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봐도 저리봐도 사방이 온통 산·산·산 '산의 물결'
포항 죽장면 오지 중 오지…걷는 시간만 6시간30분 강행군
내륙과 바닷가 쪽인 청하 오가는 민초들의 물물교환로
시종일관 크고작은 봉우리 오르내림…어림잡아 15개 넘어

 구암산은 오랫동안 산꾼들이 찾지 않은 청정 그대로의 때묻지 않은 산이다. 사진은 구암산으로 가는 도중 만나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송 쪽의 주왕산 일대.
구암산에서 본 영천 쪽의 산들. 왼쪽에서부터 면봉산 베틀산 보현산이 보인다.

 포항의 최북단 죽장면과 청송 부남면을 가로지르는 구암산(807m).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낙동정맥은 태백 영양 청송 영덕 포항 영천 경주 등 경북 내륙을 동서로 가르며 남하한 뒤 부산의 몰운대에서 끝이 난다. 흔히 바닷가 쪽인 영덕 포항 경주 지역의 산들이 낙동정맥의 동쪽에 포진해 있는 반면 이번에 산행팀이 소개하는 구암산은 예외이다. 낙동정맥 서편의 내륙오지에 위치한 구암산은 남서쪽으로 베틀봉 면봉산 보현산으로 이어지는 보현지맥과 연결되며, 북서쪽으론 길안천과 용전천을 가르며 노래산 약산을 거쳐 이른바 54㎞나 되는 구암지맥을 일으켜 안동의 임하면에서 그 맥을 다한다.

이번 구암산 산행의 들머리는 포항시 죽장면 상사리. 이웃한 청송 현동면과 이어지는 포장로는 최근 완공됐지만 정작 포항에서 들어오는 진입로는 아직 비포장일 정도로 오지 속의 오지이다.

 마을 입구에서 조그만 구멍가게인 상사슈퍼를 운영하는 이태국(75) 씨는 "옛날엔 여기서 산너머 청송 부남면 양숙리 거두산(마을)을 거쳐 바닷가 쪽인 청하면으로 갔고, 청하에서도 이 주변에서 가장 큰 장이 열리는 청송 현동면 도평리까지 해산물을 갖고와 팔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씨는 19~20세 때인 1950년대 중반까지 이 구암산을 넘어 청하까지 가서 소금을 구입해 지게에 지고 왔다고 말했다. 결국 이 구암산은 내륙인 청송 현동 및 포항 죽장과 갯가인 청하를 잇는 민초들의 물물교환로였던 것이다. 마치 경남 하동과 함양을 잇는 그 유명한 소금길처럼.

이후 1960년대 초반 도로가 나면서 사실상 이 산길은 역사속으로 묻혔다. 최근 들어 포항·청도 시군 경계 및 보현지맥 종주자들이 이 길을 찾을 뿐 그 외에는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산꾼의 관점에선 이 점이 되레 장점이 될 수 있다. 발목까지 덮는 낙엽을 헤치며 청정 산길을 걷는 오지산행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새 중에 검은등뻐꾸기란 놈이 있다. 스님들이 하안거에 드는 5월부터 이 산 저 산 천지사방을 돌아다니며 울어대는 두견이과 여름철새이다. 이름은 잘 몰라도 아마 산을 자주 찾는 사람이라면 이 새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아! 이 소리' 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이 검은등뻐꾸기의 닉네임은 '홀딱벗고새'. 그 울음소리가 바로 '홀·딱·벗·고'라고 들리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홀·딱·벗·고'라며 네 박자로 울어대 최근에는 일명 '송대관새'라고도 불린다.

구암산에는 특히 검은등뻐꾸기가 많다. 인적 드문 한적한 산길, '홀딱벗고새'와 벗하며 '즐산'하길 바란다. 이 검은등뻐꾸기는 그 모습을 한번 보려고 살금살금 다가가면 이내 울음을 뚝 그친다.

아쉬운 점도 있다. 수년 전부터 구암산 자락에는 대규모 벌목이 진행되고 있어 일부 산사면이 벌거숭이로 변해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그 구간만 통과하면 때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묵은장맛과도 같은 전형적인 우리네 산길을 여유있게 감상할 수 있다.

산행은 죽장면 상사리 마을회관~점말(마을)~연일 정씨묘~경주 김씨묘~영천 황보씨묘~지능선~해주 오씨묘~주능선(611봉)~(벌목 현장)~폐 헬기장~구암산(807m·삼각점)~갈림길(구암산·보현지맥 분기봉)~임도~산길~임도~폐 헬기장~송이골 안부사거리(백고개)~임도~보현지맥 갈림길(671m)~잇단 묘지~잣나무숲~사과밭~도로~상사리 마을회관 순. 걷는 시간만 6시간30분 걸린다. 시종일관 고만고만한 잔봉의 오르내림이 심해 꽤나 힘이 든다.

상사리 마을회관 앞에 주차한 후 방금 지나온 다리를 건너 개울을 따라 걸으며 산행은 시작된다. 사과 및 대추나무밭을 지나면 낙엽송이 시원하게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17분 뒤 점말(마을). 한때 7가구가 살았던 이곳은 이제 대형 축사로 변해 있다. 점말을 지나면서부터 흙길로 변한다. 조그만 다리를 건너면 계곡길이 둘로 갈린다. 산행팀은 반듯한 좌측으로 향한다. 연일 정씨묘를 지나면서 길이 오간 데 없어 희미한 흔적만 따라갈 뿐이다. 산괴불주머니 애기똥풀 등이 보이는 평탄한 이곳은 가만히 보니 오래 내버려 둔 묵정밭. 까만 비닐이 덕지덕지 묻혀 있는 광경이 이를 입증한다.

어느새 길은 개울로 떨어진다. 좌측으로 물길 따라 한 굽이 돌면 희미한 길을 만나지만 이내 개울을 또 만난다. 이번엔 우측 대각선 방향으로 올라선다. 순간 길이 안 보이지만 7m쯤 나아가면 희미한 길이 나타난다. 이젠 고개를 숙이고 덤불을 헤쳐나간다. 이후 개울을 한번 더 지나 산길로 올라선 후 쓰러진 나무를 통과하면 영천 황보씨묘. 연일 정씨묘에서 22분. 주변 지형을 살피면 계곡합수부를 갓 지난 지점이다. 여기까지 오면 초입 길찾기는 사실상 끝.

이제 묘지 우측 뒤로 계곡을 뒤로한 채 올라선다. 꽤 된비알이다. 10여 분 힘겹게 올라서면 경사가 수그러들어 주능선인가 싶었더니 지능선이다. 다시 우측으로 향한다. 해주 오씨묘를 지나 된비알 돌길을 치고 오르면 마침내 주능선에 올라선다. 이제 우측(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좌 청송 부남면, 우 포항 죽장면'인 시군 경계 종주길이라 능선길만 따라 가면 된다. 간혹 종주 리본도 보여 별반 무리는 없지만 반복되는 오르내림은 각오해야 한다. 하산 때까지 줄곧 크고 작은 봉우리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40분쯤 뒤 좌측으로 시야가 트인다. 4~5m 아래 전망 바위에 서면 청송 쪽 주왕산과 포항 쪽 낙동정맥 및 동대 바데 향로산 등이 산의 물결을 이룬다.

계속되는 오르내림의 연속. 신갈 상수리 등 참나무 군락이 이어지는 가운데 발밑에는 곰취 취나물 등 산나물이 지천이다. 20분 뒤 한 굽이 올라서면 벌거숭이 산사면이 목격된다. 절골이다. 알고보니 허가받은 벌목 현장이다. 전량 종이공장으로 간단다. 3분쯤 내려서면 왼쪽에서부터 면봉산 베틀산 보현산 수석봉 작은보현산이 확인된다.

이 흉물스러운 벌목 현장은 산길 우측으로 25분 정도 이어진다. 도중 폐 헬기장도 지난다. 구암산 직전 산사면 아래엔 포크레인이 벤 나무를 옮기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벌목 현장을 지나 작은 봉우리를 하나 오르내리면 이내 구암산 정상. 폐 헬기장에서 21분. 삼각점이 있다.
  
여기서 비교적 반듯한 남서릉을 타고 776봉을 지나 28분 정도 따르면 갈림길. 리본이 많이 걸려 있는 길찾기에 유의해야 되는 지점이다. 구암산·보현지맥 분기봉으로, 왼쪽 다리방재(달의령)로 내려서는 시군 경계 종주길 대신 원점회귀를 위해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구암지맥 대신 보현지맥길로 가는 것이다.

10분 뒤 임도로 내려선다. 낙동정맥의 보현지맥 분기점인 가사령에서 다리방재를 지나 상사리 송이골로 연결된다. 바로 건너 능선으로 향한다. 5분 뒤 좌측으로 시야 트인 전망대에선 운주산과 침곡산이 보인다. 다시 임도. 앞선 임도에서 8분. 40m쯤 내려가 곡각지점 왼편 산자락으로 진입, 올라선다. 봉우리 하나를 살짝 넘으면 갈림길로 능선 분기봉이다. 임도에서 14분. 좌측 대신 우측으로 휘는 길로 내려선다. 다시 잔봉 두 개를 넘으면 폐 헬기장.

산행 도중 방금 먹이를 먹어서인지 몸통 부분이 두툼하게 부어오른 독사도 만난다.

헬기장에서 13분쯤 내려서면 놓치기 쉬운 갈림길. 직진 대신 원점회귀를 위해 우측으로 올라선 후 다시 우측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안부 사거리로 지형도엔 '백고개'라 표기돼 있다. 우측 송이골, 좌측 석계리로 내려서는 희미한 소로가 보인다. 주변이 말 그대로 송이가 많이 난다고 한다. 여기서 100m쯤 직진하면 다시 임도를 만난다. 백 번이나 굽어진다 하여 '백고개'라 불린단다. 체력이 부칠 경우 산길 대신 임도 우측을 따라 송이골을 거쳐 상사리 마을회관으로 원점회귀해도 된다.

바로 길을 건너 산으로 오른다. 경운기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임도급 산길이지만 연이어 두 개의 봉우리가 기다린다. 상당히 힘이 든다. 둘째 봉우리에선 우측 구암산 능선과 앞서 본 벌목 지대가 보인다.


다시 내려선 후 거친 바위길을 오르면 보현지맥 갈림길(671m). 안 보이던 리본이 보인다. 좌측으로 내려서면 옷재와 꼭두방재로 이어지는 보현지맥길, 산행팀은 원점회귀를 위해 우측으로 올라선다. 좌측 보현지맥 쪽은 사람이 제법 다녀 리본이 보이지만 이 길은 리본 하나 없는 미지의 산길. 다행인 점은 큰 무리없이 걸을 만하다는 것.

여전히 산길은 오르내림의 연속. 이장한 듯한 세 번째 묘지가 위치한 봉우리를 지나 네 번째 묘지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보현지맥 갈림길에서 40분. 이 길만 찾으면 산행은 사실상 끝. 다행히 산길이 열려 있다. 7분 뒤 묘지를 지나고 10분 뒤 산을 벗어나 사과밭을 지나 도로와 만난다. 상사리 마을회관은 여기서 4분이면 닿는다.


◆ 떠나기 전에 - 15개 이상의 잔봉들이 산행 내내 앞을 가로막아

포항에서 최고의 오지는 죽장면. 이 죽장면에서도 3대 오지가 있다. 보현산 베틀봉 면봉산 작은보현산이 감싸고 있는 두마리, 낙동정맥상의 통점재 가사령 및 내연산 향로봉 샘재 괘재령 성법령 등 고개로 둘러싸여 있는 상옥리, 그리고 보현지맥 넘어 별도로 떨어져 있는 구암산 아래의 상사리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두마리와 상옥리는 포항서 가장 눈이 먼저 오고 녹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산행 기점인 상사리 평지동. 주변 골짜기에 비해 마을 일대가 편평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민들은 포항공대 창업보육센터 분소(옛 죽장초등 상사분교)와 상사마을 작업장창고가 위치한 아랫마을을 시문, 상사리 마을회관이 위치한 윗마을을 평판이라 부른다. 국토지리정보원의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아랫마을 지점에 평지동이라고만 표기돼 있다. 참고하길.

산행팀이 경험한 구암산(九岩山)의 이름은 영덕 팔각산, 고흥 팔영산, 진안 구봉산과 같은 '과(科)'로 분류된다. 차이라면 변화무쌍한 기암괴봉이 산 이름의 앞의 숫자만큼 병풍처럼 비경을 선사하는 반면 육산인 구암산은 기암괴봉의 연속은 아니지만 적어도 15개 이상의 잔봉들이 산행 내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 해서, 별 무리없이 완주했다면 일본 북알프스나 말레이시아 키나발루 등 웬만한 외국의 명산 등정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장담한다.


◆교통편 - 대중교통으로 당일치기 불가…승용차 이용해야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주IC~포항 위덕대 7번 국도~울산 포항 7번~포항 보문관광단지~포항 7번~포항 울진 위덕대~포항 안강~영천 안강 양동마을 28번~안강 28번 우회전~대구 영천~영천 기계 28번~기계 31번 안강 68번~기계 31번 우측으로 내려선 후 우회전~청송 기계 서포항IC 31번 좌회전~포항시 기계면 안내판~청송 기계 31번 직진~청송 죽장 31번~한티터널~죽장면 안내판~청송 죽장 31번~청송 현동 31번 좌회전~죽장고교~LG주유소~합덕교~합덕리 삼거리서 상사리 마을회관(10.7㎞) 우회전~상사보건진료소(비포장로)~옷재(비포장끝)~평지동~포항공대 창업보육센터 분소 앞 우회전~상사리 마을회관 순.

대중교통편은 워낙 오지라 연계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당일치기로 불가능하다. 참고로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영천에 내려 이곳에서 청송행 버스를 타고 현동면 소재지인 도평(리)에서 하차한다. 도평에서 상사리까지는 하루 2회(오전 7시, 오후 2시)뿐이라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1만2000원 안팎.


 

 "남자들은 여자 운전자들을 일단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여자들만 탄 우리 차를 보고 하나같이 인상을 짓거나 아니면 손가락질을 하고 지나가요. 우리가 딱히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남자들이 그러겠어. 당신을 비롯한 아줌마들이 무슨 잘못을 한 것 같은데…."
 "무슨 소리. 당신도 여자 운전들을 무시하는 부류에 속하는 거 아냐."
 50대 중반을 향해 달리는 한 선배 부부의 대화입니다.
단순히 대화의 액면 내용만 듣고 보면 남자들이 100% 잘못을 한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약간의 곡절이 있었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모처럼 여자 동창생들이 모여 회가 맛있기로 유명한 삼천포로 가는 길이었나 봅니다. 50대 아줌마들이 다섯 명 탄 중형차가 고속도로 1차선을 달리고 있었답니다. 그것도 시속 100㎞ 약간 못 미치는 97~99㎞로 말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이랬습니다. "고속도로에선 시속 100㎞ 이상 달리면 안되잖아."
 그러니까 일정한 속도로 그야말로 교과서대로 달린 것입니다.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도 보지 않고 주위 교통 흐름은 애당초 의식하지 않고 애오라지 앞만 보면서 달렸답니다. 편도 2차선이건 3차선이건 4차선이건간에 꾸준히 1차선만으로.

현재 우리나라 고속도로에는 추월선 개념이 없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화물차가 버젓이 1차선을 달립니다. 이 상태로 나란히 가면 이들 차량 뒤에는 정체현상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위의 상황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면 이같은 현상이 발생하지요. 도심 2차선 도로나 마찬가지지요.
3차선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주일에 한번 정도 지방으로 출장을 가는 기자는 이런 경우를 자주 접했습니다. 정말 이 분들이 잘못이 없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런 분들 때문에 고속도로가 차량에 비해 정체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경험상 열에 넷 정도는 여성 운전자이고, 또 다른 넷은 노부부입니다. 나머지 둘은 이해는 가지 않지만 아저씨 운전자들입니다. 제가 6년 정도 매주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다녔으니 아마도 저보다 더 살아있는 데이터는 없을 것입니다.

 고속도로의 1차선은 추월선입니다. 즉 급한 용무로 빨리 내달려야 되는 차들의 경우 빠른 속도로 추월해도 된다는 차선입니다. 제가 만일 시속 140㎞ 정도로 달리고 있는데 속된말로 160~170㎞쯤 되는 '총알'이 달려오면 비켜줘야 고속도로가 정체현상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추월선의 개념을 모르거나, 운전자들이 백미러나 사이드미러를 전혀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추월선의 개념을 모르고 시속 100㎞로 여유있게 달리는 차들을 겨우 추월, 앞으로 나아가면 고속도로가 텅 비어 있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결국 고속도로에 차량은 몇 대 없지만 이 몇 대의 차량 때문에 정체현상을 빚고 있는 것입니다.

고속도로에서 황당한 경우가 또 있습니다.
4차선일 경우 대부분의 차들이 1, 2차선이으로 달리고 3, 4차선이 텅 빈 경우입니다. 
4차선일 경우에는 1차선은 당연히 추월선이고 그 다음부터는 속도 순으로 내달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니까 3, 4차선에는 대개 화물차들이 달리지요. 한데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선 3, 4선으로 가면 더 빨리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코미디같은 현상이지요.

4차선에서 차가 1, 2차선만 몰려 있습니다. 4차선에 한 대보이고 3차선엔 아예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는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면허계에선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부산시 남부면허계 김남훈 교수와 전화연결이 됐습니다. 그 또는 이 문제를 알고 있었습니다.
 

"면허시험에도 고속도로에서의 운전법이 출제되고 있고, 실제로 면허 정지나 취소된 분들을 위한 강의에서도 꾸준히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캠페인성으로 기사화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정말 문제는 심각합니다.
고속도로 정체로 인한 연료의 소비도 그렇고, 1차선으로 꾸준히 달리는 편한 백성을 추월하고자 무리하게 끼어들면서 발생하는 추돌사고 또한 그렇습니다. 

정말 언제까지 고속도로 운전 이렇게 해야 합니까.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뜰 앞 조그마한 연못에 오래도록 키우던 버들치가 밤새 하얀 배를 드러내며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상수도물 소독을 하라는 면사무소의 지침에 따라 재약산 내려오는 원수에 소독약을 넣었기 때문이다. 미물이지만 오랫동안 정이 들었는데.
달빛 가득한 빈 연못을 보고 있으니 콧등이 찡 해지며 무지함과 우매함이 뒤섞여 자책으로 다가온다. 소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무소유가 아름답다는것을 새삼 느낀다(중략).

배내골은 예부터 모기가 없는 청정 지역이다. 계곡이 깊고 물이 맑으며 여름에도 서늘해서 그런 것 같다. 하나, 배내골이 바깥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면서 모기가 제법 생기기 시작했다. 당연히 면사무소에서 방역을 하라며 연막소독기를 할부 구매하라고 해서 큰 맘 먹고 구입했다. 휘발유와 경유 살충제를 썩어 운전을 해보니 굉음과 함게 뽀얀 연기가 안개처럼 피어 올랐다. 어릴적 동네 한복판을 가로 지르며 연기를 뿜던 연막차 생각이 났다.
다음날 신기하게도 모기와 밤벌래가 거의 없어져 역시 기계값을 하는구나 하며 생각했는데 아뿔사 이게 웬일인가.
초저녁 하늘을 비행물체처럼 날아다니던 반디불이가 보이지 않지 않는가. 풀섶에서 한여름을 여유로이 노래하던 여치도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 나의 무지함속에 많은 곤충과 풀벌레들이 질식사 내지 중독사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래! 여태껏 그랬듯이 그냥 공생하며 살아야 겠다고(중략).

21년 전 배내골로 들어와 배내산장을 운영하는 '굴러온 돌' 김성달(55) 씨. 그가 도시인들이 소위 말하는 전원생활 내지 산골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종의 작은 에피소드이자 시행착오이다. 얼핏 그냥 읽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시골에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은 예이다.

황토집에 군불을 지피는 배내산장 산장지기 김성달 씨는 "전원생활을 도회지에서 생각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으니 여유있게 살펴보고 들어오라"고 말했다.
배내산장 마당의 김성달 씨. 등뒤로 보이는 느티나무는 김 씨가 21년 전 심은 것이다.
전원생활을김성달 씨가 직접 깎은 솟대.
김성달 산장지기 부부.


전원생활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충동적인 사람도 있지만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하나, 실제로 성공한 경우가 드물다. 아마도 꿈과 현실의 괴리와 컸던 데다 시골 생활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리라.

전원생활. 마냥 낭만적이고 멋있을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녀 교육문제나 시골의 쓸쓸함 때문에 망설이다가 포기하기 일쑤다. 김성달 씨로부터 전원생활을 잘 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둬야할 다섯 가지 필수 사항을 들어봤다.
참고로 김 씨는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배내골 원주민 어른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신임을 얻어 4년 전에는 '굴러온 돌' 중 처음으로 마을 당상제의 제주로 임명돼 당상나무 앞에서 지극 정성으로 넙죽 절하며 축원을 읽었다. 한마디로 시골에 들어와 정착에 성공한 도시인이다.


첫째 시골에 들어오기 전에 도회지에서 해보고 싶은 것은 빠른 시일 내에 다 해봐야 미련이 남지 않는단다.
돈이나 명예에도 저돌적으로 도전해보고 가무를 곁들인 술도 마셔보라는 것. 그래야 산골에 들어와도 딴 생각이 들지 않는다.

100m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도중에 그만 두면 또 뛰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등수에 상관없이 혼신의 질주를 했다면 미련은 별로 없을 것이다
출가한 스님도 어릴 적 아무것도 모르고 타의에 의해 머리를 깎고 동자승부터 시작할 경우 세월이 가면서 점점 바깥세상이 궁금해진다. 색이며 재물에 끌리는 것은 당연지사. 환속하는 스님들의 대부분이 이런 경우이다.
그러나 바깥에서 이것저것 해보고 난 후 어떤 계기로 입산한 스님은 최소한 득도를 하고 안 하고에 관계없이 승복을 벗지 않고 중노릇을 평생 한다는 것이다
 
촌집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촌집은 평수가 작고 또 여러 가구가 한데 모여 있기 때문에 그 속에 산다는 것은 시골 생리를 모르면 매우 힘들다.
시골 사람들은 순박하기는 하지만 단순하여 이해하기가 힘든 부분이 상당히 많다. 도회지사람과 달리 남의 일에 관심이 많아 어디서 무엇을 했던 사람이고 성은 무엇이고 나이는 몇이고 학벌 자식 등등 모든 것을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족속이다.
평소에는 별 말이 없는데 약주만 한 잔 하면 거의 매일같이 찾아와 했던 말을 또 하고 했던 얘기를 또 한다. 옛날에 자기 땅이 어디에 있었고, 자기 선친은 이 동네서 무엇을 했고, 굴러들어 온 너보다 우월하다는 등 녹음기를 틀듯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한다. 만일 안들어 주면 '박힌 돌'의 텃새가 아주 고약하기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
결국 시골로 오는 사람들은 자연에 가까워지고자 오는 것인데 자연과 가까워지기 전에 시골사람들한테 염즘이 나버리면 버틸 수가 없다. 시골 사람들과 좀 떨어져 작지만 나만의 세계를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집이 크면 절대로 안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도회지에서의 소외감을 느껴 시골에 오기 때문에 일종의 보상 심리 같은 것이 작용해 일단 큰 집이나 독특한 집을 짓기를 원한다. 하지만 집이 크면 관리가 힘들다.
풀을 뽑고 도색을 하고 청소를 하고 정리하는 일에 매여 내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나를 소유해 버린다. 집 관리인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정원은 하루에 20~30분 정도 관리만 하면 족하게 해라. 대신 산과 들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고매한 학자들에 따르면 한 사람이 땅의 기운을 다스릴 수 있는 면적이 4평이다. 개개인의 근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4명이 살 집은 결국 20평이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손님이 올 경우를 대비해 10평 정도의 별채를 지어 두는 것이 이상적이다. 구조는 황토로 군불 때는 방 하나와 스위치만 넣으면 되는 방 하나 정도에 나머지는 거실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전원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지리산 자락 어느 지인 집에 갔더니 300~400평 되는 정원에 고래등 같은 집을 지어 놓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우선 눈으로 봐서 볼거리는 충분하지만 고래등 같은 집의 기운이 사람의 기운을 다 잠식, 아침에 자고 나면 얼굴이 창백해진 모습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 근기에 맞는 집에서 자고 나면 얼굴이 도화꽃처럼 불그스레해 지고 눈동자가 희고 검은 부분이 명확해 진다. 경험이다.

풍수지리학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땅은 그냥 보면 땅이지만 자세히 보면 살기 좋은 땅과 살아서 손해를 보는 땅이 있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풍수이다.
풍수에서 사람이 죽어 묻히는 땅은 음택이라 하며 산 사람이 집을 짓고 사는 땅은 양택이라 한다. 음택은 땅의 기운이 중화돼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습하지도 않고 건조하지도 않는 땅이다. 시신이 묻히면 탈골할 부분은 깨끗이 탈골하고, 남아야 할 부분은 오래도록 남아 그 기가 후손에게 뻗쳐 발복한다고 한다.
양택은 배산임수에 좌청룡 우백호가 살아 있어야 하고 안산 또한 조화롭게 있어야 한다. 양택을 내 방식대로 표현하면 편안한 의자에 앉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의자에 편히 앉으려면 등받이가 튼튼해야하고 등받이 뒤에 여백이 없이 의자가 벽쪽에 놓여 있어야 한다. 이때 벽은 조산이고 등받이는 주산에 해당된다. 그리고 팔을 올릴 수 있는 팔받이는 좌청룡 우백호에 해당된다. 내 앞에서 조금 떨어져 내 모습을 바라보거나 내 얘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을 안산이라 한다. 방향은 동향이나 남향을 보고 앉아 있으면 이상적이다.
이런 자리는 좌우가 허하지 않아 삭풍이 들어 올 리가 없고 동남의 생기가 뻗쳐 생활하는데 가장 쾌적하다. 반대로 서북으로 앉는다면 면벽을 하고 앉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내 얘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학식이나 재물 명예 등이 나보다 높을 경우 내가 주눅이 들어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안산이 지나치게 높은 것과 같다.
집 뒤에 여백이 많아서 도로가 있다든가 천이 흐른다면 내가 앉아 쉬고 있는 의자 뒤에 위험한 물건들이 왕래를 하고 있어 눈이 없는 뒤쪽에서 항상 불의의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것과 같다. 또한 좌우가 무너진다는 것은 의자에 앉아 팔을 얹을 팔받이가 없다는 것에 해당되므로 심신이 고달프다. 유념해야 한다.

마지막 다섯 번재. 자연이 아무리 좋아도 하루 이틀이지 한 두 달 지속적으로 감흥을 줄 수는 없다. 어떤 이는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나 새소리가 그렇게 좋다고 극찬을 하더니 어느 순간 지겨워 죽겠다, 시끄러워 죽겠다고 야단이다.
자연은 좋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즐길 수 있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그림이나 야생화 키우기, 자연염색 아니면 조그만 찻집을 하든지 해야 자연 속에서 자연을 매개로 동질성을 가진 사람과 어울릴 수 있다.

 김성달 씨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인연과 연결되듯 좋은 환경, 아름다운 사람과 어울리는 것도 인연이다. 급히 서두러지 말고 앞서 거론한 다섯 가지 사항들을 가슴에 담고 두루 살펴보면 반드시 원하는 땅에서 아름다운 전원생활이 이루어 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급경사만 90분… 암릉 두른 정상 서면 백두대간 한눈에

도솔봉 정상에서 소백산 주능선을 조망하는 산꾼들. 정북으로 천문대가 위치한 연화봉과 비로봉 국망봉이 확인된다.

진정한 산꾼들은 국립공원을 잘 찾지 않는다.
빼어난 산세와 울창한 숲, 깎아지른 기암절벽과 황홀한 조망 그리고 잘 정비된 등산로와 이정표 등으로 ‘돈값'을 하는 국립공원에는 워낙 많은 장삼이사들이 찾아 되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과일껍질은 이내 썩는다며 아무렇게나 버리질 않나, 야생동물이나 주변 사람들을 전혀 고려치 않고 연신 ‘야호!'만 질러댄다. 진달래나 철쭉 등 꽃축제와 단풍 시즌에는 줄지어 올라야 할 정도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계곡에 발 담그고 그야말로 유유자적하게 신설놀음할 요량으로 떠났다간 낭패를 보기 일쑤이다. 돈은 돈대로 깨지고 기분은 기분대로 망치는 그런 시행착오는 한 두 번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국립공원이라고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세상사가 늘 그렇듯 예외가 있게 마련이다.
일명 ‘똥바람'이라 불리는 매몰찬 북서풍과 잦은 폭설 그리고 연분홍 철쭉 군락으로 상징되는 소백산 도솔봉이 바로 이 경우가 아닌가 싶다.

지도를 펴놓고 가만히 소백산 국립공원을 살펴보면 말머리를 빼닮았다. 마두(馬頭)의 입부분이 부석사를 품은 봉황산이라면 도솔봉은 목의 맨 아랫부분에 해당된다.

재밌는 점은 말머리를 한 가운데로 가르는 선이 백두대간이자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를 가르는 도경계이다. 참고로 백두대간의 소백산 구간은 갈곶산~마구령~미내치~고치령~늦은맥이재~국망봉~비로봉~제1연화봉~연화봉~제2연화봉~죽령~삼형제봉~도솔봉~묘적봉~묘적령 순. 봉황산은 대간에서 약간 비껴나 있다.

도솔봉은 펑퍼짐한 육산이지만 정상 일대만 바위절벽으로 둘러쳐진 암봉이다. 비로봉 국망봉 연화봉 등 죽령 이북의 봉우리가 여성스러운 육산인 점과 차이라면 차이이다.

소백산은 이제 철쭉이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있다. 머지않아 온 산이 연분홍빛으로 물들 것이다. 도솔봉도 예외가 아니다.
국립공원 소백산 홈페이지에는 철쭉 개화 상황이 매일 사진으로 올라온다. 하지만 소백산 최남단인 도솔봉은 한마디 언급조차 없다. 관리사무소 직원과 통화를 해도 마찬가지이다. 워낙 넓어 그곳까진 손길이 미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되레 플러스 요인이 아닐 수 없다. 한적한 철쭉 산행, 바로 이 점이 도솔봉의 매력인 것이다.

산행은 사동리(절골)~사동유원지 주차장~‘소백산' 대형 입간판~산불감시통제소~도솔봉(1314m) 정상~헬기장~묘적봉~묘적령~임도~계류~임도~임도차단시설~산불감시통제소~사동유원지 주차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4시간50분 안팎. 시종일관 외길인데다 이정표가 잘 정비돼 있어 길 찾기는 누워서 떡먹기다.


주차장의 도솔봉 등산안내도를 점검한 후 포장로를 따라 계류를 우측에 끼고 걷는다. 정면 저 멀리 살짝 보이는 봉우리가 도솔봉이다. 50m 뒤 갈림길. 소나무 가지에 안내 리본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 왼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산불감시 통제소를 지나 계류를 건너면 산길로 이어져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국유임도시설비와 ‘소백산' 대형 입간판을 잇따라 지나면 산불감시 통제소 앞 갈림길. ‘도솔봉 3.2㎞'라 적힌 이정표를 따라 계곡을 건너면 바로 소로가 열려 있다. 그간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길섶 잡목 가지가 얼굴을 스친다. 계류를 다시 한 번 건너면 본격 오르막 산죽길. 주차장에서 30분. 이때까진 가벼운 몸풀기일 뿐.

‘악!' 소리나는 지그재그 된비알로 접어든다. 조망도 없는 숲 터널이다. 정상까지 애오라지 오르막의 연속이다. 이 된비알이 산의 수려함을 돋보이게 하는 공신이겠지만 1시간30분이라는 지루한 급경사길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고행길이다.

그 고통은 연분홍 철쭉이 덜어준다. 2~3m쯤 되는 키 큰 연분홍 철쭉터널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철쭉 감상으로 위안을 삼자. 도중엔 해발고도가 표시돼 있고, 죽령에서 뻗어 내려온 백두대간과 하산길 능선 그리고 목적지인 도솔봉도 오름길에서 간간이 확인된다.

당개지치.

큰앵초.


피나물.

홀아비꽃대.



1시간쯤 지나면서 경사와 숲의 밀도가 동시에 낮아지며 한결 여유가 생긴다. 발 밑 곳곳에는 금강애기나리 천남성 둥굴레 윤판나물 큰구슬붕이 참꽃마리 노루삼 족도리풀 피나물 산괴불주머니 등 온갖 야생화가 눈길을 끈다.

해발 1290m쯤, 그간 안 보이던 집채만한 바위가 모습을 드러내 정상이 임박했음을 알려준다. 우측으로 에돌아 마지막 급경사 암릉을 힘겹게 오르면 마침내 상봉. 정상은 두 세 평 남짓한 바위절벽으로, ‘부산 산사나이들'이 최근 세운 조그만 정상석과 돌탑이 서 있다.
철쭉이 만개한 도솔봉에 서면 들머리 사동유원지와 방금 올라온 능선길을 가늠해볼 수 있다.
정상에서 본 소백산 주능선. 천문대가 위치한 연화봉이 또렷이 보인다. 

사방팔방 확 트인 조망이 일품이다. 정북으로 소백산 천문대가 자리한 연화봉과 비로봉 국망봉이, 그 아래로 죽령 그리고 죽령에서 삼형제봉을 거쳐 이곳 도솔봉으로 왔다가 다시 남으로 묘적봉 묘적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한눈에 펼쳐진다. 소백산 등로 중 가장 인기있는, 연화봉 아래 희방사 쪽 계곡도 확인된다.

하산은 동쪽 헬기장 쪽으로 향한다. 이제 백두대간길이다. 곧 갈림길. 왼쪽은 죽령에서 삼형제봉을 거쳐 도솔봉으로 올라오는 길, 산행팀은 오른쪽 암릉으로 내려가 왼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헬기장엔 단양군이 세운 정상석이 있지만 실제 정상은 앞서 봤던 지점이다.

하산길인 암릉에는 계단이 설치돼 있다.


돌탑이 서 있는 묘적봉.


이어지는 철쭉길을 지나면 제법 험한 암릉길. 대책이 안 섰던지 급기야 고무를 덧댄 계단길이 설치돼 있다. 두 번째 계단을 내려올 땐 정면 발 아래 영주시와 중앙고속도로가 펼쳐진다. 대간길 왼쪽은 영주, 오른쪽은 단양이다. 이 길 또한 연분홍 철쭉이 화려하게 나그네를 맞는다. 묘적봉(1148m)까지는 대략 50분. 조그만 돌탑 앞에 나무 팻말이 서 있다. 그 뒤로 도솔봉이 보인다.

하산길에는 마냥 걷고 싶은 순한 길을 만난다. 

하산길엔 철쭉의 향연이 펼쳐진다.



묘적령 가는 길이 이번 산행 중 가장 순한 길이다. 이 때문인지 철쭉이 가장 예뻐 보인다. 20분이면 닿는다. 이제 본격 하산길. 묘적령에서 직진하면 저수령. 산행팀은 원점회귀를 위해 오른쪽 사동리(절골·3.7㎞) 방향으로 내려선다. 훼손지 생태복원을 위해 옛 등로를 막고 침목으로 다리나 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벌깨덩굴 삿갓나물 등도 눈에 띈다.

15분 뒤 벤치가 있는 임도. 곧바로 길을 건너 절골로 내려선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낙엽송 숲을 지나면 계곡을 만난다. 나란히 걷다가 몇 차례 계류를 건너 우측으로 향하면 다시 임도. 앞선 임도에서 35분 걸린다.

임도에서 우측 사동리 방향으로 간다. 임도차단시설을 지나면 산불감시통제소에 닿고, 여기서 주차장까지는 12분 걸린다.

# 떠나기 전에 - 죽령~사동리 코스, 가이드 산악회가 애용
소백산 도솔봉은 대개 구름도 쉬어 간다는 아흔아홉구비 죽령(689m)에서 출발한다. 삼형제봉을 거쳐 도솔봉에 닿아 대개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로 하산한다. 다리힘이 좋은 건각들은 여기서 산행팀이 걸었던 묘적봉을 지나 묘적령에서 사동리로 하산하든지 아니면 능선 왼쪽으로 열린 영주시 풍기읍 전구리로 내려선다. 이 코스는 원점회귀가 안돼 가이드 산악회가 주로 애용한다. 승용차를 갖고 원점회귀를 원한다면 산행팀처럼 사동리에서 도솔봉을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면 된다.

소백산 철쭉제(단양권)는 23~31일 열린다. 특히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연분홍 철쭉이 장관이다. 참고로 영주권 소백산 철쭉제는 29~31일 열린다.

# 교통편 -  대중교통 당일치기 어려워

 대중교통편은 당일치기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이드 산악회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신대구·부산고속도로~대구TG~대전 도동 분기점~경부고속도로~중앙고속도 단양IC~단양 대강 구인사 5번 우회전~예천 사인암 좌회전~장림교~예천 단양온천~예천~장정리 단양온천(사동계곡 6㎞)~도솔봉 사동유원지 좌회전~사동리(절골)~사동유원지 주차장 순.

 사동리 가는 도중 단양팔경 중 하나인 사인암(사진)을 볼 수 있다. 사인암 삼거리에서 사동리는 왼쪽길이지만 잠시 오른쪽으로 300m만 가면 된다. 이정표가 친절하게 돼 있어 놓치기가 어렵다.

 사인암은 고려시대 시인 우탁이 사인(舍人·정4품) 벼슬에 있을 때 자주 휴양하던 곳으로, 조선 성종때 단양군수 이제광이 명명했다.

 70m쯤 되는 자색(紫色)의 수직벽에 수백 개를 헤아리는 기묘한 암석들이 가로 세로로 불규칙한 절리를 이뤄 절경을 선사하는 사인암은 절벽 끄트머리에 걸려 있는 낙락장송의 자태와 어울려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사인암을 끼고 굽이치는 골짜기는 특히 아름다워 운선구곡(雲仙九谷)이라 불린다. 

암벽에는 우탁의 친필 감회가 새겨져 있고, 시비에는 우탁의 탄로가(嘆老歌) 2수가 전한다. 그 중 세간에 널리 알려진 한 수를 소개한다.
'한 손에 막대잡고 또 한 손에 가시쥐고 / 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덩치 비해 골 깊고 능선 변화무쌍, 경주IC 진입 후 오른쪽 바로 보여
남산부석·상사바위 등 수석전시장, 상선암 마애불 등 볼거리 무궁무진

늠비봉 정상에 기단을 만들어 세운 늠비봉 오층석탑. 그 뒤로 경주시가지와 배리평야는 물론 구미산 선도산 옥녀봉도 시야에 들어온다.
경주팔괴의 하나인 남산부석. 큰 바위 위에 얹힌 부처님 머리를 닮은 바위가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명명된 이름이다.

산행 이정표 역할을 하는 '신라인의 미소' 와당.

 
 얼핏 보기에는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아담하고 평범한 산이지만 막상 품에 안겨 보면 그 살림살이가 예사롭지 않음을 금새 감지할 수 있는 경주 남산. 한 마리의 거북이 서라벌 남쪽 깊숙이 들어와 엎드린 형상이다. 이는 경주IC로 들어서자마자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로 확인 가능하다.

덩치에 비해 골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하며 발길 닿는 곳마다 기암괴석이 빚어져 있어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그래서 남산에 오를 땐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고 신경을 곧추 세워야 한다는 말이 회자된다. 시나브로 등로를 벗어나면 마애불이 기다리고, 바위를 타고 한 굽이 오르면 전망 좋은 암봉에서 석탑이나 석불좌상이 사바세계를 굽어보고 있다.

고려 이후 무관심 속에 오랜 성상을 보냈지만 남산에는 아직도 ‘산속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유물유적이 널려 있다. 동서 너비 4㎞, 남북 길이 10㎞, 둘레 24㎞에 불과한 아담한 산속에 이처럼 유물유적이 집중된 경우는 아마도 남산이 유일하리라. 지난 2000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도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듯 싶다.

순례길은 70여 개. 2년 전 공룡능선을 타고 고위봉을 거쳐 칠불암 신선암마애불 등을 둘러보고 원점회귀한 산행팀은 그보다 북쪽인 금오봉을 중심으로 또다시 성지순례에 나섰다.

구체적 경로는 경주시 남산동 통일전 주차장~서출지~화기물보관소~국사골~마애여래좌상~부석~순환도로~헬기장~금오봉(468m)~상사바위~바둑바위~황금대~부엉골(포석골)~부흥사~늠비봉(오층석탑)~금오정~순환도로~일천바위~보리사 마애여래좌상~석불좌상~갯마을 앞 버스정류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45분 정도지만 문화재 및 사연있는 바위들을 구경하다 보면 5, 6시간은 족히 걸린다.

통일전 주차장에서 서출지(書出池)와 무량사를 잇따라 지나면 사거리. 우로 100m쯤 가서 왼쪽 다리를 건너 화기물 보관소를 통과하면 남산 안내도와 함께 갈림길. 왼쪽은 남산순환도로, 산행팀은 ‘남산 부석 1.3㎞' 라 적힌 이정표가 가리키는 오른쪽 국사골로 향한다. 소나무와 진달래가 지천인 우리네 산의 전형이다. 우측 계류엔 물이 거의 말라 있다. 대숲을 통과하면 옛 굴바위 절터. 집채만한 바위 아래 자연굴이 있다. 진행 방향은 돌탑 쪽. 정면 저 멀리 경주팔괴의 하나로 손꼽히는 남산부석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제 지그재그 오르막 길이다. 9분 뒤 편평한 터. 순환도로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집채만한 바위를 우회하면 정면에 남산부석이 손에 잡힌다. 큰 바위 위에 얹힌 부처님 머리를 닮은 바위가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석 주변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그야말로 천태만상으로 솟아 있다. 편평한 바위를 돌면 우측으로 길이 열려 있다. 20m 내려서면 큰 바위 아래 양지바른 지점에 마애불. 보존상태가 의외로 양호하다. 이내 부석. 부석 아래 받침돌이 상당히 불안하지만 불국정토에 앉아 사바세계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장엄, 그 자체다.

한 굽이 올라서면 팔각정 터. 금오정에서 금오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만나는 지점이다. 건너편엔 금오정과 늠비봉 오층석탑이 각각 보인다. ‘남산관광일주도로 준공비'가 서 있는 지점을 지난다. 지도 상의 사자봉이다. 직진하면 남산순환도로. 왼쪽 금오봉 방향으로 간다. 헬기장을 지나 좌측 저 멀리 고위봉을 감상하다 보면 ‘금오봉 80m'라 적힌 이정표를 만난다. 우측으로 간다. 4분 뒤 금오봉 정상. 너른 터에 큰 정상석이 서 있고 전망이 없다.

             경주 남산 금오봉 정상.

하산은 포석정 방향. 왔던 길로 되돌아가 갈림길에서 직진한다. 곧 ‘←석불좌상' 이정표가 보이지만 실제론 길이 없다. 참고하길.

등로는 앞서와는 달리 부드러운 오솔길. 이 길은 등로 좌측 삼릉에서 상선암과 마애불을 거쳐 금오봉으로 올라오는 최단 코스로 남산 순례길 중 가장 인기가 높다. 도중 만나는 전망대에서 보면 상선암과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 그리고 배리들판의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배리들판 건너 경부고속도로 옆으로 흐르는 강은 형산강이다.

약수골 마애대불(8.6m)에 어어 규모 면에서 두 번째인 상선암 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5.2m).

상사바위. 높이 13m, 길이 25m쯤 되는 주름이 많은 큰 바위더미이다.

일순간 정면에 거대한 바위를 만난다. 상사바위다. 높이 13m, 길이 25m쯤 되는 주름 많은 큰 바위더미이다. 예부터 상사병에 걸린 사람이 이곳에서 빌면 완쾌된다고 전해온다. 상사바위 우측에는 조그만 감실과 그 아래 석불입상이 서 있다. 진행 방향은 상사바위 좌측. 곧 상선암 갈림길을 만나지만 무시하고 직진한다. 바위틈새를 통과하면 쉼터. 우측 너른 전망대가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바둑바위다. 얼마 못가 진주 강씨묘 인근의 전망대. 발 아래가 아찔한 절벽인 황금대다. 발 아래 포석정에서 해질 무렵 이곳을 올려다 보면 누런 빛이 발해 신라 때부터 신성시 돼 왔다 한다.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바둑바위. 전망이 아주 빼어나다.

이때부터 급경사 내리막. 20분이면 부엉골(포석골) 계류에 닿는다. 이 길로 하산하면 포석정, 산행팀은 계류를 건너자마자 곧바로 우측 늠비봉 방향으로 오른다. 부엉골 너른 반석은 가지산 쇠점골 오천평반석이 부럽지 않을 정도. 이 너른 반석을 오르다 우측 산길로 향하면 곧 갈림길. 좌측 계곡으로 떨어지는 험로로 내려서자마자 건너편 산길로 오른다.

늠비봉 오층석탑.

양지 바른 터에 위치한 부흥사를 지나 나무다리를 건너면 갈림길. 우측 급경사길로 오르면 곧바로 늠비봉 오층석탑을 만난다. 암봉인 늠비봉 정상의 바위 윗면을 잘라내고 깨뜨린 석재를 이용해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탑을 쌓아 올렸다. 경주시가지와 배리평야는 물론 구미산 선도산 옥녀봉도 보인다. 늠비봉 우측엔 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대형 의자바위, 정면에 보이는 산줄기는 산행팀이 방금 지나온 능선이다.

탑 좌측 송림으로 향한다. 대숲을 지나 10분쯤 급경사길을 오르면 금오정. 정자 현판을 보고 왼쪽엔 남산부석, 금오봉 정상, 상사바위가 손에 잡히고 우측으론 정면 토함산을 기준으로 10, 11, 2시 방향으로 각각 낭산 동대봉산 삼태봉이 확인된다.

금오정에서 돌길로 내려서면 다시 순환도로. 우측은 금오봉 가는길, 산행팀은 좌측으로 간다. 통일전 갈림길을 지나 150m쯤 뒤 우측으로 급경사길이 열려 있다. 탑골 가는 길로 이후 송림길이 무척 인상적이다.

13분 뒤 길 우측에 여러 개의 바위가 뒤엉킨 집채만한 바위가 서 있다. 일천바위다. 옛날 마왕이 난동을 부려 1000명의 백성들이 이곳으로 피했는데 때마침 홍수가 나 마왕은 떠내려가고 백성들은 무사했다는 전설이 서린 바위다. 마왕바위로도 불린다. 이곳에 서면 화랑교육원 뒷산임을 알 수 있다.

산행은 이제 막바지. 9분 뒤 갈림길. 우측은 새남산마을, 좌측으로 직진한다. 다시 10분 뒤 갈림길. 직진하면 옥룡암, 산행팀은 우측으로 내려선다. 긴 대숲터널을 지나면 산을 벗어나 보리사로 향하는 길 중간쯤으로 나온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보리사로 바로 내려서는 길은 없고 우회로를 조성해 놓은 듯했다. 보리사에선 대웅전 좌측에 위치한 보리사 석불좌상(보물 제136호)과 주차장에서 절 진입로 입구 좌측 대숲으로 250m쯤 오르면 만나는 마애여래좌상을 놓치지 말자. 절에서 통일전 가는 갯마을 버스정류장까지는 9분 걸린다.

              보물 제136호인 보리사 석불좌상.

# 떠나기 전에 - 늠비봉 오층석탑, 달빛기행 최고 감상 포인트

황금대에서 내려서면 만나는 부엉골은 남산8경 중 하나로 낮에도 부엉이가 울 정도로 험하고 깊은 골짜기다. 포석정에서 오르면 만난다 해서 포석골로도 불리는 이 골짜기는 최근 부흥골(富興谷)로 잘못 해석돼 늠비봉 아래 계곡에 위치한 절을 부흥사로 부르고 있다. 참고하길.

산행 중 인상적인 곳은 늠비봉 오층석탑. 매달 보름을 전후한 주말마다 열리는 '남산 달빛기행' 때 보름달을 감상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마지막 신라인' 고 윤경렬 옹이 펴낸 '경주 남산'(대원사펴냄)에는 이렇게 묘사돼 있다. '이 탑은 다른 탑과 달리 거칠게 정 자국을 남겨 인공미를 생략해 반자연 반인공으로 처리했다. (중략) 만약 이 탑을 박물관으로 옮겨 놓는다면 미완성품이지만 이 바위산에서는 완성품이다. 불과 7m 정도의 작은 탑이지만 100m 되는 산과 연결돼 하늘과 통하는 높은 탑으로 승화된다'.

들머리 서출지 주변에는 현재 배롱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서 있지만 7월부터 100일 동안 펴 있다는 백일홍과 연꽃이 찾는 이들의 넋을 잃게 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배롱나무와 연꽃이 만개한 들머리 입구 서출지.

# 교통편 - 노포동 터미널서 경주, 10분 간격으로 출발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경주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3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요금은 4000원. 들머리 통일전으로 이동하기 위해선 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 버스정류장에서 금아버스 10, 11번을 이용하면 된다. 10번은 18분, 11번은 16분마다 온다. 두 버스 모두 막차가 밤 9시대. 경주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는 10분마다 있으며 막차는 밤 9시50분.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경부고속도로 경주IC서 나와 포항 울산 보문관광단지 방향으로 계속 직진~울산 불국사 방면 7번 국도 우회전~통일전 화랑교육원 우회전~통일전 주차장 순.

산중에 앉아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용장사지 삼층석탑. 바위봉우리를 다듬어 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탑신과 옥개석을 얹었다. 그 모습이 장엄하기 그지없다.
경주 남산의 공룡능선. 작지만 아주 매섭다.
 

 경부고속도로 경주IC로 들어선 후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높지는 않지만 위엄있는 산줄기가 길게 늘어서 있다. 신라인들이 천년을 두고 다듬었던 경주 남산(南山)이다. 한마리의 금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편안히 앉아 있는 형상이다.

 4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로 이뤄진 남산에는 100여 곳의 절터와 80여 구의 석불, 60여 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것만 보물 13점, 사적 13개소, 중요민속자료 1개소 등 모두 44점이다. 한 굽이 돌면 미소를 머금은 마애불이,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석탑이 뭇객을 맞는다는 말이 설득력을 가질 만하다. 오죽했으면 `남산을 오르지 않고 경주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왔을까.

흔히 사람들은 남산을 두고 `산행'이란 용어 대신 `답사'란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순례길만 70여 개라는 표현이 너무 보편화 된데다 초등학생도 너무나 손쉽게 남산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산행팀은 이런 남산에 대한 통념을 뒤엎는 코스를 택했다. 가파른 비탈과 험한 바위벼랑, 그리고 변화무쌍한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는 예사롭지 않은 코스다. 현지 산꾼들의 입을 빌리면 `남산의 공룡능선'이다. 열에 아홉은 “와! 남산에도 이런 매서운 길이 있었나"라며 힘겨워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그렇다고 천성산이나 신불 및 간월산의 공룡능선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암릉 구간이 10여 곳, 크고 작은 봉우리가 8개 정도인 `아기공룡 둘리'의 등짝이기 때문이다.
산행은 용장동~공룡능선~헬기장~고위봉 정상~천룡사지(삼층석탑)~백운암~백운재~봉화대~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칠불암 마애석불~봉호재~임도~삼화령~(금오봉)~용장사지 삼층석탑~마애여래좌상~석불좌상~용장사지~설잠교~용장동 순. 걷는 시간만 5시간. 문화재 관람시간은 덤으로 보태면 된다.



용장골에서 출발했다. 산불초소 앞 `고위산'이라고 적힌 이정표를 따라 개울을 건너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10분 뒤 정면에 ‘상수도 보호구역’이라 적힌 플래카드와 철조망이 보이면 계곡을 건너 우측 산길로 향한다. 5m 뒤 왼쪽, 다시 10m 뒤 오른쪽으로 능선을 향한다. 곧 천우사 옆길. 이곳까지 왔으면 등산로 입구는 일단 찾은 셈.

동굴바위를 지나면서 공룡능선이 시작된다. 이 바위는 탁월한 전망대다. 고속도로와 용장리 마을이 발아래 보이고 벽도산과 단석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산죽길을 지나면 갑자기 앞이 트이면서 남산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화강암반이 곳곳에 드러나 있고 그 위에 운치있는 노송이 독특한 자태로 뽐내고 있다. 너덜을 넘으면 경사진 암반. 그 뒤로 암벽. 밧줄을 잡고 힘겹게 오르면 또 암벽. 이르기를 수 차례 반복하면 정면에 고위봉이 기다린다. 잠시 내리막이 이어지다 다시 암벽. `정말 공룡능선이 맞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헬기장을 지나면 이내 고위봉 정상. 들머리에서 1시간40분 정도 걸린다.

이후 길은 두 갈래. 왼쪽길은 곧장 봉화대로 가는 능선길. 산행팀은 정상석 뒤 우측길로 간다. 천룡사지를 가기 위해서다. 지금부턴 이정표가 잘 정비돼 있어 길찾기가 쉽다. 초소를 지나 내려오면 방금 지나온 공룡능선이 한눈에 펼쳐진다.
고위봉을 배경으로 서 있는 천룡사지 삼층석탑. 신라탑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산행 중 내려다본 경주 시가지.

고위봉에서 25분이면 천룡사지에 닿는다. 고위봉의 절경을 배경으로 산중 평지 6만여 평에 조성된 천룡사지의 백미는 역시 삼층석탑. 신라탑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탑에 닿기 직전에 본 이정표 `고위봉' 방향으로 간다. 천룡사를 지나 오거리와 연결되는 임도를 만나면 백운암 방향으로 간다. 절 입구 왼쪽에 열린 길을 택한다.

산죽터널이 환상적이다. 10분 뒤 사거리. 칠불암 방향으로 간다. 도중에 용장계곡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 길은 곧바로 칠불암으로 가고, 직진하면 봉화대를 들러 역시 칠불암으로 간다. 직진한다. 봉화골의 꼭대기에 위치한 봉화대는 지금은 흩어진 돌무더기만 남아있을 뿐 천년세월의 흔적은 오간 데 없다.

이어지는 능선길. 좌우에 시야가 트인다. 왼쪽은 고위봉, 오른쪽은 토함산. 10여 분 뒤 금오봉 갈림길. 바로 금오봉으로 가지말고 우측의 신선암 마애보살과 칠불암을 보고 가자. 내려가는 길이 일품이다. 바위 사이 소나무가 그렇고 건너편 암벽 위 노송의 자태가 한 폭의 동양화다. 지나는 길에 우측 토함산, 좌측 동대봉산 운제산이 보인다.
천길 낭떠러지 신선대 절벽에 조각된 신선암 마애보살.

8분 뒤 신선암 마애보살.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천길 낭떠러지 신선대 절벽에 부처가 조각돼 있어 마치 구름을 타고 있는 듯하다. 옛 석공의 노고가 한층 더했으리라. 발밑에는 칠불암. 가파른 산길로 15분쯤 내려가야 한다. 절벽을 등지고 반달처럼 깎아지른 병풍바위에 새겨진 삼존불과 그 앞의 모난 돌 4면에 조각된 사방불이 합쳐져 불리는 칠불암은 남산 불상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예술성이 뛰어나다.
남산 불상 중 예술성이 가장 뛰어나다는 칠불암.

다시 금오봉 갈림길로 돌아와 금오봉으로 향한다. 이른바 봉화대 능선으로 산행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주는 편안한 길이다. 35분 뒤 임도와 만난다. 통일전 쪽에서 올라오는 길로, 금오봉 턱밑을 지나는 관광임도다. 자연상태로 보존된 고위봉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10분 뒤 삼화령. 고위봉 금오봉과 함께 남산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봉우리를 지칭한다. 머리 위 삼화령 꼭대기에는 미륵불은 오간 데 없고 지름 2m의 연화대좌만 남아 있다.
용당사지 석불좌상. 머리가 없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7분 뒤 좌측에 용장사지 가는 길. 직진하면 금오봉 정상 방향. 왕복 30여 분 걸리므로 시간이 날 경우 다녀오자.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렀다는 용장사지에서는 삼층석탑, 마애여래좌상, 석불좌상을 잇따라 만난다. 이중 삼층석탑은 200m가 넘는 바위봉우리를 다듬어 하층 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상층기단을 쌓고 탑신과 옥개석을 얹었다. 산중에 앉아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모습이 장엄하기 그지없다.

밧줄을 타고 내려와 잠시 용장사지(금당터)를 둘러본 후 본격 하산한다. 산죽터널을 지나면 용장계곡(용장골). 고위봉과 금오봉 사이로 흐르는 용장계곡은 남산의 계곡 중 가장 깊고 맑은 물이 사계절 흐르는 곳. 지리산 계곡이 부럽지 않다. 김시습의 법호를 딴 아름다운 다리 설잠교를 건너 계곡을 따라 25분 정도 걸으면 산행 들머리인 산불초소 앞에 닿는다.

김시습의 법호를 딴 아름다운 다리 설잠교.



# 떠나기 전에 - 유네스코가 지정한 '불교 노천박물관'

국토정보지리원의 지형도에는 남산을 금오산(金鰲山·468m)과 고위산(高位山·494m)으로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삼국유사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고서에는 남산으로 많이 기록돼 있다. 경주남산연구소나 신라문화원 등 시민단체는 이러한 용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남산이란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남산 안에 금오봉과 고위봉이 있는 것으로 교통정리를 했다.
남산은 세계에서 가장 큰 불교 노천박물관.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그간 근교산 시리즈에서 남산은 몇 차례 소개됐다. 삼릉의 오붓한 산길, 천룡사지에서 틈수골로 가는 하산길, 봉화대에서 마석산으로 이어지는 때묻지 않은 능선길 등이 주요 등산로이다.

이번 코스는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공룡능선과 산행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동서방향의 고위능선과 남북방향으로 뻗은 봉화대능선, 그리고 남산 계곡 중 가장 깊고 맑은 계곡물을 자랑하는 용장골. 무엇보다 칠불암, 용장사지, 천룡사지 등 남산의 알짜배기 볼거리를 한번에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삼릉에는 '단감농원 할매칼국수집'(054-745-4761)이 있다. 우리밀로 만드는 칼국수다. 근처 10여곳 칼국수집이 있지만 원조다. 손두부 동동주도 일품이다. 골목 깊숙이 숨어 있어 물어물어 찾아가자.


# 교통편 - 경주서 봉계행 버스타고 용장서 하차
부산 노포동종합터미널에서 경주행 시외버스는 오전 5시30분부터 1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4000원.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선 봉계 방면 버스를 타고 용장에서 내린다. 500 503 505 506 507 508번 등. 들머리까지 15분 정도 걸린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나와 직진~35번 국도 언양 방면 우회전~나정 포석정 삼릉 지나 용장동 순. 길 우측에 '용장암소숯불' 큰 간판이 보이면 맞은 편인 왼쪽에 '용장사지 천우사 기와집밥상 고위산' 이정표 및 간판이 보인다. 좌회전해 하천을 따라 간다. 들머리 입구에 주차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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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베티, 일본 미요코 "어머님 아버님, 제 한국요리 솜씨 기대하세요"


필리핀 베티(왼쪽)와 일본 미요코(오른쪽). 가운데는 박경숙 실기 선생님.

우리나라 사람들도 쉽게 따기 어렵다는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 시험.
한국산업인력공단 부산남부지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한식조리기능사 시험 응시자의 필기합격률은 30~40%에 이르지만, 이론 시험을 통과한 수험생들만 볼 수 있는 실기시험의 평균 합격률은 겨우 15% 안팎에 불과하답니다. 10명 중 2명도 채 안 된다는 얘깁니다.

 시험의 특성상 독학은 사실상 불가능해 응시자들은 대개 일반 요리학원에 등록, 2개월 과정으로 이론과 실기를 배웁니다. 그런데도 이 정도 합격률밖에 나오지 않으니 꽤나 어려운 시험인가 봅니다.

 이와 관련, 지난 3월말 경남 함양에선 믿지 못할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한글과 우리나라말에도 서툰 외국인 결혼이민자 두 여성이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기 때문입니다. 화제의 주인공은 필리핀 출신의 데시에엠 베티(32)와 일본서 온 야마모토 미요코(40) 입니다.

 어떻게 해서 시험에 합격했냐구요. 이 두 아줌마는 함양군에서 군민들을 대상으로 매년 개최하고 있는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반에 등록했답니다. 이 과정은 군이 지역 특산물인 머위 두릅 참죽 등을 응용한 요리를 널리 알리기 위한 기초 단계로 8년 전부터 개설, 지금까지 시행해오고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베티의 경우 딸 셋에 현재 임신 중이며, 미요코 씨는 슬하에 2남 2녀를 둔, 요즘 함양군으로 봐선 당연히 상을 줘야 할 다산(多産) 여성이라는 겁니다. 보통 우리나라의 젊은 주부라면 아이 뒷바라지 하느라 제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벅찬 악조건이지만 이들 두 외국인 여성은 애기를 업고서라도 수업에 참가하는 열정을 보여줘 주변 사람들의 감탄케 했답니다.

 베티와 미요코는 하나같이 "애기를 데리고 가면 실기의 경우 직접 해볼 수는 없지만 대신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선택"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그렇다면 베티와 미요코는 이토록 힘든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한식조리기능사 시험에 왜 응시했을까요.

 남편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한국음식을 배웠지만 하면 할수록 큰 벽에 부딪혔답니다. 그들은 자녀들을 위해, 남편을 위해, 나아가 시부모님에게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떳떳하게 대접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결국 한계에 이른 것이었죠. 마냥 인스턴트 음식이나 된장찌개 김치찌개만 늘 내놓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우리와 정서가 다른 필리핀이나 일본 음식만을 반복해서 상 위에 올릴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애오라지 남편만 믿고 이역만리 한국으로 날아온 이 여성들의 작은 몸부림이 결국 한식조리기능사 시험으로 귀결된 셈입니다.

  베티와 미요코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수줍으면서도 야무지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한식조리기능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배운 여러가지 요리 중 하나를 골라 시부모님께 직접 해드리고 싶어요."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베티와 미요코의 작지만 아름다운 가족 사랑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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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신 3개월의 필리핀 데시에엠 베티 "좋은 며느리 아내 엄마 될래요"

주변 우려 불구 한식조리기능사 시험 당당히 합격
이론 및 실기 선생님과 남편 외조 덕분이라며 겸손
"이번엔 반드시 아늘 낳아야" 한국인 거의 다 돼
"직업도 갖고 싶고 온 가족과 함께 여행도 가고파"

현재 임신 3개월인 베티네 가족이 모처럼 집 근처 함양 상림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함양군 요리강좌에서 동료 수강생 아주머니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베티(가운데).

마냥 신이 난 막내 노미(4).

요리하는 베티.

 

베티(오른쪽)와 미요코.
오른쪽부터 베티, 박경숙 실기 선생님, 미요코.

 데시에엠 베티(32)의 첫인상은 사랑스럽다. 쌍꺼풀진 왕방울만 한 눈, 수줍은 듯하면서도 늘 떠나지 않는 미소. 그녀와 단 5분만 대화하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갖게 된다. 필리핀 민다나오섬 출신인 베티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 아래 9남매 중 맏이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고등학교까지 마친 그는 낮에는 조그만 마트에서 일하고 밤이면 여덟 동생을 돌봐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살았다.

 한국과는 6년 전인 지난 2003년 인연을 맺었다. 신랑은 먼저 한국으로 시집간 같은 마을의 아는 언니 남편의 소개로 만났다.
 "사진을 봤는데 첫 인상이 좋았어요. 만나보니 괜찮았어요. 가족들과 헤어지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제가 잘 돼 고향의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결심을 굳혔어요."

 전문대를 나온 남편과의 의사소통은 영어와 보디랭귀지였고 이마저 막히면 사전에 의지했다. 요리는 남편에게서 배웠다. 거창서 농사를 짓는 시부모님은 한 달에 두 번 찾아뵙지만 외국서 온 며느리가 뭘 하겠냐며 직접 요리를 다해 배울 기회가 없었다.

 낯선 땅 한국에서의 삶도 버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타일 기술자인 남편을 따라다니며 일을 도왔다. 힘들었다. 하지만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나아 계속 따라다녔다. 임신이 되면서 일은 그만 뒀다. 약간 무료했지만 조국 필리핀에서 온 여성들과의 모임에 나가면서 차츰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시민연대'라는 단체에서 주최하는 한글공부방에도 나갔다. 당시엔 한글공부보다 필리핀 등 외국인 결혼이민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좀체 빠지지 않았다. 염불보단 잿밥이었다.

 한국 국적은 뒤늦게 취득했다. 결혼 후 2년이 지나면 취득 가능했지만 베티는 스스로 연기했다. 필리핀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베티는 딸 노미(4)를 낳고 비로소 한국인이 됐다.

 이후 베티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 계기가 찾아왔다. 집 근처 성민보육원에서 외국인 이주여성들을 위한 한국어 및 한국요리 강좌에 우연히 나가면서부터였다. 보육원에서 이주여성을 담당하는 이휘숙 씨가 베티의 밝은 성격과 총명함을 알아보고 군에서 실시하는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반을 권했던 것.

 "처음엔 제가 어떻게 그런 시험을 칠 수 있을까 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곧 생각을 바꿨어요. 한국요리를 많이 배워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시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맛있는 요리를 대접할 수 있으면 좋지 않겠어요." 수업료 14만 원은 성민보육원에서 제공했다. 일반 요리학원의 경우 수업료(이론 실기 포함)는 대개 100만 원 안팎이다.

 올 1월부터 베티는 한식조리기능사 시험 수험생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너무 어려웠다. 한글도 서툰 상태에서 시작한 이론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 포기하려고 했지만 이론 선생님인 이현지(창원전문대 외래교수) 씨가 큰 도움을 줬다.

 "생각해 보세요. 식품학 영양학 조리원리 등 준비해야 할 과목만 5개예요. 일반인들이 한두 달 공부해도 벅찬데 베티가 제대로 따라올 수 없는 것은 당연했지요. 여기에 군에서 배당된 이론 수업은 2시간씩 10번밖에 없었어요."

 이 교수는 시쳇말로 쪽집게식 문제풀이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다. 베티의 경우 수업을 마친 후 별도로 과외를 하다시피 했다. 워낙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강해 이 교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시험이 임박했을 땐 최후의 수단으로 기출문제를 통째로 외우도록 했다.

 남편의 도움도 컸다. 어려운 단어가 나올 땐 일일히 도와줬고 집안일과 아기 보는 일도 거의 도맡아 했다. 이와 관련, 남편 임영노(39) 씨는 "뭐든 스스로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어서 제가 특별히 한 것은 없다"며 부인을 치켜세웠다.

 부산에서 본 첫 시험에선 합격선인 60점에서 7점이 모라자 쓴 잔을 마셨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 교수도 첫 결과를 보고 자신감을 가졌다. 보름 뒤 창원에서 본 두 번째 시험에선 당당히 합격했다. 이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거의 '기적'이었다.

 이젠 실기 차례. 예시된 51가지의 한식요리 중 2가지를 주어진 시간 안에 완성해야 되는 시험이다. 역시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일정상 하루에 두 가지 이상을 소화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실기 강사 박경숙(뉴영남요리직업전문학교 원장) 씨는 베티를 이렇게 떠올렸다. "항상 '선생님 못 알아듣겠어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어요. 그래서 가까운 자리에 두고 특별지도를 했지요. 임신 중이라 오래 서 있지도 못하고, 아기도 가끔씩 데리고 와 요리하느라 아기보느라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최악의 조건이었지요. 동료들이 번갈아 도와주지 않았으면 아마 중도에 포기했을 거예요."

 실습 시험의 과제는 돼지갈비찜과 무쑥장아찌. 양념순서 요리과정 맛 색깔 위생 등 감독관이 까다롭게 채점을 했지만 베티는 덜컥 그것도 한 번만에 합격했다. 두 번이나 '기적'이 찾아온 것이었다.

 지난해 베티는 가정에 식구가 한명 더 늘었다. 그간 할머니집에 살던 전 부인의 딸 연정(12)이가 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말도 잘 듣고 동생 희정(6)이와 노미(4)를 잘 돌봐줘 무척 고맙다고 했다.

 베티는 이번 어버이날 즈음 해서 거창에 계신 시부모님을 찾아 한국요리를 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좋은 며느리,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돼 따뜻한 가정을 꾸미고 싶어요. 직업도 갖고 싶어요. 그리고 항상 바쁜 남편과도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도 가보고 싶어요."

 그리곤 약간 나온 배를 만지며 "이번엔 아들을 낳아야 할 텐데"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문득 한국인이 다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티가 만든 잡채

베티가 만든 잡채(오른쪽)와 미요코가 만든 쇠고기 불고기.

 궁금했다. 사실 요리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래서 즉석에서 요리를 부탁했다.
잡채였다. "필리핀도 한국의 잡채와 비슷한 요리가 있어요."
 차이점은 우리가 흔히 쇠고기를 사용하는 데 반해 필리핀은 돼지고기와 양배추를 많이 넣는 것이 특징이다. 오이나 당근을 채 써는 솜씨나 당면을 삶고 찬물에 헹궈 양념해서 볶는 솜씨가 너무나 자연스럽다. 맛은 우리나라 잡채와 큰 차이가 없다. 양배추가 많이 들어가 오히려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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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남2녀 둔 '또순이' 야마모토 미요코 "아이들은 요리사, 남편은 장금이래요"

통일교 신도...종교적 신념 때문에 한국과 인연
끊임없는 노력파...정이 많고 차분, 예의도 발라
취업 생각 없고 시부모 남편 아이 위해 요리할 터
"이 세상에서 뭐니뭐니해도 가정이 가장 소중"

'요리사' 엄마 미요코가 만든 스파게티를 먹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정겹다.
2층 난간 앞에서 포즈를 취한 미요코네 가족들.
함양군 요리강좌에 참여, 포즈를 취한 미요코와 동료.
셋째 동현(6)과 막내 동현(3). 표정이 영판 개구장이다.

야마모토 미요코(40)는 일본 지바현 출신이다. "도쿄와 가까우며 이승엽이 한때 맹활약했던 롯데 마린스의 본거지이자 나리타 국제공항이 있는 곳이에요."
 지바현을 모를 것 같은 기자에게 친절하게 막힘없이 설명하는 미요코. 마치 한국인과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다. 언어 구사력이나 정서 등 모든 면에서 그랬다.
 미요코는 독실한 통일교 신도이다. 그러니까 그의 한국행은 종교적 신념 때문이었다.
 사회복지를 전공,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조그만 무역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미요코는 어느날 거리에서 통일교를 알리는 소식지를 우연히 접하면서 인생의 항로가 달라졌다.
 "지난 1995년 서울 잠실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렸어요. 당시 36만 쌍의 부부가 탄생했지요. 저희 부부도 그 중의 하나였어요. 부모님의 반대가 완강했어요. 통일교 자체를 반대했고, 무엇보다 한국인과 결혼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심지어 저더러 미쳤다고도 했어요. 부모님이 저의 행복을 바랐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알았지만 저 또한 종교적 신념 때문에 굽힐 수 없었어요. 제가 행복한 삶을 산다면 언젠가 저희 부모님도 저희들을 용서할 것이라 확신했어요."
 한국에서의 신접 살림은 남편의 직장 때문에 1997년 서울에서 시작했다. 2년간의 공백은 결혼 후 건강이 좋지 않아 일본에서 몸조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남편이 한국과 일본을 자주 오갔다. 5년 후 대구로 옮겨 1년 정도 살다 지난 2003년 남편의 고향인 함양에 정착했다. 남편은 현재 조경 사업을 하고 있다.
 슬하에 자녀는 2남2녀. 최은진(11) 은성(9) 동현(6) 효성(3). 우선 남편이 가급적 많은 아이를 원했고, 남동생만 하나 있어 약간 외로웠던 미요코 자신도 이에 동의했다. 다산을 할 수 있게 건강한 신체를 주신 부모님께 고맙다고도 했다.
 함양에 정착한 미요코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1층에선 시부모님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미요코 가족은 2층에 산다. 하지만 시부모님이 바쁘신 데다 아기가 4명이나 돼 사실상 독립된 삶을 살고 있다.
 함양에선 함양문화원의 도움을 받았다. 외국인 이주여성들의 적응을 도와주는 데다 한국어 교육도 새롭게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식조리기능사 시험도 문화원이 권했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어 방문교사도 "미요코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심어줘 비로소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요코 역시 중도에 포기하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이현지 이론 강사가 "이왕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죠"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미요코에 대한 이현지 강사의 코멘트. "미요코는 모르는 부분은 포스트잇을 붙여 수업시간마다 일일이 물었고 일본어로 주석을 달아 외우고 또 외우더군요. 응용문제도 풀 수 있을 정도였어요. 베티는 반신반의했지만 미요코는 사실 합격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또 집에 가면 아기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며 수업을 마치고도 1시간씩 공부를 하고 귀가했어요."
 실기 강사 박경숙(뉴영남 요리직업전문학교) 원장의 미요코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말도 능수능란한 미요코는 물론 나이가 있어 그런 면도 있지만 차분하고 한마디를 해도 굉장히 예의가 발라요. 워낙 차분하고 완벽을 추구하다 보니 시간 내 완성해야 되는 요리도 제한 시간을 넘기더군요. 좀 빨리 하라고 채근해도 잘 고쳐지지가 않았어요."
 미요코가 다시 받아 한마디 거든다. "저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빨리 해보려고 집에서도 한번 해봤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어요."
 가족들의 격려 또한 큰 힘이 됐다.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면 미요코는 지친 나머지 요리할 힘이 없어 양이 적더라도 그날 실습한 음식을 모두 가져갔다. 다행히 아이들은 "우리 엄마는 요리사"라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자랑했고, 남편 최성태(40) 씨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음식이 있었냐"고 반문하며 "알고 보니 우리집에 몟장금몠이가 있었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늘도 미요코의 노력에 감복했는지 미요코는 일사천리로 이론과 실기를 가볍게 통과했다.
 최종 합격 후 미요코는 가장 먼저 실기 강사인 박 원장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그리고 선생님께 칭찬을 듣고 싶어요."
 발표날을 잠시 잊고 있었다는 박 원장은 "많은 합격생을 배출했지만 미요코처럼 정이 많고 예의 바른 학생은 사실 드물다"며 아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미요코는 3번 정도 막내를 업고 실기 수업에 참가했어요. 아기 때문에 직접 요리 연습은 못하더라도 눈으로만 봐도 공부가 된다며 아기를 업고 꼼꼼히 눈여겨보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미요코는 이번 어버이날 시부모님께 식사를 대접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기 핑계를 대고 만날 얻어 먹기만 해서 사실 마음의 빚이 많았는데 앞으로는 지금까지 배운 한식을 응용, 제대로 된 효도를 하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전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으로 취업할 생각은 없어요. 단지 우리 가족과 시부보님을 위해 보다 다양하고 맛있는 한국음식을 만들고 싶어요. 뭐니뭐니해도 가정이 제일 소중하잖아요."

미요코가 만든 쇠고기 불고기

미요코가 만든 쇠고기 불고기(왼쪽)와 베티가 만든 잡채.

"쇠고기의 경우 일본에선 특별한 날일 경우 쇠고기 불고기를 해먹고 보통 때는 주로 샤브샤브를 많이 해먹어요."
  미요코는 마치 TV 요리프로그램에 출연한 요리사처럼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쇠고기는 등심이나 안심으로 골라 얇게 저며 잔칼질을 한다거나, 고기는 한 점씩 떼어 양념장에 주물러 간이 고루 배게 한다는 등등. 완성한 쇠고기 불고기는 맛도 좋고 모양도 좋다. 시금치 당근 버섯 등의 색감은 미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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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일림산 철쭉은 사시사철 산 넘어 남쪽 바다인 득량만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해풍을 받고 자라 유난히 빛깔이 붉고 선명하다. 사진은 정상 주변의 국내 최대 철쭉 군락지.

 
우리 산천을 화사하게 물들이는 봄의 전령은 누가 뭐래도 진달래. 겨우내 움츠렸던 잿빛 산천을 일순간 연분홍빛으로 변모시키는 참꽃 진달래는 그래서 산꾼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진달래가 지고 나면 이번엔 철쭉이 바통을 이어받아 수줍은 듯 고운 자태를 뽐내며 또다시 온 산을 연분홍빛으로 불태운다.

철쭉은 계절의 여왕 5월의 꽃. 연분홍 새잎이 나기 전 발랄하게 만개하는 진달래와 달리 철쭉은 짙어가는 신록을 배경으로 차분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주 산행지는 전남 보성 일림산. 보성강 발원지인 용추계곡을 품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철쭉산이다.

일림산은 황매산 바래봉 덕유산 봉화산 제암산 등 유명 철쭉산 중 최남단에 위치해 개화시기가 가장 빠른 데다 군락지 규모 또한 국내 최대를 자랑한다. 유난히 어른 키만큼 큰 일림산 철쭉은 사시사철 바다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해풍을 맞으며 인고의 세월을 보낸 탓에 유난히 빛깔이 붉고 선명하다.

 해발고도는 668m. 그 유명한 보성 차밭을 품고 있는 일림산은 호남정맥이 무등산을 거쳐 제암산(807m) 사자산(668m)으로 내려오며 그 기세가 한풀 꺾여 남해바다로 빠져드는 순간 불끈 솟구쳐 산줄기를 북으로 돌려놓는 터닝 포인트에 위치해 있다.

사실 떠나기 전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철쭉 군락지가 330만 ㎡(100만 평) 정도로, 제암산과 사자산으로 연결되는 산줄기까지 포함하면 무려 12.4㎞에 달해 가히 세계적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산에 대한 호평은 그저 의례적인 예의로 그러하겠거니 하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명불허전(名不虛傳) 그 자체였다.

남쪽 바다인 득량만을 바라보며 당당히 서 있는 자태는 장엄하지만 한편으로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러운 정상부의 산세는 진홍빛으로 물들어 마치 산상화원을 방불케 한다.

발걸음을 멈추고 잔잔한 바다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 철쭉 군락이 꽃물결의 장관을 펼쳐보이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동심으로 돌아간다.

산행은 웅치면 용추계곡 주차장~나무다리~용추계곡 등산로 입구 갈림길~임도~골치사거리~작은봉~삼거리(철쭉군락지)~일림산~봉수대 삼거리~635봉~봉수대 삼거리~봉강사거리~보성강 발원지(샘터)~잇단 임도~너덜길~갈림길~주차장 순. 순수하게 걷는 시간은 3시간 남짓. 이정표가 깔끔하게 정비돼 있는 데다 힘든 곳이 거의 없어 남녀노소 누구나 산행이 가능하다.


용추계곡 주차장에서 주차관리사무소 방향으로 용추계곡과 나란히 걸으면 나무다리를 만난다. 입구에는 현 위치 '용추계곡'이라 적혀 있다. 정상(3.1㎞)을 향해 다리를 건너 숲으로 접어든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편백 숲이 삼림욕장을 방불케 한다.

본격 들머리인 나무 다리.

근접 촬영.


울창한 전나무숲.

갈림길.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없다.


 곧 갈림길.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없지만 산행팀은 우측 골치(1.2㎞)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계곡을 건너 10분 뒤 임도로 올라선다. 주변은 낙엽송만 듬성듬성 보일 뿐 전체적으로 수목이 적어 을씨년스럽다. 알고 보니 올 초 잡목은 모두 베고 낙엽송을 조림했다고 한다. 50m쯤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가면 왼쪽으로 올라서는 길이 보인다. 300m쯤 오르면 골치 사거리. 우측 제암산(7.5㎞) 사자산(3.4㎞), 직진하면 장흥 안양방향, 산행팀은 좌측 한치재(6.5㎞) 정상(1.8㎞)으로 향한다. 한치재는 보통 가이드 산악회에서 일림산 산행 들머리로 애용하는 곳.

이젠 오름길. 좌우 모두 철쭉이라 꽃구경 하다 보면 힘든 줄 모른다. 20분 뒤 멋진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지점에 닿는다. '작은봉'이란 조그만 안내판이 보이는 일종의 쉼터다. 일림산 정상이 우측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오름길. 9분 뒤 동그란 덱(deck)이 위치한, 정상 직전 전위봉에 올라서는 순간 입이 쩍 벌어진다. 정면 일림산 정상을 필두로 시야에 들어오는 산사면 전체가 온통 진홍빛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규모가 100만 평이란 말이 그저 나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절경 그 자체다. 등 뒤 일림산의 반대편 높은 봉우리가 제암산과 그 유명한 임금바위이고 그 왼쪽 봉우리가 사자산이다.

또 한 가지. 2만5000분의 1 지형도엔 일림산 왼쪽 봉우리(627m)에 정상이라고 표기돼 있지만 실제론 정면 봉우리(668m)가 더 높다. 주차장 앞 등산안내도에도 이 봉우리에 '일림산'이라고 적혀 있다.

이제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 전주 이씨묘를 지나 산죽과 철쭉이 뒤섞인 터널길을 10분쯤 가면 '철쭉군락지'란 안내판이 서 있는 삼거리. 직진하면 한치재 절터 방향, 산행팀은 우측 정상으로 오른다. 철쭉 실크로드를 5분쯤 만끽하다 보면 마침내 정상. 삼각점이 위치한 정상에 서면 정면 남쪽으로 득량만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하산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5분 뒤 너른 터가 있는 안부. 좌측으로 절터를 거쳐 용추계곡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지만 무시하고 한치재 방향으로 직진한다. 6분 뒤 봉수대 삼거리. 산행팀은 좌측 한치재 방향 대신 잠시 바다와 근접한 우측 봉우리(635m)로 간다. 넉넉잡아 20분이면 구경까지 하고 다녀온다. 사실 산행팀은 정상에서 이 봉우리를 보면서 이곳이 더 높은 것으로 알고 호기심을 갖고 왔지만 이곳에서 보니 일림산 정상이 더 높았다. 착시였던 것이다. 성과도 있다. 눈앞에 득량만 전체가 막힘없이 펼쳐지고 그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득량도와 그 뒤로 고흥땅이 보인다. 왼쪽 발 아랜 회천면과 맨 끝 방파제 쪽이 율포해수욕장이다.

득량만. 사진 상으로 보이진 않지만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득량도와 그 뒤로 고흥땅이 보인다. 왼쪽 발 아랜 회천면과 맨 끝 방파제 쪽이 율포해수욕장이다.

봉수대 삼거리에선 한치재 방향으로 향한다. 14분 뒤 봉강사거리. 한치재 방향으로 직진하면 627봉을 거쳐 능선을 타고 빙 돌아 용추계곡(3.7㎞)으로 이어지고, 좌측 보성강 발원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계곡 상류에서 계곡을 따라 하산하게 된다. 산행팀은 지름길 격인 후자를 택했다. 
  
침목계단길로 6분이면 보성강 발원지인 샘터에 닿는다. 이 물은 곡성군 압록에서 300리의 긴 여정을 마치고 섬진강과 합류, 하동을 지나 남해바다에서 생을 마감한다. 


산행 내내 친절한 이정표가 이어진다.


 이제 산행은 막바지.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주차장까진 2㎞. 길은 좌측으로 휜다. 10분이면 임도에 닿는다. 임도를 따라 주차장까지 가면 되고 임도를 가로지르면 산길이 열려 있다. 물길을 건너 살짝 올라서면 편백숲. 이내 또 임도. 앞선 임도에서 12분. 우측 대각선 방향으로 길을 건너면 다시 산길. 잠시 후 용추계곡과 산길 임도가 나란히 달린다. 너덜을 지나면 편백숲에서의 맨 처음 갈림길. 다리 건너기 직전 우측 계곡을 따라 100m쯤 오르면 팔각정과 함께 와폭인 용추폭포와 용소가 위치해 있다. 놓치지 말자. 이제 다리만 건너면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용추계곡 주차장에 닿는다.

와폭인 용추폭포.




◆ 떠나기 전에 - 이번 주말 찾아도 만개한 철쭉 화원 볼 수 있어

신라 성덕왕 때 남편을 따라 강릉으로 향하던 수로부인이 천길 낭떠러지에 활짝 핀 꽃을 한참 바라보자 지나가던 한 노인이 향가와 함께 그 꽃을 바쳤다고 전해온다. 그 향가가 '헌화가'이고 꽃은 바로 '철쭉'이다.

보성군은 8~11일 일림산 철쭉제와 다향제를 개최한다. 축제 기간 중 용추계곡은 주차장은 물론 진입 도로까지 차로 넘쳐나 산행은 고사하고 주차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보성군 관계자에 따르면 같은 기간 장흥 제암산 축제도 겹쳐 올해도 사정은 비슷했다고 한다.

보성군 관계자는 "아직 철쭉이 지지 않아 이번 주말에 찾으면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꽃구경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열리지 않은 철쭉제는 다음과 같다. 소백산 영주권 29~31일, 단양권 23~31일, 태백산 6월 5~7일..    
 
맛집 한 곳 소개한다. 순천 진달래식당(061-721-1010). 순천IC에서 나와 여수 순천 장흥 보성 쪽으로 자주 다니는 산꾼이나 낚시꾼 그리고 기사들이 이 식당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싸고 맛있는 집이다.

 일단 앉으면 큰 쟁반에 밥과 시락국 오징어젓갈 홍어회 생선 등 전라도 특유의 깔끔한 반찬이 푸짐하게 나온다. 여기에 한쪽 편에 차려진 돼지고기볶음 탕수육 닭강정 잡채 상추 고추 마늘 된장 호박죽 국수 등을 무한대로 먹을 수 있다. 순천IC로 가기 위해 좌회전을 받으면 고가도로 밑 GS진달래 주유소 옆에 있다. 순천IC에서 차로 5분 거리.

◆ 교통편 - 남해고속도로 순천IC로 나와 여수 순천 벌교방면

대중교통편으론 당일치기가 불가능해 승용차를 이용해야 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이정표 기준으로 남해고속도로 순천IC~여수 순천 17번(순천만 낙안읍성)~순천 2번 벌교 순천만~지하도 통과~2번 벌교 여수~2번 벌교 낙안민속마을~2번 고흥 벌교 낙안민속마을~보설 벌교 2번~목포 벌교 2번~목포 보성 2번~보성차밭 일림산 철쭉~목포 장흥~웅치 일림산~왼쪽 굴다리 통과(일림산) 895번 지방도~회천 웅치 제암산자연휴양림~장흥 회천 제암산 일림산 우회전~웅치면 소재지 통과~대산 제암산 일림산 직진~제암산자연휴양림~일림산 용추폭포 좌회전~용추계곡 주차장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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