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졸라 지리산 종주한 씩씩한 4학년생 쌍둥이 자매
아빠와 함께 한 쌍둥이 자매. 백무동에서 장터목 가는 하동바위 코스 중간쯤이다.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쌍둥이 자매. 사실 누가 지영인지 지선인지 잘 모르겠다.
사진을 찍고 나서 아빠를 내버려둔 채 다시 속도를 내는 쌍둥이 자매(왼쪽).
복장으로 봐선 영락없는 산꾼인 쌍둥이 자매. 아빠보다 앞서 있다. 하동바위 코스 오름길.
기자 아저씨와 인사하는 쌍둥이 자매.
세석대피소 가기 전 아빠와 함께 촬칵.
날씨가 풀리며 덩달아 표정이 밝아지는 쌍둥이 자매. 해맑은 표정이 왠지 정이 간다. 벽소령에서
연하천으로 가는 도중 전망이 트이는 지점이다.
세석대피소를 배경으로 촬칵.
지난달 22일 오전 10시30분께 지리산 하동바위 코스의 중간쯤인 소지봉과 참샘 사이 돌계단길.
전날 기자는 국립공원 관리공단 지리산사무소의 취재 허가를 얻어 칠선계곡을 통해 천왕봉에 올라 장터목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하산하는 길이었다. 전날 오전 5시에 부산에서 출발, 2시간 30분 동안 운전한 데다 마폭포에서 천왕봉까지의 '마의 코스'를 포함 장장 9시간쯤 강행군을 한 기자는 장터목에서 세상 모르고 모처럼 단잠을 잤지만 피로가 가시진 않았다.
전날 천왕봉에서 하산할 무렵부턴 비가 부슬부슬 내리드니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보니 바람을 동반한 장대같은 폭우까지 내리고 있지 않은가. 듣기로는 천왕산 입산 금지가 내려졌단다.
다행히 시간적 여유가 있어 비가 좀 그칠 때까지 기다리다 오전 9시께 빗줄기가 약해지자 백무동을 향해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동바위 코스는 중산리 코스와 같이 천왕봉으로 오르는 최단 코스일 뿐 특별히 볼거리가 없는 지루한 돌길의 연속이다.
하염없이 반복되는 돌길을 내려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이의 씩씩한 구령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무료하던 차에 기자는 누굴까 하고 관심을 보이며 기다렸다. 근데 안경 쓴 여자 아이였다. 그것도 둘씩이나.
알고보니 쌍둥이였고, 그들이 구령소리를 씩씩하게 붙인 건 뒤쳐지는 아빠를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대전 한밭초등학교 4학년 김지영 김지선이라고 했다. 체구는 나이에 비해 작았지만 한마디로 야무지고 옹골찼다.
뒤따라오던 아빠 김영환(48) 씨는 쑥쓰러우면서도 싫지 않은 듯 "저 놈들이 왜 이리 빨리 가지, 어휴 힘들어 죽겠네"라며 끌끌 웃었다.
김씨 모녀 3인은 지리산 종주를 시작하는 길이라고 했다. 종주를 시작하게 된 사연이 재미있었다.
아빠가 안갈려는 쌍둥이들을 데리고 간 게 아니라 쌍둥이들이 갈 생각이 별로 없는 아빠를 마구 졸라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는 것이었다.
아빠의 입을 잠시 빌리자면 애들이 다니는 한밭초등학교는 방학 전에 과제로 어떤 체험학습을 할 것인지 미리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문제는 쌍둥이들이 아빠와 상의도 하지 않고 대뜸 지리산 종주 계획을 제출한 것이었다.
산행 출발 전 아침 일찍부터 비가 제법 내리자 머뭇거리는 아빠에게 어서 출발하자고 재촉한 것도 쌍둥이였다.
복장도 제법 알차게 갖추고 있었다. 등산화에 두건 그리고 배낭에 커버를 씌운, 제대로 된 산꾼의 모습 그대로였다.
기자가 본 잠깐 동안의 이들 부녀는 쌍둥이가 앞서 가며 뒤따라오는 아빠를 독려하는 식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모두 재미있다며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가.
하산하는 기자와 오르는 쌍둥이 부녀는 이렇게 잠깐 동안의 만남을 갖고 연락처를 교환한 후 헤어졌다.
본업으로 돌아온 기자는 취재 후 산행기와 다른 잡무를 보느라 잠시 쌍둥이를 잊다 어제 쌍둥이 아빠와 통화를 했다.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고 했다. 당초 1박 2일로 예정했지만 연하천 대피소에서 하루 더 1박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아무런 사고 없이 다녀와 첫 종주치고는 100% 성공이었다고 덧붙였다.
개인적인 질문도 빠뜨리지 않았다. 쌍둥이 아빠는 20대부터 40대 초반까지 산을 엄청 많이 다녔고 지리산 종주도 20여 차례나 한 베테랑 산꾼이었다.
"종주 첫날은 날씨가 계속 안좋아 천왕봉까지 겨우 다녀왔지만 그 다음날부터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애들이 너무 신나게 산행을 했습니다. 남해바다가 보일 땐 다함께 만세도 불렀죠."
지리산을 찾은 많은 등산객들도 쌍둥이를 볼 때마다 힘내라며 격려도 아끼지 않았단다. 2박 3일 종주 동안 '지리산의 스타'는 단연 쌍둥이였다는 것이었다. 이런 말을 기자에게 전하는 아빠도 전화기 넘어로 표정은 보이진 않지만 분명 신이 났을 것으로 확신한다.
가족 관계를 여쭤봤다. 쌍둥이 자매 위에 6학년 딸아이가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밝힐 순 없지만 첫째에게 중요한 일이 없었다면 부인과 함께 온 가족이 종주를 했을텐데 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부인도 무척 산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지리산 종주 후 쌍둥이들은 이제 산의 맛을 조금 알았는지 다음 산행지는 가까운 계룡산으로 벌써 정해 며칠전 발표했다고 전했다.
당시 그 말을 듣고는 엄마가 한마디 했다고 한다.
"한동안 열심히 산에 다니던 아빠가 잠잠해지니까 조그만 딸들이 이제 산에 갈려고 하네, 어휴 내 팔자야."
아래 글은 쌍둥이들이 지리산을 다녀와 제출한 보고서 내용이랍니다. 사진과 함께 메일로 보내왔습니다.
자연체험학습 보고서
장소:지리산
때:2008년8월22일(금)~2008년8월24일(일)
목적: 종주, 지리산에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연의 소중함과 필요함 그리고 자신이 높은 산을 올랐다는 성취감을 느끼기 위하여.
** 지리산 종주 일정 **
8월22일
08:00 백무교 출발
09:30 하동바위 도착(1.8km)
10:05 참샘 도착(0.8km)
10:30 소지봉 도착
12:30 장터목 도착(5.8km)
14:00 장터목 대피소 출발(천왕봉go)
15:10 지리산 정상 도착(천왕봉1915m)
16:00 장터목대피소 도착
8월23일
07:00 장터목 출발
09:00 세석 대피소 도착(3.4km)
11:30 선비샘 도착
12:20 벽소령 입구 도착
13:00 벽소령 대피소 도착(6.3km)
14:30 벽소령 대피소 출발
16:50 연하천 대피소 도착(3.6km)
8월24일
09:00 연하천 대피소 출발
10:40 토끼봉 출발(2.4km)
11:13 화개재 도착
11:40 삼도봉 도착
12:13 노루목 도착
12:50 임걸령 도착
14:40 노고단 도착(천왕봉~노고단25.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