린 산길로 들어선다. 다리 건너 직진하면 왼쪽 사슴농장이 있는 지점에서 본격 산길로 접어든다. 들머리다. 입구에 `2봉 1.1㎞, 9봉 2㎞, 구봉산(천황봉) 3.3㎞'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처음부터 암봉은 아니었다. 낙엽길을 걸으며 워밍업할 기회를 준다.
완만한 산길로 시작되지만 서서히 경사가 심해진다. 10분 뒤 갈림길. 주능선에서 만나므로 개의치 말자. 산행팀은 우측으로 간다. 흩날리는 낙엽, 앙상한 나뭇가지가 전형적인 초겨울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왼쪽 낭떠러지 아래 조그만 암자가 눈에 띈다. 천황암이다.
10분 뒤 벤치 3개가 놓여 있다. 워낙 가파르다 보니 쉬어가라는 의미일게다.
봉우리에 올라설 수 있는 안부까진 20분 정도 걸린다. 1봉만 우측에 있고, 나머지 여덟 봉우리는 왼쪽에 포진해 있다.
1봉까지는 80m정도 내려간 뒤 철제 가드레일과 연결된 밧줄을 잡고 오른다. 정상엔 뜻밖에 무덤이 있다. 사방이 확 트인 산의 물결이어서 명당자리인 듯하다. 소나무도 훨씬 위엄있어 보인다.
다시 안부로 되돌아와 2봉으로 향한다. 역시 밧줄에 의지한 채 5분이면 봉우리에 올라선다. 정면에 3, 4봉이 잇따라 보인다.
암봉이 워낙 험해 줄곧 안전시설물이 설치돼 있다.
1, 2봉 사이 안부에서 9봉까지는 불과 0.9㎞. 이는 봉우리가 아기자기하게 거의 붙어 있음을 뜻함과 동시에 그 만큼 가팔라 봉우리에 도달하기가 힘겹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밧줄이 없으면 사실상 낭떠러지인 봉우리 등정은 엄두도 못낼 정도이다.
이렇게 3, 4, 5봉을 연이어 지나면 벤치가 또 나온다. 곧 6봉으로 향한다. 6봉은 특히 내려올 때 아주 위험하다. 7봉을 가볍게 오르내린 후 8봉은 그냥 지나치자. 워낙 위험해 암벽등반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친절한 이정표. 가만히 보면 9개 봉우리의 총 거리가 900m 조금 넘는다.
9봉으로 향하는 길은 주변에 온통 낙엽이 깔려있어 운치가 있다. 막상 봉우리 아래에 도착하니 밧줄이 없다. 사람 다닌 흔적도 찾기 힘들다. 두 발로 힘겹게 오른 9봉은 예상외로 볼거리가 많다. 주봉인 천황봉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데다 두 개의 큰 바위 사이에 작은 바위가 얹혀 있어 마치 작은 터널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보기 드문 형상이다. 1봉에서 9봉까지 넘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3시간.
이제는 천황봉으로 향한다. 갑자기 초록빛 산죽군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돈내미재이다. 왼쪽에 하산길이 열려있다. 참고하길. 정상까지는 750m, 고도차는 310m 정도. 숫자상으로는 얼마 안되는 듯하지만 실제로 올라보면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든 구간이다.
왼쪽 바위절벽 밑의 샘터에서 물을 한 잔 들이킨 후 바위절벽 사이의 틈새로 오른다. 100m 정도지만 ‘마의 구간'이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아주 가파르다. 밧줄이 있지만 별 도움이 안된다. 그냥 `악'으로 오르는 수밖에. 이 구간을 통과하면 경사는 좀 완화되지만 여전히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정상은 돈내미재에서 45분 정도. 근래 오른 봉우리 중 가장 기억에 남을 산행으로 손꼽힐 만하다. 정상엔 4개의 벤치가 있고 동쪽으론 방금 올라온 9개의 봉우리가 비스듬히 보인다. 그 뒤로 덕유산이 희미하게 다가온다. 남쪽엔 마이산이, 서쪽엔 복두산과 운장산이 손에 잡힐 듯 하다. 정면으로 용당댐이 보인다. 의외로 규모가 크다. 전국에서 다섯 번째란다.
9봉에는 크고 작은 바위가 작은 터널을 만들어놨다.
9봉에서 주봉인 천황봉 가는 길은 이번 산행의 '마의 구간'이다.
하산은 천황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10여 분 뒤 갈림길. 바랑재다. 천황사로 가는 길 대신 원점회귀를 위해 밧줄이 매어져 있는 급경사의 왼쪽길을 택한다. 처음엔 가파르지만 이내 낙엽과 산죽이 번갈아 나와 발길을 가볍게 해준다.
하산 도중 만나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홉 봉우리의 모습이 일품이다. 바랑재에서 날머리인 구봉산장민박 앞까지는 대략 50분.
구봉산장을 돌아 마을을 거쳐 주차장으로 가도 되고, 날머리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가 메인도로에서 왼쪽으로 돌아 주차장으로 가도 된다.
# 떠나기 전에 - 겨울에 진면목…안전장비 꼭 챙겨야
전북 진안을 대표하는 산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마이산이다.
구봉산은 마이산과 마주보며 솟은 운장산의 한쪽 곁에 아홉 봉우리가 거대한 장벽처럼 솟구쳐 있다.
진안군 정천면과 주천면을 가르며 솟은 구봉산은 최근에야 부산을 비롯한 전국의 산꾼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국제신문 산행팀이 찾은 날도 평일에다 궂은 날씨였지만 대전과 서울에서 온 대형버스에서 수십 명의 산꾼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흥 팔영산, 상주 구병산, 영덕 팔각산처럼 암봉으로 이어져 산꾼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멋진 코스다. 아홉 봉우리를 모두 오르면 천왕봉이 정면에 버티고 있다. 오르는 재미 또한 그만이다.
요즘처럼 초겨울에 찾으면 속살을 완전히 내보이는 구봉산의 진면목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안전산행에도 유의하자.
안전산행을 위해선 겨울철 기본장비인 아이젠 헤드랜턴 스패츠 장갑 목출모 등을 갖추고 떠나자. 겨울산은 언제 어떻게 돌발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하산후 수암마을의 천황사를 들러보자. 신라 헌강왕때 무염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수령 600년의 전북도 지정목이 볼거리다.
#교통편 - 대진고속도로 이용 당일치기 가능
부산서 전남 진안군 구봉산까지는 대진고속도로 덕택에 아침 일찍 서두르면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적어도 오전 7시 이전에는 출발해야 한다.
가는 길은 남해고속도로 서진주IC를 통해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이후 장수 장계IC로 빠져나와 우회전(전주 장계 방향)~무주 장계(19, 26번 국도)~진안(〃)~진안(26번 국도)~26번 전주 아산 방향 버리고 진안 무주 방향~용담 금산 방향 795번 지방도~주천 방향 725번 지방도~구봉산 주차장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