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운흥사 터줏대감 먹쇠
사람 나이로 치자면 80세
절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주지스님만 세분 모셔
불가의 계율 알고 있는지
짐승들 봐도 짖지도 않아
고기 대신 우유 빵 좋아해
먹쇠는 주인인 경담 스님이 주지실에 계실 때는 언제나 흰 고무신이 놓여 있는 댓돌 앞에서 보초를 서며 휴식을 취한다.
흔히들 '충견'이라고 하면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견공을 의미한다. 인간세계와 비교하자면 살신성인의 표본이라고 하면 될까. 오래전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오수의 개'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 견공들은 지금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지 않는다.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충견을 만나보았다. 이 견공들은 영리하고 사려 깊고 비범했다. 어쩌면 영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 한결같은 주지 스님의 그림자
경담 스님과 먹쇠와의 질긴 인연은 2004년 4월 스님이 이곳 운흥사 주지로 부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통상 절집의 개는 주지 스님이 떠날 때 함께 움직이지만 먹쇠는 4년만 살고 간 전임 주지 스님이 부임하기 전 이미 절에 있던 터라 떠나면서 그대로 두고 갔다. 먹쇠에게 경담 스님은 결국 세 번째 주인이었다.
예쁘게 보이려고 빗질하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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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중인 먹쇠. 절집개라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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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은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참 좋아요. 처음에는 미적미적하더니 제가 주지실을 들락거리자 서서히 주인으로 인정하며 자세를 낮추고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어요. 하루 만이었지요. 한 주인을 섬기는 진돗개와 달리 삽살개는 낯선 사람이 오면 상황 판단을 빨리하며 금방 친해지는 융통성이 있더군요. 어찌 보면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될 수도 있지요."
먹쇠는 그때부터 스님의 그림자가 됐다. 주지실에서 공부를 하거나 손님을 만날 때도 흰 고무신이 놓인 댓돌 앞에서 보초를 서며 휴식을 취했다. 기자가 찾은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래 산 부부는 표정만 보고도 속내를 알 수 있듯 먹쇠 또한 주지 스님의 표정만 봐도 알아서 척척 행동으로 실천한다. "신기해요. 흑갈색의 털북숭이인 먹쇠 얼굴을 보면 긴 털에 가려 코밖에 안 보여요. 어떨 땐 저놈의 표정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하며 저 혼자 씩 웃어요."
먹쇠는 아침 일찍 방문을 열고 나오는 스님의 복장만 보면 향후 스님의 일정을 파악한다.
평상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으면 혼자 좋아서 껑충껑충 뛴다. 뒷산에 가기 때문이다. 이때 먹쇠의 본분은 길 안내자. 항상 2~3m 앞서 가며 길 안내를 자처한다. 행여 스님이 꽃이나 풀을 관찰할 땐 옆에서 다소곳이 앉아 있는다. 스님이 속도를 내면 약간 빠른 걸음으로, 된비알에서 발걸음이 더뎌지면 스님의 보폭에 맞춰 항상 일정 간격을 유지한다. 도중 다람쥐나 토끼 등 날짐승이 보이면 본능적으로 짖으며 한 번쯤 뒤쫓아갈 법도 한데 무덤덤하게 스님과 행동을 같이한다. 절집에서 오래 살아 '살생은 금물'이라는 불가의 계율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럴 땐 저도 내색은 안 하지만 먹쇠가 도인처럼 느껴져요. 저도 먹쇠에게 배우고 있지요."
먹쇠는 스님이 출타 중일 때는 몰라도 경내에 있을 땐 절대 혼자서 산에 가지 않는다. "저와 절을 지켜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스님이 외출복을 입고 방에서 나올 때 먹쇠는 잠시 헤어짐을 아는지 가만히 서 있다. 스님이 "집 잘 봐"라는 말을 던지면 그저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 뿐 따라오지 않는다. 차를 타고 가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스님의 차 소리를 알기 때문에 돌아올 땐 주차장으로 달려온다.
저녁 식사 후 절 뒤 암자인 천진암을 찾을 때도 먹쇠는 그림자처럼 동행한다. 혹 늦을 것 같아 먹쇠를 절에 두고 차를 타고 가면 헤드라이트 불빛을 보고 언제 왔는지 천진암 주지실 댓돌 앞에서 밤 10시건 11시건 기다린다. 추운 겨울에도 변함이 없다.
먹쇠는 스님의 말도 잘 알아듣는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먹쇠는 기분이 좋을 땐 스님의 가슴까지 앞발을 올리며 아양을 떤다. 비가 올 땐 그만 옷을 다 적신다. 이럴 경우 스님은 정색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타이르면 그 다음부터 절대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다.
신도들이 많이 찾는 부처님 오신 날과 영산재 때를 제외하곤 자유의 몸인 먹쇠는 평소 장삼이사들이 절을 찾을 경우 다가가 냄새를 맡는다. 절대 물지 않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곤 주지실 앞에서 그들을 주시한다. 다만 그들이 이유 없이 주지실 앞으로 뛰어올 경우 아주 예민해진다. 어린이도 예외가 아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주인에 대한 보호 본능의 발로라고 스님은 말한다. 이따금 모자를 쓰고 화려한 색상의 등산복을 입어도 신경을 곤두세운다.
먹쇠의 식성도 특이하다. 개 사료를 먹이지만 절집 개여서 그런지 고기를 주면 잘 먹지 않는다. 대신 빵과 우유, 감자전 호박전 등 부침개류와 백설기 등 떡을 좋아한다.
개 사료를 주로 먹지는 고기는 별로, 빵과 우유를 좋아하는 먹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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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실 옆에 먹쇠 집이 있지만 주로 주지실 댓실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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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엔 그래도 개조심이라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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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을 배경으로 스님과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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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님은 먹쇠를 보면 마음이 아리다. 지난해 봄부터 행동이 서서히 느려지더니 가을쯤 되자 지금처럼 급격히 몸 움직임이 둔해졌기 때문이다. "제가 여기 생활 7년, 전 주지스님이 4년, 전전 주지스님이 9년을 살다 가셨어요. 전전 주지스님이 먹쇠를 데리고 왔지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을 못 하더군요. 5, 6년쯤 잡으면 결국 16, 17세라는 셈이죠. 최근 진주의 수의사 한 분이 절을 찾아 뒤뚱뒤뚱 걷는 먹쇠를 관찰한 후 인간으로 치자면 80세를 넘어 이제 수명을 다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제는 힘이 들어 산에도 제대로 동행하지 못하고 주차장까지도 겨우 와요. 그래서 요즘 제 마음이 편치 못해요."
경담 스님은 이런 말을 던졌다. "비록 이승에서의 인연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마도 저승에서 이 인연은 계속될 거예요. 그땐 제가 먹쇠를 위한 삶을 살아야죠." 그러면서 스님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먹쇠가 생을 마감하면 극락왕생하라고 염불을 하고 장례를 치러줄 겁니다. 양지바른 곳에 조그만 묘를 하나 쓴 후 49재도 지낼 것입니다. 조그만 비석도 세울 겁니다. 문구는 생각 중입니다."
한편 운흥사에는 먹쇠 외에 견공 두 마리가 더 있다. 대웅전 우측 한쪽에는 '지혜롭고 순하게 자라라'는 의미의 삽살개 '혜순'(6세)이가 있고, 주지실인 보광전 좌측 끄트머리에는 '운흥사를 잘 지키라'는 뜻의 진돗개 잡종인 '운수'(5세)가 있다. 아쉽게도 먹쇠처럼 수양이 덜 돼 낯선 사람을 보면 짖고 물 수도 있어 묶여 있다. 혜순이와 운수는 암컷이고 먹쇠는 수컷이다.
진돗개 잡종인 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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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살개 잡종인 혜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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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보 산꾼들들의 길잡이 흰둥이
용감무쌍해 보이는 흰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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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들이 쉴 땐 흰둥이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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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남 고흥 팔영산 산행 때 진돗개로 추정되는 견공이 들머리 격인 천년고찰 능가사 입구에서부터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좀 하다 말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일행이 도중에 멈춰 산세를 얘기하고 있으면 이놈도 기다리고, 다시 출발하면 그도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닌가.
역삼각형 얼굴에 꼬리가 등쪽으로 말려 있는 전형적인 진돗개여서 기자를 비롯한 일행은 '흰둥이'라 명명했다.
흰둥이는 경사진 가풀막을 오를 땐 기다려주고, 일부러 속도를 늦춰봐도 일정 간격을 유지한다. 능가사에서 출발한 지 50분. 마침내 주능선에 올라 휴식을 취할 때는 다소곳이 다가와 그냥 앉아 있다. 과자를 주면 조용히 그것만 받아먹을 뿐 더 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비범해 보였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을 때까지 안내하고 하산하는 흰둥이.
다소 오래 쉬니까 산행을 계속하자고 몸짓을 보낸다. 팔영산을 자주 찾는다는 한 산꾼이 지나치다 한마디 던졌다. "이놈이 다른 팀을 안내하고 있네."
그랬다. 흰둥이는 '팔영산 자원봉사 안내견'이었다. 흰둥이는 쇠줄이 걸려 있는 암봉 입구에 이르러서야 임무를 완성한 듯 아쉬움을 표하며 발길을 돌렸다.
하산 후 능가사 주변에서 흰둥이를 찾았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가끔씩 절에서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늘 절에 상주하는 것이 아니어서 우리도 잘 보지 못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산행팀을 안내하러 산으로 올라갔을까.
# 전설같은 숨은 충견들
현재 국내에 알려져 있는 충견의 사연은 시대와 배경은 달라도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주인은 개와 항상 같이 다닌다. 먼 길을 오가던 주인이 피곤해 잠시 눈을 붙인 사이 불이 난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자 개는 근처 웅덩이나 개울로 달려가 온몸에 물을 적셔 주인 주변의 풀숲을 뒹굴어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다. 개는 지쳐 끝내 연기에 질식해 죽는다. 잠에서 깨어난 주인은 쓰러진 개와 주변 정황을 살핀 후 개가 자신을 구했다고 슬퍼한다. 후대에 이 사실이 알려지자 마을 사람들이 견공의 동상이나 비를 세운다. 국내에는 그 같은 사연을 담은 충견 동상과 비석, 비각 동판 등이 여럿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전북 임실군의 '오수의 개' 의견비와 의견상. 오수면 면사무소 인근 시장통 내 원동산 공원에 있다. 고려 문인 최자의 '보한집'에 그 내용이 실려 있으며, 1972년 전북 민속자료 1호로 지정됐다. 임실군은 이 오수의 개를 주제로 매년 4월 말 의견문화제를 열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국내를 넘어 세계적 애견 성지로 자리매김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임실군은 문화관광과 내 관광애견계(3명)를 따로 두고 있다. 최근에는 의견공원도 조성했다.
주인 김개인과 오수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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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의 개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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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국밥의 원조로 불리는 경남 밀양시 무안면에도 의구비와 의견상이 있다. 무안면 마흘리 점동에서 지정마을로 넘어가는 나지막한 고개 정상에 300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의구비가 있다.
의구비가 눈에 잘 띄지 않자 건너편에 10여 년 전 밀양교육청이 의견상을 세워 놓았다. 주변 마을 사람들은 이 고개를 개고개라 부른다.
밀양 의견상. 사람들은 이곳을 개고개라 부른다.
부산에도 알고 보니 충견이 있었다. 금정구 회동동과 기장군 철마면을 잇는 개좌고개가 그 배경. 그 사연은 회동동에서 철마면으로 접어든 후 40m쯤 뒤 도로 좌측 큰 돌에 박힌 동판에 음각돼 있다. 다른 충견의 사연과 달리 주인인 서홍이라는 청년은 무척 효자였다는 점이다. 지금도 철마면 면사무소 인근 연구리 철마체육공원 게이트볼 경기장 옆에 서홍의 효자비가 남아 있다. 회동동 아홉산에서 개좌고개를 거쳐 이어지는 봉우리 이름은 개좌산이며, 개좌고개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 주변의 마을을 총칭해 개좌골이라 한다.
개좌고개의 사연을 적은 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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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군 연구리의 서홍의 효자비각 내 효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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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경북 구미 도개면의 의구총, 충남 부여 홍산면의 개탑, 전남 순천 승주읍 의구비 등이 있다.
일본 도쿄 시부야역 앞에도 의견상이 있다. 매일 저녁 역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던 '하치코'라는 개(아래 사진)는 주인이 사망한 후에도 10년간 주인을 기다렸다고 한다. 시부야의 대표적 약속 장소이다.
운흥사 먹쇠 이야기 전편(운흥사 주지스님과 삽삽개 먹쇠와의 아름다운 인연)을 보시려면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hung.kookje.co.kr/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