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꾼 발길잡는 변화무쌍한 암봉 퍼레이드
거친 듯하며 부드럽고 작은 듯하면서 큰 산세
끝 단풍에 채색된 자연성릉~삼불봉 자태 뽐내


세 개의 암봉 형상이 마치 세 부처가 앉아 있는 것 같다 하여 명명된 삼불봉. 관음봉쪽에서 봤다. 


 
계룡산 아래 동학사 입구의 단풍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국립공원 계룡산은 옹골차면서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의 핵심은 암봉미다.
무엇이라도 단 번에 벨 듯 날카로운 바위능선이 말 달리듯 펼쳐져 있다. 실제로 주봉인 천황봉에서 쌀개봉 관음봉을 거쳐 삼불봉에 이르는 암릉은 마치 닭 벼슬을 한 용을 닮아 계룡산(鷄龍山)이라 명명됐다.

거친 듯 하면서도 부드럽고, 작은 듯 하면서 큰 산인 계룡산. 사실 계룡산은 아주 작다. 총면적이 65㎢로 16개 육상국립공원 가운데 꼴찌에서 두 번째. 참고로 꼴찌는 56㎢의 월출산이며, 부산의 진산 금정산은 23㎢.

이 처럼 작은 덩치에도 지난 1968년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밀실행정이 아니었다면 분명 거기에 준하는 뭔가가 있다는 방증이다. 산세만 빼어난 족보없는 산이 아니라는 것.

우선 역사의 산이다. 신라때 오악(嶽) 중 서악으로 제례가 올려진 이래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사직의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리던 장소였다. 풍수지리학상으로 정감록에서 말하는 소위 십승지(十勝地) 중 으뜸이고 동학사 갑사 신원사 등 천년고찰과 숙모전 삼은각 동계사 등 충절을 기리는 사당도 품고 있다.

산세는 두 말하면 잔소리. 변화무쌍한 암봉과 기암절벽,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성곽과도 같은 자연 암릉에 오묘한 자연의 섭리로 빚어낸 단풍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선사한다.    

산행은 동학사 주차장~매표소~홍살문(갈림길)~숙모전 동계사 삼은각~동학사~(은선폭포)전망대~은선폭포~관음봉 고개~관음봉(정자)~자연성릉~삼불봉~삼불봉 고개~남매탑~삼불봉 고개~금잔디고개~용문폭포~갑사~매표소~오리숲~주차장 순. 걷는 시간은 4시간30분 안팎. 이정표가 아주 잘 정비돼 있어 길찾기는 전혀 고민할 필요는 없다.

사실 아무리 이름있는 명산이라도 산행 중 무료한 구간이 있기 마련. 하나 계룡산은 예외다. 내장산이나 청량산처럼 주요 암봉이 오밀조밀 모여 있고 하나같이 독특한데다 주요 볼거리가 마치 인위적으로 조절된 듯 적당한 간격을 두고 위치한 때문이다. 초보 산꾼일 경우 놓치기 일쑤인 암봉이나 주요 포인트에서 만나는 자연경관해설 등이 그 좋은 본보기다.

주차장에서 매표소까지는 대략 9분. 매표소를 지나 동학사 계곡길을 오른다. 끝물 단풍이 낙엽과 공존한다. 흔히 '봄 동학사 벚꽃터널, 가을 갑사 오리숲 단풍'이라 하지만 만추의 이 길도 여느 내로라하는 단풍길 못잖게 아름답다. 동학사 계곡길이 이럴진대 갑사계곡은 어느 정도일까 하는 행복한 상상도 해본다. 15분 뒤 뜻밖의 홍살문. 동학사 옆에 사당이 있기 때문이다. 동학사 원점회귀코스 갈림길이다. 직진하면 은선폭포 관음봉, 오른쪽은 남매탑 삼불봉 가는 길이다. 직진한다. 비구니 스님들의 세심한 손길이 곳곳에 미쳐 정갈하기 그지없는 동학사를 지나면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돌계단 오르막이다. 하산때까지 온전한 흙길을 거의 밟기 어렵다는 사실을 미리 일러둔다.  

동학사 대웅전.

25분 뒤 디딜방아를 고정시키는 V자형 걸개를 닮은 쌀개봉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여기서 커브길을 돌아 30m쯤 오르면 은선(隱仙)폭포 전망대. 신선들이 숨어서 놀았을 만큼 아름다운데다 46m 낙차의 폭포 물줄기가 떨어질 때 피어나는 운무는 계룡팔경 중 7경에 속할 정도로 비경이라 하지만 아뿔싸 물이 말랐다. 대신 주변 기암절벽과 정면 관음봉에서 내려오는 철계단이 아스라이 보인다. 다시 오르막길. 너른 터에 닿는다. 옛 은선대피소터다. 여기서부터 관음봉 하단 너덜지대를 알리는 '낙석주의' 팻말이 서 있다. 하나 그리 힘든 구간은 아니다.

20여분 뒤 관음봉 고개 삼거리. 이제 관음봉은 불과 200m. 후덕하고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관음봉 정상석 바로 아래에는 관음정이란 정자가 있다. 정상석 뒤로는 문필봉과 연천봉이 솟아 있고, 반대편 전망대에선 삼불봉 장군봉, 대전 유성, 황적봉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공룡능선을 방불케하는 자연성릉과 삼불봉이 한눈에 보인다.


 하산은 철계단으로 내려선다. 계룡산에서 가장 환상적인 코스라는 자연성릉과 삼불봉으로 이어진다. 설악의 공룡능선을 방불케하는 1.6㎞의 자연성릉은 능선길이 아기자기하고 변화무쌍, 말그대로 자연성곽 위를 거니는 느낌을 받는다. 삼불봉까지는 대략 1시간. 멀리서 보면 세 개의 암봉 형상이 마치 세 부처가 앉아 있는 것 같다 하여 명명된 삼불봉에 서면 주봉인 안테나가 서 있는 천황봉을 비롯 쌀개봉 관음봉 문필봉 연천봉 계룡저수지가 한 눈에 펼쳐진다. 흔히 계룡산에선 수치상의 주봉은 천황봉(845m), 등산대상지로서의 중심이 관음봉(816m)이라면 풍수상의 주봉은 삼불봉(775m)이라 불린다. 참고하길.

이제 산행은 막바지. 10분 뒤 삼불봉 고개. 갈림길이다. 여기선 동학사로 원점회귀할지, 단풍으로 유명한 계룡산 6경인 갑사로 향할 지 결정해야 한다. 산행팀은 동학사쪽 300m 급경사 내리막길 상에 위치한 남매탑을 보고 다시 올라와 갑사로 향했다. 체력에 맞게 결정하자.

애틋한 사연의 남매탑. 오뉘탑이라고도 불린다.

 한 수도승과 그를 사모했던 처녀의 애틋한 전설을 간직한 남매탑(오뉘탑)은 각각 7층, 5층탑으로 보물로 지정돼 있으며 청량사지쌍탑으로도 불린다. 삼불봉 고개에서 억새가 무성한 금잔디 고개까지는 8분 거리. 이전과는 달리 평탄한 숲길이다. 40여년전 큰 산불로 인해 억새가 돋아 가을이면 억새가 노랗게 말라 있는 것이 마치 금잔디를 닮아 붙여진 금잔디 고개 주변에는 샘터와 두서너 곳의 쉼터가 있다.

갑사로 내려서는 길은 예부터 '추(秋) 갑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곧바로 입증된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은근히 매력적인 한국의 미 그 자체다. 곳곳에서 연신 추억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예부터 계룡산 단풍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갑사계곡의 단풍. 그냥 지나치기에
                  아까운듯 
대부분의 산꾼들이 추억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갑사로 가는 하산길.

용문폭포.

35분쯤 뒤 만나는 용문폭포 주변에선 거의 압권이다. 폭포에서 갑사까지는 대략 10분. 사실상 산행 끝!

백제때 아도화상이 창건, 한때 화엄종 10대 종찰로 번성했던 갑사 경내에는 국보 삼신불괘불탱을 비롯 철당간 및 지주 등 귀중한 문화재가 산재해 있으니 잠시 둘러보자.

갑사 경내 대웅전.


갑사 진입로이자 단풍길로 특히 유명한 오리숲을 거쳐 주차장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떠나기전에 - 동학사 입구 충신 사당 셋 자리잡아

동학사 직전 범종루 옆에는 우리 민족사에 빛나는 충의절신을 모신 사당이 셋 나란히 붙어있다. 시대별로 보면 동계사는 고려 태조때 신라 충신 박제상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고, 삼은각은 조선초 고려의 세 충신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를 모시기 위해 지었으며, 초혼각은 조선 세조때 김시습이 단종을 비롯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충신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 초혼각은 영조때 소실되었다가 후에 재건, 숙모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절 입구에 붉게 색칠한 창살을 세운 나무문인 홍살문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들 사당이 있기 때문이다.
계룡산은 행정구역상으로 공주시 대전시 계룡시 논산군에 속해 있다. 과거에는 공주 대전 논산에 포함돼 있었지만 2년전 논산시 계룡출장소가 '계룡시'로 승격됨에 따라 네개의 시군에 속하게 됐다. 면적 비율은 대전 11%, 공주 69%, 논산 2%, 계룡 18%. 때문에 계룡산은 흔히 알려진대로 '대전 계룡산'이 아니라 '공주 계룡산'이다.


#교통편 - KTX 타고 대전역 내려 들머리까지 102번 버스

경부고속철도(KTX)를 이용하면 힘들이지 않고 당일치기가 가능하다. 오전 5시를 시작으로 20~30분 간격으로 열차가 출발한다. 대전서도 마찬가지. 2만4000원(순방향 기준). 1시간50분 걸린다.

대전역에선 지하도로 내려 건너편에서 좌석버스 102번을 타고 종점(동학사)에서 내리면 된다. 1300원. 55분 걸린다.

날머리 갑사 주차장에선 유성행 공주 시민교통 2번 버스를 탄다. 오후 3시50, 4시50, 6시10, 7시10분(막차)에 있다. 2200원. 공주 박정자삼거리 또는 대전 유성 국립현충원에서 내려 대전역 가는 좌석버스 102번을 타면 된다. 결국 동학사 대신 갑사로 하산하면 1시간쯤 더 걸린다고 보면 된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부산 산악계 히말라야 등반사
                           -①도전의 시작

"한계…불가능…,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한국에서 첫 번째, 세계에서 8번째로 오른 자랑스런 한국의 '77에베레스트 원정대'.
오색 룽다가 펄럭이고 있는 가운데 에베레스트 등정 후 네팔 남동릉 베이스캠프에서 철수하기 전 '77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초체한 몰골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기에 모두들 표정이 밝다. 뒷줄 왼쪽에서 4~6번째가 각각 부산의 전명찬(작고), 곽수웅,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고상돈(작고) 대원이며, 앞줄 왼쪽에서 4번째가 김영도 원정대장. 네팔 남동릉 베이스캠프에선 티베트의 북동릉 쪽과는 달리 에베레스트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04년 3월 대한산악연맹 부산연맹(이하 대산연 부산연맹) 총회에서 회장으로 오른 하해룡 회장은 취임일성으로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파견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고봉이라는 상징성 하나밖에 없는 에베레스트 대신 등반성과 후진양성을 위해 8000m급 다른 봉우리를 택하자는 일부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대산연 산하 시도연맹 중 에베레스트를 등정하지 못한 곳은 부산 대전 제주뿐이라는 사실을 접하고는 자존심 회복 차원에서 에베레스트로 결정됐다.

부산연맹은 부산시와 국제신문의 특별 후원으로 2006년 '다이내믹 부산' 원정대를 꾸려 2년 후인 2006년 5월 16일 마침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 부산연맹이 새롭게 거듭나는 토대를 구축했다.
   
  에베레스트 등정 후 베이스캠프를 떠나기 전 77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왼쪽에서 4~6번째가 각각 부산의 전명찬(작고), 곽수웅,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고상돈(작고) 대원이며, 앞줄 왼쪽에서 4번째가 김영도 원정대장. 네팔 남동릉 베이스캠프에선 티베트의 북동릉 쪽과는 달리 에베레스트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감을 얻은 '다이내믹 부산' 원정대는 이듬해인 2007년 죽음의 산이라 불리는 K2와 브로드피크에 이어 올해엔 마칼루와 로체를 단숨에 올라 부산 산악인의 위상을 전세계에 알렸다.

세계의 지붕이자 자연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간직한 히말라야는 산악인들에게 궁극적 목표이자 희망이다. 왜 산에 오르느냐는 물음에 조지 말로리는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다소 선문답적인 명언을 남겼다지만 일반 산악인들은 그런 질문을 가급적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한결같이 '싫은 일을 왜 하겠어요'라고 말한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인간의 한계를 몸소 체험하려 한다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그저 산에 가는 것이 좋고 오르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고 나아가 미래도 없는 법.

부산 산악인들의 지금과 같은 위상은 과거 선배 산악인들의 발자취가 큰 힘이 됐다. 그 발자취가 땀과 눈물이 뒤섞인 시행착오가 됐든 추위와 굶주림이라는 역경을 이겨내고 이뤄낸 불굴의 의지이든 선배들의 영향은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이내믹 부산 원정대'와 늘 함께 해온 국제신문은 부산 산악인들의 영욕의 히말라야 등반사를 네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히말라야의 정의  
넓은 의미 히말라야는 중앙아시아 거봉군 전체
그레이트·카라코람·힌두쿠시로 다시 세분화

 
우선 히말라야에 대한 개념 정리가 필요할 듯하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라는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6000만년 전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충돌, 세계의 지붕으로 우뚝 선 히말라야.

'만년설의 집'이라는 의미의 히말라야는 넓은 의미로는 인도 네팔 파키스탄 부탄에 이르는 중앙아시아의 거봉군 전체를 의미하지만 현지에선 크게 '그레이트 히말라야', '카라코람 히말라야', '힌두쿠시 산맥'으로 구분해 사용된다.

그레이트 히말라야는 장삼이사들이 흔히 말하는 히말라야를 의미한다. 동쪽으로 부탄과 미얀마의 경계에서부터 서쪽으로 네팔 인도북부를 거쳐 파키스탄 일부까지 이르는 총길이 3000㎞에 이르는 대산군이다.

8000m급 히말라야 14좌 중 동쪽에서부터 캉첸중가(8586m) 마칼루(8463m) 로체(8516m) 에베레스트(8848m) 초오유(8201m) 시샤팡마(8027m) 마나슬루(8163m) 안나푸르나(8091m) 다울라기리(8167m) 낭가파르바트(8125m) 등 10개가 포함돼 있다. 이 8000m급 거봉 10개가 모두 네팔에서, 또는 네팔을 경유해야 등정이 가능해 일명 네말 히말라야로 부르기도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시샤팡마는 티베트에서, 낭가파르바트는 파카스탄에서 오른다.

  '검은 암석의 땅'을 의미하는 카라코람은 파키스탄 북부지역의 산군으로, 여기에는 '죽음의 산' K2(8611m) 브로드피크(8047m) 가셔브롬2(8035m) 가셔브롬1(8068m) 등 히말라야 14좌 중 4개가 포진해 있다. 총길이는 약 500㎞.

그레이트 히말라야에 비해 위도가 5도 정도 북쪽에 위치한 까닭에 고온다습한 인도양 기후의 영향을 덜 받아 매우 건조해 동식물이 생존하기 어려운 불모지대다.

또 다른 산군인 힌두쿠시는 파미르 남부에서 파키스탄 북부를 거쳐 아프가니스탄 중앙부로 뻗은 600㎞의 산맥.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을 따라 길게 도열돼 있다 보면 된다. 힌두쿠시는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넘어 인도를 침공했다 전해온다. 힌두쿠시의 최고봉은 티리치미르(7700m)로, 이곳에는 7000m급 산들이 많다.


#초창기 한국 히말라야 진출
학술조사·개척등반서 60년대 이후 극한 알피니즘 눈길
곽수웅 전명찬 '77에베레스트 원정대' 부산 대표 참가 

김포공항에서 기자회견을 갖는 '77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원들. 벽에 걸린 고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이 눈길을 끈다. 대원들은 비행기에서 술을 마셔 대부분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 대원들은 기자회견 후 청와대에 초청받고 지금으로 치면 올림픽 금메달에 해당되는 훈장까지 받는 칙사대접을 받았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히말라야로의 진출은 자국내에서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그 등반영역을 확장하는 순으로 나타난다.

해외등반에 관심을 갖게 된 196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의 등산문화는 한국산악회와 대학산악부를 중심으로 국토규명 학술조사로 출발했다. 이후 설악 한라 지리산 등지에서의 적설기 등반과 암장 개척등반이 주를 이루면서 이러한 열기가 부산을 비롯한 지방으로 확산됐다.

1960년대로 접어들어 점차 사회가 안정되면서 국내 산악계는 고전적 등반에서 탈피, 극한 등반을 추구함과 동시에 새로운 등반 대상지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점차 해외원정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히말라야 원정은 1962년 다울라기리2봉(7751m) 정찰대가 시초이다. 이 원정대는 다울라기리 남쪽 접근로의 발견과 6700m 무명봉을 오르는 성과를 거두었다. 1950년부터 시작된 8000m급 히말라야 14좌는 티베트에 위치한 시샤팡마(8027m)만 미답봉으로 남아 있고 나머지는 이미 초등된 상태였다. 그만큼 출발점이 다른 나라에 비해 늦었다는 것.

두 번째 원정은 1970년 한국산악회 추렌히말(7371m) 동봉 원정대. 이때 첫 등정에 성공하면서 히말라야 원정사에 처음 이름을 올리는 성과를 올렸다.

이후 같은 해 로체샤르(8382m)를 시작으로 1971, 1972, 1976년 세 차례에 걸쳐 마나슬루(8163m)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모두 실패로 끝이 났다. 마침내 1977년, 대산연이 파견한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지구의 용마루에 올라섰다. 세계에서 8번째 등정국가로, 고 고상돈 대원은 58번째 등정자로 기록됐다. 서구 산악계가 1950년 8000m급인 안나푸르나를 초등할 때까지 55년이란 긴 세월이 걸린 반면 한국은 히말라야의 장을 연 지 불과 15년만에 개척기를 마감하고 세계 최고봉에 오른 것이다.

당시 김영도 대장을 비롯해 18명의 대원이 참가한 원정대에 대륙산악회 곽수웅(33), 청봉산악회 전명찬(25·작고)이 참가, 부산산악계의 역량을 펼쳤다. 안타까운 점은 엑셀시오알파인클럽 송준송(31)이 1976년 설악산에서 훈련 도중 눈사태로 동료대원 2명과 함께 사망해 부산 산악인들에게 슬픔을 안겨주었다.

'77에베레스트 원정대'에 부산연맹의 대원으로 참여한 곽수웅(33 현 대륙산악회 고문, 왼쪽) 전명찬(25, 작고) 대원이 부산역에 도착한 후 환영식을 갖고 있다. 젊은 시절 곽수웅 씨는 현 롯데 자이언츠 4번 타자 이대호를 아주 닮았다.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참가한 곽수웅 대륙산악회 고문은 "당시 대원선발 과정이 워낙 까다로워 우스갯소리로 시험쳐서 뽑았다고 할 정도로 엄격했다"며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54명이 5차 훈련까지 거친 끝에 18명으로 최종 결정됐다"고 기억했다.

곽 고문은 "국가적 차원의 원정대인 만큼 각 시도 연맹 소속 대원들을 골고루 선발하려 했지만 훈련이 워낙 힘들어 결국 서울 부산 충북 충남 경북연맹의 대원들이 네팔로 떠났다"며 "등정에 성공한 고상돈 대원도 고향은 제주였지만 충북연맹 소속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부산 산악인의 히말라야 최초 도전은 1972년 2차 마나슬루 원정대(대장 김정섭)의 대원으로 참가한 청봉산악회의 송준행(32)이다. 그러나 손준행은 등반 도중 캠프3(6500m)에서 발생한 눈사태로 일본인 1명 등 대원 5명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로 세르파 10명도 숨졌다. 히말라야 등반 사상 두 번째로 큰 조난 참사였다.

부산 산악계는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등정에 자극받아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부산연맹과 부산학생산악연맹 그리고 전통의 산악회들이 히말라야로 잇단 출사표를 던지게 된다.

에베레스트 남동릉 캠프2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대원과 세르파. 뒤로 보이는 지점이 사우스콜이다.

77에베레스트 원정대가 사다리를 이용해 빙하지역을 오르고 있다.

# "히말라야 부산원정대 뭉쳤다" 서미트클럽 결성
   
2000년대 들어 부산 산악계는 지금까지 히말라야로 원정대를 지속적으로 파견하고 있다. 네팔지역 5개 팀, 카라코람 쪽인 파키스탄 2개 팀, 중국 지역 4개 팀 등 모두 11개 원정대가 히말라야로 향했다.

무엇보다 눈길 끄는 점은 대한산악연맹 부산시연맹이 주도하는 '다이내믹 원정대'의 등장이다. 부산시와 국제신문의 특별후원으로 결성된 '다이내믹 원정대'는 지자체에서는 처음으로 히말라야 8000m 거봉 14좌 완등이란 목표를 세우고 2006년부터 에베레스트 K2 브로드피크 마칼루 로체 등 5개 거봉을 올랐다.

참가 대원들이 점차 늘면서 원정대원으로서의 경험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을 방지하고 대원들의 노하우를 결집시키는 방안이 논의되던 끝에 친목단체인 '서미트 클럽'이 최근 결성돼 지역 산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7월 창립 발기인대회를 가진 '서미트 클럽'은 지난 8월 31일 부산의 진산 금정산에서 창립 기념산행을 가졌다.

클럽은 대한산악연맹 부산시연맹에서 '다이내믹 부산'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원정대를 구성해 파견한 '2006 에베레스트', '2007 K2 & 브로드피크', '2008 마칼루 & 로체' 그리고 '2001 초오유' 원정대원들을 주축으로 구성됐다.

초대 회장은 2004~2006년 부산연맹 20, 21대 회장을 연임한 하해룡(59·대륙) 부산연맹 명예회장이 맡았다. 회원은 2001년 초오유 원정대장 김복우(55·봐인), 2006~2008 다이내믹 부산 원정대장 홍보성(52·부경대OB)을 비롯, 조창래(49·대륙) 박종일(47·상봉) 김진태(45·상봉) 하영호(44·다솔) 신용우(44·청봉) 김창호(39·부경대OB) 김희수(37·한오름) 권경일(36·대륙) 박정용(32·부산빌라알파인클럽) 정용석(32·한오름) 유향미(30·동주대OB) 서성호(28·부경대OB) 박주원(28·다솔) 이세현(23·해양대) 등. 원정대 취재를 동행한 언론계의 이흥곤(국제신문) 김백수 임혁규(이상 KNN)도 포함됐다.

서미트 클럽은 해외 거봉 등반의 인재풀외에도 고산등반과 도전 정신을 추구하는 청장년층을 위한 각종 등반 자료와 재정적 지원을 제공할 계획이다.
문의 박종일 총무(010-5780-3939)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사진 제공=곽수웅 대륙산악회 고문

  
   
   
 
 
 



최근 떠오르는 경주 포항 지역 억새 산행지
10여 년 전 문닫은 옛 오리온목장 자리
짧은 코스 3시간 남짓, 긴 코스 5시간 50분
1시간 걸리는 계곡은 만추 단풍으로도 유명 

최근 경주 포항 지역에서 억새 산행지로 가장 유명한 경주 무장산은 보문단지와 덕동호 인근에 위치해 있어 많은 산꾼들이 즐겨 찾는다.

 늘 새로운 산을 갈망하는 산행팀. 이번 주는 최근 경주 포항 지역에서 억새 산행지로 떠오르고 있는 경주 무장산을 소개한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도 표기돼 있지 않은 무장산은 포항 오어사를 품은 운제산과 경주 토함산을 잇는 이른바 운토종주길상의 그냥 스쳐 지나가는 624봉으로 불리다 지난해 한 산꾼이 정상의 조그만 돌에 '무장산'이라고 적은 이후 지금까지 '무장산'으로 통용되고 있다. 지금은 돌 대신 '경주 무장산 624m'라고 적힌 세로 모양의 나무판이 걸려 있다.

그렇다고 '무장산'이 전혀 근거없는 이름은 아닌 듯하다. 바로 이 산 중턱에 무장사지 삼층석탑이라는 보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무장산은 무장사에서 비롯된 이름인 셈이다.
  
무장사는 어떤 절이었을까. '투구 무(), 감출 장(藏) 자를 쓰는 무장사(藏寺)는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삼국을 통일한 후 투구 등 병기를 묻은 곳이라고 삼국유사에서 일연은 적고 있다. 병기가 필요없는 평화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태종무열왕의 결연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경주시 암곡동에 위치한 무장산이 억새 산으로 변모한 것은 10여 년 전부터. 지난 1970년대 초부터 산 정상부에 젖소를 키우던 오리온목장이 1996년 문을 닫으면서 그 너른 초지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차츰 억새군락지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망도 빼어나 발아래 보문단지, 포항 앞바다 철강단지 그리고 단석산 토함산 동대봉산 함월산 운제산 등 경주 포항의 웬만한 산들은 죄다 확인 가능하다.

산행은 경주 암곡동 왕산마을~암곡펜션 입구~입산통제소(산불관리초소)~무장사지 삼층석탑~억새군락지(옛 오리온목장)~무장산 정상~폐비닐하우스 앞 갈림길~안부~성황재 갈림길~잇단 전망대~664봉(삼각점)~650봉~안부 갈림길~황룡사지·동대봉산 갈림길~동대봉산 갈림길~임도~출입문~상수원 보호구역 초소~왕산마을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5시간30분. 산행은 크게 계곡 억새군락지 숲길 등 세 부분으로 구분돼 재미 또한 적지 않다.


      
 들머리는 암곡동 왕산마을. 정류장에서 내려 마을 이정석과 암곡소망교회를 지나 포장로를 따라간다. 갈림길에선 우측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어 길 우측으로 보이는 상수원보호구역 초소 쪽이 원점회귀를 위한 하산길이다.

본격 들머리. 무장사지 삼층석탑 안내판과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옛 오리온목장까지는 무장골이라는 계곡길을 거쳐야 한다.

10여 분 뒤 '암곡펜션'이라 적힌 입간판이 안내하는 우측으로 내려가 잠수교를 건너면 이내 암곡펜션 입구. 이제 계곡과 나란히 직진만 하면 된다. 두 번의 계류를 건너면 산불관리초소와 함께 '무장사지 삼층석탑 2㎞'라 적힌 안내판이 보인다. 그 옆에는 '멧돼지 출몰지역'이라는 안내문이 눈길을 붙잡는다.

널찍한 임도 수준의 외길로, 무장골이라 불리는 계곡길을 따라 걷는 이른바 계곡산행이다. 행정구역상 경주시에 속하는 이 계곡은 수려한 경관에 11월초까지 단풍이 울긋불긋 아름다워 억새와 단풍을 동시에 만끽하려는 산꾼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계곡길엔 볼거리도 적지 않다. 물가에는 갈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길섶에는 형형색색의 들꽃들이 수줍은 듯 예의 고개를 숙이고 있다.

  
폭우로 인한 계곡 범람으로 간혹 포장로에서 떨어져 나온 부분과 여러 개의 관로가 널브러져 있긴 하지만 그건 일부일 뿐 계곡을 감싸고 있는 빽빽한 수림과 1000m급 명산의 계곡에 견줘도 전혀 뒤질 게 없는 너른 소와 기암괴석은 산꾼들의 발길을 때때로 멈추게 한다. 물도 얼마나 맑은지 지리산 어느 청정산골물이 안 부럽다.

이창우 산행대장은 "해발 600m대의 산, 그것도 경주시에 위치한 조그만 산이 품은 계곡치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운치있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무장사지 삼층석탑을 알리는 팻말 100m쯤 전에는 길 아래로 협곡이 숨어 있기도 하다.

들머리에서 '무장사지 삼층석탑 80m'라고 적힌 팻말까지는 47분. 발아래 우측 계류를 건너 산허리길로 산모롱이를 돌면 '무장사 사적비 이수 및 귀부'와 '무장사지 삼층석탑'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 있다.

무장사지 삼층석탑.

무장사 사적비 이수 및 귀부.

작지만 아담하고 정겨운 삼층석탑과 이 터가 신라 때 무장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아미타불조상사적비의 이수 및 귀부를 잠시 둘러본 후 무장산 억새군락지로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본격 억새군락지로 올라서다.

멧돼지가 많은가 봅니다.

   
  20분이면 정면으로 시야가 트이며 능선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지만 제대로 된 억새군락지는 아직 보이질 않는다. 곧 만나는 갈림길에선 반듯한 왼쪽으로 간다. 잡풀을 헤치고 나아가면 왼쪽에 다 쓰러져가는 귀곡산장을 떠오르게하는 폐건물이 을씨년스럽게 홀로 서 있다. 이 건물을 지나면서 등로는 오른쪽으로 휜다. 이때부터 본격 능선길이 시작된다.

'멧돼지 출몰지역'이라 적힌 팻말을 지나 무명봉을 살짝 넘으면 정면으로 산사면 전체가 억새인 듯 누런빛이 투명한 가을하늘에 투영된다. 이때부터 목장길을 따라 억새군락지를 따라 걷는다. 여느 억새와 달리 이곳 억새는 키가 크다. 해서 한줌 실바람이라도 스치면 파르르 몸살을 앓듯 서럽도록 아름답다.

옛 목장의 폐 막사가 군데군데 보입니다.

무장산 억새가 유난히 키가 큽니다.

햇빛을 받으면 눈이 부실 정도로 화사하고 역광에 반사되면 금빛으로 이내 옷을 갈아 입는다. 억새만큼 변화무쌍한 들풀이 고금천지에 또 어디 있을까.

이어지는 억새오름길. 길 좌측 아래엔 대여섯 동의 폐막사가 보인다. 지형학적으로 크게 보면 폐막사 쪽 너른 터는 산상 분지인 듯하다. 올라올 때의 무장골물은 보문단지의 덕동호로 유입되는 반면 폐막사 뒤 계곡물은 포항 오어지로 들어갈 듯싶다.


초록의 이끼류가 낀 억새길을 따라 가다 보면 우측으로 피뢰침이 달려 있는 철주가 보인다. 그 지점이 무장산 정상이다. 도중 우측으로 철강단지가 있는 포항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무장산 정상은 뜻밖에 너른 터. '무장산'이라 적힌 세로의 나무판과 피뢰침과 작은풍향계가 붙은 철주가 서 있다. 마주보고 서 있는 봉우리가 산행팀이 발굴한 동대봉산이다.

다시 왔던 길로 내려선다. 시경계선으로 좌측은 포항, 우측은 경주땅이다. 우측으로 보문단지와 소금강산 구미산이 확인된다.

 9분 뒤 폐비닐하우스 앞 갈림길. 우측 억새길로 가면 무장골 입구로 원점회귀가 가능한 반면 산행시간이 너무 짧다. 산행팀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6분 뒤 만나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잡목숲을 헤치고 뚫으면 제대로 된 오름길. 이번 산행에서 만나는 첫 산길다운 길이다. 잠시 후 우측 숲사이로 무장산과 억새밭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내 갈림길. 좌로 내려서면 안부에 닿고 여기서 5분쯤 더 가면 삼거리와 만난다. 직진할 경우 능선을 따라 십자안부에 내려서면 추령 또는 성황재 방향이고, 우측은 계곡을 거쳐 황룡사지로 이어진다. 참고하길.

산행팀은 삼거리에서 우측길로 향한다.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모처럼 걷는 산길다운 산길이다. 쓰러진 소나무 지점에선 시야가 트인다. 정면으로 호미지맥으로 천년고찰 기림사를 품은 함월산이 보인다.

기림사를 품은 함월산, 골굴사를 품은 백두산, 그리고 토함산이 확인된다.


산사태가 난 지점을 지나면 앞서 본 조망을 정리해볼 수 있는 멋진 전망대에 올라선다. 좌측 뒤론 무장산과 철강공단이 있는 포항 앞바다, 정면으론 함월산과 우측으로 골굴사를 품은 백두산과 토함산이 한눈에 펼쳐진다.

삼각점이 위치한 664봉(산길에서 우측으로 40m쯤 떨어져 있음)을 우회해 내려서면 안부에 닿고 여기서 4분쯤 오르면 약간 너른터에 올라선다. 지도상의 650봉이다. 뒤돌아보면 무장산을 기점으로 왼쪽 뒤로 시루봉과 운제산이, 우측으론 방금 지나온 664봉이 확인된다.

머리 뒤로 방금 지나온 무장산과 억새밭이, 그 왼쪽 뒤로 포항 쪽 시루봉이 확인된다.

무장산 우측 뒤론 희미하지만 포항 앞바다 철강공단이다.


이어지는 내리막길. 9분쯤 뒤 소나무 아래 전망대에 닿는다. 정면으로 동대봉산과 그 우측으로 호미지맥 분기봉이 보인다. 여기서 4분이면 안부 갈림길에 닿는다. 반듯한 왼쪽길로 내려선다. 3분 뒤 갈림길. 좌측은 황룡사지 방향, 산행팀은 우측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 길은 동대봉산 왕산마을로 각각 연결된다. 8분 뒤 동대봉산 왕산마을 갈림길. 일종의 안부로 V자 소나무가 서 있다. 좌측 동대봉산 방향 대신 우측 왕산마을 쪽으로 내려선다. 쓰러진 나무를 지나면 역시 갈림길. 좌측은 덕동(호) 방향, 산행팀은 직진하며 능선으로 올라선다.

포근한 숲길. 남쪽인 경주에선 단풍은 아직 멀었다.

산행은 이제 막바지. 봉우리 정점에서 반듯한 길 대신 좌측으로 내려선다. 두 길 모두 아래 임도에서 만나므로 어느 길로 가도 상관없지만 좌측이 능선길이라 굳이 이 길을 택했다.

하산은 임도길. 사진상의 좌측은 들머리 쪽인 왕산마을, 우측은 덕동호 방향이다.

5분이면 임도로 내려선다. 15분 뒤 오래 전 덕동과 왕산을 넘어다녔던 것으로 보이는 고갯마루에 닿고, 여기서 차량통제 출입문까지는 34분 걸린다. 이어 10분 뒤 우측 표고버섯 재배장과 좌측 운수암을 지나 상수원보호구역 초소에 닿고 여기서 왕산마을까지는 5분 걸린다.

날머리인 차량통제 출입문.

◆ 떠나기 전에 - 덕동호나 황룡휴게소로도 하산 가능

지난 1970년대 초 동양그룹이 경주시 암곡동에 148만5000㎢(약 45만 평) 규모로 조성한 오리온목장은 1980년대 초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5공 정권이 단행한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 강제매각 조치에 의해 충청도 음성의 모 축산회사로 넘어갔다. '오리온'이라는 이름은 초코파이를 만드는 동양그룹의 오리온제과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음성의 모 축산회사는 이후 목장을 계속 운영하다 1996년초 문을 닫았다.

재미있는 점은 문을 닫게 된 계기이다. 목장을 운영하던 당시에는 산행팀이 오른 계곡에 포장이 돼 있어 차가 다녔다. 하지만 이 진입도로는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유실되고 심할 경우에는 아예 포장로의 상당 구간이 끊겨버려 유지 및 보수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나와 결국 문을 닫게 됐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오리온목장과 이웃한 지점, 즉 왕산마을에서 직진하면 오리온목장이지만 좌측으로 가면 오리온목장보다 규모가 더 큰 목장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한다. 이름은 대단위목장. 이 또한 오리온목장과 비슷한 시기에 생겨 역시 비슷한 시점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과거 탄광으로 유명한 봉명그룹이 소유했지만 지금은 (주)태영이 소유하고 있다 한다.

들머리 왕산마을 인근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장이었다고 한다. 왕산마을 못가 암곡가족수련원 근처 폐가가 바로 그것으로,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포로시설물로 치열한 전투장면의 촬영이 이뤄졌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산행 막판 동대봉산 분기봉에서 산행팀은 원점회귀를 위해 우측 왕산마을로 하산했다. 하지만 좀 더 산행을 즐기려면 좌측 동대봉산으로 가서 덕동호 인근 유리방마을이나 황룡휴게소인 사시목 방향으로 내려서면 훨씬 더 깔끔한 산행이 될 수 있음을 밝혀둔다.


◆ 교통편 - 100% 원점회귀 코스여서 승용차 편리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경주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3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000원. 들머리 암곡동 왕산마을에 가기 위해선 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 정류장에서 18번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오전 6시15분, 8시5분, 9시55분, 11시45분. 1500원. 날머리 왕산마을에서 터미널행 버스는 오후 4시, 5시40분, 7시40분, 8시45분(막차)에 있다. 경주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10분마다 있으며 막차는 밤 9시50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주IC~포항 울산 직진~보문관광단지 우회전~보문관광단지 천북 좌회전~포항 천북 좌회전(경주생활체육공원)~천북 암곡~암곡 덕동~암곡휴게소(암곡노인회관)~왕산마을 순.

글 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청량산 최고의 전망대인 어풍대에서 바라본 청량사. 경북 오지인 봉화에 숨어 있어도 발품을 팔아 찾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청량산(淸凉山·870m)은 경북 최북단 봉화의 오지에 숨은 명산이다. 평범한 외형과 달리 품속으로 직접 들어서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집채만한 절경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이어진다. 단풍이 절정인 요즘엔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바위산의 전형인 월출산이나 월악산에 비해 덩치는 비할 바 못 되지만 수많은 암봉들이 몸을 비벼대며 서 있는 자태는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인상적이다. 또 암봉 사이로 층층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늘푸른 소나무와 울긋불긋한 단풍의 오묘한 조화는 조물주가 의도를 갖고 빚어도 이토록 아름답게는 못하리라.

 만추의 단풍으로 특히 유명한 청량산은 산꾼들에게 흔히 ‘육육봉’으로 불린다. 주봉인 장인봉(의상봉)을 비롯 경일봉 금탑봉 선학봉 연화봉 자소봉 탁필봉 축융봉 등 큰 봉우리가 모두 12개이기 때문이다. 육육봉 외에 청량산에는 김생굴 등 4개의 굴과 어풍대 원효대 등 전망대나 수도처로 사용된 12개의 대(臺) 그리고 총명수 등 4개의 샘터가 유명하다.

 산행 도중 시야에 들어오는 백두대간 연봉들과 태백에서 발원한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의 굽이치는 물줄기도 자뭇 감동적이다.

 산행은 매표소~입석~응진전~총명수~어풍대~산꾼의 집~청량정사~청량사~청량정사~산꾼의 집~김생굴~경일봉~자소봉(보살봉)~탁필봉~뒤실고개~정상(의상봉)~두들마(민가)~폭포슈퍼~매표소 순. 청량산 산행의 백미인 청량사를 코스에 넣기 위해 일부 지점이 겹쳐 산행시간은 6시간 정도로 길다. 하지만 산행 도중 체력이 부칠 경우 청량사로 향하는 탈출로가 곳곳에 열려 있어 큰 부담은 없다. 



 매표소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삼거리. 가파른 왼쪽 포장로는 바로 청량사 가는 길, 산행팀은 직진한다. 10분 뒤 만나는 3m 높이의 검은 입석 맞은편이 들머리다. 입구에 등산안내도와 ‘청량사, 응진전'이라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울퉁불퉁한 돌길로 오른다.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와 굴참, 생강나무가 반기고 우측에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이어진다. 300m쯤 가면 갈림길. 왼쪽은 청량사, 산행팀은 오른쪽 응진전 방향으로 간다. 통나무 계단길로 15분 오르면 외청량사라 불리는 응진전. 응진전 뒤 기암괴석이 금탑봉이고, 전방에도 깎아지른 절벽이다. 의상 대사가 창건한 기도 도량인 응진전은 공민왕을 따라 피난 온 노국공주가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했던 곳. 금탑봉 꼭대기에는 바람불면 흔들린다는 동풍석(動風石)이 위태롭게 놓여 있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는단다.

응진전을 지나 산모롱이를 돌면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이 마시고 정신이 맑아졌다는 총명수(聰明水)가 있고, 이어 청량산 최고의 전망대인 어풍대가 기다린다. 수십 길 낭떠러지인 어풍대에 서면 청량사를 가운데 두고 왼쪽에서부터 연화봉 자란봉 뒤실고개 탁필봉 자송봉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우측 낭떠러지에는 형형색색의 단풍나무가 위아래로 각각 걸려 있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산꾼의 집에서 청량사로 내려가는 나무계단. 주변 경치가 무척 아름답다.

청량사에서 바라본 축융봉. 운치있는 소나무 아래 너른터에선 매년 가을 산사음악회가 열린다.
청량사 본전인 유리보전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은 전통 닥종이로 만든 지불(紙佛)을 도금한 것이다.
신라의 명필 김생이 글공부를 했다고 전해오는 김생굴.

이어지는 산길. 4분 뒤 갈림길. ‘산꾼의 집'과 ‘청량정사(淸凉精舍)'를 잇따라 지나 청량사로 향한다. 본전 격인 그 유명한 유리보전(琉璃寶殿)을 둘러보고 왔던 길로 되돌아 나온다. 이어 신라의 명필 김생이 글공부를 했다는 김생굴을 본 뒤 경일봉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보살봉으로도 불리는 자소봉.


이때부터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10분쯤 오르면 주능선에 닿고 20분이면 경일봉(750m)에 선다. 지금부턴 청량사를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오름길과 내리막을 두 세 번 반복하고, 철계단과 집채만한 기암괴석을 넘고 에돌면 자소봉(840m). 50분 소요. 30m쯤 돼 보이는 수직 절벽이라 난간이 둘러쳐져 있다. 조망이 끝내준다. 정상석을 바라보고 정면 동쪽엔 일월산, 북으로 소백산 방면 백두대간, 남으로 축융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청량사 주봉인 의상봉을 향해 오르는 계단길. 

철계단으로 내려와 우측 우회길로 6분 정도 가면 탁필봉(820m). 정상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길섶에 정상석이 서 있다. 여기서 8분 뒤 연적봉. 정상석이 없다. 다시 급경사 철계단을 내려서면 뒤실고개. 체력이 부칠 경우 대개 여기서 청량사로 하산한다.
뒤실고개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수직절벽. 왼쪽으로 크게 에돌면 다시 큰 봉우리가 버티고 있어 한 번 더 암봉을 우회한다. 이번엔 바위와 바위 사이로 난 좁은 급경사길로 오르면 안부에 닿는다. 여기서 한 번 더 내리막과 오름길을 반복하면 청량산 최고봉인 의상봉(870m)에 선다. 주변 숲에 막혀 조망은 썩 좋지 않다. 서쪽인 왼쪽으로 100m쯤 가면 난간이 설치돼 있는 전망대가 있다. 붉은 저녁 노을 아래 굽이쳐 흐르는 영남의 젖줄 낙동강의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의상봉에서 약간 떨어진 전망대에서 바라본 노을 속의 낙동강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하산은 전망대에서 왼쪽으로 내려선다. 급경사길이다. 민가인 두들마까진 전망대에서 30분쯤 걸리고, 두들마에서 포장로를 따라 청량폭포 앞 폭포슈퍼까지는 10분이면 충분하다.

# 떠나기전에 

청량산은 경북 봉화군과 안동시의 경계에 낙동강을 끼고 솟아 있다. 맑아서 눈이 부실 것 같은 청량산은 12연봉을 두고 있다.

퇴계 이황은 ‘청량산가’에 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탁립봉 금탑봉 축융봉을 청량산 육육봉으로 노래하여 애찬했다.

그리고 어풍대 밀성대 풍혈대 학소대 금강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는 청량산의 12대(臺)이며, 김생굴 금강굴 원효굴 치원굴 등 4굴에서는 당대 선각자들이 수도를 했다. 김생은 김생굴에서 9년을 서도에 전념하여 스스로를 명필이라 여기며 하산을 준비했다. 이때 9년 동안 길쌈을 했다는 여인이 나타나 솜씨를 겨루어 보자고 말하자 컴컴한 어둠속에서 솜씨를 겨뤄본 결과는 참패였다.다.

이때 김생은 자신의 솜씨가 그 여인에 미치지 못함을 깨닫고 1년을 더 수학한 뒤 하산을 했다고 한다.

청량산은 고려말 홍건적의 난을 피해 청량산으로 들어온 공민왕의 흔적이 남아있다. 산성을 쌓을 때 다섯 마리의 말이 수월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인 오마대와 군율을 어긴 군졸을 절벽에서 밀어 처형했다는 밀성대 등이 그것.  

# 교통편 - 안동행 시외버스 하루 5차례 운행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안동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 9시 등 1일 5회 출발한다. 1만2천3백원. 3시간 걸린다. 안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청량산행 버스는 오전 5시50분, 8시50분, 10시, 11시50분에 출발한다. 1천5백40원. 청량산에서 안동행 버스는 오후 4시20분, 6시50분(막차)에 있다.

안동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오후 4시35분, 7시25분(막차)에 있다. 막차를 놓쳤다면 동대구로 가서 부산행 기차를 탄다. 안동에서 동대구행 버스는 2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막차 시간은 오후 9시20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대구 칠서 방향)~화원IC~서대구IC~(혹은 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서안동IC~34번 국도~35번 국도~청량산 도립공원 순으로 가면 된다.

# 청량산에서 이 사람 모르면 간첩-산꾼의 집 초막 이대실 씨.

"약차 한 잔 들고 쉬었다 가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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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봉화 청량산을 좀 안다는 사람이 ‘산꾼의 집'을 모르면 거짓말이고, 청량산을 산행한 사람이 ‘산꾼의 집'에서 약차 한 잔을 마시지 않았다면 그 날 산행은 헛한 것이다. 바로 청량사 인근 ‘산꾼의 집'에서 2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등산객들에게 약차와 쉼터를 제공한 초막(草幕) 이대실(65) 씨를 두고 한 말이다.

이 씨가 등산객들에게 공양을 하는 차는 구정차. 당귀 산수유 진피 오가피 계피 감초 등 9가지 약재가 들어간다. 단풍철의 경우 평일에는 2000잔, 주말에는 4000잔, 최고 절정기에는 1만 잔까지도 대접했단다.

‘산꾼의 집'은 청량사에서 응진전 가는 길에 있다. 걸어서 5분. 바로 옆이 오산당이다. 언제부터인가 청량산 도립공원에서 ‘산꾼의 집'이란 이정표를 달아줄 정도로 유명인사로 대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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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독특한 산꾼의 집 화장실 문(왼쪽)과 청량사에서 바라본 축융봉. 운치있는 소나무 아래 너른 터에선 매년 가을 산사음악회가 열린다.


이 씨가 청량산과 인연을 맺은 건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원효대사와 관련된 책을 읽었어요. 근데 청량산에 있는 청량사를 원효대사가 창건했대요. 그래서 무작정 이곳을 찾았어요."
당시 청량사는 불당과 요사채만 달랑 있었고, 노비구니가 홀로 지키고 있더란다. 그냥 이유없이 청량사가 맘에 들어 그 비구니에게 “머리를 깎아달라"고 했다가 크게 호통만 듣고 발길을 돌렸다.

“그때 결심했지요. 비록 지금은 이렇게 떠나지만 언젠가는 이곳에서 살거라고."
고교 졸업 후 연극영화과를 다닌 그는 영화한다고 아버지 몰래 과수원을 팔아 영화를 제작했지만 투자비만 날렸다.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을 한 그는 경북 영양에서 사진관 조수로 취직,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이후 돈을 제법 모아 사진관에 이어 예식장도 인수했다.

산에도 열심히 다녀 전국의 산 2000곳을 오르내렸다. 해외원정도 다녀왔다. 이후 봉화 안동 영양 등을 아우르는 대한산악연맹 경북북부지역연맹을 만들었다. 그래도 뭔가 허전했다. 먹고 살만 하니까 다시 청량산이 생각난 것이다. 지난 91년 아내와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아내에게 이 사실을 고백했다. 아내는 고맙게도 날 이해해줘 붙잡지 않았다.

이듬해 그는 부인과 아들 며느리에게 평생 모아 이룩한 예식장 웨딩숍 미용실 뷔페를 각각 물려주고 맨 몸으로 이곳 청량산으로 들어와 줄곧 혼자 지내고 있다. 항상 머리엔 뚜껑없는 벙거지를 쓰고 개량한복을 입은 그를 두고 혹자들은 ‘이 시대의 기인'이라 부른다.

소리꾼이자 도공 산악인 시인 서예인이며 대금 가야금을 연주하고 장승도 깎는다. ‘산꾼의 집'에서 들려오는 대금 및 가야금 산조는 그가 연주한 곡이며 이곳에 전시된 도자기와 글씨 그림 시는 모두 그의 작품이다. 4년 전 대한민국종합미술대전 선서화 부문에선 대상을 받았으며 각종 소리마당이나 지자체 축제에 단골 게스트로 초청받는다. 청송교도소 정신교육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15년간 청량산에서 무려 100여 명의 목숨을 구해낸 전문 산악인이기도 하다. 6년전엔 200m 절벽에 메달린 초등학생을 119구조대원도 몸을 사리는 가운데 과감히 몸을 던져 구해내기도 했다.
그는 “산은 나를 물속에 달처럼 살다 가라한다"며 모든 것을 초연한 듯 말하면서도 "딴 그리움은 접을 수 있어도 손주에 대한 그리움은 접을 수가 없다"며 인간적인 고뇌도 비쳤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월악 설악과 함께 '3대 악산', 겁먹지 마소
숨가쁜 사다리병창 코스 이 악물고 올라
비로봉 대형 돌탑 3기돌며 사방 눈요기
하산길 칠석폭포 물줄기 피로 씻어주네


 산행 초입 만나는 단풍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정상 가는 도중 바라본 치악산. 

강원도 원주시의 동쪽에 남북으로 병풍처럼 길게 뻗은 치악산(1288m).
지난 198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 산의 원래 이름은 적악산(赤岳山).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무성한 활엽수림 붉은 단풍의 자태가 워낙 아름다워 옛 선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지금의 치악산이란 이름은 뱀에게 먹힐 뻔한 까투리를 구해준 선비가 나중에 그 꿩의 보은으로 생명을 건졌다는 꿩의 보은설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붉을 적(赤)' 자가 ‘꿩 치(雉)' 자로 대체된 것이다.

치악산은 흔히 설악 월악과 함께 험하기로 악명높아 ‘3악(岳)'으로 불린다. 한번쯤 경험해본 산꾼들이 오죽했으면 ‘치가 떨리고 악에 받치는 산'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까.

치악산에서 경관이 가장 빼어나다는 사다리병창의 출발점. '치악8경' 중 하나인 이곳은 좌우가 모두 낭떠러지인 데다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절묘한 조화를 이뤄 발길을 멈추게 한다.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주봉인 비로봉이다.

이 우스갯말이 나온 진원지는 바로 비로봉 북사면 등산로인 사다리병창 코스. ‘병창'이란 ‘절벽'의 강원도 사투리. 사다리병창은 사다리처럼 경사가 급한 절벽같은 길이란 의미이다.

국립공원 치악산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치악산의 연간 탐승객은 약 50만 명. 이 중 절반인 25만 명이 이 지옥같은 사다리병창 코스를 오른다. 고행길을 이겨냈다는 뿌듯함과 자부심 그리고 땀흘린 대가로 주어지는 환상적인 조망이 그 이유이리라.

산행팀도 별 고민없이 사다리병창 코스를 택했다. 소문만큼 힘겨웠지만 월악산 월출산 정도를 다녀온 산꾼이라면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더욱이 단풍이 한창일 때 찾으면 그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돼 어떻게 올랐는지 모르고 정상에 닿게 된다.

산행은 구룡주차장~구룡매표소~황장금표~구룡사 원통문~구룡사~구룡폭포(용소)~대곡야영장~생태학습원~세렴통제소~세렴폭포~사다리병창·계곡 갈림길~사다리병창~상봉(비로봉)~산불초소~칠석폭포~사다리병창·계곡 갈림길~구룡주차장 순. 순수 걷는 시간은 5시간 안팎. 산행로 입구에선 5~6시간 걸린다고 적혀 있다.



황장금표(黃腸禁標).

매표소에서 5m쯤 가면 왼쪽 둔덕에 눈길끄는 팻말이 보인다. 황장금표(黃腸禁標)다. 이 일대는 조선시대 당시 궁중용 재목으로만 쓰던 황장목이란 소나무 산지여서, 이 나무를 함부로 베어 가지 말라는 경고의 표시이다. 자세히 보면 바위에 음각해 놓았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아름드리 황장목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구룡사 원통문과 구룡사 그리고 매점을 잇따라 지나면 구룡폭포가 힘찬 물소리를 쏟아내고 있고, 바로 밑에는 맑다 못해 시퍼렇기까지 한 용소가 발길을 붙잡는다. 단풍이 절정일 때 한 화면에 담으면 영락없는 한 폭의 수채화다. 적갈색의 단풍과 흰 포말 그리고 시퍼런 용소. 생각만 해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울창한 숲과 시원한 계곡은 계속 이어진다. 대곡야영장과 자연해설센터를 지나면 세렴통제소. 코스가 험난하다보니 오후 2시(동절기 오후 1시) 이후에는 사다리병창 코스의 산행을 통제하는 곳이다. 물론 산행 이외의 목적은 가능하다. 여기까지 대략 50분.

세렴통제소를 지나면 갈림길. 직진하면 세렴폭포, 오른쪽 다리를 건너면 본격 산행길. 산행팀은 100m쯤 떨어진 세렴폭포를 잠시 구경한다. 세렴폭포는 폭포라 부를 만큼 그리 위압적이지 못하다.

치악산 단풍은 웬만한 단풍 명소와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로 갈림길. 우측은 나중에 내려오는 하산길, 산행팀은 왼쪽 급경사 나무계단길로 오른다. 그 유명한 사다리병창길이다. 각각 주봉인 비로봉까지 2.8㎞, 2.7㎞.

3㎞ 거리인 세렴폭포까지 50분 걸렸으니, 2.7㎞에 버거운 코스라 하니 1시간30분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3시간 정도 잡아야 함을 미리 밝혀둔다.
처음부터 숨이 가쁘다. 나무계단으로 기를 죽여 놓더니 곧바로 쇠난간을 쳐둔 돌계단길로 확인 사살한다. 잠시 숨 고를 틈을 주더니 이내 돌계단으로 몰아 넣는다. 20분 뒤 너른 터. 이정표를 보니 500m밖에 못왔다. 한숨만 나온다. 힘을 내라는 건지, 약을 올리는 건지 다람쥐가 기다렸다가 코 앞에서 달아난다. 이런 풍경은 산행 내내 계속된다.

10분 뒤 사다리병창. 해발 700m. 지금까지 몸풀기 과정이고, 여기서부터 본격 산행이라는 말에 다리가 풀렸지만 표정은 밝아진다. 붉게 물든 단풍이 보이기 시작한 때문이다.

이곳은 특히 좌우 모두 낭떠러지인 벼랑길인 데다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절묘한 조화를 이뤄 ‘치악 8경' 중 하나로 손꼽힌다. 저 멀리 비로봉까지 보여 포토 존으로 손색이 없다.

계속되는 나무계단과 돌계단. 곳곳에 이를 연결하는 쇠로 된 발받침대와 밧줄이 약방의 감초처럼 기다린다. 과연 사다리병창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발을 딛고 있는 지점이 만산홍엽을 연출하는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에워싸져 한층 발걸음이 가볍다.

‘비로봉 0.3㎞'를 알리는 마지막 이정표에서 숨을 돌린다. 해발 1170m. 잠시 위를 쳐다보니 침목계단에 이어 가파른 철계단이 기다린다. 이후에도 알고 보니 나무계단으로 연결돼 결국 정상까지 계단이다. 아! 무시무시한 계단이여.
정상에는 치악산 명물 중 하나인 대형 돌탑 3기가 있다. 순서대로 칠성탑 신선탑 용왕탑. 상봉의 장중함을 더해준다.
치악산 정상 비로봉에는 치악산 명물 중 하나인 대형 돌탑 3기가 서 있다. 
빼어난 산세와 화려한 단풍으로 치장한 만추의 치악산은 전국의 많은 산꾼들을 불러 모은다.

 비로봉에 서면 치악산의 봉우리는 죄다 확인된다. 칠성탑 피뢰침 뒤로 매화산과 천지봉이, 여기서 반시계 방향으로 헬기장이 있는 무영봉, 그 뒤로 삼봉 투구봉 토끼봉이 확인된다. 다시 반시계 방향으로 원주시가지를 지나면 향로봉과 남대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하산은 신선탑과 용왕탑 사이 계단으로 내려선다. 4분 뒤 산불초소 앞 갈림길. 직진하면 입석사 상원사 방향. 다시말해 향로봉 남대봉으로 이어지는 종주능선길이다. 산행팀은 오른쪽 세렴폭포 방향으로 향한다. 커다란 돌들이 깔린 급경사 너덜 같은 길이다. 아래로 쏟아진다는 표현이 어쩌면 적확할 듯하다. 발을 헛디디면 다칠 염려가 있으니 유의하자.

비로봉에서 산불초소를 거쳐 내려서는 나무계단 주변의 단풍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래도 울긋불긋 단풍이 숲을 덮고 있어 위안이 된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초록 이끼가 무성한 아름다운 계곡의 경관이 일품이다. 산행 시점에 거의 다다랐을 때 왼쪽 계곡에 시선을 붙잡는 폭포가 하나 보인다. 둥근 바위 사이로 흰 포말을 일으키는 물줄기가 수직으로 떨어진다. 칠석폭포다.

사다리병창 갈림길까지는 대략 1시간20분이면 닿는다. 이후부턴 왔던 길로 되돌아 간다. 구룡주차장까지는 50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 - 서둘면 당일치기도 가능…원조 안흥찐빵 맛 보길

연례행사인 강원도 단풍산행. 설악산은 무박2일 산행이 보편적이지만 오대산 치악산의 경우 무리하면 당일치기도 가능하다. 늦어도 오전 6시에는 떠나야 하며 최대한도로 시간을 아껴써야 함을 미리 일러둔다.

만일 여유있게 1박을 할 경우 국립공원관리공단(www.npa.or.kr) 홈페이지에서 치악산/교통과 숙박/음식점(숙박 겸용) 순으로 클릭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점심 도시락은 민박집이나 치악산 입구 식당에 부탁하면 된다.

비로봉 정상의 돌탑 3기는 20여년 전에 작고한 고 용창중 할아버지가 신의 계시를 받아 지난 1964에 시작해 1974년에 완성했다. 지지난해 태풍 매미때 무너졌지만 이후 헬기로 돌을 나르고, 시민들이 배낭에 돌을 담아 오르는 등 시와 시민들 그리고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일심단결해 수개월 만에 원상복구했다.

정상에서 만난 원주의 한 여성산꾼은 "고 용창중 할아버지가 탑을 쌓게 된 사연은 구룡사 인근 여자 화장실 문에 자세히 적혀있다"고 귀띔했다. 여성 산꾼들이여 확인하고 연락주시길.

또 한가지. 영동고속도로 새말IC로 나오면 횡성군 안흥면을 거쳐 치악산으로 연결된다. 거리에는 안흥찐빵 간판이 자주 보인다.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판매하는 안흥찐빵의 원조가 바로 이곳이다. 꼭 맛을 보자.


# 교통편 - 원주터미널서 41번 버스타고 구룡주차장 하차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칠곡 춘천 방향)~영동고속도로(강릉 방향) 새말IC~안흥 치악산 구룡사 방면 우회전~원주 치악산 구룡사 방면 우회전~치악산 구룡주차장 순.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원주행 시외버스를 탄다. 오전 7시20분 첫 차를 시작으로 50분 간격으로 하루 14회 출발하며 막차는 오후 6시20분. 4시간20분 걸리며 요금은 1만9800원.

치악산 구룡주차장에 가기 위해선 원주터미널에서 나와 길건너 시내버스 41번을 탄다. 30분 간격으로 있으며 40분 걸린다. 950원. 원주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50분 간격으로 하루 14회 있다. 막차는 오후 7시50분.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설악에서 시작된 단풍이 적토마를 탄듯 하루가 다르게 남으로 치닫고 있다. 설악에게서 배턴을 이어받은 오대산 역시 선홍빛 불길을 태우고 있다.

한반도 남쪽 산하에서 단풍이 제일 먼저 시작되는 설악을 두고 흔히 산꾼들은 단풍산행의 고전으로 꼽는다. 하지만 국립공원 오대산도 알고 보면 설악에 버금가는 단풍 명소.
설악의 단풍이 웅장하고 화려한 산세에 걸맞게 큰 불길에 휩싸인듯 활활 타오르는 형상이라면 전형적 육산인 오대산 단풍은 품안에 안고 있는 울창한 숲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은은한 붉은 빛이 일품이다.

설악처럼 절승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단풍나무가 많지도 않은 오대산 단풍을 두고 혹자들은 오랜만에 나들이한 중년 여인의 성숙미라고 비유한다.

해발 1563m인 오대산은 주봉인 비로봉을 정점으로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 등 다섯 개의 연봉이 마치 연꽃 모양을 하고 있다. 이들 봉우리는 하나같이 모나지 않고 평평한 대지를 이루고 있어 오대산(五臺山)이라 부른다.

“오대산요, 거야 절하고 나무지요. 그래서 오대산 산행길을 명찰과 노거수의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순례길이라 부르지요."
상원사 주차장에서 만난 관리사무소 직원의 거침없는 오대산 예찬이다. 이어 “여기에다 단풍까지 지천에 널려 온 산을 울긋불긋 물들이니 이게 금상첨화가 아닐까요"라며 제법 그럴싸하게 묘사한다.

오대산은 원래 거목의 산이다. 산 어귀 월정사 진입로에 포진한 그 유명한 전나무숲이 이를 말해준다. 전나무 숲뿐 아니다. 주목과 여타 아름드리 수목들이 이뤄 놓은 숲은 산행 중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또 한 가지. 오대산은 우리나라 불교성지라 할 만큼 불교 유적이 많은 불도량이다. 국내 명산 중 오대산의 불법이 가장 흥할 것이라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 율사가 당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갖고 들어와 지은 적멸보궁과 월정사 그리고 상원사 중대 사자암 등은 오대산 산자락 전체에 불심을 전파하고 있다.

산행은 상원사 주차장~관대걸이~상원사~중대 사자암~적멸보궁~비로봉(정상)~잇단 헬기장~상왕봉~북대암 갈림길~임도~상원사 주차장 순. 3시간30분에서 4시간 정도 걸려 가족 산행지로도 적합하다.




단풍은 매표소를 지나 팔각 9층석탑으로 유명한 불교성지의 구심점인 월정사 입구부터 시작된다. 하나, 우선 눈길을 붙잡는 것은 하늘을 찌를 듯한 전나무숲. 천년고찰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는 전나무는 소문대로 ‘과연'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닐만 했다.
월정사 입구에서 들머리 상원사 주차장까지는 대략 8㎞. 너무 멀어 산꾼들은 대개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오대천 계곡 주변의 오색 단풍을 감상해야 하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차창 밖으로 타오르는 비경은 보는 이의 가슴까지 붉게 물들여 상원사 주차장에 도달할 때까지 잠시도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한다.

산행은 주차장에서 다리 건너 상원사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길 양편엔 전나무와 울긋불긋 단풍이 조화를 이루고 그 아래엔 ‘상원사' ‘적멸보궁'이라 적힌 등이 일렬로 걸려 있다.

곧 상원사 갈림길. 원점회귀 등산로지만 하산 땐 다른 길로 내려오기에 잠시 들르기를 권한다. 국보 제221호 문수동자좌상과 비천상이 조각된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은 빠뜨리지 말자.

다시 갈림길로 내려온다. 비로봉과 적멸보궁까지는 각각 3.1㎞, 1.4㎞. 국립공원이 거의 그렇듯 통나무로 만든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15분 뒤 중대 사자암 입구. 샘터에서 목을 축이자. 비탈진 산자락을 따라 5개의 축대를 쌓고 나서 그 위에다 집을 앉힌 계단식 건물이다. 입지가 암자의 형태를 결정지은 것. 자연을 건드리지 않고 배려한 듯한 건축이 돋보인다. 8년이나 걸린 불사라고 한다.

경사는 다소 완만해졌지만 계단길은 반복된다. 15분 뒤 적멸보궁 입구. 통도사 적멸보궁을 떠올리며 오르면 실망하니 큰 기대는 갖지 말자. 팔작지붕의 겹처마 집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앞마당에 있다는 그 유명한 용안수를 찾으니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계단 왼쪽에 있는 약수가 그것이란다.

오대산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계단.

오대산 적멸보궁.


적멸보궁을 지나면 비로소 산길 기분이 든다. 해발 1200m가 넘는 가파른 능선임에도 전나무와 소나무 숲이 싱그럽게 펼쳐지며, 여기서 좀 더 위로 올라서면 당단풍나무 떡갈나무 등이 오색 단풍으로 물들어 멋진 등산로를 선사한다. 이내 다시 계단이 이어지며 이 계단길의 종착역이 바로 정상인 비로봉이다.

오대산 주봉인 비로봉 정상에서 본 주변 산세. 북쪽 저 멀리 구름에 살짝 가린 설악산도 확인된다.


조망은 장쾌하기 그지없다. 가히 산의 바다다. 북으로 설악산 대청봉 중청봉에서 귀때기청봉으로 뻗친 서북릉이, 동으로 동대산 노인봉 황병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하산은 정상석 우측 뒤로 난 상황봉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좁다란 이 능선길 주변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산다는 주목 군락지. 이를 알려주듯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세운 주목 관련 안내판이 서 있다.

잇단 헬기장을 지나면 마냥 걷고 싶은 오솔길. 사실 짜증마저 나던 통나무 계단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다. 상왕봉은 비로봉에서 40여 분 거리.
이제부턴 내리막길.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아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30분쯤 뒤 북대암 갈림길. 임도 따라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왼쪽길 대신 오른쪽으로 열린 산길을 택한다.

예상외로 심한 내리막이 이어지는 이 길은 인적이 드문 데다 앞서 봐 온 단풍과 달리 색도 은은하고 고와 은근히 눈길을 끈다. 특히 열매를 맺은 다래나무가 등산로 내내 이어진다.
이렇게 30분 뒤 임도에 닿고, 여기서 상원사 주차장까지는 15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소금강 코스 8시간, 무박 2일 일정

지난 197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오대산은 진고개를 지나는 6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왼쪽(서쪽)에 월정사 지구와 오른쪽(동쪽)을 노인봉을 중심으로 하는 강릉의 소금강 지구로 크게 나뉜다.

월정사 지구는 상원사~적멸보궁~비로봉~상왕봉~상원사로 원점회귀하는 4시간 정도의 육산 코스로, 유서 깊은 명찰 월정사를 비롯 상원사 적멸보궁 등 불교문화유적이 즐비하다. 반면 소금강 코스는 기암이 어울린 계곡 탐승지의 전형으로, 삼선암 귀면암 등의 기암과 금강연 무릉계 등의 소와 담, 그리고 구룡폭포 낙영폭포 등의 폭포가 산재한 천하절경지다. 비로봉 코스는 부산서 당일치기가 가능하지만 소금강 코스는 8~9시간 걸리는데다 원점회귀가 불가능해 무박2일 내지 1박을 해야 한다.

오대산에는 놓쳐서는 안될 문화재와 유물이 적지 않다.

우선 오대산 제1관문격인 월정사. 경내 한 가운데에는 육중하면서도 단아한 인상을 주는 국보 48호인 팔각 9층석탑이 절의 분위기를 장중하게 만들고 고찰다운 풍모를 느끼게 해준다. 일주문에서 절까지 이어지는 전나무숲길도 운치가 있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산행 초입에 만나는 상원사도 마찬가지. 월정사 적멸보궁과 함께 신라 선덕여왕때 자장 율사가 창건했다.

국보 36호 상원사 동종.

경내에는 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 신종보다 45년이나 앞선 725년에 주조된 국보 36호 동종이 있다. 비천상 등 문양이 섬세하고 우아하다. 하지만 지금은 종각에 갇혀 있는 상태라 문 틈으로 겨우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상원사 대웅전 내 안치된 국보 221호 문수동자좌상.


대웅전 내 안치된 국보 221호 문수동자좌상도 꼭 챙기자. 상원사 참배객들이 가장 정성을 드려 기도하는 문수동자좌상은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전형적인 동자머리에 앳된 얼굴, 천진스런 미소 등이 비교적 사실에 가까워 조선 초기 궁정조각양식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괴질에 걸린 조선 세조와의 인연설로도 유명하다.

산행중 만나는 적멸보궁도 빠뜨리지 말자.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평차 법흥사, 영축산 통도사와 함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비로봉에서 굽이쳐내린 산줄기가 병풍처럼 주위를 감싸안고 있는 중앙에 우뚝 솟아있어 예부터 용이 여의주를 품은 형국이라 불리고 있다. 용의 눈에 해당되는 용안수는 절로 오르는 계단 좌측에 위치해 있다.   
상원사 입구에는 작은 비석 같은 관대걸이가 있다. 얼핏 버섯을 닮은 관대걸이는 조선 세조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온다.

조선 세조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관대걸이.


전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세조가 상원사에서 기도하던 어느날, 오대천의 맑은 물이 너무 좋아 혼자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한 동승에게 등을 밀어줄것을 부탁했다.
목욕을 마친 세조는 동승에게 "어디 가든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 고 하니 동승은 미소를 지으며 "어디 가든지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하지 마십시요."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세조가 놀라 주위를 살피니 동승은 간 곳 없고 어느새 자기 몸의 종기가 씻은듯이 나은 것을 발견했다. 렇듯 문수보살의 가피로 불치병을 치료한 세조는 크게 감격하여 화공을 불러 그때 만난 동자의 모습을 그리고, 목각상을 조각하게 하니 이 목각상이 바로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이며, 목욕을 할때 관대를 걸어두었던 곳이 지금의 관대걸이라고 전해온다.
 
# 교통편 - 부전역 日 1회 원주行 무궁화호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나와 6번 국도를 타고 가다 '월정사' 내지 '오대산' 이정표를 보고 가면 된다.

대중교통은 아주 불편하다. 부전역에서 원주행 무궁화호 열차가 밤 10시15분 하루에 한번 출발한다. 2만1700원. 도착시간은 다음날 새벽 4시49분. 원주역(033-746-7544)에서 원주시외버스터미널(033-746-5223)까지는 택시 기본요금. 원주터미널에서 진부시외버스터미널(033-335-6307)행 버스는 오전 7시, 7시50분, 9시15분, 9시50분, 10시5분, 11시, 11시15분, 11시35분에 출발한다. 4800원. 진부터미널에서 산행 들머리인 상원사행 버스는 오전 8시30분, 9시40분, 10시50분, 11시50분, 낮 12시50분에 있다. 2000원.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여행의 또하나의 즐거움은 온천욕.
여행지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 독특한 온천이 있다면 반드시 들러 피로를 풀고 가는 것도 여행을 잘 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거창 가조면에 위치한 백두산온천이나 낙안읍성민속마을로 유명한 순천 낙안읍의 낙안온천은 물이 아주 미끄러워 비누가 필요없을 정도다. 문경온천도 독특한 점에선 빼놓을 수 없는 온천이다.
 문경온천은 문재새재와 함께 문경관광의 양대 축이라 할 만큼 인기가 높다. 위치 또한 문경새재에서 불과 3㎞ 거리에 위치한데다 온천을 중심으로 신흥 숙박촌이 형성돼 있어 문경을 찾는 거의 모든 관광객이 반드시 온천을 찾는다.

붉은 빛이 가미된 황토빛의 칼슘 중탄산천.

맑고 투명한 알칼리온천수.


 무엇보다 문경온천의 자랑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두 가지 온천수를 한 욕탕에서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
 붉은 빛이 가미된 황토빛의 칼슘 중탄산천(사진 위)과 맑고 투명한 알칼리온천수(아래)가 바로 그것으로, 처음 접한 사람들은 아주 신기해 한다.

 칼슘 중탄산천은 중생대 화강암층과 석회암층 사이에서 분출되는 온천수로 분출 이후 공기(산소)와 접촉하면 즉시 산화돼 붉고 탁하게 보이지만 오히려 광물질에 의한 약리성분이 풍부해 보양온천으로 손꼽힌다.
 문천온천 김병회 대표이사는 "일본이 자랑하는 벳부온천과 비교해도 중탄산이온 유리탄산 불소 철 나트륨 리튬 스트론튬 등의 성분이 우수하다"며 "전국에서 온천만을 위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문경온천에는 하루 평균 2000여 명이 찾으며 새해 연휴에는 3배 정도 많은 6000명이 다녀갈 정도로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문경온천 전경. 온천탕 내 사진은 찍을 수가 없어 문경온천 소개 브로셔를 스캔받아 사용했다. 

 국제신문 산행팀이 현재 매주 한 번 소개하는 기획물인 '근교산&그 너머'는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어느새 훌쩍 넘어 현재 600회를 앞두고 있다. 전국의 모든의 시리즈 기사 중 최장수를 달리고 있다. 매주 한 번 게재될 때마다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셈이다. 아마도 이 기록은 언론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지금이야 신문을 대표하는 시리즈 기사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돌이켜보면 정말 곡절도 많았다. 내부적으론 너무 오래 됐으니 이제 막을 내리자는 고비를 두 어 번이나 넘겼고, 외부적으론 질시의 대상이 돼 한동안 산행 안내 리본이 난도질 당하는 아픔도 수 차례 겪었다.
 거쳐간 기자만도 무려 7명. 현재 담당까지 포함하면 8명이다.

 그동안 소개됐던 기사를 새롭게 엮은 책만 해도 무려 10권이다. 손꼽아보면 '다시 찾는 근교산' 상긿하, 상긿하를 한 권으로 묶은 하이라이트 격인 증보판, '新근교산' 상긿하와 역시 증보판, '신나는 근교산', '야호! 근교산', 그리고 기자가 쓴 '원점회귀 근교산' 상,중이 그것이다.
 신문에 보도된 상세한 산행기사를 보고, 산행팀이 묶어놓은 안내리본를 확인하며 걷는 산행문화는 국제신문 산행팀에 의해 비롯된 것으로 보면 된다.
 하지만 산행팀은 이따금 독자들이나 지인들로부터 사석에서 이런 불만 아닌 불만을 듣는다.

 내용이 무미건조하다는 것이다.
 좀 더 살을 붙이자면 산행기사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객관성의 담보라는 대의명분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딱딱한 숫자와 방향 안내만 시종일관 반복되고 있을 뿐 무엇 하나 감동으로 다가오는 게 조금도 없다라는 것이었다. 또 적어도 신문이나 서적의 활자로 인쇄될 정도라면 좀 더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해야 더 잘 팔릴 것이라는 고언도 적지 않게 들었다.
 일리있고 고마운 지적이다. 하지만 기자는 산행기를 '떡'에 비유해 그같은 지적에 답하고 싶다.
 화려한 미사여구와 사진으로 포장된 타 매체의 산 관련 기사는 '보기 좋은 떡'인 반면 건조해 심지어 목이 메이기까지 한 국제신문 산행기사는 '먹기 좋은 떡'이라고.

 이렇게 묻고 싶다. 그 '보기 좋은 떡' 다시 말해 화려한 사진과 산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 그리고 개괄적인 코스, 가볼 만한 맛집 등으로 채워진 기사를 갖고 과연 초보자가 산행을 할 수 있는 지. 한 발 더 나아가 '월간 산'을 비롯한 산 잡지에 실린 기사를 보면서 과연 초보자가 산행을 완주할 수 있는 지. 100% 불가능하다.

 월간지는 일반 산악회의 산행대장급이나 노련한 산꾼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초보자에겐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중간에 갈림길만 하나 나와도 당황하게 되는 건 산을 조금이라도 다녀본 사람이라면 수긍이 할 듯싶다.
 하지만 국제신문 산행기사는 가능하다. 기사 속에 '~갈림길. 여기서 좌측으로 10분쯤 힘겹게 오르면 어디어디에 닿고~'하는 식으로 아주 건조하게 전개되는 국제신문 산행기는 초보자도 산행을 완주하게끔 도움을 준다.

 산행기의 객관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먹기 좋은 떡'인 국제신문 산행기는 초보 아줌마 산꾼들도 자녀와 함께 산행을 무사히 마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국제신문의 근교산 시리즈가 전국의 독자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비결은 현지 취재에 따른 철저한 현장답사와 산행 후 미비점을 자료분석과 함께 전화로 재차 확인하는 취재의 기본을 한결같이 유지한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숨은 계곡과 능선이 지면을 통해 새로운 등산로로 등장하면 산행에 나서고 싶어도 산길을 몰라 감히 떠나지 못했던 초보 산꾼들도 누구나 쉽게 국제신문 리본을 보고 산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초보 산꾼은 물론 베테랑 산꾼들도 '이곳에 이런 코스도 있었나'라며 감탄을 잊지 않는다.
 간월산 공룡능선, 가지산 북릉, 천성산 중앙능선, 신불산 홍류계곡, 밀양 구천산 정승봉, 배내골의 배내봉 등 국내 주요 산 전문 사이트에서도 등장하는 이런 명칭은 바로 국제신문 산행팀이 개척해 명명한 것이 보편화된 것이다. 얼핏 30개는 될 법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산행기를 보고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산행이 가능한 산행기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국제신문 산행팀이 개척하고 명명한 간월산 공룡능선.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하면서 바라본 설악의 단풍과 주변 기암괴석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뭐니뭐니해도 단풍은 10월 산행의 영원한 제1 화두.

이 달은 전국 산꾼들의 산행 패턴이 일년 중 유일하게 통일되는 시점이다.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되는 등산가이드의 산행지 대부분이 단풍의 남하 속도와 일치되는 점도 재미있는 풍경이라면 풍경. 이번 주 국제신문 산행팀도 이에 뒤질세라 단풍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강원도 설악산을 찾았다.

한반도의 남쪽 산하에서 단풍이 제일 먼저 시작된다는 상징성과 예부터 단풍이 곱기로 소문나, 단풍과 절경이 가장 잘 어우러진 명산으로 칭송되기 때문이다.

산행 관련 한 인터넷 사이트의 경우 지리산이 연중 접속자 수 1위를 차지하지만 단풍이 화려한 치장을 하는 10월만은 그 자리를 설악산에 내어줄 정도로 설악은 가을에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국립공원 설악산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올 설악 단풍은 12일을 전후해 절정을 이루겠다고 한다. 이번 주말 설악을 찾으면 해발 500m대인 천불동 수렴동 십이선녀탕계곡 등까지 단풍이 남하해 불타는 거대한 화염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

막상 산행지를 설악으로 정했지만 그 많은 코스 중 과연 어디로 오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앞을 가로막았다. 고민끝에 산행팀은 한계령을 시작으로 끝청~중청대피소~대청봉~소청~희운각대피소~무너미고개~천불동계곡~비선대~소공원 코스를 택했다. △내설악과 외설악을 두루 맛보고 △능선길을 걸으며 곱게 물든 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으며 △계곡 따라 길게 이어지는 단풍터널을 걸을 수 있고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많아 체력 소모를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에 그나마 가장 근접한 코스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10시간에서 길게는 12시간을 잡아야 한다.


 
부산서는 통상 무박2일 산행으로 이뤄지지만, 여유가 있다면 하루 전에 도착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새벽 산행을 권하고 싶다.

들머리는 한계령. 한계령은 설악산 남쪽에서 내설악과 외설악의 경계가 되는 지점으로 예부터 교통의 요로였다. 송강 정철의 대표적 가사문학 ‘관동별곡’의 배경이기도 하다. 가파른 철계단으로 시작되는 산행은 처음부터 오르막의 연속. 새벽이라 제법 찬 기운이 느껴지지만 이내 땀으로 젖는다. 머리 위로 별과 달만 또렷하게 보일 뿐 사방은 칠흑같은 어둠이다. 의지할 것은 손전등이나 헤드램프. 1시간50분 정도 무작정 걸으면 첫 갈림길. 귀때기청봉과 끝청 가는 길로 갈린다. 오른쪽 끝청 방향으로 간다.

지금부터는 장쾌한 서북능선길. 붉게 탄 단풍의 제모습은 아직도 어둠에 가려 희미하지만 주변 봉우리와 기암괴석은 본색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어 내·외설악의 진면모를 눈과 마음에 모두 담을 수 있다. 왼쪽 저 멀리 용의 치아 모양 같이 험준한 연봉(連峰)인 용아장성릉과 험난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공룡능선이 잇따라 보이고 그뒤로 황철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다듬어진 수려함이 금강산이라면 설악은 자연 그대로의 장엄함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산행 시작 후 4시간 정도면 일차 목적지인 끝청에 닿는다. 왼쪽에는 백운동 구곡담계곡 등이 자리해 있고 오른쪽엔 백두대간의 한 점 점봉산이 솟아 있다. 뒤로는 귀때기청봉과 가리봉 삼형제봉 주걱봉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끝청에서 중청대피소까지는 1시간 정도. 중청 정상은 군사시설로, 철조망으로 막혀 있다. 대피소 앞에는 이 곳에서 펼쳐지는 모든 봉우리와 능선을 그림과 함께 알려주고 있다. 소청봉 황철봉 마등령 울산바위 권금성 화채봉 공룡능선…. 봉우리명과 실제 위치를 맞춰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중청대피소에서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까지는 20분 정도. 사방에 펼쳐진 봉우리를 구름이 에워싸고 있고, 그 구름 위에 또 다른 구름이 겹쳐 있다. 산인지 구름바다인지 도통 구분이 가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백두대간 구간.    

대청봉의 아름다운 모습을 뒤로하고 중청을 지나 소청에 도착해 곧 희운각대피소로 발길을 옮긴다. 대피소까지 거리가 1.3㎞에 불과하지만 해발고도 차가 500m나 날 정도로 급경사의 연속이라 철계단과 철난간이 기다랗게 이어져 있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울긋불긋 단풍이 불기둥처럼 타오르고 있는데다 공룡능선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눈이 여간 즐겁지 않다.

희운각대피소를 지나면 내설악의 수렴동계곡과 함께 단풍과 주변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는 외설악의 천불동계곡. 기암괴석이 마치 1천개의 불상을 연상케 한다는 천불동계곡은 대자연의 위대함과 신비함을 절로 느끼게 한다. 계곡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과 비취색 맑은 물빛, 가을 햇살에 붉고 노랗게 채색된 단풍의 절묘한 조화는 일순간 호흡이 멈춰질 만큼 환상적이다.

천당폭포

              


이곳에 오면 마치 천당에 온 것 같다하여 명명된 천당폭포를 비롯, 양폭 오련폭포 귀면암 문수담 등을 차례로 거쳐 선인 마고선이 하늘로 올라간 곳이자 설악8경 중의 하나인 비선대에 닿는다.

설악에서 이용객이 가장 많은 천불동계곡은 요즘같이 단풍 절정기가 되면 좁은 철계단과 등산로에 인파가 몰려 평소보다 산행시간이 많게는 1.5배나 걸리므로 유의해야 한다. 비선대부터는 산행로가 아니라 2.5㎞의 임도가 이어져 걷기에는 힘들지 않다. 권금성행 케이블카를 운행하는 소공원까지 50분 정도 걸린다. 시간이 허락되면 천년고찰 신흥사도 둘러보자.

# 떠나기 전에

속초시 양양군 인제군 고성군 등 4개 시·군에 걸쳐 있는 설악산은 지난 1965년 11월에 천연기념물 제171호로, 5년 뒤인 1970년에는 5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산이다. 지난 1982년에는 유네스코에서 생물권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고봉인 대청봉(大靑峰)은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남한 제3의 고봉(1,707.9m)이다. 대청봉을 정점으로 동서남북으로 뻗은 능선은 내설악 외설악 남설악으로 가른다.

대청봉은 흔히 청봉(靑峰)으로도 불린다.

창산 성해응 선생의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함께 노산 이은상 선생이 옛 신앙에 근거하여 밝고 푸른 봉우리라는 뜻으로 청봉으로 불렀다는 설이 있다.

대청봉으로 오르는 산길은 여럿이다.

그 중 오색에서 오르는 코스가 가장 짧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급한 오르막으로 많은 힘과 인내를 요구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한계령에서 오르는 코스가 각광을 받고 있다. 완만한 산길과 서북능선을 따라 걷는다는 기쁨으로 산꾼들이 많이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하산길의 천불동 계곡은 국내 3대 계곡으로 불릴 만큼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과거에는 ‘문닫이골’로 불렸다. 그만큼 험난해 철사다리가 없으면 길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지금은 철계단 등 길 안내 표시가 잘 정비돼 일반산행객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산길로 자리 잡았다. 이 가을, 단풍 구경을 위해 천불동을 찾아보자.

# 교통편-부산서 설악산까지는 너무 먼데다 교통이 불편하다.

한계령을 들머리로 삼을 경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강릉 양양을 거쳐 한계령에 가야 한다. 강릉행 고속버스는 오전 6시58분, 8시40분 등 하루 8회 운행된다. 2만5천5백원. 강릉시외버스터미널에서 양양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오전 5시50분 차를 첫 차로 20분 간격으로 있다. 막차는 밤 10시. 3천9백원. 양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한계령 정상까지는 오전 7시5분부터 30분 간격으로 오후 7시20분까지 차가 있다. 2천3백원.

날머리인 설악동에서 시내버스 7번을 타고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부산행 고속버스를 탄다. 오전 6시40분, 8시25분 등 하루 6회 운행된다. 막차는 오후 1시40분. 3만8백원. 심야버스는 밤 9시, 9시50분, 10시40분, 11시10분에 있다. 3만3천9백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경부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홍천IC~인제~한계령 순으로 가면 되고 내려올 땐 설악동~주문진~강릉~영동고속도로~원주~중앙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 순으로 타면 된다. 아니면 양양~동해~삼척 울진~영덕~포항을 거치는 7번 국도를 타고 경주IC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도 된다.

무박2일 산행을 하려면 지역 산악회에서 밤 10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된다. 참고할 점 한 가지. 이 버스를 타고 설악산에 도착하더라도 반드시 산행할 필요는 없다. 가까운 울산바위나 비선대까지만 올라 단풍구경 등 별도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다 출발시간에만 닿으면 별 문제는 없다.

글 사진=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산행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스릴도 느끼고 바다 감상 가능한 숨은 명산
마산 진전면 변씨성구사 원점회귀, 걷는시간만 4시간
진동 앞바다, 이순신장군 승전지 당항포 앞바다 한눈에
발길 닿는 곳 기암괴석 전망대 산길 곳곳에 널브러져
하산 후 양촌리온천, 돼지주물럭집 있어 원스톱 여정

마산과 고성의 경계에 위치해 있지만 마산시가 단독으로 3년 전 만든 길이 52m, 높이 35m의 현수교인 적석산 구름다리. 흔들림이 약간 있는 구름다리를 멀리서 보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우와, 저 멀리 구름다리가 걸려 있네요."

마을 어귀에서 향후 오를 산을 올려다 봤을 때 봉우리와 봉우리를 이어주는 구름다리가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인다면 기분이 어떨까. 고소공포증이 있는 일부 산꾼들을 제외하고는 아마도 짜릿한 전율과 함께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 발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산행팀이 알기론 이런 산이 두어 곳 있다. 대표적인 곳이 마산과 고성의 경계에 위치한 적석산과 하동 성제봉.

산 아래 들머리 변씨성구사에서 본 적석산. 실제로 저 멀리 구름다리가 보인다.
 
마산 합포구 진전면과 고성 구만면의 경계에 우뚝 솟은 적석산(積石山)은 한마디로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산이다. 오래 전부터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하동 성제봉과 달리 지난 2005년 말 구름다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적석산은 여태까지 단골 산꾼들만이 은밀히 오르내리는 은둔의 산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적석산은 이름 그대로 평평한 바위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전형적인 바위산이다. '쌓을 적(積)' 자를 써서 '적산'이라고도 불리는 이 산은 사실 온 산이 바위로 뒤덮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이한 점은 그 바위가 시루떡을 한 겹 한 겹 쌓아 올려 놓은 듯한 수평층리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 마주 보고 있는 인성산도 마찬가지이다.

조망은 어떨까. 기암괴석이 널려 있다 보니 발길 닿는 곳이 온통 전망대여서 마산 진동 앞바다와 당항포만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잘 가꿔진 산길 또한 매력적인 요소. 얼핏 기암괴석으로 포진돼 꽤 힘들 것으로 보이지만 곳곳에 구름다리를 비롯해 덱 안전난간 등이 설치돼 있어 초보자도 아무 문제없이 산행이 가능하다.

여기에 산 아래엔 피로를 풀기에 적합한 양촌리 온천단지와 푸짐한 주물럭집까지 있어 이른바 '산행-온천-맛집'으로 이어지는 흔치 않은 '원스톱' 여정을 꾸릴 수 있다. 
   
산행은 마산 진전면 일암리 변씨 성구사~산불감시초소~옥수곡 갈림길~국수봉~적석산(497m)~구름다리~통천문~칼봉~일암저수지 갈림길~음나무재(사거리)~선동치~528봉(깃대봉 정상석)~도로(독립가옥)~변씨 성구사 순. 걷는 시간만 4시간. 깔끔한 산길에 이정표가 잘 정비돼 있어 가족 산행지로 추천한다.

들머리 변씨(卞氏) 성구사(誠久祠)는 고려 및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변씨 문중이 배출한 세 충신을 기리기 위한 사당. 소박한 외형의 성구사 우측 '적석산 건강마을'이라 적힌 간판 뒤로 적석산과 구름다리가 보인다.

들머리 변씨(卞氏) 성구사(誠久祠)는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변씨 문중이 배출한 세 충신을 기리기 위한 사당.

성구사 좌측으로 40m쯤 가면 '하마비'와 '변씨성구사' 이정석 사이 우측으로 길이 열려 있다. 일종의 농로이다. 30m쯤 뒤 안내 리본이 제법 걸려 있고 그 아래에는 '등산로'라 적힌 안내판이 보인다.

잡풀을 뚫고 오르막 송림길을 지그재그로 힘겹게 오르면 산중턱 산불감시초소에 닿는다. 들머리에서 22분. 초소 건물 옆 너럭 바위에 서면 마주보고 서 있는 인성산과 그 아래로 양촌리 온천단지와 마산~진주 국도가 보이고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마산 진동 앞바다가 펼쳐진다.

초소에서 8분쯤 뒤 묘지 좌측으로 전망대가 기다린다. 천길 낭떠러지인 이곳에 서면 정면의 인성산과 앞서 산불초소에서 안 보이던 여항산과 서북산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적석산에는 시종 일관 이같은 천길 낭떠러지 전망대가 곳곳에 기다린다.

이제부턴 부드러운 능선길. 약간 휘기 시작한다. 10여 분 걸었을까. 임도가 왼쪽에 나란히 내달리지만 내려서지 말고 오솔길로 계속 오르내린다.

    
시원한 송림길 도중 첫 이정표를 만난다. 왼쪽은 고성땅 옥수곡(옥수암) 방향, 산행팀은 직진한다. 적석산 정상은 여기서 0.9㎞. 5분 뒤 시야가 트이는 지점에 닿는다. 우측에 보이는 낮은 산줄기가 방금 산행팀이 올라온 능선이며 그 뒤로 인성산이 보인다. 적석산 정상은 정면으로 보이는 봉우리 뒤에 숨어 있다.

정상 직전 봉우리에서 본 적석산 정상.


10분 뒤 정면의 봉우리에 올라서면 적석산 정상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와 있다. 얼핏 무슨 요새 같다. 기암괴석은 숲으로 힐끗 덮여 있고 그 사이로 철제계단이 햇빛에 반사돼 반짝거린다. 뚜껑이 열리고 정상석이 서 있는 정점에선 무슨 로켓이 발사될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정상 우측 뒤로 잘록이인 선동치와 528봉이 보이고, 좌측으로 배둔 뒤로 마산 진동 앞바다가, 그 우측으로 거류산과 당항포 벽방산이 확인된다.

너른 암반인 적석산 정상. 저 멀리 당항포만이 보인다. 당항포만 좌측 끝이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을 속인 속싯개다.

한 번 내려섰다가 올라와 오른쪽으로 바윗길을 타고 올라 쉼터바위를 지나 철계단을 오르면 마침내 적석산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 직전 좌측은 고성땅 옥수골 저수지, 우측은 원점회귀가 되는 일암저수지로 각각 내려서는 갈림길이 열려 있다. 50명 정도가 동시에 앉을 수 있을 정도의 너른 암반인 정상은 숲이 없어 아쉬움으로 남지만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여서 조망이 환상적이다. 고성 쪽 당항포 앞바다 뒤로 왼쪽부터 철마산 구절산 거류산 벽방산이, 마산 쪽으로 서북산 여항산 인성산이 확인된다. 재미있는 점은 마산 쪽 진전면 깃대봉과 고성 회화면 깃대봉이 동시에 보인다.   


 
직진한다. 잠시 후 조그만 두 암봉을 잇는 그 유명한 구름다리를 만난다. 마산과 고성의 경계에 위치해 있지만 마산시가 3년 전 철골 와이어 공법으로 만들었다. 길이 52m, 높이 35m로 멀리서 보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적석산의 명물이라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이창우 산행대장은 "다리를 건너며 좌측 아래 아직도 남아 있는 밧줄을 가리키며 예전에는 저 밧줄과 지금은 철거된 사다리에 의지해 오르내렸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일명 개구멍바위로 불리는 통천문.

구름다리를 건너면 숲속에 바위 쉼터가 널려 있다. 점심은 여기서 먹으면 좋을 것 같다. 숲을 벗어나면 급경사 내리막 바윗길. 통천문이라 불리는 일명 개구멍바위를 통과한다. 크고 작은 바위가 뒤엉켜 제법 큰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위에서 보면 개구멍 같고, 아래에서 보면 할머니가 허리를 굽히고 있는 형상이라 할머리바위로도 불린다. 통천문 위로 밧줄을 잡고 내려설 수도 있다.

통천문을 지나 안전난간과 나무계단을 거쳐 다시 숲으로 들어서면 이내 갈림길. 왼쪽은 고성땅 적석암(옥수골), 산행팀은 구만면 주평(리) 방향으로 직진한다. 누군가가 '구만면 주평' 아래에 헷갈리지 말라고 '일암저수지'라고 적어 놓았다. 등로 주변 기암괴석들이 널브러져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산 아래 주민들이 칼봉이라 부르는 곳이다.

119 조난 표지목이 서 있는 소나무 아래 너른 터를 지나 9분이면 또 갈림길. 우측은 일암저수지 방향. 체력이 부치면 이곳으로 하산해도 된다. 산행팀은 구만면 방향으로 직진한다. 5~6기의 묘지가 널려 있는 송림길을 지나 4분 뒤 좌측 옥수곡 갈림길을 만난다. 무시하고 직진한다. 갈림길에서 5분이면 임도와 산길이 만나는 사거리 고개로 내려선다. 음나무재다. 왼쪽 고성땅 구만면, 오른쪽은 들머리 쪽 일암저수지 방향, 산행팀은 직진하며 올라선다. 잡풀을 헤치고 9분쯤 내달리면 역시 사거리에 닿는다. 선동치이다. 직진하면 구만면 선동마을, 좌측은 낙남정맥 영신봉 방향, 산행팀은 우측 깃대봉 신어산 방향으로 올라선다. 이때부터 낙남정맥길이다.

깃대봉에서 하산하는 길에도 적석산 및 구름다리가 보인다.

15분쯤 뒤 무명봉을 살짝 넘으면 이내 전망대가 기다린다. 앞서 지나온 적석산과 구름다리 그리고 고성의 산과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여기서 4분이면 깃대봉 정상석이 서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정상석에는 '깃대봉 520.6m'라 적혀 있지만 최신형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528m로 표기돼 있다. 이 봉우리 뒤의 봉우리가 흔히 깃대봉 정상으로 알려져 있는 521봉이다. 삼각점은 이곳에 있다.
   
   
산행팀의 생각으론 정상석에 적힌 높이만 고치고 최고점인 이곳을 정상으로 해도 크게 문제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직진하면 발산재를 거쳐 낙남정맥 길, 산행팀은 원점회귀를 위해 우측으로 내려선다.

깃대봉에서 내려오면 만나는 독립가옥에서 본 적석산 및 구름다리.

4분이면 시야가 트이면서 우측으로 적석산과 구름다리 그리고 저 멀리 발아래 들머리가 보인다. 528봉에서 40분이면 산을 벗어나 도로와 인접한 독립가옥에 내려선다. 마당에서도 적석산 정상과 구름다리가 선명하게 보이는 적석산 최고의 전망대다. 여기서 변씨 성구사까지는 24분 걸린다. 일암저수지를 지나 당산나무 100m 앞에서 논 사이 포장로로 가다 '적석산 건강마을'이라 적힌 2시 방향의 간판을 보고 가면 된다.


◆ 떠나기 전에 - 들머리 변씨성구사, 일제강점기 4·3삼진 의거 발상지

마산 적석산 기암괴석의 지층은 수평층리가 발달한 퇴적암층이다. 쉽게 말해 마치 두꺼운 마분지를 꼼꼼하게 쌓아 놓은 듯한 모습이다. 이는 고성 하이면 덕명리 해안가인 상족암 군립공원의 지층과 빼닮았다. 덕명리 해안가는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 공룡들이 전성기를 이뤘던 중생대 백악기(1억6000만~6500만 년) 지층. 그러니까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지층인 셈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문의한 결과, 마산 적석산의 지층이 약간 젊다는 것. 참고로 적석산과 마주보고 있는 인성산도 동일한 지층이다.

덕명리 해안의 지층은 오랜 기간 바닷물에 의해 침식돼 공룡발자국 화석이 드러나 발견됐지만 적석산과 인성산은 내륙에 위치해 있어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을 뿐 이론상으론 어딘가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설명이다.

들머리 변씨(卞氏) 성구사(誠久祠)는 고려말 충신으로 조선 왕조를 인정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두문동 72현' 가운데 한 명인 변빈,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변연수와 그의 아들 변입 등 이른바 '변씨 3충'을 기리는 사당이다. 이곳은 특히 1919년 4월 3일 진동·진북·진전면 일대에서 일어났던 항일운동인 4·3 삼진의거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맛집 한 곳 소개한다. 50년 전통의 돼지 주물럭 전문 대정식육식당(055-271-7043). 들머리 일암리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식육점을 겸업해 질이 좋은 삼겹살과 목살에 양파를 듬뿍 썰어 넣고 참기름과 간장 등으로 잘 무친 다음 다시 고추장에 버무린다. 고기가 연하고 부드러워 맛이 깔끔하다. 1인분 5000원. 이곳에서 차로 1분 거리에는 양촌온천이 있어 피로를 풀 수 있다. 현재 온천은 3곳. 어딜 가나 큰 차이는 없다.


◆ 교통편- 대중교통 불편, 가급적 승용차 이용하길

부산서 가깝지만 대중교통편은 의외로 불편하다. 부산 서부터미널에서 마산합성동터미널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40분부터 7~8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50분 걸리며 요금은 3300원. 진전면 일암(리)행 버스는 마산역 앞에서 타야 된다. 걸어서 10분 소요. 75번은 오전 8시30분, 낮 12시, 76번은 오전 8시, 11시35분, 77번은 오전 7시50분, 낮 12시40분에 있다. 1000원. 일암(리)정류장은 변씨 성구사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날머리 일암에선 75번 오후 4시10분, 7시40분, 76번 3시40분, 7시10분, 77번 4시45분, 8시30분에 출발한다. 마산합성동터미널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밤 10시30분까지 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마산 창원 방향~마산TG~내서분기점서 김천 대구 내서 방향~내서~내서IC 사거리에서 함안 마산 직진 1004번~통영 마산 좌회전~통영 상곡 우회전~통영 마산~쌀재터널~마산 통영~통영 고성 우측 방향~진주 통영 직진~동전터널~진동면~진주 통영~진전면~진주 고성~곡안리~대정 양촌~적석산(1.5㎞)~변씨 성구사 순.

글·사진 = 이흥곤 기자 hung@kookje.co.kr 
문의=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68
이창우 산행대장
www.yaho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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