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베이사이드GC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골프경기장이었던 아시아드CC는 이제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될 것 같다. 지난달 18일 개장한 기장군 일광면 베이사이드GC(이하 베이사이드)가 기대 이상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부산 울산 경남 주말골퍼들은 아시아드CC와 인접한 베이사이드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태어날지 그동안 관심을 갖고 기다렸다. 베이사이드 레이크 5번 그린과 아시아드 파인 7번 그린이 바로 옆 홀인 듯 착각이 일 정도로 두 골프장은 거의 붙어 있다.
 기장군의 달음산 암봉이 바로 올려다 보이는 두 골프장은 우선 앉은 터가 같다. 흔히 국내의 골프장은 수백 m나 되는 산을 뭉개 조성하지만 이 두 골프장은 국내에서는 드물게 해발이 매우 낮은 목장 부지인 구릉지에 들어섰다. 그래서 저지대 구릉지의 천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홀을 꾸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번에 베일을 벗은 베이사이드는 '쉽지만 어려운' 골프장으로 요약된다. 페어웨이의 폭이 기존 골프장에 비해 10~20m 정도 넓어 첫인상은 부담없이 느껴지지만 티잉그라운드가 뒤로 갈수록 심리적 부담감이 점점 커져 공략법이 천양지차로 돌변한다.
 베이사이드 서영훈 경기팀장은 "타 골프장의 경우 챔피언티와 화이트티에서의 스코어 차이는 2~3개에 불과하지만 베이사이드의 경우 6개 정도 차가 난다"며 "이는 주말골퍼들에게는 쉽고, 싱글급이나 프로들에겐 상당히 어렵게 다가온다"고 평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화이트티와 블루티는 3~4개, 블루티와 블랙티에선 2개 정도 차이가 난다는 것. 베이사이드의 티잉그라운드는 긴 데서부터 블랙(챔피언티), 블루, 화이트, 레드(레이디스티) 순이다.

베일 벗자 기대 이상 호평…부울경 대표 골프장 자신감
페어웨이 제법 넓지만 챔피언티에선 훨씬 까다로워
파3 홀 무진장 어려워…여섯 개 홀 중 세 홀이 핸딤캡1


전체 27홀 중 가장 까다롭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베이사이드 캐이언 5번 홀(파4). 기린처럼 목을 쭉 뺀 소나무들이 티샷을 망설이게 한다.

주말골퍼에겐 쉽고, 프로에겐 어려워

베이사이드는 파크·레이크·캐니언 등 3개 코스 27홀로 구성돼 있다. 레이크 코스는 모든 홀이 워터해저드를 끼고 있는 데다 블라인드 홀이 없이 시원하게 펼쳐져 이국적이며, 파크 코스는 송림이 울창한 공원을 거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캐니언 코스는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에서 이름을 따올 정도로 굴곡 있는 협곡 지형을 그대로 살렸다. 스릴을 맛볼 수 있는 코스다.
 난이도는 캐니언(3268m) 레이크(3364m) 파크(3279m) 순으로 어렵다. 간판 코스는 레이크와 캐니언이다.
 베이사이드는 거리 또한 만만찮다. 간판인 레이크·캐니언 코스의 전장은 6532m로 보라CC(6590m) 아시아드CC(6518m) 등과 비슷하지만 레이크·파크 코스를 조합하면 전장은 6643m로 늘어나 영남권에서 가장 길다는 통도 남코스(6735m)나 해운대CC(6629m)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부산외국어대 김창욱 사회체육학부 골프 담당 교수는 "상상 이상으로 까다로운 캐니언 코스의 경우 거리마저 길다면 아마도 주말골퍼들은 물론 프로들도 라운드하기가 무척 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통 한 번의 실수는 다음 샷으로 만회할 수 있게 설계돼 있지만 캐니언 코스에서는 때론 실수를 용서치 않는 홀이 몇 개 있어 모험과 도전을 추구하는 골퍼들이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캐니언 코스의 페어웨이는 업다운이 특히 심해 레이크·파크 코스와 달리 마치 다른 골프장에 온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그린 역시 쉬운 듯 어렵다. 흔히 그린의 난이도의 큰그림을 그리지 못할 경우 필요 이상으로 그린에 언듈레이션을 만들어 난이도를 조절하지만 베이사이드는 심하지 않은 언듈레이션을 가지면서도 잔잔한, 이른바 '동네 라인'을 많이 조성해놓아 표 안 나게 까다롭다. 아시안투어 창설 멤버이자 규칙분과위원장 겸 경기위원장인 이학(76) 씨는 "그린의 경우 프로 시합 때 핀 포지션의 다양성을 꾀할 수 있게 난이도 조정을 아주 잘 해놓았다"고 말했다.

파3홀 블랙티가 216m…드라이버를 잡을까?
베이사이드는 파4, 파5 홀보다 파3 홀이 길어 특히 어렵다. 6개의 파3 홀 중 세 홀이 핸디캡 1이고, 한 홀이 핸디캡 2라는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

베이사이드 레이크 2번(파3) 홀 챔피언티 티잉그라운드(216m). 그린 좌우에 해저드와 비치 벙커가 있다.

 정면으로 클럽하우스가 보이는 레이크 2번 홀은 악명 높기로 정평이 나 있다. 블랙티 216m, 블루티 185m, 화이트티 157m, 레드티 101m. 이 홀은 그린 좌우에 각각 워터해저드가 있는 데다 그린 우측과 우측 해저드 사이에는 비치 벙커가 길게 입을 벌리고 있어 사실상 칠 곳이 없다. 여기에 항상 맞바람이 불어 설상가상이다.

캐니언 6번 홀(파3)의 챔피언티(205m).

 블랙티 205m, 블루티 184m, 핸디캡 1인 캐니언 6번 홀도 레이크 2번 홀에 버금간다. 그린 좌우 앞쪽에 항아리 벙커가 입을 벌리고 있어 티샷 때부터 주눅들게 한다.

   레이크 6번 홀 블루티. 좌측 막창만 조금하면 큰 무리가 없다.
   레이크 6번 홀의 블랙티. 60미터 뒤의 블랙티에 서면 사실 티샷 하기가 막막하다.

 핸디캡 2의 파4, 레이크 6번 홀은 블랙티와 블루티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홀이다. 블랙티 396m, 블루티 336m, 화이트 299m, 레드티 274m. 워터해저드를 넘겨야 되는 이 홀은 블루티에서 칠 경우 약간 좌측으로 당겨치면 몟막창몠을 걱정해야 되지만 무려 60m 뒤에 위치한 챔피언티에 서면 그 넓은 페어웨이는 어디 가고 칠 곳이 없을 정도로 막막하다.

 티잉그라운드가 언덕배기에 있는 핸디캡 5의 파4, 캐니언 5번 홀(맨 위 사진)은 기린처럼 목을 쭉 뺀 소나무들이 공공의 적으로 좌우에 서 있는 홀. 블랙티 395m, 블루티 388m, 화이트티 367m, 레드티 262m. 내리막 좌 도그레그형인 이 홀에선 티샷이 조금이라도 좌우로 치우치면 소나무 가지에 맞아 페어웨이 대신 협곡으로 빠져 버린다. 정면으로 보이는 7개의 벙커 또한 심리적 장벽이다.

    캐니언 9번 홀.

  파5 홀로 베이사이드에서 가장 긴  캐니언 9번 홀도 캐니언 5번 홀과 유사한 케이스. 블랙티 615m, 블루티 573m, 화이트티 520m, 레드티 439m. 이 홀은 챔피언티와 레드티의 거리가 무려 176m나 되고, 레드티 좌우로 소나무가 가지를 내밀고 있어 이 또한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파4 핸디캡4, 파크 4번 홀은 선택의 묘미가 있는 홀. 블랙티 380m, 블루티 356m, 화이트티 331m, 레드티 267m. 이 홀은 벙커를 기준으로 IP지점이 좌우 양측 두 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즐겨 사용하는 레이아웃이라 흔히 미션힐스 스타일이라 부른다. 즉 벙커가 페어웨이를 둘로 나누고 있어 티샷 때 왼쪽 또는 오른쪽을 먼저 선택해야 한다. 왼쪽보다 오른쪽의 페어웨이 폭이 배로 넓다. 하지만 그린 공략은 그린 앞 벙커로 인해 왼쪽보다 불리하다.

도심 근처에다 동해바다도 볼 수 있다
베이사이드는 접근이 용이하다. 부산울산 고속도로 일광IC에서 내리면 바로 연결돼 해운대에서 10분, 울산에서 20분, 김해공항에서 40분 정도면 도착한다. 일광IC 부근에서 저 멀리 보이는 골프장이 바로 베이사이드이다.
 라운드 도중 바다도 보인다. 사실 해운대나 기장 쪽에 위치해 있다 해도 사실 바다가 보이는 골프장은 해운대CC뿐이다. 베이사이드는 해발이 높은 캐니언 1번 홀 그린에선 일광 앞바다가, 8번 홀에선 고리원전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골프장은 클럽하우스를 중심으로 부채꼴로 펼쳐져 이곳에서 바라보는 골프장과 달음산이 일궈내는 풍광은 일품이다. 클럽하우스에서는 노천온천도 있다.

레이크 1번 홀.
레이크 3번 홀. 정면 봉우리는 기장군의 대장산인 달음산 암봉.
레이크 4번 홀.
레이크 5번 홀.
레이크 7번 홀. 정면 IP 지점 근처의 나무 한 그루까지 워터해저드가 숨어 있다.
레이크 8번 홀.
클럽하우스가 보이는 레이크 9번 홀.
레이크 코스에서 캐니언 코스로 이동 중 바라본 베이사이드 골프장의 전경.
우 도그레그형인 캐니언 1번 홀.
캐니언 2번 홀.
캐니언 3번 홀.
캐니언 4번 홀.
캐니언 7번 홀.
캐니언 8번 홀.


 

 
- 탄생 102주년 '청마 유치환'
               발자취를 더듬다

경남여고 교장 시절의 청마 유치환.

옛 모자상 앞에서 학생들과 함께 한 청마. 함께 사진을 찍은 학생들은 졸업후 모교 교장을 역임했던 백월아(왼쪽) 씨와 동기 김영화 씨다.


 
1963년 7월 4일 오전. 부산의 한 여자고등학교 전체가 술렁거렸다. 수업은 하지 않고 전교생이 교문 앞에서 학교 건물까지 두 줄로 도열한 채 누군가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입은 모두 귀에 걸려 있었다. 그야말로 '오매불망', '학수고대', '희불자승'이었다. 대체 누구기에 이 감수성 예민한 갈래머리 여학생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을까. 청마 유치환(1908~1967)이었다. 그 무대는 경남여고.

 그가 교장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이 이날 오전 입소문을 타면서 학교 수업은 순식간에 마비됐다. 당시 남용강(65) 학생회장의 회상 한 토막. "'깃발' '바위' 등의 시를 애송하며 마음속으로 연정을 품었던 청마 선생이 부임한다는 소식은 일순간 학교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기에 충분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학생으로서 뿌듯했고 동시에 대단한 행운이었죠."

 유난히 하늘이 파랬던 다음 날 상견례를 겸한 조회시간. 전교생과 교사들은 생명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노래한 당대 최고 시인이 어떤 화두를 던질지 궁금했다. 모든 시선은 그의 입에 모아졌다.  
  
"여자는 꽃으로도 때릴 수 없습니다. 하물며 여러분 같이 어여쁜 소녀들에게…." 뜨거운 환호성과 함께 박수 소리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상상도 못했던 파격 그 자체였다. "과연 청마였다." 교무실과 교실의 반응은 그랬다.

경남여고 교장실에서의 청마 유치환.
1963년 경남여고 가을 소풍 때 금정산 산성 앞에서 포즈를 취한 청마. 사진은 경남여고 35기 앨범에서 발채.

 청마의 파격적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교훈도 바꿨다. 당시 교훈은 1958년 제정된 '근검하고 관대하라/봉공정신을 가져라/의뢰심을 갖지 말라'. 여자고등학교 교훈으로는 누가 봐도 좀 '거시기하지 않은가'.그가 내놓은 교훈은. '억세고 슬기로운 겨레는/오직 어엿한 모성에서 이루어지나니/이 커다란 자각과 자랑에서/우리는 스스로를 닦는다'. 독특하게 '겨레의 밭'이라는 제목도 있었다. 짤막한 한 편의 시 형식을 띤 것으로, 청마가 아니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청마다움'이 묻어난다.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 교훈은 여성을 한 인격체 대신 '모성'이나 '밭'을 너무 강조했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이웃 부산고 학생들이 "그럼 우린 '겨레의 씨'다"고 우겨댄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나 한 번 더 곱씹어 보면 겨레의 기틀로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되자는 의미라는 것이 학교 측이나 졸업생들의 설명이다.
   
 이 교훈에 얽힌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하나. 참여정부 때인 지난 2000년 교육부는 남녀차별금지법에 의거해 전국 여자중·고교의 교훈을 조사해 '순결' '몸매' '부덕(婦德)' 등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줄 수 있는 단어가 들어 있는 교훈을 바꾸라는 지시를 일선 시교육청을 통해 하달했다. 경남여고도 그 유탄을 피하지 못했다.

 모교 출신 교사(교장까지 역임)로 당시 학생부장 겸 동창회 업무를 맡았던 백월아(65) 씨의 이에 대한 후일담. "교육부나 시교육청조차 청마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말초적 교훈을 지닌 학교와 함께 일괄적으로 공문을 보낸 사실에 대해 동창회를 비롯한 학교 전체가 분개했지요. 우여곡절 끝에 결국 시교육청을 설득시켜 지금까지 '겨레의 밭'이라는 교훈이 살아남게 됐지요."

지난 23일은 청마 탄생 102주년 기념일. 언론의 문화면조차 그 흔한 기사 한 꼭지 싣지 않았다. 씁쓸했다. 세월의 무상함인가.

 보다 못한 게으른 무지랭이 기자가 청마의 발자취를 뒤늦게 더듬었다.

 자료를 찾던 중 청마 제자 문덕수의 '청마 유치환 평전'에 언급된 글귀가 눈길을 확 끌었다. '1958년 가을 경주고 제자들과 술자리를 함께했다. 한 학생이 교장인 청마에게 당돌한 질문을 하나 했다. "선생님!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뒤 청마가 대답했다. "사랑이란 어처구니없는 것!"

탄생 102주년 청마의 발자취 후속편(탄생 102주년 청마의 발자취, 부산 통영 거제를 둘러보다)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hung.kookje.co.kr/496

 

 

 

 

 


 
경북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 주민들은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예상과 달리 처음에는 환영 일색이 아니었다. 절반 정도는 시큰둥했다. 사생활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 회재 이언적 선생의 17대손이자 양동마을 문화유산해설사 이지휴 씨는 "관람객들이 빈집으로 착각하고 살림집으로 들어오는 것은 한 발 양보해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헛기침 한 번 없이 방문을 불쑥 여는 경우가 잦아 주민들이 질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람객들이 주민들의 사생활 보호에 각별한 배려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들 두 마을의 관람객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많이 알려진 하회마을의 경우 평소보다 1.5배 늘었지만, 대학생이나 전문가 중심의 답사객들이 주로 찾던 양동마을은 평소보다 주말은 10배, 평일은 5배 정도 급증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 가급적 문화유산해설사와 함께 둘러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떠나기 전 아무리 예습을 해도 해당 지역의 '전문가들'만큼 꼼꼼하게 살펴볼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마을 입구에는 문화유산해설사 사무실과 부스가 각각 있다.

안동 하회마을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꼭 보고가요"

- 류성룡 등 풍산 류씨, 600여 년 역사의 집성촌
- 추석연휴·24일~10월3일,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
- 매주 수·토·일 오후 2~3시, 탈놀이 공연 꼭 챙겨볼 것
   
하회마을은 서애 류성룡으로 대표되는 풍산 류씨가 600여 년 전 새 정주지를 찾아 정착한 집성촌으로, 개척입향(開拓入鄕)의 대표적 사례. 지금도 125세대 주민 중 67%가 풍산 류씨다.

마을은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길지. 주산인 화산과 S자로 마을을 휘휘 돌며 굽이치는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그래서 명명된 이름이 글자 그대로 '하회'(河回). 이처럼 앉은 터가 절묘하다 보니 여태 외침 한 번 받지 않아 한옥들이 잘 보존돼 있다. 이를 한눈에 확인하려면 마을과 마주한 강 건너 병풍처럼 우뚝 선 전망대인 부용대에 오르면 된다.   

부용대엔 최근 안내판이 새로 생겼다.

하회마을 항공사진. 문화재청 제공.


 부산서 하회마을을 찾는다면 요일 선택과 시간 배정을 잘해야 한다. 매주 수, 토, 일요일 오후 2~3시 하회마을 탈춤 전수회관에서 열리는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 때문이다.

하회마을을 찾아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보지 않았다면 이는 '팥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다. 하회마을 신영희 문화유산해설사도 "전국의 탈춤 중 가장 재밌는 공연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상민들이 지배계층을 비판하고…" 하는 내용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것도,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보지 못한 사람은 죽어서 좋은 데 못 간다'는 말이 이 지방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탈을 벗으니 부네(가운데 기생 역할)는 남자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아 혼비백산했다고 한다.


공연 도중 외국인을 불러내 어깨춤 한번 덩실. 관광공사 제공

이 공연은 시종일관 관람객과 함께 한다.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본래 무동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등 10개 마당으로 구성돼 있으나 상설공연은 5~6개 마당으로 축약해 보여준다. 처음부터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고 웃음보를 자극한다. 공연 도중에는 내외국인을 자연스럽게 불러내 어깨춤을 추게 만들고 하회탈을 선물한다.

그런데 말도 안 통하면서도 입소문을 듣고 찾는 외국인을 위해 공연장 한 쪽에 대형 모니터를 설치해 재담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영어 일어 중국어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하회마을 관람은 크게 ▷부용대와 주변의 서원과 정사(精舍)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 ▷병산서원 ▷낙동강변의 송림 만송정을 포함한 하회마을 그 자체로 이뤄진다. 3시간쯤 걸리는 부산서 출발할 경우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이 시작되는 오후 2시까지 부용대와 병산서원 그리고 점심식사까지 마쳐야 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마을 입구의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 기념관, 세계탈박물관은 공연 관람 후 둘러봐도 늦지 않다. 이런 일정이라면 늦어도 오전 8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이번 추석 연휴와 오는 24일~10월 3일 열리는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 기간에도 예외없이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일정대로 진행된다. 축제 기간에는 수, 토, 일요일 이외 나머지 요일에도 하루 1회씩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이 열린다. 공연 시간과 장소는 축제조직위의 결정에 따른다.

하회마을 충효당.

충효당 내부에서 본 모습. 관광공사 제공.


하회마을 양진당.

하회마을 화경당(북촌댁).


류시원의 안동 집 담연재 문틈 사이로 한 일본인이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류시원의 문패가 보인다.


마을에선 풍산 류씨의 대종택인 양진당과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 화경당이라 불리는 북촌댁 그리고 마을의 중심이자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600년 된 삼신당이라는 불리는 느티나무는 빠뜨리지 말자. 화경당은 얼마 전 '욘사마' 배용준이 하룻밤 묵어간 뒤부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류시원의 집인 담연재는 현재 사람이 살지 않아 닫혀 있다. 대신 그의 문패가 형의 것과 함께 나란히 걸려 있다. 일본 사람들은 그래도 이곳에 오면 반드시 찾는다고 한다.

600년 된 삼신당이라 불리는 느티나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이곳은 소원을 적은 쪽지가 아주 많이 보인다.


마을과 부용대를 잇는 나룻배. 실은 모터로 움직이며 왕복 2000원을 받는다.

마을 옆 솔숲인 만송정.


주차장 앞 팻말.

주차장 앞 화천서원.


류성룡의 형 류운룡을 배향한 서원인 겸암정사.

옥서애 류성룡이 낙향해 기거하던 연정사.


병산서원 만대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풍광이 일품이다. 관광공사 제공.

병산서원 만대루.


부용대는 하회마을 만송정 강변에서 나룻배를 타고 다녀오거나 하회마을 입구에서 차로 '부용대·옥연정사·겸암정사'라 적힌 이정표를 보고 5분 정도를 달려야 한다. 주차장 앞 고건축물은 화천서원. 서애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룡을 배향한 서원이다. 관람은 화천서원~서애가 낙향해 기거하던 옥연정사~ 부용대~ 서애의 형 겸암이 제자를 가르치던 겸암정사~부용대~주차장 순으로 걸으면 된다. 겸암정사는 부용대에서 7~8분 걸린다. 병산서원에선 초대형 누각인 만대루를 유심히 보자. 7칸이나 되는 만대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병산과 낙동강 풍광은 마치 7폭의 동양화 병풍을 보는 듯하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로 나와 '풍산' '지보'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하회마을' 이정표를 만난다.


경주 양동마을

서백당의 마지막 현인 언제 태어날까

- 월성 손씨·여강 이씨 750여 년 된 처가입향
- '물(勿)'자형의 독특한 산골마을
- 취화선·혈의 누·음란서생 등 영화 속 숨은 촬영지로 유명
 
  
양동마을은 혼인을 통해 처가에 들어와 살면서 자리 잡은 처가입향(妻家入鄕)의 대표적 마을로 하회마을보다 150년 정도 앞선다. 조선 초 월성 손씨의 입향조인 손소가 장가왔다 재산을 물려받아 눌러앉고, 그 뒤 여강 이씨 이번이 손소의 딸에게 장가와 가문의 뿌리를 내렸다. 이 때문에 외손(外孫)이 복 받은 마을로 통한다. 이후 월성 손씨는 우재 손중돈이라는 청백리를 낳았고, 여강 이씨는 '동방 5현' 회재 이언적을 배출했다. 지금은 140여 세대 중 80가구가 여강 이씨, 18가구가 월성 손씨이며 나머지는 타성이다.

이곳 또한 하회마을과 함께 풍수에 따른 길지에 터를 잡았다. 실제로 두 마을은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길지로 언급됐고, 일제시대 일본 학자인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풍수'에도 '삼남의 4대 길지'에 포함됐다.   
 
하회마을이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연화부수형 강마을이라면 이곳 양동마을은 주산인 설창산 문장봉에서 네 줄기의 골짜기가 뻗어내린 '물(勿)'자형의 산골마을이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특이한 지형인 것이다.

관가정을 찾은 어린이들.

양동마을 항공사진. 경주시 제공.


시 말해 마을 입구에서 보면 비교적 작은 마을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고 높아지는 전협후광(前狹後廣) 전저후고(前低後高) 형태의 지형임을 알 수 있다. 평지의 하회마을의 경우 강 건너 부용대(해발 64m)만 올라서면 훤히 볼 수 있지만 양동마을은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봐야 온전히 볼 수 있다.

임연주 문화유산해설사는 "입구에서 보이는 가옥들은 마을 전체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며, 마을 전체를 샅샅이 둘러보는 데는 골짜기와 산등성이를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최고 6시간까지 걸린다"고 설명했다. 골짜기 사이 경사진 곳에 가옥들이 보석처럼 띄엄띄엄 박혀 있어 전체 규모는 하회마을의 배쯤 된다고 보면 된다.

 양동마을은 예부터 유난히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마을 동쪽의 안산인 성주봉이 뾰족한 문필봉을 닮은 때문이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월성 손씨, 여강 이씨 두 집안에서 낸 과거급제자가 116명이나 되며, 이 중 문과 급제자가 26명으로 경주 전체 지역 59명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친다.

이 마을에서 눈여겨 봐야 될 가옥은 서백당(書百堂). 서백당은 하루에 참을 인(忍)자를 백 번 쓴다는 의미. 이 마을 입향조인 손소가 세조 2년에 지은 월성 손씨의 종택이다. 마당의 600년 된 향나무에서 바로 보이는 문필봉인 성주봉의 자태 또한 인상적이다.

이 서백당의 터가 마을 주산인 설창산의 혈맥이 집중된 곳이어서 예부터 3명의 위대한 인물이 태어난다는 삼현지지(三賢之地)로 불렸다. 청백리 우재 손중돈과 그의 생질 회재 이언적 선생이 여기서 태어났으며, 나머지 한 명의 현인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손씨 문중에서는 나머지 한 명의 현인은 반드시 손씨여야 한다며 며느리 출산 때는 산실을 내줘도 딸에게는 허락치 않는다고 한다. 그 산실은 마당 내 조그만 담인 내외담 안쪽의 방이지만 아쉽게도 잠겨 있다.

서백당. 조그만 담인 내외담 안쪽의 방이 산실이다.

서백당 마당의 600년 된 향나무.


양동마을 무첨당.

양동마을 향단. 이 마을서 가장 규모가 크다.


누마루에 서면 안강들녘이 보이는, 우재 손중돈이 살던 관가정(觀稼亭), 여강 이씨의 종택인 무첨당(無添堂), 경상도관찰사였던 이언적의 모친 병간호를 위해 중종이 지어 준 향단(香壇)도 놓쳐선 안 될 이 마을의 자랑이다. 마을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향단은 한때 99칸이었지만 보수 때 줄여 지금은 56칸이다. 서백당과 무첨당은 골짜기 안쪽에 위치해 있어 발품을 약간 팔아야 한다.

양동마을은 알고 보니 숨은 영화 촬영지였다. '취화선' '혈의 누' '음란서생' '방자전' '가문의 영광' '내 마음의 풍경' 등이 주요 작품이다.

양동마을을 찾았다면 여기서 차로 10여 분 걸리는 안강읍의 옥산서원과 독락당도 찾아보자.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 선생을 봉향하는 곳이며, 독락당은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말년에 책을 벗 삼아 보낸 곳이다. 옥산서원은 아직 팻말이 없어 초행이라면 찾기에 유의해야 한다.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의 전편(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발 그리고 하회, 양동마을)을 보시려면 여기(http://hung.kookje.co.kr/500)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추석 연휴 하회·양동마을 가볼까

-마을 전체가 살아있는 문화재
-유유자적 거니니 선비가 따로 없네

-아는 만큼 보이는 '살아있는 문화유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1999년 4월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다. 가장 한국적인 곳을 보고 싶다는 여왕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 여왕은 서애 류성룡의 13대손인 한류스타 류시원의 안동 하회마을 집 담연재에서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관람한 후 47가지의 궁중음식으로 장만된 73번째 생일상(아래 사진)을 받았다.

류시원의 안동 집 담연재에서 73번째 생일상을 받고 있다. 하회마을 입구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 기념관에 있는 사진을 찍은 것이다. 맨 우측이 류시원인 것 같다. 근데 지금 류시원은 39세란다. 깜짝 놀랐다.

하회별신굿 관람 때 흥에 겨운 여왕의 발장단 맞추는 장면이 영국 BBC 카메라에 포착돼 전 세계에 방영됐다. 여왕은 류성룡의 종택 충효당에서 김치와 고추장 담그는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본 후 안방으로 신을 벗고 들어섰다. 처음에는 신을 신고 마루에 올라섰다 누군가의 귀띔으로 신발을 벗었다고 한다. 여왕이 한국의 관습에 따른 것이다. 영국 왕실에서는 맨발을 보이는 게 금기시돼 있어 공개석상에서 드러난 여왕의 첫 맨발은 앞서 장단 맞추던 신발 속의 발과 함께 대비되며 또다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덩달아 하회마을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후 2005년 아버지 부시, 지난해에는 아들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각각 이곳을 찾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일정상 여유가 있었다면 그 다음 방문지는 경북 경주 양동마을이었을 터. 양동마을도 하회마을 못지않게 한국의 전통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적 관람객이 경1000만 명을 넘어섰고, 입장료 주차비를 받아 이미 관광지화 돼 버린 하회마을보다 상대적으로 더 한적한 양동마을이 더 한국적이다." 양동마을도 수년 전부터 일본은 물론 중국 캐나다 등 여러 나라 방송에서 영상 취재를 올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한국의 역사인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지난 8월 1일 이 두 마을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수백 년 전부터 모여 사는 일종의 씨족마을. 각 성씨를 대표하는 서애 류성룡, 우재 손중돈, 회재 이언적 선생을 봉향하는 병산서원, 동강서원, 옥산서원(독락당 포함)도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항공사진으로 본 하회마을. 사진 중앙 가운데 약간 위 절벽이 부용대이며, 역S자 상단 뒷산 너머에 병산서원이 있다. 사진제공=문화재청

하늘에서 본 양동마을. 맨 우측 가운데 빨간색이 보이는 지점이 마을 입구이다. 마을 뒤 댐은 안계댐.
다른 각도에서 본 양동마을 항공사진사진. 우측 상단 쪽이 마을 입구. 사진제공=경주시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가 다가왔다. 올해는 사실상 17일 오후부터 연휴가 시작돼 길게는 9일까지 쉴 수 있다. 꿀맛 같은 여름 휴가를 한 번 더 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차례와 성묘를 다녀온 후 '길고 긴' 이번 한가위 연휴에는 가족이나 친구들, 아니면 연인과 함께 유네스코가 인정한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을 다녀오는 것이 어떨까.

"한옥만 많이 있다고 해서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은 아닐 겁니다.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전통 관습이 살아 있고, 올곧은 유교 정신이 지금까지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지휴(62) 경주 양동마을 문화유산해설사의 이 말 속에는 전통마을을 찾아 무엇을 느끼고 배워야 하는지가 잘 함축돼 있다. 그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세계문화유산이 일등 관광지로 가는 첩경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며 "이는 지금껏 지켜온 전통을 그대로 유지해 달라는 전 세계인의 공식적 부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후 주변에 흉물스러운 다리가 건설되면서 5년 만인 지난해 세계문화유산 목록에서 삭재된 독일 엘베계곡의 교훈이 떠오른다.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의 후속편(유유자적 거니니 선비가 따로 없네)을 보시려면 여기(http://hung.kookje.co.kr/501)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수영구 남천동 일본우동 전문점
                    다케다야(武田家)

 우동은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지만 실은 일본 말이자 일본 국수의 이름이다. 그럼 일본 우동의 본산은 어딜까. 시코쿠섬 가가와현이다. 43개 현 중에서 인구가 100만 명으로, 돗토리현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시골'이다.

 우동의 유래는 이렇단다. 804년 헤이안시대 당으로 유학간 홍법 대사가 우동 만드는 법을 배워 고향인 사누키에 전했다는 것이다. 당의 수도 장안(현 시안(西安))은 광대한 밀 경작지대로, 면요리가 특히 발달해 현지인의 도움 없이는 주문조차하지 못할 정도로 면 종류가 다양하다.

겉은 부드러우면서도 촉촉, 속속 쫄깃
반죽 기포 없애기 위해 발로 밟아 '족타면'
냉우동인 붓가께우동, 사누키우동의 진수

냉우동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붓가께우동 정식. 우선 일종의 간장소스인 쯔유를 붓고...
후루룩 드셔보세요. 한국에서 좀처럼 맛볼 수 없는 우동맛의 블루오션이죠.

 사누키는 가가와현의 옛 이름으로, 일본에선 우동의 본산으로 통한다. 시안처럼 기후가 따뜻해 좋은 밀이 생산되는 데다 국물맛을 내는 데 필수적인 멸치 다랑어 다시마 등이 풍부한 세토내해를 품고 있어 우동 탄생의 모든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가가와현 사람들은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간식 모두 우동을 먹는다. 재밌는 점은 지금도 가가와의 우동을 먹기 위해 열도 전역에서 순례를 올 정도다.

 이런 사누키우동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최근 부산에도 생겼다. 광안리해변과 수영구청 사이, 파파이스 맞은편에 위치한 '다케다야'(武田家·051-611-5711). 민현택(42) 대표가 가가와현 간장우동의 원조집인 '오가타'에서 3년간 허드렛일부터 반죽, 우동 제조에 이르기까지 도제식으로 배워 문을 열었다.

'오가타'의 사장부부와 함꺼한 민현택 대표.

'오가타'는 일본 간장우동의 원조집이다.


 민 대표는 "사누키우동의 매력은 쫄깃하고 차진 면발에 있다"고 정의했다. 그는 "밀가루 소금 그리고 물만으로 반죽한 후 발로 밟아(아래 사진) 숙성시켜야 기포가 없어지고 반죽의 탄력이 최고조에 달해 면이 쫄깃해지며, 이때 밀가루 속의 단백질 성분인 글루텐이 많이 생겨난다"고 덧붙였다. 수타면이 아니라 족타면인 셈이다. 면은 지금까지 국내외를 통틀어 본 면 중 가장 굵다. 촉감은 입술을 미끄러져 내려갈 정도로 굉장히 부드럽고 촉촉하지만 속은 씹히는 맛이 아주 많이 느껴질 정도로 탱탱하다. 한마디로 입술과 혀를 '희롱한다'.








     발로 밟아줘야 반죽에 기포가 없어져 면발이 더욱 쫄깃해진단다. 수타면이 아니라 족타면이다.
     민현택 대표.

메뉴판에는 크게 온우동류와 냉우동류로 분류돼 있다. 민 대표는 "한국사람들은 흔히 가께우동 등 온우동류를 선호하지만 가가와현 현지에선 8대 2 정도로 냉우동류가 인기"라고 말했다.

 냉우동류에선 일본인들이 가장 즐기는 것으로, 사누키우동의 진수인 붓가께우동(6000원)을 권하고 싶다. 냉우동을 먹어야 면발의 진면목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멸치 다시마 가쓰오부시 표고버섯으로 만든 원국물에 맛의 비결인 간장을 섞어 만든 쯔유(일종의 간장소스)를 부어 먹는다.

민 대표는 "가게를 열기 전 지인들에게 가가와 현지의 붓가께우동을 그대로 시식시켜본 결과 쯔유의 맛과 향이 너무 강하다는 평을 받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절했으며, 손님이 원할 경우 현지의 맛을 그대로 내놓는다"고 말했다. 쯔유는 우리네 모밀국수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깊은 맛과 향취가 묻어난다.

 모밀국수처럼 대나무발에 올려져 나오는 자루우동(6000원)은 붓가께우동에 나오는 쯔유에 쫄깃한 면을 모밀국수처럼 적셔 먹으며, 새우 등 각종 튀김이 곁들여지는 냉덴뿌라우동(8000원)은 쯔유에 비벼먹는 것이 차이점이다.
모밀국수와 모양이 비슷하게 나오는 자루우동.

 온우동류의 가께우동(6000원)은 흔히 우리가 아는 우동과 비슷하며, 가마아게우동(6000원)은 갓 삶은 뜨거운 면을 바로 꺼내 간장소스에 찍어먹는 일본가정식 우동이다. 일본 현지에서 공수해 온 전통 유부 맛을 느낄 수 있는 유부우동(6000원)도 맛있다.

가께우동 정식.

정식의 밥은 장어덮밥이다.

가께우동.


유부우동

냉덴뿌라우동


 우동에는 일본식 주먹밥인 조그만 오니기리가 함께 나오며, 우동 정식(1만1000~1만3000원)을 주문하면 샐러드 유부초밥 튀김 등이 나와 푸짐하다.

 
싱글로 가는 길
          고수에게 배운다

-동래 베네스트 파3 골프장
                   이재희 프로

 기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국내 여자 프로골퍼들과 라운드를 한 '영광'을 누린 적이 있다. 제법 장타자로 알려진 그들과의 라운드를 앞두고 겉으론 애써 담담한 척 표정관리를 했지만 심장이 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1980년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던 한국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월드컵에서 강호들과의 경기 전 주눅 들었던 그런 심정이었다면 적당한 비유가 될까.

 '창피는 당하지 말아야지'가 첫 목표였다. 덧붙이자면 '그간 갈고 닦았던 샷을 무심 타법으로 날리다 보면 어떻게든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으로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섰다.

 근데 웬걸. 드라이버 샷과 세컨 샷에서 기자의 샷이 오히려 더 멀리 나가지 않는가. 시합 때와 달리 몸도 안 풀고 부담 없이 나와 그렇겠지 생각했지만 이후에도 거리 차가 크게 줄지 않았다. 몇몇 홀에선 볼이 페어웨이를 벗어나기도 했고, 그린 앞 벙커에도 이따금 볼을 빠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리커버리 샷으로 파 세이브를 하지 않는가.

 스코어는 어땠을까. 프로는 70대 중반, 기자는 90대 초반. 여자 프로 선수와 주말골퍼와의 차이는 숏 게임 즉 어프로치와 퍼팅의 정확성에 있었다. 그 이면에 바로 15타가 숨어 있었던 셈이었다.

 결국 스코어를 줄이기 위해선 드라이버와 아이언 샷 대신 어프로치와 퍼팅에 용맹정진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팔로스로 크기와 타법에 따라 백스핀에 의한 런 차이나
퍼팅은 전체 스코어의 43% 차지…그린은 전체를 먼저 봐야
부산 유일 파3 동래베네스트 골프장 숏 게임 연습 천국

스코어 줄이는 데 숏 게임이 지름길

동래 베네스트 파3 골프장 이재희(35) 프로는 "스코어를 단기간에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숏 게임이지만 주말골퍼들은 이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정규홀에서 자주 라운드하면 실력이 금방 늘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숏 게임만 할 수 있는 파3 골프장을 찾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동래 베네스트 파3 골프장의 3번 홀(85m).

 2007년 6월 문을 연 파3 골프장인 동래 베네스트는 웨지와 퍼터만 하프백에 넣고 카트 없이 쉬엄쉬엄 걸으며 숏 게임을 할 수 있다. 가장 긴 홀은 97m, 짧은 홀은 55m이며 오르막, 내리막 홀에 해저드와 벙커를 두루 갖춰 정규홀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그린도 제법 까다로우며, 그린 주변에는 어김없이 러프와 함께 오르막, 내리막, 발끝 오르막, 발밑 내리막 어프로치 샷을 연습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 한마디로 숏 게임 연습의 천국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뒷조가 곧바로 따라오지 않을 경우 반복해 연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프로의 간략한 어프로치 강의가 시작된다. 주말골퍼들이 가장 간과하기 쉬운 것이라고 한다.

 그는 어프로치 샷을 배우기 앞서 대뜸 백스핀의 원리를 물었다. 이걸 먼저 알아야 된다는 것이었다. 속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자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임팩트 때 클럽 페이스의 그루브와 볼 표면의 딤플이 마찰을 일으키며 볼이 뒤로 도는 소위 백스핀이 생기죠. 하지만 볼이 러프에 있으면 클럽과 볼 사이에 낀 잔디가 백스핀에 방해가 되겠죠. 이럴 경우 백스핀이 덜 먹어 그린에서 런이 많이 생기겠지요. 근데 아마추어들은 러프 때문에 볼이 앞으로 나가지 않을 것을 고려해 평소보다 더 세게 치는 우를 범하지요."

 그의 강의는 계속 이어진다. "러프에서의 어프로치 샷은 왼손 그립을 조금 더 단단히 잡고, 백스윙은 평소보다 약간 가파르게 하고, 다운스윙 땐 평상시보다 코킹을 약간 더 오래 유지하면서 볼을 쳐야 합니다. 물론 런이 더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해 거리는 자신의 스윙크기에 맞춰야 하겠죠. 참고로 러프에서의 아이언 샷도 유의해야 합니다. 러프에서는 클럽 헤드가 잔디에 감겨 빨리 닫혀 흔히 훅이 나지요. 거리 또한 감소하지요. 이럴 경우 거리 손실을 막기 위해 한 클럽 크게 잡고 페이스는 약간 오픈시켜 4분의 3 스윙을 해야 합니다."

정상적인 어프로치 샷은 백스윙과 팔로스로의 크기가 1대 1(위)이지만 런을 인위적으로 줄이기 위해선 임팩트 때 끊어쳐 백스핀을 늘이면서 동시에 팔로스로 땐 발목과 무릎 사이쯤에서 멈춰야 한다(아래).

 이 프로는 어프로치 샷을 할 때 런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법도 소개했다.
 "정상적인 어프로치 샷의 경우 백스윙과 팔로스로 크기는 1대 1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팔로스로를 발목과 무릎 사이쯤에서 멈춰야 합니다. 원리는 임팩트 때 끊어쳐 인위적으로 마찰력을 증가시켜 백스핀을 늘리는 것입니다. 이때 손목 코킹은 유지하면서 클럽 페이스를 약간 열고 '아웃인(out-in)' 궤도로 쳐야 효과가 있습니다." 이는 제법 고난도 기술이어서 상당한 연습이 필요하다고 전제했다.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어서 실전에서 사용할 수만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이 프로는 모든 샷이 그렇듯 원리를 알면 쉽게 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왼발 내리막 어프로치 샷의 경우, 흔히 무릎 허리 어깨를 경사면과 나란히 하고, 자세와 클럽 페이스를 열고, 클럽은 한 클럽 짧게 잡고 '아웃인' 궤도로 쳐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서 이 프로는 기자에게 열린 어드레스 자세를 취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세를 오픈시키면 어깨도 자연스럽게 열리게 되며, 스윙궤도 또한 어깨라인을 따라 자연스럽게 '아웃인'으로 된다"며 "스윙궤도를 무작정 암기하려고 하지 말고 몸을 물 흐르듯 천천히 움직이면서 그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왼발 내리막 어프로치 샷 모습.

 그는 "어프로치 샷만 해도 경우의 수가 무진장 많다"며 "이런 경우를 대비하지 않고 그날그날 대충 치다 보면 구력에 비해 스코어는 결코 줄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퍼팅은 전체 스코어의 43% 차지

이 프로는 퍼팅의 중요성도 빠뜨리지 않았다. "퍼팅이 전체 스코어의 43%나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매일 집에서 연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퍼팅의 중요성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주말골퍼들은 퍼팅만 연습할 뿐 실전에서 그린 보는 법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흔히 초보 주말골퍼들은 홀과 볼 사이의 라인만 열심히 볼 뿐 그린 전체는 보지 않기 때문에 착시로 인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다는 것. 그린으로 다가가면서 먼저 그린의 전체 경사를 먼저 살펴보는 것을 잊지 말라고 충고했다.

 이와 함께 그린 바로 옆에 벙커가 있으면 그곳은 높고, 해저드가 있으면 낮다고 했다. 비가 온다고 가정할 때 설계자는 빗물이 벙커 쪽 대신 해저드로 흐르게 설계하기 때문이다.

 주변 지형도 살펴야 한다고. 주변이 확 트인, 바람이 잦은 곳에 그린이 있으면 이곳은 특히 잘 구른다. 바람이 그린의 수분을 빼앗아 딱딱해져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주변이 꽉 막혀 있고 옆에 해저드가 있다면 그곳은 특히 구르지 않는다.

 이 프로는 이렇게 강의를 끝냈다. "파3 골프장을 찾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입니다. 왕초보와 80대 초반 이상의 고수들(학생 선수 포함). 왕초보야 그렇다 치고 80대 초반들이 찾는 이유는 더 이상 스코어가 줄지 않는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숏 게임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꼭 와야 될 사람들은 왕초보와 80대 초반 그 중간의 골퍼들인데…."





 청마 유치환(1908~1967)은 부산과 적지 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우선 동래고보를 졸업했고, 22세 때 권재순 여사와의 결혼 후 1934년 부산으로 이주, 1년간 한 백화점에서 근무했다. 한국전쟁 땐 부산으로 피란, 경남문총구국대에 편입해 국군 제3사단 소속으로 종군했다.

 교편은 1937년 통영협성상업학교에서 잡기 시작해 1952년 함양 안의중학교 때 처음 교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경주 대구 등지를 거쳐 1963년 7월 부산 경남여고 교장으로 부임하며 부산에 정착했다. 이듬해 부산문인협회 회장을 맡았다. 1965년 영도 남여상(현 부산영상예술고)으로 옮긴 뒤 60세 때인 1967년 동구 좌천동 앞길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죽기 한 달 전 부산문인협회 회장에 재선됐고, 예총 부산지부장까지 맡았다.

 살아 생전 청마는 교가도 많이 지었다. 통영초등 통영고 통영여고 둔덕중 대구여고와 부산고 동래고 등등. 시비는 국내 시인 중 가장 많다. 만인의 연인이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부산에도 5개의 시비가 있다. 에덴공원과 동래고의 '깃발', 남여상과 부산진역 앞 수정가로공원의 '바위', 용두산공원의 '그리움' 시비가 바로 그것이다.

동래고 '깃발'

에덴공원 '깃발'



용두산공원 '그리움'

부산영상예술고(옛 남여상) '바위'



■"교장선생님이 아닌 시인으로 대했다"

청마를 교장으로 모신, 그래서 청마를 잊지 못하는 경남여고 35기 동기생들이 강갑회 교감과 함께 모자상 앞에서 청마를 떠올리고 있다. 왼쪽부터 허정임, 백월아, 남용강 씨.

지난 20일 오후 동구 수정동 경남여고 역사관. 머리 희끗희끗한 초로의 여성들이 모처럼 자리를 함께했다. 남용강 백월아 허정임. 올해 65세인 이들은 경남여고 35기 동기생으로, 청마 유치환이 교장으로 부임할 때 3학년이었다. 남 씨는 당시 학생회장이었고, 백 씨는 교장과 평교사로 13년간 모교에 근무했다. '문학소녀'였던 국어교사 출신인 허 씨는 청마를 가장 잘 기억했다. 그들은 "청마로부터 졸업장을 받은 두 기수 중 처음이었다는 사실이 우리 생애에 큰 행운이었다"며 소녀처럼 자랑했다.

 "여름에는 노타이로, 평소에는 베레모 비슷한 모자를 자주 쓰셨던 청마 선생님은 저희에게 '공부하라' 대신 '책을 많이 읽어라'고 늘 말씀하셨어요. 노벨문학상이 발표된 후 열린 어느 조회시간에선 수상자의 시를 낭송한 후 해설까지 해주신 로맨티스트였기도 했어요."

 허 씨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청마를 교장선생님이라기 보다 흠모의 대상으로 여겼다"며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교장실을 찾았다"고 기억했다.

 부임한 그해 겨울 청마는 수필집 '나는 고독하지 않다'를 발간했다. 책을 구입한 몇몇 학생이 교장실을 찾아 사인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후 교장실 앞은 한동안 쉬는 시간이면 길게 줄이 이어지는 진풍경이 일기도 했다.

 청마와 함께 찍은 사진도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나무와 꽃을 관찰하며 유난히 교정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청마는 학생들과 사진을 찍는 전속 모델이었다. 이날 허 씨와 백 씨는 오랫동안 고이 간직한 빛바랜 흑백 사진을 갖고 왔다. 백 씨는 "경여고 학생이라면 대부분 모자상 등 교내에서 청마와 함께 찍은 사진을 갖고 있다"며 "그때 왜 팔짱을 못 끼고 찍었는지 아쉽다"며 활짝 웃었다.

 청마 선생을 두고 당시 조순(시인) 국어선생은 수업시간에 농담으로 이런 말씀을 자주 했다 한다. "저렇게 멋있는 분을 두고 연애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공부만 하는 이 둔한 녀석들아!" 47년이 지난 지금도 청마는 여전히 그들에겐 영원한 노스텔지어였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청마는 말년 객지 생활 10여 년을 빼놓고 대부분을 고향인 통영에서 보냈다. 물론 젊은 시절이었던 일제강점기 때 평양 만주 부산 등을 잠시 전전하기도 했지만 그의 삶의 뼈대는 누가 뭐라해도 통영이었다.

 통영에서 청마의 발자취는 통영중앙우체국에서 가장 많이 묻어난다. 마흔을 바라보던 청마는 아홉 살 연하의 시조시인 정운 이영도(1916~1976)에게 20여 년간 5000여 통의 연서를 보냈는데 5년여 이 우체국을 이용했다. 청마는 잘 나가는 시인 겸 통영여중 교사였으며, 경북 청도가 고향인 문재와 미모를 갖춘 정운은 남편과 사별 후 딸 하나를 둔 과부였다. 통영으로 시집 온 그의 언니집에 머물렀던 것이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였다.

청마거리에 위치한 통영중앙우체국.

우체국 앞 우체통 옆엔 '행복' 시가 눈길을 끈다.


우체통 앞에서 보면 '시선집중'이라 적힌 옷집이 보인다.

길 끝나는 곳을 자세히 보면 초록색으로 적힌 '충무교회' 간판이 보인다.


 정운은 처음 수예점을 운영하다 이후 청마가 근무하던 통영여중 가사교사로 부임했다. 퇴근 후에도 수예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정운을 보기 위해 청마는 수예점이 훤히 보이는 우체국 창가에서 연서를 쓰고 또 썼다.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는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정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행복)
 
'파도여 어쩌란 말이냐/파도여 어쩌란 말이냐/님은 뭍 같이 까딱 않는데/파도여 어쩌란 말이냐/날 어쩌란 말이냐'(그리움)

 청마 사후 정운은 '탑'이란 시를 통해 그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너는 저마치 가고/나는 여기 섰는데/손한번 흔들지 못하고/돌아선 하늘과 땅/애모는 사리로 맺어/푸른 돌로 굳어라'

 지금 청마거리엔 정운도 청마도 없지만 당시 그들이 머물렀던 흔적은 남아 있다. 정운이 운영한 수예점과 그의 언니가 운영하던 약방 '박애당'은 우체국에서 바로 보이는 옷가게 '시선집중'터다.

 또 청마의 집필장인 영산장과 청마의 부인 권재순 여사가 운영하던 문화유치원(2000년 폐원)이 있던 충무교회는 우체국에서 세병관 방향으로 불과 50m 거리에 위 치해 있다. 도중 만나는 공영주차장은 두 사람이 가끔씩 찾던 옛 봉래극장 터다. 청마와 정운이 함께 근무한 통영여중은 충무교회에서 서문고개 방향으로 200m쯤 떨어진 붉은색 벽돌건물이다.

청마와 정운이 함께 근무했던 옛 통영여중 건물. 지금은 통영문화원이다.

청마거리 입구.


충무교회 내 옛 문화유치원.

충무교회 내 청마집필장인 영산장.

지금의 충무교회.


 통영시 문화예술과 김순철 문화예술담당은 "통영을 찾은 관광객 중 어디가 가장 인상적이었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청마거리라고 답한다"고 말해 통영에서의 청마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청마문학관은 청마거리에서 차로 10분 거리. 이곳에서는 청마의 유품과 각종 문헌자료 3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정운이 펴낸 서간시집 '사랑하였으므로…'와 '이영도 평전' 등 정운에 관한 자료와 사진도 보인다.

청마문학관 내부.

청마문학관 외형.

청마문학관 내 청마 흉상.


'멀지 않아 저 또한 당신 곁에 당신 모셔…'

'거제도 둔덕골은/팔대(八代)로 내려 나의 부조(父祖) 살으신 곳/적은 골안 다가 솟은 산방산 비탈 알로/몇 백 두락 조약돌 박토를 지켜…'.

거제시비공원 '바위'

거제시비공원 '낮달'

거제시비공원 내 청마흉상.


거제시비공원 '춘신(春信)'

거제시비공원 '동백꽃'


청마시비공원 시비와 흉상.

청마시비공원


 청마의 묘는 그의 시 '거제도 둔덕골'에서 밝힌 것처럼 선산인 거제 둔덕면 방하리 산방산 지전당골 산록에 위치해 있다. 묘지 입구 너른 터에는 청마 탄생 100주년 때인 지난 2008년 청마의 흉상과 함께 그의 역작 '행복' '깃발' '춘신(春信)' '행복' '바위' '낮달' '울릉도' '동백꽃' 시비가 너른 터를 동그랗게 에워싸고 있다.

 청마의 묘에 서면 남으로 둔덕만과 한산섬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묘를 감싸고 있는 송림 뒤로는 산방산이 솟아 있다. 지관이 아닐지라도 명당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가까이로는 둔덕면 어귀 방조제 둑과 마을을 연결하는 청마교와 청마 고향시비동산이 보인다.

청마 부부묘. 승학산과 백운공원묘지 때의 묘비도 함께 모셔 놓았다.
청마 부모 합장묘.

청마 부친 유준수는 천주교 신자였다.

청마가 모친에게 바친 사모곡.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청마는 원래 부산 승학산 기슭에 묻힌 후 동아대 하단캠퍼스 확장공사 때인 1981년 경남 양산 백운공원묘지로 이장됐다. 이후 그가 쓴 '멀지 않아 저 또한 당신 곁에 당신 모셔…"라는 '사모곡'의 바람대로 지난 1997년 이곳으로 옮겨 모셔져 있다. "그토록 목숨같은 사랑인데 어찌하겠어요"라고 살아 생전 대범하게 청마와 정운의 관계를 인정한 조강지처 권재순 여사의 묘와 함께. 청마의 부모 묘는 바로 옆에 합장돼 있다. 그 앞에는 청마가 쓴 '사모곡'이 오석에 음각돼 있다.
경남 양산 백운공원묘지를 찾은 청마의 조강지처 권재순 여사와 청마의 벗 박노석 시인.
정운 이영도의 오빠인 시조시인 이호우의 경북 청도 시비를 찾은 문인들. 우측이 청마, 앞줄 가운데가 정운.

 청마 탄생 100주년에 맞춰 개관한 2층 규모의 청마기념관에는 청마의 사진, 지인들과 주고받았던 서신, 교원 발령증 등 250여 점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거제청마기념관

거제청마기념관 외형

거제청마기념관 앞 청마시비와 청마.


출생지와 친일 논란…그를 위한 변명
언제부턴가 친일문제와 출생지를 논하지 않고선 청마를 제대로 다룰 수 없게 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취재 도중에도 이를 여실히 느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청마와 관련,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 결과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어 팩트만을 간략하게 전한다.

 우선 친일 문제. 지난해 11월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통해 홍난파 안익태 박정희 등 4389명을 친일 인물로 발표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청마와 관련해선 공청회까지 열어 갑론을박 했지만 결국 청마는 친일 논란에서 빠졌다.

 다음은 출생지 문제. 지난 2004년 대법원 민사소송 상고심 재판부는 "청마의 출생지는 거제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통영의 손을 들어주었다. 청마의 세 딸이 거제 측 원고였으며, 피고는 통영시장이었다. 이와 관련, 남송우 부경대 국문과 교수는 "이 재판에서 원고는 '청마의 출생지가 통영시 태평동'이라고 적힌 통영 청마문학관의 청마 연보를 삭제해달라는 것이었다"며 "출생지 자체에 대한 재판은 아니었으며, 이는 법원에서 판결할 문제가 아니다"고 견해를 밝혔다.

탄생 102주년 청마의 발자취 상편(교장선생님 청마는 당시 여고생들의 '영원한 노스탤지어')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hung.kookje.co.kr/497





- 부산외국어대 사회체육학부 
              김규동 겸임교수(하)


최우석 씨가 볼펜으로 목의 유연성을 테스트하고 있다.
목의 유연성을 늘이기 위해선 손바닥을 반대편 뺨에 댄 채 불편한 쪽으로 약 6초간 당겨주는 스트레칭이 필요하다.<이상 사진4>

어깨 허리 손목 등 아프면 스트레칭으로 회복 가능
매일 10분씩 한 달 정도 지속하면 변한 내모습 발견
"이게 무슨 도움되나" 싶어도 꾸준히 하면 확 달라져

50대 이상 시니어 주말골퍼, 고관절 유연성 점검해야

 몸과 스윙과의 관계를 언급하며 골프에 있어서 몸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난번 기사가 보도된 후 한 독자로부터 문의 전화를 받았다. 이 독자는 "이현주 프로처럼 국내 정상급 선수 말고 우리처럼 평범한 아마추어 골퍼들도 스트레칭으로 몸을 만들어 제대로 된 스윙을 할 수 있는지, 또 가능하다면 그 기간은 어느 정도 걸리느냐"고 물었다.

김규동(45) 부산외국어대 사회체육학부 겸임교수는 이에 대해 "우선 몸 상태를 점검받는 것이 중요하며, 증상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매일 10분씩 한 달 정도면 확연히 몸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운영하는 '하모니 더 골프' 연습장(051-703-7274)을 찾아 몸 만들기와 스윙 연습을 병행하고 있는 주말골퍼를 예로 들었다.

만년 '백돌이'가 보기 플레이어로 변신
   
 부산의 한 고교 교사인 최우석(50) 씨. 구력 3년의 최 씨는 한때 병원에서 골프를 치지 말라는 선고를 받았다. 스윙만 하면 어깨 허리 손목 발목 등이 차례로 아파 '움직이는 병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클럽을 놓았지만 마음속은 늘 허전했다.

우연히 알게 된 집 근처의 '하모니 더 골프'를 찾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상담한 후 스윙과 몸 상태를 점검받았다. 김 교수는 "최 선생의 스윙은 교단에 오래 있어선지 목과 어깨가 굳어 몸통의 회전을 이용한 스윙이 아니라 팔의 힘만으로 무조건 세게 치는 타입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특히 목의 유연성이 부족해 백스윙 때 공을 잘 보지 못해 헤드업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

답은 나왔다. 목의 유연성 향상이 과제였다. 목 부위와 관련, 독자들의 자가 진단도 가능하다. 입에 펜을 물고 좌우로 목을 돌려 70~90도 정도 돌아가면 정상이다. 하지만 왼쪽으로 돌릴 때 덜 돌아가거나 불편함이 느껴지면 백스윙에서 공을 잘 보지 못할 것이고, 오른쪽으로 돌릴 때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면 헤드업이 자주 발생한다.

김 교수는 "머리의 힘을 빼고 손바닥을 반대편 뺨에 댄 채 불편한 쪽으로 약 6초간 당겨준다.〈사진4〉 이어 번갈아서 양쪽으로 2~3회 실시하되 불편한 쪽을 더 많이 실시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횟수를 늘리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어 "막상 해보면 아주 간단해 '이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매일 꾸준히 한 달 정도 반복하면 눈에 띄게 달라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사의 몸 만들기 체험담은 아주 재밌다. "골프를 배우러 왔는데 처음엔 매일 스트레칭만 시켜 시간 낭비 같았어요. 어떤 날은 바로 타석에 들어서려고 하자 스트레칭을 하기 전에는 못 들어간다고 막는 거예요. 내 돈 내고 내가 하겠다는데도 말이에요. 결국 제가 두 손을 들었죠. '시키는 대로 해보자'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따랐지요. 한 달쯤 지나니 스트레칭을 열심히 했을 경우 통증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예전엔 연습을 한 달 정도 하면 어깨나 등이 아파 연습을 할 수 없었거든요. 세 달이 지난 지금 덕분에 만년 '백돌이'가 보기 플레이어 수준까지 근접했어요."

치킨윙 현상은 가슴 유연성 부족 때문   

가슴과 어깨를 연결하고 있는 근육의 유연성은 누운 다음 머리 위로 양손을 깍지 낄 경우 정상이라면 양 팔꿈치가 바닥에 닿아야 한다.

가슴 부위를 늘이기 위해선

문을 이용한 스트레칭이 필요하다.


 구력 2년의 직장인 이철호(42) 씨는 앞서의 최 교사보다 증세가 심한 경우. 골프 채널이나 책을 보며 나홀로 공부하며 볼을 친 그는 백스윙 때 오른쪽 어깨가 심하게 목 쪽으로 들리면서 동시에 가슴 쪽으로 움츠러진다. 연습장에서 흔히 목격되는 스윙의 소유자다. 이 스윙은 지적을 받고도 잘 고쳐지지 않는 폼이기도 하다. 이렇다 보니 이 씨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통증을 호소했다.

김 교수는 "이는 가슴과 어깨를 연결하고 있는 근육의 유연성이 부족해 생기는 현상"이라며 "백스윙 땐 어깨와 가슴이 제대로 돌려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이에 따른 보상작용으로 오른쪽 엉덩이가 뒤로 빠지고, 팔로스로 땐 왼쪽 엉덩이가 심하게 빠진다"고 설명했다.

집에서의 자가 진단 요령은 바로 누운 다음 머리 뒤로 양손을 깍지 낄 경우 정상적인 어깨라면 팔꿈치가 바닥에 그대로 닿는다.〈사진1〉 하지만 오른쪽이 바닥에 닿지 않거나 눌렀을 때 다시 올라오면 백스윙 때 어깨는 움츠러들어가 올라가고 팔꿈치는 닭날개 모양으로 들리게 되는 소위 치킨윙 현상이 생긴다. 반대의 경우에는 팔로스로 때 왼쪽 어깨가 움츠러들거나 올라가면서 동시에 치킨윙 현상으로 왼쪽 팔꿈치가 들리게 된다.

김 교수는 "이런 경우 가슴 부위를 늘여주는 느낌의 스트레칭이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문 가운데 서서 팔을 어깨높이로 올려 팔꿈치를 문틀에 고정시킨 후 몸통을 앞으로 쑥 내밀거나〈사진2〉, 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 지점에 양팔을 굽혀 고정시킨 후 푸시업을 하는 기분으로 몸통을 역시 앞으로 내밀면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두 달쯤 꾸준히 스트레칭을 했더니 스윙이 좋아진 것은 물론 아프던 어깨마저 호전되어 라운드를 하는 동반자들이 깜짝 놀라더라"고 활짝 웃었다.

50대 이상 시니어 골퍼들을 위한 조언 

50대 이상의 시니어 골퍼들은&#13;&#10;

유연성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오른발을 40도 정도 오른쪽으로 돌리면 몸은 왼쪽으로 돌려야 왼쪽 고관절 스트레칭 효과가 있다.<사진3>

 김 교수는 50대 이상의 시니어 골퍼들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대개 ▷피니시 때 왼발 앞 끝이 들리거나 돌아가는 경우가 많고 ▷백스윙 때 허리가 심하게 뒤로 빠지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엉덩이와 다리의 연결 부위인 고관절이 유연하지 못한 때문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진단이다.

혼자서도 점검이 가능하다. 다리를 어깨 넓이만큼 벌린 후 벽에 등을 대고 선다. 이때 등과 엉덩이는 벽에 닿고 허리와 발뒤꿈치는 벽에 닿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 발뒤꿈치는 바닥에 대고 앞 끝을 몸의 안쪽으로 돌려본다. 엉덩이는 벽에 붙이고 어깨도 고정시켜야 한다. 양발 모두 약 40도 정도 돌아가면 고관절은 정상인데 반해 만일 왼발이 적게 돌면 팔로스루와 피니시 때 왼발이 들리거나 돌아가며, 오른발이 잘 안되면 백스윙 때 골반이 오른쪽으로 회전이 원활하지 못해 허리가 뒤로 빠지거나 중심을 잘 잡지 못하게 된다.

고관절 유연성의 스트레칭 방법은 골반 정도의 넓이로 서서 허리에 양손을 올려놓고 늘리고자 하는 쪽의 발 앞 끝을 안쪽으로 돌려 고정시킨다. 스트레칭은 안쪽으로 돌린 방향의 반대쪽으로 골반을 돌려주면 된다.〈사진3〉

평소 피니시 때 왼발이 돌아갔던 기자는 김 교수와 함께 테스트를 해본 결과 역시 왼쪽 고관절의 유연성이 확연히 부족했다. 같은 연령대보다 빨리 고관절이 나빠졌던 것이었다. 해서 스트레칭을 매일 하고 있다. '싱글'을 위해서.



  
 
 

- 강서구 명지동 '배꼽 빠진 고기'


대나뭇살 16개가 들어가는 불판. 담양에서 공급받는데 불판 하나에 900원쯤 들어간다고 한다.


약간 데우면 수액 올라와, 그때 고기 올려야 맛있어
가격 거품 뺀 고기 맛있고, 유기농 싱싱한 야채 꿀맛
6만 원이면 4인 가족 한우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
서낙동강변 걸으며 산 너머로 지는 일몰 장관



 
  
도심에서 하는 가족 외식은 무미건조하다. 차를 타고 쪼르르 갔다가 주차장에서 겨우 몇 걸음 걸은 후 포만감만 안고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식당 음식이 소문보다 별로였다면 기분마저 개운치 못하다.

야채를 담는 식판과 불판이 딱 맞게 들어가도록 테이블을 제작하는 세심함이 돋보인다.

안주인 정성순 씨가 직접 가꾸고 요리한 유기농 야채.


안주인 정성순 씨. 경기도 강화 출신이리 이곳만의 별미 순무도 운 좋으면  맛볼 수 있다.

외형 전경.

서낙동강변 둑길.

이런 점에서 부산 강서구 명지동의 대나무 참숯구이 전문점인 '배꼽 빠진 고기'(051-941-4233)는 고마운 집이다. 녹산수문 인근 서낙동강변에 위치한 이곳은 우선 주변 풍광이 빼어나다. 녹산수문과 순아수문 사이에 위치하고, 바로 옆에는 서낙동강이 흐르고 그 옆으로 둑길이 펼쳐져 있다. 손님이 몰려 기다려야 할 때도 그리 짜증이 나지 않는다. 대기 번호표를 받고 유유히 강둑길을 거닐고 있으면 식당 측에서 연락을 주기 때문이다. 강둑길은 왕복할 경우 3㎞ 안팎이어서 식사 전후 산책길로 안성맞춤이다. 산과 강이 한데 어우러져 펼쳐지는 이 길은 아름답고 포근하다.

  이 강둑길은 계절에 따라 얼굴을 달리한다. 봄에는 주변에 쑥이 많이 자라 단골들은 아예 봉지와 칼을 준비해 오고 있으며 가을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강가의 갈대숲이 추심을 유혹한다.

'배꼽 빠진 고기' 안주인 정성순(51) 씨는 "해 질 녘이면 서낙동강을 온통 붉게 물들이다 산 너머로 지는 붉은 태양의 장관이 너무 아름다워 손님이나 주인 할 것 없이 모두 황홀경에 빠진다"고 말했다.

이름이 재미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배보다 큰 배꼽이란 말이 있잖아요. 한우직판장을 겸하고 있는 저희 집은 그 큰 배꼽을 제거해 가격의 거품을 없앴다는 의미지요."

메뉴판에는 차돌박이 안심 등심 등 각 부위가 조금씩 나오는 한우한마리(600, 900g)가 인기다. 각각 4만9000원, 7만3000원이다. 4인 가족이 한우한마리(600g)를 시키면 남을 정도로 푸짐하다. 부담 없이 한우를 맘껏 먹을 수 있어서일까. 이곳은 평일 저녁 때는 물론 주말이면 줄을 서야 하는 '수고로움'을 겪어야 한다.   
 
이 집만의 자랑거리가 하나 더 있다. 대나무 불판이다. 전남 담양에서 공수한 대나무살 16개가 사용돼 육즙이 오랫동안 남아 있는 데다 고기가 눌어붙지 않고 대나무 고유의 맑고 청정한 향이 배어 한우 특유의 맛이 살아 있다.

정 대표가 알려주는 대나무 불판의 활용법. "대나무살은 데워지면 수액이 생겨 윤기가 돌지요. 이때 적당히 고기를 올리면 돼요. 고기가 거의 다 익었을 땐 밸브를 돌려 숯불을 아래로 내리면, 다시 말해 불조절만 잘하면 종일 불판을 사용할 수 있어요."

밑반찬과 야채는 맛깔스럽다. 돌산갓장아찌, 부추지, 양파오이고추지, 된장박이 고추, 얼갈이 물김치 등은 하나같이 손이 자주 가고, 정 대표가 직접 유기농 재배한 용설채 상추 등과 여러 가지 종류의 고추는 고기 맛을 더해준다. 무한 리필되는 야채와 상차림 비용으로 3000원(13세 미만 1500원)을 내야 한다. 횟집으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초장값인 셈이다.

고기의 맛을 깔끔하게 해주는 천일염과 어린이들을 위한 스테이크용 소스까지 준비하는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한우 각 부위 및 국거리 곰거리도 싸게 판매한다.

참, 이 집 바깥 주인의 동생이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언더핸드 명투수였던, 지금은 마산 용마고 감독인 박동수 선수이다.

이런

자상함과

친절함이


 

배꼽 빠진 국밥.

정육점도 겸하지요.


좌절의 길, 고민의 길, 사명의 길

엄밀히 말하면 이순신의 백의종군로는 크게 세 군데로 나뉜다.
우선 ▷경남 하동에서 권율 도원수부가 위치한 합천 초계(지금의 율곡면)까지는 좌절의 의미가 짙은 순수한 의미의 백의종군로가 되겠고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초계에서 권율 도원수의 재가를 받아 정세를 살피기 위해 연안답사를 떠나는 길은 고민의 길 ▷연안답사 도중 진주 손경례 집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된 후 막중한 책임을 갖고 사천을 거쳐 전장으로 떠나는 길이 사명의 길이다. 산청~합천 구간은 갔던 길을 되돌아오기 때문에 중복되는 셈이다.

 
 백의종군로는 경남도와 (사)한국역사문화관광개발원이 고증을 통해 정비 중이지만 아직 미완성이다. 현재 산청 하동 진주 지역의 10㎞ 구간 정도가 도보로 탐방 가능하다. 해서, 현시점에서 백의종군로 답사의 들머리는 산청군 단성면 남사예담촌으로 불리는 남사마을.

 난중일기에 따르면 하동읍성에서 몸을 추스른 이순신 일행은 하동 옥종면 청수역을 거쳐 남사마을에 도착, 박호원의 집에 묵었다. 전통 한옥 30여 가구와 아름다운 돌담길이 인상적인 남사마을에서 박호원의 집은 걸어서 3분 거리. 조선시대 대사헌과 호조참판을 지낸 박호원의 집 입구엔 그의 재실인 '이사재'를 알리는 안내판과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 행로지'라 새겨진 안내석과 나란히 서 있다. 지금이야 이곳은 남사 고가와 남사천이 내려다보이는 평화스러운 곳이지만 노모를 잃고 왜구에게 짓밟혀 황폐한 들녘을 바라보며 걷던 이순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하늘도 이순신의 마음을 읽었는지 난중일기에는 이곳에 도착한 음력 6월 초하룻날은 비가 구슬프게 내렸다고 한다.

박호원 집에서 본 남사마을과 남사천.

박호원 집.


박호원의 집에서 하동 방향으로 고개를 살짝 넘어 4㎞ 정도를 걸으면 하동과 진주의 경계에 인접한 산청의 금만마을에 닿는다. 논길과 밭둑을 번갈아 걷고, 완만한 경사를 오르며 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이 구간은 대자연의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어 걷기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금만마을에서 1005번 지방로를 따라 덕천강을 끼고 5㎞ 정도를 걸으면 진주의 가장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수곡면 원계마을 손경례의 집에 닿는다. 이곳은 이순신에게 있어 가장 드라마틱한 역사의 현장이다.

손경례 집 앞마당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삼도수군통제사 재수임 사적비'.

손경례 집.


 잠시 여기서 당시의 시대 상황을 살펴보자. 이 즈음은 원균의 수군이 칠전량에서 대패, 조선 수군의 존립마저 무너진 상태였다. 이로 인해 왜군은 파죽지세로 조선을 유린했고, 이 땅은 또다시 아비규환의 공포에 빠졌다. 선조는 그제야 이순신을 다시 찾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했다. 손경례의 집은 이순신이 선조로부터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수임 교지를 받은 장소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백의종군이 끝나는 의미 있는 장소이다. 집 앞마당 한가운데에는 이를 알려주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삼도수군통제사 재수임 사적비'가 서 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이순신은 이후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으니…'로 시작하는 장계를 선조에게 올리며 전의를 다지게 된다.


 이순신은 손경례의 집에서 음력 7월 27일부터 8월 3일까지 8일을 머무는 동안 집 앞 '진배미'라 불리는 너른 들판에서 비록 군장을 전혀 갖추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휘하 장병들을 대상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결국 백의종군로의 여정은 이순신이 들렀던 시기와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경남도에서 현재 일반인을 대상으로 소개하고 있는 백의종군로는 여기까지이다.

 경남도 김종임 관광진흥과 역사문화담당은 "앞으로 백의종군로는 손경례의 집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이순신이 주변 정세를 살피기 위해 오르내린 봉우리인 정개산성을 다녀온 후 덕천강을 가로질러 하동군 옥종면 문암리의 문암정(강정)으로 이을 것이며 이럴 경우 거리상으로는 4㎞ 정도가 더 추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문암정에서 이순신 장군의 유숙지였던 곤양읍성의 객사 문루였던 사천 응취루(14㎞)와 하동읍성(8㎞) 방향으로 백의종군로가 각각 정비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러한 계획은 경남도가 이미 도로변 갈림길에 만들어놓은 백의종군로 안내석(아래 사진)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의종군로는 아직 정비 중이라 나 홀로  걷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20명 이상 40명 단체일 경우 다음카페 '백의종군길'(http://cafe.daum.net/wgill)에 신청하면 (사)한국역사문화관광개발원(055-251-4517)이 차량 제공과 해설을 무료로 해준다. 오는 9월 5일에는 선착순 500명을 대상으로 진주 진성중학교에서 집결, 백의종군로 탐방을 실시한다.
 
■ 한산섬 수루 위에서 떠올린 충무공

경남 통영은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가 가장 많이 남은 곳이다. 이 중 한산도는 섬 전체가 충무공의 유적지처럼 여겨지는 성지. 섬 바깥에서는 안쪽이 보이지 않지만 안쪽에선 바깥 해안의 동태를 감시하기 쉽고 배를 숨기기에 용이한 천혜의 요새여서 충무공은 여수에 있던 통제영을 이곳으로 옮겨와 3년8개월 동안 머물면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한산대첩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난중일기의 70% 정도가 이곳에서 쓰여졌다.

 흔히 장삼이사들은 "뭐 특별히 볼 게 있나"라고 하겠지만 하은주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꼼꼼히 살펴보면 작은 감동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새 단장도 해놓았다. 지난해 제승당으로 가는 1㎞쯤 되는 해안산책로는 걷기 편한 황톳길로 바뀌었고, 대첩문 입구엔 2명의 수군 조형물도 세워져 있다. 어정쩡한 미색으로 덧칠해놓은 제승당 건물도 전통 단청으로 깔끔하게 해놓았다. 경내에는 제승당 한산정 충무사 수루 등 여러 건물이 있으며 모두 통틀어 제승당으로 불린다.

대첩문 입구의 수군 조형물.

제승당 가는 해안산책로.


제승당 활터.

제승당. 난중일기의 70%가 여기서 쓰여졌다.


수루.

한산도 앞바다 거북선 등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에 일성호가는 나의 애를 끓나니'.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읊조려 보았을 그 유명한 우국충정의 '한산도가'의 배경인 수루(戍樓)에서 바라보는 한산도 앞바다는 410여 년 전 붉은 피로 물든 전장이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평화롭고 잔잔하다.

 제승당 옆으로 내려서면 조선 수군이 활쏘기를 연마했던 활터가 나온다. 전시에도 특별 무과시험이 치러졌던 곳이다. 사대가 바다 건너 145m 지점에 있다. 실제 해전에서 적선과의 사정거리를 측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전해온다.

 통영에 오면 놓쳐선 안 될 곳이 한 곳 있다. 지난 2008년 문을 연 거북선 문화재 연구소(055-648-7977)이다. 일몰이 아름다운 산양해안도로 입구, 폐교가 돼 버린 산양초등학교 회양분교를 리모델링했다.

거북선 문화재연구소 안광일 소장

김종임 경남도 관광진흥과 역사문화담당 사무관

거북선 문화재 연구소 전경


 한마디로 거북선 복원 작업의 산실이자 거북선에 대한 모든 것을 보고, 만들며 체험하는 곳이다. 체험관에선 안광일 소장과 전문강사의 도움으로 거북선 모형을 만들어볼 수 있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상설문화마당 프로그램' 지원금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 문의 통영시 관광진흥과(055-650-4532)
 한편 오는 11~15일 통영 일원에선 충무공의 구국정신을 기리는 한산대첩축제가 열린다.

남해서 노량해전 입체영상물 감상

이순신 영상관


돔형 입체영상관 내부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읍 방향으로 가다 보면 도로 우측에 노량해전에서 도망가던 적선을 추격하다 적의 총탄을 맞고 관음포 앞바다에서 순국한 충무공을 임시로 모셔놓은 이락사(李落祠)가 있다. 글자 그대로 '이 충무공의 목숨이 떨어진 곳'이다. '관음포 이 충무공 전몰유허'로 불리는 이곳은 그 동안 십중팔구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락사 바로 옆에 거북선 모양의 제법 큰 목조 건물인 '이순신 영상관'이 지난 2008년 개관했기 때문이다. 150억 원을 투입해 최첨단 영상관과 전시관을 꾸며 놓았다.

 138석의 관람석을 갖춘 돔형 입체영상관은 벽면과 지붕 전체가 스크린이어서 기존의 평면 스크린에서의 입체 영상보다 훨씬 더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상영작은 1598년 11월 최후의 전투였던 노량해전의 격전을 보여준다. 러닝타임 20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어른이 봐도 재밌다. 서울 곳곳에서 대여 문의가 왔지만 경남도와 남해군이 "직접 와서 봐라"고 큰소리를 칠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다. 이순신 장군이 탄 배의 깃발에 '충무공'이라는 문구가 보인 것이 옥에 티였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이락사 뒤 송림길을 500m쯤 걸으면 바다가 시원하게 열리는 2층 누각인 첨망대가 언덕 끝자락에 서 있다.

 눈앞에 보이는 지금의 관음포 앞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해 치열했던 노량해전의 격전지라는 사실을 실감하기 어렵다.

첨망대에서 본 관암포 앞바다.


이락사 첨망대.

이락사로 안내하는 송림길.


 
충무공의 발자취 좇아 구국의 길을 떠나다(1)편은 여길(http://hung.kookje.co.kr/491)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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